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레나’ 상품학
유럽여행기(8)
‘마카레나’ 상품학
이 산 하 / 서울대 법대 재학
‘국제법’은 존재하는가?
차가운 밤공기는 나를 더욱 시리게 했다. 비잔틴 문명의 황홀한
세례를 기대하며 이스탄불로 향하던 나의 열망은 터키-불가리아
국경에서 꺾이고 말았다. 터키가 ‘비자 면제협정국’임에도,
나는 여권을 분실하고 대신 ‘여행자증명서’(Traveler's
Certificate)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터키 입국을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나는, 국경에서의 실랑이 끝에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되돌아가야 했다. 백여명의 승객들 중에 단 세명만이 입국허가를
받지 못했는데, 거기에는 나와 어느 불가리아 모녀가 끼어
있었다. 이들도 ‘비자’ 때문에, 입국하지 못한 채
‘소피아’행 열차에 힘없이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비자(Visa)’는 기본적으로 입국(入國)을 ‘통제하기’ 위해
발행한다. 자국으로 무분별하게 인력이 유입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비자를 매개로 한 ‘국가간의 관계’는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나는 ‘여권만 있다면’,
‘터키’에 비자없이 입국할 수 있다. 그러나 불가리아 모녀는
그렇지 않다. 반드시 비자가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 국민은
비자가 있어야 하고, 어느 나라 국민은 그렇지 않고...
베를린에서 만난 어느 루마니아인의 푸념은 ‘비자’에 얽힌
냉엄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내가 서유럽에서 여행을 하려면, 여행하려는 국가에 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가 초청장을 보내줘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취득한 비자임에도, 그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고작해야 몇 주 혹은 몇 달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 유럽에서 거의 모든 국가들을 무(無)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여권은 동유럽에서 그 빛을 발한다.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한국 재벌들의 적극적인 현지진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
한국인과의 인적-물적 교류에 어떠한 제한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국제법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국제관계가 결국은
‘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법 조문이라는 게 한낱
‘종이조각’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리는 국제 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빗대고 있는 문구이리라. ‘힘의 논리’, ‘강자의
폭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역이 바로 ‘국가간의
관계’이다. 결국 ‘비자’를 매개로 한 국가들 간의 관계도
그러한 ‘힘의 관계’가 적용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경제력이
조금 뒤떨어진다고 해서 그 나라 국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불가리아 모녀와 워크맨
그들 불가리아 모녀는 큰 카세트라디오를 갖고 있었다. 의자
위에 그 카세트를 올려놓고, 흥겨운 댄스 음악을 틀어놓았다.
나에게도 ‘이 음악 어떠냐’는 식의 눈길을 보냈다.
불가리아어로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심정을 이 음악으로나마
달래보라는 식의 얘기였으리라. 나는 살짝 웃어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맘에 든다는 표시를 해주었다.
소피아로 돌아가는 새벽기차는 꽤 쌀쌀했다. 서유럽에 비해 밤
기온이 매우 차갑다. 이스탄불에 들어가지 못해, 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도저히 흥겨운 댄스음악을 들을 기분이 아니어서, 나는 슬며시
워크맨을 꺼내들었다. 전인권의 노래 테이프를 끼워 넣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그대는 나에게 얘기했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쇳덩이 같은 절규는 나의 심장을 파고 들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나는 누군가의 눈길을 느꼈다. 함께 탄
불가리아 소녀였다. 그녀는 나의 워크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녀에게 이어폰을 꽂아 주었다. 그 소녀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노래였을까.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 것 같아,
전인권 테이프를 꺼내고 그녀가 갖고 있던 댄스 음악 테이프로
바꿔 주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은 환해졌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입을 웅얼거렸다.
깜깜한 밤을 가르던 기차는, 이제 여명을 맞이하며 앞으로
앞으로 질주했다. 20분쯤 흘렀을까. 불가리아 소녀는 몹시
아쉬운 표정으로 워크맨을 돌려주었다. 그때. 소녀의 어머니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달러를 꺼냈다. “How much?”를 연발하며,
10달러 짜리 몇 장을 손에 쥐고 흔들어 보였다. 팔라는 것이다.
