식민지 시대를 보는 눈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지평을 넘어서-
열린마당
배 성 준 / 서울대 강사․역사학
1.
복잡한 사건이나 인물, 빽빽한 통계숫자를 벗어나서
식민지시대를 생각할 때, 서로 겹쳐 떠오르는 세 가지 인상들이
있다. 하나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성장에 기여하였다”는 일본 관료들의 망언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망언과 겹쳐 떠오르는 강제로 끌려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마지막 하나는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한국의 모습, 근대식 빌딩과 공장이 들어선 경성부(京城府)의
모습이다.
1980년대까지도 누구나 앞의 두 가지 인상 속에서 식민지시대를
바라보았다. 일본관료의 망언이 터져나올 때마다 일본인들의
왜곡된 식민지상에 분노하는 한편, 암울하고 비참했던
식민지시대, 대동아전쟁의 방패막이로 끌려가는 한국 청년들과
일본군대의 위안부로 끌려가는 한국여성들을 떠올렸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철저하게 일본인을 위한 식민지의 수탈이었으며,
처음에는 금과 쌀을, 그 다음에는 사람을 빼앗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지배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으며, 행동으로 나타났건 아니건 몇몇 친일파를 제외한
모든 한국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는 항일투사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수탈과 독립운동으로 각인된
식민지상은 잘못되었으며, 이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식민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한국이 신흥공업국(NICs)의 하나로 주목받게 되고,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소련과 중국이 한국의 경제개발을
모범적인 모델로 수용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또한 자동차의
홍수와 해외여행의 보편화 등 고도성장을 통한 양적 팽창이
생활방식을 바꾸어 나가고, ‘외채 위기’ 속에서 불황이 닥치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던 한국자본주의가
산업구조조정을 수행하면서 안정적 기반을 갖추는 것처럼
보이자, ‘이제까지 우리는 한국자본주의를 잘못 보았다’고
반성하면서 경제성장이 이룩해 놓은 결과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이렇게
놀라운 경제 발전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경제성장의 기반을 찾기 위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50년대를 지나고 해방전후를 지나 식민지 시대에서, 이들은
철도가 놓이고 근대식 설비를 갖춘 공장이 들어서는 한국의
모습, 경성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한국인들이 흥남의
‘조선질소’에 기술자로 입사하는 모습을 본다. 이들은 여기에
식민지시대에 근대화의 출발, 한국자본주의의 출발이라는 깃발을
꽂은 후, 한국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을 가져온 인적․물적인
조건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결론짓는다. 위에서 든 세 번째
인상은 이러한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편의상 두 번째
인상을 뒷받침하는 견해를 ‘수탈론’, 세 번째 인상을
뒷받침하는 견해를 ‘식민지 근대화론’(이하 근대화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2.
8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근대화론은
이제 한․일 양국의 관심사가 되었다. 국내의 언론들은
몇차례에 걸쳐 근대화론에 대한 논쟁을 소개하였으며, 일본
ꡔ산케이신문ꡕ은 “서울대 안OO 교수를 중심으로
일제하 한국의 공업화 등 개발의 실태를 실증적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이 일고 있으며, 이런 ‘재평가파’가 경제사 연구분야에서
1/3을 점하고 있다”(1996.7.3.)라고 소개하였다. 또한 지난해
6월 ‘한국사회사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비판적 검토」라는 주제 아래
공동 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이러한 언론과 학계의 반응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근대화론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치부하면서 “근대화론에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 “근대화론을 너무 키워주는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화론은
그대로 무시하기에는 중요한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근대화론은 지금까지 인식하던 식민지상과는 다른
시대상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탈론에서는 식민지 시대를
수탈과 독립운동의 시대로 바라보는 반면 근대화론에서는 식민지
시대를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대, 경제성장의 인적․물적
조건이 마련되는 시대로 바라본다. 수탈론의 계산에 의하면
식민지 전기간의 국내총생산액 550억 원 가운데 80% 이상이
고스란히 일본으로 빠져나가거나 파괴되었다고 하는 반면
근대화론의 계산에 의하면 1911년에서 1938년까지 28년 동안
조선경제는 연평균 3.7%의 성장을 보였다고 한다. 국내총생산의
4/5가 파괴되면서도 약 4%에 이르는 성장이 가능하다니!
수탈론과 근대화론 중 어느 한 쪽이 틀렸을까, 아니면 동일한
시대를 이렇게 다르게도 볼 수 있는 것일까. 식민지 시대에 대한
두 가지 인식의 괴리가 어디에서 오는가를 해명하기 위하여
새롭게 등장한 근대화론과 기존의 인식방식인 수탈론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3.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일제시대에 대한 인식을 지배해 온 것은
‘수탈론’이었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왜곡된 한국사의
모습(타율적이고 정체된 한국사)을 극복하는 것이 해방 이후
한국사의 최대 과제였고, 이러한 과제에 부응한 것이 ‘내재적
발전론’과 ‘수탈론’이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조선
후기에 이르면 스스로의 힘으로 상공업의 발전과 실학이라는
근대화의 싹을 만들어 내었지만, 일본의 침략과 수탈에 의하여
근대화의 싹은 몰락하고 식민지로 전락하였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일본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철저한 수탈이었다.
