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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 미래는 있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27호
김세균

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미래는 존재하는가?

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미래는 존재하는가?

김 세 균 / 소장





1.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와 부르주아민주주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사회이다. 이 사회는 어떤 시기 어떤 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계급투쟁’ 속에서도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가 전사회적으로 관철되는 것을 통해 유지되고 재생산된다. 이 때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사회에서 강권 사용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면서 ‘사회의 곁과 위에 선 특수한 공적 권력체’라는 형태성을 지닌 국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사회의 국가는 ‘궁극적으로는’ 자본권력의 정치적 표현, 즉 ‘자본주의국가’ 내지 ‘부르주아국가’이다. 이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를 가능케 하는 제1의 지배장치로서 기능하게 된다.
다른 한편, 제도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이런 저런 ‘부르주아정치세력’은 집권을 위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에서도 부르주아 지배체체를 유지하고 제도정치권의 정치를 주도함으로써 무엇보다 국가의 부르주아국가로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 활동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자본주의사회의 유지․재생산시키는 부르주아정치란 무엇보다 국가권력과 자본의 경제적 권력 및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에 의해 밑받침받는 가운데 제도권 정치를 주도함으로써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를 전사회적으로 관철시켜 나가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노동의 정치’ 내지 ‘노동자․민중정치’는 기본적으로 대중정치 내지 비제도적 운동정치의 형태를 취하는 가운데 자본주의적 착취와 부르주아 지배에 대항하여 ‘착취의 폐기’와 ‘노동자대중에 의한 정치의 직접적인 전유’를 추구하는 정치이다. 부르주아정치와 노동자정치는 서로 대립되는,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계급정치’의 두 형태에 속한다. 이 두 형태 이외에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중간층 정치’나 ‘시민정치’와 같은 제3의 계급정치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제3의 정치들은 완전한 의미의 독자적 정치라기보다는, 대체로 부르주아정치와 노동자정치의 이런 저런 요소들을 함께 지니면서 때로는 노동자정치와 연대하는 정치로서, 때로는 부르주아정치에 종속된 정치로서 출현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그간 ‘계급정치’가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간의 한국에서는 노동자․민중정치가 억압되고 노동자․민중정치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이 봉쇄됨으로써 부르주아정치라는 계급정치의 한 형태만이 정치를 거의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부정치, 금권정치, 지역정치, 붕당정치 등은 계급정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정치가 정치를 거의 독점하는 가운데에서 나타난 부르주아정치의 여러 형태들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그간의 한국정치는 ‘계급정치의 비활성화’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정치의 과소와 부르주아정치의 과잉’에 의해 특징지워져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부르주아 정치체제는 크게 보아 (1) 부르주아지의 전사회적인 계급지배를 이른바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와 같은 시민권 내지 국민기본권과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보장을 통해 관철시키는 ‘부르주아민주주의 정치체제’와, (2) 그러한 시민권과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가운데 사회과정이 국가의 적나라한 강권 사용에 의해 매개되는 ‘공개적으로 독재적인 부르주아정치체제’로 구분될 수 있다. 이때 그 현대적 형태가 ‘자유민주주의체제’인 전자는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체제’라고 부를 수 있다면, ‘권위주의체제’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후자는 ‘부르주아지의 비헤게모니적 지배체제’로 규정할 수 있다.
군부독재체제 하에서 한국의 정치는 후자, 즉 (군부세력이 그 가장 중심적인 추동력이 된) ‘공개적으로 독재적인 부르주아정치’에 의해 특징지워져 왔다. 그러나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과 이를 이은 밑으로부터의 노동자․민중투쟁은 적나라한 강권사용을 앞세우는, 공개적으로 독재적인 부르주아정치를 통한 체제 유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이른바 ‘민주화’ 과정이 우리 사회에도 도입됨으로써 정치체제의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로의 이행이 일정하게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제도권학자들은, 한국은 그간의 민주화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로의 이행기’를 거쳐 이제 ‘민주주의의 공고화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비록 그간의 민주화과정을 통해 국민기본권이 신장되고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가 진척되긴 했지만, 민주주의를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옳은 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양심수’로서 투옥되고 있고, 국민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제약받고 있는 데다가 안기부법의 개악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후퇴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간 이루어진 한국의 민주화란 노동자․민중을 체제 속에 적극적으로 통합시키려는 지배층 자신의 헤게모니적 프로젝트의 산물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투쟁에 의해 힘겹게 강제된 것을 특징 지니고 있다. 더욱이 그간의 한국 민주화과정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진출과 성장을 저지하려는 지배층의 반동적 공세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굴절되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 이후의 한국사회의 정치적 발전과정을 한마디로 ‘외면적인 일정한 진보 속에서 실질적인 내면적 반동의 증대’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출범 초기에 김영삼정권이 행한 개혁은 노동자․민중의 힘과 민중적 요구에 근거하고 노동자․민중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신장시키려는 ‘진보적 개혁’이라기보다는, 지배합리화와 지배효율성을 제고해 지배질서를 안정적으로 재구축함으로써 지배체제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증대하는 저항과 이들의 정치적 성장을 억누르려는 ‘보수적 개혁’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이러한 보수적 개혁은 한편으로는 민주개혁의 과제들이 산재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조속한 종결을 가져와 김영삼정권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급속하게 하락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득권의 침해를 거부하는 수구보수세력의 불만을 증대시켰다. 그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축소된 김영삼정권은 한편으로는 수구보수세력과의 화해를 추구하고 여당으로 국민적 명망성을 지닌 인사들의 영입을 추진하는 것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는 것을 통해 통치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권이 제창한 ‘개혁 대 보수’의 대립구도는 소멸되고 반개혁적인 수구보수정치가 한국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다.


