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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동 다시 운동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26호
원영수

기 획 번 역

미국의 노동 : 다시 운동으로?
기획번역
미국의 노동 : 다시 운동으로?


Kim Moody / ꡔLabor Notesꡕ주간


이 글은 ꡔMonthly Reviewꡕ 1997년 7․8월호에 게재된 글을 완역한 것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상황이 변하고 있다. 마침내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가장 가시적인 상징은 AFL-CIO의 새로운 지도부이다. 존 스위니(John Sweeney), 리치 트럼카(Rich Trumka)와 린다 차베스 톰슨(Rinda Chavez Thompson)의 ‘새로운 목소리’(New Voice) 팀이 보여준 활력과 선명한 입장은 환영할만한 변화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미국 노동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는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하여 엄청난 자원을 투여함으로써 노동의 오랜 쇠퇴를 역전시키려는 새 지도자들의 의지이다.
조직화는 ‘New Voice’ 팀의 주요한 주제이며, 새로운 지도자들은 이 프로젝트에 엄청난 액수를 쏟아 부음으로써 이 문제에 매진하고 있다. 그들은 재직 첫해에 2,000만 달러, 97년에 3,000만 달러를 제안하였다. 전임의장 레인 커클랜드(Lane Kirkland) 하에서 별볼일 없는 구경거리였던 조직화 연구소(Organizational Institute)는 이제 연맹의 중심이 되었다. OI라고 알려진 이 조직은 수십명의 젊은이들을 모집하여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출신의 청장년층 사이에서 조합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노동조합 여름캠프’(Union Summer)는 1천명 정도의 젊은이들에게 ꡔLA Weeklyꡕ가 ‘계급투쟁 101’이라고 불렀던 프로그램을 제공하였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영원히 변했다고 말했다. 일부 AFL-CIO 가맹조합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조직화의 대상은 저임금 노동자들이며, 주로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들이다. 이것은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이다.
이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AFL-CIO는 1996년 12,000명의 신규가입자가 순수하게 증가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체 조합원 숫자는 지난해 또 91,000명이나 감소했다. 그러나 조직화를 수행해야할 많은 가맹조합들은 그저 의기소침할 뿐이다. 예를 들어, 전국의 자동차 부품산업의 조합원이 1978년 75%에서 오늘날 25% 이하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동차 노동조합(UAW)은 매우 적은 액수를 조직화에 투자하였다 ― 그러고 나서도 UAW는 전지구적으로 도전받는 미국 자동차산업 외부로부터 노동자들 속으로 안전하게 피신하고 있다.
오랜 기간 조직화를 무시한 것 이외에도, 사이비 조직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더 작은 조합의 통합 또는 흡수(보다 전형적인 경우)가 노동관료주의의 보편적인 대응이다. 1956년이래 약 120건의 통합과 흡수가 있었는데 그 중 절반이 1980년 이후에 일어났고 그 중의 절반은 1991년 이후에 일어났다. 최근까지, 우리가 ‘조직화’라고 부르는 것 중 많은 것은 실제로 큰 조합이 작은 조합을 삼키는 행위였다. 이런 관행을 파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싱턴의 한 노동계 내부인사가 말했듯이, AFL-CIO는 가입조합의 수는 줄이고 규모는 늘이는 경주에서 “실제적으로 경매를 수행”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그러나 위로부터 새로운 노동자들을 모집하려는 노력은 일부 국내 및 국제 조합들에게 고무적인 변화이다. 예를 들어 미국통신노동조합(CAW)은 지난해 예산의 10%를 새로운 조직화에 투여하기로 결의하였다. 팀스터조합(Teamsters), 잡역부조합(Laborers), 그리고 스위니의 출신조합인 SEIU와 같은 다른 조합들도 조직화 프로그램을 상향조정하였다. 지난해 SEIU는 조직화에 지출할 예산의 비율을 20%에서 30%로 인상하기로 결의하였다 ― 조합들 중에서 최고의 수치이다.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가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새로운 조직화가 전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들은 미국의 노동계 기구들 중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기구를 해체했다. 이 기구들은 정부의 자금과 CIA의 영향을 받으면서 1960년대 초반이래 제3세계에서 경제조합주의와 반공주의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해외 연구소들이다. 이런 냉전의 잔재들은 하나의 단일한 조직, 즉 ‘국제노동연대를 위한 미국센터’(American Center for International Labor Solidarity: ACILS)로 정리되었다. 기계공 조합 출신의 진보주의자인 바바라 셰일러(Barbara Shailor)는 연맹의 국제사업국을 이끌면서, 30년간 사회민주주의적 미국의 냉혹한 전사들에 의해 저질러진 무책임한 독점적 지배를 종식시키고 있다. 