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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와 노동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24호
김세균


통일문제와 노동운동



김 세 균 / 소장






1. 우리는 통일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가?


통일문제는 민족문제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통일은 우리 민족의 절실한 염원’이라는 관점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한다. 이러한 관점은 남북한의 주민들이 언젠가는 결국 하나의 국가체제 하에서 함께 살아야 할 동일한 민족구성원에 속한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에 서로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체제가 성립됨으로써 남북한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아 결코 잘못된 관점이 아니다. 더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통일은 우리 민족의 가장 절실한 염원이며 다른 어떤 가치보다 상위의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에 통일운동이 모든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의 중심고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은 원칙적으로는 통일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 예를들어 통일이 ‘평화통일’이나 ‘무력통일’, 또는 ‘적화통일’이나 ‘부르주아적 흡수통일’의 형태로 이루어지든 - 통일이 될 수 있다면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다 찬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재야 통일운동을 주도해 온 사람들은 통일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다 좋다는 것이 아니라 통일은 어디까지나 ‘자주적 평화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통일을 가장 상위의 사회적 가치이고 주장하는 입장과, 통일이 자주적 평화통일과 같은 어떤 특정의 내용을 담는 통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자주적 평화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파악하는 ‘자주적’이란 ‘반외세 내지 반미 자주화’를 의미하는데, 이들이 그간 반외세 혹은 반미 자주화를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든 것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세와 미국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 남한정권의 남한 지배로 말미암아 분단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주적 평화통일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과 남한정권 등을 ‘분단고착 세력’ 내지 ‘반통일 세력’으로, 그리고 자신은 ‘통일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통일에 반대하는 미국과 남한정권에 대항하는 남북한의 모든 세력들 간의 연합전선 구축을 통일을 달성하는 가장 유력한 방도로 제시해 왔다. 이러한 주장은 통일문제만 끄집어내어도 불온시당하고 국가의 탄압을 받아야 했던 과거에는 일정하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정세가 변한 현재, 자주적 평화통일을 주창하는 사람들 역시 ‘흡수통일 반대’를 통일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흡수통일’을 주창하는 사람들에게는 ‘반통일노선’으로서 낙인찍힐만한)이러한 입장은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반통일세력’이라고 부른 세력이 사실은 반통일세력 그 자체가 아니라,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세력과는 구분되는) 북한을 남한으로 흡수통일하려는 세력임을, 나아가 그들이 통일을 가장 상위의 사회적 가치로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 역시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내용을 담는 통일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관점은 - 어떤 사회적, 정치적 내용을 담는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서로 상이하지만 - 그들만이 아니라 (어떤 통일이든 통일만 되면 좋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극단적인 통일지상주의자를 제외한다면) 남북한의 정권을 포함한 모든 세력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관점이다. 실제로 남한정권이 과거에 통일운동 자체를 금기시한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반통일세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기의 상황에서는 그들이 원한 ‘승공통일’ 내지 ‘멸공통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일을 우리 민족의 가장 절실한 염원이라고 주장해 온 북한 정권이 그들의 주장대로 통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면, 그들은 통일을 위해 자신의 정치-사회체제를 진작 포기했어야 마땅하고, 그렇게 했다면 통일은 이미 달성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처럼 통일문제의 핵심은 통일의 경로와 내용 등이 무엇이든 어떻게 하면 통일을 한시 바삐 성취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특정의 사회적, 정치적 내용을 지닌 통일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문제를 이렇게 접근한다면, 다름아닌 통일의 계급적 내용이 통일문제를 파악함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문제로 부각된다. 실제로 통일문제는 민족문제이지만, 순수한 민족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보다 계급문제와 중층결정되어 있는 민족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한 간에 조성되어 있는 (계급모순의 변형된 형태이자 가장 첨예한 형태의 하나인) 남북한체제 간의 모순, 즉 체제모순과 같은, 통일문제와 뒤얽혀 있는 계급모순들이 어떤 형태로든 해결되지 않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민족문제 해결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민족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계급문제 등의 해결을 파악하는 관점을 ‘민족주의적 관점’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입장은 민족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민족문제의 해결을 위해 (아무리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앞세운다고 할지라도) 민족구성원의 압도적 대다수인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는 노선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그간의 재야 통일운동은 ‘반제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통일문제를 파악하는 이른바 민족민주세력이 주도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남한의 국력이 신장되고 민주화가 일정하게 진척되면서 복고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한민족 우월주의를 제창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명된 근대적 민족주의인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민족주의 역시 커다란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계급문제 해결 등을 민족문제 해결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역으로 민족문제 해결 등을 계급문제 해결의 관점에 서서 접근함으로써만 우리는 통일문제를 이런저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내지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민족문제의 해결과정을 동시에 노동자․민중의 이익의 실현과정과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민족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중요한 측면에 속한다.

이 글은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변화하고 있는 주요한 객관적 조건들을 검토하는 선상에서 남북한에 살고 있는 노동자계급 내지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어떻게 통일문제에 접근해야 하며, 바람직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를 구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2. 남북한의 사회경제적-정치적 발전의 성격과 특징 및

   남북한 관계의 변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한반도에 두 개의 적대적인 국가체제가 수립됨으로써 분단체제가 성립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분단체제가 공고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남북한은 상이한 사회경제적-정치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통일국가의 미래상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한이 어떠한 사회경제적-정치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으며, 남북한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한의 사회경제적-정치적 발전의 성격과 특징 및 대북정책

