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실태보고 : 실업과 일과 건강관계*1)
손 미 아
연구원 / 서울대 보건의료학 박사과정
1. 실업의 현황
노숙자의 하루생활
1월8일 시베리아 강풍의 영향으로 갑자기 매우 추워진 금요일에 을지로 지하도에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숙자들이 모여들었다. 언뜻 보기에 늘상 거리에서 자고 먹던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40대의 연령이 제일 많아 보이고 그 중에는 아주 젊은 사람도 있고 아주 나이가 많아서 초췌한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술을 많이 먹고 공중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시비가 걸리기만 하면 무섭게 싸울 기세이다. 약 250명의 노숙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 지하도에서 무료 진료와 저녁 배식이 있었다. 한 겨울에 왠 난리인가?
이 글에서는 약 2주간의 을지로 지하도와 8곳의 희망의 집을 돌면서 파악된 실업의 진행과정과 실업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중심으로 보고자 한다.
1월 중순에 48세 000씨(남)를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만났다. 현재 000씨는 자유의 집에 기거하고 있다. 밖에서 7년째 생활하고 있다. 7년전 부인과 마음이 맞지 않아서 잠깐 바람을 쏘이려고 나왔다가 집을 못 들어가는 상태이다. 날씨 때문에 자유의 집에 들어갔지만 곧 나오고 싶다. 지금 현재 한 달에 2~3회 일당일을 한다. 그 외에는 일거리가 전혀 없다. 000씨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그 당시 5급 공무원 시험을 보았으나 떨어지고, 운전과 농사일을 하다가 7년전에 집을 나와서 중국집에서 요리를 배웠다. 남대문에 요리사들을 위한 인력시장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7~8시쯤에 남대문 북창동에 간다. 거기에는 하루에 500~700명의 중국집 종사자들이 모인다. 거기서 주인을 만나서 일터에 간다. 운이 좋아 주인을 만나는 경우에는 하루 일당 80,000원 정도를 벌 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자리도 없다. 이런 자리는 대개 종업원이 안나왔을 때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거기서 11~12시까지 기다린다. 일거리가 없으면 12시에 점심을 주는 곳을 찾아가 점심을 먹고 지하철역 등지에서 소요하다가 다시 9시에 저녁을 주는 곳을 찾아간다. 노숙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밥을 무료로 주는 곳은 자연히 알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는 자유의 집에 자러간다. 부인과 아이들은 아직도 시골에 살고 있다. 그러나 갈 수가 없다. 애들이 거부반응을 하고 아빠에 대한 공신력을 잃었다. 그래서 가지 않는다. 사실 부인과도 7년전에 이미 헤어진 상태이고 다시 합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000씨는 6~7개월 전에 묶고 있던 사글세방을 나왔다. 일거리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자 사글세, 월 24만원을 낼 수 없어서이다. 그 뒤로 사우나탕에서 많이 잤다. 하루에 4,000원 정도면 잘 수 있다. 000씨는 매일 남대문시장(인력시장)을 나간다. 하루의 일과이다. 그 전에도 매일 아침에 갔었다. 그전에는 한 달에 20일 정도 일당을 나갔다. 그 전에는 한 곳에 오래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있지 못했다. 왜냐하면, 음식을 만드는 환경이 너무 비좁고 안 좋아서 오래 못한다. 또 열심히 일을 해 주었는데도 주인이 기분 나쁜 소리, 즉 음식에 하자가 있다고 하거나 장사가 잘 되고 있는데도 더 잘되었으면 하는 소리를 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나오게 된다. 작업환경과 주인과 마음이 안 맞는 것 때문에 직장에서 나오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지금은 일당이 없다. 한 달에 2~3일정도로 줄어들었다. 현재 가장 바라는 것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 조리사 직업 자체에 대해서는 만족을 느낀다. 일당이지만 보수가 괜찮으니까. 그러나 이젠 그것조차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상황은 계속 나빠질 것 같다. 정치권이 안정되지 못하고, 브라질, 중국 등을 보니 그럴 것 같다.
대체 얼마나 많은 노숙자가 언제부터 거리를 헤매었는가?
1999년 1월28일 현재 노숙자들은 105개의 희망의 집에 약 3,200명, 1개의 자유의 집에 1,300명이 기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망의 집은 서울시와 종교시민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노숙자대책협의회를 통해서 단기계획으로 종교기관과 사회복지기관과 협의하여 만들어 진 것이고, 자유의 집은 1999년 1월 정부에 의해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사람들의 동사를 막기 위해 문래동의 (이전된)공장 기숙사에 만들어졌다. 이전까지 사회복지정책이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이 두 가지의 거주지와 공공근로가 현재의 유일한 노숙실업자에 대한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노숙자 수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1998년 10월28일부터 11월7일까지의 희망의 집에 있는 2,786명의 노숙자의 상담결과 보고서1)의 내용을 보면, 실직되기 이전의 노숙자들의 직업은 건설직 등의 일용직 노동자 41.1%, 소규모 공장 노동자 10.3%, 자영업 8.4%, 식당 및 주방의 조리사 6.2%의 순으로 일용직 노동자와 소규모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자유의 집은 아직 구체적인 상황파악이 어렵다.
