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미FTA 1차 협상 때, 미국이 의료기관 영리법인화는
관심이 없다고 하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2차 협상이 끝난지 불과 열흘만에 자발적으로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개정안은 경제자유구역을 관할하는 경제자유구역청을
설립함으로써 특별지방자치단체화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청은 경제자유구역의 개발 및 외자유치와 무관한
일반 사무행정은 중앙행정기관 및 지자체에 위임·위탁 혹은
시군구로 환원하도록 하고, 인력도 민간기관의 파견인력까지
포함하여 50%를 계약·개방직으로 충원하도록 되어있다.
경제자유구역청은 특별한 지자체라기보단 지자체의 외피를 쓴
도시기업이다.
도시는 투자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원주민을 비롯해
노동자와 거주자들이 있다. 그런데 투자자 특히 해외투자자본의
적극적인 유치를 위해 특별자치단체로 만들면서 행정기능은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은 기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공공연맹은 국가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채 행정조직을 해체하고
투자자로 표방되는 자본가만을 위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에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반대한다.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하던
당시부터 우려하던 ‘그들만의 왕국’이 이러한 법 개악으로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특히 해외자본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한미FTA협상에서 미국 측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명보험 및 의료영역의 중요 현안인 ‘병원
영리법인화’ 문제를 우회적으로 처리 한 것이다. 한미FTA 협상
속에서 영리법인을 다루지 않아도 한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의료기관 영리법인을 법제화 한다면, 레쳇 조항에 의해 이는
협정 내용에 추가되게 된다. 외국병원 설립 주체를 외국인에서
외투기업으로 확대함으로써 외국인 직접 투자 비율이 10%만 되면
버젓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해외자본이
아직까지는 오지(奧地)인 경제자유구역에 위험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앞으로 국내 기업 및 병원들을 끼고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이는 국내 병원들이
호시탐탐 노리던 병원 영리법인화의 길을 열어준 것과 같다.
정부의 행보를 보면, 다음 순번은 영리법인 병원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는 것으로 추정하여도 무리가 아니다.
영리법인화로 인한 공공성의 폐해는 열거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예를 들어 최근 메릴린치와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 베인캐피털이 공동으로 미국 최대의 병원
운영업체인 HCA를 인수합병(M&A)하게 되었다. 사모펀드들은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채권(정크 본드)을 발행하여 이
돈으로 기업을 사들인 뒤 상장 폐지, 구조조정, 재상장 또는
매각을 통해 차익을 남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마찬가지 방식으로 거대 수익을 챙겨 온
뉴브릿지캐피털, 칼라일그룹, CVC아시아퍼시픽, JP모건파트너스
등 국제 대형 펀드사들은 다음 공격대상은 보건의료분야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의 공공의료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국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셈이다.
또한 해외투자자본에게도 국내 기업 수준으로 국세와 지방세를
감면해주려고 하고 있다. 해당 도시의 새로운 주인들인
투자기업에 대한 혜택과 지원은 혈세를 밑바탕으로 하여 가히
전폭적이다. 개발전담기구로서 경제자유구역청이라는 심복을
만들어 주면서 한편 교부금도 지급하고 국가분담금으로 운영비의
일부도 지원하겠다고 한다. 또 문제가 많은 기업도시개발법을
준용하여 전기·통신·가스 등 기반시설 건설 부담을 완화시키려
하고 있다. 기반시설 건설 출자총액제도의 예외 지역으로
지정하고 인프라 구축에 국고지원 비율을 상향조정하려 하고
있다. 이미 누리고 있는 각종 규제완화 혜택에 의해서
‘공공성’과 ‘자치’는 실종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더
공고하게 자본가를 위한 법과 행정만이 존재하는 도시기업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이란 미명하에, 기업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제주특별자치도 등 특성화를
표방하는 도시들을 남발하여 왔다. 재정과 권한의 자립을 기초로
한 지방자치단체 분권화가 아니라, 행정조직을 시장경제화하여
지자체별로 생존경쟁에 매몰케 해 왔다. 이로써 지자체의
책임하에 있는 공공서비스들이 매각 혹은 민간위탁의 방식으로
사유화되고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서비스의 질 저하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노동자·민중이 희생을
댓가로 자라온 독재시대의 개발논리·성장주의가 노무현정권에
와서 ‘지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연맹은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
나아가 이미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경제자유구역법 자체를 아예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의료기관 영리법인화, 민간보험 도입과 당연지정제 폐지
등의 소위 ‘의료산업선진화 방안’을 즉각 폐기하라.
제주특별자치도법 입법과정에서 확인되었듯이 국민적 반발이
매우 심하고, 선(先) 공공의료 시스템 30% 확충을 주장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등과 부처 내 이견도 조율도 조정되지 않은 상태이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의 막무가내식 드라이브는 이제 정말 그만 보았으면
한다. 한미FTA 협상도 하기 전에 핵심 의제 4가지를 내어주고,
협상도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하고, 이와 같은
자발적 자유화로 공공서비스를 미리 갖다 바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노동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하다하다 별짓을
다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27일 오전발 보도에 의하면 지난 2차
협상 마지막날인 7월 14일 막후협상을 통해 가장 난제였던
의약품가 관련 타결이 있었다는 것이 이제야 비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한국의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 이제 미국
제약회사가 참여하게 되었다. 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에 따른
건강보험공단 개혁에 미국측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의료분야에서야 말로 한국정부-미국 자본가 공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공공연맹 노동자들은 앞으로 전개될 한미FTA 3차 협상 저지
투쟁과 연계하여 경제자유구역법 개악 저지 투쟁을 적극적으로
펼쳐갈 것이다. 지난 7월 12일 시청앞 광장에 울리던 “노무현
정권 규탄”의 구호는 앞으로 “노무현 정권 탄핵”의 구호로 더
크게 확장될 것임을 경고하는 바이다. <끝>
2006년 8월 30일
민주노총·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