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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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좌파연합정당, 그 새로운 여정에 거는 기대
 -“민주좌파. 민사당(Demokratische Linke. PDS)”

현장에서 미래를  제109호
갈현숙


정세와 초점


독일 좌파연합정당, 그 새로운 여정에 거는 기대
-“민주좌파. 민사당(Demokratische Linke. PDS)”[현장에서 미래를 2005년 6월호 “메뚜기 떼를 사냥하라!”를 참조하면 현재 독일연합정부 여당인 사민-녹색당의 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갈현숙 / 해외연구원, 베를린 자유대학 사회학과 박사과정



필자가 독일로 유학 오기 전인 1998년에 16년 동안 유지돼 왔던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정권이 사회민주-녹색당 정권으로 교체됐다. 당시 한국에 와 있던 한 독일인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선거결과에 만족하고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다. 16년 동안 집권했던 콜 정권도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선출됐기에 아무도 콜의 16년 정권기간을 두고 독재라고 표현할 수 없었지만, 정권교체의 염원을 16년 만에 이룬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며 자본주의 의회-민주주의 정치의 한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듬해 필자는 독일로 왔고 정당정치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독일의 의회정치에 대해 그리고 사민당이 여당으로 펼칠 현실정치정책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못 흥분했었다. 그러나 필자가 독일 땅을 밟은 후 듣게 된 소식은 사민당 대표이자 재무부장관이었던 소위 당내 좌파세력이었던 오스카 라퐁텐의 당직과 장관직 사퇴소식이었다. 들리던 말에 따르면 슈뢰더 수상과의 권력투쟁과정에서 밀려 스스로 사퇴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건을 두고 독일인들 사이에선 여러 논쟁이 있었고 선거기간 중 슈뢰더가 “우리는 콜과 다른 것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가 하려던 것을 그보다 더 잘 하려는 것”이라 고백했던 심중이 현실에서 개혁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변화(Wechsel)로 자리하고 있음을 당내 갈등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일 년 만에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어느새 회의와 불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던 사민당-녹색당의 연정은 7년 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 5월22일 노르트라인-붸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정부 선거에서 사민당이 참패하면서 16개 주선거에서 다섯 곳을 제외하고 모두 기독민주-기독사회당에게 주정부를 넘겨준 것이다. 더욱이 노르트라인-붸스트팔렌지역은 사민당 표밭이자 사민당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독일노조의 핵심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39년 만에 사민당이 맛본 패배였기에 그 충격은 대단했다. 이에 현 수상인 슈뢰더는 스스로 현 내각에 대한 신임안 의결에 대해 의회에 제출함과 동시에 연방정부선거를 앞당겨 올 9월18일에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당집권기간이 1년이 남아 있던 시점에 집권여당의 대표가 이런 결정을 한 데는 연방의회내의 과반수이상을 여당 의원이 차지하고 있더라도 지방의회선거결과 구성된 주의회의 2/3가 야당의원으로 구성되므로 주의회가 연방의회의 강력한 비토(Veto)세력으로 자리해 사실상 정권과 의회가 그 수행능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상의 급작스런 이러한 발표 이후 한 달 만에 새로운 좌파연합당이 결성됐다. 지난 2002년 연방의회 진출에 실패한 옛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과 지난 노르트라인-붸스트팔렌 지방선거에 처음 후보자를 냈던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 Wahlalternative Arbeit & Sozial Gerechtigkeit)’당이 좌파연합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이 두 당은 연합하기엔 색채가 너무나 다르기에 기대만큼의 염려스런 눈길이 가득하다. 잠시 두 당의 지난 과거를 살펴보자. 민사당은 1990년 통일된 이후 없어진 옛 동독 공산당,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이다. 공산주의나 독재적 변형 사회주의가 아닌 순수 사회주의 이상을 전 독일에 실현하고 동독지역 주민의 이해를 반영시키는 것이 민사당의 창당 이유였다. 창당초기 동독지역을 중심으로 민사당 지지율도 꽤 높았다. 동독지역 주들의 지방선거에선 1위 또는 2위를 하며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동독지역 주민들의 민사당에 대한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민사당의 기본 노선인 자본주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순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데 대해 구서독의 두 배 이상의 실업률로 통일10년 후에도 2등 시민의 취급을 받게 된 동독 유권자들은 더 이상 민사당을 그들을 대표하는 당으로 신뢰할 수 없었다. 