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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대선정국의 흐름과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27호
고민택


15대 대선정국의 흐름과 전망
정세초점 1
15대 대선정국의 흐름과 전망


- 부르주아 정치행태를 중심으로 -

고 민 택 / 편집위원





그 동안 불투명하고 심지어 불안정하게까지 보였던 대선정국이 부르주아 정파 간의 합종연횡이 가시화 되면서 상당히 정리가 된 느낌이다. 지금까지 정국이 혼미하게 비쳤던 가장 커다란 이유가 누가, 어떤 형태로 12월 대선에 최종적으로 나서게 될 것인가를 예상하기 힘들었던 때문이었다면 이제 그런 상황은 거의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과 이인제가 막판 후보 단일화를 이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DJP 연합과 신한국당 민정계가 내각제를 고리로 대선 전이라도 연대나 제휴를 할 가능성도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지금의 정국을 근본적으로 흔들 만큼의 객관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12월 대선은 DJP 연합의 김대중, 신한국당(신한국당은 조순과의 연대 이후 당명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의 이회창,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가 맞서는 3자 대결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이 글은 부르주아 내의 정치행태를 대상으로 한 글이기 때문에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분열과 야합

15대 대선이 지금의 3자 대결구도로 압축되기까지는 큰 흐름에서 봤을 때 신한국당(집권 여당)의 분열과 DJP(DJT) 연합의 성사(야권의 후보 단일화)라는, 지금까지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볼 때 매우 특징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부르주아 언론과 정치권은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원인으로, 기존 정치권 혹은 기성 정치인들의 낡은 정치행태를 들고 있다. 즉, 현재의 정치과정이 이념과 정치노선에 따른 정책대결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직 정권 장악 자체에만 목적을 둠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이 부분적으로 틀리지는 않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중요한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뒤집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부르주아 정치권 전체가 이념이나 정치노선이 처음부터 다르지 않은 보수정당 일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거꾸로 그 같은 낡은 정치행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낡은 정치행태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언론과 정치권이 자신들을 향해 그러한 주문을 한다는 것은 메스꺼운 위선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로 되는 것은 단지 위선이어서가 아니다. 이념이나 정치노선에 실질적 차이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있는 것처럼 비치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매우 중요한 정치적 효과를 얻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대중들로 하여금 기존의 보수정당 이외에는 다른 정치적 대안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진짜 기존의 정치권과는 이념과 노선을 달리하는, 혹은 달리하고자 하는 정치적 주장과 실천, 그리고 나아가 세력의 움직임을 현실정치로부터 철저히 고립․배제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기존 정치권이 보수정당 일색이라고 해서 구체적 사항에서까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 그들이 하나 같이 원칙적으로는 시장경제원리를 주장한다 해도 기아사태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해법을 달리할 수 있다. 금융실명제에 대해서나 한국은행의 독립 여부를 둘러싸고도 이견을 보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정말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정치적 쟁점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최근 공방이 되고 있는 양심수 문제나, DJP 연합이 성사되면서 쟁점으로 떠오른 대통령제냐, 내각제냐와 같은 논쟁이 그런 것들이다. 또한 이번 대선이 3자 대결로 정리되면서 최대의 정치적 이슈로 된 정권교체, 3김 청산, 세대교체 주장도 여기에 해당된다.


사회세력관계

신한국당의 분열과 DJP 연합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정치적 분열 혹은 정치적 야합이기에 앞서 그와 같은 분열과 야합조차 가능하게 한 어떤 힘이 있는 것이고, 그 힘의 결과, 즉 사회세력관계가 낳은 산물이다. 도덕적으로 아무리 형편없게 보이는 부르주아 정파간의 분파투쟁이나 합종연횡일지라도 그 배경에는 사회세력관계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신한국당의 분열은 무엇보다 96~97년초에 걸친 총파업투쟁과 한보사태 이후 잇따르고 있는 재벌그룹의 부도현상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부르주아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를 한국정치의 낡은 정치행태, 이른바 3김 정치의 표현이라거나, 3당 합당의 원죄 ― 3당 합당 시 부르주아 언론은 거기에 아무런 죄도 묻지 않았다. ‘구국의 결단’을 칭찬했을 뿐이다. ― 때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지배세력 자신도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존 정치권의 낡은 정치행태는 이를 더욱 가속시키는 조건이 될지언정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3당 합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비판받고 있는 이른바 DJP 연합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보면 소위 3김 정치식 정치행태의 전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도 다음의 두 가지를 떠나서는 역시 올바른 설명이 될 수 없다. 하나는 김영삼 정권의 정치적 실패에 따른 반사적 표현이라는 측면을 들 수 있다. 국민들이 김영삼 정권에 대해 실망하고 불만을 느끼면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따로 찾을 수 없는 현실(현재의 세력관계)에서 그 대안을 기존 부르주아 정치권 내의 야당(김대중)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에 따라 한국의 현실(지역에 따른 투표형태)에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야당 단일화가 불가피하다고 소극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 또 하나는 김대중과 김종필이 정치적 연대를 하는 것이, 정치권 전체가 보수화 경쟁을 하는 마당에 정치노선적으로 문제될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DJP 연합의 성립과 함께 정치공방이 되고 있는 내각제 논쟁은 이른바 보수와 진보 혹은 좌파와 우파 사이에 벌일 수 있는 정치적 쟁점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87년 6월 항쟁 속에서 제기된 대통령 직선제 요구는 지금의 논쟁과는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흐름

