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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의 구조조정 전망과 노동(조합)운동의 대응방향

현장에서 미래를  제41호
채만수



조선산업의 구조조정 전망과

노동(조합)운동의 대응방향*1)



채 만 수

부소장






한국의 조선산업, 보다 절실하게 말해서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후의 고용 동향과 노동조건은 기본적으로는 조선산업에서의 경기 동향 및 기술 변화라고 하는 객관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면서 그 구체적인 형태는 그들 객관적 조건에 대한 조선자본(회사) 및 국가의 대응, 즉 정책과 그에 대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이에, 이후 조선업 노동자들의 고용 동향과 노동조건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이들 물질적 및 정책적 조건들을 간단히 점검하고, 노동(조합)운동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이 발제의 의도이다.

그런데, 비록 발제자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산업순환의 특징․동향과 그에 대해서 노동(조합)운동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추적해 왔지만, ‘조선산업’이라는 특정한 부문의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추적하게 된 것은 이 발제를 요구받고 나서의 극히 짧은 기간이다. 자연히 준비과정 속에서 검토할 수 있었던 자료도 극히 소수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이 발제는 조선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구체적인 추적보다는 조선산업에서의 주요 동향을 어떻게 일반 자본주의 경제이론에 의해서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말하자면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시각의 문제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발제가 이렇게 일반적 원칙적 시각의 문제에 중점을 두게 된 데에는, 단순히 준비 시간상의 제약이나 자료의 제약만이 아니라, 현재 노동(조합)운동에서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 상황에 비추어 그러한 시각이 특히 새롭게 강조되고 확인되어야 한다는 발제자의 판단이 오히려 더 커다란 역할을 했지만, 아무튼 발제자의 자질․능력의 부족과 더불어 그러한 제약은 분명 이 발제 내용상의 약점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1. 조선산업의 경기 동향 (현재까지)


□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모든 산업이 다 그렇지만, 조선산업 역시 경기 변동에 극히 민감하고 따라서 투기적인 요소․측면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향연과 굶주림’이 교차하는 산업(industry of ‘feast and famine’)으로까지 불리는데, 그 이유는 대략 조선산업의 다음과 같은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 공급 능력이 단기간에 증대되기 어렵고, 또한 매시기에 새로 건조되는 선박이 세계 상업선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적기 때문에 작은 수요 변화에도 커다란 가격 변동이 일어난다고 하는 사정.

∙ 원료의 가격 변화가 제조업 상품의 가격 변화보다 심한데, 원료의 수송이 해상운송의 주요 부분을 구성하고 있어서 이 때문에 운임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시 선박에 대한 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반영된다고 하는 사정 등등.1)

□ 제2차 대전 이후의 조선산업 경기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개괄하면, 1975년까지 대략 25 내지 30년 동안은, 1958년에서 1964년(일본의 경우, 1962년)까지의 작은 불황을 수반한 확대․호경기, 75년 이후 80년대 말엽까지의 위기 및 침체기, 그리고 1988년을 바닥으로 89년부터 회복되기 시작,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호황․확대기로서 대별할 수 있다.

∙ 제2차 대전 이후에 조선산업을 거대하게 성장시킨 기본 동력은 (경제성장에 의해 뒷받침된) 해상무역의 증대였는데, 서유럽, 미국, 일본 등의 원료 수입 증대, 특히 석유 수입의 증대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50~1973년에 해상무역의 증대율은 연평균 8.2%였고, 톤마일(tonmiles)로 측정할 경우 그 증대율은 더욱 높아서 1962~1973년에 그것은 연평균 12.2%였다. 1970년대 중반의 경우 세계무역의 75%가 해상무역이었고, 해상운송의 경우 상품의 수송거리가 길기 때문에 톤마일로 측정할 경우 그 점유율은 95%에 달했다.2)

∙ 70년대 후반 이후의 조선산업의 위기와 침체는 70년대 이후에 재격화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전반적 위기를 반영한 것인데, 이것은 특히 73년 10월의 중동전쟁 및 그에 대한 아랍 산유국들의 보복적 대응으로서의 석유산업 국유화, 석유 감산 등에 따른 석유가의 급등, 즉 석유쇼크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이 사태로 석유 수송은 76년을 예외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해상 수송량 전체도 특히 1975년과 1980년 이후의 공황기에는 축소되었다.3) 70년대 초반까지의 “투기적 발주로 인한 유조선 부문의 과잉 선복량 상존”, “신흥 조선국들의 급속한 조선 설비 확장” 등도 “석유파동으로 인한 유조선 시장의 타격”과 더불어 이 시기 조선산업 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4) ꠏꠏꠏ 석유 수송을 중심으로 한 해상 수송의 축소가 이 시기 위기와 침체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위기의 원인으로서의 과잉생산이 ‘상대적’ 과잉생산임을 여기서는 특히 명확히 보여 주었다.

∙ 80년대 말 이후의 호황과 확대는 우루과이라운드 및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성립에 의한 자유무역의 확대에 따른 해상수송의 확대 및 노후 조선의 대량 교체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해양 오염 문제에 대처한 유조선의 이중선체구조화는 90년대 후반 조선산업 확대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92년의 한 연구는, 1991년 현재 세계 선복량은 4억3,600만GT(gross ton: 총톤)인데, 그 가운데 선령 15년 이상된 선박이 약1억9,430만GT로 전체의 약45%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1996년까지는 연간 약850만GT의 대체수요가 예상되고, 그후 2001년까지는 연간 약2,000만GT의 대체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연구는 또한 국제해사기구(IMO)의 MARPOL5)의 규정(1992년 개정)에 의해 1995년부터는 선령 25년 이상의 유조선은 이중선체구조가 의무화되기 때문에 1995~1999년 사이에 689척, 6,890만DWT(deadweight ton: 載貨重量톤)의 유조선이 선령 25년이 넘어 해체되고, 그에 따른 대규모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6)


□ 아래는 연도별 해상 물동량, 신조선 건조량 및 수주잔량 등의 추이와 선복량의 선령 분포이다.

(주로 제2차 자료에 의존한 관계로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통계는 수집하지 못했다.)



세계 해상 물동량 추이 (단위: 100만 M/T)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4

총량

1,638

1,772

1,864

2,041

2,239

2,482

2,577

2,763

3,121

3,248

  (원유)

552

607

672

768

873

996

1,070

1,185

1,366

1,361

전년 비

  8.7

8.2

5.2

9.5

9.6

10.9

3.8

7.3

13.0

4.1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1981

1982

1983

1984

총량

3,047

3,324

3,423

3,491

3,755

3,648

3,506

3,249

3,165

 

  (원유)

1,263

1,422

1,475

1,457

1,538

1,362

1,215

1,043

1,020

 

전년 비

-6.2

9.1

3.0

2.0

7.6

-2.8

-3.9

-7.3

-2.6

 

자료 : Fearnley, Review 1983. (한국조선공업협회․한국산업개발연구원, ꡔ조선공업의 장기전망과 중․장기 구조고도화추진계획수립ꡕ, 1985. 10, p.84에서 재인용.)



