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대선투쟁 평가
97 대선투쟁 평가(정치연대)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진전을 위한 연대(준)
1. 들어가며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노동자계급이
지금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적
주체로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번의 대선투쟁은 이를 위한
하나의 전술적 계기로서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구축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노동자의
총파업에 이은 정치투쟁으로서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함께 전체 사회적 투쟁의 일부분으로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정치연대는 ‘국민승리21’에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쟁취 등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후보와 사퇴하지 않는 후보, 공동선거기구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입장을 전제로 한 협상을 통하여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10월 26일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이라는 공동선거기구를 구성하여 대선투쟁에
함께하였다.
여기에서는 공동선거기구였던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의 활동을 중심으로 과연 이번의 대선 투쟁이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투쟁을 통해 얼마나 잘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 또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대중적, 민주적
합의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었는지를
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자의적인
평가들, 즉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노동자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에서 조직적 결정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내고 이에 진보운동단체인 전국연합, 진정연, 정치연대 등이
결합하여 공동선대본을 꾸렸다는 사실 자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족한다든지, 또는 향후 지자체 및 총선 등의
선거정치를 통해 제도 정치권으로 진출하기 위한 선거전략적
관점에서 득표율 및 선거행태, 지역적 지지도, 특히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고 ‘이
정도면’하는 추상적 계량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합리화한다든지
하는 평가들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다.
2. 총괄평가
국민승리21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 후보전술은 국민후보로서의
선거운동을 기조로 설정함으로서,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당면한 노동자의 투쟁과 결합하면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망 속에 선거투쟁이 전개되기에는 애초에
한계가 노정되어 있었다. 탈계급적 후보전술로서 국민후보기조는
출발부터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전국연합 제6기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공동의 선거기구(가칭:
민주개혁국민연합)을 제안하고, 여기에 민주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후보를 추대한다’고 결정하였으며
진보정치연합의 2기 임시대의원대회의 대선방침에서는
‘국민후보운동을 전개한다’고 결정하였다. 민주노총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였다. ‘막강한 투쟁력을 발휘했으나
교섭력과 정치력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총파업이 평가되면서
제기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97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바
있는 ‘98년 지자제선거 대거 진출 -> 98-99년 정당건설 ->
2000년 국회원내 진출을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화사업을 힘차게
전개해나간다’는 일정에 따라 제도정치권으로의 민주개혁적
후보의 진출을 그 목표로 잡은 것이다. 노동해방의 총체적
표현으로서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단순히 제도권 진출을 위한
세력과시를 ‘표’로서 보여주기 위해 제도권의 정치일정에
의존하는 오도된 정치세력화 전망에 따라, 후보명칭에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지향을 의미하는 민중후보 또는
노동자후보가 타당하다는 의견은 묵살되고, 전국연합과 진정연이
제안한 국민후보가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국민승리21의 주체는 노동자가 아니라 국민, 즉 ‘보통
봉급생활자들과 평범한 납세자’로 설정되었으며, 민중의례는
국민의례로, 작업복은 양복으로, 노동자대표는 국민후보로
바뀌었다. 국민후보가 내건 정책공약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내민
‘사회복지 대혁명’이었으며, 따라서 정리해고, 퇴직금문제 등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투쟁을 요구하는 노동대중과
함깨 호흡하기란 애당초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정치연대의
결합이후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로의 조직개편이
일어나면서 합의문에 따라 노동자, 민중의 대의와 정치세력화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대통령후보로서의 성격이 재규정되고,
선거강령으로서 재벌해체와 독점자본에 대한 민주적, 민중적
규제를 강화하고,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부분이 채택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선거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합의문의
정신은 여러곳에서 훼손되었으며, 이전까지의 선거운동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15대 대선의 성격으로서 ‘21세기에
경제번영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제시된다든지, IMF시대에 걸맞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하는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홍보슬로건이 채택된다든지 하는
결정들은 그 나름의 내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권영길위원장을 97대선에서 국민후보로 추대하면서
고용안정을 위한 총파업을 수행하기로’ 결정한 9월 5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97년
대선후보전술은 96-97년 겨울의 총파업시 전개되었던 노동자
대중투쟁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후보전술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운동기조와 같은 맥락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기조의 설정은 다른 선거와 달리
전국적 집중성이 강한 대통령선거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선거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에 기초한 선거전략에 의존한 결과일 뿐이다.
