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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의 현대적 위상

현장에서 미래를  제35호
가토 고이치

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의 현대적 위상

ꠏ 경제위기에 있는 한국의 농업․농업문제 ꠏ



가토 고이치 (加藤光一)

日本․信州大學 敎授






서두에


작년 여름의 태국 바트(Baht)화로부터 시작된 통화폭락은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로 비화하고, 11월에는 한국에까지 확대되어 동아시아 전역을 뒤덮는 금융불안으로 발전하였다. 바로 이 시기에 나는 (1997년 6월~12월까지 한일문화교류기금 역사연구자 펠로우쉽으로서) 한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한국 체류 초기인 타이의 바트가 폭락했을 때부터 이 통화폭락․경제위기는 “한국에도 파급될 것입니다”라고, 주변에 있던 대학이나 정부계(系) 싱크탱크의 연구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다. 그 이유로서, 나는, 한국자본주의가 외자․외수형(外資․外需型) 재생산순환구조이고, 모습을 감추고 있는 팽대한 대외채무문제는 아직 해결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구조적 모순1)을 안고 있음을 들었다.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로부터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한국보다 나중에 경제발전에 나서 ‘제2의 NIES'라고 불리는 아세안 국가들과 동열로 취급되는 것도 부당하고, 하물며 한국은 1996년 말에는 OECD에도 가맹하여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동남아의 경제위기가 한국에는 파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돌아 왔다.2)

이러한 중에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자기 나라의 통화폭락․경제위기의 상황은 비교적 뒤늦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열기미에 있던 홍콩 주식시장의 급격한 하락, 그 영향을 받는 형태로 도쿄, 런던 그리고 뉴욕의 주식시장에서 대폭적인 하락을 기록한 1997년 10월 23일 이후부터였다고 기억된다.

이러한 일화를 앞에 제시하는 이유는, 이러한 인식이 오직 한국의 연구자에게만 많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아시아’라고 절찬하고 있던, 일본의 신고전파 경제학적 수법의 개발경제학이라든가, 또는 일부의 맑스경제학 학도들에게도 공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한강의 기적’으로 칭찬받고, ‘중진국’ 개념까지 낳게 한 한국의 경제발전이 어떤 것이었는가, 바꾸어 말하면, NIES형 한국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성격이 외자․외수형 재생산순환구조임을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이 글에서는, 이러한 NIES형 한국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성격인 외자․외수형 재생산순환구조 하에서 편성되고 변모되어 온 한국의 농업․농촌이 어떤 현실을 맞고 있는가를 보기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해방 후 50년간의 농업변동이라고 하는, 꽤 긴 기간(time span) ― 농업인구 유출과 그에 의한 농촌해체화의 상황 ― 에서 봄으로써, 거기에서 나온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오고 있는 농지임대차관계, 일손 부족 상황, 그리고 그것들에 기초하여, 어떠한 농업․농촌의 재편문제가 제기되고 있는가 등을 구조문제와 관련하여 검토한다. 또한 통계적 검증3)을 전제로 일반론을 논하더라도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최근에 내가 실시한 구체적인 농가실태조사의 실례4) ― 1989년 가을부터 1997년 여름까지 실시한 논농사 지역 군락농가(群落農家) 전체조사 ― 도 함께 취급하면서 서술하기로 한다.



一. 해방 후 50년간의 농가변동

ꠏ 솔가이촌형(率家離村型) 농가유출과 농촌해체화 ꠏ



1945년 8월 15일, 한국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일제 36년’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그 해로부터 세자면 금년으로 실로 ‘해방 후 53년’이 된다. 1948년에 이승만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농지개혁’이 헌법에 명기되었다. 그러나 농지개혁법은 지주계급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성립되었고, 구체적으로 농지개혁법에 관한 법률들의 공포가 마무리된 것은 해방 후 5년이나 지난 1950년 6월 23일이었다. 그러나 그 3일 후인 6월 25일에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구체적인 농지개혁의 실시는 극히 어려움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매수․분배는 1951년 말까지는 이루어져 실시되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좋다.5) 아무튼 농지개혁은 실시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농지개혁 후부터 세자면 금년으로 47년간이 경과한 것으로 된다.



1. 농가변동 개관


그러면 해방 후 약 50년간의 농가변동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농민층분해 시각에서의) 농가구성의 기본적인 동향6)을 <표 1>로 조감해 두자. 이 표는 기본적으로는 5년마다의 숫자로 표시하고 있는데, 그 외에도 특징적이라고 생각되는 해도 편의적으로 기입하였다. 왜냐하면, 1951년은 농지개혁 후의 농업통계가 체계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하는 해이고, 62년은 나중에 명확해지는 농지임대차관계 = 소작률이라고 하는 지표가 ‘농가경제통계’에 처음 등장하는 해이며, 67년은 농가 수가 최고치로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더욱 부언해 두자면, 이 시기구분은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한국자본주의 재생산구조의 시기구분과 거의 조응한다. 아무튼 이 표가 보여주는 기본적인 동향을 시기별로 총괄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해방 후 농가호수와 규모별 농가호수의 추이 (실수 및 구성비)

