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노동운동의 현실과 쟁점
신노사관계 구상의 완성인가,
전국적 총파업의 완성인가
곽 탁 성
∙
고용상태와 전망 그리고 노동운동의 과제
김 길 섭
∙
금속연맹 임금체계(안)에 대한 검토
김 성 희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협상국면과 총파업 예열국면이 교차하던 정중동(靜中動)의 상황을 뒤로 하고 일부 현장에서의 시한부 파업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국민회의 당사 농성이 시작됐다. 96년 겨울 총파업 이후 또다시 총파업을 전개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현정세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번호 특집은 작년 11월 이후의 양대 대사건 - IMF관리체제와 DJ의 대통령 당선 - 이 노동운동에 미칠 영향과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고용, 임금 등 노동자 생존권에 있어서 핵심적인 쟁점을 검토하는 내용으로 기획했다.
특집 1 ?신노사관계 구상의 완성인가 전국적 총파업투쟁의 완성인가?에서 필자는 현정세를 96~97년 전국총파업으로 표현된 노자간 대결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하에 노동운동진영은 수세적이고 허구적인 정세인식을 극복하고 자본과의 허구적 동반자의 길이 아닌 민주적?계급적 발전의 길을 가기 위하여 노동자대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과정을 지난 시기 총파업투쟁에서 발견된 여러가지 한계를 해결해 나가는 전망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진정으로 전국적 총파업투쟁을 완성하는 길임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집 2 ?고용상태와 전망 그리고 노동운동의 과제?는 작년 하반기 이후의 고용 및 노동시장 관련 지표들을 개괄하면서 한국의 고용상태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실업률의 급상승, 고용구조의 불안정성 확대, 생산성 증가율을 못미치는 실질임금 상승률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고용상태에서는 짤릴 것인가, 깎일 것인가라는 정세인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집 3 ?금속연맹의 임금체계(안)에 대한 검토?는 강신준 교수의 임금체계(안)을 골간으로 하고 있는 금속연맹의 ‘산별단일교섭을 위한 임금체계협약(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글이다. 이 글에서는 임금체계에 국한하여 검토하고 있다.
먼저 금속연맹이 제시하고 있는 ‘생활기본급+직무급+능률급’이라는 원리는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시점에서 임금차등화가 불가피한 이 제도를 왜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나아가 지금은 임금배분에서의 평등과 노동자 연대라는 노동운동의 가치를 확고히 할 때이고, 산별체제의 내용도 그것에 입각하여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신노사관계 구상의 완성인가
전국적 총파업의 완성인가
- 현정세와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
곽 탁 성 / 정세분석실장
이 시련을 이겨내면
우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97년 발생한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외환․금융위기의 발생과 이를 계기로 한 IMF의 구제금융융자 그리고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당선에 의한 정권교체일 것이다. 이들 사건이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방향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 한다면 이와 맞물리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 노동운동진영이 어떠한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총자본의 공세에 맞서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난 1월 7~8일 속리산에서 개최된 민주노총의 98년 제1차 중앙위원회 결정사안과 1월 14일 전격적으로 결정되고 사후 추인된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는 이후 전개될 노동과 자본의 대립구도 나아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방향을 예고해 주는 사건이었다.
“민주노총 주관하에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 총파업의 시기와 방법은 투본대표자회의에 위임하되 중앙위원연명으로 총파업을 담보한다.”1)
“… 1/7 98년 제1차 중앙위의 결정에 의거하여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준비에 매진하면서 민주적 구성과 운영을 전제로 노사정 협의체 구성, 이에 참석하여 중앙교섭을 전개한다.”2)
총력투쟁을 포함한 총파업을 결정한 민주노총 제1차 중앙위원회의 결정사안은 현상적으로 본다면 멀리는 작년 9월 민주노총 제7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의 결의사항을,3) 가깝게는 작년 12월 10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의 결의사항을 복원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교섭중심으로 옮겨지는 투쟁기조를 바꾸어 내려는 시도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노사정 위원회로의 ‘전격적인 참여’는, 제1차 중앙위원회의 결정사안이 유효하다는 점을 이후에 개최된 투본대표자회의에서 확인하였고 당시 상황의 유동성과 역동성을 고려하더라도 투쟁동력 창출과 긴밀하게 결합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선의 집중점이 교섭구조로 - 그것도 그 구속력이 대단히 불안정한 - 옮겨지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최근 노사정위원회 발족과 함께 거론되고 있는 정리해고의 조기도입과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허용검토 등은 이른바 3금과 3제4)로 불려지며 김영삼 정권하에서 신노사관계 구상을 통해 구체화시키려던 조항이었다. 90년대 초반부터 이른바 신경영전략으로 개별자본수준에서 추진해왔던 노자관계의 재편을 총자본수준에서 완성하고자 했던 신노사관계 구상은 김영삼 정권의 국회 날치기 통과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던 위력적인 총파업투쟁에 의해 부분적으로 저지되면서 미완성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이와 맞섰던 96~97년의 총파업투쟁도 유일노조 강제조항과 제3자 금지조항의 부분적 철폐와 정리해고도입의 2년 유예,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의 5년 유예 등의 결과를 남기면서 내용과 구체적인 전술에서 불충분하고 미완성된 투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5)
이제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 김대중 정권의 출범을 앞둔 현재의 조건에서 미완성된 신노사관계 구상이 ‘민주주의와 함께 하는 경제발전’이라는 명분과 함께 노사정위원회의 형식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다른 한편 작년 하반기부터 논의되어왔던 ‘총파업을 포함하는 총력투쟁’은 노사정위원회 참여로 일시 잠복되는 듯 하지만 ‘계급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는 언제든지 그 수준과 양상을 달리하면서 표출되어질 것이다.
‘신노사관계 구상의 완성인가? 전국적 총파업투쟁의 완성인가?’6) 정부․행정개혁과 재벌개혁을 노동개혁(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의 법제화)과 맞바꾸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때로는 ‘대타협’이 될 듯이, 때로는 ‘대투쟁’이 벌어질 듯이 전개되는 현정세는 김영삼 정권부터 신노사관계 구상과 전국총파업투쟁으로 대립해 왔던 자본과 노동이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비타협적 대결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최근 전개되는 정세를 중심으로 현재의 노자간 대립의 지점과 그 성격을 분석하고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하의 노동운동의 대응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글의 서술은 우선 현시기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의 성격과 전망, 김대중 당선자의 최근 행보와 예상되는 정권의 성격을 검토하고 작년 하반기이후 최근 개최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 참여까지의 경과와 주요한 특징을 분석한 후 노동운동의 대응방향과 전망을 정리하는 것으로 한다.
경제위기의 심화와 그 자본주의적 탈출구, IMF 관리체제
작년 11월 들어 폭발한 외환․금융위기를 계기로 전개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위기는 작년 12월 3일과 12월 24일 두 차례에 걸친 IMF 구제금융(G7의 지원포함)결정과 뒤를 이은 달러의 공급으로 인한 환율과 주가의 부분적인 회복에도 불구하고 외환부족, 외환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IMF 개입에 의해 더욱 증폭되어진 고금리는 기업연쇄부도의 가능성을 더욱 현실화시키고 있다. 일국적 시야에 머무르는 한 그 총체적 분석과 전망이 불가능한 현재의 경제위기는 세계시장에서의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을 근본적 원인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최근 인도네시아가 국가부도사태에 처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90년 이후 지속적인 침체상태에 있는 일본경제가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더욱 악화 일로 상태에 있는 등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세계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경제의 갑작스런 붕괴 이후에는 그에 필적할 만한 시장이 없다. 오랜 불경기에서 벗어난 유럽경제는 이제 조금씩 생기를 찾기 시작했지만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아시아를 구해낼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는 않다. 동아시아 각국의 연쇄적인 경제붕괴는 남미에도 타격을 주었다. 이제 경제 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최후의 자금원인 IMF와 마지막 구원바이어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기둥이 제 역할을 해 준다면 일본의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시장이 붕괴되고 결국 미국경제가 파탄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가 실제로 있었고 아직도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7)
부르주아 잡지조차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세계화’를 신중하게 인정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은 외자유치와 수출을 중심으로 한 한국경제의 탈출전략의 현실적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를, IMF 협약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1,2년만 고생하면 위기가 극복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시사해 주고 있다.