득표전략으로 볼 때에도 지역주의와 보수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으며, 민주노총까지 결합한
선거에서의 그 유일한 방안은 계급적인 기조와 요구로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는 물론 막바지 IMF지원금융국면에
접어들어서까지 노동자가 아니라 봉급생활자의 요구를
내세우면서 계급적 요구를 희석하고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경향이 주도적으로 관철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오히려
상실하였으며, 이러한 취약지점을 비집고 들어와 한국노총,
전국연합을 중심으로 유포된 정책연합에 기초한 정권교체론이
대중적 영향력을 가짐에 따라 민주노총 조합원 숫자만큼도
득표로 연결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선거기조는
동시에 활동가, 선진노동자, 학생 등이 투쟁, 재정 등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92년
선거투쟁시 전국적으로 표출되었던 열정은 사라진 것이다.
이와 같이 계급운동이 아니라 국민운동적 기조에 기초한
정치조직과 전선조직 그리고 대중조직의 환상적인 결합은
그야말로 ‘환상’으로 마무리되었다. 합법선거주의에 매몰되어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는 안중에도 없이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을
위해 표계산에만 열심인 정치조직, 선거 막바지까지 분명한
정치방침을 확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의 오랜 여망이라는
여야간의 정권교체를 일차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전선조직과
기조에 대한 대중적 논의를 거치지못하고 지도부의 정치방침에
따라 나서서 아래로부터 문제제기가 지속되는 대중조직의
3주체는 계속 삐꺽대면서 선거에 임했다. 총파업시 노동자
대중투쟁이 받았던 전국민적인 지지는 유실되었는데, 이는
애초에, 국민승리21을 주도했던 3주체가 총파업시 노동자
대중투쟁에 결합하였던 전국적이고 각계각층을 포괄한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조직적으로 이어 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발시부터 존재했던 이와 같은 조직적인 문제는 정치연대의
결합 이후 수차례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끝날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선거용 종이정당 등록과,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슬로건을 둘러싼 논란 속에 증폭되었다. 정치조직,
전선조직 그리고 대중조직의 ‘기계적 결합’을 통해서는 어떠한
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후의 선거경과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이후의 진로와 관련하여 새겨두어야 할
지점이다.
지자제 선거를 염두에 두고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식의
자의적인 선거평가를 기초로 이번 대선투쟁에서의 실패를
은폐하며, 87년 노동자대투쟁에 이은 민주노총 건설, 작년의
총파업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대중이 이미 체화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오도하는 일은 더
없어야 한다. 또 다시 노동자 민중이 일부 인사의 제도권 진출을
위해 득표전략적으로 고려된 ‘동원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노동자의 생존의 문제와 정치활동의 명암이 교차되는
당면한 투쟁, 즉 IMF금융지원을 계기로 강화되는 독점자본의
공세에 대응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3. 선거전술에 대한 구체평가
가. 15대 대선의 성격 규정과 관련하여
97년 대선을 계기로 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시도는 대선
총괄계획에서 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15대 대선의 성격을
‘21세기에 경제번영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조국을 건설해
우리 민족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나서느냐 아니냐를 가늠할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걸려있는 역사적 사건이다’라고 여느
보수정치세력보다 한술 더떠 애국주의적으로 규명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이미 국민승리21의 국민후보가 바라보는 15대 대선의
탈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 경쟁구도는
노동자 민중의 진보적 요구와 투쟁을 전제로 한
보수정치세력과의 차별성에서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대상화된
상대후보의 슬로건에 따라 유불리가 결정되고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우리 후보의 주요타격방향은 이인제이며, 최근
시작된 이인제의 약세는 우리의 호재이다’라고까지 비약하였다.