워크맨이 매우 낡았기도 했지만, 여행기간 내내 나를 지탱해줬던
쇳덩이의 절규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팔 수
없다’고 말했다.
보다 민주적인, 보다 인간적인 사회체제를 꿈꾸며...
그들은 불가리아 국경 근처의 어느 역에서 내렸다. 동구권
전반의 경제상황이 그렇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약 70년대
수준이다. 그나마 체코와 헝가리, 폴란드 정도가 공업화의
진행이 빠를 뿐이다. 특히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은 급속한
개방화 정책의 실시이후, 그것의 파장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문제점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중 마피아에
의한 지하경제의 팽창이라는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체코에서
만난 ‘바첵’-체코의 진보적 운동단체 회원-이라는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다. “동유럽의 경제형태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그것은 ‘정부주도인가 마피아주도인가’에
의해서입니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이 전자의 경우이며,
후자의 나라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러시아 등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불가리아에 가면 마피아를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실제로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
국․공유기업으로 운영되어온 굵직굵직한 사회간접자본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되면서 ‘비효율성’이라는 이유로
민영화의 과정을 밟게 되었다. 그러나 민영화의 과정은
‘재벌들끼리 나눠먹기’ 잔치가 되어 버렸으며, 여기에
조직력과 막강한 무력을 기반으로 한 ‘마피아 집단들’도
개입하여,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게 되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외국자본의 유치와 국내 자본가를 위해, 자국
민중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고, 마피아는 마피아대로
민중들의 경제생활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손해보고,
불편을 감내해야 할 쪽은 민중들이다. 관료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동유럽의 몸부림은 이렇게 왜곡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과연 ‘관료적 사회주의 체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부의 집중, 전쟁, 기아, 질병, 환경파괴 등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은 ‘파멸’ 그 자체였다.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유일한 자랑거리인 ‘생산력의 발전’조차도 ‘인간과
환경’을 괴멸시키고서야 가능했다. ‘그래도 사회주의가
낫다’던 헝가리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이를 염두에
두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사회주의 체제’는 없어졌다.
‘제국주의의 독점자본과 마피아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원시적
형태의 자본주의 국가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관료적 형태의
사회주의 체제와 반인간적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보다
민주적이며, 인간적인 사회체제’는 존재할 수 없을까. 꿈꾸는
것은 자유라지만 원래 역사는 이렇게 꿈꾸는 자에 의해
이루어지며, 꿈꿀 수 있는 시기도 때가 있는 법이다. 전환의
시대인 지금이 꿈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나는 느낀다.
나의 경찰기피증!
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도 경찰에 대해서는
기피증이 상당하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란 자기 변명을 해가며, 제복들만 보이면 꼬리를 내리고
종종걸음으로 그들의 시야를 벗어난다. 나의 이런 기피증은
학생시절 가두시위나 집회에 참석하게 되면서 생긴 것 같다.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시위 참가자들’은 항상
‘제복의 눈’을 예의주시하고,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자유와 열정의 표현’일 것이며, 그
이유만으로도 나는 결코 나의 ‘경찰기피증’이 유럽에서
되살아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소피아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기 위해, 나는 남부의 조그만
역에서 내렸다. 소피아행 기차는 오후 2시경에 있었다. 약 3시간
정도가 남았다. 나는 플랫폼에서 역 대합실로 나왔다. 대합실로
나오는 계단 위에 정복을 입은 경찰 2명이 서 있었다. 나의 몸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동유럽에 들어오면서 ‘경찰기피증’이
되살아난 것이다.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구의 모든
곳에서 나는 이 증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기차를 타고
헝가리에서 루마니아로 이동할 때의 일이다.
