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운동의 계급적 재생
- UPS 파업과 AFL-CIO 반공조항 삭제의 의의
기획번역 2
미국노동운동의 계급적 재생
닛타 스스무(新田 進)
글머리에
1981년 8월 3일 미국 항공관제사노동조합(PATCO)은 임금을 연간
1만 달러 인상할 것과 주당 40시간 노동을 32시간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면서 1만3천 명이 파업에 들어갔다. 레이건 정부는 이에
대해서 조합원 전원 해고 및 노동조합 해체라는 공격을 가했다.
이 대탄압에 항거하여 조합은 과감히 파업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전면적인 패배로 끝났다. 이 사건은 이후 전세계를 석권하는,
‘규제완화․민영화’를 기조로 하는 제국주의의 현대적
정책의 표현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질을 명료하게 보여 주었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선두에 섰던 미국에서는 이미
1979년에 규제완화법이 성립되어 항공, 트럭, 철도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뒤흔들었다.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인
‘운전사․창고노동자․조수 우애조합’(통칭
운수조합, Teamsters, 조합원 128만5천명)의 경우, 규제완화에
의한 기업간 경쟁의 격화에 의해서 1980년에는 239개였던
트럭운수회사가 87년에는 125개로 줄어들고, 수익감소와 도산의
증대로 12만명의 조합원이 실업상태로 되는 조직적 타격을 받고
있었다.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탄광노동조합이 1984~85년에
1년간의 파업투쟁을 벌였는데 패배하였다. 장기간에 걸쳐서
치열하게 투쟁한 미국과 영국의 노동운동의 패배는 세계
노동운동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PATCO 패배이래
후퇴에 후퇴를 강요받아온 미국 노동운동의 흐름은 점차 자본의
공세로부터 노동자계급의 반격으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거의 1년간에 걸쳐서 휠링피츠철강(Wheeling Pitt Steel
Co.)의 제8공장을 폐쇄시키면서 투쟁한
전미국철강노동조합(USWA, 조합원 70만명) 파업의 승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팀스터스의 유나이티드 파슬 서비스(UPS)지부
18만5천명의 15일간의 파업에 의한 신노사협약의 거의 전면적인
승리를 들 수 있다.
미국의 유일한 전국 노동조합 중앙조직(national center)인
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회의(AFL-CIO, 79개의 산업별 직능별
조합으로 구성, 조합원 1,300만명)는 9월 21일부터 개최한
대회에서, 노사관계법(통칭 Taft-Hartley법)을 받아들여
포함시켰던 반공주의자 조항을 규약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47년의 태프트-하틀리법이 반공선서증을
조합간부에게 제출하도록 명령한 이후 50년만에
반공․체제형 노동운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이렇게
투쟁주체가 형성되고 있는 기초에는 ‘새로운 목소리’(New
Voice) 파(派)라고 불리는 조류가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목소리’ 파는 전미국철강노동조합, 팀스터스 등에서 연이어
새로운 집행부를 탄생시키고, 존 스위니(John Sweeney)를
AFL-CIO 의장에 취임시켰다.
‘규제완화․민영화’의 회오리는 미국의
노동자․근로인민을 곤궁의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그에
대한 반격투쟁이 시작되었다. 그 움직임은 반공․체제형
노동운동의 틀까지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에서의 반공․체제형 노동운동의 형성과정을
해명하면서 AFL-CIO와 계급정당의 동향 및 그 재생의 길을
더듬고자 한다.
1. UPS 파업 투쟁의 승리
최근 일본에서는 크로네고야마트의 판매운전사에 대한
사가와규빈(佐川急便) 판매운전사의 폭력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그 원인은 크로네고야마트가 소화물 집배시간(集配時間)을
변경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사가와규빈이 일을 빼앗겨
사가와규빈 판매운전사들의 수입이 감소되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기사를 읽어야 하는 우리는 참담하다. 미국의 택배
화물의 8할을 취급하고 있던 UPS의 화물은 파업이 한창일 때
우체국으로도 쇄도하였다. 당국은 지금이야말로 돈을 벌 때라는
듯이 일시적으로 시간제 노동자를 증원하여 이 화물을
처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전국우편집배인협회(NALC)의
체신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배달이 밀리도록 함으로써 UPS와
연대하였다. 노동자간의 경쟁을 이렇게 자기규제하고
일치단결하여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비싸게 팔기 위한
조직이 본래의 노동조합이다. 일본의 노동조합과는 아주
다르다.
