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량적 지표로 본 계급현실
김 길 섭 / 연구원
들어가는 말
노동법개정과 관련된 총파업으로 힘차게 열어제낀 새해가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올해는 총파업의 여파가 노동자계급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해이기도 하다. 일정 정도 진척되고 있는 정치세력화나 산별노조 설립시도 외에도 파업직후의 임․단협의 성과는 앞으로 최소한 몇 년간의 노동운동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임단협 결과는 그러나 매우 우려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업률의 급상승, 고용구조의 불안정성 강화, 생산성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질임금 상승률,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의 건강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준에 못미치는 노동시간의 단축 등 노동자계급의 삶의 전반적인 악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올해의 임단투가 개정된 노동법을 ‘개악’된 것이라고 선언한 상태에서 전국적 전선이 형성된 가운데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의 우려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총파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올해의 임단협이 노동법 ‘개악’이라는 정치적 패배에 대한 경제적 보상 내지는 이를 초과하는 수준에서의 경제적 요구의 관철이라는 과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자본, 정부, 관변단체들의 입체적 공세를 분쇄하고 이 성과를 토대로 하여 산별노조로의 본격적인 이행과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복원해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이 글은 올 상반기, 특히 통계자료가 허용하는 1/4분기까지의 노동관련 지표의 흐름을 분석하고 이로부터 총파업 이후의 계급관계의 현황과 노동정책의 본질을 규명한 후 노동운동의 과제를 도출해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인 정치세력화나 산별노조의 설립문제1)는 필요한 경우, 부분적으로만 언급한다.
최근 노동관련 지표의 변화추세
1. 고용동향 : 실업의 급증과 고용의 질 악화
고용동향에 관해서는 총량 차원과 구조적 차원의 분석을 시도하기로 한다. 최근의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량 차원에서는 실업이 급증하고 있고, 고용구조에 있어서는 불안정성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1/4분기 동안 취업자 수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1997년 1/4분기의 취업자 수는 2천 47만명 정도로 1996년 말보다 약 30만명이 감소했다. 그 여파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수는 약 65만명으로,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2%가 증가한 수치이다(<표 1> 참조). 더욱 심각한 것은 3.1%에 도달한 실업률이 앞으로도, 단기적인 수정은 가능하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쉽게 개선되지 않을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량경영으로 신규취업을 줄이고 있는데다 2년 후의 정리해고제 도입계획으로 대량해고의 가능성도 매우 커지고 있는 현실이 이러한 어두운 전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표 1> 고용동향 (단위: 천명, %)
구 분 |
전 체 |
남 자 |
여 자 |
1995 |
1996 |
1997
1/4 |
1995 |
1996 |
1997
1/4 |
1995 |
1996 |
1997
1/4 |
경제활동인구
(증감률)
취업자
(증감률)
실업자
(증감률) |
20,797
(2.3)
20,377
(2.7)
419
(-14.2) |
21,188
(1.9)
20,764
(1.9)
425
(1.3) |
21,112
(3.4)
20,466
(2.5)
646
(42.0) |
12,433
(2.2)
12,153
(2.7)
280
(-16.3) |
12,620
(1.5)
12,330
(1.5)
290
(3.7) |
12,546
(1.8)
12,138
(1.0)
407
(33.4) |
8,364
(2.5)
8,224
(2.7)
139
(-10.0) |
8,568
(2.4)
8,434
(2.6)
134
(-3.5) |
8,566
(5.8)
8,323
(4.8)
238
(58.7) |
참가율 |
62.0 |
62.0 |
61.1 |
76.5 |
76.1 |
74.8 |
48.3 |
48.7 |
48.2 |
실업률 |
2.0 |
2.0 |
3.1 |
2.3 |
2.3 |
3.2 |
1.7 |
1.6 |
2.8 |
( )안의 수치는 전년동기 대비율임
자료 : 통계청, ꡔ분기별 고용동향ꡕ, 각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업률 급증의 원인 분석에 있어 근대경제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논자들은 주된 원인을 일자리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괴리에서 찾는다.2) 그 중에서도 일자리에 대한 수요의 과다가 주된 원인이며, 그 원인을 다시 여성노동자의 경제활동 확대에서 찾고 있다. 물론 <표 1>에서 보듯이 여성경제활동인구는 전년동기 대비 5.8%나 급속히 증가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현상 자체 보다 그의 본질적 원인이다.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일차적 원인은 노동자가족의 생활고이다. 