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장위원조직의 전개과정과 전망, 그리고 한계
오 건 호
연구위원
영국 현장위원조직을 다루는 이 글은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영국 현장위원조직이 걸어온 전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정보를 넓히는 것이다. 둘째는 영국 현장위원조직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경제주의적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영국의 사례가 작업장 노조운동에 주는 함의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1. 현장위원이란
영국 노사관계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작업장에서 활동하는 현장위원조직의 광범위한 발달이다. 현장위원들은 작업장에서 동료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되어 교섭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노조활동을 수행하는 자발적 활동가들(unpaid volunteer activists)이다. 이들은 작업장교섭기구에 참여하여 관리자들과 교섭을 벌이고, 자신의 작업장에서 조합원모집, 노동조합정책 홍보 등을 수행한다. 동시에 이들은 종종 노동조합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전국대의원대회, 지구대의원대회, 분회위원회)에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에도 주요한 역할을 맡는 노동조합 핵심활동가들이다.
이들을 일반적으로 샵 스튜어드(shop stewards)라고 부르는데 현장위원활동이 유래되었던 기계산업에서 이들을 그렇게 불렀고 이후 제조업부문이 이 이름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무직의 경우는 office representative, staff representative, union representative 등 다양한 이름이 사용되는데 그 내용은 동일하다. 현재 영국노총의 공식교육자료에서는 이들을 union representative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TUC, 1992). 현장위원들이 노동조합활동의 대표자임을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영국 노조운동에서 사무직노조운동이 중요해지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활동주체들을 크게 양분하면 노동조합에 고용된 노동조합 전임자(union full-time officers or union employees)들과 평조합원으로 작업장에서 활동하는 현장위원들(shop stewards)로 나누어진다. 서구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영국 노동조합들도 거의 대부분 전국수준에서 조합원을 모집하는 전국노조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자신의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노조전임자를 고용하는데 이들은 위원장을 비롯한 본부(HQ)임원들과 실무전임자들, 그리고 지구조직(Regional Office)에서 일하는 지구전임자들이다. 이들 전임자들은 전국 혹은 지구수준의 교섭기구에서 자신의 고용주인 평조합원을 대신하여 고용주와 교섭을 벌이고 더불어 노동조합의 연구기획, 출판홍보, 재정관리, 일반행정 등을 맡는다.
반면에 작업장수준의 노조활동은 거의가 현장위원들의 몫이다. 이들은 작업장수준에서 유사직종의 조합원들로 짜여진 작업장선거구에서 현장위원으로 선출되어 작업장교섭기구에서 교섭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대체로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어서 종종 지역노조조직(분회, 지구위원회 등)에서도 주요한 지위를 맡는다. 그러나 현장위원으로서의 이들의 공식적 지위는 노동조합의 조직체계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교섭을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구성된 작업장교섭기구에 의거하고 있다. 때문에 노동조합의 조직규약에서 현장위원들을 공식적으로 명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면에서 이들은 조합원에 의해서 선출되어 노동조합활동가로 일하지만 상대적으로 노동조합조직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뒤에서 살펴볼 현장위원조직에 대한 모든 논의들도 그 특징에서부터 비롯된다.
2. 영국 현장위원조직의 전개과정
1) 태동기 (19세기 말~2차대전 이전)
20세기초 영국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고용주로부터 노동조합승인(recognition)을 얻어내어 전국수준에서 교섭을 벌였으나 여전히 작업장에서는 작업관행이나 작업조건 등이 거의 경영에 의해 결정되고 있었다. 즉 전국수준에서 노동조합이 교섭파트너로 성장하고 있었으나 아직도 작업장에서는 경영의 권한이 막강했다. 현장위원조직도 크게 발달하지 않았고 그들의 활동도 조합원모집, 조합비징수 등 노동조합의 관리활동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2차대전 이전까지 현장위원들이 교섭기능까지 획득하고 있었던 경우는 기계, 조선, 인쇄산업 등 숙련직종(craft)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던 일부 산업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 산업의 노동조합들은 가장 교섭력이 강한 조합들이었는데 당시 성과급 임금체계가 도입되면서 현장위원들이 성과급의 결정을 둘러싼 작업장교섭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Farnham and Pimlott 1995: 374-375). 이것을 계기로 이들 현장위원들은 단지 노동조합의 여러 활동을 수행하는 하부활동가일뿐만 아니라 경영과 직접 교섭을 벌이는 조합원 대표자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영국 노사관계에서 교섭권한을 가진 현장위원들은 여전히 일부 산업에 한정되었다. 여전히 전국중앙교섭이 강하였고 작업장 노사관계는 아직 뚜렷이 부각되지 않았다. 아마 이 시기까지만을 평가한다면 영국 노사관계의 주요한 특징으로 현장위원조직을 언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이 영국 노사관계에서 핵심적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2차대전 이후이다.
