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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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보험 통합안이 보여주는 한국 복지제도의 딜레마
 논단

현장에서 미래를  제124호
이진사

‘4대보험 통합안’이 보여주는 한국 복지제도의 딜레마

이진사 / 포럼 ‘사회복지와 노동’


들어가며: 우리 안의 딜레마

최근 도출된 4대보험 통합안에 대해 우리(포럼 ‘사회복지와 노동’)는 쉽게 찬성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통합안에 있어 구체적으로 확정된 안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바로 통합을 이야기하는 세력의 논점이 우리와 다르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왜 쉽게 반대한다고도 밝히지 못하는가? 그것은 실질적 사회보장을 위해서는 현재의 분리된 보험체계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는 우리의 대안이 확실히 설정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음은 사실이다.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못하는…

한국 사회복지제도의 핵심을 가를 대부분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4대 보험제도는 형식적으로 전 국민에게 적용되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기존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면서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정부’, 경제적으로는 IMF 외환위기 이후 모든 제도가 기본적인 틀을 갖췄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에는 복지제도에 있어 보다 구체적인 방법들-EITC(근로소득보전제도), 노인수발보험-이 논의되고 있으며, ‘참여 정부’는 각종의 저출산·고령화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새로마지플랜2010’,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 ‘비젼2030’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제시된 모든 정책이 아귀를 맞춰 시행된다면, 그 목적하는 바의 사회적 가치가 공유된다면, 사회안전망 이상의 사회정책적 구성을 완료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정책들을 접하고도 공허하다. ‘이건 아닌데...’ 라는 중얼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정책자료집의 구체적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근본을 짚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대안·해결책으로서의 정책이 아니라, 문제를 끄집어내고 이슈화하는 데에만 주목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다. 대안의 모색 속에는 항상 재원의 투입 효과에 대한 기대감과 재원 마련의 곤란함이 복합적으로 숨어 있고, 대안 제시의 결과는 항상 보수언론의 ‘세금폭탄’ 공격에 따른 비참과 허무였다.
그런데 대안의 모색 중 재원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하나 나타났다. 이건 대박이다. 보수언론도 신이 났다. 모두가 좋아한단다. 그런데 이 대안 역시 문제제기의 수준에 머물고,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답답함은 계속된다.
이 글은 지난 번 <현장에서미래를> 123호에서의 「'4대 사회보험의 부과징수 권한 국세청 이관' 논란에 부쳐」에 이어, 4대 보험 통합 논의 속의 정책 관점을 짚어보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보험 부과·징수 권한 이관 논의의 한계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부과징수통합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것은 지난 글 ‘'4대 사회보험의 부과징수 권한 국세청 이관' 논란에 부쳐’(현장에서 미래를, 123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4대 보험 통합’은 최근의 맥락을 집어볼 때 장기적 관점에서 통합논의로 진행될 것을 예상하여 사용하는 표현이며, ‘4대 보험 부과·징수 권한 국세청 이관’은 현재 제시된 안에 대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한국 사회복지의 현실-누가 통합을 이야기하는가?

4대 사회보험의 통합 논의는 이미 1998년부터 계속되었다. 4대보험 통합 논의의 진행 과정은 복지제공의 목표와 운영체계에 대한 전반적 논의로 그 속에서 다양한 분파의 입장이 투영되어 왔다. 따라서 통합논의를 지지하거나 통합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세력의 복지에 대한 관점을 정리함으로써 왜 현 시점에서 통합논의가 대두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복지제도가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 기능한다는 신-맑스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설명은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발달에 대한 신-맑스주의적 설명이 설득력이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 때문이다.

1)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 사회권적 접근 - 국가복지의 확대 찬성

모든 개인은 개인의 사회적 필요를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복지의 제공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복지정책에 있어 시장기능을 우선시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데, 예컨대 “새로운 빈곤정책이 노동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복지정책(Welfare to Work)의 연장선상에 있어 사회적 통합과 연대라는 복지이념에 미흡하다”와 같은 의견 표명이 그것이다.

2) 시장왜곡에 따른 문제 해결- 최소한의 복지제공 찬성

이 관점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통해 개인의 필요가 충족되어야 하나, 시장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거나 또는 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개인에 대해 복지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온정주의라 할 수 있는 이 관점은 대체로 노인·장애인·여성·소년소녀가장의 복지향상을 위한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실업자와 빈곤층을 위한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지지를 보인다.

