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좌파 정치의 가능성: 사회적 공화주의
안효상 / 희망사회당 정책위원회
지난 십 년은 여러 면에서 ‘잃어버린 십 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과 여름에 시작된 민주화는 일부 기본권과 정치
과정을 제도화하는 데 그쳤고 (아니 형식적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적 자유의 진전은 자본이 막강한 힘을 가지는 데 더 많이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 운동의 시민권 획득은 곧바로
제도화 속에서 진보적 동력의 상실을 가져왔다. 냉전 종식 이후
부분적인 남북 관계의 진전은 지연된 과제인 ‘정상적인 국민
국가’의 건설이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양 체제의 고착이라는
경향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좌파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미래 전망을 내놓지 못하면서 게토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사회당의 이른바 노선 변화가 좌파 내에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미리 이야기할 것은 이른바 노선 변화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노선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노선 변화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이전에 명료하게 정립되어 있는 노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지난 십 년 사이에 우리에게 노선이
있었는가라는 지점에서 출발하고자 하기 때문에 노선
변화라기보다는 노선 정립이라는 말이, 굳이 하자면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를 포함해서 한국의
좌파가 (낡은 표현이긴 하지만 쓰자면) 최대 강령에 기초한 태도
표명은 한 적이 있어도 정치 세력으로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표명한 적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적절한 이해
속에서 그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적인 정치 세력으로
스스로를 정립하려는 노력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과
시도가 ‘최대 강령적’ 지향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론적, 윤리적 해명 또한 필요할 것이다.
해방과 부재
한반도가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것만큼이나 변화가 가장 늦게
도착하는 곳이기도 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이런 점은 1989-91년의 역사적 사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있던 시점에서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정치 세력의 등장은 한편으로
해묵은 숙제의 제출이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효 만료된
것이었고 따라서 시대착오적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착오성은 한반도의 비동시대성에 포획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역사적 사회주의의 붕괴는 해방의 경험이었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준거점의 붕괴였고,
따라서 사상의 자유를 열어젖혔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체제로 자리 잡은 사회주의는 지구상의 모든 혁명 운동의
준거점이었다(그것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말이다). 특히 53년
체제 속에 살았던 우리에게 한반도 북쪽의 체제는 더욱 강력한
준거점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1970년대가
지나면서 역사적 사회주의의 난점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드러났다. 이 난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점이긴 하지만,
추상적인 수준에서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회의 보편적인 규준의 과잉이거나 과소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구성자인 화폐를 대신하려는 시도가 경우에 따라 노동자
계급, 당, 수령 등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체로
비효율적이었으며, 경우에 따라 억압적이거나 희화적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계속되는 한 때로는 희망으로 때로는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1989-91년에 그 난점이 붕괴라는 방식으로
최종적으로 확인되고 나서야 우리는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해
거리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냉전의 시간 격차로 인해 좀더 늦었을 뿐이다. (이번의 핵파국은
그러한 거리 두기를 통한 해방의 효과를 다시 한 번 가져다 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해방은 가능성이기도 했지만 부재이기도 했다. 물론
기존의 규준과는 다른 것을 찾기 위한 고고학적 노력과 이론적
연구가 부재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러한 노력과 연구
속에서만 오늘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화폐를 대신하는
다양한 ‘유사 화폐’의 시도를 비웃고 비판하는 가운데 나타난
한 경향은 일반자로서의 화폐의 구성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충하게 이해하면서 화폐계 외부에서 해방의 계기를 찾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역사적 사회주의 이후 시기에
새삼스레 나타난 것은 아니다. 계급 대립이 충분하게 발전하지
않았거나 국가 권력을 매개로 한 해방의 시도가 좌절할 때마다
이러한 시도는 나타났으며, 다만 다른 점은 오늘날의 이러한
경향의 역사적 준거가 1968년이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자본의
보편성이 1960년대 운동의 에너지를 배제하면서 흡수했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듯이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두 개의 일반성이
병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시도는 한계를
가진다. 더구나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가지는 탈정치화 혹은
운동의 미학화이다. 아예 기존 사회 밖에 나름의 세계를
구성하자는 주장을 제외할 때 이러한 경향은 정치의 문제인
정의를 차이의 문제로 대치하며, 해방을 삶의 스타일로
대신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해방의 부재 속에서 좌파의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좌파는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함으로써 해묵은
과제를 완수했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반자본주의를 선언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개별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지역적
차별성을 사상한 ‘이념적 평균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보편적 반대 운동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은 개별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문제점을 넘어서 있거나, 혹은 무관하거나, 현실적
문제점들의 차이를 무차별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보편적
반자본주의는 이념이나 이론의 문제로만 등장할 뿐 현실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인 정치적 개입의 직접적인 준거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보편적 반자본주의로서의 사회주의를 선언한
한국의 좌파는 해묵은 과제를 수행했다는 자족감에
젖어있었거나, 이념과 무관하게 현실에 개입했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꼴이었다. 이것이 진짜 부재의 의미,
좌파 정치의 부재의 의미이다.
