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이후 현대자동차
작업장체제의 변화에 대한 고찰*
- 고용게임을 중심으로
김경근
* 이 글은 2006년 비판사회학대회에서 발표되었으며,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구조조정 이후 현대자동차 작업장체제의 변화에
대한 고찰 - 고용게임을 중심으로”(서울대 사회학과, 2006)의
요약본이다.
1. 서론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노사관계의 성격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이 글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진행되어온
기업의 구조조정이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 작업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뷰러웨이의 문제의식과 기본적으로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뷰러웨이는 노동과정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효과에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동의 형성 메커니즘을 주목한 바 있다.
이 글은 작업장 체제에서 어떠한 생산의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를 살펴보았다. 현재 매우
좋은 기업 실적을 나타내면서 빠른 속도로 세계 5위권의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속한 노동자들은 예상과는
달리 고용불안, 장시간 노동, 높은 노동강도, 비정규직의 증가,
노동조합의 약화라는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현대자동차에서 이러한 모습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며, 이 원인을
‘고용게임’이라는 작업장체제의 특성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고용게임은 구조조정 이후 현대자동차 작업장에서 형성된 일련의
규칙과 이데올로기들, 그리고 그에 따른 효과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2. 연구방법
이 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변수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자들의 성격변화’이다. 98년 정리해고 이후에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 98년의 구조조정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구조조정
혹은 기업의 특정 전략은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체제라는 매개를 통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작업장 체제의 특성에 따라서 똑같은
구조조정이나 기업전략이라 할지라도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구체적인 지점들을 살펴보는 기존 연구들은 주로
질적 방법에 기반한 사례연구를 통해, 첫째. 크게 후퇴하고 있는
노동조건의 현황, 둘째. 기업들의 현장통제 전략, 셋째.
작업장체제의 성격변화, 넷째. 노동자들의 정체성 변화 등을
살펴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이후
변화된 기업들의 통제전략과 노동자들의 자발적 동의형성
메커니즘을 주목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위의 기존연구들과 비슷한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들이 존재한다. 첫째. 기존 연구들이
구조조정 이후 작업장 변화의 양상을 신경영전략의 심화로만
규정하는 것에 반해, 본 글은 작업장의 변화를 신경영전략의
심화와 고용조정에 따른 변화라는 두 가지 변화로 구분하고
있다. 둘째. 기존 연구들이 주로 노동조합 집행부를 담당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면접 조사한 것에 비해, 본 글은 다양한 지위와
다양한 현장조직의 활동가들을 면접 조사하고 있다.
3. 고용게임
‘고용게임’이란 ‘고용을 둘러싼 생산의 정치’, 즉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자본, 그에 맞서 고용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이라는 세 행위자의 전략과 행위,
그리고 이들 간의 양보와 타협과 투쟁’을 의미한다.
현대자동차에서 고용게임은 정리해고로부터 시작되어
완전고용합의서 체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로 고용의 유연화와 임금의 유연화 그리고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관철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은 ‘고용의 유연성’과 ‘물량에
의한 결정’이라는 규칙을 따르게 되고, 노동조건에 대한 양보와
비정규직 투입에 대한 양보를 거듭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 고용게임의 규칙
첫 번째 규칙 - 고용의 유연성 : 고용은 보장받을 수 없다.
두 번째 규칙 - 물량에 의한 고용의 결정 : 생산물량이
충분하다면 노동자들의 고용은 안정적이지만, 생산물량이
줄어든다면 고용은 보장받을 수 없다.
2) 고용게임의 목표
고용게임에 참여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목표는 쉽게 달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고용게임에 참여하는 한,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과 상대적인 고용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고용게임의 기본 규칙(고용의 유연성)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특성이 고용게임을 유지시키는 핵심이다. 바로 이
점이 기업과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표가 충족되는 한, 즉 고용과 임금과
노동시간이 유연하다는 게임의 규칙을 따르는 한, 노동자들은
역설적으로 고용과 임금과 노동시간을 기업으로부터
보장받는다.