나. 득표전략
이러한 성격규정은 ‘계급투표전략과 집단이익 고취전략을 조화,
병행해야 한다’는 선거득표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계급투표전략은 여기에서 서술상 앞에 있지만, 보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말로만 들어간 측면이 강하다. 결국은 지금의
우리나라 유권자의 의식상 계급투표성향이 낮은 현실을 감안하여
집단이익 개념을 과감히 도입하여 대중적인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으로 되어있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선거를
통하여 계급의식을 제고하고 이를 표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봉급생활자, 납세자,
분단비용, 정리해고, 퇴직금, 5대질병 무한책임 등을
집단이익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애초부터 계급투표전략, 즉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요구를 기초로 한 투표전략은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추상화된 국민의 하나로 계급성이 탈각된
개별적 존재로서 가두의 인자로만 존재하고, 후보의 이미지나
좌표도 최대한 부드러운 이미지를 전제로 한 합리적인
진보주의자로서 총파업을 지휘하는 노동자 계급 대표자의 성격은
상실하였다. 그리고 중심 컨셉트는 ‘민중후보 백기완,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와 같이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정치지형의 조건상 이데올로기적 추상개념을 명확히
사용하거나 준이데올로기적 추상개념을 함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정치적 쟁점 형성과 지지확보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식으로 우회하여,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도 모를 몇차례의
여론조사 결과 민주진보진영에 바라는 핵심 선거정책으로서
‘21세기 사회보장 대혁명’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정치연대의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진 10월말을
기점으로, 또 계급적 성격을 물타기한 국민후보로서의 득표력이
없다는 것이 사실적으로 확인된 선거투쟁의 막바지에 ‘현수막
바꿔달기’ 등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를 통해 부분적으로
수정되나 전체적인 기조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투표전략이야말로 현재의 지역주의, 분단이데올로기를
통치기제로 하는 집권구도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꼴이며, 결국은
막판 지역바람과 사표기피정서에 휘둘리게 되어 그리도 열망하던
득표에서마저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 홍보
15대 대선의 애국주의적 성격규정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것이
홍보 슬로건이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일어나라
코리아’를 슬로건으로 내건 현수막과 벽보는 가히 압권이었다.
IMF금융지원을 계기로 한 공황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구호는
국민적 상실감을 왜곡시킬 수 있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경향을 유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바있다. 결국은 대중적 요구에
의해서 교체되는 해프닝을 연출하였으며, 대중적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97 선거투쟁에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총파업에
이은 노동자 민중 투쟁의 연장으로서 정리해고, 퇴직금문제,
민중생존권 등의 노동자 민중의 당면한 요구를 중심으로 홍보가
됨으로써 선거투쟁의 전술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했어야 할
것이다. 이는 특히 대중투쟁을 조직한다는 측면에서
민주노총과의 관계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이와
같은 기조가 초기부터 분명했다면 IMF지원금융을 계기로 한
정세는 오히려 대중적 분노와 불안을 조직하여 이를 투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득표로 조직하는 호재일 수 있었다.
그러나 대선후보로서 파격적인 삭발을 감행하고
일자리지키기운동을 선언하는 등의 기조전환은 이미 때 늦은
것이었다.
라. 조직과 관련하여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 각 조직의 낮은 결의수준과 기조와
정책상의 한계는 대중을 정치활동으로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 선진노동자를 정치실천단으로 집중시켜내고 이를
통한 정치활동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하는 정치조직의 토대구축은
제대로 이루지지않았다. 이는 노동자를 동원의 대상으로,
자금원으로서 배치함으로서 노동자 정치활동의 전형을 제시하고
이를 통하여 대선투쟁으로 나아가려는 기획이 뒤따르지 않았음을
반영하고 있으며, 정치실천단이 대중조직의 하부체계에 귀속되어
있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대중을 조직할
수 있는 토대로서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이 주도하고 있으며,
조합형식으로 조직된 대중을 선거참여를 매개로 정치투쟁에
나서게 해야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 전술이 구사되어야 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선거투쟁이었다.
한편 ‘대선을 통해 진보민주진영의 정치조직을 성과로 남기기
위하여 시군구(가능하면 선거구)지부로 회원화하고……이후
지방선거를 대비한다’는 조직기조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선대본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다.