남한국가는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수립되고 애초부터 강력한 반북-반공 부르주아체제로서 출범했으며, 5․16군사쿠테타 이후에는 노동자-민중의 희생 위에서 위로부터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추진해 나간, 자본축적을 위한 적나라한 폭력적 도구로서 기능했다. 그런 가운데 남한은 그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는 중진자본주의 국가 중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남한경제의 이러한 성장은 한편으로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불평등구조가 확대-심화되는 가운데 남한경제가 독점재벌이 지배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변모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1987년의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을 계기로 정치적 민주화가 일정하게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에는 군부정권을 대신해 문민정부가 수립되고 국가에 대한 사회의 자율성 역시 크게 신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으로 이루어진 그간의 위로부터의 민주개혁은 현 시점에 이르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이름에 합당한 민주주의체제조차도 제대로 수립시키지 못한 채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더욱이 남한사회의 민주화 과정은 수구보수 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다시 강화되고 ‘공안탄압’이 강도높게 행해지는 가운데 오늘날에는 크게 후퇴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화를 추진할 밑으로부터의 새로운 동력이 다시 솟아오르지 않는 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다른 한편, WTO체제가 수립되고 이른바 세계화-지구화의 물결이 덮치기 시작하면서 정치,경제,사회구조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남한 사회에서는 지배층과 노동자․민중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가장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시기 남한의 정치체제를 ‘민주적 요소를 지닌 신자유주의적 민간파시즘체제’이거나, ‘신자유주의적인 제한적 민주주의체제’로, 그리고 현 시기의 남한 사회는 ‘불완전한 자본주의적 시민(市民)사회’로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한사회는 남북 대결구조의 온존 등으로 말미암아 반공이데올로기가 그 어떤 자본주의사회에서보다도 강력한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수구보수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온존, 강화시키는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는데, 이들 수구보수세력은 대내적 민주화의 진전만이 아니라, ‘힘의 우위에 기초하여 북한을 압박해, 북한체제의 붕괴를 유도해 내야 한다’는 대북 강경책을 주창하면서 - 이러한 대북 강경노선을 우리는 국제정치에서 힘의 행사와 힘의 논리를 중시하는 노선을 ‘현실주의’(realism)라고 부르는 국제정치학의 용어를 빌어 ‘현실주의적 대북 강경노선’ 내지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북한 흡수병합 노선’이라고 부를 수 있다 - (북한의 대남한 강경세력과 더불어) 남북한 간의 관계를 경직시키는 주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편, 남한 국력이 신장되고 민주화가 일정하게 진척됨과 더불어 남한 사회에서는 오늘날 대북 자신감과 우월감이 사회적으로 팽배하고, 남한자본가들이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북한진출에 나서고 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대북원조 등을 통해 남북한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한 경제협력 관계를 진척시켜 북한경제를 남한 경제권으로 통합시키는 것에 기초하여 궁극적으로 북한체제를 남한체제에 흡수통합해야 한다’고 하는, 이른바 ‘(신)기능주의적 대북 온건 노선’1) 내지 ‘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북한통합 노선’을 지지하는 세력 역시 그 힘을 급속히 증대시키고 있다. 이때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북한 진출에 나서고 있는 독점재벌들은 - 내국정책에서는 수구보수 노선을 견지하고 있지만 - 대북정책에서는 그러한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통일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사회세력에 속하며, DJ와 같은 보수야당 세력 및 이른바 ‘강풍론’을 비판하면서 ‘햇볕론’을 주창한 한완상 전(前)통일원 장관과 같은 개명된 부르주아 인텔리층 대부분도 그러한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북한 흡수통합 노선을 지지하는 세력에 속한다. 그리고 ‘휴머니즘적 동포애’ 등을 내세우면서 다양한 형태의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운동 세력은 현실주의적 대북 강경노선에 반대하는 세력이긴 하지만, 사회내부에서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지원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른바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을 추구하는 ‘대북 강경파’와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을 추구하는 ‘대북온건파’ 간의 힘관계에 의해 기본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인가, 아니면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 노선’인가에 상관없이 - 비록 두 노선간에 통일을 위한 방법을 파악함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타나지만 - 두 노선 모두 북한의 남한 자본주의체제로의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노선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게다가 이 두 노선은 한편으로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적 흡수통일 노선의 상호 보완적인 두 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남한배제 정책’을 구사하는 북한의 대남정책과 맞물리는 가운데 기본적으로는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에 의해 특징지워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남한정부는 북한이 남한 우위의 힘관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남한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나선다면 대대적인 대북 지원정책 등을 실시할 수 있음을 공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남한정부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대외적으로는 남북한의 화해와 공존공영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이 경제적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북한 목조르기’를 계속하고 북한을 군비경쟁으로 몰아넣어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변화하면 정책 전환을 단행하여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 노선’을 채택할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 그런데 자주적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많은 논자들은 대체로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대북 강경노선’만을 북한 흡수통일 노선으로 파악하고, 남북화해와 공존공영 등을 내세우고 전개될 ‘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대북 온건노선’은 흡수통일 노선이 아니라 남북한의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노선이자 그 귀결로서 두 체제를 인정하는 큰 틀에서 연방제적 통일에 찬성하는 통일노선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파악은 ‘강풍론’이든지 ‘햇볕론’이든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두 개의 상이한 방법에 속하지, ‘강풍론’만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로서 내세우는 것’과 ‘실제로 추구하는 계급적 이해관계’ 간의 관계를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의 문제점을 지닌다.


