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특집 > 목록보기 > 글읽기

 
정세,상반기 투쟁평가,하반기 방향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36호
좌담








경제위기하의 노동운동의 방향

- 정세, 상반기 투쟁평가, 하반기 방향을 중심으로 -


 

좌 담

참석자

채만수(편집위원장)

남구현(연구위원)

최형익(연구위원)

이종회(지식인연대 사무처장)

고민택(민주노총고용대책국장)

이종탁(정세분석실 연구원)

사  회

박성인(사무처장)

정  리

김혜란(편집기획실장)

날짜 및 장소

1998년 8월 26일 / 연구소

‘제2건국 선언’, ‘신노사문화 창설’이라는 장밋빛 거짓말 속에, 현실은 6월 5일과 7월 27일 노정합의, 8월 24일 현대자동차합의, 만도의 고용안정합의 등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사정 간의 합의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게다가 한쪽은 공권력 투입만은 막아보겠다며 급파된 협상단에 의해 타결을 유도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민간단체의 협상유도도 거부한 채 공권력을 서슴없이 투입했다. 동일한 사안을 놓고 양극단의 태도를 취한 것에는 아마도 그들만의 내부원칙이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야 알지 못해도 정세와 계급역관계 속에서 취해진 행동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현자, 만도 등 강도 높은 생존권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경제위기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등 쉽지 않은 문제들 속에서 전체 노동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는 매우 어렵다. 게다가 우려스런 방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연구소는 노동자 투쟁은 쉴 새 없이 벌어지지만 그렇다고 큰 줄기의 방향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문제인식을 갖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투쟁이나, 쟁점들과 연관되어 있어 시간적 거리를 두고 분석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판단하에 좌담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약 7시간에 걸친 좌담회에서는 경제위기를 둘러싼 정세인식, 국내외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계급대립의 지형과 성격,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과 노동자 대응, 이들을 근거로한 중장기적 노동운동의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좌담회라는 게 풍부한 논의가 가능한 반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이나 체계성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듯이 이 글에서도 그러한 문제점이 보인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고민과 발언 대부분은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또한 모든 결론이 하나로만 모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풍부한 쟁점과 문제인식을 던지고 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많은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경제위기하의 노동운동의 방향

- 정세, 상반기 투쟁, 하반기 방향을 중심으로 -





현 시기 경제위기의 성격과 특징


사회 : 오늘 자리의 취지는 현대자동차와 만도기계의 정리해고 저지투쟁을 포함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생존권투쟁이 강도 높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중장기적 전망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자리는 투쟁의 평가도 분명히 들어가겠지만 가능한 총체적인 노동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논의하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오늘 논의의 주요 쟁점은, 정세의 성격, 계급대립의 지형과 수준,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과 그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평가, 주체역량에 대한 판단 그리고 현시기 노동운동의 목표와 방향 등입니다. 대략 이와 같은 순서로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동안 위기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현시기가 ‘공황’ 내지 ‘공황의 초기’라는 것에는 커다란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 시기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점에서 아직 논의가 정리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고전적 공황, 즉 1930년대의 경제위기와 현재의 공황의 전개양상의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현 시기 경제위기를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국적 표현, 혹은 한국적 특수성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경제위기를 중심으로 세계적 연관성을 파악해 나가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실천적인 함의도 다를 수가 있는데, 먼저 현 시기 경제위기의 특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남구현 : 자본주의의 모순은 항상 위기적으로 재생산되어 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순은 사라졌다기보다 새로운 운동형태를 띠어오면서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모순이 새로운 형태를 띤다는 의미에서는 위기론이 재구성되어야겠지만, 위기론의 재구성이 곧 위기론의 폐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을 전제로 지금 시기 위기의 특징을 몇 가지 지적하면, 첫번째는 그것이 화폐․금융공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멕시코의 페소화, 태국의 바트화, 엔화, 위안화 등의 예에서 보듯이 화폐질서가 교란되면서 이것이 금융공황으로 이어지고, 각국의 금융재정의 위기가 발생하며, 이것이 다시 IMF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실물자본을 1로 놓고 봤을 때 화폐투기자본이 40 또는 50이라는 현실이 지금 위기의 원인이 화폐 투기자본임을 증명해주는가는 의문입니다. 화폐․금융자본의 허구적 부분이 거대해졌다는 것은 바로 생산적 자본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40, 50이 바로 실물자본 1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죠. 투기적 자본, 금융자본의 문제만으로 위기에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현상적으로는 투기적 성격에 근거하여 전세계적인 위기로 전화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산적 자본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분석은 문제가 있습니다.

두번째 특징은, 지금의 위기가 동구권의 몰락, 세계적 자본주의 주변부의 자본주의화 이후에,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지구적으로 확장된 수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회주의는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달하지 않은 주변국들이 있어서 모순이 외화될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외화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아직은 정치적 형태가 민족국가단위로 조직되어 있지만, 각 나라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지구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지구적 차원에서 각 나라에 노-자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자본관계가 지구화되었다는 것은 자본의 위기가 발생할 때, 모순이 외화될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와 함께 어느 나라에서나 노자의 대립을 중심으로한 계급투쟁이 함께 맞물려 터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봅니다. 자본의 위기의 전개 양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모순이 항상 위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위기는 어디에서나 항상 터질 수 있는데, 이때 바로 노자간의 투쟁으로 전화되는 측면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종회 : 공황의 성격은 자본의 성격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고 봅니다. 기존의 공황과 그에 따른 혁명적 운동의 발흥, 이런 것들이 일국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고민이 되는 부분은, 70~80년대 당시 제3세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변혁운동의 동력이 왜 그 이후 일국적 차원에서는 일어나지 않는가입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이념적 좌표가 붕괴되었던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 수준에서 변혁에 대한 전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과 현재의 위기를 관련지어 볼 때 기존의 자본의 성격과 지금의 자본의 성격을 구분해서 놓고 본다면, 과거에는 파운드, 달러에 의해 기축통화가 형성되어 있을 때에 세계 헌병의 역할을 일국적으로 담당했던 문제라든지, 식민지이윤 침탈의 양식 자체가 그야말로 이윤확보의 수준에서도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금융자본에 의해서 세계적 연동성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일국적 수준의 붕괴는 세계적 차원의 붕괴와 맞물려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즉, 하나의 붕괴는 연속적 붕괴로 나타날 수 있고 이 수준에서 자본의 공동대응이 ‘조절’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수준에서 자본의 대응이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남구현 :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화폐, 환율, 금융 이런 것이 너무 물화된 형태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인간들과는 무관하게 저 위 어딘가에서 조절되고,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화폐, 금융의 흐름이 어디에서 생겼고, 또 그것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가, 말하자면 투기적 자본이란 것은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데, 이윤율은 불규칙하게 움직일 수도 있고, 위기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윤은 화폐금융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화폐금융은 어디선가 만들어진 이윤 중에 높은 이윤율을 찾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윤은 당연히 생산적 자본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사실을 놓치면 자꾸 화폐금융의 위기로만 보게 됩니다. 지금의 위기가 화폐의 위기로 드러나지만,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그 결과는 화폐들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에 살고있는 노동자․민중들에 대한 타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화된 형태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이종회 : 저는 자본이 공황이라는 위기를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는가의 측면을 말씀드린 것이고요, 이윤의 발생은 생산자본에 기초해 있지만, IMF에 의한 이윤수탈양식은 금융적 투기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관리, 조절해온 것이 IMF라면 이것의 중개를 조절하는 부분도 ― 물론 IMF 수준은 아니겠지만 ― 있다고 봅니다. 남구현 선생님은 금융자본 자체가 너무 물화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각국마다 달리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체를 어떻게 꾸리고 어떤 방향에서 전선을 칠 것인가를 중심으로 놓고 얘기한다면, 일국적 수준에서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기관리가 어떤 형식으로 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30년대 공황극복 방식으로서 케인즈식 위기관리가 있었다면, 70년대 들어서는 변동환율제로서 자기극복을 해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위기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본이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본의 성격에 대한 이해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최형익 : 자본의 위기관리라는 말은 정확히 말하면 틀린 개념이라고 봅니다. 물론 실제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그러한 말을 사용한다하더라도 정확한 표현은 모순적으로 극복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나 싶습니다. 문제는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측면에서 이렇게 모순적으로 그리고 적대적으로 표출되는 지점들을 정확하고 엄밀하게 독해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실제로 전후 유럽에서 ‘마샬플랜’ 등 재건계획에 따라 유휴자본이 공공부문에 대량 투여되면서 자본주의체제가 상대적으로 안정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에는 자본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했던 공공부문에 대한 재사유화와 민영화가 진행되었고, 따라서 저는 이러한 폭력적인 재사유화정책이 80년부터 자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의 구조조정정책은 공공부문에서 재사유화되는 산업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운동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만들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저항은 지금 시기에서 자본과 국가의 선택지를 정통 리버럴의 신자유주의와 또 하나는 네오 케인즈, 즉 뉴딜적 방식 사이의 옵션사이의 선택을 강제하긴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과거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과연 자본에게 그러한 신케인즈주의적인 정책의 도입마저도 용이하겠는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민택 : 현실적으로 자본주의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위기적 국면을 맞이했었고 그때마다 계급투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이 재생산을 위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본이 자기 자신을 변경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는 계급투쟁의 방식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 유럽의 경우 80년대 초부터 신자유주의가 전개되어 나왔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세계경제의 위기와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실천적 의미와 연결하여 논의되어야 할 지점은 두가지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자본운동 그 자체의 전개양상에서 자본간의 경쟁이 격화하는 측면과 경쟁을 조절하는 측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고, 동시에 자본간의 경쟁이 격화되든지, 조절하든지 간에 이 과정과 맞물리는 노-자간의 계급대립의 문제가 지적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남구현 : 그 두가지 사안이 왜 맞물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은데, 화폐금융자본의 문제로만 보면 자본 자체가 투기자본화한다는 점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투기자본화한 화폐들의 무질서한 지구적 운동에만 착목하게 되면, 허구적 자본을 실물자본화하면 위기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게 됩니다. 또는 마치 자본의 새로운 조절양식을 발견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만들어집니다. 자본이 투기자본화한다는 것은 실물자본부분의 이윤율이 압박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합리성에서 보면 투기자본화하는 것이 옳습니다. 투기자본이 지구적 운동을 하고 있지만 총체적으로 볼 때는 어디에선가 쥐어짜낸 것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지금 시기 세계적 차원의 이윤율저하와 투기자본화, 투기자본의 무분별한 운동 등등이 문제로 드러나는 이유가 이러하다면, 조절양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자본의 과제가 아니라, 자본은 지구적 차원에서 보다 많이 쥐어짜기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투기할 대상이 생기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바로 투기자본에 의해 화폐금융공황이 발생하면 그 결과 각 나라 내부에서는 노동자 쥐어짜기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구적으로 대응하고, 조절양식을 만드는 것만이 자본에 의해서 고려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적으로 어떻게 쥐어짤까 하는 문제하고 맞물려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화폐, 금융의 세계적인 질서재편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왜 이 문제가 노동자계급의 압박으로, 나라와 국경을 달리하면서 나타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경제위기의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


사회 : 그 동안 진보적 이론진영에서든 노동운동진영에서든 97년 11월 IMF구제금융 신청 이후 현 시기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논의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현 시기 경제위기를 70년대 이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국적 표현으로 바라보는 견해로부터,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특수성에 주목하여 현시기 한국 경제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경제위기 시의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도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죠.