연도

총   수

0.5ha

미만

0.5 ~1.0

1.0~2.0

2.0~3.0

3.0ha 이상

0.5ha   미만

0.5~

1.0

1.0~

2.0

2.0~

3.0

3.0ha 이상

1945

2,065,477

733,205

671,186

459,443

154,571

47,072

35.5

32.5

22.2

7.5

2.3

1951

2,183,930

932,615

781,910

372,970

  93,401

  3,034

42.7

35.8

17.1

4.3

0.1

1955

2,218,185

954,816

689,745

445,632

122,441

  5,551

43.0

31.1

20.1

5.5

0.3

1960

2,349,506

1,008,624

706,689

485,933

141,371

  6,889

42.9

30.1

20.7

6.0

0.3

1962

2,469,454

1,013,335

803,162

505,093

140,598

  7,265

41.0

32.5

20.5

5.7

0.3

1965

2,506,899

900,845

793,864

643,305

139,599

29,291

35.9

31.7

25.7

5.6

1.2

1967

2,586,864

919,348

829,258

665,099

134,511

38,648

35.5

32.1

25.7

5.2

1.5

1970

2,483,318

858,912

824,347

639,369

123,391

37,299

34.6

33.2

25.7

5.0

1.5

1975

2,379,058

785,305

828,157

607,897

117,717

35,982

33.0

34.8

25.6

4.7

1.5

1980

2,155,073

639,575

745,579

674,197

107,559

31,163

29.7

34.7

31.3

5.0

1.4

1985

1,925,869

579,117

686,132

549,988

  87,391

23,241

30.1

35.6

28.6

4.5

1.2

1990

1,767,033

506,506

544,457

543,027

129,510

43,533

28.7

30.8

30.7

7.3

2.5

1995

1,500,745

456,900

432,107

417,960

123,333

70,445

30.4

28.8

27.9

8.2

4.7

1996

1,479,602

465,432

421,356

404,897

117,564

70,353

31.5

28.5

27.4

7.9

4.8

출처 ① 1945년: 조선은행조사부 “朝鮮經濟年報“ pp. 1~31. 3~5ha층, 5~10ha층, 10ha 이상층도 3ha 이상 속에 합산하고 있다.

     ② 1951년 이후는 “農林(水産)統計年報“ 農林(水産)部, 각연도판.

     ③ 0.5ha 미만에는 ‘耕種外農家’도 포함되어 있다.


제1기 (1951년~62년) = 총농가호수 증(增)․양극분해.

제2기 (1962년~67년) = 총농가호수 증․전계층 상향운동․

      지주소작관계 (=농지임대차관계).

제3기 (1967년~75년) = 총농가호수 감․전계층하향운동에서의

      중간층비율 증대․상층농의 규모축소.

제4기 (1975년~85년) = 총농가호수 감․전계층하강운동에서의

      중간층의 상대적 증대․농지임대차관계의 급증.

제5기 (1985년~95년 현단계) = 총농가수 감의 급속화․양극분

      해․새로운 ‘담당자’의 맹아.

제1기는 농지개혁 후인 1951년부터 62년까지 총농가호수가 증대한다고 하는 것도 반영하여 양극층의 비중의 증대를 보여주고 있다. 농지개혁을 실시하여 ‘자작농적 토지소유’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농가경제는 자급자족적인 현물경제였고, 상품생산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62년 ‘농가경제통계’에서도 농업수입, 농업경영비, 가계비의 현금비중은 30%대).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는 0.5헥타르 미만은 자기 가족의 식량조차 조달할 수 없는 ‘춘궁절량농가(春窮絶糧農家)’(초봄이 되면 먹을 것이 없는 상황)였다. 그 때문에 농가부채는 필연적이었고, 또 그것은 고리의 사채에 의존했기 때문에, 일찍이 이 시기부터 ‘자작농적 토지소유’는 형해화되게 된다. 이리하여 소작농이나 채무노예적 농가(머슴이라고 하는 농업노동자)를 새롭게 재생시켰다. 당시의 도시는 노동시장이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농촌에 체류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토지 집적과 그들(주로 머슴)을 고용한 부농경영도 성립하였다 (이것이 뒤에서 명백히 되는 지주소작관계의 ‘재생소작제’ 논쟁을 낳는다).

제2기인 62년부터 67년까지 앞의 총농가호수 증대는 계속되고, 전계층적인 상향운동과 지주소작관계(농지임대차관계)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이에는, 중농주의 정책(단, 경지의 외연적 확대 = 국가에 의한 정책적 지지와 50년대에 비해서 높은 농산물 가격의 상대적 지지)과, 당시에는 도시근로자의 평균소득보다 농가소득 쪽이 약간 높았다는 것도 관계가 있었다. 또한 전계층적 상향운동 중에서도 상층농에서 그 지향이 강했던 것은 이러한 층의 실제 수 및 구성비의 급속한 신장에서 명백하다.

