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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국을 읽는 해법

현장에서 미래를  제25호
고민택

혼돈의 정국을 읽는 해법
정세초점
혼돈의 정국을 읽는 해법


고 민 택 / 편집위원





앞이 보이지 않는다
대선을 앞둔 부르조아 정치권이 가닥을 잡지 못하고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국에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만큼 현재의 정치구도는 불안정하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국의 상황이 불투명하게 흘러가고 있다.
정국이 이처럼 흐트러진 양상을 띠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부터이다. 여당의 후보가 결정되기 이전부터 이회창 또는 이인제의 지지율이 DJ든 DJP든 관계없이 앞서고 있었던 상황이나, 이회창이 집권당의 후보로 결정된 시점에서는 여당의 대선 승리가 기정사실이나 다름 없을 만큼 훨씬 앞선 지지율을 보였던 상황을 생각하면 정국이 지금과 같은 형편에 처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회창의 지지율 저하는 집권당을 내분과 갈등으로 몰고갔다. 사실 여당은 경선 과정에서 이미 심각한 갈등을 치뤘으며 이를 무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회창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보장되는 것 뿐이었다. 따라서 이회창의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 혹은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맞아 봉합된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인제의 대중적 인기가 이회창을 앞서고 있으며 대선에서도 이회창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보는 당내 반이회창 진영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는 정국은 또 다시 새로운 상황을 맞을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한편 이회창의 지지율 저하와 여당의 분열은, 조순이 대선에 뛰어드는 조건이 되었다. 조순은 서울시장에 나서면서부터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된 정치적 가능성이 있다는 정치권의 예측을 배경으로 대선 경쟁에 나섰다. 김종필은 DJP 연합을 한편으로는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내각제를 명분삼아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해 왔으며 여당의 분열이 어느 수준, 어떤 형태로 되느냐에 따라 말을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만을 놓고 보면 DJ의 지지율이 가장 앞서고 있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을 뿐만아니라 그 누구도, 어떤 정파도 독자적인 지지율, 정치적 기반만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봤을 때 부르조아 정파 내부의 연대와 제휴를 위한 암중모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선에 나설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 전까지, 혹은 정파간 합종연횡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정국의 불안정과 불투명이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합종연횡을 위한 정치적 명분과 그 배경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부르조아 정파 간의 연대와 제휴를 위한 암중모색은 사실상 일정한 정치적 기준이나 원칙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야 어쨌든 오로지 정권 장악의 가능성 만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정치적 명분을 살펴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대중의 요구가 반영되어 있으며 또한 세력관계가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등장한 정치적 이슈는 ‘수평적 정권교체’, ‘3김 청산(세대교체)’, ‘보수대연합’, ‘대통합 정치’ 등이다. 여기서 이번 대선에서 유력하게 맞대결 할 정치적 이슈는 아무래도 ‘정권교체’냐 ‘3김 청산(세대교체)’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대중의 정계복귀가 불러온 불가피한 정치적 현상이다. 다시 말해 김대중과 김영삼의 피할 수 없는 정치적 대결이 역시 이번 대선의 최대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수평적 정권교체’는 국민회의, 즉 DJ를 대표하는 정치적 표현이다. DJ는 기존 정치권 내에서 독보적인 ‘민주화 투쟁’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비록 그 상징성이 퇴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는 세력이 남는 이상 그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는 ‘수평적’이라는 수사가 붙은 바와 같이 민주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자신의 주장을 빌리더라도 ‘지역연합’에 근거하는 ‘정권교체’이다. 그는 김영삼 정권을 ‘지역(영남) 패권주의’정권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역’ 지역연합(DJP)만이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 임을 주장한다. 문제는 그의 정치 이력으로 보나, 제도 정치권 내에서의 당의 노선으로 보나 상대적으로 ‘진보’의 내용을 갖고 있어 비록 ‘수평적 정권교체’나마 역사의 진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당연히 정파의 입장에서 하는 그런 주장은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세력 모두를 단순히 ‘지역주의’의 포로로만 보는 것은 한국 지배계급의 의도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다름 없다. 특히 ‘3김 청산’을 주장하는 정파의 논리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정권교체’를 비판하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DJ를 비판하는 것과 민주화를 바라는 세력이 그를 지지하는 것과는 구별하여야 한다. 물론 김종필이 ‘정권교체’를 정치발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 포함된 노동자 중에도 ‘정권교체’를 상대적 진보성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3김 청산(세대교체)’을 주장하는 대표적 정파는 김영삼의 집권 여당이다. 여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하나는 김대중을 정치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집권층의 정치적 의도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 정치권의 정치행태에 등돌리고 있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심리를 싸안으려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부정부패, 정경유착, 돈드는 선거, 지역주의, 정치권의 잦은 이합집산 등을 ‘3김 정치’의 낡은 정치적 유물로 규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최우선적인 과제라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DJ(DJP)로의 정권교체는 낡은 정치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회창과 조순은 정치적으로 ‘3김 청산’을 대표하고자 한다. 이들은 기존 정치권의 낡은 정치인들에 비해 자신들의 상대적인 참신성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이회창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사태가 없었다면 조순의 대선 등장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상품성이 많은 면에서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회창은 자신이 주장한 바로 ‘3김 청산’에 의해 그 자신이 일차적으로 당하는 꼴이 됐다. 그의 아들의 ‘병역시비’는 그가 기존 정치인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고만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3김 청산’의 정치적 위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제는 ‘3김 청산’은 물론 더욱 강력한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급부상 하였다. 그런 만큼 대선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여당의 ‘후보 교체’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출마 역시 ‘3김 정치’의 유산의 하나인 약속을 져버리는 정치인이 되는 것인데 ‘세대교체’라는 상품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위의 정치적 쟁점 혹은 세력관계 속에 그 어떤 계급적 내용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대선이 여전히 부르조아 정파 간의 경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조아 정파들 사이에 첨예한 대립과 경쟁이 있어도 그것이 지배계급 전체를 위기로 몰고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문제될 것은 없다.