현재 총자본은 경제위기의 탈출책으로 IMF 구제금융과 긴축정책, 급속한 산업구조조정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산업구조조정과 IMF 관리체제가 ‘하늘에서 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의 이윤축적을 그 동력으로 하는 산업구조조정은 자본축적전략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과 특징을 달리하면서 진행되었지만 사실상 넓은 의미에서는 ‘자본운동’ 그 자체이다. 그리고 IMF 관리체제에서 집중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금융개혁,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개방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미 멀리는 1980년대에 등장한 전두환 정권때부터 가깝게는 김염상정권 츨범부터 그 단초를 갖고 있었다.8)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던 내용들이 경제위기를 고리로 집약적이고 폭력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위기시에는 과잉자본의 폐기, 자본의 집적과 집중의 심화, 상대적 과잉인구의 급속한 확대 등이 발생한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IMF의 구제금융과 정책적 개입 - 개방화, 자유화를 중심으로 - 은 이러한 상황을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즉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의 수탈’과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수탈’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경제위기 극복의 자본주의적 방식이 IMF 협약과 관리체제를 통해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9)
두 차례에 걸친 구제금융지원합의와 단기외채의 상환연장 이후 총자본측은 해외자본의 투자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밑받침한다는 명분으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법의 법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감자(減資)조치와 부실종금사에 대한 폐쇄조치가 이미 내려졌고 고금리의 부담을 안은 기업들의 대대적인 부도가 예상되고 있다. 임금과 성과급의 체불은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정리해고가 논의되는 이 순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해고가 전개되고 있다. GDP성장률은 3%에서 2%로, 물가상승률은 5%에서 9%로, 실업률은 3.9%에서 5% 수준으로 조절되었지만 재정경제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을 기정사실화10)하고 있으며 위기가 심화되는 현재와 같은 정세에서 통계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무리일 정도로 제반 지수는 악화될 전망이다.
현재는 경제위기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세는 우리에게 두 가지 수준의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경제위기시 노동운동양식의 개발이다. 자본은 위기시에 애국주의, 사회적 합의, 고통분담론 등 이데올로기적인 측면과 임금, 고용, 물가, 세금 등 노동자․민중의 현실 생활상의 측면에서 공세를 가해 온다. 노동자계급은 ‘불만’과 ‘불안’을 함께 가지면서 협소해진 고용문제 등을 계기로 경쟁하기도 하고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해와 내부 단결의 강화를 위해 투쟁하기도 한다. 현재 많은 사업장에서 한편에서는 노동자대중의 사기저하와 위축이 다른 한편에서는 투쟁동력의 고양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생존권을 중심으로 한 요구로 내부를 정비하고 예상되는 생활상의 고통과 불만을 새로운 투쟁동력으로 모아나가는 지난한 작업이 요구된다. 위기일수록 더욱 과감하게 생존권의 문제를 내거는 양식이 정착되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식 경제 읽기’이며 그 표현이다.
둘째는 노동운동의 성격과 내용의 변화이다. 현재와 같은 시기에 노동운동의 대응은 그것이 생존권문제를 중심에 놓고 제반 사안을 결합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자본주의와 세계자본주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11) 경제위기국면이 지나고 불황의 시기가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전개될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대중적 비판을 동력으로 하는 더욱 높은 과학성을 요구받을 것이다. 결국 현재 노동운동진영이 고민하고 있는 대응양식은 ‘경제위기시의 노동운동’이라는 측면 뿐만 아니라 더욱 높은 수준을 요구할 이후 노동운동을 예비하는 의미를 지니는 셈이다.
김대중 정권의 개혁과 노동운동의 선택
“이제 새 정부의 출범으로 민주주의와 경제가 함께 발전하는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12)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보장을 위해 사회전반의 개혁에 착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럴 때에만 정권교체의 의미는 살아난다.”13)
“그러나 20년대말 미국의 공황당시에 비해 한국의 현 상황은 나은 편입니다. 당시 미국도 국가 지도자의 정치역량을 필요로 했습니다. 김대중씨의 장점인 대중설득력을 십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14)
‘민주주의와 함께 하는 경제발전’, ‘민주적 시장경제의 실현’, ‘통합과 개혁의 시대’, ‘강력한 리더쉽’ 앞으로 출범할 김대중 정권의 성격에 대한 규정과 요구는 대략 앞에서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의 사면복권, 정리해고제 도입의 불가피성 인정, 금융실명제의 사실상 폐기,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구현과 이를 위한 정부기구축소 추진, 재벌총수와의 면담과 강력한 재벌 개혁의 촉구, 노사정위원회의 발족 등 경제위기라는 상황에서 등장한 김대중의 행보는 그 어떤 당선자보다도 발빠르게 진행되었다.
김영삼 정권의 대표적인 개혁조치로 평가되었던 금융실명제와 역사 바로 세우기 - 그 구체적 표현으로서의 전․노 구속 조치 - 를 무력화시키면서 출발한 현시기 김대중 개혁조치의 핵심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통합, 구체적으로는 민주노총에 대한 인정과 공세를 통해 ‘경제위기 돌파의 파트너쉽’으로 만드는데 있다.15) 이른바 고통분담론을 근거로 당선직후부터 제출된 ‘정리해고 수용발언’과 그 후 진행되고 있는 정부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등의 초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그 한계가 드러난 정부조직을 축소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강화해가고 있는 정부기구개편, 초기보다 상당히 후퇴한 이른바 빅딜과 재벌재산총수의 자산출자라는 상징적인 - 그 현실적 의미는 사실 별로 없는 - 조치 외에는 김영삼 정권초반부터 논의되었던 재벌개혁의 내용, 노동시장 유연화를 합법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노사정위원회 발족과 이른바 노동개혁 등은 “개혁은 특별한 변화가 아니라 정상화”라는 김대중의 유권해석처럼 자본축적의 효율성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반 조치가 현 개혁의 주요한 내용이자 성격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특징적인 점은 정부개혁, 재벌개혁이 사실상 노동운동진영을 설득하기 위한 무기로 서둘러서 진행되어졌다는 점이다. 흡사 노회한 정객 김종필이 DJP연합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자신의 당원들에게 내각제 발언을 할 때 실제 그의 시선이 자신과 연합할 파트너인 김대중에게 있었듯이 정부개혁, 재벌개혁을 말하는 김대중의 시선은 실제로 노동운동진영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마지막 개혁이 노동개혁, 금융개혁이었다면 김대중 정권은 여러 개혁조치의 나열과 분위기조성에도 불구하고 금융개혁과 노동개혁을 자신의 첫번째 과제로 삼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가진 정권들이 선거에서 패하고 이른바 중도좌파 성향의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유럽과 중남미의 경우 전임정부의 노선을 변화된 조건에서 구체화시키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16) 이들 나라의 신임 정부와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최근 전개된 김대중의 몇 가지 개혁조치는 이후 출범할 김대중 정권의 제반 정책기조가 김영삼 정권의 신노사관계 구상에서 가장 투명하게 드러난 ‘YS 개혁의 완성’이라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17)임을 예고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관료적 규제를 배제한 강력한 리더쉽으로 이를 추진하려 할 것이며18)이를 통해 국가경쟁력의 강화와 공정한 경쟁의 보장 - 그가 말하는 민주적 시장경제는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다 - 을 시도할 것이다. 경제위기의 전개양상과 노동운동진영의 대응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후퇴속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의 외형상의 진전의 성격’을 갖고 있는19) 김대중의 개혁조치는 총자본이 부딪히고 있는 ‘경제위기의 신자유주의적 탈출책’이며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이후 보다 격화될 투쟁의 관리인이자 조정자로서 김대중정권의 역할이 수행될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
출범도 하기전에 다양한 개혁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향후 전망은 2월에 나타날 노동운동진영과의 대결에 따라서 상당부분 결정될 것이다. 허구적 동반자관계로 노동운동을 순치시키면서 이러저러한 개혁조치를 병행하는 모습을 띌 것인가, 노동운동의 끈질긴 저항과 제반 개혁조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더욱 강력한 - 파시스트적인 - 지도력을 발휘할 것인가, 나아가 총자본진영에 의해 자신의 이해대변자로서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받을 것인가, 그 전망이 어떠하든 김대중 정권의 정책기조가 노동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그 특징으로 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순조로운 전개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설정은 자본측으로서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진영은 선택을 강제 받고 있다. 이른바 대타협이라는 명분하에 사실상 고통전담과 무기력화의 길을 가게 될 노동과 자본 사이의 허구적 노자동반자관계의 길을 갈 것인가? 대단히 버겁지만 노동자대중의 생존권을 사수하면서 내부 단결을 도모하고 그 폭과 깊이를 넓혀 나가는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의 길을 갈 것인가? 커다란 틀에서 볼 때 제3의 길은 없을 것이며 각각의 경로가 나타날 모습은 이후 더욱 투명해질 것이다. 총파업투쟁의 결의와 함께 다시 본격화되었던 작년 하반기 투쟁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은 경제적 모순의 심화와 함께 이러한 과제가 분명해지는 과정이었다.