제3기. 67년을 정점으로 총농가호수는 그 후 감소로 전화된다 (직접적으로는 67, 68년 연속된 흉작이 원인). 따라서 67년부터 75년까지는 총농가호수의 감소, 하층농의 탈농화, 상층농의 규모축소라고 하는 전반적인 계층하강운동 속에서 중간층은 비중 증가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는 상대적인 ‘고미가 정책’(70~75년)과 ‘통일’(잡종 벼)계 품종에 의한 현저한 증산기(73~77년)였고, 한국 농업의 해방 후 최고의 상대적 안정기였다. 동시에 이 기간은 외자 도입 및 외수(外需) 의존형의 공업화에 따라 자본재 및 원료를 수입하고, 저임금으로 ‘가공수출’하는 섬유부문 중심의 ‘외생적 재생산 순환구조’의 ‘NICs 경제화’가 성립된다. 그 때문에, ‘자립경제의 확립’이라는 슬로건의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서 첫째로 내걸었던 ‘식량자급’도 달성되지 못하고 자급률(특히 쌀을 제외한 식량작물의 절대적인 생산감소)을 저하시키게 된다. 농가노동력을 저임금의 기반으로서 위치지웠기 때문에 하층농을 중심으로 격심한 분해가 진행된다. 이 층의 대부분이 영세한 소작이라든가 불안정겸업(=상층농에 의해서 고용된 형태의 농업노동자)으로 농촌에 머물러 있었다. 또한 일부의 소작층에는 소작지를 매입하여 자작농화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그 때문에, 표에는 표시하지 않았지만, 통계상으로는 소작농의 감소, 자작농 비율의 증가, 겸업농가의 감소, 전업농가의 증대를 보였다. 그러나 농공간의 불균등발전과 도시와 농촌의 격차 확대에 따라서 하층농의 이농이 진행되고, 상층농은 그들 고용노동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력 부족으로 경영을 축소한다고 하는 ‘상층농의 규모축소’ 경향도 나타났다 (극히 일부의 상층농에 경운기가 도입될 정도의 기계화 단계밖에 아니었기 때문에).

제4기인 75년부터 85년까지는 총농가호수의 감소 하에 전계층이 하강운동하는 가운데 중간층의 상대적 증대, 그리고 지주소작관계(농지임대차관계)가 급속하게 증대한다. 총농가호수의 감소, 고령 농가의 증대에 의한 일부 상층농가의 토지대여, 그리고 중․상층농 가운데에는 가족노동력에 맞춘 경영규모의 축소, 또 부동산투기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로서의 농지구입, 상속농지 보유 등의 형태로 도시거주자가 대여하는 ‘부재지주’화도 한편에서 진행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들을 빌려서 규모 확대하는 농가도 증대하였다. 단, 그것은 농업소득의 감소와 농가지출의 증대의 갭(gap)을 메우기 위해서 ‘빌리는’ 성격의 것이었고, 결코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실제로는 자신의 소유지는 감소하는데 경영경지는 증대한다고 하는 특이한 형태가 생겼다).

제5기인 85년부터 96년 현단계까지는 총농가호수의 감소경향에 박차가 가해지고, 양극분해의 경향이 나타났다. 이것은 그 전의 제1기의 양극분해와는 달라, 기계화의 진전도 본격화하고, 국가의 선별적 대규모경영지원책(국가의 직접적인 보조 = 일본적 보조금과는 다르다)에 뒷받침되어 상층농이 실수에서도 구성비에서도 증대된다. 특히 96년이 되면, 3.0헥타르와 0.5헥타르에서 증가하고 있다. 그 간에 예컨대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던 소작지를 인정하는 ‘농지임대차관리법’ 제정(1986), 그리고 한국경제의 경상수지의 흑자, 특히 대미무역의 흑자(반대로 대일 간에서는 적자)에 의한 시장개방압력, 1988년의 IMF 8조국으로의 이행, 89년 GATT 11조국으로의 이행이라고 하는 일련의 ‘중진국’화․선진국화는 필연적으로 농산물시장의 개방을 요구했다. 농산물의 자유화(234품목)를 행하고, WTO체제에 맞춰 쌀의 수입자유화도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구조정책부분도 포함한 ‘농지법’이 1993년 12월에 제정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우루과이라운드 대책비로서 보조금(선별적이고 직접적인 보조)이 확대되고, 일손 부족의 소농․가족경영에 대신한 새로운 ‘담당자’ = 농업회사법인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상으로부터, 해방 후 한국의 농가의 격변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와는 별도로, 착실히 농촌해체상황, 일손 부족, 농지황폐 등이 진행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이상의 농업해체상황을 드러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이래의 해체화는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일찍이 한국의 경제발전을 칭하여 ‘압축형 경제발전’이라고 불렀지만 실로 ‘압축형 농업해체화’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의 이러한 변모과정은 일본도 포함한 정책적인 공동행동, 예컨대 동아시아 자본주의 지역으로서 WTO 예비교섭7)에 대응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은 안으로부터도 그리고 밖으로부터도 엄혹한 비판을 받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요청으로부터이다.