내재적 발전론을 계승한, 수탈론의 기본적인 인식틀은 한국인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민족경제’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전제하며, 민족경제의 유지, 발전을 최대의 과제로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식민지시대에는 일본인이 만든 ‘제국주의
경제권’과 분리된, 자율적인 한국인의 ‘민족경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는 한국 경제를
한국인의 수탈을 위하여 기형적이고 불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파악한다.
수탈론은 ‘민족자본’과 한국 경제의 ‘식민지적 파행성’에
주목한다. 민족자본은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민족경제 내부에서
활동하는 자본인데, 조선 후기 이래의 상공업의 발전에 기초하여
성장한 민족자본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일제의 민족자본
억제정책과 일본자본의 침투에 의하여 성장이 저지되었으며,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대다수 민족자본은
몰락하였다고 파악한다. 민족자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민족자본의 정상적인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든 한국 경제의
식민지적 파행성으로 나아간다. 수탈론이 거론하는 한국 경제의
식민지적 파행성이란 1)한국의 공업이 일본에서 건너온
독점자본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으며 2)국내의 재생산연관이
결여된 채 일제의 원료 약탈로 인하여 불균등 성장을 하고
있으며 3)중공업과 경공업이 모두 낙후하여 일본에 예속되어
있으며 4)남쪽에는 경공업, 북쪽에는 중공업을 중점적으로
배치하는 공업 생산배치에서의 지역적 편중성 등으로 나타나는
데, 한국 경제를 수탈하기에 좋은 모양으로 만든 결과가 바로
식민지적 파행성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수탈론적 인식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가지는 수탈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식민지시대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였다. 또한 수탈론은 수탈을 위하여 만든 기형적이고
불구적인 한국 경제를 정상적이고 자율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독립운동 및 일제 잔재의 청산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독립운동 및 이를 지원하는 활동, 해방 이후
일제 잔재의 청산 등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탈론이 해방 이후의 일정한 시기 동안에 필요한
인식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수탈론에 갇힐 경우 식민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즉 수탈론의 인식에 갇힐 때,
한국 경제는 수탈이라는 한가지 색깔로 채색된다. 총독부의 모든
정책은 수탈을 위한 개발이며, 한국 경제는 수탈을 위하여 편성,
배치되고, 수탈에 필요한 부문만 확대, 성장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일면적이다. 식민지 지배는 수탈 뿐만
아니라 지역간, 계급간 이해와 갈등을 조절하고 재생산을
유지하는 등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산미증식계획이 쌀의
수탈을 위한 것이라면 농촌진흥운동은 농촌의 파탄을 막고
안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측면을 간과하고
수탈론을 통하여 식민지 사회를 바라볼 때, 몰락하는 민족자본과
파행적인 한국 경제만 있을 뿐 총독부와 농민, 총독부와
지주․자본가의 갈등과 타협,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민족적 갈등, 지주와 소작인,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과 타협 등
다양한 대립과 갈등, 타협과 예속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변화해
가는 식민지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4.
근대화론은 한편으로는 1980년대 후반의 시대적 조건 속에서
나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탈론이 가지는 일면성을 비판하면서
출현하였다. 근대화론은 기존의 식민지상이 수탈과 독립운동으로
채워지는데 반대하고, 수탈이라는 측면보다 더 중요한
‘개발’의 측면이 있으며 그 속에서 한국인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근대화론의 기본적 인식틀은 ‘후진국-중진국-선진국’이라는
단선적 발전전망 속에서 후진사회 및 식민지사회를 바라보며,
이러한 발전은 경제개발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이들은
1980년대를 지배하던 기본적인 인식틀인 ‘제국주의론’을
버리고 경제개발론을 수용한 후 무역, 재정, 자본, 시장 등의
측면에서 식민지 경제를 바라보며, 여기에서 경제성장의 기반을
찾는다.
근대화론은 1930년대의 공업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화’에 주목한다. 이들에 의하면, 1930년대 들어
일본으로부터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투자의 중점이
은행․금융에서 공업으로 옮겨지고, 농촌으로부터 노동력의
유출과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포섭이 급속하게 진행된다. 이러한
급속한 자본주의화를 반영하는 것이 무역, 산업 및 소비시장의
변화인데, 1930년대 대일무역이 크게 증가하면서 수출에서
공업제품의 비중이 상승하고, 공업제품의 무역에서 생산재의
비중이 높아졌다. 공업 생산에서 생산재의 비중이 상승하고,
조선인 회사․공장은 근대적 업종을 중심으로 다양한
업종에 진출하였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비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노동력부문에서 1930년대의 공업화로
노동자가 양적으로 크게 늘고, 교육의 향상과 노동경험의 축적을
통하여 조선인 노동자는 비숙련부문에서 숙련부문으로
진출하였다.
