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끓는 저항의 지리산 4
재곤이
이제 연하봉입니다. 세석에서는 2.6km, 장터목까지는
0.8km입니다.
연하봉은 장터목을 가운데 두고 제석봉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여기는 구름이라도 몰려오면 그 신비스러운 황홀경에 넋을 잃고
만다는 선경이라 합니다. 그래서 연하봉에서 촛대봉까지의 길은
한여름이면 온갖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향기가 지천에 날리고,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고사목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절경을
보여준답니다.
연하선경이라고 지리산 십경 중의 하나로 손꼽혀 왔는데
내려다보는 경치와 기암괴석, 고사목 등의 경치가 선경(仙景)을
방불케 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지리산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 아닌 곳이 없는데 그중 뛰어난
경치 열 곳을 정하여 지리산 십경이라 붙여졌답니다. 지난
1972년 지리산산악회에서 지리산의 대표적인 자연경관 10곳을
지정하여 발표했던 것인데 지금은 세간의 인정을 받고 있다
합니다. 물론 다른 곳의 경치가 더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경치를 보고 느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니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하고 소개합니다.
천왕일출(天王日出)
해발 최고봉 1,915m 위에 서서 끝없이 펼쳐지는 운해를 바라보며
맞는 해돋이의 광경은 천하의 장관이라는군요. 이 장관을
구경하는 것은 옛부터 삼대에 걸친 공덕을 쌓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선택 받은 선경이라고 한답니다.
노고운해(老姑雲海)
노고단에 드리우는 운해는 지리산 남쪽을 휘감아도는 섬진강의
습한 기운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구름 위로 솟아나는
산봉우리들이 섬처럼 솟을 때면 그 경치는 가히 입을 다물지
못한다는군요.
반야낙조(般若落照)
해발 1,733m 반야봉은 지리산 제2봉인데 예부터 천왕일출,
반야낙조라 불릴만큼 경관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해가 서녘으로
기울어질 무렵 창연하게 불타는 낙조는 자연이 만든 가장 장엄한
최후의 잔치라 할만 하다고 합니다.
직전단풍(稷田丹楓)
단풍을 말하지 않고는 지리산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풍이 아름다운데 그 중 삼홍소는 피아골 단풍의 핵심을 이루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리산 직전마을에서 임걸령까지 약 8km에
이르는 단풍은 지리산도 물들고, 계곡 물도 물들고, 그를 거니는
사람도 물들어서 산홍, 수홍, 인홍하여 삼홍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에 밀려 삼홍소 앞에 다리가 놓여지면서
주변경관을 많이 해치게 되었다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목의 단풍나무들이 불타 없어졌기 때문에
예전의 풍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을 단풍보다는 한여름의 녹음과 청정한 계류, 봄철의 산꽃,
겨울의 설화가 꼽히고 있답니다.
벽소명월(碧宵明月)
태고의 정적 속에서 주변의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벽소령
명월은 천추의 한을 품은 듯 차가워 푸른 유기(幽氣)마저
감도는데 그 신비경이 가히 일품이라고 한답니다.
불일현폭(佛日懸瀑)
쌍계사 뒤편의 3㎞ 정도에 청학봉과 백학봉이 나오고 이 협곡
속에 백척단애에서 포말로 부서지며 쏟아지는 천하절승
불일폭포가 나옵니다. 그 우렁찬 폭포 소리는 귀가 멀 지경이며,
온통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주위의 경관도 장관이라 합니다.
세석척촉(細石躑躅)
세석고원의 철쭉으로서 봄이면 수십만평의 고원지대에 철쪽으로
뒤덮히는데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철쭉의 화려한 만개는 눈을
멀게할 정도랍니다.