규제완화에 의한 사회보장의 개악과 함께 나란히 전개되고 있는,
노동력의 유연화 정책은 미국의 노동자․근로인민의 생활에
곧바로 타격을 주고 있다. ① 직무이동(job disloction)의 진행,
고임금 부문에서 저임금 부문으로 고용구조의 변화 (96년 현재
시간제 노동자 450만명, 임시직 노동자 810만 명등 지금
고용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천만명이 불안정 취업상태), ②
임금격차의 확대와 소득 감소, ③ 더블잡(double-job,
이중취업), 트리플잡(triple-
job, 삼중취업), 문라이터(moon-lighter, 올빼미 노동자)라고
불리는 복수의 일자리를 함께 가져야만 생활 유지 가능, ④
빈곤선 이하의 증대 (73년 2천300만명에서 93년 3천930만명)
등이다. 그리하여 전체 미국의 노동자는 어떻게든 이번이야말로
노동자․노동조합을 승리로 몰아간 것이다.
1993년 1월에서 95년 12월까지 해고된 4백2십만명 가운데
270만명이 전일제 고용(full-time)에서 해고되었는데 그 가운데
다시 전일제로 고용된 사람은 220만명, 나머지 50만명은
시간제(part-time)로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다. 전일제로
재고용된 사람들의 경우에도 약 절반은 임금이 저하되었다.
연방정부는 92년 이후에만도 1천만명의 고용을 창출했고,
실업률도 한때 10%에서 4.8%로, 과거 80년 동안에 가장 낮다고
말하지만, AFL-
CIO의 조사로는 실업자는 공식발표의 2배인 1천200만명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노동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천700만명이
임시․시간제이다. 증대된 고용의 경우 대부분은
불안정취업자이다. 빈부의 차는 확대되고, 4천만명이
빈곤생활자이다. 많은 중산층이 저임금노동자로 되었다.
경영자와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187대 1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UPS의 시간제 노동자들의 요구는 미국 노동자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대중매체의 앙케이트조차 반수 이상이 UPS
파업을 지지하였다. 팀스터스의 론 케어리(Ron Carey) 위원장도
대중매체와의 인터뷰 때마다 “이것은 전체 미국의 시간제
노동자의 문제이다”라며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캠페인을
폈다.
존 스위니 AFL-CIO 의장은 전국 규모의 지원연대집회를
계획하고, 또 매주 1천만 달러의 파업기금을 조직적으로
대부하겠다고 표명했다. 결국 UPS측은 크게 양보하여 새로운
협정을 받아들였다.
기본 경영전략을 뒤집는 잠정합의 내용(5년간 협정)은 다음과
같다.
① 5년간에 1만 명을 전일제 고용으로,
② 외주화(外注化)는 성수기 때 조합이 인정할 때에만,
③ 시각지정배달(時刻指定配達)에 시간제고용자를 사용하지
않고,
④ 임금인상은 전일제 고용의 경우 5년간 3.1달러(총액 23달러
이상으로), 시간제 고용의 경우 5년간 4.1달러(총액 15달러
이상으로),
⑤ 조합이 관리하고 있는 퇴직연금기금(10억 달러)은 계속
조합이 관리 등등.
팀스터스 UPS 지부 투쟁의 의의는, ① 제국주의의 현대적 표현인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기본전략인 ‘규제완화․민영화’
정책에 반격을 가한 점, ② 세계적인 총 시간제 고용화 시대에
정사원화(正社員化)를 대치시켜 승리한 점, ③ 정사원과 시간제
노동자가 일치단결하여 철저히 파업한 점, ④ 현대독점자본의
파업에 취약한 산업구조를 폭로한 점, ⑤
노동자․근로인민의 생활 악화가 투쟁을 뒷받침하여
대중매체의 반쟁의(反爭議) 선전을 봉쇄하고, 연방정부의
태프트-하틀리법에 의한 쟁의정지개입을 발동시키기 못하게 한
점, ⑥ AFL-CIO와 팀스터스가 일치단결하여 미국 노동운동의
계급적 재건을 상징하는 승리를 거둔 점 등에 있다.