최형익 : 저는 위기의 일반론에는 상당정도 동의를 하지만, 제가 드는 의문은 IMF체제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고 동남아가 위기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런 언급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볼 때 한국과 같은 양상이 강도에 있어서는 전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규정성을 통해 한국에서의 쥐어짜기가 경제위기를 가져왔다는 식으로 다시금 일반화할 수 있는가에는 의문이 듭니다. 다시 말하면 위기라는 말이 얼마나 정치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가하는 것으로, 가령 세계 경제위기라는 상을 통해 노자구조의 적대관계의 표출 또는 격화를 얘기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동남아의 경우도 그러했다고, 70~80년대 IMF관리체제를 경험한 바 있는 영국이나 스웨덴 역시 그러한  IMF체제를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영국이나 스웨덴이 IMF하에 들어갔을 때 그 문제를 지금과 같은 논의양상으로, 다시 말해서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영국, 스웨덴의 위기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논의지형이 과연 큰 의미를 가졌던 가를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세계 경제위기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해 반성해 봐야 할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세계경제가 위기라고 보지 않고, 정확히 경제위기이론에 대한 더욱 많은 세밀한 규정과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적어도 한국경제의 현재의 위기사태를 보는 시각은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발생한 경제위기가 세계경제와 어떤 메카니즘을 갖는가의 문제와 세계경제의 위기진행 속에서 한국경제가 위기라는 것은 다른 의미라고 봅니다. 따라서 전자의 맥락에서 이해할 때, 현재의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선진독점자본의 쥐어짜기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내독점자본의 발전의 위기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또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이론적 규정이 없다면,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일반화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나라와의 경험속에서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내세워야 되는 것도 정치적 실천의 문제, 정치적 실천을 위한 이론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남구현 선생님의 말씀을 일반론적으로는 공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국자본의 위기가 세계경제라는 규정성 속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한국자본이 추진하는 은행의 빅딜과정과 구조조정과정이 자본주의적 척도에서 성공한다면 세계경제위기는 다시 위기가 아니라는 식으로 논의될 소지가 있으며 이는 다분히 순환논법에 다름 아닐 소지가 있습니다.


사회 : 세계경제의 위기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직 이것이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까? 아니면 작년과 올해 동남아의 외환위기로 표현된 것들을 세계경제의 위기의 징후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까?


최형익 : 70년대 오일쇼크로 진행된 80년대의 위기가 지금과는 다른 선진자본주의의 위기였고, 이러한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공세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는데, 서구자본주의의 위기가 세계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그 당시 위기는 지금의 위기보다 더 큰 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위기로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위기라는 양상들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는 문제가 있지만 지금 현시기에 동남아나 한국에서 벌어지는 고리가 세계공황의 징후로 보인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과거에 선진국자본주의에서의 위기는 충분히 전반적인 세계공황의 징후로 보여질 만 했었습니다. 그래도 세계적 수준의 경제위기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남구현 : 한국 경제의 위기, 특수성도 동시에 세계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 초의 오일쇼크 등 세계적 위기가 왔을 때, 한국자본의 위기극복책이 유신시대에 긴급조치를 발동하면서 부채동결을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면, 70년대 말에는 무너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축척조건의 변화, 정치적인 통치방식의 변화 등이 1대1 대응형태로 딱 맞아 떨어지면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 흐름과 서로 맞물려서 진행됩니다. 그런 면에서 과거의 위기가 오일쇼크에 의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주된 요인이었다면, 지금은 화폐․금융공황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노-자 대립이 전지구적으로 확장된 측면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때는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주체로서 전략․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단위가 없었지만 지금은 전략․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거대한 단위가 존재합니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 지금의 위기도 진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내부의 계급모순의 변화, 계급간의 대립지형의 변화들, 축적조건의 변화를 세계적 차원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분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종탁 : 공황을 얘기할 때 두가지로 구분해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적 의미에서 봤을 때 이윤율과 생산의 감소로 표현되는 측면과 정치적 의미를 가미해서 살펴보는 측면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즉, 위기가 어떤 수준에서 다가오든 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 노자관계의 격렬한 대립, 모순의 격화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후자의 관점은 이것을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어떻게 착목하고 확대시켜나갈 것인가, 또한 세계적으로 확대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논의는 후자로 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은 위기의 순간에 자기의 경쟁을 격화하는 동시에 나름의 위기관리방식을 개발하여 왔습니다. 우리 토론이 순수한 경제상황을 다루는 게 아니라면 현 시기가 공황이냐, 아니냐는 것을 논증하기보다는 자본의 위기극복 방식과 이것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 계급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되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에서의 위기가 한국에서의 노자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새로운 주체의 형성이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착목하고 계급대립 지형에서 무엇을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남구현 : 제가 말한 자본주의의 지구적인 확대를 마치 한국의 특수성을 배제하고 지구적인 공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받아들이신 것 같은데, 저는 자본이 자기의 모순을 외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전의 식민지 건설과 같은 방식은 이제 힘들어졌다는 것이죠. 자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사민주의적 방법 이외에도 있었습니다. 파시즘과 같은 대응도 있었고...... 이것도 일국적인 차원에서 나라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었죠. 예를 들어 미국은 뉴딜, 독일은 파시즘 등으로요. 그런데 일례로 케인즈주의적인 복지국가 정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 조건이 악화되었을 때 외부의 어느 곳에서 뜯어와서 내부에 나누어주어야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의 모순을 외화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힘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오일쇼크 이후에 서구에서 위기대응 전략이 무너지면서 거꾸로 신보수주의적인 반동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그런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던 축적조건의 변화가 일국적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지구적으로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전의 식민주의적인 체계를 2차대전 후에는 가질 수 없었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했어야 했죠. 그런 점에서 2차대전 이후에 서구가 주로 사회민주주의, 케인즈주의전략을 택했고 70년대 말 이후는 신자유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지구적인 차원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내부에서 군살빼기를 아무리 해봐야 자국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전개될 것이고, 내부적으로 신보수주의적 군살빼기가 먹히지 않으니까 외부로 눈을 돌려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공세를 해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새로운 형태의 계급대립이 생겨날 것입니다. 자본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은 자본의 축적조건과 계급간 힘관계가 맞물리면서 나타납니다.

최형익 : 모순을 외화시킬 여지가 줄어든다는 말에서 ‘여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들어오지 않고, 자칫 자본주의의 위기와 붕괴론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구현 : 자본관계가 확장된다고 할 때 여지가 없다는 것은 자본이 해결 방법을 못 찾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컨대 중심부 자본이 자기의 모순을 외화하려고 할 때 주변부에서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을 하면 여지가 협소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옛날에는 식민지 전쟁에 대해서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노자대립이 아니라 민족의 성전으로 보아 전쟁터에 나갔지만, 지금은 노자대립이 전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노자간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본 스스로 민족국가의 틀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고, 노동자 역시 지구적 대응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지금, 그런 경향이 확대될 것입니다.


최형익 : 저는 현시기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 더 많은 규명이 따라야 하겠지만 - 각도를 달리하여 그 실제내용에 있어서는 파시즘적 성격을 내장하고 있는 공세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문제인식에는 기본적으로 ‘파시즘’에 대한 동태적 재규정을 포함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파시즘과 서구 사민주의를 대립적인 것으로 바라보는데 실제로 서구 사민주의가 사용한 정책은 파시즘에서 많이 빌려왔다는 측면에서 유기적 연관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저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운동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는 그러한 선택이 사민주의와 동일한 것이냐 동일하지 않는 것이냐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본이 사민주의 정책을 선택하느냐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구체적인 계급투쟁의 국면에서 자본에게 사민주의 정책을 강제하도록 하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에 의해 초래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얘기는 슬로건과 정책의 변혁성이 실제의 변혁적 관계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저는 그러한 대표적 사례를 재벌해체와 같은 구호에서 찾고 싶습니다.