세계 신조선 건조량 및 수주잔량 추이 (1973-1989)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1981

건조량100만DWT

 

59.6

61.9

61.1

44.4

27.0

18.8

18.4

23.6

     100만GT

31.5

33.5

34.2

33.9

27.4

18.2

14.3

13.9

16.9

     100만CGT

 

20.6

20.7

20.6

21.2

16.5

14.1

12.6

13.8

수주잔량100만GT

 

120.7

82.3

55.4

36.7

25.9

28.3

34.6

35.3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건조량100만DWT

25.6

22.6

23.5

24.7

23.4

16.1

14.6

18.8

 

     100만GT

16.8

15.9

18.4

18.2

16.8

12.3

10.9

13.2

 

     100만CGT

14.6

13.6

15.3

14.2

12.1

9.2

8.5

9.9

 

수주잔량100만GT

29.2

32.6

30.7

25.9

21.4

22.5

24.6

31.1

 

자료 : Lloyd’s Register of Shipping; AWES; Fearnley; (한국조선공업협회․한국산업개발연구원, ꡔ조선공업의 장기전망과 중․장기 구조고도화추진계획수립ꡕ, 1985. 10, p.87 및 한국조선공업협회, ꡔ세계조선산업 현황ꡕ, 1990. 10, p.16에서 재인용.)



세계 신조선 건조량 및 수주잔량 추이 (1990-1997)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건조량1000GT

15,885

16,095

18,198

20,025

18,966

20,355

24,187

23,858

수주잔량1000GT

39,789

43,164

37,333

39,242

45,792

48,526

45,313

56,621

자료 : Lloyd’s (한국조선공업협회, ꡔ조선자료집ꡕ 1998년판, p.65)


세계 선복량의 선령분포 (1991년 말 현재)

선   령

100만 GT

점유율 (%)

척수

0 ~  9

10 ~ 14

15 ~ 19

20 ~ 24

25 이상

152.0

89.7

125.8

42.5

26.0

34.9

20.6

28.9

  9.7

  6.0

20,127

15,292

14,863

12,023

16,725

합   계

436.0

100.0

80,030

자료 : Lloyd’s Register of Shipping (김영훈․김영국, ꡔ조선기술의 발전추이와 우리의 대응전략 --21세기를 대비한 구조고도화ꡕ, 산업연구원, 1992. 12, p.23에서 재인용.)


□ 위와 같은 조선산업 경기의 변동이 물론 모든 주요 조선 국가나 조선회사에 동일한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었다. 특히 75년 이후 서유럽 조선산업의 쇄락과 일본 및 한국 등 동아시아로의 주도권 이동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으나, 여기서는 반노동자계급적인 ‘경쟁력적 시각’을 배제하는 의미에서 논외로 하였다.


□ 일본의 경우 90년대 내내 경제 전반이 불황에 빠져 있다가 동아시아 위기의 폭발로 97년 4/4분기 이후 다시 심각한 위기증상을 보이고 있고, 한국의 경우에도 97년 4/4분기이래 유래 없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으나, 조선산업의 경우 양국 모두 예외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 호황이 대략 2005년 내지 어쩌면 2010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대개의 예상이다.7)

□ 따라서 현재 조선업종의 노동자들 일부에서 일고 있는 ‘구조조정’과 그에 다른 대량 실업에 대한 예측과 공포는, 단기적으로 보아서는, 조선산업의 위기 혹은 불황으로 인한 그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금 경제위기를 계기로 ‘계획적․목적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호황 속에서도 90년대 이후 자본이 ‘신경영전략’이니 ‘신인사제도’니 하는 이름 하에 신자유주의적 경영의 도입을 강화해 왔고, 특히 경제위기와 김대중 정권의 집권을 계기로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전면화하고 있고, 특히 반노동자적인 ‘구조조정’을 마치 강박관념에라도 좇기는 듯이 강행하고 있는 점에서 충분히 근거가 있는 예측이자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현재의 업종 호황이 2005년 내지 2010년까지 지속되리라는 낙관적 전망은 혹시 현재의 상황을 과대평가한 것에서 오는 것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선 현 시기 경제위기에 대해서 약간 고찰해보자.



2. 현 시기 경제위기의 성격과 본질


□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 즉 공황에 대한 성격 및 본질․원인을 둘러싼 논쟁과 이견이 분분한 것처럼, 현 시기 (한국경제 등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성격과 본질․원인을 둘러싸고도 논쟁과 이견이 분분하다.


□ 현 시기 경제위기의 원인과 본질을 순수히, 혹은 기본적으로 외환․금융 현상 혹은 외환․금융 위기만으로 보는 일부의 부르조아적 논의에 대해서는 전혀 고찰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융․외환 위기는 생산에 있어서의 위기의 징후이자 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고, 또한 문제를 외환․금융 위기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현실적으로는 자신들의 그러한 주장 범위를 훨씬 넘는 ‘구조조정’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어서 그들의 주장이란 결국 자가당착적 인식의 표현이거나 목적의식적인 허위 이데올로기이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현 시기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와 관련된 (이른바 ‘진보적’ 경제학자나 사회학자, 그리고 심지어 맑스주의 경제학자임을 자임하는 논자들의) 이론․주장 가운데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리면서도 가장 천박하고 잘못된 이론의 하나는, 말하자면,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이다.8)

이, 말하자면,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은 논자에 따라서 다양하고도 때로 아주 세련된 형태로 주장되고, 그 가장 세련된 형태는 이른바 ‘조절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일부의 소부르주아-맑스주의 경제․사회학자들에 의해서 각광을 받기도 하는데,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대략 이렇다.

∙ 20세기 초의 자본주의의 위기는 포디즘적 생산체제, 즉 포디즘적 축적체제의 확립으로 ‘극복’되고, 이후 70년대 초까지 고율 축적의 장기호황이 보장되었다.

∙ 포디즘적 생산체제는 컨베이어 벨트에 의한 조직적 체계적 이동 조립․생산체제로서, ‘소품종다량생산’을 그 특징으로 한다.

∙ 그런데 이 포디즘적 생산체제는 70년대 이후에는 (이른바 ‘기획과 실행의 분리’, 노동의 단편화 등등 여러 이유에 따른 노동자들의 적극적 혹은 소극적 저항 때문에) 생산력 증대에 저해 요인으로 전화되었고, 그리하여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되었다.

∙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본은 ‘린 생산방법’이나 ‘팀 작업방식’ 등 이른바 ‘포스트-포디즘적 생산방식’을 개발했고, 그것은 ‘소품종다량생산’ 대신에 ‘다품종소량생산’을 특징의 하나로 한다.

∙ 현 시기 경제위기는, 많은 경우, (그리고 한국경제의 경우,) ‘포스트-포디즘적 생산방식’ 혹은 ‘포스트-포디즘적 축적체제’를 확립하지 못한 ‘소품종다량생산’의 위기, 즉 ‘포디즘적 축적체제의 위기’이다.

∙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술혁신’을 통해서 ‘포스트-포디즘적 생산방식’을 확립해야 하고, ‘다품종소량생산’으로 나아가야 한다.


※ 이러한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은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의 원인과 본질, 그리고 포디즘의 역할, 그리고 이른바 ‘다품종소량생산’ 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 잘못된 이론이다.