2. 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미래

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미래는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한국사회의 발전경향 등과 비추어 볼 때 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과연 성장․발전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앞에서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로 구현되는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체제’로서 규정했다. 이 규정과 관련하여, 위의 질문은 과연 한국의 자본주의체제가 강권사용을 앞세우는 비헤게모니적 지배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체제로의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통합’을 만들어내는 헤게모니적 지배방식에 의해 노동자․민중을 체제에 통합시켜 자신의 지배체제를 유지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대중에 대한 자본주의체제의 헤게모니적 통합의 기초가 되는 것은 그 체제가 지닌 물질적 통합력이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성장․발전은 자본주의의 성장․발전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과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의식을 노동자․민중에게 내면화시키는 과정을 동반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자본종속적인 의식의 내면화는 체제로의 대중의 자발적인 통합을 크게 촉진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간의 경제발전을 통해 오늘날에는 대중을 자본주의적 대중소비문화체제 속으로 흡수시켜 나갈 물질적 힘을 크게 신장시키고 있다. 그 결과 인간관계의 개인주의화를 결정적으로 촉진시키는 자동차 보유가 보편화되고 있고, 소비주의나 향락주의를 만연시키는 각종 대중문화산업과 향략산업 등이 번창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의 자본주의적 대중소비문화체제로의 흡수는 그 속으로 흡수된 사람들의 ‘탈정치화경향’을 아울러 수반하게 되는데, 대중의 탈정치화가 이루어지면 질수록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불만과 저항은 약화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1990년대에 이르러 자본주의적 대중소비문화의 광범한 보급과 더불어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는 청년-학생층 및 중간층 등의 탈정치화 경향에 크게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간의 한국 민주화과정은, 비록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것이긴 하지만, 시민적 활동공간을 크게 확대시켜 중간층 및 청년․학생층 등의 보수화를 결정적으로 촉진하고 있는데, 중간층 및 청년․학생층의 이러한 보수화 경향 역시 이들의 탈정치화 경향과 더불어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한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크게 보면 여전히 그 속에서 반북-반공이데올로기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경일변도적인 이데올로기 지형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있다. 특히 ‘반북-반공이데올로기의 내면화 내지 무의식화’는 저항운동의 생성과 발전을 어렵게 하는 동시에 국가보안법체계가 존속되고 공안당국에 의한 ‘마녀사냥’이 지속적으로 자행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제도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부르주아언론들이 ‘국민여론’ 등을 앞세우면서 발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은 실로 지대한 것이 되었으며 - 이와는 달리 진보적인 노동자․민중언론이 전국적 언론으로 성장하는 것은 법적 제약과 자본 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에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되고 있다. ―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체제를 지탱하는 ‘시민사회적’ 힘 역시 오늘날에는 크게 ― 신장되고 있다. 그리고 독점적 대기업들의 출현과 더불어 강화되고 있는, 기업 수준에서의 자본종속적인 의식의 표현인 ‘애사주의’ 및 세계화․지구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시장에서의 한국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 없이는 한국 사회 전체의 생존과 발전을 기할 수 없다는 ‘국가경쟁력강화 이데올로기’ 등은 오늘날에 이르러 자본지배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고 있다. 나아가, 정치는 부르주아정치인들이나 저명인사들에게 내맡겨야 하는 사회적 실천영역으로 여기는 종복의식 역시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영속화시키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체제에 내재해 있는 노자간의 계급모순은 위에서 든 요소들의 작동만으로 부르주아지배체제가 노동자․민중에 대한 헤게모니적 지배체체로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부르주아 지배체제가 노동자․민중에 대한 헤게모니적 지배체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가운데 총자본의 직접적인 계급적 이해를 희생시키는 ‘양보적인’ 민중통합책의 강구를 통해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을 보장하고 노동자들에게도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기준에 비추어보아도) ‘정당한’ 분배몫을 배분해 주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먼저, 한국의 자본주의는 (민주노조운동의 그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잔업의 수행 없이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 상에 요구되는 최저생계비를 확보할 수 없는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체제이자 노동자․민중에 대한 초과수탈체제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잔업의 수행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문화적 생활 등을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감소시켜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을 