기차가 헝가리 국경 근처를 지나자, 루마니아 기관원들이 여권과
소지품들을 검사했다. 나는 여행자증명서를 보여주었다. 국적이
어디냐고 묻기에, “Suoth Korea”라고 짧게 답해주었다. 그들은
옆방으로 건너갔다. ‘끝났구나’하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소리가 너무 컸을까. 옆방에 건너갔던
기관원들이 내 방으로 다시 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며, 짐을 몽땅 풀어헤치는 것이었다. 노트북
컴퓨터, 캠코더 등이 차례로 나왔다. 이것을 보더니 그들은
입가에 웃음을 띄면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당신 도둑
맞지?” 나는 한국에서 올 때부터 이것들을 가져왔으며, 결코
훔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이제는 숫제
‘지갑’을 보여달라고 했다. 돈이 얼마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왜 지갑을 보여주어야 하며, 왜 돈이 얼마 있다고
말해주어야 하냐고 따졌다. 그러자 자기는 경찰이며 나의 모든
소지품을 볼 권리가 있다며, 내 지갑을 빼앗아 그 내용물을
검사했다. 100마르크짜리 여행자수표와 약간의 독일 마르크화
현금이 있었다. 그들은 지갑을 돌려주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을까.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고, 얼굴의 볼
살이 출렁거리는 40대의 기관원이 내게 다가왔다. “당신은
도둑으로 몰리고 있다. 당신은 여권도 아닌 여행자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으며, 당신의 짐에는 이상한 물건들이 많다. 그러니
신분이 확인될 때까지 열차에서 내려라.” 나는 그들의 뜻을
눈치 챘다. 말없이 그들에게 20마르크 짜리 한 장을 내주었다.
내내 험악한 인상과 조소섞인 얼굴을 하고 있던 그들은 환한
얼굴을 지으며 “Thank You!” 한마디를 남기고 열차에서
내렸다.
동구를 여행하는 배낭객들이 흔히 경험하는 사례중의 하나이다.
파리에서 만났던 어느 배낭객은 더 심한 경우도 당했다고 한다.
루마니아의 어느 역에 내렸는데, 대합실을 나오자마자 경찰들이
다가오더니, “역 주변에서 한국인들이 마약 파티를 하며 행패를
부리고 있다”면서 다짜고짜 갖은 위협과 협박을 하더니, 돈을
강요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배낭객이 배짱좋게 거부하자,
그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물론 이 배낭객은 몇
시간 뒤에 풀려나긴 했지만, 그만큼 동구에서 기관원과 경찰들이
배낭객들을 상대로 한 협박과 갈취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돈의 가치’가 절대시되는 한...
그렇다고 내가 지금 동구의 모든 경찰을 ‘부정한 공무원’으로
몰아붙여, 현지에서 당했던 ‘한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동구권 사회 전체를 ‘부정부패의 전형’으로 매도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숱한 배낭객들이 동구에서 경험하는
나와 비슷한 ‘나쁜 기억들’을 그들만의 일로 생각하지는 말
것이며, 그것 때문에 동구를 ‘지저분한 사회’로 낙인찍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부정부패’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며, 비단 동구의
특수한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지난해
국제뇌물 규모는 연간 1,700억 달러(한화 약 14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부정 부패한 정권의 고급관리들이나 대기업들이
군사장비, 비행기, 전기통신사업 등 대규모사업 계약을 통해
뇌물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구)공산권, 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들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들은 재미있는 통계로 부패국가와 투명국가의 순위까지
매겨놓고 있는데, 부패한 국가 상위 랭크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케냐 등의 순이고, 투명국가 상위권은 뉴질랜드,
덴마크, 스웨덴 등이 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현지의 뇌물관행 때문에 미국기업이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뉴욕타임즈紙의 지적이다. 미국은 77년 「해외
부정부패에 관한 시행령」으로 일체의 뇌물증여가 금지돼
있어, 그동안 현지관행에도 불구하고 뇌물공세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손해가 94년에만 약 4백 50억 달러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부정부패 때문에, 자기 나라의 기업들이
손해보고 있다는 기가막힌 논리가 성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처럼 부패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는
겨 묻은 개’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번 대선 때
클린턴 진영이나 돌 진영 모두 불법적인 정치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부정부패의 문제는 철학의 문제이며, 그에 의해 지탱되는 구조의
문제이다. 돈의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철학과 자본주의 구조가 존재하는 한,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구 ‘제복’들의 부패한 모습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몇십 달러나 몇십 마르크에 “Thank You!”를 연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아직 ‘그들의 순수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향한 급속한 개방화 정책은, 그들의 가치관을
변화시켰으리라. 어느새인가 ‘노동의 신성한 가치’, ‘연대와
평등의 가치’는 ‘돈의 가치’로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이들에게 진정 아름다운 가치를 심어주고, 사람다운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인 배낭객과의 만남
나의 신경은 폭발 직전의 ‘다이너마이트’처럼 째깍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제복’들에 대한 경계와 긴장 때문이리라.