∙ 경제위기는 결코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이 얘기하는 것과 같은 생산력의 정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적 낡은 생산관계에 조응하지 않게 된 고도의 생산력이야말로 그 원인이자 전제이다.

∙ 실제로,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을 말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1930년대 대공황이야말로 포디즘적 생산체제와 (자본제적 생산관계에 의해서 규정된) 대중의 소비능력과의 격화된 모순의 폭발이었다. 또한 제2차 대전 후 이른바 ‘장기호황’은 포디즘적 ‘조정(조절)’의 결과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대파괴와 대살육의 후과였다.

∙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의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야 기껏 ‘왜 아직도 포디즘적 생산방식을 극복하지 못한 기업이 경제위기에 약한가’, 곧 ‘왜 그들 기업이 위기 속에서 파산으로 몰리는가’ 정도인데, 이 역시 한정적이다. 사실 포디즘적 생산방식이 확립되어 있었거나 확립될 수 있는 산업․업종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성립되지 않았거나 성립될 수 없는 여타의 산업․업종 부문에서도 위기와 약체자본(弱體資本)의 파산은 마찬가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업종에서는 포디즘적 생산방식은 확립된 적조차 없다.9))

∙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을 말하는 자들은 ‘다품종소량생산’을 주문처럼 되뇌지만, 이때의 ‘소량’은 많은 경우 1920년대나 30년대, 심지어 50년대, 60년대의 ‘소품종다량생산’의 ‘다량’을 능가하는 대량임을 왕왕 간과하고 있다.

∙ 이른바 ‘포스트-포디즘적 생산방식’은 기술적으로는 극소전자․디지털 혁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최근의 과학기술혁명에 의해서 가능해졌고, 그만큼 그것을 노동력을 배제하는 것으로서, 그들 논자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을 격화시켜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될 수밖에 없다.

∙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을 말하는 자들은 결국 경쟁의 노예가 되어 있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개별 기업가의 시각으로 국민경제 및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를 논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 다음에 최근의 경제위기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역시 그럴 듯하지만 철저히 잘못된 이론은 위기와 그 원인을 ‘구조론적으로’ 설명하는 주장이다.

∙ 가장 널리 유행하는 주장은 현재의 한국경제 및 동아시아 경제의 위기가 이들 국가 경제의 ‘구조상’의 결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물론 잘못된 것이고, 이들의 ‘일국적 시각’은 위기가 사실은 범세계적 성격의 것임이 명백해지면서 그들의 오류도 또한 명백해지고 있다.

∙ 이러한, 말하자면, ‘구조론적 위기론’에는, 일국적 시각을 명확히 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는 산업순환의 시기가 경과하면 자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잠재력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구조의 대폭적인 조정 없이는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경제전반의 구조조정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10) 운운.


※ 이러한 ‘구조론적 위기론’은 관념론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 그들은 그 관념론적 사고에 기초해서 이른바 ‘구조적 위기’를 ‘순환적 위기’와 대비시키지만, 사실 모든 순환적 위기는 동시에 구조적 위기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마치 ‘순환적 위기는 비구조적이고 순수하게 순환적일 뿐이어서 산업순환의 시기가 경과하면 자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잠재력으로 해소되지만, 구조론적 위기는 그렇지 못해서 산업구조의 대폭적인 조정없이는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 하지만 어느 ‘순환적 위기’도 결코 ‘비구조적이거나 순수하게 순환적’이지 않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않고) 산업순환의 시기가 경과하면 자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잠재력으로 해소”되지 않으며, 모두다 “구조조정을 필연적으로 동반”해서만 해소(지양)되어 왔다. 그리하여 실제로 1825년에 처음 자본주의적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매 경제위기, 즉 공황 때마다 자본은 크고 작은 ‘구조조정’의 소동을 벌여 왔다.

∙ 그런데, 순환적 주기적 경제위기의 해소는 생산력의 더 한층의 고도화를 수반하고 따라서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의 격화 가능성을 더욱 높은 차원에서 수반하면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산업순환이 거듭되면서 위기는 더욱더 증폭되는 경향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더 장기적이고 심각한 위기 및 침체와 더욱더 짧은 호황’의 경향을 가져 왔는데, 그러한 과정이 심화되면 아예 호황으로의 순환국면 반전 가능성을 잃고 대공황에 빠진다고 하는 것이 지난 30년대의 경험이었고, 또한 지금 우리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 만일 그러한 대공황의 시작 부분이라면, 그것은 ‘순환적 위기’가 아닌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에 “산업구조의 대폭적인 조정”을 통해서만 그 위기가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조조정’의 소동에도 불구하고 아예 회복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 1930년대에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경우, 30년대의 대공황이 제2차 대전이라는 대파괴․대살육극을 통해서만 극복되었음을 상기하면서, 인류가 다시 그러한 (실제로는 그를 훨씬 넘어 전인류가 거의 공멸하게 될) 참극의 길로 갈 것인가, 사회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 자유의 왕국의 문을 열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 현 시기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전형적인 과잉생산 공황으로서 당연히 세계성을 띠고 있다. 97년 7월에 태국에서부터 폭발하고 10월 하순의 홍콩 증시의 폭락을 계기로 이후 한국에서도 폭발한 것으로 일단 간주되고 있으나, 세계사적 시각에서 이번의 공황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위기의 향후의 전개와도 관련하여 새롭게 규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만일 이것이 1930년대의 그것과 유사한 대공황이라면 보다 더 확대된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경우 89년도 2/4분기 중에 공황이 엄습한 이후 95년에 잠깐 호황을 겪지만 이후 ‘호황다운 호황’이 아닌 성장이 지속되다가 97년 말에 공황이 재차 폭발한 점, 서유럽의 경우 90년의 공황 이후 여지껏 호황다운 호황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점, 중남미의 경우 94년-95년의 멕시코 위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90년대 내내 불안정한 동요가 거듭되고 있다가 지금 다시금 위기가 격화․확대되고 있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경제의 ‘3대 극’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일본의 경제가 91년에 공황에 빠져든 이래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 등 동아시아의 위기를 계기로 그 위기가 재차 격화되고 있는 점 등등 ― 이러한 사실들은, 각국을 개별적으로 관찰할 때에는 나라에 따라 호황과 위기․침체의 순환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세계적 차원에서는 이미 80년대 말 혹은 90년대 초에 만성적인 대공황이 시작되어 진행 중임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한국경제나,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기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97년 위기 폭발 당시의 ‘패닉(panic)적’ 현상은 대체로 극복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일부 부르주아 경제연구기관이나 언론, 그리고 미국 및 영국의 신용평가회사들이 내비치는 것처럼 “위기를 극복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상황에 있다. 위기의 한 현상형태인 ‘외환위기’는 대체로 ‘극복’되었을지 모르나, 과잉생산 위기로서의 위기 자체는 아직 이들 국가에서도 전개되고 있고, 더구나 이 위기는, 주지하는 것처럼, 지금 러시아, 중남미 등지로 계속 확대․심화되고 있다.


