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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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파손 주의(?)

현장에서 미래를  제108호
김형균

세상만사


유리파손 주의(?)

김형균 / 현대중공업 노동자


어떤 도심의 한 복판에 내부가 잘 보이는 멋있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평소에 언제든지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딱 한번 도움을 청하려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투명한 유리가 가로막고 있었고 그 곳에는 “유리파손 주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 정부, …. 평소 우리가 소중한 가치로 여겼던 것들이 멀리서 보면 맑고 투명한 것처럼 보이고, 언제든지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줄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부딪쳐 보면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벽을 만나게 된다.
최근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쓴 글을 보면 군대, 월남파병, 이라크 건설현장, 전국의 건설플랜트 현장을 누비면서 30여년간 산업역군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고 국민의 3대 의무(교유, 병역, 납세)를 모두 수행한 당당한 노동자였는데 이번에 아주 기본적인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준수하여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자 ‘사상불순’, ‘폭력배’로 몰아가는 억울한 사정을 눈물겹게 표현했다.

시민들이 뽑은 시장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러 갔던 노동자들을 몽땅 연행하고 저녁 뉴스에는 ‘시청을 점거한 폭도’의 모습으로 철저히 짓밟고 노조간부들은 구속시켜버렸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에도 그랬다.
노동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노동조합을 경험한 바도 없던 노동자들이 난생 처음으로 ‘데모’라는 것을 할 때 까지만 해도 이정도의 힘이면 우리의 요구를 쉽게 쟁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완강하게 버티는 회사, 최루탄으로 응수하는 공권력, 외부 불순분자의 개입으로 폭도로 몰아가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자본의 벽을(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감하게 되었다.
그때도 10Km를 걸어 시청에 갔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고 누군가에 의해 시청 유리파손, 차량방화의 모습만 저녁뉴스를 장식했으며 그 사건으로 지도부는 대거 구속되기 시작했다.
18년전 울산시청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전혀 달라지지 않음을 보면서 투명해진 것처럼 보이는 시청, 시민이 뽑은 울산시장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투명유리로 포장 되었던 것이다.

과거보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언론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고 노동자들의 요구는 투명한 유리막에 가로막혀 있다.
시민이 뽑은 시장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기업사랑’ 캠페인에 각종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도 ‘노동자 사랑’ 이라는 문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노동부는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고통이 근로기준법 등 노동자의 권리 침해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 명백한데도 이를 감독하고 시정조치를 해야 할 의무를 포기하고 있다.

이번에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나주식회사의 벧셀타워를 점거했는데 sk주식회사는 수백억원을 들여 울산 대공원을 건설하고 이를 울산시에 기증한 기업으로 울산 시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이미지의 이면에는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모래알을 씹으며 밥을 먹어야 하는 등의 고통이 숨어있을 줄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런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대하는 관료들은 울산 대공원을 헌납해준 sk주식회사에 무슨 조취를 취할 수 있었겠는가?

멀리서 잘 보이지 않지만 겹겹이 가로막혀진 자본의 유리막, 그 속에서 벌어지는 탄압과 회유, 멸시와 차별, 무관심의 유리막을 투쟁의 망치로 깨 부숴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다.

2005-06-09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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