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냐 노동이냐 (15)
사회 전반의 문제를 자본의 관점으로 볼 것이냐, 노동의
관점으로 볼 것이냐를 제기하면서 노동자의 계급적 관점을
정립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자본이냐 노동이냐’ 기획란,
그 열다섯번째 글로 ‘복지투쟁과 노동운동’을 게재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노동자의 경제투쟁이 갖는 양면성과
마찬가지로 복지투쟁도 노동운동 순치의 기능과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라는 양면성을 갖는 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가 경제․정치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며, 자본관계의 지양을 위해 복지를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95년 이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사회개혁투쟁이 전개되면서
사회복지가 관심의 대상이 된 이후, 최근에는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의 10대 핵심공약에 ‘사회복지대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관심이 비등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특히 이러한 필자의 문제인식을 유념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이다.
자본이냐 노동이냐 (15)
복지투쟁과 노동운동
남 구 현 / 연구위원장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전쟁고아들의 재난 대피를 위한 구호
차원에서 출발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고아원, 양로원 등의
구호시설을 중심으로 이해되어져 왔다. 실제로 일반인의 인식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관련법은 사회복지시설에 관한
규정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자들
가운데에는 사회복지를 이와 같이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와같이 아동, 노인 등에 대한 구호만을
사회복지로 생각한다면, 사회복지와 관련해서 ‘자본이냐
노동이냐’라는 질문은 던질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세속적인 이해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회복지라는 용어는
다양하게 사용된다. 복지를 부여하는 주체에 따라
(국가)재정복지, 기업복지, 사회복지 등으로 구분하는 학자도
있고, 이를 모두 포괄하여 사회복지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복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세계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 시대 이전의 봉건사회에서는
교회중심의 빈민에 대한 구호사업에 복지활동이 한정되었던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이 어느 정도 발전한 이후에는 사회 구성원의
어느 누구도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복지가 전체 사회의 제도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2차대전 이후 더 나아가 자본주의 국가에 의한
광범위한 사회정책의 실시로 특징지워지는 소위 ‘복지국가’적
발전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즉,
사회하층민에 대한 구호에서 이제 일종의 사회적 시민권의
형태로, 사회구성원이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서 복지가
받아들여지게 되면서(‘구호’에서 ‘권리’로) 공적부조,
사회보험, 사회적 수당 등의 제도를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입하게
된 것이다.
자본과 노동을 중심으로한 ‘복지’ 개념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60년대 자본주의 발전이 본격화하면서
산재보상보험과 의료보험을 비롯해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이 도입되면서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 아동, 교육,
주택 수당 등의 사회적 수당을 제외하면 ― 선진국에 존재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대부분 도입되었다. 나아가 최근에는
민주노총에서 주로 사회보장제도 개선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사회개혁투쟁을 전개하여 논란이 될 정도로 이제 복지를 둘러싼
쟁점은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구성원 전체의 관심이 되고 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복지를 둘러싼 쟁점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를 전쟁이나 기근 등 재난의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한
자선행위로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즉, 분석의
출발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한 전체 사회적
관계와의 관련 속에서 복지를 개념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본과 노동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해서 볼 때, 복지를 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번째는 복지가
자본의 시혜로서, 복지의 확대는 자본의 재생산에 기여할
뿐이고, 자본의 개량전술로 구사되는 복지는 노동자의 혁명적인
투쟁성을 마비시키고 노동자운동을 체제내화하는 물적토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따른다면 노동자는 복지의
확대를 반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반대의 입장은
복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물이며, 사회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복지투쟁은 일종의 사회적 임금의 형태로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유력한 투쟁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는 계급관계의 재생산을 위한
자본의 도구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대상이자
결과물인가.
현실을 본다면 양측면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자본과 국가의 입장에서 복지는 자신의
착취 및 억압적 내용을 숨기고 국민 일반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듯한 외양을 취할 때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일찌기 19세기말 독일에서 비스마르크는 한편에서는
사회주의자법을 제정하여 점차 급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노동자운동을 탄압하는 한편 산재보상보험,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 노동자를 순치해내려고 시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독재자들은 파시즘적 정치를
통해 민주화세력 및 노동자세력을 억압하는 한편 산재보상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해
왔다.
자본 및 그들의 정치적 대리자 역할을 하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도 복지가 도입된 측면이 있는 한편, 보다 많은 복지를
위한 투쟁 역시 ―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임금을 받기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 노동자 운동의
과제이었으며, 노동자 투쟁의 결과 복지가 확대되고 지켜져온 것
역시 현실의 역사이다.
복지의 양면성
구체적인 현실 역사에서 복지가 갖고 있는 이중적 성격을 일단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재생산과정에서 임금,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등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제범주들이 자본의 모순성을 반영하면서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복지가 지니는 양면성
역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만큼 지불하고
노동력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대가없이 취득함으로써 자기의 가치를 늘려간다(임금의 기초는
사실은 최저생계비이든 표준생계비이든 생계비 개념이다). 이 때
임금형식은 마치 노동의 대가로 지불되는 듯한, 즉 일한
성과만큼 업적대로 분배되는 듯한 외양을 취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적 착취과정의 내적속성을 은폐하는 외적인 형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면에서는 임금형식의 틀 내에서 경제투쟁을
벌이는 것만으로는 모순적인 자본관계를 지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면에 보다 많은 이윤을 차지하려는 자본과
보다 많은 임금을 받으려는 노동 사이의 필연적인 대립으로 인해
벌어지는 투쟁은 어느 사회에서나 모든 형태의 계급투쟁의
출발점이자 기초가 된다. 보다 많은 임금을 위한 투쟁은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이자 자본에게는 이윤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이 된다.
