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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현장을 장악하라
 97년 영창악기 임단협 투쟁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24호
이상우


이번 호 현장통신은 두편의 글을 실었다.
첫 번 째 글인 ‘생산현장을 장악하라!’는 총파업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뒤, 한국노총을 탈퇴한 후 민주노총에 가입하여 관심을 집중시켰던 바 있고, 이어 최근에 종결된 임단협 투쟁에서도 유니온 샵 인정, 상급단체 파견 인정, 교육시간 확보 등 높은 수준의 단협안을 쟁취함으로써 다시 한번 관심을 집중시켰던 영창악기노동조합의 임단투 과정에 대한 평가를 실었다.

두번 째 글인 ‘상업서비스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상업연맹의 과제’는 독립적이었던 유통노조들이 97년 4월 상업연맹을 결성하고, 아직 어느 상급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지향하고 있는 운동방향과 비정규직노동 및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업서비스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소개했다.


현장통신 1
생산현장을 장악하라!

이 상 우 / 영창악기노동조합 위원장






동지들의 관심에 연대로 답하기 위해

97 임단협 투쟁이 끝난 지금 영창악기 제1공장에는 정문을 사이에 두고 안팎으로 텐트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정문밖에 있는 텐트에서는 해고노동자 두 명이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지난 6월 30일부터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정문안에 있는 텐트는 조합간부들이 동조농성을 하면서 설치한 것이다.
영창악기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해 함께 투쟁하다가 해고된 동지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97년 임단협 투쟁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오랫동안 망설였다. 많은 동지들이 보게 될 연구소 기관지에 글이 나가려면 그럴듯한 내용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내세울 만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영창악기 투쟁을 소개하려니 꽤나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해결해야 할 과제를 쌓아둔 채 한가하게(?) 글을 쓰고 있을 처지가 못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속연맹공동교섭단의 한 사람으로 인천지역 아남정공 교섭에 참가하면서 조합일을 소홀하게 다룬다는 눈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투쟁한 동지들과 공식적인 평가를 마치지도 못한 채, 개인도 아닌 위원장이 외부에 투쟁평가에 해당하는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개인적이지만 몇 가지 동기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주변에서 영창악기노동조합에 보내는 관심이다. 그 관심에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는데 대부분은 칭찬과 격려에 가까운 것으로 내심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영창악기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우려스러운 시선은 물론 칭찬과 격려까지도 실은 우리 노동조합 내부실정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영창악기노동조합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보다 냉정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다음으로는 영창악기노동조합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집행부가 안고 있는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신생 노동조합이나 다름없는 조합 위원장으로서,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철회투쟁 총파업을 거쳐, 최근에 민주노총 대열에 합류한 또다른 노동조합 집행부가 감당해야 하는 비슷한 문제인식을 교류하고 싶은 심정이 동기로 작용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알려진 대로 영창악기노동조합은 평균 기본급 9.5%(정율 4.75%, 정액 1020원/일)와 상여금 50% 인상, 그리고 단체협약 23개 조항을 갱신하는 것으로 97임단협 갱신투쟁을 마무리했다. 단체협약 갱신내용 가운데 성과라고 볼 수 있는 몇 가지를 정리하면 1)유니온 샵 인정 2)조합원 교육 및 조합활동 10시간 확보 3)상급단체와 상급단체 파견 인정 3)인원정리는 60일 이전에 조합과 합의 4)98년 6월 1일부터 주 42시간 실시 등이다.
임금인상은 액수로 따지자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어서 동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단체협약 내용이 아닌가 한다. 그 가운데 개정 노동법 적용을 저지하기 위한 조합원 그리고 조합간부들의 투쟁과 노력을 높이 평가해 주고 있는 것같다. 일부에서 바라보는 대로 성과가 있었다면 그 몫은 당연히 조합원 전체의 것이다. 또한 쉽지 않는 그 성과의 바탕에는 영창악기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강점이 작용하고 있었는데, 이 강점은 노동조합 선거 이전에서부터 형성된 것으로 역사는 96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창에서 숨쉬는 모든 것은 하나로