2. 농가호수․농가인구의 감소


한국자본주의의 급격한 공업화가 진행된 1960년대 후반 이래로 저임금 부분으로서의 농업노동력은 자본축적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그 구체적인 공급이 어떠했는가를 <표 2>(단순히 5년마다의 시기별 변화)로 확인하여 두자. 농가호수는 1965년부터 1995년까지 30년 동안에 100만 호 이상이나 감소하고 있어, 실로 농가호수가 가장 많았던 1967년으로부터 치면 약 40%의 농가가 농촌지역에서 없어진 것으로 된다. 이것만으로 보더라도 이 동안의 변동이 얼마나 격렬했던가를 엿볼 수 있다. 한국자본주의의 축적양식에 규정되어 시기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특징을 보기로 한다.

<표 2> 농가호수․농가인구의 감소

(단위 1000호, 1000명)

연   도

65~70

70~75

75~80

80~85

85~90

90~95

(65~95)

농가호수

(연평균)

  24

  4.8

  104

20.8

  224

  44.8

  229

45.8

  157

  31.4

   266

   53.2

  1,006

   33.6

농가인구

(연평균)

1,390

273

1,178

236

2,147

  483

2,306

461

1,860

  372

  1,810

   372

10,961

  365.4

*세대유츌

*단신유츌

151

1,239

604

574

1,248

1,168

1,150

1,156

  694

1,166

  1.003

   807

  5,181

  5,780

세대원수

6.31

5.81

  5.57

5.02

  4.42

   3.77

   5.15

(주) ① *표는 추정치이고, ‘세대유츌’은 세대원수×농가호수(감소), ‘단신유출’은 ‘농가인구(감소)’­ ‘세대유츌’

    ② 세대원수는 한국에서는 ‘가구’(家口)라고 하여 일본적인 세대원수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 “農林(水産)統計年報”(각연도판), 또한 85년까지의 숫자는 졸고 ‘アジア的低賃金の《基軸》と《周邊》’, p. 209.


첫째로, 농가호수나 농가인구의 약 1할 이상이 유출하게 되는 것은 70년대 후반 이후이다. 60년대에서 70년대 전반(前半)의 한국자본주의의 공업화는 경공업(섬유부문 중심)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단신유출 쪽이 많다. 그러나 75년 이후가 되면 중화학공업화가 본격화하고 세대유출(=솔가이촌)로 된다. 하지만, 한국자본주의의 경기순환에 규정되어 세대유출과 단신유출이 병행하여 농가호수․농가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70년부터 85년에 걸쳐서이다. 이는 이시기에 이른바 농촌과잉인구가 기본적으로는 정리되었다고 생각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세대원수의 감소의 방식에도 나타나 있다).

둘째로, 도시로의 인구이동은 처음에는 단신 세대원의 유출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도시에서 일정한 취직처를 발견하면 그 후에 세대원을 불러들이는 솔가이촌형(率家離村型)의 형태로 변화한다. 이는 공장입지가 재택형 겸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지 않고, 또 (농촌지역에) 입지되어 있더라도 지역경제와 결부된 두터운 중소하청구조를 갖지 않고, 전체를 그 자체 내부에서 처리하는 재벌기업 형태로서, 더욱이 국제적 하청인 OEM(상대방 상표 생산), 부품조달 공장이 많았기 때문에, 원료나 노동력을 현지에서 조달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이 대도시와 일정한 공업단지에 집중되어 있다). 사실 85년 이후에는 농촌지역으로의 공업배치도 일정하게 추진되는데, 그때에는 필요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는 기업도 생겼다. 특히 87. 6. 29일의 ‘민주화 선언’ 이후에는 ‘고’임금으로 되었기 때문에 기업이 농촌지역으로 진출하는 최대의 메리트인 저임금이 없어지고, 아세안이나 중국으로 진출하는 편이 이득이었던 점도 작용하고 있다.

셋째로, 90년대에 들어와 한국의 농촌은 일거에 1호당 세대원 수가 3.77명까지 감소되고 고령화되어 농촌해체의 위기적 상황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그 때문에, 단신유출은 감소되었지만 세대유출은 증가하고 있다.


<표 3> 농가인구와 농업취업인구의 연령계층별 구성

                                                         (단위 1000명, %)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I. 농가인구

  14,422

  13,244

  10,827

   8,541

   6,661

   4,851

(농가인구율)

44.4

37.5

24.0

20.8

15.5

10.9

  13세 이하

6,271(43.5)

4,780(36.1)

3,280(30.3)

2,114(24.8)

1,370(20.6)

  680(14.0)

  14~19

1,497(10.4)

1,980(15.0)

1,684(15.6)

1,271(14.9)

  734(11.0)

  423( 8.7)

  20~49

4,404(30.5)

4,212(31.8)

3,701(34.2)

2,830(33.2)

2,259(33.9)

1,626(33.5)

  50~59

1,107( 7.7)

1,108( 8.4)