□ 미국경제만이 아직 호황의 정점에 있으나, 지난해 9월 이후 미국의 중앙은행이 3차례에 걸쳐서 공정금리를 내린 사실은 미국경제에도 위기의 징후가 느껴지고 있다는 정책당국자들의 인식의 표현이다. 불과 2년여만에 지수 4000 이하에서 9500까지 치솟고 대폭의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뉴욕의 증시는 미국자본주의의 생산과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서 수익성 있게 자금을 투자할 곳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위기가 임박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그리하여 현 시기 경제위기의 본격적 전개는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1/4 가까운 비중을 점하고 있는 미국자본주의의 호황이 언제 붕괴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야말로 바로 ‘코앞에 닥친’ 시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3. 조선산업 경기의 전망


□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선산업은 예외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대량의 수주잔량(受注殘量)을 보유하여 2005년 내지 2010년까지는 이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 실제로 한국 조선회사들의 경우 97년도 회사별 수주량은 현대/456만GT, 대우/385만GT, 삼성/217만GT, 한라/143만GT, 한진/29만GT, 대동/24만GT, 미포/13만GT 등 총 1,275만GT이고,11) 97년도 말 현재 수주잔량은 약 1,872만7천GT로서 당시 세계 총 수주잔량 약 5,662만1천GT의 33.1%를 차지하여, 약 1,981만8천GT, 즉 35.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에 바짝 뒤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12)

∙ 앞(주7)에서도 말한 것처럼, 경제위기 폭발 후 일부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비관적 전망이 제시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측에서도 대체로 낙관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비관적 전망을 제시했던 필자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한 ‘특별강연’(1998년 4월 23~24일 울산의 현대중공업(주)에서 개최되었던 대한조선학회의 1998년도 춘계 학술대회에서의 강연)에서는 조선산업의 경기가 이렇게 전망되고 있다.


“향후 세계조선시장은 신조수요의 확대가 예상되는 가운데 … / 향후 21세기 초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IMF체제[본문대로: 인용자]에서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설비효율 증대, 고용인력의 기능 안정화 내지 성숙화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일부 고급선종의 경우는 유럽과의 경쟁도 예상된다.”13)


∙ 특히 조선산업의 경영 당사자인 현대중공업의 김형벽 사장은 같은 학술대회의 ‘특별강연’에서 “… 조선산업은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의 핵심산업이며,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되고 대외 신뢰성이 회복되면, 현재의 우리나라 경제위기를 조기에 벗어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4)라고 말하여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세계 조선산업 경기 자체는 상당 기간 동안 호황일 것이라는 전망을 전제한 발언이었다.


□ 그런데, 조선 수요가 일반적 경기 동향에 민감하고 투기적 요인에 의한 동요가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호황과 수주잔량에만 의존한 낙관적 전망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88년까지 10여년에 걸친 장기간의 불황은 73년 석유쇼크 및 74~75년의 공황에도 불구하고 신조선 건조량이 급격히 증대하여 75년도에 3,420만GT로 정점을 이루었다가 76년도에 3,390만GT로 감소했지만 이 역시 74년도(3350만GT)를 능가했고, 그 이듬해인 77년도부터 급격히 감소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자본주의 세계시장 일반의 공황 폭발과 조선산업에서의 그것 사이에는 2~3년의 시간차가 있었던 것이다.


□ 향후의 동향이 당시의 패턴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 할 것이라는 확정적 근거는 물론 없다. 하지만 2005년 내지 2010년까지의 장기호황 전망이 지나치게 확대된 낙관적 전망이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기에는 충분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앞에 게재했던 1991년 말 현재의 ‘세계 선복량의 선령분포’에 의하면, 당시 44.6%의 선박이 선령 15년 이상이었고, 65.2%가 10년 이상이어서, 1991년 말 현재 평균선령이 16.7년이었고,15) 그후 7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것을 감안하면, 이미 노후화 및 그에 따른 이중선체구조화에 의한 대체수요가 상당 부분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대체되지 않은 상당 부분은 “2000년을 전후로 대량의 해체가 불가피”하겠지만,16) 경제위기에 따른 해상물동량의 축소로 선복에 대한 수요가 축소된다면 그 해체가 곧 새로운 선박의 건조 수요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 만일 지금 문제의식을 갖는 것처럼, 현재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상황에 자극 받아 조선산업에 공황이 엄습한다면,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대량해고, 노동조건의 급격한 악화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올지도 모른다. ― 나는 2005년 내지 2010년까지의 장기호황 전망보다는 이쪽의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보고 싶다.



4. 기술 혁신과 고용문제


□ 근대의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기술 혁신 및 생산의 자동화는 생산에서 노동력을 배제하고, 그들을 탈숙련화시키고,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자본의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 마디로 노동력을 배제하고 그들의 저항을 무력화시켜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자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이것이 자본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 18세기말~19세기초의 산업혁명은 이러한 과정의 본격화를 의미했는데, 20세기 초에는 주요 조립산업에서의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확립으로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고도차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70년대 이후의 전반적 위기의 재격화, 시장의 포화․과잉에 자극받아 급격히 진행되면서 이른바 ‘린 생산 방식’ 등 ‘퍼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최근의 과학기술혁명은 이러한 노동력의 배제, 탈숙련화, 무력화를 극한에까지 몰아가고 있다.


□ 그런데 조선산업의 경우에는 그 상품 및 ‘생산의 기술적 노동과정상의 특징’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 약간의 제한이 가해진다. 특히 전형적인 ‘포드주의적 생산방식’, 즉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한 대량생산체제의 확립은 불가능하였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조선기술의 기본적인 내용은 지난 100여년간 사실상 달라진 바가 없으며, 따라서 많은 기술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선산업은 여전히 다수의 인력을 밀집적으로 동원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의 특징을 벗어날 수 없(어)” “일부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부분을 제외한 일반 조선산업에 있어서는 국가간 기술격차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고” “노동비용(즉, 임금: 인용자)에 있어서의 비교우위를 기반으로” “주기적으로 경쟁 우위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성격의 것이거나, “노동비용의 상승을 노동생산성의 증가로 극복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일정한(물론, 이 말은 무척 애매해서 이현령비현령식으로 편리한 표현이긴 하지만: 인용자) 한계가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17)


□ 물론 근대의 조선업은 숙련에 기반하여 발전하였고 이 때문에 조선업종의 노동조합은 전통적으로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자본의 노동 통제에 상당한 제한을 가했던 것인데, 바로 그 때문에 자본은 생산과정을 기계화․자동화하여 노동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특히 1910년대에 와서 강화되었는데, 1950년대 및 60년대에 이르면 특히 유조선의 제작 공정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된다.18)