실제로 요즘 16번가 쪽에서는 ‘연구소’ 재구성 및 건설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AFL-CIO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변화를 관리하면서 일정한 유연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지난해 리치 트럼카는 좋은 친구들이 이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AFL-CIO는 半자치적이고 행동지향적인 ‘정의로운 직업’(Jobs for Justice: JWJ) 연합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무심결에 제안하였다. 이것이 JWJ 활동가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때, 연맹 지도자들은 한걸음 물러났고 올해 JWJ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동의했다. 그 다음에 스위니 등은 1996년 6월 일부 가입조합들이 새로운 노동당을 창건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데 개입하지 않았다. 스위니는 단지 타이밍이 나쁘다고 말했을 뿐이다 ― 당시 클린턴과 돌의 대결이 막 수평선 위로 서서히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합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은 AFL-CIO 지도부의 변화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만큼 중요하다. 노동의 재각성을 가져온 근원은 무엇보다도 노동의 쇠퇴를 설명하는 동일한 경향에 있다. 노동의 쇠퇴를 설명하는 데 동원되는 모든 요소들 ― 산업구조조정, 기업규모감축, 유연생산, 인종 및 성적 재구성, 그리고 모든 설명의 원조인 지구화 ― 은 노동자들과 그들의 조직으로 하여금 새로운 행동방식과 조직방식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모든 변화와 마찬가지로, 이 변화도 혼란스럽고 모순된 것이다. 그 중복되는 몇 가지 특징 중에는 이런 것을 들 수 있다 : 전국 및 지역 조합지도부의 전복, 보다 많은 조합민주주의를 위한 운동, 비열한 유연생산 체제에 대한 도전, 그리고 노동운동의 여러 지점에서 전투성과 직접행동으로 복귀 등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경향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최상층부의 보다 가시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계층화된 노동과 지옥으로 변한 공장

오늘의 최고 지도자들 대부분이 취임했던 AFL-CIO에서 미니와 존 스위니가 재임했던 기간 사이 공동으로 운영되어야할 미래의 훌륭한 현장은 하향식 지옥의 공장이 되어버렸다. 여러분이 병원이나 자동차 공장, 우체국이나 탈산업적 테크노 사무실 그 어디에서 일하든, 여러분의 직업은 아마도 10년 전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 만약 여러분이 운이 좋게도 그렇게 오래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상황은 확실히 더 스트레스받고, 더 힘들고, 더 위험하다. 1990년대 전반 미국의 재해 및 질병발생률은 보고된 사례의 통계를 비교할 때 어디서나 1980년대 전반보다 90% 내지 100%까지 치솟았다.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한 손실일수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그 차이는 1990년대 초반 내내 훨씬 더 컸으며 자동차 조립공장에서는 500%나 높아졌다.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노동부는 1993년 손실일수의 발표를 중단했다. 직업병과 산업재해가 이렇게 증가된 원인은 노동시간 패턴이 변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풀타임직이라면 노동시간은 급격히 길어졌을 것이다. 만약 노동시간이 짧다면, 그것은 당신이 미국의 점증하는 파트타임직, 임시직 또는 자유직으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노동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중반까지 분명하게 된 것은 1973년이래 실질임금이 18% 하락하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자에게 유리하도록 소득이 재분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ꡔ먼슬리 리뷰ꡕ(Monthly Review)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런 점증하는 불평등을 실제적으로 왜곡하는 ꡔ비지니스 위크ꡕ(Business Week) 최근호의 커버 스토리 ‘2단계 마케팅’은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은 그것을 ‘티파니/월마트 전략’이라고 부르면서, 보다 많은 소매상들이 중산층을 지나친 채 부자들이나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대상으로 삼는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상인들은 요즘 상위 20%가 더 많은 돈을 소비하는 반면 거대한 중간계급(노동계급이라고 읽을 것)은 빚 때문에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인 것을 발견한 것같다. 다른 한편, 경제적 저지대 주민들은 점점 줄어드는 빈약한 수입을 얻고 있지만 그들의 숫자는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요즘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최고경영자(CEO)들이 저지르는 뻔뻔스런 날강도 짓이다. 