2. AFL-CIO와 산하 조합의 조직 변화
1) 독점자본의 대두에 조응한 산업별 조합의 결성
미국 노동운동의 이러한 투쟁은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도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공산당과 AFL-CIO 사이의 50년간의 질곡이
풀리려 하고 있다.
1917년의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제국주의의 전일적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고 하는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양대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노동자계급이 착취를
허용하지 않고 그것을 일소하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 혁명은
당연히 각국의 노동자․인민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루즈벨트에 의한 1930년대의 ‘후기 뉴딜정책’도
반독점․친조합적 자세의 정치였는데, 그 기본은 제국주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일정한 계급적 양보책이었다. 그 노동자
관리책의 기둥으로서 와그너법(Wagner Act)이 1935년에
제정되었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보장을
입법목적으로 하여, ① 부당노동행위제도, ②
교섭단위․교섭대표제도 (어용조합의 배제를 의도), ③
이것들을 실행토록 하기 위한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를
설치하였다.
직업별 조합을 고집하는 AFL로부터 산업별 조합의 조직형태를
주장하는 조류가 독립하여 산업별조직위원회
CꠏꠏforꠏꠏIO를 결성(1938년에
산업별회의 CIO로)한 후, 1936년 및 37년에 (공장 전체를 조합이
점거하는) 격렬한 쟁의 끝에 제너럴 모터스(GM)의 조직화에
성공하고, 나아가 US스틸을 조직화하였다(전미철강노조 USWA
창립멤버의 한 사람이었던 미국공산당의 전국의장인 거스 홀 Gus
Hall이 이를 지도하였다). 그것은 노동운동사상 노동조합을
승인하게 한 획기적인 승리였다. 그 후에는 자동차나 철강 등
대공장에서 계속 증대하고 있던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들을
획득하여 조직을 확대하였다. AFL도 산업별 원칙을 받아들여
조직을 키웠다. 1937년에서 1945년까지 CIO는 3백7십2만명에서
6백만명으로, AFL은 2백8십6만명에서 6백9십3만 명으로. 그러나
그후 제2차대전의 전시체제하에서 노동조합은 기능을 빼앗겼다.
제2차대전이 일어나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CIO의 시드니
힐먼(Sidney Hillman)을 생산관리국 차관에 임명함으로써
노동조합을 국방계획에 협력토록 하는 데에 성공하였는데,
탄광․철도․섬유산업에서는 전시 중에도 약간의
파업이 있었다. --[역자]
제2차대전 후 미국 CIO의 시드니 힐먼(Sidney Hillman) 부의장의
반파시즘․민주주의 조직으로서의 참가요건 제안을 받아
1945년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파리에서
세계노동조합연맹(WFTU) 제1회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산업별 조직 조합을 노동조합의 기초단위로 하여 세계 각국의
산업별 조합이 결집하였고, 이에 최초의 노동조합 세계 통일
조직이 실현되었다. 세계노련은 국가독점자본주의화한 제국주의
지배에 조응하는 노동조합의 조직원칙을 제시하였다. ‘1공장
1조합, 1산업 1산별조합, 1국 1중앙조직(national center),
그리고 세계 유일의 국제조직’을 원칙으로 내걸었다. 전후
노동운동의 고양으로 세계 각국에서 급속히 조직되고 있던
노동조합을 이 조직원칙에 의해서 확립하여 세계노련으로 결집할
것을 촉구하였다.
미국에서도 노동자들은 전쟁 종결에 의한 고용 불안과 임금의
감소, 나아가 물가상승에 시달려 전투성을 강화하고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전환기의 노동정책으로서 뉴딜정책을 계속하고
확대할 것을 의회에 호소하고, ① 전시 노동통제의 즉시 철폐,
② 노동부의 재건, ③ 최소한의 정부 개입에 의한 단체교섭제의
회복을 전제로 공정고용관행법의 제정(① 최저임금의 인상, ②
건강보험의 제도화, ③ 공공주택정책, ④ 도시 빈민가(slum)의
일소, ⑤ 흑인 차별 금지 등) 등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노자간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정책의 공백기로
되었다.
1945년 8월에 시작된 전국자동차노동조합(UAW)과 GM간의
임금교섭은 교착상태에 빠져 11월 9일부터 UAW는 파업에
들어갔다. 4개월간에 걸친 파업에 32만명이 참가하였는데(실업자
14만명 포함), 초임 30% 인상과 생산성 향상분의 배분을
요구하였다. 이 UAW의 GM파업은 46년 3월 13일에 시급(時給)
18.5센트의 인상으로 타결되었지만, 이 파업은 다른 산업에도
파급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46년의 쟁의 참가인원은
460만명, 고용자 전체에 대한 쟁의 참가 인원의 비율은
10.5%로서,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사상 최고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자본가계급에게는 혁명적인 위협으로 되고 있었다.