그리고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있는 생활고의 2가지 원인으로는 고용상태에 있는 근로자의 임금수준의 악화와 대량감원, 명예퇴직 등에 의한 고용자체의 불안정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불황극복책’으로 현재 추진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강력히 추진하고자 하는 ‘감량경영’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노동시장유연화 정책’이 노동자가족의 경제적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3) 바로 이것이 많은 수의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4)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실업률 급증의 원인과 해결책을 여성경제활동인구의 급증과 관련시켜 사고하는 정책5)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계급전술적 의도도 가지고 있다. 즉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의 결과인 실업률 상승의 원인을 여성과 남성간의 일자리 다툼으로 몰아가, 노자간의 계급문제를 성별문제로 왜곡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총량차원에서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또 한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고용구조 자체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고용의 질 악화이다. 우선 <표 2>에서 보듯이 단시간 노동이 급증하고 있다. 불완전 취업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주당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노동이 전년동기에 비해 16%나 증가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18시간 미만 노동이 무려 25.1%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상 고용상태라 할 수 있는 36시간 이상 노동은 1.1%밖에 증가하지 못했다. 이와 더불어 일시휴직도 26.9%가 증가했다. 즉 올해 들어 단시간 고용과 일시휴직이 급증하여 불완전 취업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작년의 통계치를 95년 동기와 비교하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올해 1/4분기에 급증한 18시간 미만 노동이 작년의 경우에는 95년과 비교하여 0.3% 감소하고, 그 반대로 36시간 이상 노동은 미미하기는 하지만 1.8% 증가했다.
<표 2> 근로시간에 따른 취업자 분포 (단위 : 천명, %)
|
1996. 1/4 |
1997. 1/4 |
36시간 미만
1~17시간
18~35시간
36시간 이상
36~53시간
54시간 이상
일 시 휴 직 |
1,498(2.3)
307(-0.3)
1,191(3.0)
18,297(1.8)
9,305(3.9)
8,974(-0.3)
193(8.4) |
1,783(16.0)
384(25.1)
1,354(13.7)
18,482(1.1)
9,717(4.4)
8,765(-2.3)
245(26.9) |
( )안의 수치는 전년동기 대비율임
자료 : 통계청, ꡔ분기별 고용동향ꡕ, 각호.
이로부터 도출되는 하나의 사실은 올해 1/4분기 동안 자본과 정부가 그렇게도 원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노동자계급의 직업 및 경제생활의 급속한 불안정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용의 질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일용직 및 임시직의 급증에서도 확인된다.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가 전년동기 대비 0.9% 감소한 것과 비교하여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가 각각 5.6%, 8.9% 증가했다(<표 3> 참조). 특히 일용근로자가 전년동기 8.9%나 증가했다는 것은 이른바 ‘하루살이’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직업 안정도가 급속히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산업별 취업자 중에서도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반면 서비스, 도소매 그리고 음식․숙박부문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6)
<표 3>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 분포 (단위 : 천명, %)
|
1996. 1/4 |
1997. 1/4 |
임금근로자
상용근로자
임시근로자
일용근로자 |
12,745(2.4)
7,368(0.6)
3,773(9.6)
1,604(-5.0) |
13,032(2.3)
7,300(-0.9)
3,985(5.6)
1,646(8.9) |
자료 : 통계청, 『분기별 고용동향』, 각호
2. 임금 : 증가율의 둔화
위에서 살펴본 실업의 급증과 불안전취업의 증가로 인한 직업안전성의 악화는 임금관련 지표의 변화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명목임금은 1997년 1/4분기 현재 1,430,000원 정도로 지난 1년 동안 11.6% 증가했지만, 이를 전년 동기의 상승률(13.7%)과 비교하면 2.1% 하락한 것이다. 그리고 4월과 5월의 임금인상률은 각각 11.7%와 12.2%에 달했지만 6월과 7월에는 임금동결 등으로 인해 각각 6.3%, 4.9%의 증가에 머물렀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명목임금은 86년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수 인상이 예견된다. 또 명목임금과 소비자물가지수의 관계를 백분률(명목임금/소비자물가지수 × 100)로 표시한 실질임금은 지난 1년 동안 6.6% 증가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실질구매력의 증감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실질임금의 증가율도 명목임금의 경우처럼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한 것이다(<표 4> 참조).