올해의 날강도 기술자는 트래블러 그룹(Travellers Group) 보험의 사장 샌디 웨일(Sandy Weill)로, 그는 1996년 9,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것은 1987년이래 트래블러의 노동력을 1/3이나 감축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이런 종류의 직업감축은 간부들에게 터무니없는 봉급과 보너스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우존스 지수를 유례없이 치솟게 하였다. 임금수준의 정체와 주목할만한 생산성 상승이 결합된 이런 급증하는 재정적 수입은 회사금고로 홍수처럼 밀려왔다. ꡔ비지니스 위크ꡕ는 경고한다, “걱정거리는 회사들이 효율적으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빨리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을 줄어드는 중간소득 노동계층과 증가하는 저소득 노동계층을 이루는 다수가 못 본 채 지나치지 않았다. ― 그리고 그들은 화가 났다.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무엇이든 많은 노동자들에게 과거의 동반자시대 또는 참여의 시대가 급속하게 끝나 가는 것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이윤, 주식가격, 최고경영자의 급여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들의 직업이 감소되거나 노동강도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분노나 환멸과 경쟁하는 것은 동일한 원인(인원감축, 외주작업, 시설폐쇄, 또는 파업파괴자 고용)에 의한 직업상실의 두려움이다. ꡔ멀티내셔널 모니터ꡕ(Multinational Monitor) 사설이 최근에 표현했듯이, “무자비한 고용주계급은 이런 직업불안정의 여러 원인을 부분보다 더 큰 전체로 융합시키고 있다” 직업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히 요즘 대부분의 노동계급 가족들에게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조직화된 노동의 광범위한 기층에 대해 그것이 갖는 장악력은 지금까지 거의 20년간 강력했다. 파업수치는 그 결과 수직으로 떨어졌다. 따라서 오랫동안 조합원 대중은 다소 수동적이었다. 많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두려움으로 인한 수동성은 최고 간부들의 노사 동반자관계를 강화하는 경향을 만들었다. 조합원들은 새로운 현장체제를 받아들이고 말없이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훌륭한 신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다 잘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크기가 줄어든 동전의 다른 면은 노동강도의 강화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불평하는 노동자들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최소한 소수는 월 스트리트의 내부인사인 스티븐 로치가 ꡔ월스트리트 저널ꡕ에 이렇게 썼을 때에는 귀를 기울였다. “최근의 이른바 생산성 부활은 노동력에게 특별한 압력을 가하는 가혹한 기업구조조정 전략에 힘입은 것이었다” 로치는 ‘노동자의 반발’을 예상했다.
어쨌든, 대공황기에 그랬던 것처럼 강화된 착취의 압력이 직업상실의 두려움을 압도할 때가 왔다. 처음에는 한 그룹이, 다음에는 다른 그룹이 시험적으로 싸워보고, 그런 다음 노사관계에 공공연한 분쟁이 다시 나타난다 ― 기업조합주의(1930년대) 또는 노사협조 구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지난 몇년간 미국의 쓰라린 파업의 의의이다. 캐터필러와 A.E. 스테일리에서처럼 일부는 졌다. 지난 2년반 동안 10여개 GM지부의 파업, 69일간의 보잉파업, 오레건주 공무원들의 1주일간 총파업, 예일대학의 간헐적 파업, 그리고 오하이오주 워런의 WCI철강에서의 54일간 대치투쟁에서처럼 일부는 승리했다. 휠링 피츠버그 파업과 디트로이트 신문의 직장폐쇄처럼 일부는 질질 끌고 있다.
또 캘리포니아에서는 건물관리인, 건축노동자, 목수, 부두 트럭운전사 등 이민노동자와 라틴계노동자의 대대적인 파업들이 있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에서 2천명의 딸기수확 노동자들과 워싱턴 주에서 보다 적은 수의 사과수확 및 가공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투쟁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이민노동자와 라틴계노동자들의 유사한 투쟁은 현장뿐만 아니라 조합에서도 라틴계의 성장을 의미한다. 1992년에서 1996년까지 전체 조합원은 계속 쇠퇴한 반면, 라틴계 조합원의 숫자는 12%나 증가하였다.
1995년까지 10년 내내 하락세였던 파업통계는 1996년 증가했다. 1996년 시작된 ‘주요’파업(1,000명 이상의 노동자)의 숫자는 1995년 31건에서 37건으로 증가했다. 참가 노동자의 숫자도 1995년 192,000명에서 1996년 273,000명으로 증가했다. 단지 총파업일수만 감소했다. 여전히 매우 낮은 수치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파업들이 1956년에서 1979년까지 있어왔던 일상적인 임금과 수당을 위한 파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파업은 ‘유연생산’이나 미래의 현장과 연관된 문제에 대한 방어적 투쟁이다. : 상근수준, 외주, 하청, 작업량, 보건의료와 연금. 이 투쟁은 누적된 분노의 폭발이다. 일부의 경우 투쟁은 다른 조합이나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로부터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올해초 WCI와 디트로이트 신문에서 일어난 대규모 대치는 새로운 의식의 상징이었다.