97임단협 투쟁에 힘을 발휘한 영창악기의 강점은 생산현장 장악력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창악기노동조합은 집행부 구성이후 짧은 기간동안 생산현장을 장악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민주집행부가 들어선 뒤 처음 맞이하는 투쟁에서 생산력을 조절하는 태업 전술을 과감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 전술을 조합원들이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공정 전체를 노동조합이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태업투쟁에서 노동조합이 정한 생산량을 정확하게 소화해낸 조합원이 집행부에 보낸 신뢰는 96년 위원장 선거를 승리로 이끈 통합력의 연장선에 있었다. 94년 100일을 넘는 정문앞 텐트농성을 통해 원직으로 복직한 나와 두 동지(현재 노동조합의 사무차장과 홍보부장)는 뿌리깊은 어용집행부를 뒤엎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갈라져서 대립하고 반목하는 집단과 세력을 하나로 모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복직한 해고노동자가 조합원을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데 앞장서되 중심에 서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하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조합원이라면 누구라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지와 전체 조합원을 다 만나겠다는 각오로 하루에도 적게는 한 두개에서 많게는 너 댓개가 되는 약속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리를 해고시킨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어용집행간부와 이야기하기 위해 음료수를 사들고 집에 까지 쫓아가서 만난 적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노동조합 민주화투쟁은 집행부를 교체하는 데 한정된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바램을 중심으로 전체를 통합하는 것이라는 점을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교훈으로 새겼다. 평소 노동조합에 무관심한 조합원, 어용집행부와 세력 다툼에 골몰하는 세력, 해고노동자를 범죄자 보듯하는 동료들 모두가 8대 위원장 선거대책본부에 모였다. 이는 선거연합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앞서 지적한 대로 조합원의 바램(우리의 경우 민주노조건설이지만 민주노조를 건설한 노동조합의 경우 이를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운동의 발전 방향)에 따라 공통의 목표를 인식하고 실질적인 통합 지도력을 건설하는 과정이었다.
우리 사무국장님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 지금 나와 함께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사무국장님은, 복직한 내가 현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회사가 임무를 주고 배치한 직장이었다. 당시 직장으로 근무하던 사무국장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내가 일하는 부서로 배치되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으르렁대며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술도 많이 먹었다. 96년 임금인상 투쟁을 앞두고 사무국장님의 배려와 도움으로 나는 대의원에 당선되었고 우리는 본격적인 위원장 선거를 준비하게 되었다.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하겠다고 여기저기서 찾아온 직․반장 그리고 크고 작은 모임 대표들, 조합원 모두는 선거연합이 아니라 민주노조건설을 바라고 있었다. 조합원이 민주노조를 품에 안기에 충분한 통합력이 형성된 것이다.
이를 몸으로 확인한 사례가 하나 있다. 어느날 퇴근하는데 친숙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얼굴을 알만한 형님 한 분이 자기하고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한다. 그런 제안을 뿌리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서 따라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형님과 들어선 방안에는 비슷한 또래의 나이 지긋한 형님 몇 분이 술상을 마주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술잔을 권하면서 소개를 한다.
“20년 전에 영창악기노동조합을 결성한 못난 놈들이여.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놓고 힘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밀려난 뒤 나름대로 재주를 부려 보았지만 신통치 않았다는 형님들은 그동안 거쳐간 많은 활동가들과 후배들을 보면서 착잡하기만 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도와주고 싶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는 바람에 안쓰럽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빠질 수 없어서 자리를 만들었단다. 형님들은 우리까지 가세했으니 영창악기에서 숨쉬는 것은 모두 하나라고 보면 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주체적인 총파업 참여와 더욱 강화된 힘