2) 성장기 (2차대전 이후~1960년대 중반)
2차대전 이후 현장위원들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성과급체계가 다른 산업들로 확산되었고 전후 호성장으로 시간외 연장근로가 확대되면서 성과급 크기와 초과수당을 정하기 위한 작업장교섭의 필요성이 증대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업장교섭을 담당하는 현장위원들의 활동 범위도 늘어났고 이들의 지위와 역할도 강화되었다.
현장위원들은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동조합 전임자들에 대하여 비판적이었고 노동조합내부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할만큼 성장하였다. 당시 현장위원들의 일부는 노동당, 공산당, 좌익조직 등에 가입되어 의식수준도 높고 정치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가 현장위원들의 성장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실증조사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당시까지만해도 현장위원들의 활동은 영국 노사관계에서 비공식적으로 존재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그들의 존재는 작업장에서 빈발하게 일어나는 ‘허가받지 않은’ 작업장파업(비공식파업 혹은 wild-cat strike)으로 확인될 뿐이었다.
3) 전성기 (1960년대말~1970년대말)
1964년 집권한 노동당정부는 영국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1965년 대대적인 연구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주요 노사관계학자들이 총망라되어 구성된 도노번위원회(Donovan Committee, 1965~68)는 3년 동안의 조사활동을 종합하며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그것은 당시까지 그들이 이해하고 있던 영국 노사관계의 그림을 뒤바꿀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도노번보고서에 의해 영국 노사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인식틀이 제공되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영국 노사관계의 ‘전통적’ 특징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름과 같다(Donovan 1968). ‘현재 영국 노사관계는 두 개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공식 노사관계 즉 산업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경영주와 노동조합간의 노사관계이고, 두번째는 작업장수준에서 작업장관리자들과 현장위원들에 의해서 전개되고 있는 비공식 노사관계가 있다.’ 이제 비공식 노사관계의 ‘발견’으로 현장위원들은 노사관계 논의의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제도화시키기 위한 정부, 경영, 노동조합의 여러 노력들이 행해졌다.
정부는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현장위원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을 주도하였고, 정부가 고용주로 있는 공공부문에서는 솔선수범하여 현장위원제도를 도입하였다(당시까지 민간부문과 달리 공공부문에서는 현장위원제도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다). 마침내 1975년에는 현장위원에 대한 경영의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여 현장위원들의 활동기반을 안정화시켰다.1)
경영도 현장위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특히 대기업들은 현장위원들이 참여하는 기업별, 공장별 교섭을 통하여 신기술도입, 유연 임금체계 등 기업특수적 교섭을 강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현장위원들을 자신의 파트너로 ‘양성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노동조합에게도 현장위원들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작업장교섭이 확대되고 지역수준의 노조활동이 중요해졌으나 노조재정 때문에 지역조직에 충분한 전임자를 두지 못하는 노동조합들에게 현장위원들은 핵심 무급기간원이었다. 특히 제조업의 주요 노동조합에서 현장위원들을 부담스러워하였던 다소 ‘우파’의 지도부가 ‘좌파’의 지도부로 교체되면서 노동조합들은 현장위원들의 활동을 적극 인정하고 이들을 노동조합 내부로 통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2)
그 결과 현장위원들은 7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1979년에 전체 현장위원수는 25만명에서 30만명으로 추산되고, 이중 작업이 면제되고 현장위원 활동만 전담하는 상근현장위원(full time shop stewards)들의 수도 1만명에 달하였다(Terry 1995: 205-206). 상근현장위원들이 거의 대기업에서 인정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대기업에서는 조합원 수백명당 1명의 상근현장위원이 있었던 셈이다. 또한 현장위원들간의 모임이 활성화되어 선임현장위원(senior shop stewards)들도 생겨나면서 현장위원은 기업, 공장수준에서 위계를 갖춘 현장위원조직(shop steward organisation)으로 성장하였다. 이들 선임현장위원들은 현장위원조직을 주관하고 공장내 상급교섭기구의 교섭대표자로도 활동하며 일반 현장위원들보다 많은 유급시간공제를 받았다. 일반 현장위원들은 1984년 조사에서 평균 조합원 22명당 1명씩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Millward, Stevens, Smart, and Hawes 1992: 116-117).3)
4) 약화기 (1980년 이후~ )
1979년 대처정부가 집권하고 신자유주의가 영국사회에 몰아치면서 영국 노사관계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전체 조직율은 1979년의 55%에서 현재 30%정도로 낮아졌고 단체행동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종종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라고 일컬어질 만큼 18년간의 보수당체제하에서 영국 노동조합운동은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단체교섭구조도 더욱 탈중앙화되었다. 전국교섭이 약해지고 기업별, 공장별 교섭이 훨씬 중요해졌고 노동력 유연화가 도입되면서 작업장교섭의 위상은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섭을 수행하는 현장위원조직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위상은 높아졌지만 힘은 줄어들었다.