자본가계급은 세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인민민주주의세력․통일전선정부의 실현 및 사회주의정권의
수립, 특히 1949년의 중국혁명․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라는 세계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자신들의 생명 연장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들 자본가계급은 그 연명책으로서, 붕괴하고 있는 식민지
지배의 새로운 지배수단을 모색하고 세계 노동운동에 쐐기를
박는 등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의 재구축을 획책하였다. 그
첨병이 경제적으로는 마샬 플랜이고, 실행부대로서는
국제자유노련(ICFTU)의 결성과 결부된 국제적
선동(campania)이었다. 1947년 6월에 ‘달러 살포’(撒布)인
마샬 플랜이 발표되자 때를 맞추어 세계노련 산하 각국에서 우익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노동조합 분열공작을 전개하였다.
미국에서는 세계노련 가맹 CIO의 우익간부를 자본이 포섭하여
비가맹 AFL과의 합의하에 세계노련으로 하여금 마샬 플랜을
인정하도록 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는 국제적인 분열조직을
세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얘기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 조직이
국제자유노련이었다. 결국 CIO는 세계노련을 탈퇴하였고, 1949년
말에 AFL과 CIO는 함께 국제자유노련 가맹을 준비하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가 속속 내놓는,
노동자․인민의 생활향상을 위한 제도에 대항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복지제도의 확립, 완전고용의 실현,
에너지․교통 등 산업기반의 확립을 위해서는 국유화도
불사해야 한다는 케인즈 정책을 내놓고, 국가재정을 일정 정도
국민에게 환원하는 정책에 착수하였다.
2) 반공․체제 내 노동운동의 확립
1947년의 전국노사관계법, 통칭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
Act)은 제9조 h항에서 조합간부에 대해서 ‘자신은 공산당원이
아니다는 취지의 선서 진술서’(반공선서증)를
전국노동위원회(NLRB)에 제출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법은
와그너법(Wagner Act, 1935)을 일부 개정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①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② 긴급시 쟁의중지(emergency
dispute)와 냉각기간의 설정 등 쟁의조정제도의 신설, ③
공산당과 그 동조자 간부 배제, ④ 감독노동자의 조합 가입
금지, ⑤ 파업 투표 등을 의무화하였다. 이 와그너법 명백히
태프트-하틀리법의 오기(誤記). -- [역자]
은 그후의 반공․체제 내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로서의
미국 노동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공화당 우세하의
트루먼 대통령은 노동운동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력을
일소시켰다.
미국공산당은 1945년에는 CIO 가맹 38개 조합 가운데 16개
조합본부를 장악하고 CIO 조합원의 약 15%를 조직하고 있었는데,
‘합동 전기․라디오․기계 노동조합’(UE, 조합원
50만명)도 그 중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태프트-하틀리법이
반공선서증을 제출하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에 CIO는 대혼란에
빠졌다. CIO는 조합 자격 취득을 위해서 결국 이 명령에 응했다.
다만 11개 조합(조합원 90만명)은 이를 거절했는데, CIO는 이들
조합을 1950년에 제명처분하였다. 1955년에는 11개 조합이 UE,
광산․제련 노조, 항만․창고 노조, 통신노조 등 4개
조합(조합원 30만명)으로 감소되었다. 그 원인은 다른 조합에
의한 분열․잠식도 있었고, 조합 자멸에 따른 다른
조합으로의 흡수합병도 있었는데, 또한 미국공산당에 대한
조합원의 반발도 있었다. 이에 노동운동에 대한 미국공산당의
영향력은 크게 감퇴되었다. 이로써 AFL과 CIO는 노선상의 대립이
해소되어 1955년에 합병하였다. 그리고 그 새 규약에 반공조항을
포함시켰다.
