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공황기의 노동운동
‘절망의 몸부림’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김 세 균 / 소장
한국경제의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대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경제가 얼마나 깊숙이 위기의
심연으로 떨어지게 될 지, 위기의 심연에서 언제 다시
기사회생의 길이 열리게 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재편되고, 세계속에서 차지하는 한국경제의
위상이 어떻게 변모하게 될지는 아무도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다.
한국경제가 이처럼 공황의 깊은 늪 속으로 빠지게 된 것은 크게
보면 세계자본주의체제가 무엇보다도 자본이 엄청나게
‘과잉축적된’ 조건 속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과잉축적은 과잉생산을 만들어 내고 과잉생산은 이윤율의 하락을
재촉하며, 이윤율의 하락은 종국적으로 공황을 불가피하게
발생시킨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불어닥친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 국면에서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경제권이
불황의 태풍권에서 상대적으로 비껴나 있었다면, 현 시기에
진행되고 있는 위기는 일본경제의 불황이 기폭제가 되어 그것이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게 외환․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이 위기가 한국으로 상륙해 한국경제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는 형태로, 그리고 한국경제를 강타한 위기가
다시 역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키면서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의 위기를 재차 악화시키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른 한편, 다름 아닌 한국경제가 가장
강도 높은 공황에 빠져들게 된 데에는 금융․자본시장의
조기개방, 특혜금융과 정경유착에 의해 살쪄 온 재벌지배체제의
구조적 문제점, 차입경영을 통한 팽창위주의 기업운영,
정책당국자들의 무력한 대응 등에 크게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가 ‘태풍의 눈’이 된 가운데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이 위기는 아마도 일본이 대공황의
늪에 빠져드는 것에 의해 그 잠정적 절정을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일본경제의 공황이 다시 유럽과 미국으로 파급되는
것을 통해 세계 전체가 조만간 대공황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태가 이와 같이 진행된다면, 현재 한국을 엄습하고
있는 공황은 세계적 규모의 대공황 출현의 진정한 시발점으로서
의의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적 대공황은
(과잉축적의 수준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높고 세계질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의해 세계적 수준에서 자본간의 경쟁을
통제할 적절한 수단을 결여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1930년대의
대공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국적인 양상을 띄고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로 인해 겪어야 할 세계인민의 고통은
실로 엄청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러한 조건
속에서는 공황의 도래로 말미암아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현재 겪고 있고,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이란, 그것이 아무리
참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한국경제는 명백히 공황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공황이란 계급적대와 생산의 무정부성에 기인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의 폭발인 동시에 그 모순을 다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한 자본운동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라는
성격을 지닌 것이다. 공황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과잉축적된
자본을 대규모적으로 폐기시킨다. 또한 이로 인해 공황이
발생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로 내몰리게 되며,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임금인하와 노동시간의 연장 및 노동강도의 강화 등
착취의 강화를 위한 제반 조치들이 대대적으로 행해지게 된다.
이로 인해 공황은 자본에게도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근로대중에게는 생존권을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재앙으로
닥쳐오게 된다.
공황의 늪에 빠져들면서 한국의 지배층은 오늘날
위기극복책으로서 한편으로는 애국주의를,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분담론’과 ‘사회적 합의체제 내지 노-사-정 협력체제
구축론’을 제창하고 있다. 그러나 토착자본의 이익 보호를
앞세우는 애국주의의 구호는 초국적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것인
만큼 IMF의 구제금융에 매달려야 하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는 큰
목소리로 제창되기가 어렵다. 다른 한편, ‘사회적 합의체제
내지 노-사-정 협력체제의 구축’을 제창하는 목소리는 경쟁력을
지닌 소수 독점자본의 보호를 통한 위기극복을 위해 공황이 남겨
주는 모든 부담을 노동자대중이 ‘자발적으로’ 감수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공황이 노동자대중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만큼이라도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노동자대중에게로 이전되고, 사회경제적 과정 전체에 대한
노동자․민중적 통제가 확대되지 않는 한, 재벌지배체제가
수십번 해체되고 정권이 수백번 교체될지라도 고통분담론이란
사실은 노동자대중에 의한 ‘고통전담’을 요구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공황은 노동운동에도 엄청난 새로운 시련을 안겨 준다. 무엇보다
공황국면에서는 고용 유지와 고용확보를 위한 노동자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고용노동자층과 실업노동자층 간의 괴리가
커지게 된다. 게다가 자본의 요구를 수용하고 위기탈출을 위한
자본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노동귀족들의 목소리 역시 더욱
요란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식의 위기대응으로서는
노동자계급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모색될 수
없다. 이와는 달리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고 자본의
이익과 구분되는 노동자대중 모두의 일반이익을 확고히 옹호하는
것은 어떤 시기 어떤 조건 속에서도 견지해야 할 노동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다. 그리고 노동자대중 전체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공황기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 그런데 생존권
확보를 위한 노동자대중의 투쟁은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으로
내몰고 착취를 전면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을 통해서만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요구와 정면에서 부딪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점에서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은 공황기에는 그
자체만으로는 사실상 ‘절망의 몸부림’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생존권의 확보를 위한 투쟁은 노동자대중에게 재앙을
안겨 주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과 확고히 결합될 때에만 ‘절망의
몸부림’으로 끝나지 않고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생존권 확보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치열해지면,
공황탈출을 위한 방책으로서 제창되고 있는 ‘고통분담론’이나
‘노-사-정 협력체제의 구축론’은 그러한 투쟁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의 수립과 ‘파시즘적 탄압책’의 강구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돌변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세계화․지구화가 광범위하게 진척된 현재의 조건 속에서는
과거 칠레의 피노체트 군사정권 하에서 수립된 적이 있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파시즘체제’가 공황기 자본주의국가의 가장
유력한 형태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한 국가체제가
수립되든 아니든, ‘신자유주의적 파시즘화’의 물결은 조만간
한국사회에도 거세게 밀어닥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생존권
확보를 위한 노동자대중의 투쟁은 공황극복의 자본주의적 대안을
관철시키려는 이 새로운 정치적 반동을 이겨내는 것을 통해서만
‘절망의 늪에서 핀 희망의 연꽃’이 시들지 않고 만개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건설되고 산별노조체계로의 이행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되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의
노동운동은 ‘파국적 공황의 도래’라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새로운 거대한 도전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러한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순간 어떤 조건 속에서도 노동자대중
전체의 생존권을 지키고, 또 이를 위해 자본지배의 질서를
노동자․민중 지배의 질서로, 이윤생산을 위한 체제를
필요충족을 위한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것만이 위기극복의 유일한 노동자적 대안이다.
비상한 각오 없이는 비상한 사태에 대처할 수 없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는 앞으로 세계적 수준에서 전개될 노동자
대투쟁의 전형을 창출하고 억압과 착취의 굴레를 벗기는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선발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과제가 떨어졌다.
재앙을 축복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비상한 노력이 그 어떤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대로 우리는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