97년 하반기 노자간 대결과 그 귀결
97년 하반기 들어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향한 자본의 공세가 정리해고의 조기도입과 근로자파견제의 도입요구, 퇴직금 우선변제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연월차수당 부지급판결 등으로 구체화하자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이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게 되었고 마침내 민주노총은 9월 5일 제7차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경제민주화와 고용안정쟁취를 위한 총파업을 결의하였다. 같은 날 권영길 민주노총위원장의 국민승리21 대통령후보로의 출마도 추인되었다.
그러나 총파업투쟁의 결의와 대선후보추인으로 관심을 모은 민주노총은 그후 이렇다할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10월 6일 ‘고용안정과 경제민주화 쟁취를 위한 투쟁본부’ 제1차 회의를 출발로 11월 전국노동자 대회시까지의 계획이 제출되어지고 10월 7일 민주노총 지도부의 명동성당 농성돌입이 시작되면서 투쟁은 본격화하였지만 10월 22일 기아자동차 법정관리가 발표되고 이를 반대하며 화의신청 수용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던 범기아 정상화추진비상대책위원회 (범비대위)가 10월 29일 김선홍회장의 사퇴이후 11월 3일 조업재개를 선언하면서 ‘고용안정과 경제민주화 쟁취투쟁’은 사실상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국민승리 21이라는 선거연합전술의 형태로 개입한 대통령선거20)에서도 정치실천단의 조직화라는 소중한 성과를 남기긴 했지만 이른바 핵심실천단과 일반실천단을 기금납부액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 10만원, 1만원 - 정치실천단 조직원리상의 한계, ‘종이정당 사건’, ‘일어나라 코리아’로 널리 알려진 포스터 건 등 선거기조상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노동자 밀집 주거지구에서의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21)에도 불구하고 전체 노동자대중의 표를 결집하지 못한 채 권영길후보가 1.2%라는 낮은 득표율을 획득한 결과로 확인되어졌다. 그 후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고 IMF 구제금융이 논의되면서 고용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자 선거운동이 다소 활기를 찾는 듯 했지만 변화된 정세가 상황을 반전시키는 동력으로는 작용하지 못하였다.
총파업의 결의와 하반기 투쟁의 부진함, 대통령 선거투쟁의 힘겨운 진행과는 달리 대공장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특징적인 현상이 나타났는데 선거를 통한 기존 집행부의 대대적인 교체가 그것이다. 8월에 실시된 만도기계노동조합 위원장선거를 출발로 현대자동차노동조합, 현대정공노동조합, 기아자동차노동조합 등 주요한 대공장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하였다. 이들 선거는 기존 집행부가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흐름을 주도했던 사업장이며 동시에 연임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과가 이후 전개될 민주노총 제2기의 성격과 방향을 일정하게 규정한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진영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은 여러 수준에서 설명되어야 하지만 하반기 들어 더욱 극심해진 경기침체와 이를 배경으로 한 자본의 공세, 고용문제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불안과 불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기존 지도부의 절충적 인식과 대응양식 등이 강력한 지도부에 대한 조합원의 요구로 이어지면서 그것이 조합원의 요구를 올바로 반영하기 위해 꾸준히 현장활동을 해 왔던 신임 집행부 진영에 대한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판단된다. 즉 ‘정세와 올바른 방향에 근거한 조직활동’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22)
하반기 투쟁과 대통령선거투쟁의 부진한 전개는 총파업결의와 투쟁방향설정의 문제점, 그리고 대통령선거투쟁의 기조 등에서 그 주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구체적인 요구조건과 계획에 근거하지 못한 총파업투쟁 결의23), 노동자내부의 실질적인 단결의 고리를 긴밀하게 포착하지 못한 투쟁방향설정, ‘국민후보’로서의 정치적 이미지 확보를 목표로 하고 진행된 선거운동방식 등이 그 예이다.
자본의 공세에 대한 총체적인 성격규정과 상반기 투쟁24)에 대한 종합적 판단의 부재속에 투쟁과제를 나열하고 이를 고용안정투쟁과 경제민주화투쟁으로 구분하면서 강도 높은 대응방식의 상으로 총파업결의를 끌어내는 그러한 계획은 상황의 긴박성을 반영하면서 대중적 결의라는 ‘형식’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여러 투쟁동력의 ‘수평적 결합’25)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대중동력을 총체적으로 만들어 내기는 애당초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기아 살리기’라는 방향하에 전개된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의 투쟁이 사실상 이 투쟁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던 점은 노동법의 재개악과 퇴직금 부지급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예열되고 있던 대중 투쟁동력26)의 수렴과 집중의 결정적인 한계로 작용했다. 이 투쟁의 일단락과 함께 하반기 투쟁의 동력이 사실상 실종되었음은 그 단적인 예이다.
하반기 들어 다시 전면화된 총자본의 공세를 ‘고용안정과 경제민주화투쟁’의 방향에서 총파업의 조직화를 통해 방어하려던 민주노총의 하반기 계획은 ‘총파업의 결의’와 몇몇 사업장에서의 투쟁전개로 마무리 되어지고27) 총노동을 통해 표현되지 못했던 대중적 불안감과 투쟁의지는 부분적으로는 노동조합선거에서의 집행부교체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잠복되어졌던 투쟁동력은 새로운 계기에 의해 다시 복원될 것을 강제 받게 되었다. 외환․금융위기를 고리로 한 경제위기의 전개와 IMF 관리체제의 등장이 그것이다.