대립구도(세력관계)의 변화와 김영삼 정권의 정치적 실패
부르조아 정치권이 지금과 같이 극심한 합종연횡을 모색하고 있고 집권층의 정권 연장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은 크게 보아 한국사회의 대립구도가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히 변화의 과정을 겪어왔으며 특히 김영삼 정권이 전면에 내세운 ‘개혁’이 실패로 귀결된 때문이다.
한국정치의 화두는 오랫동안 ‘민주화’였다.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와 세력관계는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기본 동력으로 작용했다. 민주화 진영의 투쟁이 대중의 도덕적 신뢰를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면 지배세력은 ‘경제발전’과 ‘안보’를 내세우고 민주화투쟁을 억압했다. 이 양 세력의 대립과 투쟁은 87년 6월 항쟁에서 그 절정을 맞는다. 그 이후 10년을 거치면서 이 대립구도는 서서히 변화의 과정을 겪어왔다.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함께 민주대 반민주의 전사회적인 세력관계는 제도 정치권 내의 ‘개혁세력’ 대 ‘기득권세력’의 대립으로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개혁’이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억압이 개선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본의 이해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진행될 뿐만아니라 기득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물갈이의 형식을 띠게 되자, 김영삼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투쟁이 거세게 일어나고 기득권세력 또한 딴짓걸기와 반발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김종필과 TK에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던 일부 인사들이 집권당에서 이탈하여 독자의 정파를 형성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김대중 또한 이러한 정세를 비집고 정계에 복귀하게 된다.
김영삼은 집권 여당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당내 갈등과 불화는 끊이지 않았다. 김영삼은 안팎으로 포위당하는 형편에 놓여졌다. 김영삼은 이러한 정치적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 ‘개혁’ 조치를 잇달아 취하면서 대중적 명분과 인기를 통해 권력의 안정성을 꾀하려 했지만 그의 장기인 전격 처리 방식은 정치권과 부르조아 언론으로 부터 ‘깜작쇼’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고 ‘개혁’의 내용이 어느 세력에게도 만족을 줄 수 없는 미봉적 수준에 머무름으로써 ‘개혁’ 조치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는 불씨가 되곤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준 것은 노동자 대중투쟁이다. ‘개혁세력’ 대 ‘구기득권세력’으로 맞선 형국은 제도 정치권 수준의 대립이었다. 더욱 근본적인 대립구도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에 의해 규정당했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정세를 형성하는 실질적인 힘이었다. 이것은 87년 이후 성장한 남한 노동자 운동의 역량과 세계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인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한국적 현실에서 관철할 책무를 담당해야 하는 정권과의 대립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강제하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서 노동자의 대중투쟁이 한국사회의 정세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투쟁의 정치적 표현은 아직은 체제 내적 수준에서조차 국가의 운영 방향이나 정권의 작동 메카니즘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는 훨씬 이르지 못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노동자 대중투쟁이 자본의 착취에 맞서는 투쟁에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면서도 국가와 정권의 정치행위 자체에 맞서는 투쟁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던 데 있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논리는 위협당하지 않았으며 통치기제, 예컨대 법과 제도, 억압기구는 조금도 완화되거나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확인해야 할 것도 있다. 그것은 노동자의 대중투쟁이 비록 위와 같은 한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96말~97초의 총파업투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조금이나마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정권의 절대적 권위를 상대적 권위로 누그러뜨리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은 이른바 ‘세계화’를 한국사회의 발전전략으로 삼았다. 알다시피 ‘구사회주의권’이 해체되고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세계는 자본의 단일한 무한경쟁 체제로 변화했다. ‘세계화’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대응 방향을 집약한 표현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김영삼 정권이 크게 다음의 3 가지에서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첫째는 세계화를 앞장서서 끌어갈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것은 김영삼 정권이 자신의 일관된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권은 ‘보수대연합’에서 ‘개혁세력’으로 다시 ‘개혁세력’에서 ‘3김 청산(세대교체)’으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이것은 바로 자신의 정치기반을 계속해서 부정해야 하는 위험한 게임이었다. 김영삼은 이 게임에서 이기지 못했다. 둘째는 정권의 이해와 독점자본의 이해를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세계화라는 총론에서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 시간적 선후, 완급조절과 같은 각론에서 불협화음이 계속됐다. 전면적인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자본과 정권 사이의 또한 개별 자본 사이의 이해다툼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 세계화 전략이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관건이 되는 이 점에서의 실패가 김영삼 정권한테는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다.