북한의 사회경제적-정치적 발전의 성격과 특징 및 대남정책

북한은 그간 ‘주체사상’을 유일무이한 국가이데올로기이자 사회통합 이데올로기로 내세우면서 대내적으로는 수령과 당-국가에 의한 전일적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이에 기초하여 공산주의사회로의 이행을 담보하는 이른바 ‘주체형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하려고 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소련과 중국에 대해 우호협력 관계와 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정치적-군사적 자주성을 확보하고 자립적 민족경제 체제를 수립하는 동시에 제국주의의 세계지배에 대항하는 제3세계의 반제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는 강고한 보루 역할을 수행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북한체제는 그간 북한주민들에 대한 당-국가관료층의 강고한 전일적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주체사상에 의해 북한주민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하는 데에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북한체제는 그간에 존재한 어떠한 사회주의체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고한 ‘자생적’ 생존능력을 지닌 체제가 되었다. 실제로 소련에 종속적이었던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들이 소련의 후견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허무하게 무너진 반면, 북한체제가 근자에 이르러 더 한층 악화되고 있는 경제난과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아직 체제 붕괴의 결정적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는 점은 북한체제가 지닌 강고한 자생적 생존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정치적-군사적 자주성을 앞으로도 계속 견지해 나갈 것으로 보이며, 경제난의 해소 등을 위해 북한경제의 대외적 개방을 추진해 나가는 가운데에서도 민족 자립경제 건설이라는 기존 노선을 최대한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북한은 오늘날 대내외적인 조건의 변화로 인해 그간 자신이 추구해온 제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다. 북한은 무엇보다 세계 사회주의권의 해체와 제3세계 민족해방 운동의 퇴조로 인해, 그리고 미국과 대자본주의권과의 관계개선 등을 위해 더 이상 제국주의의 세계지배에 대항하는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진영의 강고한 보루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북한은 민족 자립경제 건설노선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그러한 노선을 훼손시킬 수밖에 없는, 자국경제의 세계자본주의 체제로의 통합을 많든 적든 추진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그리고 북한의 ‘주체형 사회주의체제’는 그간 대내적으로 봉건적-자본주의적 착취의 폐기와 보편적 복지체제의 수립과 같은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자본주의사회로부터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로서의 공산주의사회로 이행하고 있거나, 또는 이행할 능력을 지닌 본래적 의미의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오늘날의 북한체제는 ‘국가의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사회의 국가화’가 전면적으로 관철됨으로써 노동자대중에 의한 정치의 직접적인 전유가 확대-심화되고 있는 사회, 즉 국가권력의 노동자대중으로의 이전과 국가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밑으로부터의 민주적 통제가 확대-심화되고 있는 체제라기보다는 노동자대중이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국가와 국가로 전화한 당에게 전면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체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체제를 ‘국가(또는 관료)사회주의적 신민(臣民)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북한체제의 자생적 생존능력이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구래의 유교적 전통 등이 작용하는 가운데) 제반 구계급사회적 착취의 폐기, 보편적 복지체제의 수립, ‘혁명적 군중노선’의 채택, 민족적 자주성의 확보 및 주체사상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통합 등을 통해 수령과 당-국가에 대한 북한인민들의 ‘신민적 충성’을 확보하고, 이에 기초하여 당-국가관료층에 의한 전일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한, 북한 특유의 ‘국가(관료)사회주의적 신민사회’가 지닌 강고한 생명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오늘날 내국(內國) 축적의 부족, 농업기반 조성의 어려움, 천재지변의 발생 등이 가져온 경제난과 식량난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유례없는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 경제가 앞으로 그야말로 파국적 붕괴상황에 처하게 될 지, 아니면 위기를 호기로 전화시키는 ‘기회포착의 전략’(Wallerstein의 용어)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그간의 침체와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국면을 맞이하게 될 지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지만, 경제난의 가중 등으로 인해 북한이 체제 붕괴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령 북한경제가 앞으로 붕괴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오늘과 같은 상황은 식량과 생활필수품의 국가적 배급체제의 원활한 작동을 어렵게 하고 북한주민들에 대한 당-국가의 통제력 및 북한주민의 체제에 대한 신민적 충성을 크게 약화시키며,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북한을 더욱 더 수세적 입장에 내몰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식량난의 악화 등에 촉발되어 북한주민들이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대규모적으로 일으킬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북한체제의 앞으로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당-국가관료층 내부의 노선투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난과 식량난이 가중됨으로 인해 개방문제는 ‘개혁파’와 ‘보수파’ 간에, 대남정책과 관련하여서는 ‘강경파’와 ‘온건파’ 간에 노선 대립이 격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북한은 오늘날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경제난과 식량난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힘의 우위 노선을 추구하는 남한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남한정부와 진지한 대화와 교섭에 나서지 않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가관료층 내부의 노선투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북한은 체제유지와 생존을 위해서도 어쩔수 없이 -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질 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 세계자본주의 체제로의 통합을 더욱 추진하지 않을 수 없고,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국가들과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남한을 배제하면서 다른 자본주의국들과 관계를 증진시킨다’는 현 시기의 정책을 늦든 빠르든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관계의 변화양상과 미국의 대북정책

남북한이 그간 상이한 사회경제적-정치적 발전의 길을 걸어오는 가운데 남북한 관계는 그간 중대한 변화를 겪어 왔다. 무엇보다 1970년대를 고비로 남북한간의 국력이 북한 우위로부터 남한 우위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경제력 면에서 남한은 북한에 대해 더 이상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군사력의 면에서도 - 주한미군의 무력을 고려하지 않을지라도 -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위가 확고부동한 것이 되고 있다. 게다가 소련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중국이 세계자본주의 체제로 적극 통합하여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개방적인 시장사회주의 건설노선을 채택함에 따라 남한은 중국, 러시아와 여러 면에서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시켜 나가는 반면, 북한과 중국-러시아와의 그간의 혈맹적 동맹관계는 청산되었다. 또한 남한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확고한 일원으로서 지구화 과정에 있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욱 상승시키고 있는 중상위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대외적으로 더 이상 체제를 유지시킬 힘을 상실하고 있는 데다가, 나아가 경제적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제야 세계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을 일정하게 모색하고 있는 최극빈국의 지위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남북한간의 힘관계가 북한에 대한 남한의 압도적 우위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있고 그 우위가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는 점, 북한이 심대한 경제난과 식량난 등을 겪는 가운데 체제 붕괴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될 수 없는 점, 북한이 그간의 주체형 사회주의 체제를 훼손시킬 수도 있지만 생존과 체제 보존을 위해서도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점차 통합되고 남한정부와 관계개선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은 남북한 관계의 전개와 통일의 경로 및 통일국가의 상(像) 등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변수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앞으로 언제 통일이 이루어질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통일의 경로와 통일국가의 형태가 어떤 것이 되든, 그리고 통일이 되기 이전에 남북한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든, 남북한의 통일과정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한이 통일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 조성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싫든 좋든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는) 남한 주도하의 통일’을 통일문제를 파악하는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미국은 적어도 제네바협정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북한 핵무기 보유문제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 낸 이후에는 북한을 힘으로 압박하는 대북 강경노선을 일정하게 버리고, 북한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로 인정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이른바 ‘북한 연(軟)착륙정책’(soft-landing policy)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북 유화노선이란 실제로는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힘을 앞세우면서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현실주의적이고 강압주의적인 붕괴추구 노선’과는 구분되는, 사회주의체제의 세계자본주의체제로의 통합과 시장경제화에 기초해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정기적인 관점에서 간접적으로 유도해내는 ‘기능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붕괴유도 노선’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오늘날 유례없는 경제난과 식량난에 빠져들고 그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현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은 ‘북한 연착륙정책’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북한의 김정일 체제를 신속하게 붕괴시키려고 하는 이른바 ‘연착륙’ 속에서의 ‘경(硬)착륙정책’(hard-landing policy) 내지 일종의 ‘연-경 붕괴정책’(soft-hard collapsing policy)으로 정책을 전환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설령 북한의 체제 붕괴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북한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외부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은 사실상 ‘현실주의적 대북 강경정책’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 이 점은 무엇보다 일본이 한때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에 열을 올리다가 오늘날에는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에 전혀 나설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며, 넘치는 잉여 곡물의 보관 문제 등으로 골치를 앓고 있으면서도 대북 식량원조 등에서 가장 인색하게 굴고 있는 점 등에 의해서도 잘 드러난다 -, 일본의 이러한 정책은 북-일 간의 국교 정상화를 어렵게 하고, 근 1천억불에 달할 것으로 평가되는, 일제 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일본으로부터 받는 것을 불가능케 함으로써 적어도 북한이 경제위기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을 결정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3. 우리의 통일운동 노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노동자․민중정치의 활성화와 민주변혁에 기초한 민주적-민중적 통일의 추구