다른 방식이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GM, 크라이슬러, 존슨 컨트롤 등 일련의 파업도 그러했다. 이제 직업과 노동조건을 침식하고 있던 기업과 조합의 밀월을 들이받기를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노동자들은 다시 상황에 적응하게 되었다. 적시생산체제하에서 노동자들은 단지 한두 공장에서 파업함으로써 GM과 같은 거대기업의 전체 또는 대부분을 폐쇄할 수 있고, 원료공급업체 존슨의 경우처럼 포드를 폐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GM에 대한 1996년 파업만으로도 회사측에 12억 달러의 생산손실을 가했다. 이런 각각의 파업이 공장에 새로운 고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다른 지역조합들도 유연성으로부터 구원을 시도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1997년, 세번의 새로운 파업은 보다 많은 UAW 지부들이 연맹에 파업허가서(‘5일 문서’)를 신청함에 따라 GM에 타격을 가했다.
그 다음으로, 보다 유연하고 보다 비열한 자본주의가 새로운 노동의식과 전투성을 가져오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노동운동이 변하고 있다해도, 그것은 복잡하고 불균등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조합들은 각각의 층이 자기 나름의 속도대로, 여러 방향으로 이동하는 지층과 유사하다. 대부분 조합의 꼭대기에는 어제의 현대화주의자들(modernizers)이 있는데, 그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출세의 길을 달려왔으며, 그들의 사고는 고용주가 경쟁력을 갖게 해주는 품질향상 서클, 팀, 공동프로그램, 노사 동반자관계의 시대에 형성되었다. 조지 미니(George Meany)식으로 시가를 입에 문 땅딸보라는 노동 지도자의 공적 이미지(언제나 과장된)는 아주 시대착오적이다. 작년의 반대유형도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이다 ― 레너드 우드콕(Leonard Wood-
cock)과 더그 프레이저(Doug Fraser) 류의 고상한 사교적 조합주의자. 변덕스러운 자칭 ‘사회주의자들’, 기계공 조합의 윌리엄스 윈피싱어(Williams Winpisinger)와 전기노동조합(IUE)의 바이워터(Bywater)와 같은 마지막 부류도 사라졌다.
현재 조합의 상층은 인적자원 관리, 노사 동반자관계와 노동자참여 등 뜻모를 이야기를 하는 약간 날씬하지만 여전히 대개 백인남성 위주의 지형이다. 그들의 말은 최신식으로 들리지만, 그들 자신은 이미 과거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약간의 중요한 예외가 있다. 이들은 미래에 발을 담근 자들로서, 팀스터의 론 케리, OCAW의 밥 웨이지스(Bob Wages), 동반자 관계적 접근을 거부하는 UEW의 국외자들(즉 AFL-CIO에 가입하지 않은)과 같은 이들이다.
물론 광범위한 친동반자관계 견해도 있다. 통신조합의 모티 바(Morty Bahr)나 자동차조합의 스티브 요기치(Steve Yokich)같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협동(jointness)’의 정교한 하향식 논리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ꡔ비지니스 위크ꡕ지가 최근에 보도한 것처럼(1997년 4월 7일자), 철강 노동자, 기계공, 잡역부 조합과 AFL-CIO 자체도 시장점유율을 위한 경쟁에서 회사를 돕기 위해 정교한 훈련 및 상담 프로그램으로 그 뒤를 따랐다. SEIU의 새 의장 앤디 스턴(Andy Stern)과 같은 사람들도 “우리가 파트너가 되려면 대등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노선을 취한다. 그러나 고용주들은 조합을 강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화시키기 위해 ‘동반자’구도를 추구해왔다는 점이 문제이다. 전체적인 그림은 1980년대 경영진과의 협력에 충실하게 헌신하다가 1990년대는 조합원수, 조합수, 협약을 감소시킨 뒤 경영진에게 버림받은 협동노선의 추종자(jointness guys)들로 그려진다.
대부분의 새로운 의식과 때로 필사적인 전투성은 활동가들, 즉 조합의 얇은 지질학적 중간층에서 나온다. 이들은 미국의 조합을 하루하루 유지시키는 노동자, 현장대표자와 지부수준의 조합간부들이다. 그들은 한편에서는 출세지향적 간부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수의 조합원들 사이에서 활동한다. 일부는 전임 유급직 간부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현장의 이데올로기를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든,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든 지에 상관없이 그 이데올로기에 반대되는 현장의 현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층의 중요한 소수는 고용주와 조합간부 양자에게서 나오는 노사협조 정신을 거부한다. 저항세력의 힘을 최대한 모을 수 있고, 때로 조합원들의 수동성과 후진적으로 보이는 최고 간부들의 무기력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이 지층이다.