불가능케 한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가 노동자․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초과수탈체제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우리는 임금인상을 위한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이란 무엇보다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소기업 노동자들 보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노동자들의 임금인상투쟁 역시 초과착취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 점에서 일부 논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은, 대기업노동자들의 ‘노동귀족화’ 등이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 현상만을 절대화하는 견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다른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는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의 도가 대기업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의 도보다도 높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중소기업노동자가 보다 높은 초과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은 한국자본주의가 중소기업의 하청화, 계열화 등으로 말미암아 중소기업에서 생산된 잉여가치의 많은 부분이 항상적으로 대기업으로 유출되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초과수탈체제의 유지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설득만으로 이들의 체제로의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초과착취 및 초과수탈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기 위한 억압적 노동통제정책의 강구를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다. 억압적 노동통제정책의 강구는 동시에 ‘민중통합적인’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의 수립을 어렵게 만든다.
다른 한편, 이른바 ‘세계화․지구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자본의 세계적 진출과 세계시장에서의 국제경쟁력 강화는 오늘날 한국자본주의의 사활적 문제로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오늘날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농민층의 광범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WTO체제의 출범과 더불어 행해진 농산물시장의 대폭적인 개방과 노동자대중의 유례없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여야합의에 의해 행한 노동법의 개악은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개방화 등의 구호에 의해 대변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어디에서나 자본운동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규제를 포함한 모든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노동자․민중에 대한 ‘양보’를 최소화하려는 독점부르주아지의 새로운 반동적 공세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그런데 사회질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신흥개발국에서는 개발독재체제 하에서 형성된 관료적․권위주의적 규제를 철폐시키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규제의 철폐는 ‘자본운동의 자유화’에 기여하는 것이지, ‘사회질서의 민주화’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독점부르주아지의 이러한 반동적 공세는 무엇보다 임금상승의 억제,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 복지의 축소, 실업층의 양산,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권리의 훼손과 같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심대한 훼손을 가져오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훼손은 아울러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 및 정치적 민주주의를 많든 적든 후퇴시키고 있다. 이 점에서 사회질서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많든 적든 민주주의의 신장을 방해하고 이미 성립된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오늘날에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다는 점,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말미암아 (개발독재체제 하에 있었던 신흥공업국에서는 밑으로부터의 민중투쟁이 민주주의를 일정하게 진전시켰지만)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훼손과 후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가 오늘날에 이르러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발전시킬 능력을 상실하고 있고, 그 결과 스스로 부르주아민주주의를 훼손시키거나 후퇴시키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중위적 내지 중상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자본이 기술경쟁력의 면에서는 선진국 자본에 비해 뒤진 반면 가격경쟁의 면에서는 후발공업국 자본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보다 민중억압적이고 민중배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는 조건을 더욱 축소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한국은 남북한 대결구조의 지속과 반북-반공이데올로기의 강고한 영향력 및 노동자․민주정치의 상대적 미발전 등으로 말미암아 재벌과 보수언론에 의해 대변되는 ‘보수적 시민사회’ 및 공안세력이 그 주축을 이루는 수구보수세력이 그 어떤 사회 보다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 조성된 ‘민주 대 반민주’ 및 김영삼정권의 초기에 조성된 ‘개혁 대 보수’의 대립구도가 소멸된 이후에는 제도권 정치세력 전체의 보수화 경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민중통합적인 부르주아민주주의가 한국에서 꽃필 수 있는 조건을 더 한층 축소시키는 것이다.