3) 모든 사회적 위험에 대한 책임은 개인- 개인이 문제 해결- 복지확대 반대

이 관점은 “시장에서의 자율적 활동이 빈곤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는 경제적 개인주의이다. 이 관점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빈곤문제를 개인의 자율성과 노동윤리 등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자율적 노동과 근검절약이 빈곤문제를 해결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정부가 빈곤층에게 복지혜택을 확대한다면, 이들의 노동능력이 상실되는 복지병이 나타나고 예산적자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며 경제성장에 기초한 분배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며, 기업경영과 국가재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국가의 개입과 공공복지제도의 확대를 더욱 강경하게 반대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복지관점은 위의 세 가지 구분 이 구분은 상당히 임의적이다.
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제도의 모색은 위 세 가지 복지관점의 상호대립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복지 확대 과정에서 ‘최소한의 복지제공’ 또는 ‘복지제도에 반대’ 세력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수용가능한 엉성한 복지체계를 구상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4대 보험체계가 개별적으로 도입·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불가피한 것이었으나, 그것이 여전히 분리되어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양하다. 복지확대가 이뤄졌던 과정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면서 그 이유를 집어보도록 하자.

복지확대 찬성자들은 일단 복지제도의 부재로 인해 복지에 대한 관점이 미정립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다양한 혜택을 경험하게 될 때 그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며, 복지제도의 확장 도입에 있어 엘리트·행정관료의 적극적 노력을 통해 다수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복지제도의 도입을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이들은 제도의 확대가 필수적이며, 제도의 세부적 내용에 대해서는 제도 도입에 따른 일반인들의 반응양상을 보고 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제도가 도입되고 그에 따른 수혜자가 늘어나면, 제도에 대한 순응이 늘어나고, 제도의 외연확장 과정에서 실질적 내용의 보완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도의 실질적 보완은 제도를 지탱하는 인프라(조세인프라·복지제도에 대한 지지)와 행정능력의 보완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여전히 분리되어 있는 보험체계의 존재에 대한 근거로 실질적 제도 보완 중이라는 것이다.

복지관점의 혼합을 통해 제도의 도입 및 확장·확대의 성공적 수행은 복지확대 찬성자들의 성과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복지확대를 가져오면서 제대로 집어내지 못했던 문제가 제도 도입 이후 대두되고, 따라서 제도의 실질적 보완의 필요가 발생한다. 4대 보험에 국한시켜 본다면, 제도 보완의 목표는 사각지대의 해소와 장기적 재정안정, 그리고 공단인력의 효율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 보완의 목표 달성을 위한 현실적 필요는 ‘국세청: EITC 집행운영 인력 요청, 건강보험공단: 노인수발보험제도 도입에 따른 인력 필요, 국민연금관리공단: 연금수급자 본격증가에 따른 급여인력 필요’이며 이 부분에서 98년의 복지통합에 대한 논의는 현 논의의 1차적인 시발이었으나, 본 글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시의 논의가 훨씬 ‘세련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것은 당시의 광범위한 토론 등..등이 복지관점의 대립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실질적 내용의 수반은 ‘부과·징수 권한의 국세청 산하 공단의 위임’ 형태로, 그 목적은 ‘보다 적실한 보장체계의 구축’으로 포장된다. 이것은 복지확대 과정에서 복지 반대자들의 양보가 실질적 패배가 아닌 일시적 침묵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복지확대 과정에서 복지이데올로기의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제도 확대에만 골몰했던 결과의 도출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금 복지확대 과정에서 복지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무엇인가? 앞서의 복지관점을 4대보험 통합논의와 연결하여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의 성립과 연관시켜 설명해보고자 한다.

복지의 딜레마: 생산성과 효율성

복지제도에 대한 좌파의 입장은 복지제도가 사회의 순반응을 이끌어내어 궁극적으로 경제 및 복지의 호성장을 이끌어낸다고 믿는다. 이 한 문장으로 좌파의 입장을 정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분히 복지제도의 불필요에 주장에 대한 반정립으로, 복지제도의 한계를 주장하는 이들의 증거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여, 복지제도의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저축률·경제성장률에 대한 복지지출의 영향력을 분석하여 복지제공이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복지 측면에서는 ‘학습효과 사회보험의 제공을 통해 개인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여, 개인 스스로 자신의 위험에 대비할 필요를 느끼게 만든다고 보는 관점.
’를 통해 공공복지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시장왜곡의 비용을 최소화시킨다고 본다.

