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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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고!!

현장에서 미래를  제109호
김형균


세상만사


'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고!!

김형균 / 현대중공업 노동자



최근 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복수노조 시대에 대비하는 다양한 형태의 발전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도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변해야 한다는 말 뒤에는 그 동안 노동운동이 변화하지 못했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변화의 목표와 방향은 그동안 정체되어 온 조직적, 계급적, 민주적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정반대 방향에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최근 울산의 현대중공업노동조합에서는 △참여와 협력으로 노사 공존공영 추구 △기업경쟁력 강화 △복지노조 추구 등 6가지 이념과 △노사공동 번영을 통해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질 향상 △신노사문화 창출 등 6가지의 강령 선포식을 진행했다. 이 행사에는 회사 측 임원과 울산시장이 참석했으며, 노사 합의로 만든 1시간의 행사시간에 중간관리자들의 참여 독려로 4,000명의 조합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진행되었다.
반면 행사 시작 전 울산시청 프레스센타에서 현대중공업노조 전직 위원장 및 현장활동가 조직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조합 창립 정신을 뒤흔드는 노조의 이념과 강령 선포식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사회 양극화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내용은 없는 등 노조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채 조직 이기주의에만 치중하는 협조주의를 노동조합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현대중공업노조 현 집행부는 이미 오래 전에 자본에 종속적인 노동조합으로 전락해버린 일본의 노동조합을 따라 배우자고 조합원들에게 교육하고 있는데,‘수주활동, 회사 측의 생산 활동에 적극 협력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고용을 유지해 나가자’고 주장하며 ‘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고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합원들은 이미 집행부 선거 때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반응이며 이념 강령 선포식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든 결과이며 노동조합에 대한 희망을 크게 걸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똑같이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어용으로 변하여 87년 이전의 노동조합이 없던 노사협의회 시절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노동조합이 하고 있는 것이 현대중공업에서의 지금의 현실이다. 조합원들이 잘 모이지 않고 의식이 변했다는 ‘현실조건’의 벽을 핑계 삼아 쉬운 길로만 돌아가려는 경향들을 경계해야 하고 활동가들은 실제로 이를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것은 현장이 공동화되어 가고 십수년간 민주노조운동을 위해 활동해온 민주 활동가 동지들은 현장에서 고립되거나 선거에 나가 번번이 떨어져 활동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으로부터 직접적인 탄압과 회유에는 굳건하게 견뎌온 사람들이지만, 지금처럼 조합원의 손을 이용하여 활동의 의지를 꺾는 현실에 배신감과 회한이 밀려올 뿐이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선도투쟁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동지들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가족과 주변의 다양한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후배 활동가의 양성이 중단된 현장 활동가 조직은 특별한 활로를 찾지 못한 채 새로운 역동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아직까지도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현장이 그렇게 열정적이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내면의 의식은 무엇이었을까?
군대식 노무관리로 인한 인권탄압과 차별적인 대우 속에서 당해왔던 분노가 기폭제가 되어 폭발한 것이긴 하지만 그 이후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하면서부터는 ‘단결의 힘은 세상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고 다양한 전망들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노동자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당연히 소중한 존재였으며 그것을 위해 모두들 헌신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의식의 변화는 대투쟁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이제 변화의 관점과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그것은 노동조합 깃발아래 호루라기 한 번만 불어도 일사불란하게 모였던 꿈같은 과거의 환상을 버리는 것부터,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를 점검해 보는 것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나도 ‘변해야 한다’고 하는 현실을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것, 그리고 전망을 새로이 찾아 나가는 것, 그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과 이를 실천할 조직을 가동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변화시켜 나가야 할 목표와 방향이 아닐까?

가능성이 불분명한, 막연한 ‘노동운동의 역동성’이나 ‘민중의 역동성’이라는 논리로는 이제 변화할 수도 없으며 희망도 만들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하나, 하나를 씨줄 날줄처럼 촘촘한 조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치밀하게 짜인 조직, 교육, 선전체계와 상호 소통체계들을 만들어가는 가운데서 좀 더 밝은 전망과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05-07-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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