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위하여
오 세 철 / 이사․연세대 교수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로 국한될 수 없으며, 상층정치활동의 결과만으로 얻어질
수 없다. 진정한 정치세력화의 과정이란 오로지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경험과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현장투쟁속에,
살인철거에 맞서는 철거민들의 투쟁속에, 4천만 민중들의 굳건한
연대투쟁속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대중투쟁으로 정치세력화의 독자적인 계획과 실천을 해소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출발지점은 철저하게 노동자․민중의
투쟁전선에 기초해야 하며 투쟁전선을 강화시키는 것에
복무되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정치적 실천의 과정속에서
노동자․민중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명실공히 주인이
되는 미래사회를 건설해 나갈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의
진보와 민주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해 나갈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8월 16일 4시 기독교회관에서 발족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진전을 위한
연대(준)」(약칭 정치연대)의 발족선언문에 실려있는
글이다. 정치연대(준)를 결성한 세력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철저히 투쟁과 실천속에서 관철시키려고 하는 단체와
교수들이다.
지금부터 6년전 여름 민중당의 개량화에 맞서 당내투쟁을 하다가
탈당한 교수위원회 소속 교수들이 모여 사상투쟁체로서의
‘민중회의’의 결성을 제안한 적이 있다.
소련․동구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불어닥친 사상적
혼란과 변절, 그리고 개량주의와 합법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당시만 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현장에서
실현하고 있었던 단위들이 산재해 있었고 비공개적인 활동방식
때문에 전국적 사상통일과 실천통일이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개량합법주의나 사민주의로의 전환 문제에 대해 사상투쟁의
전선을 힘있게 구축하지 못했으며, 대중조직은 자본과
어용노조에 맞서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사상투쟁과 계급운동을 접합시키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또한
민주화투쟁속에 혼재해 있었던 민족주의세력, 민중주의세력의
계급의식의 불철저함이 부르주아정치에의 의존을 강화시켰던
현실이기도 하였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주창했던 세력은
소수파로 낙인찍혔으며 합법개량주의세력이 큰 흐름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합법정당운동으로
대체시키려 하는 의회주의, 선거주의 노선은 당건설의 전략전술
논쟁을 촉진시켰으며 대중운동과 투쟁에 기초하지 않은
합법개량주의적 진보정당은 좌초할 수밖에 없었다. 대선투쟁에
참여했던 세력의 민중후보전술은 노동자계급 정치의
선전선동으로 끝나고 정치세력화의 대중적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채 여러 갈래의 정파조직으로 분해되었다. 그후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던 세력들도
시민운동으로 나아가거나, 개량주의적 노동운동으로 흩어졌다.
오직 계급적 관점과 변혁적 실천을 견지해온 세력들만 자본과
보수권력의 직접적 탄압대상이 되었고, 이러한 탄압은 당분간
계속되리라고 예상된다.
정치연대(준)의 결성은 사상적으로 합법개량주의에 맞서는 투쟁,
정치적으로 노동자계급 정치의 실현을 위한 투쟁,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제거하고 대안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의 조그만
발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 조건의 변화
91년으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위한 객관적
조건의 변화는 무엇인가.
80년대 중반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인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노동통제전략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분적인 실효를 거두자, 자본의 축적전략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희망적 이데올로기가 유포되기
시작하였으며 자본에 대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 이루어짐에
따라 노동운동이 자본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는데 무력화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저지시키려는 유연적
노동통제전략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90년대에 들어서서
서서히 분출되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무한경쟁이라는 자본의
생존전략을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노동자계급과의
한바탕 싸움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는
순환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것이며, 비합리적 방식으로
축적해온 한국의 (독점)자본이 세계자본주의의 냉혹한 법칙
아래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의
유연적 전략만으로는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에 대한 탄압과 유혈적 테일러주의의
노동통제방식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30대 독점재벌
중에서 부도를 내고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자본의
무계획적인 투자와 생산에 의해 빚어지는 당연한 결과이며
거대독점재벌이 흡수하더라도 실업과 고용불안으로 오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세계화에
조응하기 위한 한국자본주의의 체질개선은 위기를 증폭시킬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노동자계급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객관적 조건은 노동자계급 정치의 실질적 토대가 된다.
노동자계급의 상태
그러면 노동자계급 정치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어떠한가.
포드주의와 포스트포드주의가 중첩된 자본의 전략에 대해 계급적
단결로 투쟁하는 방법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사협조주의의
외피를 쓰고 자본에 실질적으로 포섭되는 유연한(?) 노동운동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노동자계급 정치의 보편적 경로는 노동자계급의 전국적
조직으로서의 산별노조건설과 정치조직으로서 계급당 건설이라고
볼 수 있다.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역사를 보면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두 조직의 결합방식은 그 나라 운동의 역사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중조직과는 구별되는 정치조직의 건설이
주요과제였던 것은 틀림없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모아 건설된 민주노총은 산별을 향한 과도기적 조직이다.