3) 고용이데올로기
고용게임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게임에 수행하면서 특정한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
(1) 고용이데올로기의 첫 번째 특성 - 항구적인 고용불안
노동자들은 게임의 결과 얻게 되는 가시적인 성과들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게임의 법칙을 체화하면서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고용불안을
느끼고, 따라서 고용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2) 고용이데올로기의 두 번째 특성 - 고용을 위한 양보
끊임없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고용을
위해서는 다른 어떠한 조건도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관점’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제 노동자들은 고용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으로 ‘자신의 시간과 몸에 대한 양보를 통해
최대한의 생산물량을 확보하거나, 또는(그리고) 자신보다 더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를 확보함으로써 상대적인 고용안정을
확보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즉 “벌 수 있을 때(생산물량이
있을 때) 많이 벌어야 하고, 지금 당장(짤리기 전에) 벌어야
하고, (장래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회사가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들이 많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고용이데올로기의 세 번째 특성 - 지속적인 반복
하지만 고용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고용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금 불안과 양보의
과정을 반복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노동자들은
이처럼 계속되는 반복에서도 벗어날 여지를 상상하지 못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4) 고용게임의 효과
첫째. 고용게임은 임금의 유연화·노동시간의 유연화·고용의
유연화를 모두 확보한다.
둘째. 고용게임은 잔업과 특근을 ‘강요된 초과노동’이 아니라
‘성취와 보상’으로 변화시킨다. 즉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강도
강화가 ‘거부하고 투쟁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동의와 욕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셋째. 고용게임은 위계적 갈등을 수평적 갈등으로 전환시킨다.
이제 물량을 분배하는 회사는 심판이 되고, 물량을 빼앗아가거나
뺏기기를 거부하는 동료 노동자들이 적이 된다.
넷째. 고용게임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회사의
경쟁력과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동일시하게 만듦으로써,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회사의 생산성 향상
시도에 협력하는 모습을 가지게 만든다.
다섯째. 고용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조합원들과
노동조합 모두에게 비합리적이고 따라서 고용안정을 달성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노동조합은 ‘합리적’인 대안
제시, 즉 고용게임의 규칙을 인정하는 한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데 주력하게 된다.
5) 고용게임 붕괴의 가능성
현재 고용게임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은 뷰러웨이가
말하는 체계 위기 · 동기 위기 · 정당성 위기를 어느 것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계 위기가 찾아올 경우, 기업은
고용게임의 규칙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게임을 형성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고용게임은 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백한 한계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기위기와 정당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첫째. 고용게임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둘째. 고용게임의
참여자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고용게임에서 노동자들의 분할과
경쟁은 필연적이다. 셋째. 고용게임 안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선택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구조적으로 제한된 것이다.
4. 구조조정의 전개와 ‘고용게임’의 형성
고용게임을 형성시킨 구조조정을 특징적인 개별 시기들로
나누고, 그러한 각 시기들이 고용게임의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구조조정의
전개과정을 배경(신경영전략 시기) - 시작(1998년 정리해고) -
내면화(무급휴직 시기) - 완성(2000년 완전고용합의서)으로
구분하고 있다.
정리해고 수용은 ‘노동자들의 극심한 고용불안’,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상실과 단결력 약화’, ‘임금 삭감으로
인한 임금 체계의 유연화’, ‘구조조정의 규칙 인정’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98년의 정리해고 직후부터 무급휴직자들이 돌아오기까지의
기간은 구조조정이 일반 노동자들에게 내면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합원들에게 ‘생존자 의식’을 심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고 활동가들과 분리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이후의 효과적인
작업장 통제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이제 조합원과 활동가들은
서로 ‘다른 존재’가 되기 시작한다.