97임단협 투쟁을 앞둔 조합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안은 고용문제였다. 노동조합집행부는 이와 같은 조합원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고 회사도 이러한 내부정세를 알고 있었다. 영창악기 8대 집행부는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96년 임금협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회사는 직․반장을 포함한 300여명을 대기발령 시키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창업이래 최대의 적자폭을 기록한 회사는 구조조정을 통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원감축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경영진 내부에서 불거진 세력다툼이 작용하는 바람에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공개된 방침은 다가오는 위원장 선거에서 현집행부 핵심을 제거하려는 의도까지 포함한 다목적 술책이었던 것이다.
전체 조합원은 당장 위기감을 느꼈고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오히려 직․반장들이 먼저 나서서 회사 방침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회사가 깔아둔 다목적 포석은 다연발 포탄으로 변했고 고용문제 완전해결을 내세운 선거대책본부가 8대 집행부로 들어섰다. 노동조합에 거리를 두고 있던 직․반장들 사이에서 조합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무직 가입대상자들이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 이제 생산현장의 장악에 필요한 교두보가 확보된 것이다. 영창악기 조합원에게 고용문제는 그만큼 심각한 것이었고 노동조합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활개를 칠만큼 생산현장 장악력이 높은 것만은 아니었다. 전 집행부세력은 여전히 세를 유지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가하면 사사건건 부딪히는 직․반장들도 많았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조합원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 대열에 합류하도록 설득하는 반면 전혀 협조할 의사가 없는 세력은 철저하게 제압하면서 조합을 정비해 나갔다.
이때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철회 총파업이 터졌다. 조합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12월 26일 전면파업에 돌입하였고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동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단계 총파업이 수그러드는 시기를 전후해서 회사쪽과 전 집행부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도 아니면서 임금도 받지 못하는 불법적인 파업에 왜 앞장서느냐는 상투적인 공세였지만 집행부와 조합원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에 충분했다.
조합원의 동요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었다. 집행간부 몇 명 해고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산현장을 빼앗기고 나면 치명적인 결과가 오리라는 사실이었다. 2~3일 간 정상조업으로 돌아서서 퇴근 후 집회참석으로 열기를 유지하던 영창악기노동조합은 전열을 정비하고 전국적인 총파업 전선에서 이탈했다 1단계 총파업을 접고 있는 시기에 전면파업을 강행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방향전환을 두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전체 노동자와 자본가가 맞붙은 투쟁에서 개별 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파업에 돌입한 것은 조합원들의 행동과 의식을 단위 사업장 울타리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었고, 그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이러한 비판을 그때나 지금이나 감수하고 있다.
어쨌거나 1단계 총파업이 수그러드는 시기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전면파업은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사태를 이해하고 따라준 조합원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회사가 통근버스 운행을 중지시켰음에도 대다수 조합원이 출근하여 파업투쟁을 이어갔다. 투쟁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 결국 회사가 협상에 응해와 임금지급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하고, 날치기 노동법 적용문제는 97단체협약에서 반드시 다룬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파업을 종결하였다.
파업을 끝내고 조업에 복귀하는데 뜻하지 않은 전리품이 굴러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 한구석에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이 남아 있어 무언가 분명히 해두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생산2부에서 일이 터졌다. 파업투쟁 막바지에 생산2부 부장대우 차장이 관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동조합도 양보를 해야하고 …… 이제 백기를 들어야 한다 …… ”는 등 망발을 한 것이다. 협상을 끝내고 정상조업에 복귀하면서 생산2부만 파업을 풀지 않았다. 전체 공장은 가동하더라도 생산2부 차장 공개사과 없이는 조업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노동조합 의지는 단호했다. 결국 회사에서는 생산2부 차장을 다그쳐 공개사과를 하게 만들었고, 다시는 노동조합 활동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현장은 가동되었다. 이제 더 이상 생산현장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97 임단협 투쟁