지금까지 우리는 통일의 경로와 통일국가의 상 등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객관적 조건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통일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적 노선은 크게 보아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과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 노선’으로 대별될 수 있다는 점, 지금은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이 득세하고 있지만 북한체제가 안정을 되찾거나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 노선’이 득세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불가피하게 남한 주도하의 통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러한 파악과 관련하여, 남한의 정치-경제체제가 오늘과 같은 체제로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미국의 지원을 받아 통일이 남한 주도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를 상정해 본다면, - 물론 현실에서 나타날 통일의 경로란 매우 다양하고 대립적인 경로의 여러 요소들이 뒤섞이는 형태로 이루어지겠지만 - 예상될 수 있는 통일의 경로는 다음의 두 개의 상이한 경로, 즉 (1) 미국과 남한의 대북 압박의 가중과 북한경제의 더 한층의 악화 등으로 인해 현재의 북한체제가 파국적으로 붕괴하는 가운데 미국과 남한이 북한에 군사적-정치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북한체제가 ‘강압적으로’ 남한체제에 병합되는 경로와 (2) 남한의 경제적 지원 등에 힘입어 북한경제가 일정하게 회생되지만, 북한경제의 남한경제 및 세계자본주의권으로의 통합 및 자유주의적 요소들의 북한으로의 침투가 계속됨으로써 체제의 성격이 변질되고, 이에 기초하여 최종적으로는 남북한 당국간의 ‘합의’에 의해 북한이 ‘평화적으로’ 남한에 기능주의적으로 통합되는 경로 - 많은 사람들은 ‘합의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란 남북한의 두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연방제 통일과 동일시하면서 ‘흡수통일’과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파악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흡수통일’의 전형적인 예로서 거론되고 있는 동-서독의 통일 역시 동-서독 당국간의 ‘합의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었음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즉 북한경제는 일정하게 회생되지만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결국 안락사하는 것을 통해 북한체제가 남한체제에 통합되는 경로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1)의 경로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2)의 경로로 이루어지든, 통일이 결국 북한체제가 현재의 남한 자본주의체제에 흡수통일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 다시 말해 통일이 북한을 정치적으로는 극도로 반공적이고 우경일변도적인 남한의 ‘일정하게 민주화된 신자유주의적 민간파시즘체제’ 내지 ‘신자유주의적인 제한적 민주주의체제’의 지배하에 편입시키고 ,경제적으로는 독점재벌 지배하의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 하에 통합시키는 형태로서 이루어진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1)의 경로를 통한 통일은 상정해 볼 수 있는 최악의 통일 시나리오임이 금방 드러난다. 실제로 (1)의 경로를 통한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면, 통일과정에서 최악의 경우에는 남북한간에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설령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북한에 남한 점령군이 진주하고 저항세력이 완전히 소탕될 때까지 북한이 비상계엄령 하의 군사적 통치체제 하에 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북한 노동당 당원과 북한 인민군 등에 대한 피의 숙청이나 살육 및 저항하는 북한민중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필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이 과정은 역으로 남한체제의 정치적 지형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 상당한 기간 정치적 민주주의 등을 심대하게 후퇴시킬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

이와는 달리 (2)의 경로를 통한 통일은 (1)의 경로를 통한 통일보다 남한체제로의 북한체제의 흡수통일을 훨씬 부드럽고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방식의 통일과정은 동-서독 통일의 그것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로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비록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통일이 치유하기 어려운 심각한 후유증을 통일 독일에게 안겨주고 있다고 할지라도2),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중심국으로서의 막강한 경제력과 더불어 자본주의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성과 사회복지 수준 및 이데올로기적 관용성을 지니고 있었던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통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후유증을 통일한국에 안겨줄 것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북한 주민 전체가 내국 식민지화의 희생양이 되는 가운데 ‘전라도민’ 다음의 ‘3등 국민’으로, 그리고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지배와 착취의 가장 손쉬운 공략대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가장 저렴한 가격의 노동력 제공자나 빈민층으로 전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남북한 전체의 노동자․민중의 관점에 서서 통일문제에 접근한다면, 노동자․민중에게 새로운 재앙을 안겨주고 통일된 한국에게 풀기 어려운 심각한 내부문제를 야기할 그러한 통일방식은, 비록 그와 같은 방식의 통일이 현재와 같은 조건 속에서 예상되는 가장 유력한 통일방식에 속하긴 하지만, 우리가 회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회피해야 할 통일방식에 속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한의 노동자․민중 전체의 진정한 이익에 합치하는 가장 바람직한 통일의 길이란 남북한 모두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가 활성화되고 그 힘에 기초하여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이 그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통일국가는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는 물론 ‘북한의 주체형 사회주의 체제’를 모두 넘어서는, 남북한의 노동자․민중을 정치-사회과정의 진정한 주역으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연대적 사회구성체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노동자․민중이 당-국가관료층의 전일적 지배체제에서 아직 벗어날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고, 나아가 통일이 남한 주도하의 통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정에 비추어 무엇보다 남한 사회에서 그러한 통일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인 ‘노동자․민중정치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실제로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이나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 노선’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부르주아적 통일노선 전체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적 대안이란 ‘노동자․민중정치의 활성화를 통한 민주적-민중적 통일’의 추구 이외에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먼저, ‘휴머니즘적 동포애’ 등을 내세우는 시민운동 세력의 통일노선이란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과는 구분되는 남한 지배층의 다른 대안인 ‘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흡수통일 노선’을 뒷받침하는 노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자주적 평화통일의 달성을 가장 상위의 가치로서 내세우고 통일운동을 모든 운동의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남한에서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고, 이에 기초하여 남-북한의 두 체제를 인정하는 연방제 통일을 달성한다는 이른바 민족민주 세력의 통일노선은 (1)자주적 평화 통일이란 남북한 전역의 민주변혁에 의해 성취해야 할 여러 목표 중의 하나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절대화하여 거기에 다른 모든 목표들을 종속시키고 있는 점 (2) 민족자주 등을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음으로 말미암아 북한정권을 자주적 민족정권만으로 간주, 그들을 연대의 대상으로 보지, 북한정권이 북한 노동자․민중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점 (3) 그로 인해 두 체제가 남북한 전역의 민주변혁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체제라는 관점을 결여한 채 두 체제를 인정하는 연방제국가의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점3) (4) 그들이 주창하는 반제자주화 노선에 충실한, 그 이름에 합당한 자주적 민주정권의 수립이란 사실상 남한 사회의 민주변혁 없이는 불가능함에 불구하고 민주정부의 수립과 평화통일을 위한 광범한 연합에 기초하여 자주적 민주정권의 수립이 가능하다고 보는 점4) (5) 우리 사회의 민주변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정치의 활성화가 요구되며, 통일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변혁 운동이 모든 운동의 중심으로 확고히 자리잡아야 한다는 점 등을 무시하고 있다.