개입으로서의 정치와 탈배제 강령
좌파 정치 또한 정치인 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의 형태를
띠어야 하며, 이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물론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보편적 반대와 현실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본의
운동을 뒤따라가는 맹목적이고 대증적인 실천이 아니라 전망을
제시하는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의제적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의제적 개입은 해당 사회가 생산하는 문제, 즉 기존 사회의 구성
원리 일반에서 생기거나, 그것의 특수한 원리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면서도 새로운 통합 방식으로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의제적 개입은 반자본주의 운동이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의제적 개입으로서의 반자본주의 운동은 해당 과제가 해결될
경우 소멸한다. 하지만 해당 사회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부단히 생산할 것이며, 이에 따라 우리는 늘 새로운 의제를
제출하며 개입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현존 사회가
생산하는 문제는 사회의 구성 원리에서 나오긴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그런 문제를
생산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러한 개입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제적 개입으로서의 반자본주의 운동은 최종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최종 해결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라 할 수 있다.
반자본주의적 개입으로서의 좌파의 정치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거나 이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근대 자본주의가 인류가
경험한 유일하게 보편적인 사회 구성 원리를 가지면서도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배제적 통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화폐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데, 화폐
또한 개별적인 상품이었지만 다른 상품에서 배제된 다음, 이를
통해 다시 모든 상품에 대한 일반적 등가가 되는 순간 모든
상품의 가치 척도가 되어 다른 모든 상품을 매개하며, 통합된
상품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화폐라는 일반성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반성에도 해당한다.
그런데 일단 수립된 일반성은 모든 개별성을 통합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그 일반성에 거스르는 것, 혹은 일반성의
작동에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원리에 따라 배제된다. 이런
점에서 일반성 아래에서의 개별성의 통합은 언제나 배제적
통합으로 나타나며, 자본주의의 구성 원리가 전형적으로
그러하다.
자본주의 하에서 나타나는 배제적 통합은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난다. 크게 보아 두 관계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이다. 우선 자연은 인간 세계 밖으로 축출된다(물론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은 자연에서 인간의 해방이다). 하지만 배제된
자연은 다시 과학적, 공학적 대상으로 인간 세계에 재통합된다.
이러한 배제와 통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노동이 가치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부당 전제하는 노동 가치설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배제적 통합은
국가 사회, 경제 사회, 시민 사회 등 다양한 층위에서 작동하며
사회의 구성 원리로 기능한다. 국가 사회의 경우 ‘수동적
시민’의 경우에는 참정권이 없었지만, 국민으로서의 통합되어
있었다. 또한 참정권이 성인 남녀에게 주어져 있는 오늘날에도
이를 실질적으로 가능케 하는 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이는 배제적 통합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경제
사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생산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소비 영역에서도 배제된 경우부터 생산 영역에도 참여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만 생산의 결과물에서 배제된
경우까지 경제 사회에서도 다양한 수준의 배제가 일어나고 있다.
끝으로 시민 사회에서도 배제적 통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담론과 의사소통에서의 배제, 교육에서의 배제,
지식과 정보 접근에서의 배제 등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통합만을 강조하는 것도 배제로 현상한다.