너무나 시달려서일까. 역 대합실에 들어서서, 나는 의자를
찾았다. 앉아서 잠시 쉬고 싶었다. 의자를 찾아 죽 둘러보던
나의 시야에 그렇게 반가운 물건이 보일 수 없었다. 배낭이었다.
약간 허름한 것이 꽤 오래 돌아다녔나 보다. 누가 배짱좋게도
배낭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볼일을 보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배낭객 한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배낭 주인인
듯 싶었다. 그는 표를 사러 갔던 것이다.
우리는 곧 친해졌다. 배낭객이라는 동질감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의 연대감을 돈독하게 해주었다. 동유럽에서는 기관원들조차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동유럽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사기꾼밖에 없다’라는 말이 배낭객들 사이에서 떠돌
정도이다. 내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 구사한 영어란 고작
“How much?” 뿐이었을 게다.
그는 미국인이었다. 스포츠방송국의 PD였으며,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자신이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열을 올렸다. 지금은
휴직계를 내고 넉달 계획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다. 현재 약
석달째 여행을 하고 있으며, 불가리아의 어느 고풍스러운 성에서
오는 길이었다. 그 역시 소피아로 가는 길이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그는 아마 나보다 ‘영어’에 대한 향수가 훨씬 심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서로 누구랄 것도 없이 쉴새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불가리아의 어느 고성에서 하룻밤 묵고 오는 길이다.
당신은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터키에 들어가려다 내 여권에
문제가 생겨 소피아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당신이 묵었던 그
성은 어땠냐?” “참 좋다. 아직 때묻지 않은 모습이 좋았다.”
“여행은 오래 했느냐?”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휴직계를 내고 넉달 예정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그리스이다.” 우리는 이런 저런 말을 나누면서, 열차를 타고
소피아로 들어와 호텔에 함께 묵었다.
‘마카레나’ 상품학
호텔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모았던 ‘마카레나’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국인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동구에 온 이후 이 노래를 몇 백번 들은지 모르겠다. 어느 곳을
가나 이 노래뿐이다. 나는 이 노래가 싫다.” 사실 나는
‘마카레나’를 루마니아에서 처음 들었다. 흥겹고 시끄러운
듯한 리듬이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스페인 듀엣 「로스 델
리오」가 유행시킨 마카레나는 그 노래보다 춤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그 미국인은 특히 ‘Hey, 마가레타!’ 대목만
나오면, 빈정거리면서 ‘무엇이 저리 좋다고 Hey, Hey거리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라틴풍의 열정적 음악에 대해
이 친구는 상당한 불쾌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아마 그것도
아메리카인으로서의 쓸데없는 자존심이리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몇 달 뒤에,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카페와
레스토랑, 길거리에서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I owe
You”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시도 때도
없이 들으면 질리게 마련이다. 마치 불가리아에서 만난 그
미국인이 된 듯 했다. ‘듣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외칠
지경이었다. 그 미국인이 ‘마카레나’에서 느꼈던 감정이리라.
