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민중세상∥노동자문화
가도가도 포근한 마음의 길…
- 지리산 남부능선 산행기1
윤수근 / 금속 노동자
일 시 : 2005년 6월 3일~6일
산행지 : 지리산 남부능선
참가자 : 지하장군 라봉 도봉 수근
산행코스: 쌍계사→불일평전→생불재→삼신봉→한벗샘→
대성골갈림길→음양수샘→세석대피소→
한신주계곡→백무동
단식 끝낸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비만인 사람 둘(나 포함) 어떻게 갈지 정말….
6월3일 (금요일)
영등포역 - 구례구역 - 쌍계사 - 불일평전(휴게소) - 생불재 -
삼신봉 - 한벗샘
출발부터 일진이 좋지 않다.
출근하자마자 망치질 끝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내리쳤다.
처음엔 거의 느낌 없이 뜨끔했는데….
장갑이 핏빛으로 물들 때야 다친 것을 알았다.
관리과에 연락해서 병원 가서 x레이 찍고….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단다.
이 손가락으로 배낭도 자주 벗어야 하고 스틱도 들 것이고
식사준비 등 어떻게 할지 벌써부터 난감하다. 내일 아침까지
붓기와 통증이 가시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오랜만에 대형배낭 해드까지 짐을 싸고 보니 그동안 내 몸속에서
기생하고 있는 살들이 기겁을 한다.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넣었건만 허리도 다리도 휘청거리기만 한다.
겨울에 장거리를 한 번도 안간 처지라…. 몸이 아주
만신창이다.
죽었다는 생각만이 귓전에서 맴돌 뿐~~~
영등포역은 그야말로 배낭을 멘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아마도
모든 이들이 지리산으로 갈 것이다. 아는 철도 노동자에게
반강제 협박성 청탁(?)을 해서 좌석표를 간신히 구한 터라
그나마 편히 갈 수 있는 것이 위안이다.
6월 4일 (토요일)
여유로운 능선 오름과 끝없는 산죽(山竹) 길
새벽 2시 반이 안 되는 시간에 구례구역에 도착하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쌍계사 3만원에 택시를 탔다.
이 시간이면 매표를 안 할 것이니 절반가까이는 건진 셈이다.
어두컴컴한 차창 사이로 최치원이 지팡이 끝으로 썼다는
쌍계(雙溪) 와 석문(石門)이 어렴풋이 보인다. 매표소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절의 좌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합쳐진 것으로 절의 이름인 쌍계의 연유를 짐작케 한다.
낮에 왔으면 김정희가 쓴 글씨에 최치원이 글씨를 썼다는 비석
등 수많은 볼거리가 있겠지만 이 새벽에는 묵묵히 앞만 보고
가야한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불일폭포로 가려면 왼쪽으로 있는 국사당
전에서 우측으로 나있는 산길로 접어들면 산행의 시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간보다는 동트기 직전의 신새벽에 이 길을
걷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등에서 땀이 조금씩 번질 무렵 세석평전, 돼지평전과 함께
지리산의 3대 평전 중의 하나인 불일 평전에 도착하였다. 이곳엔
황토로 집을 지어 불일 휴게소(또는 불일산장)라 이름을 붙인
곳이 있다.
이곳 주인께서는 매우 부지런하여 앞마당에 연못(이름이
'반도지' 라고)도 만들고 주위의 나무 등 조경을 나름대로 잘 해
놓으셨다.
단, 자연미가 사라지고 인공미가 넘친다는 것이 흠이지만….
이곳에서 아침도 먹고 잠시 휴식을 하기로 했다.
오늘 일정은 한벗샘을 지나 헬기장까지니 매우 널널하다 못해
여유롭다.
3년 전인가 현충일 연휴 때였다. 나도 15명이나 대군을 이끌고
주능선 종주를 하였다.