□ 조선산업에서의 이러한 기술발전 및 그 영향을 한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선박에 대한 필요, 급속한 경제발전, 그리고 스에즈 운하의 잠정적 폐쇄와 같은 정치적 요인들은 조선산업에서의 기술혁신을 위한 기름진 토양을 창출했다. 유조선과 벌크 운송선은 갈수록 대형화되었고, 건조기술은 운송산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조선산업 자체의 대형 조업을 의미했다. 새로운 기술은 조선소의 노동 관행을 변화시켰고, 당시까지 주로 숙련 의존적이었던 생산과정은 더욱 기계화(industrialised)되었다. 일본은 1950년대이래, 종합제철 시설과 연계된 교외의 부지에 집중적으로 새롭고 보다 대형의 도크에 투자하였다. 동시에 일본인들은 고도로 성공적인 새로운 선박 설계와 건조 방법을 개발했는데, 이를 통해서 건조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일본은 또한 고장력 철판 개발의 선두에 서 있는데, 이 철판은 그 소요량과 무게를 감소시켰다. 1958년에서 1964년 사이에 등록톤(grt) 당 철의 양은 36%나 감소되었다. 1960년대에는 스웨덴에서 지붕 있는 도크가 도입되어 생산에 미치는 일기변화의 충격을 감소시켰다. 함께 용접되어 선체를 이루는 철판을 절단하기 위한 수치제어(NC) 절단기도 개발되었다. 1970년대에는 설계로부터 자재 및 작업부하(作業負荷)까지 총생산과정을 통합하는 컴퓨터 시스템이 개발되었는데, 이것들(CADCAM)은 1980년대에는 더욱더 일반적으로 이용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도입됨에 따라서 숙련노동은 보다 작고 보다 특수화된 작업으로 분해되었다 ― 비록 숙련노동의 종언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전문기술의 재조정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지만.”19)


□ 조선산업에서의 이러한 기술혁신 및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발전은 조선산업에서의 고용인력의 변화 추이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할 수 있다. 1975년 이후 조선산업이 급격히 축소된 서유럽 국가들을 제외하고, 그 이후 세계 조선산업을 선도해온 일본과 한국의 조선산업에서의 고용인력의 변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과 한국의 조선산업 고용 추이 (단위: 명; 1000GT)

 

1976

1978

1980

1982

1984

1986

1988

일본 고용인원(A)

   건조량(B)

     B/A

106,714

90,554

60,941

76,021

66,717

56,339

36,726

한국 고용인원(A)

   건조량(B)

     B/A

 

 

 

 

75,643

2,280

0.030

61,786

2,715

0.044

49,204

3,357

0.068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일본 고용인원(A)

   건조량(B)

     B/A

38,001

6,824

0.180

39,878

7,283

0.183

47,928

7,569

0.158

45,989

9,086

0.198

41,618

8,604

0.207

40,426

9,034

0.223

39,452

10,049

0.255

한국 고용인원(A)

   건조량(B)

     B/A

54,090

3,572

0.066

53,157

4,430

0.083

52,822

4,567

0.086

56,720

3,383

0.060

70,601

5,170

0.073

77,330

5,663

0.073

81,353

7,798

0.096

한국조선공업협회, ꡔ조선자료집ꡕ 1998년판, pp. 12, 28, 64, 65에서 작성.


※ 일본의 고용인력에 대해서는, 75, 80, 83년에 직접고용인원수와 하도급 포함인원수가 각각 175,000명과 244,000명, 113,000명과 152,000명, 그리고 107,000명과 117,000명이었다는 통계도 있다. 조선산업의 총고용인원수와 관련해서 아마 이들 통계가 더욱 현실에 맞을지도 모르나 다음의 이유에서 위 표에서는 채택하지 않았다. 우선 발제자가 확보할 수 있는 같은 기준의 통계가 75, 80, 83년뿐이었기 때문이었고, 다음에 위 표는 건조량과 고용인원 간의 비율(B/A)의 추이를 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같은 기준의 장기간 통계인 위 표의 통계가 이 목적에 보다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이 표에는 다음과 같은 제약이 발생한다. 우선, 특히 일본의 경우 ‘B/A’의 절대치를 중시해서는 안되고 다만 그 변화 ‘추이’, 즉 노동생산성의 증대 ‘추이’만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에서 한일간 위 ‘B/A’의 차이를 한일간 조선공업에서의 노동생산성 격차의 직접적 지표로 간주해서도 안된다.


□ 이렇게 조선산업의 노동생산성의 증대로 ‘건조량은 증대하는데도 고용인원은 삭감’되는 데에 대해서 일본의 한 노동조합 간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운수성이 금년(1997) 9월에 정리한 「96년도 조선 사정」에 의하면 연간 건조량이 1976년이래 20년만에 1000만 총톤(GT)을 넘어 354척 1041만 총톤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일본조선공업협회가 정리한 바에 의하면 과거 20년 동안에 가장 많은 작업량을 안고 있지만 회원 18사의 96년도 조선 기능직 정사원 수는 14,517명으로, 1975년 피크 때에 비해서 약 6분의 1로 격감되어 있다. 협정회사 사원(협력공)도 그 절대수가 약 3분의 1로 감소되어 있는데, 사무직을 포함한 전체에서 점하는 정사원의 비율은 80년에 55%에서 96년에는 39.2%로 되었다…”20)


□ 또한 일본과 한국간의 현격한 임금 격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세계 조선시장에서 한국을 능가하거나 결코 그에 못지 않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본의 경우 고도의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 노동생산성의 차이로 임금 비용에서의 불리를 극복하고 있다는 논리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1990년 연 평균 환율로 계산한 한일 간의 임금 격차는 일본의 월평균 임금이 한국의 그것의 2.16배였다. 그런데 같은 해 1인당 선박 건조량은 한국이 91.9GT, 일본이 175.4GT로서, 일본이 한국보다 1.9배나 많았다.21)


□ 이러한 모든 사실이 말하는 것은 조선산업에서도 기술 혁신 및 자동화 기술의 도입은 결코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제약이 아니며, 한국의 조선산업에도 그를 통한 ‘구조조정’, 즉 대량해고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기술 혁신’ 혹은 ‘기술 개발’이야말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혹은 유력한 길이라는 일부의 몰계급적 주장은 경계되어야 한다.)



5. 구조조정 전망에 대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 방향


5-1. 노동운동의 양대 조류


□ 변혁 지향적 조류 ―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을 체제내적이고 필연적이며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면서, 일체의 투쟁과 활동을 기본적으로 변혁 지향성 속에서 배치하는 입장. 노동조합의 경우, 당연히 어느 조류에 못지 않게 조합원의 경제적 생존권 확보․확대 투쟁에 성실하고 비타협적으로 임하지만, 그것을 단지 경제주의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도록 변혁 지향성 속에서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그에 필요한 형태와 자세․활동으로 임한다.


□ 계급 타협적 조류 ― 자본주의적 생산의 현실적․현상적 거대함에 압도되어 그 근본적 계급적대적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고, 일체의 투쟁과 활동을 자본주의적 생산을 이른바 ‘인간적인 모습’으로 수정하는 데에 배치하는 입장. 피착취 계급으로서의 지위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에는 관심이 없고 경제적 사정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독점)자본가계급과의 사이에서 이른바 ‘동반자적 관계’를 확립하는 데에 투쟁과 활동을 배치한다.


□ 계급 타협적 조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각종 형태의 ‘사민주의’로서 독점자본가 계급의 정치부대와 영합하고 그에 종속되었는데,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서유럽에서는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양대 기둥 중 하나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최근 서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대폭 수용하여 ‘제3의 길’ 혹은 ‘새로운 중도’로서 보다 더 우경화하고, 90년대 내내 고율 실업과 불황에 시달리는 서유럽 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새로운 ‘구원자’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엄습하고 있는 대공황 속에서 그것이 생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또 어떠한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할지도 관심거리이다.