다시 복원되는 투쟁동력
12월 3일 IMF 구제금융이 도입되고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가 이후 전개될 노동운동의 조건으로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방향이 본격적으로 모색되어졌다. 민주노총은 12월 4일 중앙집행위원회와 12월 10일 중앙위원회를 통하여 정세인식을 정비하고 투쟁기조를 다듬어 나갔다. 그 내용을 보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의 결의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악법도입저지와 고용불안의 극복 등의 요구 관철, 노사정 사회적 협약의 쟁취, 한국노총과 노동․시민운동단체 등과의 광범한 연대틀 구축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현시기 노동운동진영의 대응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경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의 결의’와 ‘사회적 협약의 쟁취’ 사이에 무게중심을 놓고 그 투쟁기조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 4. 대응방향
1)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
2) 재벌개혁․고용안정에 대한 제도개선과 노․사․정 사회적 협약을 공세적으로 제기한다.”28)
“ 2. 투쟁기조
……
2) 재벌개혁․고용안정을 위한 노․사․정 사회협약을 공세적으로 전개한다.
3)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29)
“ 1. 투쟁기조
……
2) 재벌개혁․고용안정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협약쟁취투쟁을 공세적으로 전개한다.
3) 가두시위․대규모 집회를 중심으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
대규모 부도에 직면한 현재의 의기의 성격상 총파업이 저들에게 타격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타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두시위, 대규모 집회를 중심적인 투쟁형태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총파업의 배치가 필요하다면 사회적 교섭과 투쟁의 전개, 여론 등을 고려하면서 투쟁을 고조시키고 적절한 시기에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30)
“ 3. 노동정세
……
따라서 ‘기업별 교섭을 통한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에서 ‘중앙교섭․산업별 교섭을 통한 전체노동자대중의 고용․생활보호’로 교섭방식과 목표를 전환하고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노조’에서 ‘실업자․비정규직까지 망라한 산업별노조’로 조직형태를 전환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5) 98년 1월에는 노사정 3자중앙교섭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
Ⅱ. 투쟁방침
……
2. 방침
가. 노사정 중앙교섭과 총력투쟁
1) 민주노총 주관하에 노사정 중앙교섭과 총력투쟁을 병행한다. 산별연맹과 단위노조는 1월 17일(토)까지 조합원 교육선전과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단위노조는 산별연맹에 98년 임단협에 관한 교섭권 위임을 결의한다.”31)
약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을 두고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결의’는 ‘중앙교섭과 총력투쟁의 결합’과 ‘각 산별 연맹에 대한 98년 교섭권 위임’으로 변화하였으며 각 지역과 사업장의 구체적인 조건의 파악과 이를 바탕으로한 다양한 투쟁계획의 모색은 중앙교섭요구의 구체화로 대체되었다. 김대중 당선자의 등장과 1월 임시국회를 통한 이른바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해고 협박,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조건에서 전개되는 투쟁에 대한 부담감, 12월 집회에서 확인된 낮은 동원력32)등이 교섭에 의해 현재의 상황을 방어하고 이를 통해 시간을 벌자는 발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상의 변화는 이른바 사회적 합의에 대한 총론적인 인식이나 각국 사례에 대한 비판적 검토이전에 ‘현실적’으로 진행되는 광범한 정리해고, 불안과 위축속에서도 그 돌파와 방어의 무기를 찾는 노동대중들에게는 - 언론의 ‘기정사실화’ 공세에 의해 증폭되면서 - 무장해제와 속수무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1월 7~8일 1박2일에 걸쳐서 진행된 민주노총의 98년 제1차 중앙위원회와 30cm가 넘는 폭설을 뚫고 500여명이라는 최대의 인원이 모인 1월 9일 민주노총 단위노조대표자회의의 열기는 이러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었다. 기조 설정을 위한 정세인식의 정리, 구체적인 투쟁계획의 요구, 노사정 협의체 참여와 투쟁과의 관계 등에 대한 격렬한 토론 끝에 중앙위원회는 61 : 21로 강력한 투쟁의지를 확인하면서 제출된 안을 수정 결의하였다.
“민주노총 주관하에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 총파업의 시기와 방법은 투본대표자회의에 위임하되 중앙위원연명으로 총파업을 담보한다.
…… 만약 정부가 1월 중순 임시국회를 열어 금융산업 정리해고제 도입 등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하면 노사정 3자교섭 참여를 전면 재검토하고 즉각적인 농성투쟁 돌입 등 투쟁의 수위와 방법을 전면 재조정한다”33)
제1차 임시 중앙위원회의 특징적인 사실 중의 하나는 대공장 위원장 22명의 이름으로 연서명된 ‘우리의 결의’이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을 비롯한 이들 노조위원장의 연대서명은 전선에 대한 계획이 흐려지고 있던 연초의 분위기를 바꾸어 내면서 중앙위원회의 전체적인 의견이 전투적인 분위기로 모이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
우리는 당면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 우리의 원칙을 바로 세우고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투쟁하는 길임을 분명히 하고 다음과 같이 결의하여 민주노총을 비롯한 모든 연맹 및 단위노조가 힘차게 투쟁을 결의할 것을 제안한다.
1. 우리는 고용안정과 생활안정 등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결사투쟁한다.
……
1. 우리는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조직을 정비하고 대중적 결의를 모아 준비된 투쟁대오로부터 강력하고 끈질긴 총력투쟁을 천명하고 정권과 자본의 도발시 즉각적인 총파업에 돌입하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모든 역량을 바쳐 사활을 건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한다.”34)
현상적으로 본다면 이번 제1차 임시중앙위원회의 결의는 12월 10일 중앙위원회의 결정사항을 다시 복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12월 10일 중앙위원회의 결의사항 또한 97년 하반기 ‘고용안정과 경제민주화투쟁’에 대한 민주노총 제7차 임시대의원대회의 결의사항을 다시 확인한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종합적인 정세인식, 노사정합의체에 대한 태도, 투쟁의 구체적인 상과 요구사안에 대한 상호연관성 등에 대해서 좀더 정리된 논의가 제출되어지지 않은 한계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앙위원회 결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구체적인 투쟁계획이 없이 교섭위주로 진행되는 수세적인 대응기조가 강화되고 있던 정세에서 계급현실의 상태를 근거로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켰던 점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중앙위원회의 결정은 나름대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이와 결합하면서도 투쟁 기조가 갖고 있는 빈 지점을 메우고자 하는 시도도 나타났다.
“…… 단위노조에서의 교섭은 언제라도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투쟁의 명분을 획득하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투쟁에 대한 대중적인 자신감과 준비가 부족하고 민주노총 지도부의 지도력이 취약한 현 상태에서 노사정 협의체에 들어간다는 전술은 투쟁할 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1월에 금융산업 정리해고를 위한 임시국회소집시 노사정협의체 불참이라는 중앙위의 방침을 달리 표현하면 단시 시기를 늦춘다면 참여할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우리는 기아자동차 투쟁에서 쓰라린 교훈을 얻어야 한다. 회사가 부도상황에서 회사를 살리자는 투쟁은 결국 상여금 반납, 노동강도 강화, 퇴사자 속출 등 노동자가 온몸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것으로 끝났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투쟁구호는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자본의 논리가 먹힐 수 있는 경제주권 수호가 아니라 노동자 살리기, 노동자 생존권쟁취로 전면 교체돼야 한다.