섬진청류(蟾津淸流)
지리산을 남서로 감돌며 진안, 장수에서 흘러내려와 운암을 거쳐
하동포구에 이르는 섬진강은 그 물이 맑고 푸르러 한 폭의 파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강 양쪽에 펼쳐진 백사장은 하얀
명주천을 깔아 놓은 듯한데, 이 백사청류, 청산록수는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칠선계곡(七仙溪谷)
천왕봉에서 발원한 급류가 절벽을 뚫고 장장 50리의 머나먼
협곡을 흘러 의탄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이루어진 계곡.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자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남한삼대계곡'의 하나로 꼽히고
있답니다.
연하선경(烟霞仙境)
해발 1,667m의 연하봉 준령에 층암절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고, 고색창연하게 이끼 낀 그 기암괴석 사이로 여러 가지 풀
꽃들이 피어나는데 싱그러운 풀향기와 꽃향기가 그윽히 풍기는
가운데 고사목의 시체들이 푸르른 나무, 아름다운 꽃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무비(無比)의 선경(仙境)’이라고 한답니다.
연하봉을 지나면서 까마득히 보이던 천왕봉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산천을 몸으로 접하면서 걷는 산길은 역사
속에서 배회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 하였습니다.
고사목의 가지가 한쪽으로만 휘어져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강풍을 한쪽으로만 받아왔기 때문일까요?
강풍은 바람만은 아닐 것입니다. 정권이나 우리 국민들의 사시로
인하여 버림받은 한(恨)들이 한쪽으로 쏠린 가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휘어진 가지가 더욱 기이한 풍경을
더해줍니다.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입니다.
장터목은 연하봉과 제석봉 사이에 있는 곳으로서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북쪽 기슭의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매년 봄 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세우고 물물교환을
한 데서 지어진 이름이라는군요.
지금은 다섯개의 등반로가 모이는 집결점이자 천왕봉으로 오르기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여기에서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까지는 한시간이 채 못미친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는 제각기 싸온
도시락을 먹었는데 돌아다니면서 한 숟갈씩 얻어먹는 맛에 얼마
가지 않아 배가 부르도록 먹게 되더군요. 장터목에서 식사를
하고난 후 다시 천왕봉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천왕봉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더욱 가빠지더군요.
나름대로의 흥분을 가슴으로 느끼며 걷는 길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고산지대의 초원에 즐비한 고사목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음에 나서는 제석봉. 제석봉은 천왕봉의 자매봉으로
지리산에서는 천왕봉과 중봉 다음으로 높은 세번째
고봉입니다.
옛날 산신에 제사지내는 제석단이 있었다고 하여 제석봉이
되었는데 듬성듬성 서있는 고사목과 황량한 초원지대가 눈길을
끌고 있답니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지에 지리산 최대의 고사목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사실 아름다움보다는 처연함이 앞서는 것은 왜
일까요. 한국전쟁을 치르면서도 전나무와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
아름드리 침엽수가 빽빽히 우거진 지리산의 전형적인 고산숲의
경관을 유지했었는데 자유당 말기, 권력을 등에 업은 한 사람이
이 근처에 간이 제재소를 차려 놓고 거목들을 마구 베어내다가
사회문제화 되자 증거를 인멸한답시고 불을 질렀는데 그로
인하여 횡사목들과 초본식물만 자라는 황무지로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어이없는 실소가 가슴을 때리는군요.
그나마 그 많던 횡사목들도 고사목으로 치부되면서 사랑받아
왔지만 근래 들어 하나 둘씩 땅에 드러눕게 되면서 비만 내리면
그대로 흙탕물을 토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아픔처럼 역사는 지나가지만 산은 묵묵히 제 갈 길만 가고
있었습니다. 아픔처럼 시린 눈 속에 담겨지는 그림들이 이렇게
처연하다는 것은 아직도 지난 역사가 아닌 바로 발 밑에 살아
꿈틀대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살아 숨
쉬는 역사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군요.
드디어 천왕봉입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올라온 천왕봉인데 막상 닿아 보니까 밋밋해
보이더군요. 오면서 새긴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마치 천왕봉은
신선들과 천사들이 맞아줄 거란 생각에 휩싸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왕봉 꼭대기에 앉아 봅니다.
천왕봉에 서서 머얼리 노고단 쪽의 영봉들을 봅니다.