이와 같이 노동의 모습은 지질학적 비유를 약간 혼합하면 충돌하는 지반(tectonic plate)의 느낌을 준다. 노동의 세 지층은 제도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상이한 방향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낳는다. 이 충돌의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활동가들로부터 행동하라는 압력이 나오는 것도 그 한 형태이며, 이것이 GM과 보잉파업에서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또다른 것은 상층에서의 전복이다. 조합민주주의협회(Association for Union Democracy: AUD)에서는 약 10여명의 조합 의장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1년 론 케리의 승리까지 선거전을 통해 추방되었다고 추정하였다.


계속되는 소요

노동 민주변호사 폴 레비(Paul Levy)는 1996년 가을 전국변호사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현재의 소요를 이렇게 요약했다.

상당수의 전국조합 ― 식료 및 상업 노동자, 서비스 노동자와 호텔 노동자와 같은 서비스 조합, IBEW(전기공) 또는 벽돌공과 목수, 잡역부 같은 건축 노동자, 우체부, AFGE(연방 공무원)와 재무부 직원과 같은 정부 조합, 기계공과 자동차 노동자와 같은 공업 조합 ― 에서 광범위한 조합간 활동이 이전보다 더욱더 증가했다.

이와 같은 전국적 조합의 도전들에 대규모 지역조합들의 유사한 운동을 첨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욕 운수업계에서 3만 조합원을 가진 운수노동자 조합 100지부의 “새로운 방향”회의(New Direction caucus), 비슷한 크기의 뉴욕시 수위/도어맨, 스위니의 출신 지부인 SEIU 32B/32J 지부의 개혁그룹 등이다. 심지어 로스 엔젤레스의 SEUI 399지부인 유명한 ‘수위 정의회(Justice for Janitors)’에서도 ‘다문화 동맹(Multicultural Alliance)’이라고 불리는 라틴계와 흑인계 노동자들의 대중적 반대파 운동이 구친위대 집행위원회를 대체하였다 ― 그러나 위탁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1996년 보다 보수적인 미국 간호사협회로부터 캘리포니아 간호사협회의 분리는 또다른 형태의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대표한다.
아직 지도부 도전에 집중하지 않는 반란들도 있다. 예를 들어, 1996년 IBEW 대회의 대의원들은 미래의 최고위직 선거를 대회 대의원의 비밀투표로 할 것에 대해 조합 지도자들이 반대하자 이것을 투표에 부쳤다. 잡역부 조합(Laborer Union)의 조합원들은 훨씬 더 나아가서, 최고 지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래에 조합원 전체의 직접투표로 최고간부를 선출하는 조합원 3명당 1표의 전체투표를 제안하였다. 또, 기계공 조합의 개혁가들은 조합 지도자들이 보잉사와의 협상에서 추천한 타결안을 거부하기 위해 조합선거에서 후보자격 제한에 도전하여 이를 없애는 데 성공하였다. 그들의 이슈는 대대적인 외주작업(outsourcing)이었다. 개혁가들은 조합과 회사가 개선된 제안을 갖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
팀스터 노조보다 더 성공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도전, 또는 보다 심층적인 조합개혁 과정이 이루어진 곳은 없다. 1996년 지미 호파 2세를 누르고 론 케리가 재당선된 것은 부패한 구친위대의 종말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혁의 국면을 열었다. ‘민주적 조합을 위한 팀스터회’(Teamsters for Democratic Union: TDU)의 켄 패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깨끗하고 민주적인 조합이라는 기치를 내건 정치적 전투에서 승리했다. 호파는 우리의 강령을 채택하고 우리보다 더 잘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조합원의 참여와 동원으로부터 권력을 도출하는 새로운 종류의 조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둘러싼 전투에서는 아직 승리하지 못했다”
이것은 개혁운동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140명의 팀스터 활동가들이 지난 2월 디트로이트에서 모였을 ― AFL-CIO 내 최대조합인 팀스터의 개혁지도자 론 케리가 두번째 임기를 맞을 수 있게 했던 모임 ― 때 다루었던 주요한 주제였다. TDU가 소집했던 모임은 새로운 “깨끗하고 민주적인 조합”의 성공에 담겨진 약간의 모호함을 반영했다. 활동가들 중에는 몇 명의 인터내셔널 부의장, 일부 팀스터 간부, 상당수의 지역조합 간부와 다수의 평조합원들이 있었다. 조합의 모든 수준을 반영하는 이들은 “새로운 종류의 조합”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TDU 간부가 평조합원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TDU 전체는 케리나 국제조합간부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노조내부의 상이한 층 간의 긴장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 개혁운동 내부의 세 층의 대표자들이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한줄기 희망을 상징한다. 물론 TDU의 고위간부는 구친위대 팀스터 지도자들을 부자로 만들었던 중복급여와 연금을 제거하기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어쨌든 운동은 제도뿐만 아니라 사람도 변화시켰다.