…… ‘전국현장조직 대표자회의’와 ‘전해투’는 98년 1월 10일 당면 상황의 긴박함을 고려하여 ‘총파업투쟁 조직을 위한 공동 실천단’으로써 노동자 살리기 투쟁에 적극 임할 것을 결의한다.”35)
다소 미흡하고 절충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중앙위원회의 이러한 결의는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었지만 1월 13일 김대중 당선자와 재벌총수들과의 회동 - 이 자리에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 지급보증제의 해소 등 ‘재벌개혁’에 관한 몇 가지 합의문이 채택되었다 - 그리고 깡드쉬 IMF 총재의 방한과 민주노총 및 한국노총 간부진과의 면담이 이어졌다. 1월 14일 국민회의는 1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자 했던 ‘부실금융기관 고용조정에 관한 법률안’ 처리방침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결정 후 처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철회하였다. 김대중이 그토록 굽히지 않던 강행통과의 의지는 노동운동진영의 강력한 반발로 일시 주춤하였고 정리해고 등 쟁점사안은 노사정위원회의 발족을 통한 타결로 이월된 것이다.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 노사정위원회의 발족과 참여
1월 14일 새벽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합의하였고 1월 15일 마침내 노사정위원회는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격적인 노사정 위원회 참여에 따라 전체전선의 긴장감은 일순간에 후퇴하였다. 1월 14일 오후에 열린 민주노총 투본대표자회의는 ‘민주적 절차와 처리과정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만장일치로 노사정 위원회 참여를 추인하면서 투본명칭도 「재벌개혁․경제주권수호․고용안정을 위한 투쟁본부」로 변경하였다.
1월 17일 국민대통합을 위한 선행조처 등 민주노총의 노사정 중앙교섭요구서가 제출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노사정위원회는 1월 20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간의 공정한 고통분담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면서 10개항에 걸친 논의의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선언문의 내용은 그동안 노사정 위원회로의 졸속참여에 대한 기존의 문제의식을 더욱 증폭시켰다. 게다가 서울지하철 노동조합의 손배철회를 둘러싼 쟁의행위 결의를 포함해서 한국통신의 신인사제도 관련 간 부 징계문제, 한양대 병원 간부 구속문제, 삼미특수강 문제 등 힘겨운 투쟁이 전개되는 상황에서의 노사정 선언문 채택은 다음날(1/21) 개최된 민주노총 제2차 중앙위원회에서 집중적인 문제제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다음과 같은 제안서를 채택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 그러나 1월 20일 노사정 위원회의 합의문 발표를 악용하는 자본과 정권의 언론을 동원한 공세로 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데 대하여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한 지난 1차 중앙위원회의 투쟁방침이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현장의 투쟁동력을 높이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노사정 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한 10대 의제에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가 포함된 것에 우려를 표하며 2월 국회에서 정리해고제 법제화를 기정 사실화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기도에 대해 엄중 항의한다.(밑줄 친 표현 삭제키로 동의함 : 필자)
…… 정리해고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쟁점이 형성되는 것을 막고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국면전환의 노력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교육, 선전 사업에 돌입해야 한다. …… ”36)
또한 중앙위원회에서는 보고사안으로 상정되었던 ‘공동선언문 문제와 향후 대책’건을 안건으로 처리하면서 공동선언문에 대한 문제제기를 각 조직별로 제출하기로 하였고 현재 총력투쟁의 계획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도 주요한 사업장의 투쟁이 벌어지면 - 서울지하철, 한국통신, 한양대학병원, 삼미특수강 등 - 강력한 연대투쟁을 조직할 것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지난 96년 신노사관계 구상의 발표와 함께 만들어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97년 경제위기공세와 함께 만들어진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 이어 98년에는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계라는 배경하에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하였다.37)이번에 발족한 노사정 위원회는 10개항의 의제에서 알 수 있듯이 물가, 임금, 고용, 노동시간, 재벌개혁, 사회개혁, 국민 대통합 등 예전의 기구들보다 상당히 광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동시병행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김대중의 여러 개혁(?)조치에서 노동문제가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처리하려는 과제를 안건에 담고 있으므로 노사정위원회가 현 정세에서 점하는 위상은 상당히 높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노사정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구’이고 이런 점에서 볼 때 96년에 발족한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관계위원회처럼 주요한 합의사항이 당선자 건의사항으로 처리되는 한계를 갖고 있는 기구이며 그런 점에서 실상 ‘중앙교섭’단위라고도 할 수 없다.38)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언적인 형태이지만 재벌개혁에 관한 재벌총수와 김대중간의 합의, 당장 통과시킬 것처럼 들이대던 부실 금융기관 정리해고조항의 임시국회 상정 철회,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라는 현 시기를 기업별, 연맹 단위로는 돌파가 어렵고 민주노총의 대정부․자본 교섭력 강화의 고리로 적극 위치 짓겠다는 정세인식, 대중투쟁동력의 준비정도에 대한 판단, 작년 하반기 투쟁에서 요구했던 고용안정요구 - 노사정 고용안정대책위원회구성 및 고용안정협정체결 - 의 변화된 조건에서의 대폭적인 확장 필요성 등이 중앙교섭 요구의 정식화와 노사정위원회로의 참여를 촉진한 ‘정세적 요인’이라고 판단된다.39)
전투에서도 휴전이 있고 전쟁이 진행중인 상황에서도 여러 수준의 협상이 있듯이 ‘협상’ 그 자체를 문제시하거나 악(惡)으로 볼 수는 없다. 노동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총자본과 포괄적인 내용을 갖고 협상에 임하는 것은 필요하기도 떄로는 이러한 논의를 확보해야 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협상이 투쟁대오의 정비 - 요구와 대오의 정렬 등 - 와 맞물리면서 이를 강화하고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노사정위원회로의 참여는 이러한 점과는 배치되는 방향으로 그 효과가 나타났다. 제1차 중앙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총파업 등을 결의하면서 투쟁전열을 정비하던 현장에서는 노사정위원회로의 참여와 ‘고통분담, 산업평화유지, 노사정 대타협, 근검절약의 생활화’ 등 기가 막힌 문구가 적힌 공동선언문을 접하면서 상당한 혼란에 빠졌고 노동운동진영이 방어적인 위치에서도 전체 정세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인식되던 이제까지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정세의 주도권은 총자본진영으로 이전되어졌다. 노동운동진영이 노사정위윈회에서 저항하고 있는 ‘하나의 요소’로 비쳐지고 있고 노동운동에 대한 대국민설득력을 강화하려는 김대중진영의 최근 현상은 변화된 정세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라는 맥락에서 노사정위원회가 놓여있는 지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의 힘이 강할 때 자본측이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지만 노동운동의 힘이 약해지면 협약의 준수도, 새로운 합의도 하지 않는 것이 자본의 논리이자 생리임은, 이러한 협약을 전체 투쟁속에 자리매김하면서 전진하지 않는 한 노동운동의 발전동력이 갉아 먹히게 됨은 다른 나라의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40)
노사정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했다고 총자본진영이 선전하고 있는 멕시코의 사례도 대단히 왜곡된 채 알려져 있다. 멕시코의 경제위기 당시 체결된 노사정협약의 노동조합파트너인 노동회의(CT)/멕시코노동자총동맹(CTM)은 전형적인 어용노조이며 그나마 이들 산하에 있는 일부 노조는 이 협약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경제위기의 돌파구로 채택한 IMF 정책이 실시되면서 멕시코에서의 1인당 소비재생산은 22% 하락했고 실업노동력은 50%를 육박하고 있으며 제조업 노동력은 전체노동력의 5%정도를 점할 뿐 실물경제는 사실상 붕괴되어 있는 상태이다.