3. 결론 : 민중민주주의의 미래를 열기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아니라, 그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훼손과 후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이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이 자본의 사활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오늘날, 민중배제적인 정책이 아니라 민중통합적 정책을 강구함으로써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발전시킬 부르주아지의 능력은 고갈되고 있다. 이 점에서 오늘날에는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더욱 진전하는 나라란 이 지구 상의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한국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진전하기에는 더 많은 제약조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은 앞으로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공세라는 부르주아지배층의 반동적 공세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투쟁을 통해 쟁취되는 민주주의란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를 가능케 하는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헤게모니에 파열을 내는,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 즉 민중민주주의의 성격을 지닌 민주주의가 될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에 앞장선 김영삼정권은 노동자총파업투쟁에 부딪쳐 출범 이후 최대의 타격을 입었으며, 그 틈새를 뚫고 발생한 한보사태와 현철사건으로 말미암아 보수세력 전체의 광범한 이반을 불러일으켜 정국을 주도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지고 있는 제도권 정치세력들 간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는 김영삼정권의 정국 장악력 상실로 말미암아 생겨난 중심세력의 부재 속에서 지배블럭의 중심세력이 되려는 보수세력들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15대 대선을 통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한 세력도 정국을 장악할 확고한 주도권을 차지해 지배블럭을 안정화시킬 능력을 소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사실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뒷받침할 안정적인 지배체제의 구축이 한국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비록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러한 공세를 주도한 정치세력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 지배블럭의 안정적 구축을 불가능케 할 정도로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하고, 이를 통해 부르주아민주주의와는 구분되는 민중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정치가 활성화되고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진척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15대 대선에서는 노동자․민중진영을 포함한 민주진보진영의 거의 대부분이 후보전술을 가지고 대선에 참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번 대선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관련하여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민주진보진영 내부에 소부르주아적․개량주의적인 흐름과 의회로의 진출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사고하는 합법주의적․의회주의적 흐름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은 노동자․민중 정치의 활성화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크게 방해하는 사태이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조락하고 있는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민중민주주의의 미래를 적극 개척하기 위해 부르주아지배층에 대한 투쟁은 물론 진보진영 내부의 투쟁 역시 힘껏 조직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한/노/정/연

1997-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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