둘째, 많은 논자들은 남한사회의 민주변혁에 기초한 민주적-민중적 통일노선을 통일의 절실함과 긴급성을 무시하는 ‘선변혁 후통일노선’이라고 규정하면서 통일이 되기 전에는 그러한 변혁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통일운동을 하지 말자는 통일운동 무용론 내지 반통일노선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자본주의적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이나 ‘어떤 내용과 형태의 통일이든 우선 통일을 이룩하고 변혁은 차후에 생각해 보자’고 주장하는 세력 - 이 세력은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흡수통일을 지지하는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 이 행하는 비판이라면 그 나름대로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민족민주 세력으로 자처하는 세력이 행하는 비판이라면 결코 옳은 비판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북한의 통일이 자본주의적인 흡수통일의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높아지는 정세 속에서 그들이 파악하는 바의 ‘자주적’ 평화통일 역시 객관적으로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해 광범한 연대형성에 주력하고, 그러한 통일운동을 모든 운동의 중심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은, 비록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인 흡수병합 노선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서는 의의를 지니지만, 자유주의적 흡수통합 노선이 본격화될 때에는,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기껏해야 북한의 남한으로의 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흡수통합을 ‘촉진’시키는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단지 통일 그 자체나 평화통일이 아니라 자주적 평화통일을 진심으로 희구하는 사람은 그러한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그간의 민족주의적-민족대단결론적인 소부르주아적 통일노선을 청산하고, 노동자적-민중적 관점에 선 통일노선을 받아들어야 할 것이며, 통일운동을 모든 운동의 중심으로 놓을 것이 아니라 남한사회의 민주변혁 운동의 전개에 기여하는 형태로 배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이나 임수경 양의 방북사건이 이른바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의 활성화에는 일시적으로 기여했는지 모르지만 남한사회의 민주변혁 운동의 발전에는 커다란 해악을 끼쳤으며, 나아가 남한 민주변혁운동이 곤경에 빠진 것이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의 신장 자체를 역으로 억누르는 족쇄가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동자․민중정치의 활성화와 남한사회의 민주변혁에 기초한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추구하는 노선은 ‘선변혁 후통일’을 통일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서 파악하며,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인정하는 노선이다. 그러나 그 노선은 ‘선변혁 후통일’ 노선 그 자체라기보다는 통일되기 이전이나 통일된 이후에 사회적 관계 전체의 ‘민주변혁’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제로서 파악하는 노선, 즉 남한사회의 민주변혁을 중심고리로 삼고 북한의 노동자-민중과의 연대에 기초하여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와 북한의 주체형 사회주의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통일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통일운동 내지 남북한 전체의 민주변혁을 추구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은 통일 그 자체를 촉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이 노동자․민중의 이익에 최대한 합치하는, 바람직한 통일의 전제조건들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선의 성격을 지닌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통일이 설령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남한사회의 민주개혁이 진척되는 그 만큼 통일국가의 민주성 역시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실제로 남한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이 보다 포용적이고 관용적인 것으로 되면 될수록, 통일은 현재의 남한체제를 북한에 일방적으로 이식시키는 것에 비해 남북한의 노동자․민중 모두에게 덜 고통스럽고 보다 바람직한 통일이 될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민중정치의 더한층의 활성화에 힘입어 남한사회가 보다 민주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관용적인 사회로 되는 동시에 북한체제를 전면적으로 해체시키고 남한체제를 북한사회에 그대로 이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가 이룩한 그간의 역사적 성과와 긍정적 측면을 최대한 수용하는 형태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통일은 앞에서 말한 형태의 통일보다 더욱 바람직한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남한사회에서 노동자․민중정치가 통일되기 이전에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노동자․민중정치의 활성화에 기초한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추구하는 노선은 통일을 위해 북한정권과의 연합이나 제휴를 추구하는 노선이 아니라, 당-국가관료층의 지배하에 놓여있고, 오늘날에는 가중되는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의 노동자․민중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노선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북한정권의 북한지배층 역시 남한의 지배층과 마찬가지로 남북한 전역의 민주변혁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지, 결코 남한 노동자․민중의 연대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이 점에서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은 남한정권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북한정권에 대해서도 명백히 거리를 취해야 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남한사회에서 노동자․민중정치가 활성화됨으로써만, 남북한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거나 북한이 흡수통일되는 경우 북한의 노동자․민중이 그로 인해 겪지 않을 수 없는 사상적-이데올로기적 혼란에서 신속하게 벗어나 남한의 노동자․민중과 함께 그러한 공세에 저항하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성장, 발전하는 과정이 크게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되거나 흡수통일될 위기에 빠질 경우 남한의 노동자․민중세력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더욱 막중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한 과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통일되기 이전에 남한사회만이라도 노동자․민중정치가 강력한 힘을 지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북한체제의 붕괴와 흡수통일 등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오늘날 계급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통일문제와 같은 민족문제에도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 그리고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에 북한이 편입되는 형태로 통일이 된다고 할지라도 통일된 한국사회의 민주변혁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민중 정치가 시급히 활성화되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4. 통일운동의 올바른 전개방향과 과제는 무엇인가?


위에서 우리는 통일운동이 노동자․민중의 진정한 이익에 합치하는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위한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정치가 활성화되고 통일운동이 민주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이를 전제로 하여 여기서는 ‘범민련’과 ‘민족회의’ 중심의 통일운동이 지닌 문제점을 검토하는 선상에서 통일운동의 바람직한 전개 방향과 과제 등에 대해 논의해 보려고 한다.