□ 국내에서는 과거 적나라한 (군사)파시즘의 지배하에서는 계급 타협적, 사민주의적 조류조차 (군사)파시즘에 비한 불온한 수정주의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조류는 아예 존립할 여지조차 없거나 극히 협소하였다. 그러나 87년의 양대 항쟁 이후의 상대적인 탈파시즘적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특히 쏘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의 일종의 청산주의를 반영하여 그러한 조류가 차츰 성장해 오고 있다. 자주적인 노동운동 내부에도 여러 형태와 주장으로 그러한 조류가 존재하면서 ‘노사동반자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데, 최근에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른바 ‘사회적 조합주의’ 주장과 그 아류들이고,22) 일부에서는 아예 드러내놓고 명확하게 ‘계급 타협주의’, ‘케인즈주의적’ 노선을 설교하기도 한다.23)


□ 최근에는 이른바 ‘린 생산방식’ 등,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에 의한 새로운 노동배제적 생산방식의 도입을, 자본제적 생산의 기본모순을 격화시키는 기구로 이해하는 대신에, 가치법칙 및 잉여가치법칙의 폐지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계급 타협적 노선을 설교하는 주장도 등장.


□ 이러한 모든 계급 타협적 조류는 정치적으로는 기회주의, 투항주의의 표현이고, 인식론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법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표현이다.


5-2. 서유럽 조선산업 축소의 경험


□ 주지하는 것처럼, 근대 조선산업은 애초 서유럽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으나 1975년 이후 10년 미만의 짧은 기간에 서유럽의 그것은 극도로 쇠락․축소되고, 세계시장에서의 주도권은 일본과 한국 등으로 옮겨와 있는 상태이다. 서유럽에서의 조선산업의 쇠락․축소와 동아시아로의 중심 이동은, 구체적으로 추적하면 여러 경제적․사회적 이유가 있겠지만, 추상적으로 말하면 근대 자본주의 발전의 한 법칙 중의 하나인 지역간․산업간․기업간 불균등발전의 법칙이 관철된 것의 한 표현이다.


□ 우리의 관심은 서유럽의 조선노동자들, 노동조합이 조선산업의 사양화․축소에 따른 대량의 실업사태 등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것인데, 국가와 지역에 따라 구체적인 양태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경제주의적 실리 추구 노선, ‘노사 공동운명체적인 인식의 대응’, 노사 공동의 이익 추구, 협소한 경제주의적 경영참여․공동결정, 노사정타협․합의주의 등의 대응으로 결국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경제적 좌절로서 귀결되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 특징을 한 연구자는 이렇게 총괄하고 있다.


“조선산업이 자리잡았던 많은 지역에서의 실업률이 1930년대와 같은, 그리고 10% 정도에 있던 전국적 평균을 웃도는 고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소동과 사회적 항의는 제1․2차 대전의 전간기(戰間期)보다 훨씬 적어서, 경제적 침체에 따른 정통성의 일반적 위기도 전혀 없었고, 노동자들의 정치적 태도도 거의 급진화되지 않았다. 직접 관련된 조선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태 발전에 대항하여 싸웠지만, 그들의 투쟁은 대규모의 사회적 항의나 소요로 분명 발전하지 않았다.”24)


□ 특히 가장 강력하고 성공적인 사민주의적 모델로 간주되던 스웨덴에서의 상황 발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및 특히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사동반자주의적 경향을 염두에 두면서 여기 관련된 제반 노선이 그러한 사태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유럽 다른 나라의 조선산업에 비해서 그 축소 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에서의 그 축소과정은 보다 평화적이었다. 파업도 조선소 점거도 없었다. 유일한 집단항의 형태는 시위였다. 일자리 삭감에 관한 ‘사회적 계획’은, 해고가 전혀 혹은 거의 없는 자연적 감소를 의미했다. 게다가 노동조합들이 축소과정에 통합되어 있었다. 그들은 결코 조선소의 축소(slimming down)에 반대하지 않았고, 단지 (일자리의) 삭감이 ‘치즈-커터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고만 요구했다. 하지만 이것을 노조의 최고 간부들이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거꾸로, 놀라운 특징은 지역 차원에서 노조들이 (자본의) 정책결정에 참여한 정도였다.

1950년대 및 60년대에 노조의 중요한 목표는 스웨덴 산업의 구조적 발전이었다. 노조들은 심지어 섬유산업과 같이 경쟁력 취약했던 산업의 축소 및 거기에서의 해고를 촉구하기까지 했고, 지역간 노동력의 이동을 고무하였다. 노조의 임금정책은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생산성이 낮은 산업으로부터 높은 산업으로 노동력을 이동시키는 강력한 도구였다.

스웨덴식의 이러한 전통적이고 협조주의적인 산업구조개편 모델은 성장하는 경제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서 배양된 많은 사고(思考)는 새로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지속되었다. 그 모델은, 조선산업 지역들처럼 한두 개의 산업이 지배적이었던 지역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고 긴장을 수반했지만, 70년대 중반 이후의 저성장과 침체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노조들은 비용에 관계없이 결코 낡은 구조를 방어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의 정책은 감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감축시킬 것인가 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웨덴식 모델은 1970년대 초에 입법된 노사관계 법률들의 결과로서의 노조의 책임 증대, 실업률이 4%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그리고 예컨대 조선산업의 붕괴로부터 오는 결과를 완화시키기 위한 특정 산업 부문 (보조금) 정책 등에 기초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모델이 스웨덴에서 조선산업이 보다 철저하고도 싸움 없이 축소되도록 작용했던 것 같다.

금속노조(Metall)의 전략은 독일금속노조(German IG Metall)의 그것을 연상시킨다.”25)


□ 결국, 노동조합의 대응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경쟁력주의, 노사공동결정, 노사동반자관계 등을 추구하고 그에 안주했던 노조의 노선에 있었던 것이다. 노사공동결정이니 노사동반자관계니 하는 언뜻 듣기에 그럴싸한 사민주의적 노선은 결국 노동운동의 탈계급화에 기초하고 그 탈계급화를 강화하면서 전개되었던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독점자본의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에, 그리하여 독점자본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에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종속시켜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그를 통해서 20세기 후반의 서유럽의 노동자계급은 거세되고 불임화되었던 것이다.


5-3. 예상되는 구조조정에 노동(조합)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그 동안에도 이미 ‘신경영전략’이니 ‘신인사제도’니 하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꾸준히 실행해 왔고, 특히 경제위기를 계기로 임금의 삭감 및 동결을 강요해 왔던 조선산업 자본 역시,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의 많은 간부들이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로의 추락을 빌미로 (그 호황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구조조정’, 즉 대량해고의 전의를 돋우고 있다.

