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동자대회를 다녀와서
현장통신 2
전국노동자대회를 다녀와서
박 경 우 / 한라중공업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조직부장
관악산을 숨가쁘게 넘을 일도,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지하철을
이리저리 갈아 탈 일도 없이 조금은 편하게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난 십여년간 거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해온
전국노동자대회이지만 언제부터인가 합법(?)이라는 공간이
열리면서 이제는 전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한 공간확보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의례적인 행사로 그 긴장감이 없어 졌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파들간의 선전물 공세와 현수막 공세,
즉석에서 이루어지곤 했던 정치토론, 가투를 조직하자!,
중앙집회에 집중하자! 등등으로 사뭇 산만하게 보였던
노동자대회는 점차 사라지고 따뜻한 체육관에 둘러 앉아 현란한
조명 아래 박수치고 환호하는 전야제로 바뀌어 버렸다. 본대회를
사수하기 위해 밤새 정문을 지키며 경찰과 밀고 당기는 공방전은
사라지고 체육관에서 전야제를 마치고 삼삼오오 알아서 쉬러
가고, 다음날 역시 긴장감 없이 본대회를 맞이하는
‘전국노동자대회’가 된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 생각하며 올해의
노동자대회에 대해 간단히 소감을 적어본다.
체육관 안에서는 온갖 화려한 조명과 스테레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의 좋은 방송시설로 문화생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체육관 밖 한켠에서는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약 3천여명의
노동자, 학생이 따로 모여 집회를 꾸리고 있었다.
붙여진 두 대의 트럭을 단상으로 모여든 노동자, 학생들 앞에
걸린 현수막의 내용으로 보아 이 집회의 목적과 내용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전국 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주최가 되어 진행되고 있던 이
대회의 중앙 현수막 내용은 ‘우리는 국민이기 이전에 계급
노동자입니다. 민주노총의 무계급적이고 개량적인 정책, 더이상
지켜볼 수 없습니다. 현장조직 앞장서서 총파업 투쟁
승리하자’였다. 연사로 초청된 대부분의 현장 활동가들도 지금
민주노총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내용들이었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에서 온 현장활동가는 자신은
‘국민기업 기아’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그간의 기아사태와 그에
대응했던 노동조합 그리고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기아살리기 투쟁이 아닌 노동자 살리기 투쟁을 했어야 했다고
연설을 했다. 또 기아살리기 투쟁의 결과 7명중 1명의 노동자가
공장을 떠나야 했다며 민주노총의 지도노선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아울러 이번 임원선거에서 노동자 살리기를 내건
현장조직이 승리했다는 말도 있지 않았다.
이어 민주노조운동의 막가파(?) 전해투 동지의 전국적인 원직
복직 투쟁보고와, 인하대 김영규 교수의 대선을 맞이하는
노동자의 자세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견해를 듣는 것으로
집회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 즈음 체육관 안의 전야제도 마무리되어 전야제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삼삼오오 잠자리로 술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9일 본대회에 앞서 금속3조직 주최로 통합금속연맹 건설을 위한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현총련, 자동차연맹, 금속연맹이 공동
주최한 결의대회는 통합의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기보다는 통합의
정당성과 어떻게 내용을 채워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었다. 아울러 더 큰 의의로는 금속 세 조직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난후 ‘고용안정! 경제민주화! 정치세력화!’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본대회가 진행되었다.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에다 민주노총의 참여전술에 따라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이 출마한 영향이었겠지만 대회장 곳곳에는 권영길
위원장의 사진이 내걸리는 등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정당의
전당대회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하여튼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직무대행은 대회사를 통해 총파업
투쟁으로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려는 총자본의 공세를 박살내고,
진정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이해를 실현하는 진보정당의 건설을
위해 권영길 국민후보를 중심으로 강력한 대선투쟁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이창복 국민승리21 상임대표는 연대사에서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근로의욕과 창의성이
높아져야 하며 따라서 정리해고를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노동자 정치실천단’ 발족식을 갖고 권영길
국민승리21 대통령 후보를 총력지원키로 결의하고, 퇴직금
완전보장, 탈법적 정리해고에 희생당한 삼미특수강 노동자
원직복직, 택시업계 완전월급제 즉시 시행 등을 정부와 재계에
촉구하며 대회는 마마리 되었다.
‘고용안정’ ‘경제민주화’ ‘정치세력화’를 주 슬로건으로
내건 노동자대회를 지켜보면서 현장조직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대회는 지난 1년 동안의 현장투쟁, 전국 단위의 투쟁을
평가하고 또다시 새로운 투쟁을 조직하는, 그래서 고난한 투쟁을
함께 한 전국의 노동자에게 힘이 되는 자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현장에서 새롭게 발굴되는 현장
활동가들에게는 노동운동의 원칙이 각인되고 학습되는
자리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자대회는 진행본부의
구호를 따라 외치다 그냥 귀향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동지애, 노동자로서의 자부심 등을 느낄 수 없어 허전하고
아쉬움만 남는 대회로 기억에 남는다.
게다가 더욱 안타까움으로 남는 것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이 각 사업장의 임원선거를 통해 정확히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혹은
‘국민승리21’의 정책과 노선이 마치 노동운동의 대세인양
선전되고 선동되고 있는 현실이다.
좀더 다양한 기술적 접근과 내용적 결합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알찬 노동자대회, 올바른 전술이
대중적으로 합의되는 노동자대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98년의 노동자대회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