고민택 : 7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이 저하되었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자본주의 내의 경쟁이 격화되었죠. 그런데 그 경쟁은 두가지 측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리적․공간적 측면에서 사실상 자본주의 세계운동에 전지구가 포괄되었다는 측면입니다. 특히 아시아, 소련 및 동유럽 등의 저개발국이 자본주의화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또 내재적인 측면으로 보면, 과학기술혁명에 의한 생산력의 변화가 경쟁의 격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고용문제가 증폭되었지만, 70년대 이후 특히 80년대 들어서는 생산력의 발전과 고용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조업 부분에서 이러한 현상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비스 부분에서 광범위한 노동자를 양산해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저는 아직까지 노동자가 양상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이윤창출의 핵심인 생산부분, 제조업부분에서 계속하여 고용 창출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 부분에서의 경쟁은 상당히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세계자본주의는 우루과이라운드에서 WTO체제로 넘어갔고, 일국적 수준에서 방어하지 못하면서 지역화 블록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번의 동남아 위기의 출발은 일본이라고 봅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은 제조업 중심으로 경쟁력이 있었지만 소위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구사하지 못함으로써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소위 일본적 방식, 아시아적 가치로 표현되어지는 방식으로 경쟁을 하였으나 자본간 엄혹한 경쟁에서 밀리고, 금융에서의 생산력 경쟁에서도 밀려,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에 투자했던 과잉생산 부분이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 없음으로 해서 동남아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동구의 경우는 생산력 발전이 일정 수준에 올라오기도 전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등, 지금 세계자본주의는 엄청난 축적의 위기에 직면에 있고 그 극복의 시도가 노동자에 대한 공격으로 일차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다 전면화되기 위해서는 선진자본주의의 이 같은 측면이 더욱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그들이 투자한 주변부의 모순이 경쟁을 강제할 것입니다. 따라서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최형익 : 많은 사람들이 현시기 한국의 위기를 보면서 이 위기가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라든지 세계경제 위기의 신호탄 혹은 고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현재 위기가 세계 위기속에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엄밀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런 수준에서 문제제기한 것입니다. 다른 분들의 지적에 일반적으로 동의하지만, 논의의 근거를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채만수 : 최형익씨가 제기한 문제와 관련해 자본주의의 위기가 일국에 국한되는 일이 없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세계적인 것이라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다만, 그 위기가 심각한 것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는 있겠지요. 하지만 최형익씨가 제기한 문제, 즉 현재의 한국의 위기가 세계경제의 위기인가의 의문에 대해서는 우선 자본의 위기가 기본적으로 세계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또 현실적으로도 지금의 위기는 동남아시아, 러시아, 남미 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 위기를 세계적인 것이라고 추측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 확산속도도 30년대 공황보다 훨씬 빠릅니다. 미국에서 1929년에 주식이 붕괴되었지만 처음에 사람들은 이것을 세계적 공황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극적인 예가 일본자본주의인데, 일본은 1차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어서 제1차 대전 때에 전시호황을 누렸는데 그 때문인지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20년대 내내 커다란 호황을 구가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1차대전으로 정지했던 금태환제를 30년 12월에야 재개합니다, 말하자면, 29년 대공황의 폭발 이후지만, 그것을 세계대공황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31년 5월에 오스트리아에서 거대한 은행이 파산을 하고, 7월에 독일에서 대대적인 금융위기가 벌어지고, 9월에는 영국에서 금융위기와 함께 파운드화의 태환이 정지됩니다. 말하자면, 29년 10월의 뉴욕에서의 폭발 이후 1년 반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세계공황은 본격화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대공황’으로서 인식하게 되었지요. 그것에 비하면 지금의 위기는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르지 않나요?

과거의 ‘고전적 공황’과 지금의 공황 간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형태상의 차이로 보았을 때는 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고전적인 공황’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평균적이고 추상적으로 보는 것인데 만일 ‘고전적 공황’ ― 이런 말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 시대의 공황들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보면 그것들은 당연히 다양한 형태로 폭발합니다. 30년대 공황도 사실, 형태 자체는 화폐금융공황으로 폭발했지 않습니까? 다만 당시의 자본주의 주요국가들의 화폐통화제도와 지금의 제도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폭발 양태에 차이가 있지요. 당시는 금본위제였고 지금은 소위 관리통화제이기 때문에 30년대 금융공황과 지금의 금융공황이 양태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즉 30년대 금융공황은 금본위제 정지를 불가피하게 하고, 이번의 공황은 대폭적인 통화가치의 절하를 보입니다.

그리고 1929년 이전의 국제자본이동과 지금의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이동은 많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당시의 금본위제는 금의 수출입 등 자본이동의 자유를 수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다만 다른 것은 30년대의 공황은 지금처럼 금융공황을 촉발시키는 대형 펀드의 적극적인 공격의 결과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공황은 세계적인 금융이나 신용제도가 훨씬 발전․확대되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고도로 발달한 결과 극히 거대화된 펀드들의 의도적인 공격에 의해 촉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퀀텀펀드의 소로즈 같은 경우 각국을 공격하고 돌아다니면서 지도, 처방까지 합니다.

다음에 독점부르주아지들의 대응에 차이가 있는 것은, 예전에는 미미하던 국제적 관리기구들이 제2차 대전 이후에는 거대해져서 그것들이 부분적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관리의 측면을 확대 해석하여 잘못 보면, 힐퍼딩이나 부하린 등이 일국 차원에서 금융자본에 의한 ‘조직된 자본주의’를 잘못 이야기했던 것처럼, 세계 차원에서의 ‘조직된 자본주의’를 말하는 식의 잘못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대응에는 명백히 기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구체성의 차이를 사상해버리고 그 자체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 본다면 30년대와 지금의 위기는 차이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가 파시즘적 성격을 갖는다는 최형익씨의 견해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신자유주의는 내부에 제국주의적인 측면도 강하게 가지고 있지요.



현 시기 ‘계급대립의 성격과 전망’


사회 : 신자유주의 공세는 자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 중의 하나라기보다 70년대 세계경제의 위기 이후에 자본축적이 지구화되고, 과거처럼 식민지 정책 등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자기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각 나라의 계급대립의 조건에 따라 드러나는 양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유럽의 경우는 좌파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본의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 양상이라면, 한국 같은 경우는 애초에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다가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계속 저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소위 IMF구제금융이라는 것과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 공세를 전면화시켜 가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바로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IMF가 강요하는 경제정책과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맞서서 힘겹게 싸워나가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투쟁을 어떠한 정치적․조직적 전망하에서 전개해 나갈 것인가입니다. 그러한 전망의 차이에 따라 투쟁의 전술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점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종탁 : 전체적인 방향에서 볼 때 80년 이후 초국적 자본이 선택해 온 전략은 있었고, 그 전략을 90년대 들어온 이후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까지 확장시켜내기 위한 전략을 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동남아의 위기가 표출되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한국의 자본이 그 방향을 수정할 것인가 혹은 수정하도록 강제할 힘이 노동자계급 혹은 민중에게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적인 전략은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나아가 세계적 수준에서도 이 전략은 수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초국적 자본은 위기를 또다시 주변부로, 덜 발달된 자본주의로 확대하고 확장하면서 극복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략을 노동계급이 수정시켜낼 수 있는가, 수정시켜낸다면 그 방향은 무엇인가의 문제가 짚어져야 합니다.


남구현 : 이제 아무도 위기의 문제를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의 문제라거나, 주변부 국가의 경우 경제개발이 대안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즉 자본 그 자체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자본은 여러 전략을 구사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겠지만 이미 자본에게는 대안이 없다는 점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에 나온 주장들은, 현재의 위기를 화폐․금융자본의 문제로 치환하여, 국제적으로 새로운 금융질서를 만든다거나, 투기적 자본을 실물화하는 것 등을 통해 자본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IMF를 졸업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는데 그것이 아님을 지금의 이론적 수준에서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형익 : 저는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고, 같은 이유로 남구현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러한 이론적 선포가 현실적 힘을 갖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정치적․사회적 동학들, 즉 다양한 변수와 우발성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는 정도에서 이해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현시기 경제위기를 초래한 엘친정부를 러시아 인민들이 자유선거를 통해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독재정권에서의 민주주의로의 정치적 이행을 가져온 정권이 경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그리고 마치 불가항력인 힘이라도 존재하는 양 민중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을 채택하게 되는 그러한 역설들,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나듯이 가장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정치를 시행하는 김대중정권이 역대정권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이라는 외피를 지니고 소위 경제개혁이 진행되는 이러한 구체적인 정치과정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착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에게 탈출구가 없다’는 남구현 선생님의 언급을 제 식대로 풀어쓴다면 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투쟁속에서 사회적 이행의 문제라는 운동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의 초점으로 함께 놓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수세기적 조건에서 진행되는 노동자운동은 상당히 모순적인 양상을 띠며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모순적 양상속에서 어떤 측면을 더욱 강화할 것인가의 여부를 올바로 짚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노동자의 정치적 힘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연결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연결고리들은 현재 전개되는 정세속에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저는 현재의 민주노총의 대응 내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전개되는 노동자운동을 어떤 일반론적인 시각에서 보기보다는 그것과 약간은 거리를 두고 파악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가령 민주노총이 자신들의 강령으로서 5대요구안을 내놓았다는 것은 그 실내용에 있어서는 모두 개량적인 요구이며, 이러한 요구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유럽의 사민주의적 강령보다도 낮은 수준의 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현재 한국의 위기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의 수준과 성패를 준별하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저는 당연히 현시기의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투쟁은 그 조준점이 이러한 5대요구안을 정치적으로 엄호하는 것에 맟춰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힘있게 활동하는 노동자정당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정치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건설을 당위적으로 뇌까리는 것은 힘있는 정치세력화의 경로가 아닙니다. 따라서 현재 노동자운동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중심으로 현시기 투쟁에서 정치적 요구를 배치하는 작업은 제가 보기에는 적어도 생존권 투쟁의 관점에서 설정된 민주노총의 5대요구안이라는 전선이 정치적으로 가장 예각화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군사적 용어를 빌리자면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에서 아(我)의 힘을 극대화하고 타(他)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정치적 요충지라고나 할까요.

따라서 생존권을 정치적으로 엄호하기 위해 반독점투쟁의 과제를 연동하는 것은 선전의 차원이나 정치교육의 차원에서는 의미 있겠지만, 민주노총 5대요구안을 중점으로 하는 생존권투쟁과는 다른, 별개의 상이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전선이라든가, 소위 중층적인 전선론을 사고하는 발상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견해는 궁극적으로는 접전이 가시화되어 힘을 집결해야하는 진지를 비켜나가는 논리를 합리화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상당기간 민주노총에 정치적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며, 김대중정권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해내고, 다른 정치적-경제위기극복의 옵션을 취하도록 노동자운동의 이름으로 강제해내는 것이 현시기 한국노동운동의 중차대한 과제라고 봅니다.


남구현 : 자본에 대안이 없다는 표현은 추상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노동자계급의 구체적인 대응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이전의 사회개혁투쟁의 요구조건을 보면 그것은 자본에게 대안이 있다는 전제하에 내건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본의 재생산조건에 약간의 변화를 가지면서 사회보장제도의 비효율성을 개선하자는 것이죠. 본인은 이러한 관점을 일관되게 비판해 왔습니다. 축적된 모순의 중심부를 치면서 그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는 관점에서 여러 가지 전략․전술을 제시해 왔는데, 이는 자본에게 대안이 없다는 진술의 구체적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구사하는 전략에 대해서 수정을 가한다는 관점을 넘어서야 합니다. 말하자면 생존권 확보, 고용안정은 기본적으로 해야할 과제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제동 혹은 방향전환조차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투쟁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자본에 타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조직하자는 것이죠. 반독점전선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전반적으로 고려하면서 생존권 확보투쟁을 자본관계/제국주의관계의 지양전략 속에서 녹여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총의 5대요구안은 생존권 확보가 기본 내용이지만 정치사회적인 전반적 개혁을 자기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측면이 중요합니다.