초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부문은 경제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으나 그 성장은 불안정 고용과 여성노동력의 착취에 기반하고 있으며 부분적 성장을 하고 있는 미국남부 국경지대의 마퀼라도라41) - 자동차부품 조립수출지역 - 는 그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아우슈비츠’로 불리기도 한다. 외채규모는 1994년 1,360억 달러에서 1,996년 1,800억달러로 약 32%가 증가했으며 - 실업인구는 약 200만 증가 - 9,000만명의 전체인구중 7,980만명이 미국 최하층 10% 이하의 생활수준에 처해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멕시코의 아프리카화’ ‘거품외채의 유지 불가능, 폭발은 시간문제’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42)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점은 제도혁명당(PRI) - 노동회의(CT)/멕시코노동자총동맹(CTM)을 축으로 하는 지배구도가 94년 이후 최근까지 3년여 기간 동안 대중적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94년 자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봉기로 시작한 사회변혁의 열기는 97년 여름 멕시코시티 시장선거에서 50년만에 처음으로 야당인 민주혁명당(PRD) 후보의 당선이라는 ‘사건’으로 이어졌고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던 노동회의(CT)/멕시코노동자총동맹(CTM)을 극복하는 하나의 시도로 전국노동자연합(UNT)이 작년 11월 출범하였다. 이렇듯 멕시코의 경제위기는 알려진 것처럼 노사정의 협력으로 슬기롭게 극복된 것이 아니라 ‘지배체제의 정치적 위기와 새로운 개혁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43)
노동운동진영에서 사례로 들고 있는44)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ꡔ국민경제발전노동위원회ꡕ도 현시기에 진행되는 노사정위원회의 모델과 비교되거나 노사정 3자 참여의 제도화사례로는 부적절하다. 남아공의 경우 만델라 정권은 민족민주혁명노선에 근거한 일종의 혁명정부이며 ꡔ국민경제발전노동위원회ꡕ는 만델라 정권 주도하에 ‘위로부터의 혁명’을 추진하기 위한 기제이다. 혁명의 성격과 발전방향을 둘러싸고 만델라 정권과 노동운동진영간의 일정한 긴장관계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 가령 COSATU가 ANC선거를 돕는다든가 하는 - 함께 하는 관계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더욱 강화할 김대중 정권의 출범을 앞둔, 더구나 극심한 경제위기가 진행되는 현 조건에서 진행중인 노사정위원회와 남아공의 ꡔ국민경제발전노동위원회ꡕ는 각각이 기반하고 있는 운동의 지형과 그 성격이 현저히 다르며 이를 비교하고 참고한다는 것은 비약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식은 진퇴와 부침을 거듭하는 정세의 역동성을 놓치고 노사정 3자 기구의 제도화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시야의 협소함을 가져오면서 그 결과로 수세적인 정세인식하에 교섭테이블을 강조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그 공고화’과정에서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45) 이러한 접근방법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 현재 진행되는 노사정회의를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노동운동진영, 구체적으로는 민주노총에 대한 정치적 추파와 협박, 이를 통한 노동운동의 무력화 - 그 구체적 표현으로서의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 - 방향으로 논의의 흐름은 잡혀져 가고 있다. ‘자본주의적 합리화’로 이해될 수 있는 정치․행정개혁, 재벌개혁 등을 노동자의 생존권과 교환하자는 현실, 더구나 “사실상 합의는 불가능할 수 있고 - 아니 불가능하고 - 이 경우 최고 정책결정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총자본진영의 주장46)은 노사정회의체가 현정세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2월 총력투쟁의 계획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노사정위원회의 참여과정과 노사정 선언문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등 투쟁동력의 복원을 위한 노력이 제2차 중앙위원회에서도 반복되어졌다. 교섭과 투쟁, 정세인식과 무게중심을 달리하는 방식이 민주노총의 1차 중앙위원회, 노사정위원회 참여, 2차 중앙위원회 등을 통하여 되풀이 되었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현장의 동력을 조직하고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다. 예전과 달리 중앙수준의 논의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문제의식이 풍부하게 제기되면서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신노사관계 구상의 완성인가 전국적 총파업투쟁의 완성인가
멀리는 작년 하반기 이후 가깝게는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작년 연말부터 현시기 노동운동의 대응방향을 둘러싼 모색이 진행되어졌다. 이러한 모색은 현상적으로는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인가, 투쟁과 교섭의 병행인가(유연한 대응인가)로 대비되어졌고 최근 들어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등을 통하여 이러한 경향적 대립은 - 각 사업장의 조건을 반영하는 측면과 투쟁노선의 측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연말부터 현재까지 IMF 구제금융, 김대중의 개혁 행보, 정리해고의 법제화, 총력대응의 필요 혹은 중앙교섭의 확보 등 역동적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힘겨운 주제가 던져지면서 이에 대한 부분적인 진단이 진행되고 있지만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과 장․단기 대응방향의 모색은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현정세는 신노사관계구상과 전국적 총파업으로 집약되었던 96~97년의 노자간 대립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운동의 법적․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고 노동운동을 순치시키며 - 허구적인 파트너쉽을 만들어내면서 - 이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인가, 노동자대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사수하고 내부단결의 폭과 깊이를 넓히며 이를 바탕으로 산별노조로의 이행과 노동자 정치운동의 진정한 복원을 ‘쟁취’해 내면서 전체 민중의 삶과 민주적 제권리 쟁취를 선도하는 사회적 세력으로 우뚝 설 것인가 하는 노자간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현정세가 96~97년의 단순한 연장선은 아니다.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라는 기초위에 김대중 정권과 민주노총 제2기의 출범이라는 변화된 조건에서 현 정세는 전개되고 있다. 그만큼 자본의 공세와 요구는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노동측의 방어가 힘겹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현재는 방어적 투쟁이 요구되는 시기이며 이러한 투쟁을 통하여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면서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방향을 규정하고 제반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체로서 노동운동의 위상을 높여 나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미완과 굴절로 마무리된 96~97년의 신노사관계 구상과 총파업투쟁의 경험은 이 점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지 못한 채 ‘경제위기 - 고통분담과 사회적 합의 인정, 그러나 정리해고는 반대’라는 기조가 상당히 팽배해 있다. 고비용 - 저효율 논리를 들고 나왔던 97년 상반기 자본측의 경제위기 공세에 대해 노동운동진영이 ‘경제위기 암묵적 인정과 소극적 거부’로 대응하였고 그 결과는 상반기 전선형성의 시기지연과 방향감각의 정체였다. 이러한 현상이 또다른 조건에서 재현되고 있다.
97년 일일 평균 728명이던 실업급여신청 인원은 98년 들어 5천명을 돌파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비정규적 노동자가 전체취업자의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고용유연성수치(0.55)가 일본(0.46)보다도 높은 조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는 이제 명예퇴직이든 정리해고든 이른바 ‘실업대란’이 전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반위에서 실업급여의 ‘기간’과 ‘액수’를 조금 늘리면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법제화하자는 것은 어설픈 성의표시(?)이외에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른바 외자유치의 문제도 실상 투기자본의 투자요인이 국내금리, 환율변동과 증권수익이지 정리해고법의 유무가 아니라는 주장도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47)
암묵적으로 인정되기도 하고 떄로는 공공연하게 인정되면서 유포되고 있는 ‘고통분담’이라는 주장도 현실적으로는 자본 일방의 논리이다. 경제위기시에 발생하는 대대적인 임금동결과 감봉, 고용 불안, 물가 폭등과 같은 생활상의 고통, 대외채무의 국가보증(240억 달러)과 부실금융기관 정리에 들어갈 채권발행(40~50조원 예상)으로 인한 전국민의 엄청난 조세부담 등 일상의 생활상의 고통은 물론 기업의 부채보증까지 노동자․민중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은 그 자체로 고통전담이다.