그 모임의 다수가 표현했던 바와 같이, 팀스터 혁명의 동력에 의해 팀스터 노조는 15년간 광야에서 단호한 반대자 역할을 수행해 왔던 것에서, 5년간 개혁체제를 방어하고 구친위대를 물리치는 전선으로 갈 수 있었다.
이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었다 : “깨끗한” 미국식 경제조합주의라는 규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매우 실용적인 것부터 아주 환상적인 것까지 여러 가지 개념이 제출되었지만 한가지 주제가 회의 전체를 관통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의 핵심은 ‘조합원의 정보화와 활동화(an informed, activated membership)’였다. 이번 여름에 있을 수 있는 UPS파업의 승리, 미조직의 조직화 또는 보다 커다란 사회적 목적을 위한 광범위한 연합의 구성 등 무엇에 대해 말하든지 간에, 그 성공은 조합의 진정한 권력의 근원인, 수만명 노동자를 동원하는 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케리가 직무를 유지할 수 있게 한 1996년 선거에서는 1991년보다 더 많은 팀스터들이 투표했지만, 그것은 여전히 조합원의 34%였을 뿐이다. 게다가 케리는 그들 중 52%를 차지했다. 다수의 조합원들에게는 무관심과 혼란이 다른 조합들과 마찬가지로 팀스터 노조에서도 일상적인 모습이다. 케리의 교섭기록이 과거 지미 호파 시절이래 팀스터들이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낫지만 개혁된 조합은 모든 노동이 직면한 힘든 전투를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많은 조합원에게 변화는 영감을 주기에 너무나 아득한 것이다. 비록 케리가 교섭에서 수십년의 하강운동을 저지하고 심지어 역전시켰지만 그는 30년의 유산을 일소하거나 5년간 규제완화로 가해진 피해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팀스터 개혁이 직면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전체 노동운동이 직면한 것과 동일한 문제이다 : 기업권력, 국제경쟁과 보수적 정책의 지배에 맞서기 위한 조합과 운동은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가? AFL-CIO 최상층부에서의 변화가 갖는 한계가 보다 분명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위로부터의 압력

비록 팀스터와 일부 다른 조합들에서 간부진의 변화로 AFL-CIO에 대한 도전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New Voice’ 팀의 배후세력이 평조합원들의 반란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인과의 사슬은 보다 간접적이었고 대개 상층부 안에서 일어났다. 아마 무엇보다도 ‘New Voice’의 도전은 쇠퇴에 직면한 무력감에 대한 때늦은 대응이었을 것이다. 통합은 일부 조합의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제조업 부문에서 연이은 조합원 비율의 감소는 단체 교섭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고, 전면적인 쇠퇴는 노동의 정치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무엇 때문에 상층부에서 반란이 가능했는지 정확히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1992년과 1995년 캐터필라(Caterpillar)에서 UAW의 충격적인 후퇴와 패배는 확실히 일부 상층조직에 경종을 울렸다. 캐터필라는 버림받은 협동노선의 고전적 사례였다(스테일리, GM, 보잉, AT&T 등이 그랬던 것처럼). 캐터필라에는 1980년대 후반이래 UAW의 대표적인 협력모델이었다. 그러나 1991년 CAT는 자동차 산업의 오랜 관행을 분쇄할 “유연한”(lean) 양보요구 목록으로 UAW를 파업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을 조합은 단숨에 삼킬 수 없었다. 파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992년 CAT는 파업파괴자들을 데려오겠다고 위협했다. UAW는 1992년 4월 파업을 철회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국 최대의 조합들 중 하나가 심각한 후퇴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일부는 이것이 필요했다고 말했지만). 1994년 파업이 재개되었지만, 1995년 12월 철회되었다. 노동자들은 협약도 체결하지 못한 채 현장으로 되돌아갔으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작업속도의 가속화와 탄압의 악랄한 캠페인에 부딪히고 있다.