소위 대의적 의회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는 형식적으로는
선거권, 피선거권을 중심으로한 평등한 참정권에 기초해
관철된다. 그러나 선거가 없는 일상적 시기에 인민주권은 정지된
상태이며, 일단 선출되면 중간에 끌어내릴 수 없어서, 거짓
선거공약의 남발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 있다. 실질적으로는
선거를 대비한 자금동원력을 중심으로한 돈정치가 정치의 흐름을
좌우하게 되고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는 의회를 경유해 전국민의
이해관계로 포장된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 평등성은 사실은 피지배계급의 정치가 그 내부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평등한 참정권이 주어지면서
비로소 이전의 계급사회와는 달리 부르주아 정치의 매 계기는
계급투쟁의 장이 되었으며,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화두가
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형식성에 실질적 내용을 채우는 것,
민주주의의 폐지가 아닌 완성이 우리의 과제가 된 것이다.
복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사회제도로서 사회복지는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 비로소 필수적인 제도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특징은 자본가가 노동력을 하나의 상품처럼
구입한다는 데에 있으며, 노동력의 소유자인 노동자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력 상실 내지는 사망이
자본가에게 직접적인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즉 어떤 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칠 경우 자본가는 동일 노동력을 가진 다른
노동자로 대체한 후 임금을 주면 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복지는
더 이상 직접적 생산과정의 필수적인 계기가 아니다(노예제
사회에서는 비록 노예노동에 대한 착취가 이루어지더라도 노예의
상실은 곧바로 노예소유주의 입장에서는 재산의 상실로 이어
지기 때문에 직접생산자인 노예의 유지와 재생산은 노예주의
입장에서 볼 때 기본적인 경제적 재생산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위험으로 야기되는 문제에 대해
계급적 차원에서 대처해야 했으며, 생산현장의 외부에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켜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해 노동시간 및
노동조건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조항, 산재보상보험,
의료보험을 중심으로한 사회보험제도 등이 어느 나라에서나
도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및 노동조건을
규제하는 법조항의 제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장기간의 계급투쟁의 결과이었듯이
복지제도의 수립 및 확대는 장기간에 걸친 투쟁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노동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복지는 자신의
생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당연히 투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논의를 정리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는 한편에서는
자본관계를 재생산 하기 위한 자본가계급 측에서의 필요성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모순적인 자본관계의 재생산으로부터 발생하는
계급투쟁의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복지의 이중적
성격을 인식한다면 복지가 자본의 도구인가 또는 노동자투쟁의
결과물인가 하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 해답이
아님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는 자본주의적 모순의 필연적
결과이며, 자본의 모순은 복지에 투영되어 있다’
오히려 우리에게 과제는 복지가 주어지는 자본주의적인 형식 및
내용과,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경제와 정치 그리고 복지가
어떠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자본관계의 지양과
관련하여 복지를 어떻게 배치시켜야하는가 하는 점들을 해명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간략히
지적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1) 복지가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축적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자본의 원칙과
충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는 따라서 항상 부차적이며,
자본의 가치증식조건이 악화될 경우에 일차적인 공격대상이
된다.
2) 복지가 자본의 필요에서 마치 전체 사회구성원의 복리증진을
위해 주어지는 것과 같은 외양을 취하고 있으며, 운영의 주체가
주로 자본과 국가라는 점에 근거하여 복지는 자본의 시혜인
것처럼 주어진다. 국가 온정주의 역시 이에 근거하고 있다.
3) 복지는 자본이나 국가의 은총이 아니다. 사실은 노동자가
생산한 사회적 총잉여가치의 일부가 복지의 형식으로 재분배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복지는 임금의 대체물이 아니고
다른 형식으로 주어지는 노동생산물의 일부이다. 복지는 항상
삭감될 수 있는 수혜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것이다.
4) 어차피 전사회적인 노동생산물의 한 부분이 복지의 형식으로
재분배되는 것이라면,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굳이 자본가의
시혜를 호소하거나 국가의 온정주의에 기대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노동자가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사회적 기금’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다면 끊임없이 단협
때마다 하소연하거나 국가에 복지예산증액을 요청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사회적 기금의 조성은 어렵지 않다.
‘천문학적’ 액수의 각종 부정비리자금들의 환수, 이미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도용되고 있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재전용만으로도 일차적인 기금이 충분할 것이다.
5) 자본관계의 지양을 위해서는 단순히 임금이 상승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듯이 복지가 확대되는 것, 또는 경제논리나
안보논리를 복지논리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복지투쟁은 전사회적인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정치 및 경제투쟁의 대체물이 아니라 다른 여타
투쟁과의 관련성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