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컬럼 > 목록보기 > 글읽기

 
초대의 시

현장에서 미래를  제3호
백기완

개   꿈



백 기 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자문위원)



마침 출출하던 참에

이게 웬 떡이냐.


난생처음, 돌담 옆에 바시시 떨고 있는

천원 한 장을 주워들고 나는 울부짖었다.


나에게도 운이라는 것이 있긴 있구나


이렇게 소리치며

그냥 개장 집으로 달려갔더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살찐 야생마의 궁뎅이

사뭇 그것처럼 기름이 번지르한 아낙의 무레질이다.


이것 봐요,

그 것 갖고는 개장은커녕 개장

국물도 없다는 바람에


허겁지겁 혹시나 해서 그 자리에 다시 갔더니

누리끼리한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이

바로 그 돌담길 찬바람에 또다시

바시시 떨고 있질 않느냔 말이다.


그러니 어찌 내 운을 탄복하지 않았겠어?

나는 얼핏 주워들며 소리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 어느 씨부랄놈이

운이란 게 없다고 했더냐.

보란 말이다. 나에게도 한번쯤

행운이라는 게 있지 않느냔 말이다 행운.

우라질 놈의 행운을 주접 떨며


이참엔 설농탕집 대문을 아예

두 손은 내버려두고

그것도 왼쪽 어깨로다 왁짝 밀쳤더니만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아가 그 개장집 아낙의 시누이 같은 아낙이

떡하니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그것을 까고 골빠진 삼태기처럼

수채구멍에 뒤엎으며 하는 말이다.


이봐요, 설농탕이라고 우습게 보는 거요?

단돈 천원짜리 행운 정도라고 하면

내리 세번은 더 있어야 한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싸구려 칼국수 집엘 갔더니


아, 이건 또 무슨 놈의 비운일까.

그 이천원에다가 천오백원을 더 보태야 한다는 바람에

나는 그만 빈 쌀자루처럼

기가 퍽 꺾이며 누더기처럼 어깨가 축 늘어지는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가분재기 쌩 -

무지무지 매서운 찬 바람이

내 귓싸대기를 갈기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이때 나는 얼음판에 나자빠진 누렁소처럼

뉘시깔에 정신이 얼얼해 쳐다보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하얗게 눈 덮인 산마루 그 꼬지 꼭대기

그 산마루를 향해

수천 수만장의 천원짜리들이

마치 돌개바람에 가랑잎처럼

아니 오뉴월 제비떼처럼 쌩 쌩

날아가질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것을 주우러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라.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내 염통을 치며

두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자신감을 뭉개 가래처럼 내뱉었다.


나에게 주어진 최초의 운이다 운, 그러니

그까짓거 개장뿐이겠는가.

천하를 거머쥘

내 한살매(인생)의 일대 운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다지며 나는 그 얼음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다가 미끄러지면 손톱이 빠지고

다시 오르다가 또 미끄러지면

발톱이 빠지거나 말거나

나는 기어코 올라


또 한 장을 잡아서 챙기고

또 잡아선 또 챙겨 아뿔싸 이따만한 돈덩이가 됐는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글쎄 그 천길 낭떠러지에서

내 바지 가랭이를 잡아당기며

하는 수작이 있질 않느냔 말이다.


여보시오,

거 점잖은 처지에 뭘 그러슈.

나나 주슈 - 라면이나 한 그릇 사 먹게.


이러질 않느냔 말이다.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거지새끼다.

쓰다버린 답싸리 빗자루처럼 이 빠진 거지.


어쨌거나 나는 소릴 질렀다.


야, 임마

돈 말이야?

글쎄 돈은 준다니깐,

바지는 놓아야지 내 바지.


이 때다.

내 밑천가지 나오려고 해

얼핏 바지를 움켜쥐려다가

그만 와장창 천길 낭떠러지로 - 쑝 -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다.


나는 그날 새벽, 아직은 캄캄한 새벽

식은 땀에 흠뻑 젖은 내 몰골이 부끄러워

공연히 아프다는 핑계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하루종일 바깥에 아니 나갔다.


1995-09-20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