1,074( 9.9)

1,129(13.2)

1,111(16.7)*

  867(17.9)

  60세 이상

1,143( 7.9)

1,164( 8.8)

1,138(10.5)

1,177(13.8)

1,187(17.8)

1,255(25.9)

II. 농업취업인구

4,846

5,339

4,654

3,733

3,237

2,541

(농업취업인구율)

50.4

45.7

34.0

24.9

17.5

12.2

  15~19세

639(13.2)

616(11.5)

  229(4.9)

   69(1.8)

   20(0.6)

    5(0.2)

  20~29

894(18.4)

943(17.7)

  720(15.5)

  499(13.4)

  201(6.2)

   83(3.3)

  30~39

1,260(26.0)

1,177(22.0)

  898(19.3)

  681(18.2)

  494(15.3)

  324(12.8)

  40~49

1,058(21.8)

1,180(22.1)

1,309(28.1)

  997(26.7)

  700(21.6)

  504(19.8)

  50~59

686(14.2)

962(18.0)

  979(24.8)

  924(24.8)

1,056(32.6)*

  708(27.9)

  60세 이상

309(6.4)

461( 8.6)

  520(11.2)

  564(15.1)

  766(23.7)

  917(36.1)

(주) ① 농가인구율은 한국의 총인구에서 점하는 비율.

    ② 농업취업인구율은 취업인구에서 점하는 비율. 정확하게는 농림수산업취업인구비율이다. 단, 임업은 극히 적고, 수산업인구도 1% 이하이다.

출처 : I은 “農林(水産)統計年報“, II는 “經濟活動人口年報“ (統計廳).

역주:1990년의 농업취업인구 중 ‘50~59세’의 숫자(1,056)는 그전(1985년)의 ‘40~49’ 및 ‘50~59’의 숫자나, 1990년 ‘50~59세’ 농가인구(1,111)에서 점하는 비율에서 볼 때 과장된 숫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이것을 <표 3>의 농가인구와 농가취업인구의 연령계층별 구성에서 확인해보자. 70년에는 농가인구율이 44.4%, 농업취업인구율이 50.4%였었는데, 95년에는 각각 약 1할대인 10.9%와 12.2%까지로 되어 있고, 그 연령별 구성도 60세 이상이 급속히 늘어나는 고령화 농촌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고령화 농촌에도 못지 않은 농촌해체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 해체화의 진행이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바에 한국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한국의 가족제도(イエ制度)8)와도 관계가 있다. 반드시라고 해도 정도로 장남이 결혼을 하면 관습적으로 부모와 동거하는 것이 보통이고, 설혹 농촌에 어느 정도 규모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더라도 양친은 극력 장남과 동거한다. 이는 뒤에서 보는 농지임대차관계와도 관계가 있는데, 가(家)로서 가업을 승계한다는 생각은 희박하고, 가로서 장자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제사권(祭祀權)의 계승과 부모와의 동거이다. 이것도 솔가이촌형의 패턴을 낳고, 농촌해체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도 되어 있다.*9)

이렇게 한편에서는 한국자본주의의 축적양식에 의해서 작용을 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의 가족제도에 규정되어 농가호수․농가인구의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


3. 농가경제의 추이


그러면 다음으로 가족경영을 둘러싼 농가경제의 추이가 어떠한가를 엿보기로 하자(<표 4> 참조). 당연한 일이지만, 공업화에 의한 경제성장은 농가경제도 절대치로서는 고도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내실이 문제로 된다. 이 농가경제의 동향을 봄으로써, 한국의 가족경영의 가치․가격관계의 일단, 바꾸어 말하면 가족경영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가 명확해진다.


<표 4> 가족경영을 둘러싼 농가경제의 추이          (단위 1000원, %)

 

 

 

1965년

1970년

1975년

1980년

1985년

1990년

1995년

농업소득

 

 

88.8

194.0

714.8

1,754.8

3,698.9

6,263.9

10,469.1

(농업소득률)

 

76.6

78.2

  80.2

   74.9

   67.5

   69.0

    65.4

농외소득

 

 

23.5(100.0)

61.9(100.0)

158.1(100.0)

938.3(100.0)

2,037.8(100.0)

4,761.9(100.0)

11,333.5(100.0)

 

 

사업소득

3.9( 16.6)

9.6( 15.5)

21.9( 13.9)

66.6(  7.1)

214.4( 10.5)

588.9( 12.4)

1,526.5( 13.5)

 

 

사업소득외

11.5( 48.9)

30.7( 49.6)

84.4( 53.4)

489.0( 52.1)

845.6( 41.5)

2,251.9( 47.3)

5,404.3( 47.7)

 

 

이전소득

8.1( 34.5)

21.6( 34.9)

51.8( 32.8)

382.7( 40.8)

977.3( 48.0)

1,921.1( 40.3)

4,402.7( 38.8)

농가소득

 

 

112.2

255.8

872.9

2,693.1

5,736.1

11,025.8

21,802.6

가계비

 

 