캐터필라는 ‘협동’의 실패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비조합 노동력의 증가를 허용한 것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다. 협력의 기간, 사측은 31개의 부품공장을 포함한 새로운 비조합 사업장에 수억 달러를 투자한 반면, 보다 오래된 조합계 작업장을 폐쇄했다. 조합은 이 새공장들을 조직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1991년 파업이 시작될 때까지 UAW 조합원은 CAT 전체 노동력의 약 25%뿐이었다. 비조합계 부품공장과, 조합계 조립공장의 파업파괴 노동력으로 인해, 회사측은 조합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물론 UAW가 1995년 12월 2차 파업을 끝냈을 때 ‘New Voice’ 팀은 이미 선출된 상태였다. 그러나 1991년 이후의 캐터필라의 무용담은 아무리 강력한 조합도 비조합원의 바다에서는 성공적으로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또다른 각성의 요인은 집권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동으로, 조직화된 노동에 대해 취한 정치적 봉쇄였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정치’, 즉 민주당이 언젠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보다 반세기 간의 미니-커클랜드 왕조를 안심시킨 것은 없었다. 조직할 수 없다고? 민주당으로부터 노동법 개혁을 구하자. 파업할 수 없다고? 우리의 자금이 풍부한 ‘친구들’을 통해 반파업파괴 법을 만들자. 이런 생각이 노동관료주의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떠나지 않은 반면, 그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클린턴이 집권한 이래로, 백악관 오찬 또는 만찬의 값이 크게 올랐지만 노동관료들의 메뉴는 기껏해야 묽은 죽이었다. 깅리치-그린스펀-클린턴의 삼각 긴축작전은 최근의 주목할만한 정치적 타격이었을 뿐이다.
조합업무의 영역에서처럼, 정치적 영역에서도 새로운 지도자들은 자신을 지지했던 한 부분이 미국 노동당을 건설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탈하는 것을 보았다. 석유, 화학, 원자력노동조합(OCAW)의 주도 아래 전기노동조합(UE), 국제항만․창고노동자조합(ILWU), 광원노동조합(UMW), 미국 정부공무원연맹(AFGE)이 합류한 소규모 조합들의 연합이 이 임무를 맡았다. 게다가 캘리포니아 간호사조합, 캘리포니아 목수조합과 수십 개의 주요 조합지부들이 이 노력을 승인했다. 1996년 6월 1,350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창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을 출범시켰다. 노동당이 가까운 미래에 선거에 도전하지는 않겠지만, 당 창건 자체만으로도 일부 조합들과 많은 노동자들이 AFL-CIO와 민주당의 거래를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다 의식있는 지도자들은 아래로부터의 변화와는 매우 다른 동기를 많이 갖고 있었다. 이것은 상층에 대한 도전의 이유가 되었음과 동시에 ‘New Voice’ 체제의 1년반 동안의 변화과정에 내재한 한계와 문제점도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스위니는 계속해서 노사 동반자관계를 호소하고 경쟁력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하면서, 그는 “우리는 생산성, 품질과 경쟁력이 우리의 일이 아닌 체하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경영측이 제시한 오늘의 의제에 대해 이런식으로 수용하는 것은 그가 과거에 때때로 호소했던 “기업의 탐욕에 대해 십자군이 되자”는 주장과 확실히 모순된다.
새로운 지도자들이 “미국은 임금인상을 필요로 한다”고 올바르게 주장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야만적 현장체제와 조합민주주의에 있다. 이 두 가지 미해결 문제의 중요성은 그것이 표면 바로 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분자적 변화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들은 또한 스위니 팀이 노동에 대해 설정한 중심적 목표가 대면하고 있는 장벽을 의미한다 : 대대적인 조직화의 확장. 먼저, 의료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산업까지 노동조건을 무시하는 조합들이 제대로 일을 할지는 의심스럽다. 유연생산, 구조조정, 임시고용과 노동력의 성적/인종적 재구성의 시대에 경제적 이슈만으로 조합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AFL-CIO 지도자들이 말하는 종류의 계기를 창출할 것같지 않다. 인원감축에 대한 포괄적인 비난을 뛰어넘는 이 결정적 이슈들에 대해서 ‘New Voice’ 팀이나 나머지 노동관료주의의 많은 부분들에서 기대할 것은 매우 적다.