‘범민련’과 ‘민족회의’ 중심의 운동에 대한 평가

그간 남한 사회에서 전개된 민간 통일운동은 대체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반제적 민족주의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노동자들이 통일운동에 참여할 때에도 그 참여는 대체로 이들의 헤게모니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시민운동 세력들이 주도하는 제반 부르주아적 통일운동 역시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데 반제적 민족주의세력이 주도하는 통일운동은 그간 대체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이하 ‘범민련’)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범민련’ 운동은 대체로 주한 미군 철수, 1국가 2체제하에서의 연방제 통일,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지지, 남북합의서 이행 촉구,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내세우면서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남과 북 및 해외대표들 간의 이른바 ‘3자연대’를 추진하고 주로 ‘범민족대회’의 개최를 중심사업으로 삼으면서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런데 이 운동에게  중심적인 동력을 제공해 준 조직은 ‘한총련’이다. 그러나 이른바 ‘민족대단결론’에 입각하여 ‘3자연대’를 추구하고 있는 ‘범민련’ 운동은 친북 통일운동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이후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며, 무엇보다 ‘한총련’ 운동이 남한정권으로부터 집중적인 탄압을 받고 국민여론으로부터 고립되면서 오늘날에는 심대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1994년 7월에 발족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이하 ‘민족회의’)는 ‘범민련’ 중심으로 전개된 통일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고 통일운동의 혁신과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의 ‘대중화’, ‘일상화’, ‘전국화’를 목표로 하여 결성된 통일운동 단체이다. 그런데 ‘민족회의’의 구심을 이루는 조직은 ‘전국연합’이지만, 다양한 민간 통일운동의 대동단결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회의’는 운동의 전략적 목표의 설정 등에서 많은 모호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전국연합’이 ‘민족회의’의 구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전국연합’의 견해를 중심으로 ‘민족회의’의 운동노선을 살펴본다면, ‘민족회의’는, 남한 통일운동의 대표체로 자임하고 있는 ‘범민련’이 3자연대를 고수하고 주한미군 철수 등을 당면과제로서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범민련을 남한 통일운동의 대표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며, 3자연대의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남한 내부의 통일역량이 강화될 때까지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주한미군 철수를 당면 투쟁과제로서 내세우기보다는, 미군기지 반환운동이나 미군기지 임대료 징수운동 등과 같은 주한 미군의 주둔이 파생시키는 제반 문제들을 부각시켜 나가야 하고,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지만 연방제 통일을 앞세우기보다는 외세의 개입없이 남북한의 ‘공존공영’을 가능케 하는 통일 추구를 부각시키는 통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5) 이 점에서 ‘민족회의’의 통일노선은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의 전략적 목표 자체를 앞세우기보다는 그러한 전략적 목표의 달성을 위한 여건조성과 통일문제에 대한 보다 신축성 있는 접근을 중시하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민족회의’는 한총련의 통일운동 방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표시하고 있고, ‘평화통일민족대회 추진위원회’를 결성, 여러 시민, 종교, 노동단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평화통일민족대회’를 96년에 개최했고6), 올해에도 개최할 예정으로 있다. 그런데 ‘민족회의’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평화통일민족대회’에 대해 ‘범민련’측은 주한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 삼자연대 등을 내세우지 않는 우경적 통일운동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민족회의’는 적어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평균적 의식수준’ 이상을 넘어서는 운동의 전개를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그러한 비판을 오히려 좌편향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앞에서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론의 문제점을 그 기본기조와 관련시켜 비판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범민련’과 ‘민족회의’ 중심의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

첫째, ‘범민련’이 고수하고 있고 전국연합 등이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3자연대’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남한민중과 북한민중 및 해외동포 간의 정치적 연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추구한다면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만이 아니라 ‘북한의 주체형 사회주의체제’ 역시 통일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체제이다. 그런데 3자연대에서 말하는 북한민중이란 사실상 북한정권을 대표하는 세력이다. 이 점에서 그러한 3자연대는 북한정권과의 직접적인 연대를 추구한다는 문제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노동자․민중을 통일국가의 진정한 주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민주적-민중적 통일의 달성에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둘째, ‘민족회의’ 중심의 통일운동은 ‘범민련’ 중심의 운동이 만들어낸,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통일운동을 대중화시키는 데에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운동의 대중화 및 민간 통일운동의 대동단결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운동의 유연성 확보에 집착하게 되고 휴머니즘적 동포애 등을 내세우는 시민운동 세력들의 부르주아적 통일운동과의 연합을 추구하게 됨으로써 자신들이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자주성’을 희석화시킨 ‘평화통일’ 운동수준 정도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러한 경향은 예를 들어 북한을 세계자본주의체제 속에 포섭시키려는 미국의 북한 연착륙정책이 북한의 ‘자주성’ 확보를 새롭게 위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족자주 실현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계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7), 최근의 문서에서는 ‘남북한의 공존공영’에 기초한 연방제통일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자주적 민주정권의 수립 프로그램이 빠지고 있는 점 - 이는 이들이 자주적 민주정권을 사실상 남북한의 공존공영을 지지하는 정부 정도로 낮추어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남한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정치세력은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통일에 대비하는 세력이라고 한다면 이들에 대한 탄력적인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8)라든지 “한국정부에 대한 자세는 …… 정부가 당국자에서 기울여야할 통일과정에서의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한 판단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9)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 등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러한 유연적 노선에 기초한 통일운동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남한 지배층의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에 대항하는 노선으로서는 의미를 지니지만, 남한 지배층의 또 다른 대안인 ‘기능주의적-자유주의적 흡수통합 노선’에 대해서는 무방비상태를 노출한다는 문제점을 지니며, 북한의 남한자본주의 체제로의 통합을 추진하는 독점재벌 등을 통일을 위한 연합상대로 봄으로써 그들의 노동자․민중 지배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맞서 싸우는 노동자․민중을 무장해제시키는 것과 같은 중대한 문제점을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그들의 통일운동이 민주변혁운동으로부터 사실상 자립화되어 있음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통일노선은 자유주의적인 통일을 추구하는 시민운동 세력의 통일운동이 평화통일의 달성을 위한 전술적인 제휴세력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한 연합-동맹세력으로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을 위한 주체 형성 및 동맹-제휴 등의 문제

위에서 우리는 현 시기의 재야 통일운동을 주도하는 ‘범민련’과 ‘민족회의’의 운동노선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추구하는 운동은 (무엇보다 노동자대중에 뿌리박은 위력있는 노동자 정치조직의 부재로 말미암아) 아직 본격적으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운동이 민주변혁 운동으로부터 자립화된 민족주의적 운동이 아니라, 민주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관점에 선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이 활성화되고, 그것을 추진해 나갈 주체 등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먼저, 통일운동을 민주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통일운동의 주도권이 민족주의 세력으로부터 민주변혁을 추진하는 노동자․민중세력에게로 확고히 이전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권력의 뒷받침을 받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가중되고 있는 오늘날, 남한사회에서 민주변혁 운동의 가장 중요한 당면 투쟁과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모든 측면, 모든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맞서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확대, 심화시키기 위한 투쟁을 적극 전개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투쟁을 추진해 나가는 운동체로서 본인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고 노동자․민중연대에 기초로 하여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에 반대하는 청년, 학생 및 진보적 인텔리층을 포괄하는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을 제창한 적이 있다.10) 이와 관련하여 통일운동이 민주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체’가 조속히 건설되어야 하고,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의 사상적-조직적 독자성을 명백히 견지하는 기초 위에서 타세력들과의 연대와 제휴 등이 고려되어야 하며, 그러한 연대와 제휴 속에서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이 행해져야 할 것이다.