알다시피 96~97년초의 총파업투쟁과 한보사태 및 김현철 정국을 맞아 부르주아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심각한 위기에 몰렸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당연히 김영삼 정권과 신한국당을 향해서 나타났다. 김영삼은 자신과 신한국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면서 동시에 신한국당을 통해 정권을 재창출 해야하는 참으로 모순된 정치적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회창은 바로 이 같은 모순이 낳은 정치적 결과이다. 이 모순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이회창이 김영삼 정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불만과 요구를 해결해 내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모두 알다시피 그 모순은 계속해서 증폭되는 과정을 겪어왔다. 그 결과 신한국당은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회창은 92년 대선자금 문제, 신한국당 경선과정, 아들의 병역 문제 등을 통해, 그가 기존 정치인의 정치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기아사태 및 연속된 재벌그룹의 부도사태를 맞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이나 전망도 당연히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부르주아 정치권 전반이 보수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나머지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일관되게 유지하지도 못했다. 자신을 ‘개혁하는 보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노골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드러냈다. 전․노 사면을 들고 나오는 과정이나, 김종필과의 내각제 연대 가능성을 비춤으로써 대중이 한때나마 왜 자신을 지지했었는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비자금 정국은 결과적으로 신한국당의 분열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으며 DJP 연합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 자신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는 아무런 효과도 낳지 못했다.
김영삼은 이회창을 통한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맺은 이후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인제와 신한국당 내의 이른바 비주류가 벌이고 있는 일련의 정치행태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김영삼이 처음부터 이와 같은 2중 구사를 했었는지 아니면 과정 속에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이인제가 현재 지지율에서 이회창을 앞서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이는 이회창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 원인을 뒤집으면 거기서 바로 이인제 지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르주아 정치권 전체가 보수화 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이 부르주아 정파 사이의 이념과 정치노선의 차이를 보고 이인제에게 지지를 보낼 여지는 없다. 다만 기존의 부정부패한 정치권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켜줄 것을 원하고 있다. 이인제가 갖고 있는 정치적 이미지가 이러한 대중적 요구에 부합하고 있다. 동시에 이회창이 부딪친 정치적 문제에서 한발 비껴서 있음으로 인해 상대적 이익과 부수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인제가 김대중을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역시 약간의 개혁적 이미지는 있지만 또 한 명의 보수(기존) 정치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지 젊다는 이유만으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불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김대중이 현재까지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김영삼 정권에 실망한 대중이 그를 정치적 대안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가 이제 충분히 보수 우경화함으로써 그에 대한 지배세력의, 이른바 비토가 상당히 완화된 것도 한 이유이다. 한편 그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는 것이 지지율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으로 바로 그 때문에 일정한 고정지지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김대중이 그가 갖고 있는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에 걸맞지(?) 않게 DJT 연합에 의존하거나 비자금 폭로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권교체를 원하는 세력의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DJT 연합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상승이 크지 않은 것은 그 역시 기존 정치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대중 못지 않게 기존의 정치권 자체를 불신하는 대중도 그 만큼 많다는 것을 말한다.
김종필은 구시대 정치인을 대표하는 최고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가 유신잔당이 아니라 본류임을 주장하며 원조 보수를 외쳤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매우 미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대선정국의 와중에서 계속해서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가 독자적으로 출마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그가 누구와, 어느 세력과 최종적으로 손을 잡을 것인가가 대선판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내각제를 끊임없이 정치적 이슈화 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를 무기로 모든 정파와 접촉을 시도해왔다. 그를 최종적으로 DJP 연합으로 이끈 동력은 김대중이 꾸준히 지지율 1위를 유지한 것에 있다.
조순이 대선에 뛰어들을 수 있었던 배경은 첫째 대중이 기존 정치권과 기성 정치인에 대해 높은 불만과 불신을 갖고 있으며, 둘째 자신과 같은 정치적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이회창의 지지가 급격히 떨어져 공백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특별히 이회창과 같은 정치적 실험대에 오르지 않았으면서도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와 같은 색깔을 가진 이회창과 이인제 사이에서 대표성을 쥐지 못했던 것에 따른 것이다. 이인제와 이회창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가 이회창과 결합함으로써 5자 구도로 진행되던 정국이 3자 대결로 압축되었다.