<표 4> 임금관련 주요지표 동향(비농업 전산업)
|
1995 |
1996 |
1996 |
1997 |
1/4 |
2/4 |
3/4 |
4/4 |
1/4 |
임금총액(천원/월)
명목임금증감률(%)
소비자물가증감률(%)
실질임금증감률(%) |
1,222
11.2
4.5
6.4 |
1,368
11.9
5.0
6.6 |
1,281
13.7
4.9
8.4 |
1,277
10.3
5.1
4.9 |
1,445
12.7
5.2
7.2 |
1,468
11.1
4.9
6.0 |
1.430
11.6
4.7
6.6 |
자료 : 노동부, ꡔ매월노동통계조사보고서ꡕ, 각호
한국은행,ꡔ주요경제지표ꡕ, 1997. 5
명목임금과 실질임금 모두 올해 들어 일정 정도 증가하기는 했지만, 전년 동기보다는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객관적, 주관적 요인으로 분석될 수 있다 : 1) 실업의 증가와 노조 가입대상이 아닌 일용 및 임시노동자의 급증으로 인해 고용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자본가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즉 산업예비군의 급증이라는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객관적 조건이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 요구를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2) 또 한가지 이유로는 ‘경제위기론’이 임금수준의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대중들이 ‘임금과 고용사이의 선택’을 강요받아 선택에 머뭇거리고 있거나, 일부에서는 임금을 포기하고 고용안정을 택하고 있다. 이는 올 상반기 고용안정을 위해 임금협상을 포기하거나, 임금동결(실질임금하락)에 합의하거나 일부에서는 임금결정을 사측에 일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무교섭, 무분규, 무인상이라는 이른바 ‘3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3. 노동생산성 : 실질임금 상승률을 웃도는 노동생산성 상승
아래의 <표 5>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4가지 기준에 따른 모든 종류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실질임금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상용근로자 기준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생산직 근로자 기준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각각 12.4%와 14.5%로 이러한 수치는 각각 1991년 및 1992년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노동생산성의 상승경향은 1997년 하반기 들어서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동부가 6월 29일 발표한 생산활동 BSI(기업실사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 3/4분기의 제조업 생산활동은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고용사정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한다.7) 고용의 증대없이 생산이 확대된다는 것은 생산성 향상이 유일한 전제조건이다.
<표 5> 노동생산성 증가율 동향 (단위 : %)
|
물적 노동생산성 |
불변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
|
전체종사원 기준 |
상용근로자 기준 |
생산직근로자 기준 |
전체종사원 기준 |
총지수 |
제조업 |
총지수 |
제조업 |
총지수 |
제조업 |
총지수 |
제조업 |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
12.7
13.8
10.7
8.0
10.1
10.5
12.4 |
12.5
13.9
10.9
7.8
9.8
10.8
12.4 |
12.8
14.0
11.0
8.0
10.4
10.4
12.4 |
12.6
14.0
11.1
7.8
10.1
10.7
12.4 |
16.1
17.1
15.4
-
7.3
11.7
14.5 |
15.8
17.1
15.5
10.0
7.3
11.9
14.6 |
12.2
11.8
8.8
7.6
9.3
9.1
11.2 |
11.7
12.0
9.0
7.1
9.0
9.5
11.2 |
*는 잠정치
자료 : 한국생산성본부, ꡔ생산성리뷰ꡕ, 통권 제45호.
노동생산성의 강화는 노동강도의 강화로 연결된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의 노동생산성의 강화는 실질임금 상승률(6.6%)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이는 ― 물론 이 두 가지 수치가 완벽하게 표시하지는 못하지만 ― 강화된 노동강도로 인해 마모된 노동력을 재충전하기 위해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소득 상승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2%가 넘는 노동생산성의 향상 정도를 고려하면 6.6% 정도의 실질임금 증가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노동자가족의 생활고가 여성의 임노동시장 진출을 강화시킨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노동생산성이 고용에 끼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생산량이 불변이고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그만큼의 잉여노동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은 해고의 대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6월 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는 1994년 현재 ‘불필요’하게 고용된 인원이 68만명이며, 정리해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최소 60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추가로 발생하며, 실업률이 선진국 수준인 6%를 상회할 것이라 한다. 이는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면 임금과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의 부당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사례이다.8)
4. 노동시간 : 불충분한 단축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이유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우선 힘든 일 이후에는 노동력을 그만큼 많이 재충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노동시간의 단축이 고용안정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는 사실도 일부의 논자들을 제외하고는 인정하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일정한 량의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총노동 투입량은 노동자 수에 노동시간을 곱한 것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나야 하는 것은 명백해진다.
