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김남주
불이 아니면 안된다고 자못
핏대를 올리는 녀석들이 있다
놈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적당한
아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불 앞에서 불과 타협한다
봄을 노래하는 녀석들이 있다
놈들의 주둥이를 비틀어라 그들의 눈은
사슬에 묶인 시인의 간과 닮고 있지 않다
날개도 없는 주제에
불을 버리고 산을 넘는 녀석들이 있다
놈들을 쏘아라 농부가 논둑에
말뚝을 박듯 그렇게 다부지게
불기둥을 박고 그들을 쏘아라
고무로 만든 새총으로도 떨어뜨릴 수 있다
불의 위선자들 가련한 휴머니스트여
머리 덜 깬 친구여 오 불행한 천사여
제발 좀 순조로워라 열기 속에서
타오르는 시인의 가슴속에서
불은 산이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바위가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거꾸로 걷는 활자가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비뚤어진 꽃잎이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불결한 나체가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노동자의 절딴난 팔이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농군의 굶주린 얼굴이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겨울의 이빨이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 약탈이 되어 너를 기다린다
불은끝나지 않는 고난이 되어
죽음으로써만이 끝장이 나는
신화(神話)가 되어 너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