약간의 전망

이회창은 3김 정치 청산을 전면적으로 들고 나왔다. 조순과의 결합을 이끌어냄으로써 그의 주장에 힘이 조금 더 실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회창은 3김 정치 청산을 최종적으로 내세우기까지 계속해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그의 대중적 인기가 떨어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음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그대로이다. 또한 그의 정치적 기반이 신한국당 내 민정계라는 사실 역시 그의 정치적 이미지와 동떨어진다. 당내 초선그룹과 민주당의 가세가 어느 정도 이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가 남아 있지만 대선판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닌 듯 싶다. 또한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 정리되는냐가 사실상 이회창이 넘어야할 가장 큰 장애물이 된 상황이다. 자신보다 지지율이 훨씬 앞서고 있는 1, 2위 후보를 따라잡으면서 동시에 당내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안팎의 시련에 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의 성공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3김 청산을 부담없이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돌아선 대중적 인기를 만회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면 그에게도 일말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회창이 이인제의 국민신당을 김영삼 당이라고 대대적인 정치공세를 펴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회창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내에 이인제를 따라잡거나 그에 육박하는 수준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DJT 연합에 대항 할 수 있는 반 DJT 진영의 대표성이 그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을 때만 막판 역전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인제의 가능성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신당의 창당과 함께 그를 향한 정치권의 공세가 대대적으로 포문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민신당이 김영삼 당이라는 공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그가 넘어야할 일차적 과제이며 어쩌면 최대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의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정치권 내의 지지기반이 약한 것도 지금부터는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한국당 내의 비주류가 그의 잠재적 원군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먼저 신한국당 내의 비주류가 모두 그를 따를 가능성이 많지 않다. 이미 민주계는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한 하나의 정파로 되어 있지 않다. 또한 민주계 출신 현역의원들이 부분적으로 국민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이 때에는 김영삼 당이라는 공세를 이겨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인제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회창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일차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상징인 세대교체를 대중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에 성공하면 그가 반 DJT 진영의 대표성을 가질 수도 있다. 동시에 김영삼 정권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이회창과 김대중이 분명한 반 김영삼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에 비해 이인제에게는 이 문제가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DJT 연합을 성사시킨 김대중은 대선에서 승리할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 그는 먼저 DJT 연합에 비판적인 대중적 불만을 일단은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정권교체 주장이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에게도 같은 수준의 일체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보면 김대중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아직 충분조건까지 확보된 것은 아니다. 만일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이회창과 이인제가 단일화를 이루거나 이보다 가능성이 높은 이회창 이인제 중 어느 누가 범여권세력의 대표성을 획득하게 된다면 그것은 곧 과거와 별 다를 바 없는 지역주의가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지난 총파업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은 지배계급에게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그 여파가 지금의 대선정국을 규정하는 기본 출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선정국이 부르주아 보수정당간의 온갖 저질 정치공방으로 얼룩지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정권교체든, 3김청산(세대교체)이 되었든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제나 내각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리해고제를 철회시키는 것이다. 양심수를 힘으로 석방시키는 일이 대통령제를 지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내각제를 저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생활을 위협하고, 노동자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는 악법, 제도, 관행을 철폐시키려는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선거참여, 산별노조건설, 현장조직강화 등은 지난 10년에 걸친 투쟁의 결과와 경험을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귀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현장과 동떨어진 선거참여나 노동조합 내 쟁점에 발을 묶어두고 있는 실천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현장과 정치, 투쟁과 정치를 결합하기 위한 실천양식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공동전선이 될 수도 있고 정치신문일 수도 있다. 일상적으로, 사회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쟁점에 기권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견해는 선전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통일되지 않는다. 정치토론이 활성화되지 않고는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으며 단결된 힘이 나올 수 없다.
다음 정권이 어떻게 결정되든 그 정권의 성격은 자본의 구조조정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정권이 되리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순조로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신한국당의 분열에서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이 나라는 지난 50년 동안 유지되온 일당국가적 성격에 일정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를 기회로 활용할 준비를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 한/노/정/연

1997-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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