반면 정당경쟁에서 서독의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성장해온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등 중도좌파 정당들과 보수당인 기민-기사당이 동독의 민심을 잡는데 점차적으로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사당 내부의 당권을 장악한 원로들은 변화한 환경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레고르 기지 등 대중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이 당 개혁을 추진했으나 당권파에 밀려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2002년 연방선거 전인 여름에 당시 민사당 대표였던 기지가 사적으로 마일리지를 한 차례 이용했다는 내용을 독일의 대표적 황색일간지 빌트(BILD)지가 보도한 후 기지 의원은 이를 곧 시인했고, 7월31일 장관직 사퇴와 정치 은퇴를 선언했다. 의원들의 마일리지 사적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1997년 통과된 의원 윤리강령에 의거하고 있으나 의원 윤리강령 준수는 의원 개인의 도덕적 책임 아래 있다. 따라서 이를 위반했을 경우, 강제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었다. 그럼에도 기지는 정계에서 떠났고 그 후에 치러진 연방선거 결과에서 5% 미만의 득표율로 인해 민사당은 의회진출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기지가 갖고 있던 대중적 지지도는 대단했다. 기지는 현재 독일 정치인들 중에서 최고의 달변가로 꼽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렇게 자연인으로 돌아갔던 기지가 이번 좌파연합정당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기지의 복귀와 더불어 민사당은 새로운 강령채택에 나섰다. 이것은 순수‘사회주의’정당에서 탈피해 자본주의 국가 속에서 시장경제체제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캠니츠 강령으로 약 600여 개 항목이 수정됐고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과 같은 정당방향 선회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선거대안(WASG)측은 2004년 7월 사민당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불만을 품은 공공노조, 산업금속노조 간부 등이 사민당을 탈당해 그 기반을 만들었다. 이들은 올해 1월 정당으로서 공식출발해서 지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선거에서 2.2%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들을 이루는 구성원들은 신자유주의 공세 이후 현실정당정치 내에서 점점 기반이 축소된 좌파세력의 새로운 공조를 노리는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노조 간부를 비롯하여 사민당과 녹색당에서 염증을 느껴 이탈된 세력과 시민사회단체 내에서 정당정치의 좌파세력 복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다. 이에 1995년 사민당대표를 거쳐 1999년 재무부장관직을 사퇴한 오스카라퐁텐이 5월24일 사민당을 공식적으로 탈퇴하고 ‘선거대안당’으로 입당함으로써 더욱 관심이 주목되기 시작한 것이다.(사진 좌측 게오르그 기지, 우측 오스카 라퐁텐)
라퐁텐과 기지의 연합에 대한 관심은 기지가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수많은 추측을 불러 일으켰고 3년 만에 구체적으로 현실화됐다. 라퐁텐이 ‘선거대안당’으로 가입한 이후 지난 한 달간 ‘선거대안당’과 ‘민사당’간의 연합을 위한 많은 합의가 쏟아져 나왔다. 우선 연합당의 당명을 '민주좌파. 민사당(Demokratische Linke. PDS)'으로 하여 좌파연합을 구성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고 6월18일 라퐁텐을 최고 후보로 추대했다. 라퐁텐은 “우리는 자유민주당(FDP), 녹색당, 기독사회당(CSU)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며 이번이 좌파연합의 “역사적 기회”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공영ZDF방송의 여론 조사 결과 유권자들은 민사당-선거대안당 연합세력은 최소 10%에서 최대 18%까지 지지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사민당 지지율은 29%, 기민련은 44%). 관측대로라면 현재 사민당과 연합정부를 이끌고 있는 녹색당보다 많은 지지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3당이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연합, ‘민주좌파.민사당’이 태생부터 안고 시작하는 문제점에 대해 많은 우려의 소리가 있다. 구 서독지역보다 더욱 심각한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큰 불만을 가진 동독 지역 주민들은 민사당에 선거마다 평균 20% 이상의 지지율을 보내왔다. 민사당 지지자들이 사는 구 동독지역의 정서는 서독지역의 좌파세력에 대해 정서적 반감을 갖고 있고, 마찬가지로 구 서독지역의 좌파세력과 일반 시민들에겐 민사당에 대해 옛 공산당 후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연합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대원칙은, 향후 연방선거에서 기민당-기사당 승리 후 그들의 더욱 가속화 될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반대하는 의회 밖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성장에 대비해 이를 대변할 만한 현실정당세력이 부재하다는 대의였다. 물론 각 당 내부적으로 그들의 정당으로서의 생존문제도 동시에 존재한다. 통일이 된지 10년이 지났음에서 동서독을 아우를 수 있는 정당은 존재하지 않던 마당에 이 두 당의 연합전선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구체적 당의 정체성과 지향점에 있어 앞으로 어떠한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이다.