∙ 그들의 이데올로그로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예컨대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위한 자체 구조조정”이나 “인력 고용의 유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선전․촉구하고 있고,26)

∙ 조선회사 경영자 자신은, 경제위기에 따른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인한” “장애요인을 돌파하고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선산업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하여 조선계는 첫째,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여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27)


□ 이렇게 예상되는 자본의 본격적 구조조정 공세에 대한 대항 방안․전술을 모색하는 데에서는 우선 문제를 조선산업 혹은 조선산업 노동자에 한정된 문제로 한정해서 규정하고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전체 산업, 전체 노동자 계급의 문제의 한 특수 표현으로 규정하고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그리고 단지 경제적인 생존권의 문제인가, 아니면 동시에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인가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그맣게는 임금인상이나 고용의 유지․확대를 위한 투쟁의 전술에서부터 노동조합 및 노동운동의 존재근거나 지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과 그에 기초한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운동의 역할을 경제주의적으로, 더구나 (그간에 금속산업연맹의 내외의 일부에서 꾸준히 추구해왔던) 노동시장주의적으로 제한적으로 규정하던 관점을 버리고, 그 역할을 보다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데에까지 확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조의 역할을 그렇게 경제주의적으로 규정하는 한, 그리고 더구나 노동시장주의적으로 규정하는 한, 노조가 할 수 잇는 역할이란 기껏 ‘협의의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을 부분적으로 방어하고 확장하는 것인데, 이러한 노선은 노조를 포함한 조직노동자의 자본과의 유착, 그에의 종속을 촉진․강하하고 조직노동자와 비조직노동자의 분열을 심화시켜서, 결국은 조직노동자들 자신의 경제적 이익 옹호 자체도 실패하게 되는, 그러한 노선일 뿐이다.


□ 한편,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어떤 산업의 부침은 노동조합의 능력을 넘어서, 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자본가계급 자신들 및 심지어 민족국가의 정책의지를 넘어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만일 문제를 ‘한국의 조선산업’ 혹은 ‘한국의 조선산업 노동자’라는 식으로 한정한다면, 대응은 자연히 산업내부의 경제주의적 투쟁이나 기껏해야 (서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의 조선노동자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조선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요구하는 투쟁에 한정되고, 그 투쟁의 단기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치적 진출은 제약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문제를 조선산업을 넘는 전산업, 전계급적 문제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사실,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도깨비 방망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 급격한 불황․위기로 조선자본이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하는 조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운동의 가장 근본적이고 건강한 원칙에 따라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노자간이란 잉여노동의 착취-피착취 관계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위에서 모든 투쟁과 활동, 그리고 대응을 배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외적 강제 속에서 운동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자 동반자 관계’란 결국 경쟁력의 우위를 견지하는 속에서의 노사협조주의, 혹은 노사협조주의를 통한 경쟁력의 강화를 의미하는데, 이는 결국 한 노동자 집단의 다른 노동자 집단에 대한 적대를 의미하고, 결국은 악순환적으로 그 적대의 칼끝이 자신에게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경쟁력의 우위란 노동생산성의 증대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노동배제적 생산기술을 계속 도입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자신들의 고용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 그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이해를 중심으로 노동자 대중을 조직하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훈련하는 노선이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자 대중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적 생산의 근본법칙과 경향을 알도록 하는 것, 즉 정치교육은 특히 중요하다. 그것을 알므로써 노동자 대중은 구체적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원칙과 방향을 획득하게 되고, 주체적인 자세로 상황에 대응하게 된다. 노동자 대중의 그러한 주체적 대응 없이는 결코 어떠한 문제도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 일부에서는 어이없게도 예컨대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를 가리켜서 ‘노동측이 오래 전부터 지향해 왔던 사회적 교섭단위’ 운운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히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무력화시키려는 자본의 도구로서의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의 궤변이 아니라 노사정위원회가 현실적으로 해온 역할이 그것의 진실한 성격과 역할을 증명하는 것이다.


□ 더구나 그들은 노동조합의 역할과 지향이 ‘노사 동반자 관계’ 위에서의 ‘교섭’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이익 확대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러한 동반자 관계는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잠정적이고 기만적인 것이다. 노동조합의 역할과 지향은 단결된 투쟁을 통한 계급적 이익의 확대이고 해방이며, 교섭은 그러한 투쟁의 과정 속에 단지 부차적으로 전술적으로 배치될 뿐이다.


□ 애초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기타 부르주아 노동법적 노동3권 자체를 금지․탄압하다가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마치 노동3권은 애초부터 그 자체로 존재했던 것이고 그 중에서 단결은 기본이며 ‘교섭’이야말로 그 핵심이고 ‘단체행동’은 예비적인 것인 양하는 교리를 유포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한 기만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노동(조합)운동 내부에 강화하려는 기도를 용납해서야 되겠는가?


□ 나아가 중요한 대응의 원칙은 노동자 계급 전체의 단결이다. 이는 조선노동자를 넘는 타 부문 노동자 조직과의 연대․단결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는 타국의 조선노동자 조직과의 연대․단결, 타국의 타 부문 노동자 조직과의 연대․단결의 확대․강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연대․단결은 단지 정기적인 회의․회합이나 투쟁의 격려를 넘어 전술과 전략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공동의 행동, 공동의 투쟁을 전개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물론 부르주아 노동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런데 조선노동자들에게는 이 단결의 원칙과 관련하여 특히 유의하고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노력과 투쟁을 기울여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타 부문에 비해서 유난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가는 비조직,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들과의 연대․단결과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확대하는 투쟁이다. 이를 위한 특별한 노력과 투쟁은 단지 추상적인 단결의 원칙 때문에만, 바꾸어 말하면 주로 정치적인 이유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당면의 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자본의 ‘구조조정’의 주요 내용의 하나가 정규직 고용의 대폭적인 삭감과 그들의 비정규직 노동자화, 곧 이른바 노동의 유연화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 곧 하청업체 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에 실패하고, 그들의 권익 확장에 실패한다면, 오늘의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은 바로 오늘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미래의 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에 대한 투쟁이 본격화될 때 노동자들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세계”임을 실감할 것이다.

한/노/정/연


* 이 글은 1999년 2월 8일에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조선업종분과의 “조선산업 구조조정 대책 준비를 위한 수련회”(경남 김해)에서의 발제를 재정리한 것입니다.


1) 이상, Bo Strath, The Politics of De-Industrialisation, 1987, London, pp.6~7.


2) Bo Strath, p.3.


3) Bo Strath, pp.3~5.


4) 한국조선공업협회, ꡔ세계조선산업 현황ꡕ, 1990. 10, p.17.


5)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Prevention of Marine Pollution, 즉 「선박에 의한 해양오염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으로서, 1973년 유조선의 안전과 오염방지에 관한 협약과 이와 관련한 1978년도의 의정서에 의해서 Annex I(부속서류 I)을 수정하여 ‘MARPOL ’73/‘78’이라는 이름으로 1983년 10월 2일에 발효되었고, 한국은 1984년 10월 23일부터 발효되었음(한국조선공업협회, ꡔ조선자료집ꡕ 1998년판, p.323에 의함).