사회 : 구체적으로 각 나라마다 자본간 경쟁의 격화와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세의 강화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양태로 드러나고 계급대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해서 좀더 일반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지구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공세에서 계급대립의 양상의 변화와 맞물려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계급대립의 문제라는 것은 국가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나라마다 특수한 양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 국가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제 지구화와 더불어 가해지는 신자유주의의 공세라는 조건속에서, 지금 자본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응과 계급대립의 현단계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봅시다.


남구현 : 서로간에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노동자 투쟁이 갖는 지구적 성격을 포착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을 위기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서구의 실업문제는 이미 파시즘이 등장하던 시기만큼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으며, 고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위기입니다. 경제가 폭삭 망해서 대다수의 사람이 굶어야만 위기는 아닙니다. 부담하기 힘들 정도로 실업자군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다는 점에서 위기의 징후는 있는 것입니다. 일본자본도 십수년 전부터 위기의 단초가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와서야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위기를 어디부터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는 견해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지만 위기의 경향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각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인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자본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과 관해서, 자본이 딱 한가지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자본은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축적조건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향후에도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자본이 어떤 전략을 선택할 때 노동자계급이 압박을 가해서 그 전략을 수정하게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지만, 모순은 위기적으로 재생산된다고 했을 때, 즉 모순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을 때 위기적으로 재생산되는 모순이 발현되는 매 시기속에서 모순자체를 지양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단초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최형익 : 그 단초는 어떤 의미에서 서구 노동운동에서의 대응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채만수 : 우리 사회에서는 ‘공황’을 얘기하면 ‘파국론’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경제위기는 그 자체로서 파국을 의미합니다. 다만, 파국이 곧 끝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히 위기의 객관적인 경제적 측면과 더불어 경제위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인 부분, 대립과 계급투쟁의 수위에서 결정되는 것이지요. 현시기의 경제위기가 아무리 파국적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노동운동의 대응이 방향 없이 좌충우돌하면 아무리 빌어도 ‘끝장’이라는 의미의 파국은 오지 않습니다.

다만 경제위기=공황은 방향성을 상실한 노동운동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된다는 점을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즉 새롭게 각성하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역시 노동자계급 내부의 엄청난 노력과 내부투쟁을 통해야 가능합니다. 오직 노동자계급 내부의 투쟁 ― 물론 이것은 내부투쟁이면서 동시에 대자본 투쟁의 사슬과 맞물려 이루어집니다 ―에서 노동자 계급성을 띤 부분이 승리해야만 새로운 전망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현시기를 판단할 때, 30년대 이후 특히 2차대전 이후의 서유럽 및 미국 등의 노동운동의 타락․무력화 때문에 세계적으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90년대 이후의 변화를 보면 서유럽의 경우 93~94년을 계기로, 미국의 경우 대략 95년을 계기로 그래도 과거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희망을 향해 무언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정도로 보아야겠지요.


사회 : 최근 몇년간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동자 대응이 고양되어 왔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러한 투쟁의 정치적 경향과 전망인데, “사민주의는 현재 노동자의 발을 잡고, 동구사회주의의 몰락은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채부소장님 말씀은 수십년간 노동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사민주의적 경향에 대한 언급인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채만수 : 사민주의는 1910년대 이후 꾸준히 자기를 변화시켜 오면서 보다 더 타락해가고 보다 더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로,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점에서는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작년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른바 ‘좌파정당’으로 정권교체가 있자 마치 ‘좌파 세상’이 오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데에 대한 저의 비판도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다만 신자유주의의 공세로 대중의 본능적인 투쟁이 살아나고는 있는데, 아직 그것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중들의 본능적인 투쟁 ― 이것조차도 무수한 내부적인 갈등과 투쟁의 결과를 통해서만 가능했겠지만 ―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성장해야 합니다.


남구현 : 서구 사민주의에 대해 비판한 점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민중의 대중적 투쟁이 고양되었지만 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 제도화되면서 왜곡되어 표현된 것이 사민주의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사민당의 집권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원하는 대중들의 정서가 왜곡되어 표현된 측면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가능성을 찾고 있지는 못하지만 분명 대안을 고민하는 흐름들이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사민당과 우파정당이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죠. 물론 사민당이 대안이 될 수는 없으며 일정 시점에서는 진보에 제약이 되기도 합니다.


사회 : 전세계적으로 고양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3, 4년 전과는 달리 투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라는 의미인지, 그러한 투쟁속에서 자본관계를 지양해 나갈 수 있는 맹아적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인지......


채만수 : 가장 역사적으로 저급한 형태의 대중투쟁, 예를 들어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할 때의 투쟁 역시 농민들 내부의 생활상의 파괴, 압박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이 만들어낸 내부의 활동인자들에 의해서 투쟁이 조직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대적으로 생활상에서 우위인 서유럽, 미국의 노동자계급의 생활 역시 자본에 의해 파괴되고 있고, 그것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새로운 내부활동가들이 양성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투쟁의 모습은, 남구현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민당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있어서 그들의 힘이 아직은 전체 기류나 힘에 비해 소수이기 때문에, 힘 관계, 힘의 합성관계 때문에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많은 경우 서유럽이나 미국 등에서의 현시기의 투쟁들은, 운동내부에 소수의, 그러나 역사의식을 띈 분자는 존재하고, 그들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왜곡된 형태로라도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98년 상반기 노동운동의 대응 평가


사회 : 오늘 논의를 통해서 잡아보고자 했던 것은 경제위기라는 조건속에서 노동운동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나갈 것인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는 목표달성을 위한 주체형성의 문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지금의 주체역량의 수준을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그리고 과제는 무엇인가가 논의의 핵심입니다.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목표, 방향과 관련하여 좀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얘기해 보도록 하죠.

김대중정권 출범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공세의 내용은 공유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전제위에 실천적인 대응에 관한 논의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98년 상반기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한 노동운동의 대응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권출범 이후의 정세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기본적으로 김대중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한 축으로 하고, 경제위기 조건속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역량, 조직역량의 수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차이가 현시기의 대응 방향을 규정해왔습니다.

하나의 관점은 김대중 정권의 성격과 관련하여, 김대중정권을 개혁을 하고자 하는 정권, 지배세력 내부에 개혁-수구세력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정권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정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운동의 성과로 보고, 이 개혁이 유실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주장은 동시에 노동자계급 내부역량은 경제위기로 위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상당수 사업장에서의 임금동결, 삭감이 일어나고 있고, 정권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에 대립하여 싸워 이길 수 있는가를 내부역량과 관련하여 판단했을 때 어렵다고 봅니다. 따라서 김대중정권의 노사정협의와 같은 기구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생존권을 방어하면서 이 국면을 극복해 보자는 주장입니다.

두번째로는 김대중정권의 성격을 독점자본의 총집행자, 신자유주의적 정권, 반노동자적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김대중정권과의 전선을 분명히 쳐나가야 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대중투쟁에 대해서는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하는 생존권투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대중투쟁역량이 존재한다는 판단하에 이 싸움들을 김대중정권과의 대치전선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후자는 다시 생존권투쟁을 중심으로 위기의 문제,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문제를 자본관계의 지양이라는 측면과 결합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지금의 생존권의 문제는 총체적인 사회적 힘관계가 맞물려 있는 문제인 만큼 힘관계 속에서 유리하게 공격할 수 있는 지점, 예로 재벌, IMF문제 등에 대한 정치적 전선을 형성해 줌으로써 오히려 생존권투쟁을 전개하는데 유리한 정치적 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으로 구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들이 상반기 투쟁과정에서 제출됐었는데, 이 점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채만수 : 먼저 김대중정권의 계급투쟁, 즉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의 핵심을 이루는 수단이 노사정위원회였는데, 이것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이 적절했는가를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원칙은 참여하지 않고 투쟁해야 했습니다. 노사정위원회란 명백히 정리해고제 등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조기에 확대 도입하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노동자계급의 저항의 예각을 무디게 하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거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나쁜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민주노총 내부에도 투항적 기류와 투쟁하자는 기류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지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한 이후의 기류는 그 나름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거기에 시사점이 있다면 이것이 민주노총의 결함이라기보다 한국 노동운동 자체가 갖는 결함이라는 점이죠.

사회 :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그 자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상반기 민주노총 대응의 문제와 관련해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자체에 대한 대안적인 위기극복책, 즉 5대 요구안이 잠깐 제기되기도 했으나, 실제로 큰 틀에서는 구조조정 자체를 위기극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속에서, 정책참여를 통해 IMF체제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대응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이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싸고는 참여-불참의 문제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때문에 노사정위원회 참여, 불참의 문제 이전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김대중 정권은 위기관리정책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총체적 개혁’이라는 전망을 전제로 비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정리해고로 표현되는 노동의 유연화를 관철시켜내는 것이 있지만 여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을 포섭해 들어가겠다는 구상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 전체의 개혁을 진행시킨다는 구도입니다. 물론 이러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둘러싼 평가는 ‘정책이 일관적이지 못하다’,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등 지배세력 내부의 논란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의 대응은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분명한 상을 잡지 못한 채 이것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저하시킨다는 입장에서 투쟁을 해왔습니다. 생존권 투쟁이 투쟁의 출발은 되었지만 우리 사회 전체를 변혁시켜 나갈 수 있는 대안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고립될 수 있다는 고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노동운동은 재벌에 대한 공세를 통해서 생존권 투쟁을 정치적으로 방어한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치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현실의 지형속에서는 재벌개혁의 핵심적인 내용 ― 재벌개혁 자체가 정리해고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들이 동시에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압력이라는 딜레마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수준에서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의 내용과 노동운동의 대응이라는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채만수 : 민주노총의 사개투, 5대요구안의 내용에는 크게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두 개의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위기라는 상황에 대해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내에서 전반적인 개혁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해야한다는 입장과, 다른 하나는 설령 그렇게 될 작은 가능성이 있을지언정 그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제기한 안에서는 이 두 개의 입장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애매함이 있습니다.