100.0

207.8

616.3

2,138.8

4,690.9

8,227.2

14,781.9

가계비충족률(농업소득/가계비)

88.8

93.4

116.0

  82.0

  78.9

  76.1

  70.8

농업

경영비

 

종묘비

1.5(  5.6)

1.6(  3.0)

6.3(  3.6)

26.8(  4.6)

71.5(  4.0)

122.1(  4.3)

269.9(  4.9)

 

 

비료비

8.3( 31.1)

10.1( 18.7)

27.0( 15.3)

59.1( 10.1)

192.3( 10.8)

200.6(  7.1)

345.2(  6.2)

 

 

농약비

0.5(  1.9)

2.3(  4.3)

13.3(  7.6)

47.2(  8.0)

123.6(  7.0)

187.5(  6.7)

349.6(  6.3)

 

자재비

농구비

0.4(  1.5)

1.8(  3.3)

8.3(  4.7)

42.6(  7.3)

158.2(  8.9)

332.6( 11.8)

807.4( 14.6)

 

 

광열비

0.1(  0.4)

0.4(  0.7)

1.7(  1.0)

14.9(  2.5)

43.3(  2.4)

  54.7(  1.9)

146.2(  2.6)

 

 

양축?양잠비

1.3(  4.9)

5.0(  9.3)

23.4( 13.3)

80.6( 13.7)

365.2( 20.5)

547.8( 19.5)

1,809.1( 32.6)

 

 

자재원료비

0.3(  1.1)

1.3(  2.4)

5.8(  3.3)

36.5(  6.2)

93.7(  5.3)

154.7(  5.5)

411.8(  7.4)

 

 

소 계

12.4( 46.4)

22.5( 41.7)

85.7( 48.7)

307.7( 52.4)

1,047.9( 58.9)

1,599.9( 56.9)

3,591,4( 64.8)

 

    노

동  비

7.6( 28.5)

13.6( 25.2)

37.1( 21.1)

107.0( 18.2)

206.6( 11.6)

281.4( 10.0)

441.1(  8.0)

 

임대료

농지 임대료

2.0(  7.5)

5.8( 10.7)

15.4(  8.7)

68.9( 11.7)

270.7( 15.2)

477.2( 17.0)

  670.8( 12.1)

 

수리비

기타 임대차료

1.0(  3.7)

2.8(  5.2)

14.1(  8.0)

36.7(  6.2)

  89.7(  5.0)

217.2(  7.7)

  399.4(  7.2)

 

 

수리비

1.1(  4.1)

3.0(  5.6)

5.0(  2.8)

18.8(  3.2)

  35.6(  2.0)

  14.0(  0.5)

   29.2(  0.5)

 

 

소 계

4.1( 15.4)

11.6( 21.5)

34.5( 19.6)

124.4( 21.2)

396.0( 22.3)

708.5( 25.2)

1,099.4( 19.8)

 

기타

농업지출

2.6(  9.7)

6.3( 11.7)

18.8( 10.8)

48.3(  8.2)

127.5(  7.2)

224.2(  8.0)

410.8(  7.4)

 

   계

 

26.7(100.0)

54.0(100.0)

176.1(100.0)

587.4(100.0)

1,778.0(100.0)

2,814.1(100.0)

5,542.6(100.0)

농가부채

 

 

11(100.0)

16.0(100.0)

33(100.0)

339(100.0)

2,024(100.0)

4,734(100.0)

9,163(100.0)

 

 

제도자금

  3( 27.3)

6.0( 37.5)

12( 36.4)

173( 51.0)

1,440( 71.1)

4,078( 86.1)

8,364( 91.3)

 

 

개인

  8( 72.7)

10.0( 62.5)

21( 63.6)

166( 49.0)

  584( 28.9)

  656( 13.9)

  799(  8.7)

출처 : “農家經濟統計“(각연도판), 韓國農林(水産)部.


첫째로, 소득구조가 어떠했는가부터 보기로 하자. 농업소득률(농가소득에서 점하는 농업소득의 비율)은 65년 당시에는 76.6%이고, 75년까지는 증가하여 75년 당시 80.2%로서, 그 단계까지는 거의가 농업전업적인 농가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후 점차 그 비율이 저하하여 95년에는 65.4%까지 떨어지고 있다. 이는 농업 이외의 겸업소득이 많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 내용이 문제로 된다. 한국의 통계에서는 사업소득이 이른바 일본적 표현의 자영겸업에 해당하고, 사업소득외(事業所得外)가 피고용겸업에 해당된다. 이 자영겸업의 구성비는 약간의 변동을 보여주면서 저하하고 있다.