기업의 일상적 구조조정 공세에 직면하게 된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의 열망을 ‘물량’을 향한 열망으로 변화해나가기
시작한다. 98년 투쟁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험과 기억은 “물량을
확보해야만 내 고용을 지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고,
이것은 노동자들이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과 맞물리면서 노동시간의 증가로 이어진다.
또한 활동가들의 물량 확보를 위한 투쟁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킨다. 그 결과 물량과 구조조정은 맞거래 된다.
한편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감은 사측의 노동력 유연화 전략과
맞물리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확대를 낳게 된다. “누군가는
짤릴 수밖에 없다”라는 98년의 경험을 가진 노동자들은
‘고용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비정규직의 존재에 대해
합의 혹은 방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기업의
노동자 분할과 위계화 전략에 동조하게 되고, 이러한 변화는
다시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모습은 완전고용합의서를 통해 제도화됨으로써
현대자동차 작업장체제에 완전히 자리잡게 된다. 정리해고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고용게임의 규칙들이 2000년에 이르러 노사
합의된 단체협약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낳은 변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동의와
선호라는 현상이 오히려 노동조합의 힘으로 관철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한계는 깊이 있는 평가나
반성 없이, 이후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의 패턴을 설정하면서 확대
재생산되기 시작한다.
5. 구조조정 이후 고용게임의 확산
작업장 체제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행위와 그들간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고용게임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그
작동 메커니즘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고용불안,
비정규직, 일상적 구조조정, 작업장 갈등이라는 네 가지 주요
현상을 분석한다. 현재 이러한 현상을 야기하고 있는 핵심적
원인인 ‘고용을 매개로 한 전략’과 ‘노동자 분할 전략’은
뷰러웨이의 노동통제 유형 중에서 특히 ‘헤게모니적 전제’와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고용불안의 확장과 내면화
기업은 고용을 매개로 한 이데올로기 공세(고용불안에 대한
강조, 고용안정을 위한 양보와 협력의 강조)를 펼치는 한편 물량
조절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즉 생산량 변동을 통해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빠지게 하는 한편, 물량 확보를 미끼로 공장 간 ·
부서 간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고용조정에 대한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으며,
물량변동에 따라 고용불안을 일상화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가
확장된 고용불안은 노동자들을 회사의 통제에 순응하도록
변화시키고 있으며, 노동조합 활동이나 투쟁에 대한 참여
하락으로 연결된다.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고용위기를 말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고용위기의 근거로
잔업·특근의 감소와 생산물량 축소를 내세움으로써
고용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고용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들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 비정규직의 확산과 고착화
기업은 비정규직의 증가를 통해 유연생산체제에 유연고용체제를
연동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를
확고히 하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하는 한편, 실질적으로 일상적
구조조정에서 비정규직만 고용조정 함으로써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을 선사하면서 노동자들 간의 단결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
이제 현대자동차에서 생산성의 극대화 즉 ‘최대한 적은 수의
노동자들이 최대한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기’를 원하는 쪽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용인하는 이유는 비정규직의 존재로 인해 자신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보고 있으며, 무엇보다 심리적 안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한 노동조합 강화’를 선택하기보다는,
‘비정규직의 온존을 토대로 한 신체적·심리적 이득’에
만족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확산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면서 무기력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조합원들의
즉자적인 요구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심화시키고 고착화시키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3) 고용게임에 의한 구조조정의 관철
기업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데 있어 대신 물량을 보장해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동의를 확보하고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활동가들의 물량 확보와 신차 확보 요구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물량확보에 대한 열망은 노동시간과 임금의 유연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효과를 가지는 한편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요구로 나타난다. 물량확보라는 조합원의
이해관계가 생산량 달성이라는 기업의 이해관계에 정확히
부합되면서, 신규 인원 충원이나 노동시간 단축, 휴식 시간
확보, 노동 강도 저하, 심야노동 철폐, 모듈화와 전환배치 반대,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들은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 활동가들은 고용안정투쟁을
