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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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경계자
 삶의 풍경

현장에서 미래를  제123호
정희석

서울 강남구 대치동, 테헤란로에는 ‘포스코센터’라는 건물이 솟아있다. 이 건물은 30층 높이의 동관과 20층짜리 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동관과 서관의 외장은 은회색 철 파이프로 연결된 골조 사이에 투명한 유리가 결합된 양식으로 통일되어져 있다. ‘철’의 회사는 냉정한 공업 이미지의 건물로 비싼 땅을 높고도, 널따랗게 차지하고 있다. 서관 지상 1층과 지하 1층 내부 곳곳에는 예술작품들이 설치되어져 있다. 그림, 조각, 전위예술품, 클래식 음악에 따라 춤추는 분수, 소형 인공정원. 무호흡의 건물에게 인간의 예술품에 의지해 숨을 불어 넣고자 했던 건축가의 교과서적 배려가 엿보인다.

서관 1층 로비에 깔려진 대리석 바닥에는 30여명의 청년들이 양반다리를 튼 채로 각을 잡고 앉아 있다. 검은 모자, 검은 반팔티셔츠, 검은 바지, 검은 전투화를 착용한 이들을 위층에서 내려다보자면 검정색 바둑알과 흡사하다. 바둑알들의 등짝에는 ‘Police'란 흰색 글씨가 각각 새겨져 있다. 검은 Police 청년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는 뉘어진 투명 방패가 뺑 돌아쳐 직사각형 대형을 이루었다. 방패는 이들이 앉아 있을지라도 경계 작전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위협한다.
경계는 긴장된 기다림이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 아니 어쩌면 끝내 당도하지 않을 적을 향해 긴장의 끈을 팽팽히 조이며 기다리는 것이 경계다.
대개 적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경계자는 헛것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이 헛됨이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다.
젊은 경계자는 검은 옷가지들을 벗어버리는 날, 청춘의 찬란한 전역 날에서야 경계 임무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이때 헛것에 지나지 않았던 일상은 스스로 돈을 벌어야하는 실존의 삶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밥벌이를 시작한 청년 대부분은 적이 될 운명에 처해 있다. 포스코센터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정처 없이 기다렸던 그 적이 자신과 같은 비정규직 처지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그 날, 청년은 좌절하거나 침묵할 것이다. 또는 적이 되기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청년들이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간다. 모퉁이에 서있는 버스에서 저녁밥 배식이 시작된다. 길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철재 군용 식판에 담긴 밥을 다 먹은 이들은 담배 한 개비씩을 문다. 군용 담배연기는 포스코센터 반대쪽으로 부는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청년들이 자리를 뜬 사이 다시금 건물 안을 살펴본다. 경계자와 적 그리고 헛것이 사라진 건물은 평화로웠다.(2006.8.20)

2006-09-03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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