또한 감원을 막기 위해 감봉을 감수하는 것이 실상은 ‘노동자들간의 고통분담’임에도 -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고통전담인 - 이를 노자간 고통분담의 내용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 고용과 임금의 맞바꾸기로 많이 나타난 서구의 이른바 사회적 합의와는 달리 자본주의적 합리화의 의미를 지니는 정치, 행정, 재벌개혁과 이미 해결되었어야 할 노동기본권을 변용해서 제시하면서 이것을 노동자의 생존권과 맞바꾸자고 유혹과 협박을 하는 최근의 노사정회의 진행은 ‘고통분담을 가장한 전형적인 고통전담 논리’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집단적 노사관계법 vs 개별적 노사관계법’ ‘3금과 3제’의 문제로 쟁점이 형성되었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서의 대립구도는 노사정위원회라는 형식하에 ‘정치․행정개혁 + 재벌개혁 대(對) 노동개혁(정리해고조항과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으로 다소 변형되어 재현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총파업투쟁을 통해서 쟁취해 내지 못했던 교사․공무원의 단결권문제도 - 일정기간 유보, 교원단체수준으로의 제한과 함께 - 덧붙여져 제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광범하게 전개되는 정리해고 등 고용문제에 대한 대응과 함께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에 대한 저지투쟁은 현시기 사활적인 과제이다. 법제화가 주는 위력은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제의 대대적인 실시 뿐만 아니라 임금, 노동시간, 노동강도, 노사관계 등 모든 측면과 수준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와 허구적 동반자논리에 의한 노동운동의 무력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현재의 투쟁이 경제위기에서 전개되는 운동의 ‘초기국면’이라는 점이다. 총자본진영은 ‘신노사관계의 완성’을 더욱 투명하고 폭력적으로 전개할 것이며 이는 경제위기가 진행되는 전 국면에 걸쳐서 그리고 경제위기를 벗어난 국면에서도 그 강도에서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당면의 과제에 총력을 집중하면서도 ‘한판승부’가 아니라 다양한 쟁점이 부침하는 가운데 노자간 대결구도가 만들어 질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전국적 총파업과 총력투쟁은 완성되어져야 할 과제가 되는 셈이다.
전국적 총파업투쟁의 완성을 향하여
부분적인 잠복속에서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경제의 위기는 이후로 그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할 것이다. 기업의 화의신청은 이미 급증 - 화의신청에 대한 요건이 강화되면 부도사태는 더욱 더 속출할 것이다 - 하고 있고 고물가, 고실업과 같은 문제는 상반기 들어 더욱 강화되며 노동자․민중의 삶을 고통으로 몰고 갈 것이다. 검찰조사까지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경제위기 청문회는 정치권 내부 권력투쟁의 성격도 갖고 있지만 이를 통해 경제위기의 책임을 규명하면서 ‘경제위기 YS 무능론’과 ‘경제위기 재벌책임론’ 의 등장을 통해 김대중 정권의 정국주도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위기탈출책의 성격을 갖는 각종 개혁조치의 허구성과 비현실성48) 등도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작년 12월말에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던 ‘부실금융기관 고용조정에 관한 법률안’은 금년 1월로 그리고 다시 2월로 연기되어 이른바 노사대타협에 의한 일괄타결의 방식을 기다리고 있다. 김대중 당선자가 이토록 시기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초국적 자본의 김대중 길들이기 공세49)에 의해 일정을 촉박하게 잡은 탓도 있지만 노동운동진영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의 국회통과는 - 사실상 노동운동진영에게 그것은 날치기 통과의 의미를 지닌다 - 엄청난 부담감을 남겨놓는 다는 사실을 지난 총파업투쟁을 통해 자각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그것은 노동운동진영이 갖고 있는 ‘힘’과 영향력을 김대중 당선자가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2월 투쟁의 귀결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겠지만 노사정위원회로의 진출과 철수는 반복될 수 있으며 대중적 수준의 위축과 불안이 초기국면을 주도하면서 경쟁과 탈연대의 흐름이 - 노동자간 내부 경쟁의 흐름이 - 나타나겠지만 고용, 임금, 물가, 노동시간, 민영화, 노동3권 등의 문제가 다양한 계기로 쟁점화되면서 새로운 단결과 투쟁의 가능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노총 1기를 마감하는 이즈음 나타난 중앙위원회의 변화된 분위기는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현장의 목소리와 상당히 근접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단위사업장에서 나타나는 쟁점과 탄압사례도 총노동의 요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96~97년 총파업투쟁을 통해서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은 확고해졌으며 시민운동 등 전체 전선의 분화와 재편을 경과하면서 전체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제권리 확보의 주도세력으로서의 위상은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98년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전개될 투쟁이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대중적 저항으로 전세계적 관심과 자극을 불러일으켰던 96~97년 총파업에서 나타난 한계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애국주의, 사회적 합의주의의 대중적 극복,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이 강화된 새로운 전선질서의 재편, 노동운동을 사회세력과의 긴밀한 결합속에 총체적으로 지도해 나가는 정치적 지도력과 그 담보체의 구축 등 많은 과제50)가 아직 해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자본의 공세에 대해 노동자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그 중심에 놓고 ‘시장에 저항하는 운동’의 성격을 띄며 전개될 이후의 투쟁과정은 앞서의 과제를 해결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51)
바로 그러한 과제를 자각하고 해결하며 준비해 나갈 때 현시기 노자대립의 성격과 그 해결방향, 96~97년 총파업투쟁경험에 대한 대중적 자각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노동운동진영이 ‘준비되고 완성된 지도력’은 아니지만 ‘준비하는 지도력’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새로운 정치적 프로젝트’로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며 전체 노동자계급을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이 될지 다시 한계와 좌절을 거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자양분으로 자리매김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허구적 동반자관계에 의한 경제위기 극복의 길(?)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에 의한 경제위기 극복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전국적 총파업투쟁의 새로운 완성을 향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98.1.31.)
1) 민주노총 제1차 임시중앙위원회 결과 중
2) 민주노총 투본대표자회의 결과보고 중
3) 민주노총은 이 날 개최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경제민주화와 고용안정’을 하반기 총괄기조로 설정하고 9월말까지 산하 모든 노동조합에서 최대한 총파업투쟁을 조직할 것을 결의했다.
4) 유일노조 강제조항, 공무원과 교사의 단결권 금지, 제3자 개입금지(이상 3금)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시간근로제(이상 3제)가 그 내용이다.
5) 투쟁과정을 통해 노동운동이 사회민주화세력의 중심세력임이 확인되었지만 실제적인 진행과정에서는 제민주세력을 노동운동진영으로 결집시켜내지 못한 점(범대위활동), 정권에 대한 투쟁과 자본에 대한 투쟁을 분리시키는 측면이 존재했던 점, 97년 1월 15일 이른바 수요파업이라는 전술전환을 통해 투쟁의 집중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점, 이로 말미암아 노동법 재논의의 주도권을 국회로 완전히 넘긴 채 형식적인 4단계 총파업으로 사실상 총파업투쟁이 실종된 점, ‘객관적’으로는 국제노동운동의 커다란 관심과 자극을 불러일으켰지만 단지 투쟁의 파급력과 영향력에 의존하는 수준을 넘는 의식적인 국제연대활동을 전개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6) 뒷부분에서 검토하겠지만 전국적 총파업투쟁의 완성이란 위력적인 총파업투쟁의 구현이라는 측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지난 총파업투쟁에서 드러난 이념적, 정치적, 조직적, 전술적 한계의 극복과 이를 담보한 새로운 지도력의 쟁취, 이러한 지도력에 의한 대중적 결합 등 총체적 수준에서의 극복을 의미한다.