최형익씨의 말처럼 노동운동이 5대요구안 등을 통해서 획득해야 할 목표가 자본으로 하여금 다른 옵션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는 데에 저는 이견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다른 옵션을 취하게 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며, 노동운동이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자세는 개개의 전술, 전략이 얼마나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의식화시키고, 조직화 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최형익 : 현재 정치세력화의 논의를 판별하는 문제의 중심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정치세력화에 대한 견해는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는 적어도 현시기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외곽부대를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노동자들이 어떠한 투쟁에 임하는가와 아울러 무엇보다 지금의 시기가 경제위기라는 특수한 지형이 고려되어야 하며, 그렇다면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 역시 일반적인 접근방식으로는 그 경로를 해명하기 어렵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남구현 선생님이나 채만수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공감하지만 그런 내용을 현실로 녹여내는 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생존권 투쟁을 권력투쟁으로, 곧 정치투쟁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생각됩니다.


채만수 : 현시기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정치적 외곽부대를 만드는 것은 무익하다는 논의는 잘못된 문제제기입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개인이 무의미하다는 말을 아무리 떠들어도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정치세력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적 외곽부대가 무의미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떠한 성격의 정치적 외곽부대를 만들 것이냐에 놓여져야 합니다. 그리고 생존권 투쟁과 정치적 외곽부대를 만드는 활동이 모순적이지 않습니다. 생존권 투쟁을 어떠한 방향, 의식에서 하는가는 정치적 외곽부대를 만드는 성격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생존권 투쟁을 방기하고는 정치적 외곽부대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최형익 :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투쟁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현자투쟁은 현시기 계급적 역관계의 지점을 사실 그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만큼은 자본에 밀려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노동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고, 이러한 공감대가 계급적 저항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수세적 국면을 정치적 공세로 반전시키는 계기로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경제위기라는 상황은 그 자체로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객관적으로 노동자의 투쟁에 불리한 정세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불리한 정세를 극복하는 것은 슬로건의 높낮음이나 투쟁의 수준이 아니라, 투쟁이 표출되는 양상을 중심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용문제라는, 자본주의사회에서조차 제어될 수 있는 싸움이 왜 그렇게 끈질기게 장기화되고 변혁적 함의를 내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구현 : 민주노총의 상반기투쟁과 관련하여서는, 협상이냐 투쟁이냐의 양자택일적인 대립구도가 1기 집행부 시기에 어느쪽도 이득을 보지 못하면서 들락날락했다면, 2기 집행부에서는 협상이냐 투쟁이냐의 문제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고려한다기보다는 전술적으로 고민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 점은 필요한 고민이라고 봅니다. 물론 상반기에 협상과 투쟁이 효과적으로 잘 배치되었다고는 보지는 않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결과적으로는 확인된 것은 대중의 투쟁력이 살아있으며, 팽팽한 대치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상층부도 여러 가지 협상전술을 구사했으나, 그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진영의 한계가 드러난 측면도 있습니다. 저쪽은 ‘노사당’ 이러면서 노동부 장관도 나오고 다양하게 대응했는데, 이쪽은 김광식 위원장 혼자 대응하였습니다.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담보되면서 정과 당에 대해서 정치적 대응을 해나가지는 못했는데, 이런 점에서는 취약했습니다. 민주노총 외부의 지원세력도 대응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결국 현장에 내려가서 중요한 사안으로 대응하기는 했지만 일사분란하게 정치적 대응을 하지는 못했던 겁니다. 이 점은 지금의 협상전술을 구사하는 데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의 대립 차체가 단사에서 위원장이 대응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면, 협상전술과 투쟁전술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지도부 차원에서 고민하고, 외곽부대나 현장 지휘관들이 입체적으로 고민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98 상반기 대중투쟁 동력에 대해


사회 : 올해 상반기의 투쟁에 대해서 본 연구소는 ‘실질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이라는 주장을 해 왔는데,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무책임한 소리를 하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좀 더 분석해야겠지만, 저는 임금과 고용의 문제가 개별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면 개별 개별의 현장에서 타결되는 문제를 개별사업장의 수준에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전선속에서 파악해야 하고, 전선의 힘만큼 개별사업장에서의 타결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대중이 갖는 위기의식은 역전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애초에 지금의 구도를, 적어도 자본의 논리에 대해서 반박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전선을 쳐가자고 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입니다. 이 때 이러한 문제를 지도부의 문제로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도부의 판단도 현장의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죠. 이 문제는 노동운동 전체의 내부조직력 문제와 함께 짚어져야 합니다. 일례로 민주노총 내부의 조직력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방침을 정하고 추진해나가는 일관성에서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서의 ‘양보교섭’이라는 점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한 평가는 현 시기 대중투쟁 역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데 이 점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죠.


이종탁 : 저는 투쟁이 계속 만들어져 왔다는 점에서 동력이 있었고, 앞으로도 이어져 갈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상반기에 경제위기시 노동운동의 과제와 요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논의할 때 크게 두 가지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고용과 임금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자본의 강제에 대해서 노동은 거부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근거하에 양보교섭과 후퇴된 안을 던져왔습니다. 실제로 쳐진 전선은 결국 고용과 임금 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임금을 양보하면서 고용을 유지하는 차원이었고 고용부분에 공세가 들어왔을 때 그것에 투쟁하는 형태였습니다. 물러나는 과정에서 (후퇴된 전선) 최저선인 고용을 갖고 전선이 펼쳐졌습니다. 이것이 계투가 빚어내는 현실적인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반기와 내년으로 갔을 때 임금과 고용, 정치의 문제를 거론하고 돌파하기 위해서는 드러난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즉, 노동이 자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고자 하는 의식의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김우중은 현대자동차 자본과는 달리 정리해고와 임금을 바꾸겠다는 안을 노동자들에게 던졌습니다. 고용과 임금의 바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딜레마입니다.


고민택 : 물론 양보교섭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강력하게 전선을 걸었기 때문에 그나마 지켜냈다고 봅니다. 이 지구상에 임금도 상승시키고 고용도 유지시킨 곳이 어디있습니까. 지금의 노자간의 대립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완전히 일방적 강제가 먹혀 들어가고 있는 상태인가, 아니면 아직 호각지세로 대립하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투쟁의 동력은 살아 있습니다. 투쟁의 내용, 문제점, 한계 등은 또 얘기되어야 하는 문제지만, 일단 전선은 호각지세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민주적 재편, 반독점 전선에 대해서 저는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현재 정치적 지원세력도, 조직적 통합력도 부족한 노동운동의 주체적 조건에서는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이종탁 : 물러났기 때문에 후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채만수 : 이종탁씨의 말은 계급적 자기 의식으로의 표현이 아니라, 소부르주아들처럼 그냥 생존권 투쟁에만 머물러 있다는 문제인식 아닙니까?


남구현 : 노동자라면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요구를 구호상으로는 다 받았을 겁니다. 의식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채만수 :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상층 지도부는 ‘지도자’로서의 자의식 때문에 거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남구현 : 문제는 역량의 부족이 밀리게 만든 것이라는 점입니다. 임금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요구와 관련해서는) 힘관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면 임금문제에서 밀렸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깨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반기에서도 대중동력은 끊임없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고, 5월 총파업을 계기로 그 이전까지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려는 언론의 태도가 많이 수그러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전사회적인 힘을 볼 때 완전히 노동자가 궤멸하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평가하고, 개선해야할 내용은 무엇인가, 힘이 왜 이렇게밖에 발현되지 않았는가를 분석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지도부를 갈아치워 봐야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이종탁 : 대중동력이 있었고, 그것이 역관계를 형성해 왔었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문제는 계급역관계를 반영한 전선의 질과 수준, 내용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직적으로 밀려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한 것이죠.


남구현 : 그러한 의식의 문제가 왜 나타나는 지가 해명되고, 현실운동 속에서 극복되어져야지, 의식을 버려라 해서 버려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사회 : 올 상반기에 고용을 중심으로 완강하게 저항하면서도 임금문제를 양보하면 고용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점 더 임금과 바터로 고용문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세금이 많아지는 것이 불가피할 텐데, 그 때는 양보된 임금으로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생계비에 대한 압박이 대중적으로 불거져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임금과 고용문제를 다시 어떻게 결합시켜야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채만수 : 지금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이런 겁니다. 올해 노동자들의 대응양상에서 특징적인 것이 연대투쟁이 미약한 점이지 않나 생각해요. 그 이유는 노동자들이 싸움은 했지만 노동자계급의 대의에 입각해서 투쟁하지는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고민택 : 저는 최소한 호각세이거나, 노동측이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올해의 정세 속에서 노동자 대중이 이렇게 강고하게 싸우고 있는 점과 전선 자체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잘 싸웠다고 봅니다. 채만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회 : 아시는 바와 같이 현대자동차 투쟁은 최소화 수준에서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이 결과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견해가 굉장히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어서 평가가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성과적 측면으로 바라보는 견해, 즉 공권력이 투입되지 않고 획득했다고 평가하는 견해가 있는 반면, 정리해고를 수용했다는 그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조합원 총회 때 부결운동을 벌이겠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정부 내부와 자본의 경우 정치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이후 정리해고의 여건을 어렵게 만들었고, 실질적으로 얻은 것이 없다는 등등 각양각색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포함해서 총체적인 평가를 내려주시죠.


채만수 : 조심스럽지만 사적인 의견으로는, 성과로서 승리한 측면과 정리해고를 수용한 부정적 측면이 함께 있다고 봅니다. 어느 한 측면을 극대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부결운동은 상당히 위험성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추상적 논리로서는 가능하지만 그 내부의 건강한 부류도 어느 정도는 대중적 정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모험주의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투쟁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은 인정하되, 한계는 분명히 밝히는 방향이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남구현 : 제 생각에는 전선이 하나냐 두개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제국주의 관계의 지양과 맞물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먼 얘기가 아닙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물론 내부에는 임금문제, 고용문제가 엉켜있었지만 사실은 자본/제국주의 관계의 지양이라는 고민속에서 배치되었어야 단사의 투쟁을 넘어 성공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주 항만노동자, 네델란드, 국제금속 등의 지원제의가 왔을 때 바로 연대하여 사측에 압박을 가했어야 했습니다.