정말 엄청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저 멀리 노고단에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
솟습니다.
저 중간쯤 우리가 올라왔던 세석고원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으로
보면 우리가 온 길은 노고단에서 오자면 3분의 1밖에 안되는
길이더군요.
천왕봉 표시석입니다.
해발 1,915m. 지리산의 최고봉. 하늘을 받치는 기둥(天柱)이라
하여 천왕봉이라고 한다네요. 남한에서는 한라산 1,950m
다음으로 높은 산입니다.
지리산 최고봉으로서 해발 1,800m 이상의 중봉과 제석봉을
부장으로 동서 좌우에 거느린 위풍이 모든 산들을 발아래 꿇리는
위용이 있습니다. 남명 조식은 천명유불명(天鳴猶不鳴)이라고
찬탄했는데 '하늘이 울어도 결코 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어떤
역풍에도 그 위용이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하였답니다.
천왕봉을 느끼고 나서 우리는 바로 아래에 깎아지른 길을 따라
중산리 쪽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길은 정말 깎아지른 비탈을
이루면서 중산리까지 조금도 누그러트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깎아지른 바위 바로 아래에 천왕샘이 솟고 있었습니다. 이 샘은
남강의 발원지가 된다고 안내판에 씌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샘은 1977년 석공을 동원하여 사흘 동안의 작업 끝에
만든 인공샘입니다. 그러나 물 맛은 정말 끝내줍니다.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배가 부르도록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습니다.
마치 가슴의 응어리를 모두 흘려버릴 듯이.
두어 시간 가량 깎아지른 듯한 내리막 길이 이어지는데, 한시간
삼십분 여를 내려오니 법계사가 있었습니다.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00m의 높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 9년(548)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되어있는데 연기조사가 신라말의 스님이어서
연기조사 창건론은 맞지 않다고 합니다.
고려 말 우왕 6년(1380)에 당시의 장수 이성계에게 크게 패한
왜구들이 후퇴하면서 분풀이로 천왕봉 성모상을 칼로 찍고
법계사를 불태웠다고 전합니다. 그후 정심선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가 1908년 항일 의병 박동의 부대가 덕산싸움에서
일군에 패한 뒤 이곳으로 후퇴해와 일군에 맞섰지만 결국 다시
패하면서 일본군에 의해 다시 불타게 되었답니다. 그후
방치되다가 1981년 재건되어 절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항간에서는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말들이 전해지면서
역사의 질곡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답니다.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는데 높이 3.6m의 바위
위에 서 있답니다. 높이가 2.5m의 자그마한 모습인데 독특하게도
상 하층 기단을 제외하고 둔중한 자연암석으로 기단을
삼았답니다. 이 절에서는 이 탑을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하여 바위 아래에 적멸보궁을 지어놓고 있는데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법계사를 지나 한참을 내려오자 마지막 계곡이 시원한 물소리로
우리를 반겨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걸었던 발을 물속에 담그는
순간 '치지직' 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그러나 계곡 물은 차거워 1분여를 견디지 못합니다. 온 몸이
저려 오는 듯 했습니다.
여기저기 모여서 물에 발 담그고 있는 일행을 보면서 지난날
빨치산들도 이런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저기 저렇게 웅크린 우리 일행들이 마치 빨치산의 모습으로
여겨지더군요.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옆에 꽃이 피어 있습니다.
전 같으면 철쭉이라고 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철쭉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아까 세석고원에서 배운 철쭉은 잎이 이와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배울수록 어려운
것이 공부인가 봅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을 별러 지리산을 갔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마음껏 주유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산행기에 쓰지 못하는
생각들도 많았겠지요.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을 기점으로 지리산을 속속들이 파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생각으로 그칠지 빠르게 실행될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는 생각은 지난날 반드시 가야지
하는 마음보다 더 새록거리며 나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땐 이
산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 이름 모를 빨치산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서로 이야기하며 노닐 것입니다.(끝) (이 글은
울산노동뉴스 http://nodongnews.or.kr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