입장을 바꾸어, 겸업소득은 공업화에 의해 겸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당연히 증가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이다. 65년 당시 사업소득이 48.9%였는데 95년 단계에서 47.7%이니, 구성비로서는 오히려 저하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말했던 농촌지역에의 공업배치문제와 관계가 있어, 일본적인 재택겸업의 형태는 취하기 어렵고, 결국 솔가이촌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특히 중요한 것이지만, 이전소득의 비율이 높다. 이전소득의 내역은 ① 송금보조, ② 부조금, ③ 퇴직금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에는 표시하지 않았지만 가장 많은 것이 ②의 부조금이다. 이것은 한국의 가족제도와 관련된 문제로서 친척․지연관계가 얼마나 두터운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① 송금보조는, 타지에 나간 세대원이 본가에 송금하고 있는 것으로, 그 구성비는 85년 이후에는 저하하고 있지만, 아직 15%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9) 이것도 한국의 가족제도에 의해 규정된 가족경영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가계비와 농업경영비를 봄으로써 가족경영이 놓여져 있는 상황을 확인하여 보자. 65년 이후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해는 한 번도 없고, 농가소득으로도 충당하고 있는 해가 없다 (물론, 경영규모별로 보면 다르지만 한 호당 평균으로는 그렇다). 이는 한국의 가족경영에는 농가경제잉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시기 일본의 “농가경제조사”(1995년도부터 생산비 조사도 포함하여 “농업경영통계조사”로 변경되었다)에서도 가계비를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일은 없음을 생각하면, 한국의 가족경영이 얼마나 중대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농업경영비의 동향에서 그 경영실태를 보기로 하자. 또 농업경영비 가운데 노동비는 자가노임부분을 계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순수하게 고용노동 혹은 ‘품앗이’에 수반하는 비용이다. 한국농업은 고용노동에 의해 지탱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비율이 점차로 감소되고 있다. 반면, 기계화가 80년대 이래로 진전되고 농구비(農具費)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특징적인 것은 농지임대차관계가 광범하게 전개되는 80년대 이후는 농지임대차료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95년 단계로 되면 그 비율이 저하되고 있다. 이는 농촌으로부터의 노동력 이동이 진전되어 일손부족의 상황을 연출하여 이전의 ‘소농간지대경쟁’(小農間地代競爭)에 의한 고지대가 완화되고, 농지임대차시장이 임차인 우위로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한국의 가족경영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의 일단은 명백하다.

셋째로, 농가부채가 어떠한가를 보기로 하자.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계비도 농가소득으로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농가부채는 필연적으로 늘어난다. 이것은 농가조사에서도 언제나 직면하는 문제이다. 대부분의 농가가 생활자금까지도 빌리는 경우가 많아, 그 구조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가 어려운 문제이다. 조사를 통해 겨우 얻은 결론은, 한국의 가족경영은 소상품생산자지만, 이른바 일본적인 (일정한 수입에 걸맞은 형태로 지출이나 투자를 하는) ‘자작농 구조’와는 달리, ‘괜찮아요 정신’이 일반화되어 있고, 그것이 더욱더 ‘차금’(借金) 체질을 재생산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괜찮아요’란 한국어로 “마음에 두지 않는다”(氣にしない)라는 의미이다. 또 특징적인 것은, 예전에는 부채는 개인(사채)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는데 80년대 이후에는 제도금융이 정비되어 그에 의존하는 구조로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농협의 탐문조사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데, 일본보다 더 많은 불량채권을 한국의 농협이 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 한국의 농업․가족경영의 특징들


주로 통계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농업․가족경영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아 왔는데, 그 특징들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한국자본주의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한국의 농업을 스스로의 자본축적의 커다란 기반 = 저임금 노동력의 공급원으로 하고, 그 저임금 노동력 공급의 의의가 엷어진 85년 이후, 급속히 농업위기만이 아니라 농촌해체의 상황이 강화되고 있다. 그 의미에서 말하자면, 일본의 농업해체, 농촌해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로 공업부문에서의 압축형 경제성장은 신고전파 경제학 수법에 의한 개발경제학이 말하는 것과 같은, 한국농업에 압축형 성장10)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본 이상의 농촌해체를 진행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로, 농가의 변동이나 농업인구 등의 추이에서 보면 한국은 솔가이촌형 패턴이고, 그것은 동시에 한국의 농촌해체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셋째로, 기본적인 농업통계에서도 한국의 가족제도의 일단이, 가족경영의 존속을 돕는 동시에 가족경영의 쇠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넷째로, 한국의 가족경영이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생산’이라고 하는 소상품생산이긴 하지만, 그 가족경영은 일본적인 가족경영과는 달리, 극히 특수한 한국적인 ‘가족경영’이다. 또한 부기하여 두자면, 이는 일본․한국․대만이라고 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에 혁명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되는 농지개혁, 그에 의한 광범한 소농․자작농의 창출을 단순히 일률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 의의와 한계에 기초하여 재검토하고, 각각의 자본주의 재생산구조 = 경제발전의 차이로서 정리해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한/노/정/연


1) 졸고 ‘NIES형 한국자본주의의 구도’(上)(中)(下) ꡔ개발논집ꡕ 북해학원대학개발연구소, 제58, 59, 60호, 1996, 1997년에 해방 후의 한국자본주의의 기본성격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이러한 한국자본주의의 외자․외수형 재생산순환구조에 관해서는 通井秀行 씨가 ‘외생성재생산순환구조’로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참고하기 바란다. 通井秀行 “정보혁명과 생산의 아시아화” 중앙경제사, 1997년. 또한 한국의 ‘공업화’ 기동과 전개를 일본자본주의와의 관계에서 분석한 것으로는 다음의 것이 있다. 五木武利 ‘한국의 NIES로의 변신과 일본자본주의’ ꡔ경제ꡕ 1990년 9월호.