노동시간이 최근 점차 줄고 있다. <표 6>은 1996년 이후 전산업에서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올해 들어 노동시간이 전년 동기에 비해 2.2% 단축되어 전산업 평균 이상의 단축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시간이 이러한 부분적인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수준에서는 아직도 세계 정상급(7위)이어서 보다 많은 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도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해온 노동자대중의 ‘근면성’이 점차 약해지는 징조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노동자대중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선 임금과 관련하여서는, 시간급이 일반화되어 있고 초과근무수당이 미약한 수준의 기본급을 보충하는 엄밀한 의미에서 기본급화되어 있는 제조업에서, 초과근무수당의 대상인 초과근로시간이 급속히 줄어든다는 것은 임금의 하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용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노동시간의 단축정도가 급증하고 있는 실업을 만회할 수 있는 정도에 못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표 6> 내역별 근로시간 및 증감률 (단위 : 시간/월, %)
구 분 |
1995 |
1996 |
1997 |
1/4 |
2/4 |
전
산
업 |
총근로시간
정상
초과
|
207.0
(0.5)
181.0
(0.1)
26.0
(4.0) |
205.6
(-0.7)
180.9
(-0.1)
24.6
(-5.4) |
197.7
(-1.9)
174.8
(-1.6)
22.9
(-4.6) |
205.1
(-0.9)
180.7
(-0.1)
24.3
(-6.3) |
제
조
업 |
총근로시간
정상
초과
|
213.7
(0.9)
180.6
(0.1)
33.1
(6.1) |
210.1
(-1.7)
179.5
(-0.6)
30.5
(-7.9) |
202.0
(-2.2)
173.3
(-1.9)
28.6
(-3.7) |
211.0
(-2.2)
180.3
(-1/1)
30.7
(-8.1) |
( )안의 수치는 전년동기 대비율임
자료 : 노동부, ꡔ매월노동통계조사보고서ꡕ, 각호
이러한 현실적 조건에서 해고의 자유가 아니라 노동시간의 더많은 단축을 고용안정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 이유로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단순히 노동의 인간화라는 면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고의 자유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켜 다시 고용을 증대시키겠다는 전략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의 효과는 경제적으로는 최소한 유사한 효과를 나타낼 뿐 아니라9) 후자는 전자에 비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실업보험 등의 사회보장비용)이 훨씬 덜 든다.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을 통한 노동자의 일에 대한 불만의 약화 내지는 만족도의 강화도 수량화할 수 없는 질적 요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다시 일벌레가 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오던 도덕적인 훈계만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이 노동자대중이 향유할 수 있는 자유시간의 확대와 고용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발전하기에는 아직 많은 투쟁이 필요한 단계이다.
맺는 말을 대신하여
: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고용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인가?
아래에서는 위의 노동 관련지표의 분석 결과에 기초하여 최근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전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진정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노동자운동의 대응수단을 제시하면서 맺는 말에 대신한다.
위의 다양한 통계수치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노동시장은 최근 급속히 ‘유연화’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수준이 미흡하다는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유연화 공세의 대표적인 사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급속히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은 한국노동연구원이 작성하고 재정경제원과 함께 발표한 ‘노동시장 유연화 제고 방안(이하 ‘방안’으로 표기)’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방안’에는 이미 지난 수년 동안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대중에 적대적인 노동정책10)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 외에 새로운 것이 없다. 따라서 이 ‘방안’은 별도의 이론적 논의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계급관계에 끼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대단히 크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이론적 논의보다는 최근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노동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한 비판을 통해 ‘방안’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드러내 보이기로 한다.
