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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을 이루지 못한 한국의 노동자 분석

현장에서 미래를  제3호
강수돌

연 ◦구 ◦ 논 ◦ 문

‘계급’을 이루지 못한 한국의 노동자 분석
서평 : 김동춘 지음 ꡔ한국사회 노동자 연구ꡕ


강 수 돌 (서울대 경영학과 강사)


“왜 한국사회에서 1987년 이후에도 기업별 노조체제가 재생산되나” “왜 한국의 조직노동자는 여전히 ‘계급’은커녕 ‘얍력집단’ 정도의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나”라는 안타까운 물음에 대한 바른 답을 찾고자 저자가 몇 년간 연구한 결과가 이 한 권의 책이다.
저자는 위 연구과제를 풀기 위해 대규모 중공업 공장의 노조와 노동자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통계자료, 공식·비공식 기록물 등을 면밀히 분석함과 동시에 독자적으로 설계한 설문조사와 살아 있는 면담을 위해 ‘맨발로’ 뛰어다녔다. 이렇게 연구한 결과,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업장에 ‘갇힌’ 노조
첫째, 87년 이후 노동자들의 활발한 쟁의나 강한 저항은 그 영향력의 면에서 불리한 정책과 법을 저지하는 방어 측면에서는 일정한 성공을 거뒀으나, 자신이 원하는 새 정책을 관철시키는 공세 측면에서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즉 사업장 단위의 영향력은 상당히 증대했지만 거시적으로는 ‘대투쟁’ 이전이나 이후나 별 변함이 없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낮은 조직율에 기인하기도 하나, 분산적 단위노조만을 유일한 이익대표 창구로 하는 관행, 국가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노조 배제 등에도 기인한다.
둘째, 한국노동운동의 ‘전환점’이라 할 87년 ‘대투쟁’조차도 기존의 정치적 지배질서의 변화를 통해 그 정치·사회적 권익을 향상시킨 것이 아니라, 단위노조의 활동공간 및 교섭력 확보를 통해 불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했기에, 그 폭발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는 ‘첫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다.
셋째, 한국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동료와 노조에 대해 높은 연대지향성을 가지나 다른 편에서는 회사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이중 충성’을 보인다.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이나 법적 보호장치가 거의 없어 ‘저항비용’이 높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이 ‘시장 순응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다시 기업별 노조체제를 지탱시키는 바탕이다. 결국 노조 내부의 역학과 활동노선상, 기업별 노조활동의 반복적 재생산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정치적·제도적 제약과 더불어 이런 조건을 수용하는 노조 내 행위 주체들의 ‘대응과정이 매개’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대중동원’만을 앞세운 ‘전투적 저항’만으로는 극복되지 않고, 밑으로부터의 연대에 기반을 둔 정치조직화 시도에 의해서만 극복 가능하다. 그러한 연대를 위해서도 그 ‘희생비용’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방안, 예컨대 ‘중앙집중적’ 산별조직의 건설이나 사회정치 개혁, 사회보장의 실현이 필요하다.
이 연구는 몇 가지 점에서 강점이 있다. 우선 방법론적으로 “구조적 조건의 변화와 주체적 대응과정이 어떻게 결합되고 있으며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를 동태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론이 가지는 강점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계급형성’이 차단 내지 지연되는 이유를 단순히 ‘외적인 억압’이나 ‘의식의 미성숙’으로 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것을 ‘낳는’ 사회적·정치적 힘관계 및 그 산물인 여러 제도 및 조직, 노동자 행동방식을 통합적으로 밝힐 수 있는 데에 있다. 둘째로 1987년 ‘대투쟁’을 한국 노사관계의 전환점으로 보면서도 그것이 지닌 ‘내적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 보고자 시도했다. 끝으로 ‘왜 노동자나 노조의 행동반경이 기업체제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를 추적함으로써 산별조직이나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점은 이 연구의 가장 큰 성과라 생각된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이 연구의 원래 문제의식이 제대로 해결되기 위해서라도 다음 몇 가지가 더 해명되어야 한다.

우려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

첫째, “특정국가의 노조운동은 개별 노조의 집합으로서만 존재한다”(50쪽)라든지 “전국차원 노조의 파편화된 조직 형태 및 조직적 취약성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 구성인자인 개별 노조의 행동에 주목한다”(285쪽)라는 것은 ‘부분의 합=전체’라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닐까? 예컨대 기업별 노조체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은 사실상 해방 직후의 ‘인민위원회’나 ‘전평’이 각개격파되고, 이후 반공주의·군사주의가 국가주도적 경제를 이끌면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이 이 ‘방법론적 개인주의’에서는 포착되지 못한다.
둘째, 노동자의 ‘계급형성’을 산별노조나 정당, 정치권력 장악, 법개정 등 ‘제도’로 환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차라리 노동자의 ‘계급형성’이란 노동자가 ‘삶의 외적 규정’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구상과 실천에 의해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동태적 과정’ 속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다음의 비유에서도 나타난다. 즉 ‘첫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은 유추는 결정론적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설사 ‘첫단추’를 잘못 끼웠더라도 ‘다시 단추를 새로이 끼울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새옷으로 갈아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자의 행위가 ‘제도적 제약’ 속에서만 갇혀 온 점이 상대적으로 강조됨으로써, 주어진 제약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며 그 벽을 뚫고 나온 ‘생동적인 모습’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87년 이후 가속화되는 자동화, 유연화, 외부 하청화, 내부하청화(소사장제), 신경영전략, 능력주의 인사제도, 팀조직 등이 어떻게 관철되며, 노조는 어떻게 대응하나, 이에 대해 자본은 다시 어떤 맞대응을 하고 있는가가 ‘동태적으로’ 분석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저자는 사회보장제도나 산별노조와 같은 중앙집중적 조직이 건설되면 ‘저항비용’이 낮아지므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독일이나 스웨덴에서는 사회보장제가 상대적으로 탄탄하고 중앙집중적 노조가 있는 데도 생산현장과 체제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정치적 투쟁’이 격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노/정/연

1995-09-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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