태프트-하틀리법의 제9조 h항을 받아들인 AFL-CIO 규약은, 제2장
목적․원칙의 제10항, 제3장 가맹 조합의 제9조, 제5장
간부의 제10조, 제8장 집행위원회의 제7조와 조직 전체에
빠짐없이 반공조항을 둘러쳐, 공산주의․사회주의자를
배제하였다. 예컨대 제2장 목적․원칙의 제10항은 “어떠한
그리고 모든 부패 세력, 민주주의와 자유뿐 아니라 민주적
조합주의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기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음험한 수단으로 해치려고 하는 세력으로부터 노동운동을
지킨다”라고 내걸었고, 이 기조를 각 조직조항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AFL-CIO는 자기 나라의 자본가와 공동 협조하여 ‘생산성
향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실로 오늘날 우리의
계급운동을 저해하고 있는 반공․체제형 노동운동이
세계적으로 확립되어 가는 선구(先驅)였다.
그에 덧붙여서 세계노동운동은 중쏘(中蘇) 대립의
현재화(顯在化)에 의한 대중운동의 사분오열, 관료주의의 내화,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정권의 붕괴 등 노동자계급의 세계적
운동으로서의 기반이 취약해졌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크게 후퇴를 강요받고 있다. 세계노련의 세계적 지위의
후퇴 및 규모 축소, 세계시장에서의 제국주의적
일원지배(一元支配)의 부활이 국제자유노련적인 세계노동운동의
존재 기반을 확립시켰다. 미 제국주의는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고, 그후 1974~75년 공황을 거쳐 세계적인 물가고를
수반한 역(逆, 마이너스)․무(無, 제로)․저(低)
경제성장에 돌입했기 때문에 케인즈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세계의 붕괴는 제국주의 세계를
구가하게 하지 않았고, 역으로 여유가 없어진 자본주의는
복지국가 실현 등의 조작을 팽개치고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규제 완화․민영화’ 정책 하에
노동자․근로인민에게 궁핍화 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노동자․인민에 대한 관리는 그 연장선상에서 ‘노동의
유연화․유동화’로서 불안정 고용과 노동자간 경쟁을
강요하고, ‘자조노력․자립’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복지․사회보장의 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자본가계급의 본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실로
노동자․근로인민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은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이며, 지금이야말로 국제적인 노동자 투쟁의 경험과
원칙으로 되돌아가 공장에서, 또 산업별로, 그리고 자기
나라에서 노동자를 일체화시키고 국제적 연대를 보다 강화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경을 초월한 다국적기업에 자신의 요구를
대치시킬 수 있는 길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세계적 구조개혁에
착수하여 그것을 세계은행․IMF가 주도하고, 무역에
관해서는 WTO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자신들의 권익확보를 위해
NAFTA․EU․ASEAN 등 새로운 경제권을 확장하는 데에
정신이 없다.
그러나 그 기반을 형성하려면 각국에서 좌파적 계급적
노동운동이나 발전도상국에서의 해방운동 등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국적기업의 발밑에서 그 무덤을 파는 사람이
곧바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3) 좌파 집행부를 지탱하는 ‘새로운 목소리’(New Voice)파
AFL-CIO의 조지 미니(George Meany) 초대의장으로부터 1979년에
의장직을 인계 받은 레인 커클랜드(Lane Kirkland) 2대 의장은
15년 동안 조직과제에는 무관심하여 노동자의 23%, 1천362만명을
조직되어 있던 조합원 수를 15.5%, 1천300만명으로까지
감소시켰다. 의회의 다수를 점한 공화당으로부터의 노동조합
공격에도 속수무책인 채였다. 그리하여 ‘규제
완화․민영화’ 정책 하에서의 불안정 취업자의 증대,
노동자․인민의 생활 저하 등, 아들이나 손자에게 미래를
장밋빛으로 말할 수 없는 임금감액, 사회보장․복지의
개악에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지도체제에 대한 비판이 집행부
내부로부터도 속출하였다. 이 즈음 대립파는 커클랜드에게
의장직을 용퇴하고 오른팔 격인 토마스 도나휴(Thomas Donahue)
사무국장에게 물려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커클랜드 의장이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대립파가 선거로 몰고 가려고 하자 토마스
도나휴 후보가 싸우기를 기피하여 사퇴하였다.