‘방안’의 핵심은 자본간의 경쟁에서 국민경제가11)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노동의 유연성은 ‘외부환경에 인적자원이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배분 및 재배분되는 노동시장의 능력’을 지칭한다.12)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노동시장 유연화 제고 방안’은 노동자의 육체에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실현에 있어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한 기계적 대응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노동자의 주체성, 자율성이 강조되는 노동력의 특수성을 파괴하고, 이를 여타의 상품일반과 동일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방안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또 ‘방안’에서는 한국의 노동시장에는 ‘노동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의 취약성을 시사하는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한국의 지난 10년간 임금인상률이 국제수준에 비해 높고, 최근 실업률이 급상승하고 있으며, 직종간 인력수급의 불균형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13) 그렇다면 제시될 수 있는 대안은 어떠한 미사여구를 사용한다해도 논리 전개에 모순이 없다면 다음의 내용을 벗어날 수 없다 : 임금인상률을 하락시키고, 이를 위해 임금결정에 있어 시장외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인력 수급관련 제도의 개선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하자! 한마디로 말해서 ‘방안’은 노동자대중에게 일자리를 지킬 것인가, 임금을 깎을 것인가? 즉 임금과 고용 사이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강요는 동시에 노동자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파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위의 통계분석에서도 보았듯이 노동자대중들 사이에 고용위기를 임금인상 억제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방안’의 주된 논리가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계급관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모두는 아니지만, 다수의 노동자와 노조가 ‘경제위기’ 공세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본간의 경쟁의 격화로 인해 나빠진 자본의 가치증식조건을 임금의 동결이나 하락을 통해 개선하자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총파업이 임단협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역규정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총파업이 원래의 목적을 충분히 쟁취하지 못하고 ‘개악’으로 끝남에 따라 패배감이 팽배해져 있는 데에다, 총파업 이후 자본의 공세에서 오는 대중적 무력감 등이 ‘경제위기론’의 확산과 함께 임단협에 대해서 (물론 지역별 업종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무기력증으로 현상한 것이다. 종합하자면 산업예비군의 급증이라는 객관적 현실과 함께 이러한 주관적 요인이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임금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는 다시 노동자계급이 수세적 상황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급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이는 우선 임금과 고용사이의 선택을 강요하는 논리에 대한 비판에서 찾을 수 있다. 강요된 선택에 있어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의 노동시장의 현실에서는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상승률에도 못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이 급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임금이냐 고용이냐’라는 대안은 잘못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본가계급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합리화’ 공세가 지속될 경우 임금동결(실질임금의 하락)은 단순히 일자리를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협의의 고용안정을 그것도 단기적으로만 이룰 수 있지만, 삶의 질을 유지 내지는 개선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조건 하에서의 일자리 지키기, 즉 광의의 고용안정의 장기적 보장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임금동결과 고용안정을 단협에서 정치적으로 교환했다고 하자, 이 경우 가장 흔히 자본가들이 사용하는 ‘고용안정책’은 해고없이 자연감원분의 인원을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같은 ‘인위적’ 감원 자제정책은 현재 고용된 노동자와 미래의 노동자, 혹은 실업자간에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노노간의 경쟁을 격화시켜 지속적인 임금 하락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고용상태에 있는 노동자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점차 더 많은 임금하락을 감수해야 하며 실업자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갈수록 열악한 근로조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감원분의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전과 같은 양의 생산을 수적으로 줄어든 노동자들이 다기능화, 노동시간의 유연화, 배치전환 등을 통해 생산한다면 노동강도의 강화는 불을 보듯이 명백해진다. 이를 자본가들은 노동생산성의 향상이라 하며, 이는 자본 합리화의 주된 내용이다. 이는 ‘방안’에도 핵심적 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한 계급 내에서의 투쟁’의 강화는 이 계급과 타계급간의 투쟁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의 결과물인 대량실업이 자본의 가치증식 이해를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가와 국가가 노리는 바는 두말할 것도 없이 노노간의 일자리 경쟁을 강화시켜 전체노동자대중을 값싼 노동력 그리고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노동력의 소유자로 묶어 두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 노동정책의 두 번째 목표이며 동시에 본질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대중을 가능한 모든 차이를 동원하여 분열시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여성노동력 문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와 실업자 사이의 경쟁 및 갈등의 강화는 물론 최근에는 외국인력에게도 실업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아직까지는 눈에 띨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대중의 단결이 강해질수록 이러한 분열책은 도를 더해갈 것이 명백하다.