최형익 : 한겨레에서는 ‘정리해고 철폐는 물건너 갔다’고 표현했고, 중앙일보는 ‘정리해고 법률 사문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 차원에서 정리해고 철폐를 견실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택 : 이미 민주노총에서는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철폐투쟁을 벌이겠다고 입장을 발표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투쟁은, 제가 보기에 그 이전에 있었던 오류속에서도 이렇게 싸운 것을 자랑스럽게 봐야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6월 10일, 7월 23일 연속적으로 양보교섭을 해온 결과, 현대자동차는 밀릴대로 밀려서 막판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너져내리려고 하는 것을 대중들이 힘으로 밀어부쳐서 방어한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이제 보다 중요한 것은 겹겹이 남아 있는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입니다. 그리고 현장장악력을 중심으로 계속 투쟁해 나가야 합니다.


채만수 :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가 이번 투쟁의 결과 내부 분란으로 가면 무급휴직자들도 결국 정리해고로 끝날 것입니다. 비판과 상호확인을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결을 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 : 제가 어떤 잡지에서 김광식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노동조합의 대응에서 가장 결정적 오류는 애초의 양보안을 미리 던지지 못한 것’이었다고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대우자동차는 그 시점을 잘 맞춰서 큰 출혈이 없이 해결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이 현자 내부를 몹시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채만수 : 하반기에도 국영기업 민영화, 은행 구조조정을 지금처럼 강행한다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럴 때 현대가 싸운 만큼 어쨌든 성과는 있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과를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이종탁 : 지금 현대자동차 투쟁을 평가하고 위치지우는 토론도 중요하지만 현재 만도의 싸움을 정치적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4,000명 수준에서 정리해고가 제시되고 있는데, 국내적 국제적 연대와 같은 활동도 해야 되고 현자에서 발견된 한계가 만도에서는 극복될 수 있는 단초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에서의 팽팽했던 힘관계의 반전을 위해 만도가 타겟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도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엄호․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만수 : 맞습니다. 그렇 가능성이 큽니다. 시급하게 공동대응을 조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엄호투쟁이 부족했다는 점을 반성하고 만도의 경우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종회 : 제 판단은, 현대자동차 투쟁은 김대중정권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준 것으로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자의 현장성이 격파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리해고가 실질적인 시민권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자투쟁에 대해 만도는 연대투쟁을 조직했습니다, 만도의 지금 상황에서 현자가 그런 지원을 할 수 있을까가 의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장이 개별화될 여지가 있습니다.


고민택 : 실질적인 연대투쟁, 가투, 국제연대 등등이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 그 투쟁은 남아 있습니다. 그 긴장관계는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죠.



하반기 경기부양책과 노동자계급의 대응 방향


사회 : 하반기 들어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 기조를 긴축정책에서 경기부양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점을 노동자계급에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 보죠.


채만수 : 김대중정권이 취하고 있는 구조조정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이 반노동자적이라는 점은 명확합니다. 현대자동자 등의 투쟁은 그러한 독점자본 진영의 기본방향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입니다. 그런데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관련하여 짚어보아야 할 것은 그들의 기본노선, 방법이 무엇이었고, 현실에서 어떻게 굴절되었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은 노동력 배제를 통한 경쟁력 강화입니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 가운데 다수는 케인즈주의적인 정책에 대한 반발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주요한 것이 긴축경향입니다. 이 부분이 최근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6월 말~7월 초로 3/4분기로 들어오면서, IMF와의 협상에서 주요하게 본원통화의 확대문제가 논의되는 등, 기존의 통화주의자들의 기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구조조정이라는 노동배제전략을 밀고 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기부양정책을 펼 것입니다.

그런데 기존에 노동자측의 요구는 긴축정책을 폐기하고 부양정책을 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부양정책이라는 것이 계속적으로 신용기구를 통한 ‘건실한 기업’ 지원으로 가는 한에서는 독점자본은 계속 거대화될 것이고,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실업, 미취업 노동자의 간극은 더욱 확대되고 정치적으로도 분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양정책을 거부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부양대책에 대한 노동측의 개입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내용은 건전한 기업 살리기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활향상에 근거한 요구여야 합니다.


이종탁 : IMF와의 합의 내용에서 통화공급량은 그렇게 확대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런 정책의 전환은 단순히 한국 자본내에서의 이데올로기나 정책만이 아니라 IMF를 둘러싼 세계적 수준에서의 정책을 둘러싼 대립의 결과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경기부양, 통화공급확대라는 부분은 여전히 제한적으로 진행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세금 부분을 보면 한편으로는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세금감면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조세영역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경기부양의 내용이 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과제로 던져왔지만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넘어가 있는 조세저항의 문제를 이제 노동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끌어와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채만수 : 사실 파악을 해봅시다.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통화주의적인 신자유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있습니다. KDI에서의 부양요구와, 한국은행에서의 통화주의적 긴축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본적으로는 부양을 해야 한다는 점에 합의해 가고 있는데, 그 부양 방식을 둘러싸고 또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은행의 경우 본원통화를 발행하면 인플레가 옴으로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기존의 국내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매각하라는 입장이고, KDI는 그렇게 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한국은행에서 인수하라는 입장입니다. 전자의 경우 그 효과는 고금리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국내 화폐자본가에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나 가능성은 노동운동 내에는 없습니다. 노동운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국가재정의 확대지출의 내용과 방향에 다소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 예를 들어 정치적인 압력을 통해 실업자보조금 등을 증액하는 것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이 부분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노동자 대중들의 인식을 높이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남아 있는 길입니다.


최형익 : 다른 나라에서도 경제위기시의 정책은 대부분 통화주의와 관련된 것들이며, 특히 워싱턴 콘센서스에 입각한 IMF경제 팩키지는 한마디로 인플레 억제를 위한 고금리-긴축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러한 통화주의적 정책이 자못 화려한 경제이론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그러한 정책이 강도 높게 실시되는, 특히 경제위기에 처한 나라들에 있어서는 그러한 정책팩키지는 기본적으로 유산자계급과 무산자계급간의 이해관계와 경제적 명암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 담론이 그 신비의 베일을 걷어내고 적나라한 계급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죠. 현 정권이나 보수언론이 정치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정책 때문에 중산층이 없어진다는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고금리-긴축정책하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생존 그 자체마저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계층은, 역시 가처분소득으로서의 실물화폐를 소지하지 못한 노동자 등 서민대중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고금리-긴축정책 등 IMF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은 명백히 정치적 함의를 갖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각 방송사에서 앞다투어 마련했던 소위 노사정대토론에서 지난 5월까지만 해도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입장은 마치 돈키호테와 같은 발상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었지만, 그 당시 민주노총의 토론자로 나온 고영주 사무총장은 끊임없이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였고, 이는 자본측에서 나온 토론자들과 분명한 대립선을 쳤습니다. 저는 이러한 대립이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런 정책적인 기조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가능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가 그 당시에 어떤 대립을 낳는가 하는 정치적 해석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정치적인 갈등과 대립지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등 노동자운동세력은 아직까지는 이러한 대립선을 더욱 예각화하고 그러한 논쟁을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로 잘 연결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채만수 : 70년대 말까지 노동운동 진영에서 국가에 대한 최대의 비판적 논점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 뒤 신자유주의자들의 긴축정책이 실시되면서부터는 이에 대한 노동운동측의 비판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에 미국, 유럽 쪽에서부터 신자유주의적인 긴축에 대한 비판의 흐름이 생기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긴축이 결국은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저소득층의 희생 위에서 전개되고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이 별로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12월 말 토론회에서의 김상조 교수의 발제문을 보면 긴축정책을 통한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지만 이를 승인하는 기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민주노총 토론회에서는 입장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운동측의 비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자본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상황 자체에 의해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민택 : 경기부양책 문제를 갖고 상당히 논란이 있었는데, 경기부양책을 통한 고용정책, 임금삭감, 등 상반기의 고금리 긴축정책은 IMF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전선을 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분파도 완전히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미약하면 그들 내부의 분파싸움이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이쪽 내부가 강력하면 그것이 중요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상식입니다. 김대중은 경기부양책은 경제를 왜곡시킬 뿐이라고 하면서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은 확실한 자기 철학이 있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구조조정을 확실히 추진하는 것만이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가기 위해서 당장 무너지는 것은 막으면서 가야하는 것이고, 그것을 막는 과정에서 개별 자본의 이해가 다 틀린 것이죠. 그랬을 때 경기부양책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하나의 선동으로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경기부양을 둘러싸고 논의를 할 때 누구를 위한 경기부양책이냐를 분명히 하면 됩니다. 경기부양책 요구를 잘못하면 자본만을 살리는 길로 갈 테니까 노동자의 생활상의 이해를 요구하는 측면에서 경기부양책을 하라고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을 최고의 정점에 놓고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남구현 : 제가 보기에는 안정화 기조의 유지이냐, 부양시키면서 확대하는 정책이냐는 옵션의 차이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입장에 따라 벌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서 긴축정책으로 경제 자체가 죽어갈 것 같으니까 부양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합니다. 김대중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지금은 노동측의 반발이 거세니까 약간의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어떤 전선을 칠 것인가?


사회 :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에 대해 노동운동진영이 어떠한 전선을 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습니다. 생존권투쟁 그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견해에서부터, 생존권투쟁을 사회개혁투쟁과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는 견해, 그리고 생존권투쟁과 반독점투쟁의 중층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가 제출되고 있습니다. 먼저 김대중 정권의 계급적 성격을 살펴보고, 노동자계급의 생존권투쟁과 정치․사회적투쟁을 어떻게 결합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남구현 : 김대중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국내독점부르주아지와 국제독점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대리인이라는 규정에서 더 나아가 계급적인 관점에서 좀 더 섬세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도적으로는 독점부르주아지들의 헤게모니가 관철되지만 김대중정부는 김영삼정부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즉 개혁적 쁘띠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시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계급적으로는 쁘띠 중의 상당 부분이 포섭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것이 노자간의 대립을 푸는 방식에 있어서도, 말하자면 김대중정부의 계급적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해도 전술을 구사하는데 있어서는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김대중정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 독점부르주아지들이지만 그 내부에 쁘띠들도 상당히 조직적으로 운신하고 있고, 그런 부분들이 노자간의 대립들에 있어서도 일정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일례로 노사정위원회는 김영삼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보다 위상이 높아져 전략적 위상을 갖고 거론되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자동차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도 정권이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고 사활을 걸고 협상으로 이끌어내려고 했었습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자본측의 이해가 대변되고 있지만 일관되게 대변되고 있지는 않으며, 김대중정부의 정치적인 대응에 있어서 일정 정도 균열이 생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개혁적 쁘띠들은 속성상 노자간의 대립이 첨예하게 되면 동요하면서 양쪽으로 찢어질 겁니다.