이러한 근대화론의 인식은 수탈론의 일면적 인식을 비판하고
개발 혹은 근대화라는 식민지시대의 다른 한 측면을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식민지시대를 인식했다는 점에서 수탈론과 마찬가지로
일면적인 인식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더 나아가면 이러한 개발
중심적 인식은 자본주의화를 산업화로, 경제의 양적 성장과
경제구조의 근대화 등으로 인식하는 경제개발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화는 산업화의 과정으로 한정될 수 없는
착취의 과정이자 계급투쟁의 과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
조직되고 작동되는 과정은 노동일의 연장, 노동강도의 강화,
실질임금의 저하 등 자본가의 다양한 초과착취가 이루어지고
노동자가 이에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ꡔ자본론ꡕ에서 서술되는 ‘본원적 축적’의 역사는
수공업적 노동자와 농민을 구축하고 매뉴팩춰와 기계를 도입하는
과정인 동시에 자본의 지배하에 임금노동자와 기계를 결합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화를 바라볼 때 비로소 식민지 지배가 이루어지는
다양한 대립과 갈등의 과정 및 타협과 예속의 과정이 드러날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성장의 배경을 식민지시대의 공업화 혹은
자본주의화에서 찾고자 하는 인식이 가지는 문제이다.
경제성장의 배경을 과거의 역사에서 찾고자 하는 생각에서 그
이전의 시대를 바라본다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개발의 모습일
뿐이다. 왜냐하면 현재적 관심에서 들여다 본 과거는 현재적
관심을 투영한 과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화론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가지는 수탈의 측면을
이야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개발이 낳은 부산물이거나
개발이라는 중심적 개념에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근대화론자에게 다가오는 식민지의 모습은 다양한 모순 속에서
작동하는 식민지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니라 근대화의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조선 자본주의의 모습일 것이다. 또한
경제성장의 배경을 식민지시대에서 찾아본다는 단순한 논리는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한 전시통제체제로의 전환, 해방 이후
식민지자본주의의 종속적 (관료)자본주의로의 재편,
국제분업구조로의 편입과 초국적자본(TNC)의 지배 속에서
자본축적의 위기와 극복 등 다양한 계기와 논점을 간과하기
쉽다.
5.
그렇다면 수탈론과 근대화론의 함정을 피하면서 어떻게 식민지
시대를 인식할 것인가, 수탈과 개발이라는 일면적 인식을 넘어
새로운 식민지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개발/수탈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에서 벗어나 식민지적
근대화를 다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한국의 근대화란
처음부터 식민지의 각인을 받으면서 출발하는 ‘식민지
근대화’이며, 식민지 근대화는 개발과 수탈이라는 두 가지 면을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제에 의하여 놓여진 철도는 기존의 교통체계를
혁신하는 근대적 산물인 동시에 철도노선, 수송되는 물자의 성격
등에서 식민지성을 가진다. 그리고 철도가 사람과 물자의 수송을
원활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개발이지만 물자의 수집과 일본으로의
반출을 원활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수탈인 것이다. 공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공업이나 매뉴팩춰를 대체하면서 세워지는
자동기계가 설치된 공장은 근대적 산물이지만 동시에 일본자본에
의하여 세워지며 한국인의 저임금 노동력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식민지성을 가진다. 그리고 많은 상품을 값싸게 공급한다는
점에서는 개발이지만 전통적 상품을 구축하였으며 조선인
여성․아동이 장시간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혹사되었다는 점에서는 수탈인 것이다.
이제 개발 혹은 수탈, 고루한 수탈론 혹은 세련된 근대화론을
넘어, 전근대적 부문과 근대적 부문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식민지자본주의의 복합적인 구조
- 농업에서 자본주의적 지주경영의 출현, 하청관계를 통한
대공장과 중소공장의 결합, 공장공업과 가내공업의 공존,
수공업적 노동과 공장노동의 공존, 재래시장과 근대적
상설시장의 공존 등등 - 와 모순이 포착되어야 하며, 그러한
구조와 모순 속에서 대중의 삶이 서술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조선 고유의 ‘토포(土布)’가 가내용(家內用)으로만
존속하고 일본에서 생산된 ‘광목’이 시장을 지배하는 식민지의
한 단면은, 개발과 수탈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총독부의 지배
속에서 식민지 대중의 삶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과정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