양적인 면에서 현장위원조직은 80년대 조금 약화되었다. 노동조합이 승인된 25인 이상 사업체를 보면 1984년 전체 84%의 작업장에 현장위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에는 전체 현장위원 존재비율이 71%로 낮아졌다. 이 수치는 영국에서 행해지는 가장 대대적인 노사관계연구조사(Workplace Industrial Relations Survey 1980, 1984, 1990)에 의한 것으로 7년만에 재개된 1997년조사가 아직 발표되지 않아 90년대 이후 수치를 이용할 수는 없지만, 필자가 접한 몇 개의 사례연구를 통해 보면 90년대 현장위원조직은 양적으로 더욱 약화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4)
<표 : 노조승인 사업체 현장위원 존재>
(25인이상 사업체)
|
공공부문 |
민간제조업 |
민간서비스 |
전사업체 |
1984 |
1990 |
1984 |
1990 |
1984 |
1990 |
1984 |
1990 |
현장위원 |
84 |
73 |
98 |
90 |
67 |
57 |
82 |
71 |
상근현장위원 |
3 |
2 |
5 |
2 |
1 |
2 |
2 |
2 |
자료 : Millward, Stevens, Smart, and Hawes 1992: 111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장위원활동의 질적인 면이다. 우선 경영의 강경전략이 확대되면서 현장위원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였다. 여전히 작업장교섭의 주체로 현장위원을 승인하고는 있으나 현장위원활동을 위한 유급시간공제에 인색해졌고 교섭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등 현장위원조직을 주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작업장내에서 조합원수가 감소하면서 현장위원들의 권위가 약화되었고 노동시장의 조건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해지면서 현장위원들의 교섭력도 약화되었다. 현장위원조직은 70년대의 전성기이후 현재까지 계속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3. 현장위원조직을 둘러싼 논의와 전망
1) 현장위원조직을 둘러싼 이전 논의들
현장위원조직을 둘러싼 논의들은 당시 노사관계상황의 산물이었다. 우선 60년대말 현장위원조직에 대한 논의는 이들이 노사관계안정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아인가 아니면 제도화시킬 수 있는 윤활유인가를 둘러싼 것이었다. 논의는 도노번위원회에 참여하였던 노동당정부, 노동조합지도부, 다원주의시각의 학자 등 노조운동에서 ‘우파’계열의 주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영국 노사관계에서 처음으로 현장위원조직을 논의대상으로 부각시키면서 현장위원조직을 공식체계안으로 제도화시키는 것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었고, 그렇게 정책이 집행되었다.
70년대를 거쳐 현장위원조직이 광범위하게 제도화되고 세력이 커지면서 이들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불거지는데 이번에는 ‘좌파’계열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현장위원조직의 발전과정을 노동자들의 자기해방의식의 형성과 사회주의운동을 향한 맹아로 기대하던 좌파조직이나 학자들에게 ‘너무 제도화’ 되어버린 현장위원조직이 우려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현장위원조직의 급진성과 의식성이 제도화된 교섭틀내에서 사장되고 있다며 ‘평조합원, 즉 현장위원의 관료화(Bureaucratization of the rank-and-file)’를 제기하였다. 제도화된 교섭절차, 상근현장위원층의 형성, 고용주의 관대한 활동시설과 비용 제공, 현장위원조직의 위계화 등으로 이제는 이들 스스로가 평조합원으로부터 멀어지며 공식 노동조합의 하부기구로 굳어져간다는 것이다(Hyman 1979). 이에 대해 현장위원조직의 제도화가 오히려 조합원의 대표기능을 확대하고 현장위원조직을 공고화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Batstone 1988).