7) Bill Powell, ‘아시아의 희망은 최후의 돈줄 IMF와 든든한 바이어 미국뿐’, Newsweek 한국판 신년합병호, 27쪽
8) 김 견, “1980년대의 산업구조조정정책”,『한국자본주의 분석』일빛, 참조
9) 여기서 경제위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극복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IMF 협약이행과 산업구조조정이 물신화(物神化)하면서 그것이 ‘경제위기’의 돌파를 위한 ‘무기’라는 정세인식이 시야에서 놓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시기가 경과하고 다시 불황기에 접어든다면 그것은 여러가지 정책적 수단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위기 - 불황 - 호황으로 이어지는 경기변동의 법칙적 전개로 이해되어야 하며 ‘IMF 협약준수 --> 경제위기 극복’으로 이해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10) 주요한 민간대기업 연구소들은 하나 같이 마이너스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11) 경제위기를 계기로 해서 싫든 좋든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과 학습이 높아지고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연구와 학습을 강제 받고 있는 셈이지만 이 또한 운동의 발전에 따른 합법칙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12)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당선기자회견 중, 중앙일보 12월 20일자
13) ‘정권교체의 실현’, 한겨레신문 사설, 12월 19일자
14) 릴리 전 주한 미대사 ‘한국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중앙일보 12월 20일자
15) 물론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그 기반으로 하는 파트너쉽이 실상 자본일방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허구적 동반자관계’임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6) 최근 반세기 동안 유지되어온 현행 복지제도의 축소를 시도하고 있는 영국노동당이 그 좋은 예이다.
17)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치노선, 집권시기 정치지형, 사업방식의 차이 등이 존재하지만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합리성의 추구를 그 기본방향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18) 이런 점에서 볼 때 김대중의 대중설득력을 강조한 릴리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19) 이 주제에 대해서는 김세균, “김대중정권의 출범과 노동자 - 민중운동의 진로” ꡔ정세토론회 자료집ꡕ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 연대」 공동주최 참조
20) 이와는 달리 한국노총은 정책연합의 형태로 대선에 임했으며, 이는 박인상 위원장이 개인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졌다
21) 울산 중구의 5.2%, 북구의 14.0%, 동구의 9.7%, 거제의 4.0%, 창원의 3.8%, 경주을의 3.8% 등이 그 예이다.
22) 이와 관련해서는 곽탁성, “김광식 위원장을 찾아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7년 10월호, 조용형,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제7대 임원선거 평가” ꡔ노동전선ꡕ 97년 10월호, 강연자, “고종환 집행부를 찾아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7년 12월호, 신태섭,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제14대 임원선거 평가” ꡔ노동전선ꡕ 전국노동운동단체연합, 97년 12월호 참조
23) “▷ 민주노총은 경제민주화와 고용안정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결의한다
23) “▷ 민주노총은 경제민주화와 고용안정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결의한다
▷ 민주노총 산하 모든 노동조합은 9월말까지 파업투쟁을 결의한다.
▷ 민주노총 산하 모든 노동조합은 9월말까지 파업투쟁을 결의한다.
▷ 총파업에 따른 구체적인 조합원총회 및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민주노총지도부에 위임한다.”
▷ 총파업에 따른 구체적인 조합원총회 및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민주노총지도부에 위임한다.”
민주노총 제7차 임시대의원대회, 경제민주화와 고용안정쟁취를 위한 총력투쟁계획(안)
24) 민주노총에서 결의한 총파업백서의 제작이 지지부진한 것은 이러한 상태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상반기 투쟁을 ‘노동자간 경쟁과 탈연대의 강화’라는 흐름과 ‘노동운동내 단결의 강화’라는 두 흐름의 전개에서 분석한 글은 “상반기 임․단투 평가”, ꡔ현장조직대표자회의 대중토론회 자료집ꡕ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참조
25) 총자본의 노동법개악의 움직임에 대한 저항이 저변에 깔려 있었지만 하반기 투쟁의 주요 동력은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의 국민기업화투쟁, 민주택시노련의 완전월급제 쟁취투쟁, 민주금융노련의 한국은행독립성 쟁취와 감독기관저지투쟁 등이다.
26) 97년 10월부터 12월까지 총파업을 결의한 노동조합은 모두 337개이며 그중 완전월급제와 관련된 민주택시노련 산하 노동조합이 213개를 점한다.
27) 그 방향과 계획의 오류와 불철저함에도 불구하고 기아자동차의 처리가 - 다른 요인과 맞물리긴 했지만 - 4개월의 시간을 끈 채 법정관리로 넘어간 점, 금융개혁에 대한 자본측의 처리가 자본분파 내부의 갈등과 함께 이월되어진 점 등은 총파업선언과 부분적 실천의 객관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8) 민주노총 중앙위원회(12.12.) 제출 자료 중
29) 민주노총 투본집행위(12.12.) 소집공문
30) 민주노총 투본대표자회의 (12.26.) 제출자료 중
31) 민주노총 98년 제1차 중앙위원회 자료 중
32) 12월 6일부터 매주 열렸던 집회에서 수도권 지역의 경우 1,000여명(학생포함) 정도의 낮은 동원율을 보였다. 3,000여명부터 출발했던 집회가 지난 1월 17일에는 12,000여명으로 발전했던 울산지역과는 대조를 이루는 현상이었다.
33) 민주노총 제1차 임시 중앙위원회 회의 결과 중
34) ‘고용안정과 생존권사수를 위한 우리의 결의’ (98. 1.7.) 중
35) 전국총파업조직을 위한 공동실천단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전해투 / 1.10.) 결의문 중
36) 민주노총 98년 제2차 임시 중앙위원회에 제안, 채택된 ‘당면정세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결의 제안’ 중
37) 사회적 합의와 관련된 경험으로는 94년 밀실협약으로 대중적 비판을 받았던 노경총의 사회적 합의, 연말에 만들어졌던 비상경제대책추진위원회(12.3.) 등도 들 수 있다.
38) 이와 함께 민주노총에서 중앙교섭력의 강화라는 맥락에서 추진하고 있는 98년 임단투의 산별연맹으로의 교섭권위임은 사실 ‘교섭요구 없는 교섭권위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급박한 상황을 근거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러한 형태의 교섭권위임은 사실상 ‘넌센스’라고 할 수 있다.
39) 사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민주노총의 출범시부터 제기되며 많은 논란이 있었던 사회개혁투쟁과 민주노총 제1기의 운동노선 등 ‘노선적 요인’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뒷부분에서 부분적으로만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한다.
40)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가?”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6년 6월호 특집에 실린 글 참조
41) 마퀼라도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마퀼라도라 문제?’『현장에서 미래를』97년 12월호 기획번역 참조
42) 멕시코 운동의 전체지형과 사회적 합의 등에 관한 내용은 “멕시코의 체제위기와 노동운동의 대응”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8. 1~2월호 참조
43)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97년 멕시코 노동운동평가” ꡔMexican Labor News and Analysisꡕ Vol. 3. No 1. 참조
44) 민주노총, ‘노사정 중앙교섭요구서’(98. 1.17.) 14쪽
45) 조효래, ꡔ민주화와 노동정치ꡕ,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논문, 1995, 참고
46) 시사토론회 프로그램에 나온 조남홍 경총 부회장(1/10), 공병호 전경련 부설 자유기업센타소장(1/17)은 이 같은 발언을 공공연하게 했다.
47) 채규대, ‘정리해고법 근거 약하다’ 한겨레신문 1월 31일자
48) 노동개혁의 유인이자 김대중개혁의 주요한 내용으로 추진되고 있는 재벌개혁, 특히 빅딜과 사유재산출자에 대한 자본측의 저항이 시간 끌기에서부터 의회로비와 문제제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49) 신용평가기관에서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정크본드수준으로 평가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50) 이 점에 관해서는 박성인, “민주노총 정치실천단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7년 12월호 특집 참조
51) 경제위기시 노동운동의 당면 투쟁과제에 대해서는 김세균, “김대중 정권의 출범과 노동자 - 민중운동의 진로” ꡔ정세토론회 자료집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