노동자 정치활동의 구심으로서 정치조직은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정치쟁점화하기 위해서 노동자 활동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전국적
차원에서 구축되었어야 했다. 전국 시군구지부 또는 선거구는
오히려 지자체 또는 국회의원 선거 등 지역정치가 전면으로
등장하는 선거에서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으로 전국적인
정치쟁점이 중요하게 제시되어야 하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는
조직상의 혼선을 빚으며 시급하게 구축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11월 초 돌발적으로 추진됨으로써
많은 논란을 야기한 선거용 종이정당과 관련되어 나타난
비민주적인 운영방식이다. 97대선후보전술은 정치조직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출발하였다. 따라서
정당건설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구체화하는 도정에서 제기되는
고도한 정치행위로서 방향과 조직구성의 문제 등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었다. 전후좌우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선거를 앞두고 보다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하기 위하여
전술용 정당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고려가 가능한 사안이다.
그러나 국승21의 정책과 기조에 대한 상당 정도의 대중적 불신이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민주적 절차와 합의없이 제기된
종이정당은 합법주의적 투쟁에 매몰된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과
함께 전면적인 문제제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종이정당 건설이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에 얼마만큼의 방어벽 역할을 했는지
선거전술상 유리하게 작용한 정도가 얼만큼인지가 구체적으로
평가되어야 하겠다. 하지만 그간 정당건설에 대한 수많은 실험적
시도가 오히려 정당건설에 대한 신화를 허물고 대중적 신뢰를
떨어뜨리듯 시도조차 안하니만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닌지
짚어져야 할 것이다.
마. 유세와 관련하여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는 정치활동의 전형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가 유세를 통해서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대중동원과
쟁점형성에 한계가 있는 각 부문운동의 기획유세는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공단방문 등 노동부문의 유세마저 이벤트적 성격이
짙어 노동대중을 정치활동의 주체가 아닌 관람자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리고 주체형성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옐로,
레드카드 등은 유세를 희화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TV에서 나온다’하여 이번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미디어선거가 정착되어 간다는 평가를 제도권안팎에서
아주 쉽게 내리고 있다. 국민승리 21 역시 ‘70% 이상은 언론에
의해 결정’되므로 ‘언론을 의식한 후보일정만들기, 끊임없은
기사거리의 제공, 언론과 호의적인 관계만들기’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진보진영은 매스컴 선거에
이상가는 조직활동으로 이번 선거에 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선거 기조에서부터 계급대중운동과 거리가
멀어있어서 조직활동을 통한 선거운동은 출발부터 현실성을
상실하였다. 실제로는 접근의 현실성도 없는 미디어를 강조하는
선거운동방식을 택함으로써, 이미 불을 보듯 빤한 실패의 원인을
전가할 대상을 이미 준비해논 셈이다.
서구에서 대중과 분리된 좌익정당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전략 아래
포섭하기 위해 활용되는 미디어정치가 우리에게는 지역주의,
분단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과 자본의 지배전략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작용하고 있다. 한편 김영삼정권 이후 줄곧
이루어지고 있던 미디어를 통한 진보운동의 포섭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접근권이
차단되어있는 미디어는 전술적 활용의 대상일 뿐이며,
권영길후보를 외면하는 미디어를 원망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에
준한 선거전략이 구체화되어야 했다. 노동자 민중에게 카메라가
오게 하는 전략 그것은 노동자 민중의 힘을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점은 경험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대중의 요구를 배경으로
행동과 투쟁을 촉발하고, 투쟁의 결과를 자연스럽게 득표로
(굳이 필요하다면 카메라로) 연결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카메라에 많이 비치면 인지도는 높아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득표로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지난
국회의원선거에서 노태우, 전두환을 감옥으로 보낸 탈렌트급
인사조차도 지역바람에는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선거풍토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바. 재정문제와 관련하여
국민승리21의 선거기획안에 명시된 데로 ‘마음가는 데 돈가고,
돈가는 데 표간다’는 말만큼 명확한 선거평가 기준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대선투쟁은 명백하게
실패한 투쟁이다. 92년 대선과 비교하든, 최근의 북한돕기를
비교하든 모금된 돈과 관련해 비교한다면 노동자 대중은
마음으로부터 떠나 있었으며, 단순히 돈내고 표찍는
동원대상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대중조직과 함께하지 못한
92년조차도 자발적이고 대중적인 모금을 통하여 등록부터
TV후보연설, TV지원연설 등을 거의 빠짐없이 한 바 있다. 가장
어렵다는 재정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선거투쟁참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본전 생각나게 하는 선거기조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기부를 하는 모금방식은, 대중의 접근을 차단하는 한편 모금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법적으로 허용된
유세조차 돈이 없어 거의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러버린
것이다.