그러나 대한민국, 미국, 불가리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어느 한 노래를 모든 장소에서 질리도록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인기란 일정기간밖에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그 한때를 잘
잡아야만 최대의 이윤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인간의 모든 귀를 하나로 통일시켜 마치 그 노래를 모르면
바보가 되는 듯한 착각에 빠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이윤의 법칙이 지배하는 땅이다. 그 미국인 역시 빌보드 챠트
1위를 달리고 있는 노래를 아무래도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동구에서 투덜댈 수 있는 것은 미국과 동구의
‘상품화 능력’ 때문이리라. 미국이란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종적으로 다양하므로, 하나의 상품만으로 승부하지 않고,
가능하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낼 것이다. 다양화 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그 미국인은 ‘싫으면
듣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불가리아에서 아마 이를 불평했을지도 모르겠다. 동구는 아직
그러한 상품화 능력이 부족하며, 아직은 하나의 상품을 모든
대중에게 강요하고, 그를 통해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미국인의 푸념속에
암묵적으로 들어있는 ‘대(大)미국인 우월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효율성의 정치’가 아닌 ‘다수 대중에 기반한 정치’
“올해 말에 있을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길 것 같은가?
클린턴인가? 돌인가?” “당연히 클린턴이 이길 것이다. 돌은
너무 늙었다. 그에게 어떠한 비전도 없다.” 슬며시 미국 대선
얘기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그는 클린턴이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유는 클린턴이 젊다는 것이었다. 나는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책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없는
보수정당들 아닌가? 보다 진보적인 제3당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 미국인이 긍정적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무참히 깨져버렸다. “당이 세개면
시끄럽다. 행동은 하지 않고, 논의만 하다 볼일 다 볼 것이다.
당은 2개가 적당하다.”
양당제도의 효율성에 대해서 철두철미한 교육을 받았나 이
친구는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했다. 양당제도 혹은
다당제도, 여차하면 일당체제... 당이 몇 개인가에 대해 나는 별
관심이 없다. 문제는 다수 대중의 이해를 대변해줄 수 있는 당이
존재하는가이다. 그러한 당이 없는 상태에서 몇 개의 당이
효율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겠는가? 물론
자신이 스포츠방송국의 PD인 만큼 그는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당이 민주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의 논리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틀내에 들어오지 못한 세력은 배제되어도
좋다는 독선이 깔려있음을 느낀다.
최근 유나이티드 파슬 서비스(UPS)에 대한 팀스터노조의 투쟁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UPS는 전세계
200여개 국에서 활동하는 초국적 기업이다. 이들은 미국에서만
약 30만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지만, 그중 절반이상이 시간제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회사측이 ‘더 많은 인력을
시간제 노동자로 채우고, 그들에게 낮은 임금을 강요하려’ 한
것이다. 이에 팀스터노조는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에
반대를 외치며 파업 투쟁을 전개했고, 결국 회사측의 항복을
받아냈다. ‘공황도 흡수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미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은 사실 숱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그 빈자리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시간제
노동자들’로 채우고, 그것을 이유로 ‘낮은 임금을
강요’함으로써 확보되고 있음을 우리는 팀스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깨닫게 된다. 또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화․민주의 양당체제가 얼마나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데 무관심한지 잘 보여준다. 정치의 근본은 결국
‘다수 대중의 뜻과 이해’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가일 것이다.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다수 대중의 이해, 노동자의 생존과
권리’를 짓밟을 수는 없는 법이다. 개별자본에 대한 팀스터
노동자들의 투쟁이 언젠가 그 어줍잖은 ‘효율성의 정치’라는
이데올로기를 깨부수고, 노동자를 비롯해 구조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자들을 위한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발전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그후 나는 소피아 주재 터키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았다.
드디어 보푸루스 해협의 도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문명의
교차로’인 이스탄불에 갈 수 있는 것일까? 그날밤 나는
이스탄불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