한국정치의 현실과 노동자계급
지금 부르조아 정치권이 혼돈에 빠져있는 이유는 위와 같은 김영삼 정권의 실패가 낳은 파장이며, 김영삼의 ‘세계화’ 전략이 실패한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이 그 동력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서 노동자계급은 다음 정권 역시 기본적으로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노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인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원칙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부르조아 정권의 존재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르조아 정권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역시 계급관계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다음 정권이 ‘세계화’ 전략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취할 것인 지는 노동자계급이 이번 대선에서 취하는 태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전략을 실패로 몰고간 과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노동자․민중진영은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과거에도 진보진영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정치적 성과를 낳지 못한 뼈아픈 경험과 기억을 남기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의 행보는 과거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노동자 대중이 이 운동의 강력한 주체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속에는 정치 경험이나 의식의 불균등이 존재하고 그런 만큼 정치세력화에 대한 목적과 방법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실천의 내용과 강도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예견된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에 포함된 노동자 대중일지라도 기존 제도 정치권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가 가능하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예상컨대 지금의 혼미한 정국은 크게 ‘수평적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세력과 ‘3김 청산(세대교체)’을 내세우는 세력과의 대결로 압축될 것이다. 어느 세력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부르조아 정치권 내부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며 이 결과가 계급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이번 대선에서 부르조아 정파와의 상대적 차별화 수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면, 아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도 못하고 부르조아 정파 간의 경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동자계급은 대선의 세력구도를 계급대립의 내용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것이 얼마나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부르조아 정파와 실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를 최소한 노동자 대중에게라도 알릴 수 있으며 대선 결과도 여기에 달려있다. 한/노/정/연

1997-09-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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