모금과정에서부터 100만원은 중앙위원, 10만원은 대의원하는
식의 차등을 두는 방식은 전형적으로 보수정당이 기부금 액수에
따라 전국구, 지역수를 배분하는 관행을 소규모로 흉내내는
것으로 말 그대로 소부르주아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따르면 해고자, 저임금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민중은 중요한 결정과정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으며, 돈이나
내고 표나 찍는 존재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민주노총의
정치실천단 구성시에는 모금액수에 따른 차별을 없앰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지만, 국민승리21은 마지막까지 직책,
직급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식의 모금을 했다.
4. 앞으로의 과제
가. 97대선의 성과와 과제
권영길후보는 30만 6026표, 1.2% 득표에 머물렀다. 민주노총이
나서고 진보진영이 결집한 선거로서는 92년 대선에서 얻은 1.0%
23만 8648표에 비견한다면 기대이하의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표를 기준으로 선거투쟁 전체를 평가할 수만은 없으며
오히려 그 결과를 도출한 성과와 한계가 무엇이었는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평가해
볼 때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몇가지 점은 주목해야 할 의미있는
것이다.
그 하나가 울산, 창원, 유성 등 노동자 밀집지구에서의
권영길후보의 높은 득표율이 그것이다. 국민승리21의 기조에
반발하면서도 노동자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는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밝은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득표결과는 국민승리21의 정책과 기조가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정되었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종이정당 건설과 몰계급적 슬로건, 유세내용 등과 관련하여
노동자 대중의 반발이 조직되었다는 점이 다른 하나이다.
개인차원에서 통신으로 항의를 하는 것은 물론 지역 및
정치위원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문제제기를 함으로서 동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대중의 요구가
보다 분명해짐으로서 정치세력화의 전망은 오히려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조직 차원에서 정당선택의 자유 등 대중의 정치적 활동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조직원리상의 기초일 것이다. 더구나
오도된 정치노선을 조직의 이름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며,
선거를 계기로 대중적인 정치활동의 전형을 구축해가고 있는
개인은 물론 정치실천단이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여건을
학보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정치세력화의 주체형성에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조직의 하부체계로 편재되어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강제되면서 스스로를 소진시키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나. 당면한 정세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여야간의 정권교체를 국민적 여망으로 판단하고 있는 세력에게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은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벌써
민족민주운동의 주요한 부분들에서 협력과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을 천명하는 등 이후 정치구도의 변화가 민중운동진영에
미치는 파장 역시 상당할 것이다. 또한 제도권 정치로의 진출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향후 제도 정치권의
선거일정이 가장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노동자 민중이 사회의 주체로 나서는 과정
속에서 지금의 과제를 위치지운다면, 98년 상반기 과제는 당면한
대중투쟁을 통한 정치세력화이다.
IMF지원금융을 계기로 애국주의를 앞세운 시민운동의 엄호아래
위기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국내외독점자본의 공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대통령에 취임도 하기전에 김대중당선자의
선거공약은 파기되어 IMF와의 협상안에 대한 100% 관철을 전제로
한 반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정책들이 입안되고
있으며, 금융실명제 유보,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의
관철의지를 지속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총파업 투쟁의 유일한 구체적 성과로서
도입이 2년간 유보되었던 정리해고제가 임시국회가 시급히
소집되어 사회적인 논의없이 졸속으로 도입될 조짐이다. 지난
총파업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험악한 형국에서의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확보와,
독점자본에 대한 민주적 사회적 통제를 통해 노동자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의 위기국면이라 할 현재의 시점에서 제도권의
정치일정에 따른 정치세력화의 경로 즉 지자제를 전제로 한
국민승리21의 대선후보전술에 대한 평가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조직의 건설은 지나간 투쟁의 성과를 청산하지 않고
계승하는 것이자 그 성과와 한계가 극복되는 방향에서
재조직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선을 계기로 한 노동자
정치활동의 성과를 조직하는 것이 그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투쟁의 결과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무비판적으로 이어 받아 정파적 이익에 따라 이용하려 한다면
이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