대립파는, 어쩔 수 없이, 최근 10년 동안에 34만명이나 조합원을
확대하여 상승세를 타고 있던 존 스위니 국제서비스조합
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웠다. 그러자 커클랜드는 의장 자리를
내놓으면서 토마스 도나휴를 의장직에 앉힐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존 스위니를 의장후보로 옹립한 지지단체들은 그대로
선거를 강행할 것을 주장하였고, 드디어 AFL-CIO가 출범한 이래
최초의 의장선거가 치러졌다. 존 스위니는 1995년 10월에 730만
표를 획득, 토마스 도나휴에 160만 표의 차를 벌여 의장에
당선되었다.
존 스위니의 입후보 첫 마디는 “나는 AFL-CIO 의장에
입후보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조직노동자는 미국의
노동자나 그 가족의 유일한 목소리이고, 침묵은 귀를 막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였다.
존 스위니 의장은 자기를 “미국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목소리(New Voice)”라고 불러 선거에 승리하였다. 존 스위니
의장은 지금까지의 AFL-CIO가 방기하고 있던 노동조합의
중앙조직으로서의 본래의 활동에 힘쓰고 있고, 또한 새로운
선풍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시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그가 제시한 간부 명부도 그 하나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전투성의 상징인 전미국탄광노동조합의 리차드 트럼카(Richard
L. Trumka), 나아가 사상 최초의 여성․유색인종의 대표
린다 차베즈 톰프슨(Linda Chavez Thompson)을 각각
(재정담당서기 Secretary-Treasure 및 상임부의장 Executive
Vice President 직에) 역자 삽입.
앉혔다.
이러한 체제를 기초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조류들이다. 즉, 조합원에 의한 본부간부 선거의 1인1표제
실시를 추진한 팀스터스 내부개혁운동(TDU)의 다른 단위
산별로의 파급, NAFTA에 반대하는 지방연합 등의 지방에서의
활동 등. 이들 지방연합 내의 적극적 활동가가 피트스톤
탄광이나 미네소타주 오스틴의 호멜 파업 등 공인된 반란형
파업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
미국의 노동운동은 반공․체제형이지만, 그 운동은
‘그놈들과 우리들’(Them and Us)이라는 식으로
사무․관리자와는 일획을 그으면서 블루칼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고, 세세한 직무구분 = 일거리(job)에 의해서
작업범위를 확정해 왔다. 그런데 거기에 1980년대부터 일본적
노무관리인 팀 방식이 도입되어 그것들을 파괴하였다. 이에 노자
일체형 노동운동에 대한 반발이 현저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스트레스형 노동의 강요라며 조사연구를 시작한
노동자연구기관인 레이버 노트(Labor Notes)에 의한
학습집회(1993년의 총회에는 합중국 38개주,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1,100명이 모였다)나 AFL-CIO의 조직화 강습회, 공정한
일자리를 구하는 운동 등에 의한 횡적 연대활동 등도 일어났다.
참고로, TDU나 레이버 노트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일상적 운동에서 연대가 깊음을 알 수
있다.
4) 노동당의 창설
이러한 흐름은 정당 속의 변화로서도 나타났다. 우선 UE 등
CIO로부터 배제된 노동조합이 공화․민주라는 2대
정당에서는 노동자․인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지 않다며
자신들의 조합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당을 결성하였다. 1996년
6월에 결성된 미국 노동당에는 9개의 전국조합과 300개 정도의
지부조합, 그리고 AFL-CIO의 몇몇 지방조직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홈리스조합(Homeless Union) 등 실업자 조직들도
참가하였다. -- [역자]
약 150만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정당이다.
9개의 전국조합은 UE, 광산․제련 노조, 항만․창고
노조 등의 3개 조합, 그리고 ‘국제
석유․화학․원자력 노조’(OCAW),
철로시설종업원우애회, 캘리포니아간호사협회, 미국공무원연맹,
국제듀퐁노동자우애회, ‘미국
섬유서비스․의료․전문직․기술직 종업원
조합’ 등이다. 통신의 지방조직도 참가하고 있다.
밥 웨이지스(Bob Wages) OCAW 위원장은 기조보고에서, 노동하는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정당을 조직한다고 강조하였고,
16개의 정책과제를 내걸었다. 그 하나는 헌법을 개정하여 생활할
수 있는 임금의 일자리를 모든 사람에게 보장한다 것이다. 이
당은 노동조합 등의 단체 가맹과 개인 가맹을 참가단위로 하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는 결맹체로서는 당파성이
약한 정치세력이다.