이들 좌파계열의 논의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영국 노조운동은 대처정부의 연이은 반노동조합정책에 직면해야 했다. 이제 현장위원조직의 ‘의식화’에 주목했던 논의구도는 사라지고 신자유주의정책과 강경경영에 맞서서 현장위원조직의 기존권리를 지켜내는 것이 급선무로 다가왔다. 논의의 전선은 노동조합내부에서 노동조합외부로 이동하였다. 이제 노동조합의 제도적 권리와 관행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동조합운동 세력은 좌우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개악)에 맞서는 공동전선에 서게 된 것이다. 현장위원조직의 관료화/의식화에 대한 논의보다는 이들이 기존 노동조합의 활동구조내에 유기적으로 통합(integration)되었는가 아니면 분리(dealignment)되었는가가 논의되었고 전자가 후자보다 작업장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데에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졌다(Pendleton 1991).
2) 현장위원조직의 발전전망들
현재 영국 현장위원조직은 이전에 비해 약화되어 있다. 단체교섭의 탈중앙화가 강화되고 경영의 신전략이 작업장에서 구사되면서 현장위원조직의 중요성은 더해가지만 그 힘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영국 노조운동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이 설정하는 발전전망들을 간략히 세 갈래로 구성해 보겠다(이 구분은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이며 각 갈래의 영향력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큰 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단지 영국 노조운동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의 흐름을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그려보려는 것이다).
첫째, 가장 우파적 전망으로 영국노총 지도부가 추진하는 ‘변화를 위한 운동(campaigning for change)’을 꼽을 수 있다. 고용주와 노동조합간의 파트너쉽을 회복하기 위해 경영의 노동력 유연화까지 ‘유연’하게 인정하면서 기존의 제도적 기반을 잃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의 타협노선이다. 또한 ‘노조서비스’의 개념을 도입하여 조합원들에게 융자, 법률자문, 보험혜택 등 갖가지 서비스를 제공하여 조합원의 관심을 증대시키는 노조개혁도 포함된다. 경영과 ‘합리적인’ 파트너쉽을 유지함으로써 현장위원조직이 누려왔던 여러 지원들을 고수하고, 노동조합의 내부마켓팅을 강화하여 작업장의 조합원을 노동조합에 모이게 하려는 기대와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경영과 정부의 ‘시혜’ 없이는 이루기 힘들고, 노조활동을 매개로 조합원이나 현장위원들의 집단주의적(혹은 연대주의적) 자발성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노조운동의 활성화보다는 조직보존에 치우친 소극적인 대응방향이다.
둘째는, ‘중도’ 좌파가 관심을 두는 것으로 개별노조에서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증진시켜 평조합원의 참여를 강화하려는 노조내부개혁프로그램이다. 이미 노동력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파트타임노동자, 여성노동자, 유색노동자가 노동조합운동의 주변에서만 머물고 있고 기존의 남성중심의 노조운동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몇 개의 노동조합에서 선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노동조합의 운영을 민주화시킬 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참여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이 상정하는 현장위원조직의 활성화방안은 기존 노동조합체계 내부로 현장위원조직을 강하게 통합시킴으로써 기존권리의 상실을 최소화하고 이후 내부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현장위원조직도 공고화하려는 것이다(Terry 1996).
마지막으로, ‘급진적’ 좌파가 모색하는 전망은 ‘현장노조운동의 혁신 (Union renewal)’으로 요약된다. 이미 약화된 영국노총, 관료화된 노조에서 현재의 노조운동의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나올 수 없다는 판단아래 이들은 현장노조운동의 혁신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재조직할 것을 주장한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정부정책과 강경경영이 작업장을 공격하면서 평조합원의 불만과 좌절은 깊어져 있다. 따라서 이들 평조합원들의 체험을 현장활동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작업장노조운동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작업장노조의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중도좌파의 것과 동일하지만 중도좌파가 ‘조직형식’에 초점을 두는 반면에 이들은 ‘현장정치’의 활성화에 최우선을 둔다. 때문에 이들이 전망하는 작업장노조운동의 혁신에는 작업장 외부의 좌파정치조직의 부흥이 동시에 설정되어 있다(Fairbrother 1996).