복지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 이들은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수행하는 복지제도가 존재함으로써, 역동적 노동시장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경제구조조정과 같은 구조적 경제환경 변화에 인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또는 하고 싶어 한다).
얼마만큼의 비용을 투입했으니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효과를 얻어야 한다는 효율성의 측면은 단순히 사회복지 행정에서의 운영효율성을 떠나서, 사회복지 정책의 목표효율성까지 그 수준을 확대할 수 있는데, 최근의 복지확대 과정에서 효율성의 맥락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아울러, 노인수발보험, 근로장려세제(EITC), 주택바우처 등 새로운 복지프로그램 도입과 사회서비스 확충을 통해 사회안전망이 더욱 탄탄해집니다. 이와 함께, 공적연금제도 개혁을 통해 재정이 안정화되고 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효율화와 복지프로그램의 근로연계가 강화되어 복지제도의 효율성이 제고됩니다.”(비전2030 Q&A)

중요한 것은 효율성의 극대화, 또는 그 목표 추구의 궁극의 지점은 복지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결과와 투입 관점에서 본다면 투입의 최소화·0의 투입을 이뤄야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며, 이것은 복지제도의 철폐로 연결될 것이다. 따라서 효율성에 대한 공격은 2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투입값을 최소화하라는 주장으로, 이들은 주로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문제에서 접근한다. 즉, 복지제도가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함으로써 가장 확실하게 자기 자신의 위험을 판단하고 있는 개인의 합리적이며, 매우 효율적인 선택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결과값에 대한 공격으로 복지제도의 개입이 실질적으로 부의 확대나 빈곤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복지제도의 생산성·효율성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이며, 논리적 증거의 기반이 달라 우위를 판단하기 힘들다. 이런 논쟁지점, 복지의 생산성·효율성 논쟁은 복지확대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뤘어야 하는데, 이것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복지확대론자의 정치적 압도에 의해 복지확대가 이뤄졌고, 그에 대한 반발(또는 확대론자들의 자발적 보상?)로 미시적 수준에서 복지제도의 효율성-관리운영의 효율성-논쟁이 대두된 것이, 현 ‘4대 보험 부과·징수 통합’ 논의에서 ‘보험행정의 효율화, 사업장의 편의 도모’라 할 수 있다. 보험행정의 비효율에 대한 언론의 득달같은 호들갑이 이를 대변한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4대보험 부과징수 일원화의 논의의 시작은 복지반대주의자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복지확대와 찬성에 주목했던 사람들이 ‘미리 또는 알아서’ 선수를 친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하자면, 복지확대 과정에서의 복지관점의 대립에서 복지반대자들의 입장이 적었다면 복지확대라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 복지반대자들의 입장이 대변되며, 동시에 복지확대 찬성자들 역시 그들이 무리하게 또는 배제한 채 논의하였던 복지논의의 재정립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이상적 제도의 모색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이상적 복지제도를 모색하는 것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동인에서부터 포럼으로 변화하기까지 ‘사회복지와 노동’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복지를 고민해왔음은 사실이다. 복지국가 발달을 설명하는데 있어 다양한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 없이 복지제도라는 것 자체는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임에 틀림없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때문에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잠시 미뤄두고, 실용주의적 개입전략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우리 역시 복지확대론자의 입장에 서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단 제시되는 가장 이상적인 복지제도는 어떠한 형태일까? 먼저 가능한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완벽한 노동시장이 전제가 된다. 이것은 시장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 아니라, 재원의 분배정의 및 재원조달에 필요한 기본적 전제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급여의 형태를 고민할 수 있는데, 1) 기여와 급여의 연계를 느슨하게 하고, 가능한 포괄적 급여를 제공하는 체계 2) 능력에 따른 기여 및 기여에 따른 급여 3) 능력에 따른 기여 및 필요에 따른 급여의 형태를 모색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가능한 모든 사람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그의 능력에 따라 기여하여, 복지의 제공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그를 분배정의에 맞게 분배하되, 가능한 필요에 따른 급여를 실시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 사회복지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다. 여기서 ‘4대보험 부과·징수 일원화’ 논의에 있어, 핵심을 가르는 또 다른 주제-‘사각지대의 해소’를 꺼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복지제도의 확대 과정에서 ‘제도의 실질적 내용 보완’의 과제로 남겨놓은 것이며, 동시에 제도확대 과정에서 생산성·효율성의 논쟁 지점을 정확히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따른 과제다.

사회보험제도에 대하여: 이상적 사회보험제도의 모색? 원칙적 불가!