그때 너무 못 볼 것을 본 것인가 산장에 구름같이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입장료 수입에 열만 내며 장비하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출입시킨 관리소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었고 그때 벽소령
산장에는 1,200명이라는 인간시장이 산중에 펼쳐졌다. 비까지
오는 상황에 노천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지리산
좋은 날은 다 갔구나 싶었다.
불일폭포와 삼신봉 가는 갈림길에서 폭포 구경 갈 사람
다녀오라고 했는데 아무도 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래도
설악산 대승폭포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길이(58m)를 자랑하는
폭포인데….
하는 수 없이 보이지 않은 물벼락 소리만 들으며 길을
재촉한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잘 왔다는 생각만이 든다. 지금
주능선은 사람들로 병목현상이 벌어져 있을 것이다. 새벽에
운동하시는 스님과 산책 나온 두 분을 제외하곤 10시까지 사람을
보지는 못하였다. 오직 보이는 것은 사람 키 높이 만 한 산죽과
좁게 연이어 있는 길 뿐….
삼불재까지는 오름길을 꾸준히 가야 한다. 몸에 썬 크림을
덕지덕지 발랐건만 태양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엷은 안개만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을 뿐….
낮 시간이 되니까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시간에는 거의 청학동쪽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원래 컨디션 안 좋으면 거기서 올라 볼 생각도
있었는데….(거기선 삼신봉까지 2시간)
중간중간 계속해서 쉬어간다. 삼신봉 가기 전 넓은 공터를
만났다.
외진 그늘진 구석이 있어서 신나게 달려가니 요상한 냄새가 풀풀
난다.
수많은 산꾼들이 폭탄(?) 투하를 한곳이다.
그래도 그늘진 곳을 비집고 들어가서 오수를 즐기기로 했다.
1시간의 '오수' 정말 꿀맛과 비교 할 수도 없는 즐거움….
점점 만나는 이들이 잦아지고 그래봐야 정말 이따금….
인사하는 횟수도 늘어만 간다.
이젠 삼신봉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최고의 조망이라는 내삼신봉에 올랐건만 주능선을 가리고 있는
가스 때문에 모든 것이 흐릿하다. 아까 삼천포에서 오셨다는
아주머니들께서 과일 준다고 했을 때 챙겨야 했는데….
남들 간식 먹고 있을 때 아무것도 없는 우리들, 사탕 하나씩
빨다가 발길을 돌린다.
삼신봉에 도착하여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하나는 한벗샘에 물이 잘나온다는 것이고….
바로 옆에 텐트 한 동 칠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긴급하게 오늘의 비박지를 거기로 결정하였다.
이제 관건은 빨리 가서 자리 펴고 먼저 차지하는 일….
주린 배를 잡고 두 시간 거리를 열나게 빨리 갔다.
야영은 불법인지라 한벗샘 표지판 근처에서 인적이 없는 틈을
타서
비박사이트로 들어갔다. 너무 샘 가까이 있는 것이
흠이지만….
정말 최고의 잠자리다. 누구는 뱀이나 야생동물 나오면 어쩌냐
하지만….
우리는 뭐 동물아닌가…???
밥 먹고 매트리스 깔고 한참을 수다(?) 떨고 음주도 하고 했지만
아직도 대낮이다. 해가 길기는 길다. 이제 뭘 할지??? 잠자는
것이 최고….
웬 놈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 비박하려고 오는 팀들이다. 세석에서 왔다는데….
한발 늦었지롱~~~
물만 떠서 바로 위에서 꽤 늦을 때까지 씨끌벅적하게 놀더군.
이른 시간(서울의 야행성 생활이 비하면) 잠을 청하였다.
한참 잠자는데 누군가 깨운다.
아직도 10시다.
하늘에 별이 무진장 아름답단다.
눈앞의 하늘에 정말 별천지가 펼쳐져 있다.
카시오페아(아는 것 5개 이하 임)도 있고…. 앗 '별똥별' 하나
둘 떨어지고.
나도 잠이 다시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