이후의 영국 현장위원조직과 노조운동이 헤쳐갈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97년 총선으로 18년간의 보수당지배가 종식된 것은 노조운동에게 매우 중요한 환경변화이다. 노동당이 신노동당(new Labour)으로 우경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적 보수당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97년 영국총선에서 새겨야할 함의를 ‘신노동당의 압승’이 아니라 ‘보수당의 참패’에서 찾는다면, 영국노동자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새기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들은 노동당의 집권보다도 훨씬 중요하게 영국 노조운동이 새길을 모색해 나가는 데에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맺으며 : 영국 현장위원조직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한계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영국 현장위원조직은 작업장에서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되고 노동조합의 대리자로 교섭을 행하지만 공식노동조합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롭고, 노동조합의 조직규약이 이들을 명시적으로 조직체계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드물다.
이러한 특징은 영국 노조운동에서 현장위원조직이 성장한 역사적 궤적을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도노번보고서에서 지적되었듯이 이들은 공식노동조합과 독립적으로 작업장에서 조직되고 조합원들을 대표하며 비공식적 노사관계를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과 관습은 이후 이들의 기능과 역할이 제도화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러한 현장위원조직의 특징은 공식노조로부터의 ‘독립성’이라는 강점과 ‘분리성’이라는 약점을 동시에 가져왔다. 독립성은 전국노조가 지닐 수 있는 관료화를 제어하면서 평조합원 중심의 내부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이다. 실제로 이들은 60년대/70년대초 공식노조 전임간부들의 관료화에 대항하는 주요한 세력이었으며 현재까지 작업장 노사관계를 자발적으로 이끌고 있는 현장조직이다.
그러나 80년대이후 현장위원조직의 변화과정을 보면 분리성이라는 약점이 크게 드러났다. 정부와 경영의 여러 공세가 거세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작업장의 현장위원조직들은 효과적으로 통합되지 못하였다. 현장위원조직의 활동이 자신의 작업장에만 한정됨으로써 노동조합은 정부에 의해 훼손당하고 현장위원조직들은 경영에 의해 침식되어 갔다. 노조운동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각 작업장의 부문이해를 뛰어넘어 공동대응을 강화하기보다는 이들의 활동공간은 자신의 작업장틀을 넘지 못했고, 활동의식은 교섭과정에서의 경제적 이해에 한정되었다.
그러면 80년대 영국 현장위원조직의 활동이 독립성이라는 강점보다는 분리성이라는 약점으로 드러나게 한 핵심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80년대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있었다. 그럼에도 현장위원조직의 내부적 한계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그 한계가 현장위원조직의 제도화과정에서 현장위원들의 활동폭이 작업장교섭으로 수축되어 버린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경제주의적 현장위원활동’의 한계를 지닌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광범위한 노조활동을 상정하는 ‘현장위원’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단지 작업장에서 작업장관리자와 만나 작업장내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현장교섭위원’으로 불리워질 수 있을 만큼 이들의 활동은 교섭활동으로 제한되었다. 이들의 교섭활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작업장내 경제적 이해증진만으로 축소된 현장활동으로는 80년대이후 정부와 경영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저항하기에 힘겹기 때문이다.
자본의 공세가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면 노조운동의 대응과정도 정치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현장위원조직에게서 그러한 정치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정치활동을 강조하는 좌파정치조직들의 힘은 미약했고, 노동당은 총선때의 선거운동을 제외하고는 현장위원들을 만나지 않았다. 정부재정지원하에 현장위원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영국노총은 단지 이들에게 교섭기술을 향상시키고 현행 노동법을 이해시키는 것에 교육목표를 두었다. 노동조합 전국본부는 현장위원조직이 전국교섭의 합의사안을 충실히 작업장교섭에 적용하는 하위교섭대행자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다. 영국노조운동 스스로가 현장위원조직을 경제주의적 교섭활동으로 고립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만약 영국의 사례를 극복하는 대안적 전망이 논의된다며 아마 그것은 ‘정치적 현장위원조직’일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의 의미는 현장위원조직이 정치운동의 주체로 직접 나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현장위원들이 작업장에서 자신의 활동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내도록 조직되는 것을 말한다. 다소 추상적인 이러한 ‘정치적’ 전망은 현장위원조직, 노동조합조직 그리고 여러 정치조직운동의 활성화에 따라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띄어갈 것이다.