둘째,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은, 비록 민주변혁 운동을 통일운동에 종속시키고 있고, 한편으로는 북한정권을 연대의 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적 흡수통일 세력을 평화애호 통일세력으로 간주, 연대의 대상으로 보는 것과 같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지만, 남한 자본주의체제로의 흡수통일이 가시화되고 있는 조건 속에서 민주적-민중적 통일 운동의 연대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통일, 특히 (신자유주의적 통일이 아니라)혁신자유주의적 통일을 지지하는 시민운동 세력은 남한 지배층의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흡수병합 노선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제휴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자유주의적 흡수통합노선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 민주적-민중적 통일의 달성을 방해하는, 사회 내부의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통일운동에 있어서도 동맹-연합과 제휴의 대상 및 주투쟁대상과 경계대상 등이 - 남한의 대북정책이 보다 강고하게 수구보수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편차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민주변혁 운동 상의 그것들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오늘과 같은 조건 속에서는 북한의 사회단체들과의, 서로 간의 이해 증진을 위한 ‘교류’를 넘어서서 그들과 직접적으로 정치적 ‘연합’을 추진하는 것은 남북한 민중간의 진정한 연대 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의 주요 당면과제들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은 민주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에 민주변혁운동의 과제와 구분되는 자신의 독자적인 과제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은 남북한간의 관계를 남북한 전역의 민주변혁을 추진하는 데에 유리한 조건이 되도록 만들어야 할 과제를 지니는데, 현 시기의 정세와 관련하여 시급히 요구되는 민주적-민중적 통일운동의 주요과제는 다음과 같다.


(1) 평화군축 체제구축과 남북한 관계의 개선 촉구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가 적대하는 두 개의 양대진영으로 분열됨으로써 성립된 냉전체제 하에서는 평화적 통일이란 불가능했으며, 단지 ‘무력 통일’, 즉 ‘무력 적화통일’과 이에 대항하는 ‘군사적 봉쇄와 탈환을 통한 통일’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통일방식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 종결되고 휴전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통해, 그리고 이른바 미-소 간의 냉전적 대결구조 속에서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남한이 미국과 안보방위조약을 맺은 반면 북한이 소련과 중국과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조건 속에서 무력 통일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전쟁이 종결된 이후 한반도에서는 남북한 및 남한과 미국 대 북한간의 군사적 대결구조가 온존하는 가운데에서도 ‘힘의 균형’에 기초한 불안정한 평화체제가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체제 하에서 그간 남북한간의 불안정한 평화체제의 유지를 가능케 한 ‘남북한간의 힘의 균형체제’는 오늘날에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체제’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서로 간에 군사적 대결구조가 존속되는 조건 속에서는 전쟁발발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남북한의 힘의 균형상태’가 ‘북한에 대한 남한의 힘의 우위체제’로 전환한 것은 한반도에서 힘의 우위를 차지한 미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한이 군사력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과 같은 조건 속에서 북한이 남한에 대해 대규모 군사적 공격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북한체제의 자멸을 초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북한이 설령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 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북한이 먼저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북한이 미국과 남한으로부터 정치적-군사적 압박을 받아 체제 붕괴의 위험에 직면한다면 자멸을 각오하고 상대방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북한에 의한 전쟁 도발은 북한에게는 자멸하기에 앞서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남북한간의 관계가 북한에 대한 남한의 압도적인 우위체제로 변하고, 북한이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해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할지라도 북한은 여전히 남한에 엄청난 손실을 입히면서 자신을 방어할 강력한 군사력을 소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무력을 통한 통일을 추구하고 싶어도 남한이 북한에 대해 독자적으로 전면전을 전개할 능력과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전면전을 전개하고 남한이 미국의 대북 공격을 지원하거나, 아니면 남한이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지원을 받아 북한을 공격하는 형태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세계정치 상의 ‘근본적인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는 한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가능성 역시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미북한간의 제네바 협정을 통해 북한의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조건이 창출되고, 이에 기초해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진척됨에 따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은 오늘날 현저히 축소되었다. 더욱이 북한이 차지하고 있는 지형학적 위치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 방지가 자신의 중요한 안보적 이익과 합치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이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을 막는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 점에서 남북한 관계가 북한에 대한 남한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체제로 변한 오늘날에도, 앞으로 예측할 수 없는 여러 변수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남북한 관계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우여곡절이 나타날 수 있지만, 여전히 현 시기의 불안정한 평화체제를 기본적으로는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군사적 대결구조가 존재한다면, 원칙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경우 그것이 전쟁발발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또한 경제적 사정의 악화 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체제붕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면, 북한은 군사적 긴장상태를 높히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남한에 대한 전쟁을 도발할 유혹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남한은 오늘날 북한을 강압적 방식으로 흡수병합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계기를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데, 이는 전쟁 발발이나 내전과 같은 사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은, 남북한이 서로 엄청난 무력을 지니고 서로 대치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되든, 우리 민족 전체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안겨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평화의 유지’가 ‘통일’보다 더욱 우선적인 가치라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남북한 당국과 미국에 대해 한반도 평화군축체제의 수립을, 남북한 당국에 대해서는 남북한 평화공존 체제의 수립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첫째, 한반도에 확고한 평화군축체제가 수립되려면, 일방만의 안보가 아니라 양방 모두의 안보를 보장하는 남북한 공동안보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남북한의 관계가 북한에 대한 남한의 압도적인 우위체제로 변한 만큼, 남북한 공동안보체제를 구축함에 있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국과 남한인 만큼, 그 운동은 일차적으로는 남한정부와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는 오늘날 남북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안보적 이익에도 커다란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남북한 공동안보체제의 구축은 남북한과 주변국들과의 집단적 안보체제 및 동아시아 전체의 집단적 안보체제의 구축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아가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군축체제의 구축과 더불어 남한에서 철수해야 할 것이다.

둘째, 남북한 관계의 개선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선적으로 남한정권에 대해 남한정권이 북한을 강압적으로 흡수병합하려는 노선을 포기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나아가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남한민중과 직접적으로 동맹-연합하려는 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남북한 관계의 개선은 남북한 당국이 남북한이 앞으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야 할 특수한 관계에 있지만, 일단은 서로가 서로를 두 개의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에 합의하는 것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대북한 지원 촉구

오늘날 북한은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에 대해 남한정부는 북한이 4자회담을 수용하기 전에는 긴급한 식량지원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남한정부에게 북한이 현재의 식량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원을 즉각 착수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더나아가 북한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경제지원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는 잠수함 파견과 같은, 남한동포들을 자극하는 일을 벌리지 말 것과, 남한정부와의 성실한 교섭에 나설 것 등을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민간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북녘동포돕기운동’은 정부가 북한지원에 나서지 않고 북한동포들에게 긴급한 지원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운동이지만, 운동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대북지원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다.