5) 미국공산당의 대중적 인지(認知)
노동조합 등 대중운동이 태프트-하틀리법의 반공규정을
받아들이고 나서 고통의 50년, 지난 9월 22일부터 나흘 동안
피츠버그시에서 개최된 AFL-CIO 대회에서는 미국공산당에 관한
부정적인 언급 일체를 삭제할 것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AFL-CIO 대회의 이 결정은 규약에서 반공주의자 조항(제2장
제10항, 제3장 제9조, 제5장 제10조, 제8장 제7조)을 삭제하는
것이다. AFL-CIO에 존 스위니 의장이 취임하고 나서 2년째의
최초의 대회였다.
태프트-하틀리법의 반공조항은 항만노동조합(ILA)이나
팀스터스의 마피아와의 연계나 조합기금의 남용 등을 바로잡을
것을 입법 목적으로 한 1959년의
노사정보보고공개법(Landrum-Griffin Act) 제정으로 이미
삭제되어 있었다.
이 랜드럼-그리핀법은 태프트-하틀리법인 전국노동관계법의
규정개정을 포함했는데, 그때 반공조항도 삭제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FL-CIO를 위시하여 미국의
노동조합․대중조직은 태프트-하틀리법을 받아들인
반공조항을 그대로 온존시켜, 유사시에는
민주적․사회주의적 활동에 조직내 탄압을 가해 왔다.
미국공산당은 재빨리 AFL-CIO의 반공조항 삭제 결정을 환영하는
성명을 냈다(이 성명 및 관련 기사는 자매지인
ꡔ思想運動ꡕ 97년 11월 1일호에 게재하였다. 함께
읽어주기 바란다).
AFL-CIO의 존 스위니 의장은 취임인사에서 상임 근무자들에게
“문서를 버리고 밖으로 나서자”고 호소하였다. 그로부터 2년,
지난 AFL-CIO 대회는, 지금까지의 노동조합 간부와 그
전임자와의 사교장에서, 투쟁보고와 결의표명의 장으로
일변하였다.
전미국철강노동조합(USWA)이 거의 일년에 걸쳐 투쟁한 파업의
승리에 이어, 팀스터스 유나이티드 파슬 서비스(UPS) 지부의
15일간의 파업에 의한 전면적 승리. 거기에 디트로이트의
신문노동조합과 스테일리(Staly, 옥수수 가공에서 미국 제일을
자랑하는 영국계 다국적기업의 자회사)의 조합은 장기파업을
계속하고 있다(「전투화하는 미국의 노동운동:
AFL-CIO지도부 개혁의 배경」 스키모토 오시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14호, 1996년
9․10월호 참조).
나아가 AFL-CIO 산하의 조합은 투쟁자금을 확보하고, 국경을
넘어 전개하는 자본의 동향에 대항하여 다국적기업에게 요구를
다하기 위해서 조합의 대형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미철강노조는 96년 8월의 대회에서 95년 7월의
전미고무노조와의 합병을 승인하고 있다(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
쟁의 지원). 그리고 또한 그 조직에는 2000년에
전미자동차노조(UAW) 75만명이 국제기계공조합(IAM) 45만명과
조직을 통일하여 가세함으로써 미국 최대의 250만명 단위
산별노조 탄생을 지향하고 있다.
다만, 이전에 AFL-CIO나 ICFTU가 연방정부의 국제활동이나 CIA와
결탁하여 상대국 노동조합에 자금제공 기능을 수행해 온 사실을
총괄하거나 관계를 단절하는 등의 개선은 아직 불분명하다.
제국주의 열강은 다국적기업을 자본축적의 주체로 삼아 값싸고
질이 높은 노동력 및 값싸게 후려 살 수 있는 자원과 부품공장을
찾아서 세계시장을 활보하고 있다. 또한 그것들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군사세력권의 재편성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국제노동운동이 지금 요구되고 있다. 현재의
국제노동운동조직은, 예컨대 국제노동조합운동의 중심부대로
돼가고 있는 국제자유노련의 개혁․질적인 전환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에 대한 자본가나
우익조합의 반격도 있을 수 있다.
우리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의 현대적 표현인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규제 완화(정확히 말하면, 규제 철폐)․민영화’
정책과의 투쟁을 기본에 두고, 다국적기업의 수족을 묶는 계급적
국제연대운동에 시급히 착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
노동운동의 최근의 동향은 우리 일본의 노동자계급이 배워야 할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한/노/정/연
번역 : 채만수 /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