실질적으로는 잔업·특근 확보와 신차 확보로 사고하고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의 임금 체계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잔업·특근과 성과급의 확보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결과 자연스럽게 부서
차원에서는 대의원과 사측과의 협력관계가 생겨나고, 공장별로는
차종이관을 둘러싼 갈등과 신차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게
된다. 활동가들은 왜곡된 물량확보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면서 기업의 생산 유연화와 일상적 구조조정에 대한
동의 기제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4) 고용게임으로 인한 작업장 갈등 양상의 변화
기업은 활동가들의 고용안정투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물량을 매개로 한 현장통제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통제전략은 현재의 고용안정투쟁 방식으로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구조적인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활동가들은 (정규직의) 고용을 건드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과 노력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이제 현대자동차
작업 현장에서 고용을 제외한 쟁점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따라서 현장투쟁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잔업·특근 거부와
파업과 같은 생산거부 투쟁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이루어 진다하더라도 목표인 생산차질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특근이나 잔업의 필요성 때문에 활동가들이 투쟁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투쟁의 와중에서도 잔업 특근을 계속하는
모습, 투쟁 이후 결국에는 사측의 생산계획을 모두 달성해내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현대자동차에서 더 이상
실질적인 의미의 파업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5) 고용게임 확산의 결과
고용게임은 생산의 유연화와 비정규직의 확대를 노리는 기업의
전략에 의해 작업장체제에서 더욱 더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 활동가들의 대응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고용게임에 의한 활동가들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 작업장 체제는 고용게임의 효과
심화와 행위자들의 고용게임 내면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기업의 구조조정이 손쉽게 관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동의가 확보되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증가, 비정규직의 확대,
노동조합 운동의 약화라는 현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 과제들은 98년의 경험 이후
모두 ‘고용안정’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용을
위한 그 노력들은 오히려 고용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고용을 위한 노력들이 게임의
규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사측의 현장
장악력 증대와 노동조합의 현장 통제력 약화로 이어지게 되고,
계속적인 구조조정의 관철로 인한 노동조건의 악화와 일자리의
절대적 감소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의 심화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대응
방식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업이 노동자들의 동의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기업은
자신들의 계획과 명령에 대한 노동자들의 동의를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동의까지 확보하고 있다. 즉
기업의 발전이 곧 노동자들의 생존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행위자들이 기반하고 있는 ‘합리성’이
기존 질서의 유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합리적 선택’이 기존 질서에 대한 ‘동의형성’으로
이어지고, 저항의 부재를 낳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비단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6. 결론
이 글은 현대자동차를 사례로 지난 1998년부터 기업 구조조정이
작업장체제의 변동에 미친 영향을 ‘고용게임’이라는 특수한
동의형성 기제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1998년 이루어진 고용조정은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크게
훼손하면서, 노동조합의 활동방향을 고용보장의 강화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2000년 현대자동차
노사의 단체협약 과정에서 완전고용합의서를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 결과 현대자동차에서는 고용게임이라는 독특한 성격의
작업장체제가 형성되었다.
물론 고용게임 속에서 기업의 이해는 배타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측의 이해와 조정되어 나타난다. 기업은 ‘(최대한
싼 비용으로) 원하는 만큼의 생산의 달성’을, 그리고 노동자는
‘고임금과 고용안정감’을,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유지·강화’라는 서로의 이해를 모두 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용게임에서의 이해의 조정은 기업의 이윤과
경영을 제한하는 것이 될 수 없다. 현재 기업은 자신의 의사
결정에 있어 모든 형태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노동의
대항권력은 오히려 그러한 유연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행위와 선택은
구조적으로 제한적이며, 노동자들의 장기적인 목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재 획득하고 있는 성과조차
안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고용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원론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고용게임의 규칙들, 고용게임이 기반하고 있는 논리들에
대해 다시 검토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원리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