하반기 투쟁과 관련해서는, 상반기와 같이 무조건 총파업, 총력대응을 선언하고 실제로는 무력하게 협상에 끌려 다니는 식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원세력과 어떻게 연대할 것이고, 총파업 전술을 포함하여 어떤 전술이 구사되어야 하는지 다양하게 고민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채만수 : 남구현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저와 조금은 뉴앙스를 달리하는 부분이, 김대중정권이 소부르주아지의 참여 때문에 약간의 성격변화가 있다고 판단하신 것은 좀 과한 평가가 아닌가 합니다. 김대중정권과 김영삼정권이 다르긴 하지만 그것은 소부르주아지가 포섭되면서 계급적 스팩트럼이 변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김대중정권이 좀 ‘유능’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번의 현대자동차 문제를 처리한 것도 바로 그 ‘유능함’의 표현인데, 다시 말해 김대중정권이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자본이나 언론은 상당히 비판적이지만 이 부분은 총자본의 이성과 개별자본의 이성과의 대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능력 있는 총자본으로서의 김대중정권이 보았을 때 공권력이 투입되면 파멸이 멀지 않다고 보는 것이고, 개별자본들은 근시안적인 욕심에 사로잡혀서 왜 현대자동차를 치지 않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상황이 다른 것까지를 반영해서 앞의 정권과의 차이라고 봅니다.


고민택 : 저는 능력의 문제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계급투쟁 지형의 문제라고 봅니다. 노태우라도 쉽게 못칩니다.


최형익 : 제 생각에는 남구현 선생님 말씀 속에서 거꾸로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 어떠한 노동자운동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이 그대로 관철되는 경우는 없으며, 그것은 상대방과의 힘관계 속에서 상당정도 굴절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이 정치적으로 혹은 독자적으로 대응해 나갈 때조차,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보면 마치 김대중정권의 포섭기제에 걸려든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저는 바로 이처럼 매우 모순된 현실지형에서부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사고해야하며, 그러한 정치세력화의 요체 또는 판단기준이란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런 기준하에서만 협상이냐, 투쟁이냐의 판단이 정확히 고려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다시 민주노총의 5대요구안과 관련지어 생각해본다면, 저는 민주노총의 5대요구안 그 자체는 현재와 같이 자본의 경제적 위기가 아닌 일상적 경제활동의 시기라면 모두 김대중정권의 정책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있는 정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5대요구안이란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혁명적’이거나 ‘변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죠. 그런데 이러한 비변혁적-개량적 요구들을, 자본과의 대치선을 치며 국민적 계급으로 상승하려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이라는 문제와 긴밀하게 관련지어서 바라봤을 때 사태는 자못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살려야되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노동과 자본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위기국면에서도 자본의 요구에 따라 긴축과 고금리정책의 기조가 경기부양책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치적 입장으로서 국가의 정책적 기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어짜피 정치투쟁이란 동일한 사안에 대한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의 문제, 정치적 타이밍과 그것을 누구의 정치적 성과물로 남길 것인가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저는 민주노총의 5대요구안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강화하는 작업을, 19세기 법정노동시간의 입법화의 주도권을 누가 잡았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정치적 힘을 축적하는데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는 사실과 비교하고 싶습니다. 당시에도 자본 역시 노동시간의 단축을 자본간의 경쟁에서 초과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기제로 활용하는데 이해관계를 갖지 않았습니까?

결국 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 시기에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독자성의 강화를 제기해 들어가야만 김대중정권의 공세적인 정치적 헤게모니 포섭전략에도, 전략성격을 준별하는 지표를 갖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 강화를 매 국면마다 중요한 판별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당위의 무게에 눌려 막연히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대중적 힘을 갖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전개하는 하나의 현실적 경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채만수 : 제 말의 요점은 현대자동차를 이렇게 처리한 것은 김대중정권이 부분적으로 갖고 있는 소부르주아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총자본의 입장에서 총자본의 이성이 그렇게 하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계급지형이 그렇게 하도록 했다는 말과 같은 얘기입니다.


최형익 : 저는 이 사건이 소부르주아지에게만이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노동계급에게도 자유민주주의적인 포섭전략이 작동할 수 있게끔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계급지형이 그렇게 만들었는가와는 상관없이 이러한 사건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고민택 : 김대중정권과 김영삼정권의 차이에 대해 논의가 되고 있는데, 사실상 한국경제가 계속해서 경제성장을 하는 시기에 등장했다면 제가 봤을 때 계투지형이 우리에게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중이 들어선 역사적 시점 자체가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등장했기 때문에 그 어떤 부분도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김영삼 정권기간 전체보다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6개월이 훨씬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서 김대중 정권 나름대로 정치적 기제를 최대한 동원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계급투쟁을 막을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 내부에서 경제위기가 폭발했을 때 긴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김대중에 대해 주춤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외환위기는 넘겼습니다. 김대중정권의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우선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 점에서 전선을 치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의 계급적 성격 문제는 바뀔 여지가 분명히 없습니다. 이 점을 노동자 대중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지형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강공 일변도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작동할 수 있는 동원 기제를 다 사용하는 것이죠. 노사정위원회라든가 등등. 이러한 부분은 계속 해 들어갈 것인데 저는 이 싸움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더 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 때는 대중적으로 보다 분명해 질 것이고, 생활상의 악화가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에 양단간에 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노동자 내부에 숨어있는 본질적인 계급투쟁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내년 상반기 6월 이전에 이러한 문제는 분명해 지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싸고도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전술적으로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한 번 더 탈퇴가 불가피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반복, 재반복이 아니라 분명히 못박고 가자고 주장하는 편입니다.

이종탁 : 말씀하시는 내용이 노동자들의 투쟁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시는 건데, 물론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동의를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저항을 하면서도 무너져가는 과정도 있는 것이 아닌가요. 예를 들어 임금인상 과정에서 노동조합 스스로가 인상안을 내논 조합이 거의 없는 상태이죠. 그러면서도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저항 다음의 후퇴라는 현상을 주체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가 고민입니다.


고민택 : 저는 임금삭감, 임금동결이 되었다고 그것이 노동운동이 약화되었다거나 후퇴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임금인상을 하던 시기하고 지금은 시기가 다릅니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것도 지금의 전선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요구입니다.


이종탁 : 그렇다면 전선의 내용과 수준이란 뭐냐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종회 : 만약 노동운동이 약화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다음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고민택 : 그것은 우리 노동운동의 여러 가지 역량을 감안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채만수 : 종탁씨의 말은 임금삭감이 현실적인 역관계를 타진한 결과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지도부 또는 대중들에게 아직도 애사주의 같은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후퇴를 의미하지 않겠어요?


이종회 : 작년 말, 올해 초의 투쟁을 놓고 평가를 해보자면 저는 그 때 반독점과 생존권이 같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 이후에 두 가지 부분에서 더욱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정권의 성격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았고, 반독점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발현되어야 되고, 제기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김대중정권에 개혁분파가 들어간 것의 의미를 달리 봅니다. 칠레의 경우 피노체트가 아옌데 정권을 잡으면서 신자유주의가 파시즘적 형태로 관철되었다면, 한국에서는 그 역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IMF라는 강력한 외적 조건하에서 지금 신자유주의가 관철되는 양식은, 재벌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제거해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시민운동단체들이 활용되고 배치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경실련이고, 참여연대입니다. 즉 김대중 정권이 이들을 끌어들이면서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위기시에 케인즈주의만큼 좋은 대안이 어디 있냐는 말이 있듯이, 현재의 위기에 대해 의제적인 해결양식이 표출되면서 정권에 포섭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적인 관철양식은 국민동원전략으로 현상되고 있습니다. 이번의 현대자동차의 문제도 물론 역관계의 표현이겠지만, 또 하나는 1기 노사정위원회 때 위원장 직무대행의 잠정합의안이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됨으로써 합의되지 않은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이번의 경우는 김대중 정권이 합의를 얻어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해고에 대해서 도장을 받은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런 수준에서 김대중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관철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나가고 있다 생각합니다.


남구현 :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개혁적 쁘띠들이 들어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들은 바로 그것을 개혁이라고 보면서 결합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종회 : 개혁적 쁘띠가 들어가서 김대중 정권을 더욱 더 개혁시킬 수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남구현 : 개혁의 가능성이 넓어졌다 아니다, 더욱 더 개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쁘띠가 생각하는 개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섭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김대중도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을 한 것이고, 김대중식의 개혁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의 자본가들은 저항을 하지 않습니까?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그것이 노동자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각 계급은 자기 이해에 적합한 형태로 나름대로 개혁을 시도한다는 것이지요.


최형익 : 김대중정권이 사회적으로는 부르주아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쁘띠부르주아를 자신의 중심적인 친위세력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정치과정은 헤게모니 전략의 주요한 진지구축이기도 한 셈이죠.


채만수 : 문제제기가 무엇이었냐 하면, 김대중정권이 독점자본의 이익을 옹호하지만 그래도 부분적으로 소부르주아의 이익도 옹호하는 것으로 성격이 변화했다고 들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종탁 : 저는 자본의 입장에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총자본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고자 했고, 이런 맥락에 근거하여 구조조정을 90년대 이후 자신들의 화두로 던져왔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사회, 정치재편을 추진해 왔죠. 그리고 지금은 두가지 상황변화와 맞물리면서 상당히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 즉 공황이라는 경제적 상황변화와 김대중정권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상황변화를 의미합니다. 김대중정권이 들어서면서 현장의 운동을 동원해내는 역할을 김대중정권 스스로 해내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좌파정당, 사민당이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노동운동의 발목을 붙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제위기, 공황이라는 상황으로부터 애사주의와 애국주의식의 재편방향만이 주어져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의 노동자들에게는 이중적으로 작용합니다.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저항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동화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노동운동이 이 두 가지 긴장관계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존권투쟁이 노사관계의 핵심적 결절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정리해고를 철폐하고 고용과 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요구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구조조정이라는 문제를 노동계급이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노동자계급이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때 의식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반기, 특히 제2건국운동 등을 통해 대대적인 대중동원전략의 구사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의식의 문제입니다. 생존권투쟁은 항상적인 노동계급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존권 문제가 이러한 점에서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이 출발점을 어떤 정치적 입장에서 조직하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공황하에서 자본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의식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행동의 조직이 시급합니다.