독일에 군소정당들이 존재하나 의회정치 안으로 입성하는 정당들은 모두 오랜 역사를 지난 정당들의 몫이었다. 그만큼 정당정치의 전통자체가 뿌리가 깊다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정당이 의회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이번 좌파연합정당인 ‘민주좌파.사민당’이 달성할 수 있는 성과에 주목할만하다. 부르주아 의회정당은 선거에서 이겨 의회 내로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정당들은 득표를 올리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당명에 ‘좌파’나 ‘사회’란 단어를 보면 뭔가 다른 점을 기대한다. 그 기대의 색채가 다양할 수 있으나 기존의 정당들과 특히 보수당과 다른 선거전략, 선거프로그램들이 존재해야 한다. 이기는 경우도 지는 경우도 좌파정당의 정체성은 내용에서 반드시 차별성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사민당의 최근 실패는 바로 그 내용에 있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미약할 뿐 아니라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난관 앞에서 투쟁하려는 의지 대신 끊임없는 자본 측의 요구에 대해 양보하고 국민들에게 인내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민당에 염증이 나 형성된 ‘선거대안당’의 의지는 대단했다. 그러나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선거준비과정에서 이미 위험한 출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라퐁텐이 동독지역 연설에서 저임금을 내세워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이방노동자(Fremdarbeiter)’에 대해 경고하면서 “가장과 여성들이 실업자가 되어,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국가가 막아야 한다”고 호소해 갈채를 받았다. 소위 좌파정당의 지도자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방노동자(이 단어는 나치가 사용했다고 한다)로 개념화한 것과 민족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당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이 발언에 대해 유일하게 공식적 환영을 보낸 곳은 아이러니하게 극우당인 독일민족민주당(NPD)이었다. 라퐁텐은 아마도 이런 자극적 연설을 통해 구 동독지역인들에게 선거대안정당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길 바랬고 선거를 위해 불가피한 전략이라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위 좌파연합이 동독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신자유주의 비판의 관점을 민족주의에 맞춰 호소한다면 그들이 스스로 염증을 냈던 기존 정당과의 차별점을 애초부터 차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먹힐 선거구호는 미국에서와 같이 애국주의에 호소하거나 생산입지를 강조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너무도 쉽고 효과적이기에 이미 보수정당들은 그런 길을 걷고 있다. 수출최대강국 독일을 지켜내기, 일자리 보호를 위해 노동조건을 완화하고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것, 복지국가를 파괴하는 것, 그러므로 독일국가는 강화된다는 요지다. 그런 독일국가 내에 살아갈 노동자들은 독일인이란 이유로 행복할까? 계급성을 약화시키고 국민성을 자극하는 전략을 과연 좌파정당이 함께 해줘야 하는 것인가? 사민당의 지난 실패요인들을 선거 국면에선 잊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에 타협해 의회에만 진출한다면 그들이 품고 있는 소위 좌파진영을 보호하고 좌파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현재 ‘민주좌파.민사당’의 당내 상황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독일에서 진행 중인 좌파정당 연합이 구태의연한 반복이 아닌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기 위해선 현실정치를 고려하는 만큼 지난 시기 현실정치에서 놓쳤던 좌파적 구호를 어떻게 재생산시킬 것인가에도 무게를 실어야 할 것이다. 또다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힐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희망을 건다. 투표일에 찍을 만한 정당이 없어 자본주의에서 국민으로 향유할 수 있는 투표권을 스스로 포기했던 무당지지자들, 사민당을 짝사랑하다 사랑할 대상자를 잃어버린 투표자들, 의기소침해져 있는 다양한 좌파 세력 지지자들이 오랫동안 앓고 있는 정치에 대한 염증을 치료해줘야 한다. 의회정치 내에서 좌파정당이 해줄 몫, 의회 밖에서 좌파진영이 하는 정치의 내용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각각의 영역에서 생명력 있게 움직여야 한다. 그 정치적 생명력을 복원하는데 이제 막 출범한 ‘민주좌파.민사당’의 여정에 기대를 건다. 그들이 만들어갈 과정과 만들어낼 프로그램과 무엇보다 그 모든 것으로 형성될 희망에 대해….


<인터넷사이트 정보>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hlalternaitve Arbeit & Sozial Gerechtigkeit)”: http://www.w-asg.de/
“민주사회당(PDS)”: http://sozialisten.de/partei/index.htm

2005-07-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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