2) 주지하는 바이지만, 9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아 그룹 부도문제, 김대중 후보의 대립후보(한나라당) 아들의 병역면제문제 등이 크게 보도되고, 차차로 재벌이 도산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위기․경제위기가 현실적인 것으로 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한국은행(중앙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단기융자를 상환할 외화가 부족하게 되는 사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중앙은행은 보고했지만, 대통령부<청와대>가 대응하지 않았다).


3) 한국의 통계를 이용하는 경우에 주의할 점은, 한국의 연구자의 말을 빌리면, 옛 개발독재정권 하에서의 숫자는 ‘연필을 굴린’ 것이 많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경향(trend)을 보기 위해서밖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여기에서 이용하는 통계 숫자 가운데, 개발독재정권 당시의 것은 그러한 경향이 있겠지만, 최근의 것은 일정하게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른바 ‘개발독재정권’ 당시에 그러한 엉터리 통계를 작성했던 관료집단이 온존하면서 여전히 그들이 통계를 작성하고 있는데, 과연 지금이라고 해서 그 통계를 신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 역자).


4) 실태조사를 한 것의 일부는, 졸저 “아시아적 저임금의 《기축 基軸》과《주변 周邊》ꠏꠏ 일본과 한국의 저임금 시스템” 일본경제평론사, 1991년이나 졸저 “한국경제발전과 소농의 현대적 위상 ꠏꠏ NIES형 한국자본주의와 농업․토지문제” (근간 예정) 일본경제평론사를 참조.


5) 한국의 농지개혁에 관해서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편 “농지개혁사연구”(김성호, 전경식, 장상환, 박석두), 1989년이라는 방대한 저작이 있는데(단, 구체적인 지역의 사례분석은 적다), 이러한 농지개혁과정의 우여곡절에 관해서는 졸고 ‘한국의 “농지법” 논쟁의 위상’ ꡔ개발논집ꡕ 북해학원대학개발연구소, 제54호, 1994년을 참조.


6) 체계적인 분석을 한 것으로는 다음의 것이 있다. 倉持和雄 “현대적 한국노업구조와 변동” 御茶の水書房, 1994년. 朴珍道 “현대 한국농민층 분해의 연구” (東京大學博士論文) 1987 (公刊되지 않았는데, 한국에는 영인본이 나와 있다.) 또한 이 글도 이 두 개의 선구적인 저작에 의거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6) 체계적인 분석을 한 것으로는 다음의 것이 있다. 倉持和雄 “현대적 한국노업구조와 변동” 御茶の水書房, 1994년. 朴珍道 “현대 한국농민층 분해의 연구” (東京大學博士論文) 1987 (公刊되지 않았는데, 한국에는 영인본이 나와 있다.) 또한 이 글도 이 두 개의 선구적인 저작에 의거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농민층분해라든가 농가구성의 추이(특히 분해기축을 확정하는 경우)를 검토하는 경우에 이용되는 수법으로서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綿谷赳夫 방식이라고 불리는 것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방식은 최하층으로부터 이농․탈농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상층에서도 갑자기 이농하는 경우가 많다.


7) WTO의 차기 무역자유화 교섭에서 문제로 될 관세화를 유예받은 일본과 한국의 쌀 시장에는 조기 관세화를 요구하는 압력이 더욱더 강화될 것이므로, 쌀의 최소접근(minimum access)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적 주식인 쌀의 ‘자급권’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등을 경제위기하의 아사아로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8) 한국의 가족제도의 기본적인 틀에 대해서는, 졸고 ‘チプとマウルの經濟學’(上) “北海學園大學經濟論集” 제41권4호, 1994년 및 졸고 ‘東北庄內地方의 農家․韓國全羅北道의 農家’ 日本村落硏究學會 編 “家族農業經營 그 日韓比較” 農文協, 1993년에 간단히 소개되어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람.


* 이른바 ‘솔가이촌(率家離村)’은 농촌에 '고령자들‘을 남기지 않을 것이므로, 이 부분은 이른바 ‘고령화 농촌’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 역자.


9) 95년의 ‘이전소득’의 구체적인 숫자는 송금보조 7만600원, 부조금 346만8500원, 퇴직금 2만 2800원이다 (“農家經濟統計” 1995년판).


10) 그 점을 검토한 선구적인 연구로서는 梶原弘和․金昌男 ‘日韓農業の投入産出構造 ꠏꠏ 壓縮型農業發展の考察 ꠏꠏ’ 朴宇熙․渡辺利夫 編 “韓國の經濟發展” 文眞堂, 1983년이 있다.


1998-08-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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