다소 미묘하지만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조합민주주의와 대중조직화 간의 관계이다. 노동운동이 다시 성장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규모로 조직화하는 것이 직업적 조직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항상 1930년대 그랬던 것처럼, 또 1960년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조합에 가입했을 때처럼,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문제였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새로운 AFL-CIO 지도부를 위해 진행한(그러나 발표되지 않은)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평조합원들이 프로들보다 더 나은 조직가들이다. 연구에 따르면 보통 조합원들에 의해 수행된 조직화 캠페인의 73%에서 대표 선출을 성취했지만, 직업적 조직가들에 의해 조직된 것은 겨우 27%였다. 이것은 심지어 1년에 3,000만 달러를 써서 주로 학생출신인 젊은이 수백명을 OI를 통해 운영하는 것도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하여 자원의 일부를 조합원을 동원하는 데에 돌리는 것만큼이나 효과가 없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팀스터들은 구친위대 시절에 성장했던 수많은 비조합계 화물회사들 중 하나인 비조합계 오버나이트운송(Overnite Transportation)의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이용해 왔다. 시간제 ‘국제 조직가’의 소부대를 이용하여 오버나이트를 조직하려던 구친위대의 시도가 실패했던 반면, 케리의 평조합원 이용은 효과가 있었다. 이제 케리는 조합원들에게 자발적인 “1만명의 조합원 조직가 부대”를 키우자고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개혁하고 있는 팀스터 조합에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 민주주의, 조합원 통제, 지도부의 책임제가 질식된 조합들이 지속적인 동원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비록 AFL-CIO가 조합원 조직가들로 실험을 하고 있고 여러 조합들이 어느 정도 이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대중동원 실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조합내부의 체제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조직의 목표, 전략, 전술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은 별로 없는 자유시간을 다른 사람을 조직하는 데 투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물론 조합들은 심지어 민주주의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곳에서도 특정한 행사나 행동을 위해 조합원들을 동원할 수 있으며 또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동원을 되풀이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행동뿐만 아니라 결정과정에 평조합원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동원은 수도꼭지처럼 틀었다 막았다 할 수 없고, 지휘부에서의 원격조정으로 수행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은 자주 조합주의의 ‘서비스모델’ 대 ‘조직화모델’ 간의 논쟁으로 특징지워진다. ‘서비스모델’은 고전적인 미국식 경제조합 관행, 즉 조합의 일에 조합원의 참여를 요구하지(또는 원하지) 않고서도 조합원을 위해 교섭하고 (잘 또는 잘못)대표하는 관행이다. 그것은 수동적 형태의 조합주의로서, 미국노동자들의 수동성에 대해 많은 책임이 있다. ‘조직화 모델’은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라고 암시적으로 호소한다. 이 접근법을 주장하면서, 마이클 아이젠셔(Michael Eisenscher)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연대를 세우기 위한, 책임제를 수립하기 위한, 그리고 적절한 전략을 결정하기 위한 도구이다 ― 이 모든 것은 노동자와 조합의 이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이다.” 뉴욕 교통공사의 운송노동조합 100지부의 개혁가들이 표현하듯이, 조합 지도부나 고용주 모두와의 관계에서 “민주주의는 힘이다.”
그러나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관행은 조직화모델과 서비스모델의 잡종으로, 급진적 동원기술을 이용하여 새 조합원을 모집하지만 일단 협약을 성취하면 서비스 모델 조합주의에 빠지게 된다. 스위니의 SEIU는 이런 잡종의 전형이다 : 조직화에서는 전술적으로 급진적이지만, 활동은 간부중심이고 위계적이다. 스위니 자신은 민주주의에 대해 거의 식민주의적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취임하기 직전 ꡔ월스트리트 저널ꡕ에 마치 그가 운동의 최고지위에 오른 날 조합들이 생겨난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합민주주의와 평조합원 참여에 매우 관심이 크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밤 사이에 이루어질 수 없다.”
‘New Voice’ 팀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기껏해야 모호한 기록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내부 민주주의에 대한 스위니의 개인적인 참여는 전적으로 부정적이다. 악명 높게 하향식이고 부패한 SEIU 32B/32J 지부의 집행위원으로서, 그는 의견을 달리하는 조합 개혁가들에 대한 사냥을 지지했다. 다문화 동맹이 주로 백인계인 구친위대를 패배시킨 후 전국조합이 399지부를 위탁관리 하에 두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SEIU 의장이었다.
트럼카의 경우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광부회’(Miners for Democracy)출신인데, 이 조직은 1971년 UMWA의 구친위대를 패배시킨 평조합원 개혁그룹이다. 그가 지도한 UMWA는 전투성과 동원의 귀중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AFL-CIO 내부에서 최초의 일부 반란자들은 그를 의장 후보로 밀었다. 그러나 트럼카는 UMWA를 수많은 노사협력의 구조로 이끌었다. 차베스 톰슨의 지방공무원 조합은 SEIU나 UMWA처럼 위험을 무릅쓰지도 않았고 아주 민주적이지도 않다.
한편 스위니와 많은 다른 노동지도자들의 조합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 그리고 노사협력에 대한 지속적인 관련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고용주들을 길들이려는 그들 자신의 의도와 불일치하고 있다. 이 목적을 수행할 능력은 지속적인 대중동원에서 나와야 하지만, 노동 위계질서의 최상층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은 심각하다.
하지만 노동대중에 대한 압력과 동시에 노동운동의 여러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관리자들의 통제를 뛰어넘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팀스터 노조와 같은 전략적 조합이 정말로 수천명의 조합원 조직가 부대를 풀어놓는다면, 그것의 파급력은 확실히 클 것이다. 만약 많은 조합들의 반란이 하부로 계속 침투하고 새로운 조합원들이 높은 기대를 갖고 다수 가입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새로운 사회운동과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이 등장할 것이다. 한/노/정/연


번역 : 원영수 / 정세분석실 연구원

1997-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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