사회복지의 제공은 베버리지형 방식과 비스마르크형 방식으로 크게 구분된다. 전자가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대체로 정액의 보험료 또는 일반재원을 통해 선별적 급여를 제공하는데 반해, 후자는 보험방식으로 개인이 기여를 하고 그 기여를 통해 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4대 보험 통합 논의’ 속에서 보험행정의 효율화 논의를 위에서 간략히 언급하였다. 지금부터는 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고자 한다. 통합논의 속에서 특징적인 것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제도의 실질적 보완을 통해 사각지대가 해소될 수 있는 것처럼 논의한다는 것이다. 사각지대의 정확한 개념적 정의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들은 적용의 사각지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적용의 사각지대는 제도가 적용되지 않거나 제도가 적용되더라도 체납 또는 납부예외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급여의 사각지대는 제도의 미적용·보험료 미납·(국민연금의)필요가입기간의 부족 등으로 인해 급여시점에서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각지대를 논의하는 틀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심지어 어떻게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것인지마저 모호하다.
국민연금은 46%, 산재보험은 54%, 고용보험은 63%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사각지대를 구성하고 있음, 국민연금 가입대상자 중 27.9%가 납부예외자(04), 건강보험(06년 6월 현재) 지역가입자의 23.7%가 3개월 이상 체납으로 급여수급의 제한을 받고 있어 급여의 사각지대를 구성하고 있음(‘사회보험제도의 관리운영체계(적용·징수) 개편: 원칙과 방향’, 참여연대)

자발적 배제에 따른 사각지대 논의를 제외하고라도 과연 보험행정의 효율성을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혹시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완벽한 시장을 가정하고, 거기에서 보험가입자의 회피와 기피를 통한 기여금 미납의 문제를 해결하면 사각지대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적어도 국민연금의 경우, ‘적용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목적이 결코 ‘급여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방식의 특성과 한계: 기여와 급여의 연계, 그리고 사각지대

사회보험은 소득에 따른 기여와 기여에 따른 급여를 운영의 특징으로 한다. 기여에 따른 급여는 기여와 급여의 느슨한 연계(기여만 있다면 급여의 제공/급여내에 차등이 없음: 건강보험, 산재보험)와 긴밀한 연계(기여에 따른 급여의 지급:고용보험(실업급여),국민연금)로 구분된다. 건강보험제도의 경우 급여가 현물서비스로 이뤄지며, 급여의 양은 정확히 계량하기 힘들다. 따라서 건강보험제도의 운영은 건강보험의 자격과 보험료 징수를 담당하는 건강보험공단과 급여심사를 실시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편 건강보험은 기여(보험료)와 급여(보험금)의 연계가 느슨한 방식으로 제공된다.
산재보험제도의 경우 원칙적으로 ‘산재사고 발생에 따른 사용주의 책임’을 면책하기 위한 제도로서 기여의 의무는 전적으로 사용주에게 있고, 사업의 사고발생률에 따라 기여율이 다르다. 면책의 기능으로 본다면 수급자는 사용주가 될 것이나, 실제 급여수급자는 피용자가 된다.
국민연금은 기여와 급여의 긴밀한 연계체계이다. 국민연금의 경우(또는 고용보험 중 실업급여)와 같은 현금서비스의 경우 기여와 급여는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보험재정 특성상 수입과 지출의 총량을 맞춰야 하는 필요와 더불어 퇴직 또는 실업과 같은 사회적 위험은 과거소득의 상실을 의미하고, 이와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과거소득의 보장(생활능력의 보장)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보험방식의 한계는 급여의 사각지대의 발생과 역진적 분배의 문제다. 보험방식은 기여한 자에게만 혜택을 주게 되므로, 기여하지 않거나 못한 자에게는 급여혜택이 주어질 수 없다. 따라서 장기·정규근로자와 고소득자가 상대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충분하고, 반대의 경우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급여혜택의 유·무 측면에서 본다면 고소득자가 오히려 혜택을 받는 역진적 분배의 문제가 발생한다.
보험의 가입자격은 원칙적으로 소득활동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나, 각 보험이 목적하는 바에 따라 전국민을 가입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4대보험의 사각지대에 대한 논의는 복잡한데, 제도의 미적용(적용사업장/미적용사업장/사업장근로자 아님)에 따른 사각지대와 기여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급여가 발생하지 않는 사각지대로 구분할 수 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국민연금의 가입대상자(18세 이상 60세 미만)로서 최소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하여 향후 연금수급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자로 정의된다. 이것은 특정 시점에서 적용의 사각지대에 있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급여를 수급하느냐 못하느냐를 중요하게 봄을 의미한다.
고용·산재보험은 사업장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미적용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 또는 적용사업장임에도 가입이 안되어 있는 근로자가 사각지대에 해당한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이 없더라도 자산 등에 따라 보험료가 부과되며, 피부양자로서 보험자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기여를 한다면 건강보험에는 사각지대가 없다.
대체로 적용의 사각지대와 급여의 사각지대가 일치하나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산재보험가입사업장에 근무하였다가 산재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산재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에 따라 급여를 못받는 경우, 국민연금에 가입하였으나 가입기간 부족으로 인해 노령연금을 수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험방식은 제도의 설계 상 사각지대를 필수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사회보험제도는 보험료의 투입(비용) 대비 급여(효과)의 선형적 관계를 구상하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적절한 것이나, 보편적 복지의 제공 또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급여 제공이라는 복지찬성의 입장에서 볼 때 한계를 도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지찬성자들의 입장에서 사각지대의 잔존을 ‘제도의 한계’로 치부하게 될 경우, 그들의 기반을 형해화하기 때문에 가능한 철저한 보험료 징수를 통한 급여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이것은 다시금 소득파악을 철저히 하여 ‘소득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정의 실현과 ‘급여 제공을 위해서는 기여해야 한다’는 무임승차 방지 논리의 혼합을 통한, 초점 흐리기로 변화한다.