참고문헌
Batstone, E. 1988. The Reform of Workplace Industrial Relations: Theory, Myth and Evidence, Oxford: Oxford Univ. Press.
Donovan, B. 1968 Report: Royal Commission on Trade Unions and Employers' Associations 1965-1968, London: HMSO.
Fairbrother, P. 1996. "Workplace trade unionism in the state sector", in P. Ackers, C. Smith and P. Smith (eds.), The New Workplace and Trade Unionism, London: Routledge.
Farnham, D. and Pimiott, J. 1995. Understanding Industrial Relations. London: Cassell.
Hyman, R. 1979. ‘The Politics of Workplace Trade Unionism’, Capital and Class 8.
Mcllroy, J. 1995. Trade Unions in Britain today (2nd edition), Manchester Univ.: Manch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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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5년 고용보호법(1975 Employment Protection Act)에 따라 고용주는 현장위원들에게 노동조합의무(trade union duties 작업장교섭에 관련된 활동을 의미)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유급시간공제(paid time-off)를 허가하고 적절한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위원들이 영국노총이나 소속노동조합에서 주관하는 현장위원교육(industrial relation training; 보통 1주일 혹은 10일간의 전일교육)에 참가할 수 있도록 유급시간공제를 허락해야 한다. 또한 현장위원들이 교섭과 직접관련이 없을 지라도 노동조합활동(trade union activities)에 참여하는 것이 제한되지 않도록 최대한 협조하고 요구시 상호협의를 거쳐 유급 혹은 무급시간공제를 제공해야 한다. 즉 교섭활동과 이를 위한 교육을 위해 의무적으로 유급시간공제를 제공해야하고 기타 노동조합활동에 대해서는 경영의 재량권내에서 적절하게 지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2) 당시 우파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이들 현장위원들을 ‘노동조합내부의 사조직’(a private union within a union)으로 비난하면서 도저히 노동조합의 공식체계에 통합시킬 수 없는 문제집단이라고 인식하였다. 이들은 ‘무질서의 세력(force of disorder)이고 노사관계를 파괴하는 늑대인간(werewolves)’이라는 격한 저주가 노동조합 지도자들에 의해서 공개적으로 행해질 정도였다. 반면에 좌익세력들에게 현장위원들은 사회주의의 씨앗(seeds of socialism)으로 여겨졌다. 당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영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Great Britain)은 그들의 노동조합위원회(Liaison Committee for the Defence of Trade Unions)를 통해 좌익 현장위원이 당선되도록 노력하였고,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당시 이름은 International Socialists)이 전개한 평조합원부흥운동(Rank and File Movement)도 일부성과가 있었다(Mcllroy 1995: 102-105).
3) 1990년 조사에서는 조합원 20명당 1명으로 대표성이 다소 높아졌는데 현장위원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조합원수가 감소한 데에 기인한다. 영국 현장위원들의 조합원대표비율은 우리나라 소위원들과 엇비슷한 것이다. 선임현장위원의 경우에는 조사된 통계치가 없고 작업장마다 매우 다양하지만 대략 우리나라 대의원과 비슷한 대표성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필자는 추측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소의원이 노동조합조직체계에 의거한 현장활동가인 반면에 영국의 현장위원은 노동조합 공식체계와 독립적으로 노사간 합의로 만들어진 교섭기구에 속해 있음에 주목하자. 이들 현장위원들이 공식적으로 속해있는 노동조합조직은 작업장별, 기업별, 혹은 지역별로 구성된 노동조합분회(branch)이다.
4) 영국 노사관계의 변화에 대한 논의를 보면 80년대까지는 양진영으로 나뉘어졌다. 우선 변화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80년대 영국 노사관계가 근본적인 재편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여러 지표들(조직율, 단체행동율, 정책영향력 등)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반면에 연속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영국 노사관계의 핵심을 작업장 노사관계로 설정하면서 아직도 작업장 노사관계의 여러 관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노사관계의 변화에 대해서는 후자의 학자들조차도 그 변화를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논리근거로 삼았던 현장위원조직이 약화되고 작업장 노사관계가 경영주도로 재편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