민주노총의 건설에 역사적 의의를 부여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전국적 조직의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움직이는 이념에 있다. 그래도 전노협은
평등사회건설과 노동해방이라는 기치가 있었다. 투쟁과 탄압이
점철되는 역사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민주노총의 이념은 무엇인가. 어용이라는 한국노총과
구분되는 이념은 무엇인가. 만일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내세운다면 탈계급적 노사협조주의에 매몰되고
만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조합도 이념에 따라
분리되고 있다. 대중조직은 하나여야 한다는 강변은 성립될 수
없다. 어떤 이념이 지배하는 조합인가가 중요하다. 자본에 대한
적대적, 투쟁적 태도와 실천이야말로 노동자계급 정치의 핵심적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번 총파업의 성과를 높이 찬양한다. 물론
노동자계급의 힘을 과시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지만 투쟁의
성과를 올바르게 거두었느냐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사상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은 잘 안들린다.
대중의 요구가 밑으로부터 관철된다는 이야기도 안들린다.
대중투쟁을 밑으로부터 일구어내는 근본적 변화와 실천을
이룩해야 할 책임은 노동자계급 정치를 만들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다.
그러면 정치조직 건설의 상황은 어떠한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은 계급의식으로 단결된 노동자계급과
민중이다. ‘정치연대(준)’는 그것을 지향하는 첫걸음이며
노동자․민중이 중심에 서는 조직으로 확대 발전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에 함께 결합하는, 투쟁하는
정치조직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는 또하나의 흐름이 있다. 8월
18일에 선언자대회를 가진 ‘(가칭)국민승리21’이다. 이들은
선언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우리는 결의한다.
‘국민후보’운동으로 축적한 힘을 모아, 대중의 참여에 기반한
진보적 개혁정당을 시급히 건설할 것이다. 진보적 개혁정당은
국민의 정당으로서, 정책정당으로서, 개혁정당으로서의 제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언제나 깨어 있을 것이며, 멀지 않은
미래에 국가와 민족을 책임질 당당한 주체로 우뚝 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만 보면 노동자계급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기존의 제도권 정당의 주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번 총선 때 개혁신당의 결성취지와 흡사하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공동으로 만드는 당으로
알려져 있고 또 그렇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성격이
노동자당도 아니고 민족민주당도 아니다. 진보적(?)
개혁정당이다. ‘(가칭)국민승리21’은 정치조직이면서
대중조직연합인 것처럼 위장되고 있다. 개인가입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민주노총, 전국연합과는 독립되어
있는데 가입을 강제하고 있다. 처음에는 공동선거대책기구로
표현했으나 실제는 정치조직의 모습으로 가시화되었다.
정치조직이라면 강령으로 이념과 노선이 나타나야 한다.
선언문에는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다. “우리는 전근대적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모든 국민의 인간적 삶에 어떠한 제한도
없는 진정한 참여민주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척결하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과
중소기업중심의 생산적 경제체제를 만들 것이다” 이 정도의
표현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이라고 볼 수 없다.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상정하는 정치세력화의 상인지,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정당건설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어떤 세력도 특정한 이념을 가지고 정치조직을 자유롭게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조직이 즉자적으로 정치조직이 될 수 없다.
다양한 이념이 존재하는 대중조직을 단일한 이념으로 묶을 수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가칭)국민승리21’은
민주노총, 전국연합과 분리되어야 하고 조직원들의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반대로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정치조직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대중조직내에서 노선의 헤게모니를 가지는 것과 대중조직을
정치조직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대중조직이 하는 일이니까 무조건 같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대중투쟁과 결합하는 문제와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실현하는 일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이다. 정치조직이 경쟁적으로 대중을 전취하는 것은
자연스런 운동법칙이며 그것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을
고양시켜나갈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기반으로
‘정치연대(준)’와 ‘국민승리21’은 정치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상노선의 대립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인가 아닌가가 진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승리21’을 노동자계급의 정치로 견인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단지 대선투쟁에 있어서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깊이 따져보아야 한다.
‘정치연대(준)’와 ‘국민승리21’이 공동선거대책기구를
구성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을 수 있다. 당건설의 상이
다르다 하더라도 대선투쟁에서 대중투쟁과 함께하는 대선투쟁,
사퇴하지 않는 노동자․민중후보운동, 한국사회를
근본개조하는 기본방침 등이 합의되었을 때 두 정치조직은
대선투쟁 과정에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화된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노동자계급 정치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것도 이번 대선투쟁의 과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계급으로서의 정치주체가 우뚝
설 수 있도록 힘차게 전진하자.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