이를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자본가계급과 국가가 생각해낼 수 있는 실업문제 해결책은 ‘시장동력’ 내지는 ‘시장의 자율적 정리기능’에 대한 믿음과 노동자대중의 분열책 뿐이라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은 이러한 믿음이 정책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된 것이며 이는 ‘노동자의 권리감소와 임금하락을 통한 고용의 증대’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의 개별화는 대량실업에 따른 노동자대중의 일자리 경쟁 뿐 아니라 입법을 통해서도 촉진되고 있다. 그리고 개별화된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해고되고 고용상태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종속성은 날로 강화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노동조합의 이해대변 기능, 즉 집단노사관계에 대한 공세와 함께 진행된다. 올 임단협에서 노동부와 자본가를 흥분하게 만들었던 교섭권 수․위임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유연화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올바른 선택은 의외로 간단하다. 노동력을 유지 및 강화시키기에 충분한 수준의 임금 쟁취 및 노동시간 단축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자본 투쟁 외에는 없다. 따라서 ‘고용이냐 임금이냐’라는 잘못된 대안에서 올바른 대립선의 설정이라는 전략의 변화와 이를 쟁취하기 위한 조직내부의 정비, 그리고 노동자대중간의 분열 및 경쟁을 단결로 극복하고 이를 통한 대중적 동력의 회복, 이것이 현재의 노동자계급의 수세적 현실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산별노조의 설립과 정치세력화도 이를 관철시켜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될 경우 현장과의 괴리라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이에 관해서는 곽탁성, “다시 요구되는 ‘계급현실’과의 결합 - 97상반기 노동정세 평가와 하반기 전망”,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1997년 9월, 제25호, 21~51쪽 참조.
2) 그 좋은 예로는 한국노동연구원의 ꡔ분기별 노동동향분석ꡕ, 1997년 제10권 제2호를 들 수 있다.
3)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2년간 도입이 연기된 정리해고제도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감량경영의 핵심조건인 대량해고 및 해고의 자유를 노동법개정이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노동자계급에 대한 적대적 공세라 할 수 있다.
4) 물론 여성경제활동인구의 증가는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자아실현 등 주관적 요인들도 작용하고 있지만, 이는 평균 2~3%에 머물던 증감률이 지난해에는 갑자기 5.8%로 급증한 원인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5) 예를 들면 최근 ‘가족의 중요성’을 들먹이며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캠페인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6) 최강식/황수경, “고용불안 속의 노사관계 전망”, 한국노동연구원, ꡔ분기별 노동동향분석ꡕ, 1997년 제10권 제2호, 109쪽 이하.
7) 서울경제신문 6월 30일자.
8) 물론 이는 개별기업 차원에서 그것도 단기적으로는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거시적 차원의 결과는 미시적 차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별기업의 이윤극대화가 사회전체의 복지수준의 극대화와 다르다는 것은 근대경제학에서 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9) 해고방지의 완화와 해고제한이 장기적으로 고용안정에 기여하는 바가 유사하다는 것이 실증되고 있다. 해고가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과 해고제한이 비교적 강한 독일을 비교한 실증조사에 따르면 노동력에 대한 수요감소에 따른 조정효과는 미국에서 빨리 나타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총노동투입량(노동자수×노동시간)이 거의 유사해진다고 한다. 불황시에 미국이 고용노동자수를 줄이는 반면 독일은 노동시간을 줄였기 때문에 총노동투입량의 변화는 유사한 값을 가지게 된다. Abraham/Houseman(1993)과 Houseman/Abraham(1995) 참조.
10) 이는 아래에 열거하는 노동정책만을 보더라도 명백해진다 :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주목적으로 하는 노동법 개정, 개정된 노동법을 단협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그것도 모자라 2년 유예된 정리해고제를 조기에 도입하고자 하는 자본가계급의 시도, 대법원의 퇴직금채무 우선변제에 대한 위헌 결정, 산업안전관리법의 완화, 근로자파견법의 제정, 저임금의 연수생제도 유지를 주내용으로 하는 외국인력 관리정책 등.
11) 여기에서 국민경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총자본을 의미한다.
12) 위의 글 9쪽.
13)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한국노동연구원 보도자료. 1997. 7. 31, 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