(3) 국가보안법 등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방해하는 제반악법들의 개폐 요구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은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방해하는 최대의 악법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아가 ‘창구단일화’를 강제하는 ‘남북교류협력법’ 등은 남북한의 노동자․민중간의 자유로운 교류를 방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국가보안법 등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방해하는 제반악법들의 개폐를 요구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제반 악법의 개폐문제는 사실은 남한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의 신장 및 진보적 정치운동의 활성화 등과 관련하여 보다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공안탄압 저지를 중심고리로 삼고 인권 신장과 국가보안법 등을 비롯한 제반 악법들의 개폐를 요구하는 운동을 무엇보다 남한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서 시급히 조직함으로써 이 운동이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성격을 아울러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북한 노동자․민중과의 연대를 준비하는 사업의 조직화

오늘날과 같은 조건 속에서는 북한의 노동자․민중과의 단순한 교류를 넘어서는 정치적 연대의 창출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남북한 민간교류 추진은 북한으로 진출하려는 남한의 경제인 등에게는 매우 시급한 일이지만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에게는 당장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통일의 시대에 대비하여 북한의 노동자․민중과 굳건한 정치적 연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준비작업은 현 시기에도 요구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는 북한의 노동자․민중이 주체형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정치적-사회경제적으로 어떠한 처지 하에 놓여 있고, 북한사회가 지닌 문제점과 아울러 북한사회가 그간 이룩한 역사적 성과와 긍정적 측면이 무엇이며, 세계자본주의체제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북한의 노동자․민중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현재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과제들은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이라면 대체로 합의할 수 있는 요구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점은 그러한 과제의 달성을 위한 운동을 어디까지나 우리 사회의 민주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해야 하며, 통일운동을 중심으로 삼으면서 그것을 단지 평화통일의 촉구를 위한 사업으로 배치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아울러 남북한 관계개선은 필연적으로 남한에 의한 북한의 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흡수통합의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데, 이 점은 남북한 관계의 개선요구가 그 자체만으로 절대화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5. 결론


오늘날 우리는 통일운동의 새로운 모색이 요구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이는 무엇보다 그간의 통일운동이 남한으로의 북한의 흡수통일이 가시화되고 있는 사태에 적극 대처할 능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세에 대처하고 통일이 남한 지배층의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남북한 관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만이 아니라, 우리의 힘을 남한사회의 노동자․민중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집중하고, 통일운동을 우리 사회의 민주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확고하게 편입시키는 노력이 행해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남북한 관계변화를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로의 북한의 흡수통일’이 아니라 ‘남북한 모두의 민주변혁을 통한 민주적-민중적 통일’과정과 결부시키는 것은 오늘날 노동자․민중에게 주어지고 있는 최대의 도전에 속한다.

한/노/정/연


1) 여기서 ‘기능주의적 노선’이란 무엇보다 경제적 교류관계의 확대 등에 기초하여 경제적 관계 등의 통합을 확대시켜 나가면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통합까지 이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리키는 것이고, ‘신기능주의적 노선’은 기능주의적 노선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정치적 합의 등이 그러한 기능주의적 통합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아울러 중시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이 글에서는 기능주의와 신기능주의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고 모두 기능주의로 파악하겠다.


2) 이에 대해서는 유팔무, “(구)동독사회의 구조와 사회불평등 체계의 변화”, 김채윤, 장경섭 편, 「변혁기 사회주의와 계급-계층」,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133~162쪽; 전성우, “동-서독 통일에 따른 동독인의 주변집단화”, 같은 책, 163~198쪽 참조


3) 이들은 아울러 남북한의 두 체제를 인정하는 연방제 통일국가의 건설을, 합의에 의한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는 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연방제 통일국가는 남한체제가 변하든지 북한체제가 변화하든지, 아니면 두 체제가 모두 변해 하나의 체제로 수렴될 수 있는 조건 속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통일이란 사실상 1체제 1국가로의 통일에 준하는 것이다. -, 남북한 현체제를 대상으로 하는 한 실현불가능한 공상적 구상에 불과하다는 점 - 이와는 달리 두 체제가 하나의 체제로 통일된다면 1국가 1체제의 통일국가가 남북연방제 국가의 형태를 취하는가 아닌가는 매우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 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연방주의적 입장에서 ‘정치적 통일’과 ‘사회경제적 통일’을 분리하면서 정치군사적 측면에서의 통일을 먼저 달성하고 사회경제적 통일은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진 다음 추구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전국연합 정책-자주통일위원회, “통일운동의 정치적 과제에 대한 검토 - 평화협정, 주한미군, 통일방안, 국가보안법 등 4대과제를 중심으로”, 「전국연합통신」 114호, 97년 1월 20일, 60쪽 참조) 이들은 이런 방식의 통일을 통일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접근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정치와 경제 등을 자의적으로 분리시키고 있는 점, 이로 인해 쌍방이, 통일되기 이전의 동-서독의 예와 같이, 서로가 서로를 일단 명실상부한 2개의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평화공존 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넘어서는 정치적 통일에 합의하려면, 쌍방간에 어떤 내용의 사회경제적 통일을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접근이기는커녕 가장 비과학적인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족민주 세력이 과거에는 DJ세력과의 민주대연합 노선을 추구하다가 오늘날에는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의 방도로서 이른바 ‘국민적 개혁정당’ 건설과 ‘국민후보 추대운동’ 전개 등을 내세우고 있음을 아울러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노선에 대한 총괄적인 비판으로서는 김세균,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와 97 대선방침”, 「현장에서 미래를」 제23호(97년 7월호), 59~86쪽 참조


5) 이에 대해서는 전국연합 정책-자주통일 위원회, “통일운동의 정치적 과제에 대한 검토 - 평화협정, 주한미군, 통일방안, 국가보안법 등 4대 과제를 중심으로”, 「전국연합통신」, 통권 114호(97년 1월 20일), 40~61쪽 참조. 그리고 그러한 입장에서 기존의 운동노선을 비판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의 혁신을 주장하고 있는 글로서는 김창수, “통일운동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전국연합」, 통권 108호(96년 10월 10일), 68~75쪽 참조.


6) ‘96평화통일민족대회’에 대한 민족회의측 자체의 평가로서 민족회의, “평화-통일민족대회 총괄 평가서”, 「전국연합통신」 통권 109호(96년 10월 24일), 74~78쪽 참조


7) 이와 관련하여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통일정세의 돌파구로 만들려는 주체적인 노력을 하지도 않은 채, 민족자주의 목표를 선명하게 과시하기 위해서 반미구호만을 무차별하게 주장하는 것이 진정한 민족자주의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전국연합 정책-자주통일위원회, 앞의 글, 51쪽)는 등의 주장을 참조. 그리고 김창수, 앞의 글, 74쪽도 아울러 참조


8) 김창수, 앞의 글, 73쪽


9) 김창수, 앞의 글, 74쪽


10) 김세균,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와 97대선방침”, 「현장에서 미래를」 제23호(97년 7월호) 64쪽 이하


1997-08-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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