이종회 : 지금 현재 구조조정=정리해고라고 생각하면서도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지만 정리해고는 안된다는 수준에 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반독점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들이 제기되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민주적 구조조정이든, 사회적 구조조정이든, 구조 민주화든 등등의 안이 제시되고 그런 수준에서 대중적인 합의가 있으면서, 그런 전망하에서 후퇴와 전진을 해왔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너무 역관계에 의해서 ‘한 번 박자’ 이러다가 힘이 안되면 빠지고, 또 박자 하다 빠지고 이런 과정이 상반기 내내 드러났던 양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사정위원회의 경우도 전술적으로 활용한다고 했으면 그 수준에서 무엇을 배치할 것인가 등을 고민해서 대중적으로 선전하고 각인하고 실제로 전술적 공간으로 활용을 했어야 했습니다.


최형익 : 반독점 전선을 구체화시킨 내용이 민주적 구조조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구체화라고 볼 수 있습니까? 물론 일반론적인 언급으로는 충분히 올바른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언급은 반독점 전선이 논의되는 현재의 지형에서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띠는가를 놓고 판단해야 합니다. 소위 민주대안론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한다지만, 위에서 말씀하신 반독점전선의 구체적 내용이라고 한 민주적 구조조정이 민주대안론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세부적으로는 일치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의 총합에 대한 명칭은 다르기 때문에, 민주대안론과 민주적 구조조정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억설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러한 문제점 이외에, 민주대안론이 옳으냐 아니면 민주적 구조조정론이 옳으냐의 문제를 떠나 지금과 같은 비상한 시기에 생존권투쟁과 이분화시키는 인식고리가 문제라고 봅니다. 제 말의 핵심은 현재의 국면에서는 생존권 투쟁이나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투쟁이 바로 반독점전선이라는 것입니다.


이종회 : 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전반적인 산업의 재편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재편해 낼 것인가가 문제이죠. 예를 들어 민교협의 안대로 금융부분을 중심으로 산업재편을 하는 구조조정이라고 본다면 금융부분을 어떻게 틀어쥘 것인가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즉 자본에 의해 재편되는 구조조정의 상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여 민주적으로 개혁되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형익 : 설사 그러한 민주개혁의 상이 각인은 될지언정 실제적인 대중적․정치적 힘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채만수 : 상반기 노동운동의 대응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말할 때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얘기가 불가능하고 보고 노동운동 내에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반기에 노사정위원회, 기타 여러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기본적으로 투쟁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소수의 입장과,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다수의 노동세력 간에 상당한 갈등관계가 있는데 기본적인 의사결정은 친자본적인 부류가 주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모순 자체가 그들의 의사가 관철되지 못하도록 강제해 왔다고 봅니다. 즉 객관적 상황 자체가 투쟁을 밀어주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반성하고 교훈으로 얻을 것인가가 문제인데, 제가 볼 때 가장 부족한 것은 정치문제라고 봅니다.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로서의 ‘정치세력화’


사회 :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노동자계급은 전진과 후퇴 속에서도 계속 자신의 생존권을 수호해 나가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투쟁을 어떠한 정치적․조직적 전망과 결합시켜 나갈 것인가인데, 이 점과 관련하여 최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 싼 논의가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경우는 지난 5월의 대의원대회 결정을 바탕으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진보정당 결성을 추진해 나가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승21 등의 몇 몇 정치조직들도 정당 건설을 구체적인 일정에 올리고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전개되는 ‘정치세력화’ 논의와 구체적인 시도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채만수 : 금년에 이루어진 것은 불가피하게 한국의 노동자계급의 현재의 실력을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부분을 이제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인데, 노동운동이 지금처럼 노동조합운동만을 과대하게 평가하면서 노동조합 중심으로 가면 힘들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 러시아에서의 트로드니키즘적인 편향과 비슷해질 것입니다. 저는 한국 노동운동이 50년대을 거쳐오면서 망가지고 궤멸되어 있는 정치조직을 재건하지 않고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귀중한 문제의식입니다. 다만 정치세력화가 추상적으로 제시되고, 현실에서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민중주의적, 사민주의적 실천이 주류를 형성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자본이 설정하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합법주의를 뛰어넘는 자세를 갖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서 정치세력화와 관련하여 무원칙한 대동단결을 외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현재는 단결이 강조되어야 할 시점이 아니라 각각의 정파가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의 실천을 인정하고, 실천과 투쟁 그리고 노선을 통해서 대중을 획득하여 지배적인 세력으로 커나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렇다고 분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원칙한 ‘대동단결’이란 구호가 우리 내부에 극도로 팽배해 있는데 이는 오히려 단결로 가는 길이 아니고, 실제로 깊은 분열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분파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종탁 : 민주노총과 노동조합을 넘어서 조직되어야 하기 때문에 입장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현재의 한국 노동운동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대중정당 논의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중정당 논의에 대해서도 품고 가야한다고 봅니다.


채만수 : 저는 대중정당으로 가야된다는 논의를 부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그 주장의 이면에는 전위정당이어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특히 최모 정치학 교수 사단의 핵심적 논지인데, 정당의 개념을 왜곡한 것입니다. 그들이 규정하는 ‘전위정당’이란 소수 엘리트들의 폐쇄적이고 음모적인 집단을 의미합니다. ‘전위정당’이 그렇게 정의되면 대안은 당연히 이른바 ‘대중정당’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위정당’이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주장의 실천적 함의는 우선 계급정당을 계급정당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있습니다. 모든 정당은 계급정당이고, 따라서 어떤 계급이나 계급분파의 전위정당입니다.

예를 들면, 국민회의니 한나라당이니 자민련이니 하는 당들은 모두 독점자본가 계급의 전위정당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저들이 저렇게 말하는 것은 결국 그들 정당의 계급성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노리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부정하고, 몰계급적 정당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몰계급적 정당이란 사실은 쁘띠부르주아적인 무원칙한 정당입니다. 이것이 현재 전위정당 논의의 맥락입니다. 본래적인 전위정당은 전위정당이자 그 자체가 대중정당입니다. 그런 논의의 뿌리가 있고 실천적 함의가 있기 때문에 이른바 대중정당론은 당연히 비판되어야 합니다.


최형익 : 저는 정당원이 조합원보다 수준이 높을 수 있는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정치조직이라는 당위성 이외에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사노맹의 경험을 확인하면 될 줄 압니다.


남구현 : 현재의 대중정당 논의들이 계급성을 탈각시킨 몰계급적 정당을 상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전위정당론도, 노동자계급이 따르지도 않는데 스스로를 전위라고 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대중정당이냐, 전위정당이냐는 논의 자체가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해야하는 정당은 전위이자 대중정당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합법-불법의 문제도 합법주의자들이 전위정당은 불법, 대중정당은 합법이라는 식으로 몰고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정치적 공간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불법으로 찍힐 수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얼마나 대변하고 있는 것인가입니다.


사회 : 저는 정치세력화를 둘러 싼 논의지형이 노동자계급 고유의 정치투쟁의 방향과 정치활동 양식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들 빨리 정치세력화하고 활동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계급대중으로부터 분리되어 가면서 역으로 조합주의적인 경향이 강화되는 모습도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전면화되는 시점에서는 노동자계급 고유의 정치투쟁의 방향과 정치활동 양식을 구체화해 나가야 합니다.

첫째는 지금의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대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끊임없이 엄호해야 합니다. 그 내용이 ‘생존권 투쟁을 해야한다. 파업투쟁을 해야한다’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회구조 속에서 노동자계급 자신의 싸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해명해 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정치투쟁이라고 할 때는 계급투쟁인 한에서 정치투쟁의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모든 생존권투쟁은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맹아이긴 하지만 모두 다 계급투쟁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계급적 정치운동이라는 전망을 갖는다면, 가장 먼저 쫓겨나는 하청노동자들과 같은 문제에서 보이듯이, 또 분명히 김대중 정권의 전략은 조직 노동자들의 일부를 포섭하고 노동자 내부를 분리시킬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듯이, 조직-미조직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세번째로 정치투쟁과 목표와 관련해서 정치투쟁을 해 나간다는 것은 국가권력과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국가관력의 문제로 어떻게 전선을 집중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네번째로, 정치의식, 계급의식이라는 것은 내적으로는 계급적 단결을 의미하지만 외적으로는 타계급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민중 전체에 대한 입장과 태도조차도 아직 정리가 안된 상황입니다

이러한 활동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는 다양합니다. 현재는 조직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경로를 어떻게 만들것인가를 둘러싼 문제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대중적인 민주노총 내부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대중조직 밖에서 ― 물론 대중조직과 긴밀한 연관하에서 ― 정치세력화를 추진할 것인지의 경로 문제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채만수 : 생존권 투쟁이 다 계급투쟁이 아니라는 표현은 잘못입니다. 그것도 계급투쟁입니다. 다만 즉자적인 계급투쟁일 뿐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옳습니다.


남구현 : 개념규정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옳은 지적입니다. 계급적 단결도 모든 사람이 말합니다. 계급투쟁을 말하는 것보다 모순의 지양속에서 계급투쟁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서 더 나아가 이행전략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존 사회주의의 경험속에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경험은 있지만 이행에 실패한 역사적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여러 논의와 연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유화 문제, 조직 민주주의 문제 등등도 모두 연관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행의 문제가 권력을 잡은 후에 고민해야할 내용은 아닌 것이죠.


최형익 : 수준이 낮으냐 높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활동의 문제는 독자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가 내걸 수 있는 정치적 목표를 명료히 제시하고 활동하는 단위가 있다면 그들은 이미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회 : 오랜 시간 동안 논의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논의가 애초에 의도한 만큼 충분히 이뤄지지는 못했고, 또 논의를 통해 여러 견해를 하나로 집약하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현 정세를 이해하고 이후 투쟁의 방향을 잡아나가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 논의된 내용은 이후 9월 18일(금)과 19일(토)에 개최될 연구소 창립3주년 기념심포지움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오늘의 자리와 심포지움을 계기로 이러한 주제에 대한 논의가 노동운동내에 자주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한/노/정/연

      

1998-09-05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