97년 2월 21일 비교적 일찍 임금요구안과 단체협약 갱신안을 확정한 노동조합은 3월 4일 회사와 1차 교섭에 임했다. 3월 14일 주주총회를 앞둔 회사는 새로운 경영진이 구성된 뒤에 본격적인 협상을 하자며 교섭을 미루고 나왔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이전에 노동조합 선거에 개입하고 테러를 조작한 당사자와 그동안 고용문제 등으로 물의를 빚은 인사들의 선임을 반대하며 투쟁 열기를 서서히 끌어 올렸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막바지에 있을 때 영창악기노동조합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민주노총에 가입하기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막연한 책임감이 조합간부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비교적 빠른 시점에 투쟁에 돌입하면서 개악된 노동법의 적용문제를 둘러싼 힘싸움은 회사쪽이나 노동조합쪽이나 이후 영창악기 투쟁이 미칠 영향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경영진 선임문제로 뜸을 들이던 회사는 8차 교섭이 진행될 때까지 회사측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별 진전이 없던 교섭국면은 조정신청을 접수한 4월 21일부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4월 29일을 기점으로 변화를 보였다. 이틀간에 걸친 고품질운동 및 원가절감운동 등 준법투쟁으로 투쟁 수위를 조절하자 14차 교섭에서 회사가 안을 제시했다.
기계점검 실시와 품질향상 투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투쟁수위를 높여가자 협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이 임금 9.5% 인상을 수용하고 회사가 신설수당을 기본급으로 인정하면서 협상은 마무리되었고, 조합원 찬반투표(투표율 91.8%, 찬성률 72.7%)를 통해 97임단협 투쟁을 마감했다.
돌이켜보면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조절하면서 갈등이 빚어진 것이나, 최종 인준투표 찬성률이 높지 않았던 것 등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단체협약에서 중요 사항을 갱신해 낼 수 있었던 것은 통합력을 기반으로 생산현장을 전체적으로 장악한 것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장조직 강화를 통한 현장력 확대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갱신투쟁이 끝나고 노동조합은 조직을 정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아남정공 공동교섭 등 지역활동으로 시간을 빼앗겨 조합간부와 조합원들에게 늘 미안하기만 하다. 더구나 조직정비라는 것이 열심히 하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 활동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 의견차이 등 세심하게 다루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많다.
투쟁이 끝나고 한고비를 지나고나니 잘하고 좋았던 기억보다 후회스럽기도 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 더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역투쟁과 우리 사업장 투쟁의 호흡을 맞추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조합을 운영하다보니 사업장 문제에 관해서 계산적이고 실리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될 때가 많다. 중요한 판단을 할 경우 지나치게 사업장을 중심으로 해결하려는 습성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지금 아남정공 교섭위원으로 교섭에 참여하고 있지만 지역에 튼튼한 사업장이 많으면서도 나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힘겹게 활동하는 사업장에 무거운 짐을 떠넘긴 것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동교섭투쟁이 갖고 있는 적극적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보다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사업장이 공동교섭을 자청하고 나서야 하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년이면 그렇게 될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우선 우리 사업장부터가 그렇다. 지역투쟁 일정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못한 결과 우리 사업장 투쟁은 그런대로 끝냈으나 규모가 큰 사업장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앞선다. 그 원인은 총파업 당시 전체 전선으로부터 이탈한 것에서 찾아진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임금인상 투쟁 시기가 지역 일정보다 빨라진 것도 연관성을 갖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갓 태어난 노동조합으로서 신생 노동조합들이 안고 있는 문제도 많이 드러났다. 조합간부들이 빨리 성장하고 있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노동조합이 확보한 통합력도 갈수록 위원장에게 집중되는 양상을 띄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제는 민주노조운동에서 영창악기가 안아야 할 역할을 중심으로 내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모두 겪는 것이지만 노동조합 활동은 하루가 멀다하고 일이 벌어진다. 노동조합의 중심사업과 활동력이 떨어지면, 별일도 아닌데 조합을 괴롭히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더많이 일어난다. 투쟁하고 있을 때보다 투쟁이 끝나고 나서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영창악기노동조합이 가진 강점이 언제까지나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갓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현장조직을 강화하여 현장 장악력을 구조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준비해야겠다.
영창악기노동조합에 관심과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 준 동지들에게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한/노/정/연

1997-08-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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