6) 김영훈․김영국, ꡔ조선기술의 발전추이와 우리의 대응전략 --21세기를 대비한 구조고도화ꡕ, 산업연구원, 1992. 12, pp. 2, 23~24. 규정상의 해석으로는 선령 25년 이상의 유조선의 경우 이중선체구조로 개조할 수 있으나 경제성이 없으므로 구선은 해체․페기하고 새롭게 건조할(건조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7) 한국조선공업협회(KSA) 및 일본조선공업회(SAJ)가 1995년을 ‘전망 기준 연도’로 하여 1997년 1월에 발표한 ‘세계 신조선 수요 전망’에 의하면, 1996~2005년 사이에 해상물동량은 KSA 및 SAJ 공히 연평균 1.6%씩 증가할 것으로, 선박 해체는 KSA가 연평균 2,930만DWT씩, SAJ가 연평균 2,860~3,120만DWT씩 이루어질 것으로, 필요선복량은 KSA가 연평균 1.4%, SAJ가 0.6%씩(1996~2000년엔 연평균 0.1%씩, 2001~2005년엔 연평균 1.1%씩) 증대할 것으로, 그리고 신조선 건조 수요는 KSA가 연평균 2,510만GT씩(1996~2000년엔 연평균 2,480만GT씩), SAJ가 2,060만GT씩(1996~2000년엔 연평균 1,750만GT씩) 발생할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ꡔ조선자료집ꡕ 1998년판, pp. 255~258에 의함). 말하자면, 양기관 모두 2000~2005년 사이의 조선경기가 1996~2000년 사이의 그것보다 더욱 호황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7) 한국조선공업협회(KSA) 및 일본조선공업회(SAJ)가 1995년을 ‘전망 기준 연도’로 하여 1997년 1월에 발표한 ‘세계 신조선 수요 전망’에 의하면, 1996~2005년 사이에 해상물동량은 KSA 및 SAJ 공히 연평균 1.6%씩 증가할 것으로, 선박 해체는 KSA가 연평균 2,930만DWT씩, SAJ가 연평균 2,860~3,120만DWT씩 이루어질 것으로, 필요선복량은 KSA가 연평균 1.4%, SAJ가 0.6%씩(1996~2000년엔 연평균 0.1%씩, 2001~2005년엔 연평균 1.1%씩) 증대할 것으로, 그리고 신조선 건조 수요는 KSA가 연평균 2,510만GT씩(1996~2000년엔 연평균 2,480만GT씩), SAJ가 2,060만GT씩(1996~2000년엔 연평균 1,750만GT씩) 발생할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ꡔ조선자료집ꡕ 1998년판, pp. 255~258에 의함). 말하자면, 양기관 모두 2000~2005년 사이의 조선경기가 1996~2000년 사이의 그것보다 더욱 호황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제를 준비하면서 면담을 한, 조선업종 노동조합의 몇몇 간부도 조만간 몰아닥칠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대해서는 강하게 경계하면서도 당분간의 ‘조선산업 경기’ 그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위와 유사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였다.

   이번 발제를 준비하면서 면담을 한, 조선업종 노동조합의 몇몇 간부도 조만간 몰아닥칠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대해서는 강하게 경계하면서도 당분간의 ‘조선산업 경기’ 그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위와 유사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물론 자본측에서는 경제위기 이후 약간은 비관적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2000년 중반까지의 일감이 충분한 상태”(홍성인, 「조선산업에 대한 영향과 대응 방안」, ꡔ海洋韓國ꡕ(특집,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영향과 활로”) 98년 4월, pp. 67~69 참조) 운운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전망이 그 자체로서 진지하게 제시되기보다는 ‘구조조정’ 주장을 위한 예비적 논의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8) 연대와 실천을 위한 영남노동운동연구소가 ꡔ생활안정과 창의적 참여노동을 위한 인사․임금제도 개편안­대우조선의 노사관계 환경과 인사․임금제도ꡕ(1995. 2)의 pp.6 이하에서 전개하는 위기론은 대략 이러한 ‘포디즘적 축적체제 위기론’의 입장에 서 있다.


9) 발제․토론 후 뒷풀이 과정에서 한 노조간부가 발제자를 찾아와 “조선산업의 경우에도 조립 이전의 일부 부품 혹은 구성품의 가공 및 조립 공정에서는 ‘포디즘적 생산방식’이 이미 도입되었고, 갈수록 더욱 많이 도입될 것으로 본다”고 지적하였고, 발제자 역시 이에 동의를 표명하였다. 물론, ‘포디즘적 생산방식’의 본령은 최종조립 단계이기 때문에 조선산업에서의 ‘포디즘적 생산방식의 확립’ 여부의 판단은 기본적으로 이 단계, 즉 절곡․가공된 철판의 용접이나 기타의 부품 및 구성품의 조립단계에서의 그것의 확립 여부에 의해서 판단해야 하지만.


10) 영남노동운동연구소가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에 제출한 「<연구계획서>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조합의 대응정책」(1998)의 ‘1. 연구의 배경과 의의’ 중 ‘IMF위기의 내용’의 문단 중에서.


11) ꡔ조선자료집ꡕ 1998년판, p.21.


12) ꡔ조선자료집ꡕ 1998년판, p.85.


13) 송병준․홍성인, 「조선산업의 발전비전과 전략」, ꡔ大韓造船學會誌ꡕ 제35권 제2호, 1998, p.9.


14) 김형벽,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조선산업의 역할」, ꡔ大韓造船學會誌ꡕ 제35권 제2호, 1998, pp.16~17.


15) 김영훈․김영국, 같은 책, p.23.


16) 한국조선공업협회의 최연호 기획관리부장의 「조선산업의 동향 및 전망」(1998, 이 논문의 복사본을 입수했으나 시간의 부족으로 발표 지면과 정확한 발표 시기는 확인하지 못했다)에 의하면, (아마 1997년 말 현재) “IMO의 MARPOL[원문에는 ‘MAPOL’] 조약에 의한 선령 25년 이상의 탱커에 대한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선박은 전체 탱커선복의 30% 이상(약 88백만DWT)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선박들은 2001년까지 HBL (Hydrostatic Balance Loading) 방식 등을 채용하여 수명을 연장하거나 해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00년을 전후로 대량의 해체가 불가피”하다(위 논문, p.17).


17) 이상의 인용은, 연대와 실천을 위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ꡔ생활안정과 창의적 참여노동을 위한 인사․임금제도 개편안­대우조선의 노사관계 환경과 인사․임금제도ꡕ, 1995. 2, p.17.


18) Bo Strath, p.10.


19) Bo Starth, pp.5~6.


20) 久村信政, 「正社員六分の一に減少で矛盾激化」, ꡔ勞動運動ꡕ 1997. 12, 新日本出版社, p.77.


21) 김영훈․김영국, 같은 책, pp.20~21.


22) 주지하듯이, 최근 수개월 동안 한국노동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그러한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23) 대표적으로는, 임영일, “공황기 한국노동운동의 과제”(영남노동운동연구소, ꡔ연대와 실천ꡕ 98. 8)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조류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김세균, “노동운동의 탈계급화․탈정치화를 위한 최근의 시도들에 대한 비판”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8. 10)을, 임영일 교수 주장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의 비판에 대해서는, 채만수, “‘고용없는 성장’의 기회주의와 경제공황”(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8. 10)을 참조하기 바란다.


24) Bo Strath, p.1.


25) Bo Strath, pp. 114~115.


26) 홍성인, 앞의 글, pp. 72~73 및 (거의 같은 글이지만) “IMF 체제하에서 조선산업의 대응”(ꡔ大韓造船學會誌ꡕ 제35권 제2호, pp.25~26.)


27) 김형벽, 같은 글, p.18.


1999-02-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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