보험방식의 전제: 소득파악 인프라

소득파악의 필요성은 ‘급여를 제공하기 위한 전제’로서 기여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보험방식의 경우 소득파악은 생각건대 불필요한 논쟁이다. 기여한 자에 대해서 급여를 주고, 그의 기여가 급여와 긴밀히 연계된다면 소득파악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득파악은 ‘보편적 급여 제공’의 목적 달성과 보험제도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소득이 있는데 기여를 회피한다’, ‘각 공단이 소득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논리는 보험방식의 태생적 한계를 무시하고, 보다 철저한 소득파악을 통해 기여를 늘리고 이를 통한 급여를 제공하겠다는 목적 하에 전개된다. 한편 ‘소득파악의 한계’는 현재의 불안정한 소득파악 시스템 위에 기반하는 제도 내에서 가입자의·가입자간 불평과 불만을 폭발시키는 데에도 또 잠재우는 데에도 최고의 도구로 기능한다 ‘유리지갑이 봉이냐?’는 비판의 근거도 ‘소득파악이 안되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논리도 동일한 기반에서 시작한다.
. ‘국세청을 통한 소득파악’이 갖는 파쇼적 전투성의 한계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급여를 포기하고, 기여를 회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득파악’의 한계가 예견되는 것은 제도의 한계를 행정의 효율로 극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보험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보험방식이 아닌 제도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98년 시점에서 논의되었던 영국의 NHS와 같은 보편적 의료서비스, 기초연금과 같은 보편적 노후소득보장체계는 제도의 시대적 한계가 분명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충분히 모색하고 검토해볼만한 형태의 제도였음은 사실이다. 이것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제도 확대 과정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채, 논리적 우위가 아닌 정치적 압도에 따라 제도확대가 이뤄지면서, 논리적 실증을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두에 이야기하였던 문제의 대안으로서의 정책이 아닌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에 급급한 현실이었다.

정리하며

‘4대보험 부과·징수 일원화’의 실익이 있느냐 없느냐를 이 글을 빌려서 정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이미 이전 글에서 논의되었으며, 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효율성 측면에서의 접근은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이 논의가 이렇게 대두되었으며, 그 정치적 맥락을 집어보는 것이 이 글의 목표였다.
복지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의 해묵은 갈등이 오랜 기간 묵혀있었다. 그러나 최근 또다른 복지확대-EITC, 국민연금 본격적인 급여지급 시작, 노인요양보험 도입-의 필요성은 복지제도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사전 정지를 필요로 하였고, 이를 위한 복지찬성자들의 선제공격이 ‘4대보험 부과·징수 일원화 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 이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바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사전 정지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글을 정리하면서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과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복지정책의 확대를 위한 조세인프라 구축의 정당성 확보·보험행정의 효율화 추구가 지금 시점에서 ‘부과·징수 체계’의 개편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질문은 기초연금의 도입·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국고지원의 한계 도출과 같은 현실적 속에서 사회보험 방식에 지원되는 국고의 규모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능한 정확한 소득파악을 통해 추후 지원될 재정의 규모를 축소하려는 전략이 아닌 재정의 규모를 확대하는 전략의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둘째, 왜 우리는 이 시점에서 난감해 하는가이다.
‘수단으로서의 효율은 평등을 추구하는 여러 정책 가운데 어느 것이 보다 적은 자원으로 보다 큰 평등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일 뿐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정책을 보지 못하고 수단에만 착목하고 있다. 효율은 수단이지 정책이 되지 못한다. 개혁과정에서 과제 선점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이런 문제를 가져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혼란이 우리를 난감하게 하는 것이다.

2006-11-02 23: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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