이러할 때 반자본주의 강령은 탈배제 강령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 포괄적인 탈배제 강령은 각종 층위에서 발생하는 배제를
직접적으로 해소하거나, 현재의 통합 방식과 비교할 때 덜
억압적이고 더 많은 참여를 보장하는 통합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배제를 볼
때 경제 사회에서의 탈배제를 위해 지속 가능하고 고용 확대적인
산업의 육성을 통한 다수의 참여 보장, 노동 시장의 분할을
제거하는 노동 시장의 재편,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자의 의사
결정 참여 확대, 사회권을 보장하는 복지 제도의 정비 등이
대안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교육과 평등한 참여의 보장을 통한 탈배제를 말할 수
있다. 교육의 경우 노동 교육을 통해 경제 사회에 제대로
진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시민으로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
교육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할 때 교육
내용은 교육이 참여의 조건이자 현존 사회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정해져야 한다. 또한 문화적 접근,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끝으로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는 소수자의 경우 차이의 인정을
통한 배제의 극복이 필요한데, 대표적으로 성적 소수자, 아동과
청소년, 노인 인구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들 수 있다.
사회적 공화주의의 요청
이러한 탈배제 강령은 실현은 반자본주의적 정향을 가지면서,
직접적으로는 사회적 공화주의의 수립이라는 목표를 지향한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가 직면한 과제, 즉
민주 공화국의 실질적인 관철을 위한 사회적, 물질적 조건과
전제를 확보함으로써 근대의 미완의 과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정치적 개입의 형태이다.
이러한 사회적 공화주의는 부르주아 혁명 및 ‘이행’의 문제에
대한 특정한 이해 방식의 소산이다. 부르주아는 역사상 유일하게
보편적인 구성 원리를 자신의 이해와 통합시킨 계급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부르주아 혁명은 ‘목숨을 건 도약’이었다. 이는
혁명의 대중적 동력을 위해 부르주아가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민중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혁명적 도박을 했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앞서도 말했듯이 화폐라는 일반성을 통한
통합을 이루어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러할 때 ‘이행’은
배제를 통한 일반성의 수립이라는 화폐의 논리를 답습하는
또다른 일반성의 폭력적 수립이 아니라 ‘자유, 평등,
우애’라는 부도 수표의 회수 노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점은 20세기 후반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60년대 운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할 수 있지만,
분명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그 운동이 동서를 막론하고
전제된 일반성의 폭력에 대항하여 참여 속의 결정을 주장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저항은 새로운 통합과 배제를
낳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은
참여를 확대하여 (불)가능성의 정치를 작동시키는 것이어야지
배제를 해방의 계기로 부당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할 때 사회적 공화주의는 시민의 대등한 참여를 그 원리로
삼는 인류의 유일한 정치 형태인 공화주의에 대한 좌파적 전유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참여의 실질적 조건을 마련하는
데 주목한다는 점에서 참여의 미덕에 강조점을 두는 우파
공화주의와 구별된다. 또한 ‘사회적’이라는 말을 급부 체계인
복지와 동일시하는 사회민주주의와도 구별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20세기 사회민주주의가 급부 체계를 참여의 조건과
분리시키거나 ‘분배의 정의’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화주의와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적 공화주의의
핵심은 참여 없는 가능성은 불가능하고, 조건 없는 참여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공화주의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에
대한 개입인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사회
양극화’가 공화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사회 자체를 해체할
것이라는 진단에서 나온다. 그러할 때 사회적 공화주의는 민주
공화국의 실현을 직접적인 목표로 지향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될 때, 그것이 근대 공화국의 최종 단계일 때에만 새로운
보편성의 수립을 통한 이행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한국 사회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현상하거나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모든
문제에 답하고 있지는 않다. 한국 사회는 53년 체제에서
기인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분단이라는 외적
장애물이자 정치적 자유를 가로막는 내적 장애물로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의 수립, 영토의 확정,
국가보안법의 철폐, 징병제의 변경 등등 일련의 정치적 과정이
없다면 사회적 공화주의 자체가 실현되기 어렵다.
또한 생태 문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도 나타나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사회적
공화주의가 직접적으로 생태주의적 문제 의식에 따른 생태
국가의 수립을 제출하지는 않지만, 그 사회적 공화주의의
토대로서의 생태 국가라는 문제가 포괄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희망사회당이 모색하고 의제로 제출하는 사회적 공화주의는
이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실천적으로도 매우 불충분한
것이다. 다만 다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입장이 근대
사회주의 운동, 특히 20세기의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경향에 대한 또다른 비판점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더 중요한 것으로 좌파 정치의
부재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입으로서의
정치에 대해 사고하는 모든 이는 이에 개입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 사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