낮에는 천사, 밤에는 악마 : 자유의 집 사람들
희망의 집에 진료상담을 하면서 그곳에 계신 분들과 상담을 해 본 결과, 이분들은 비교적 건강한 생각을 잃지 않고 계셨다. 비록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가족과 친구관계가 모두 해체되었지만 일을 하고 싶어하신다. 사실 어떤 분들은 희망의 집에 입소하는 것도 꺼려하는데, 자자손손 노숙자로 족보에 남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기필코 밖에 나와서 노숙을 한다고 한다.
희망의 집과는 달리 자유의 집은 99년 1월4일 경찰에 의해 서울역에 노숙하던 사람들이 강제 수용된 곳이다. 희망의 집 아저씨들도 자유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세상의 끝이라고 말한다. 거기는 죽어도 안 간다고 한다. 대체 어떻킬래?
자유의 집은 문래 전철역 근처에 바로 있다. 들어가자마자 문에는 00방직회사의 간판대신 동판으로 새긴 ‘서울 자유의 집’이라는 문패가 있다. ‘왜 동판으로 튼튼하게 새겼을까?’ 저녁 6시쯤 찾아갔을 때 한 곳에서는 배식을 하고 있었고, 한 곳에서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또 한 곳에서는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층 식당의 배식줄이 2층 복도 전체에까지 늘어서 있다. 관리소장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수용되는 사람들은 사전에 건강검진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와 결핵, 간염 등 전염병의 발생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다. 환자 방에는 자폐증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전혀 움직임 없이 누워있는 젊은 듯한데 나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청년,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는 노인 3명이 있었다. 누군가의 상시적인 치료와 투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수용된 분들은 대개 낮에는 매우 조용하고 천사 같으나 밤에 술만 먹으면 매우 심하게 싸우고 유리창을 깨고는 하여 하루 밤에도 몇 번씩 경찰이 출동하고 있다고 한다. 밤에 술을 먹고 이완된 상태에서 심리적 불안감과 우울감이 표출되는 것이다.
대개 이 분들은 IMF 이전에도 거리에 있었으나 눈에 띄지 않고 있었고, IMF 이후에 그 최하층과 주변의 끄트머리에서 있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거리로 내 몰리면서 그야말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부분 이전부터 가족도 없고, 집도 없다. 이제 노숙이 사회에서 공인된 것이다. 노숙을 해도 이젠 부끄럽지 않다.
이곳 상담자들의 말을 빌리면, 실제 50% 이상이 이미 부랑인의 상태로 가버렸다고 한다. 대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을 할 의지도 없으며 심한 우울감과 허탈감에 빠져 있거나 또는 심한 조울증으로 가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상 실업자가 갑자기 노숙을 하게 되더라도 10일만 지나면 이미 노숙생활에 익숙하게 된다고 한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노숙생활이 또 하나의 갈 곳이 되는 셈이다. 여기 들어온 분들의 대부분은 건설 잡역일과 전국을 떠돌면서 건축현장에서 합숙생활을 하고, 여관, 만화방, 쪽방 등에서 기거하면서 일이 있다 없다 하는 상태가 반복되었었는데, 현재 일이 없는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노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총 1,200명중에 건설업이 약 8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조리사나 음식점 등에서 일하거나 기타의 경우이다. 만성 노숙자가 30% 이상을 차지하고, 실제 IMF 이후에 경제적 기반을 잃은 사람들은 10%도 채 못된다고 한다.
실업의 기전 : 누가 거리로 내몰렸는가?
누가 거리로 내 몰렸는가? 도산한 중소기업사장? 회사원? 중견 사업가? 대학 졸업자?..... 이들은 그야말로 어디선가에서부터 한 번의 실수로 인해서, 한 번의 도산으로 망해서 생겨난 사람들인가? 아니다. 계속 누적된 인원들이다. 사회 서열의 맨 끄트머리에서 줄 서 있다가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가장 끄트머리에는 거리의 부랑인이 있었고, 거리에서 자면서 가끔 일당직 노동을 하는 노동자도 있었고, 여인숙, 사글세방에서 살면서 일당직 노동을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한 부류는 사회의 최하위 계급구조에서 맴돌던 미숙련, 일당직, 건축 현장 노동자와 서비스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건설업 현장에서 소위 노가다일을 하고 있었다. 또는 중국집 요리일을 거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97년 이후 대거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사실 이들은 일생에서 여러 번의 실업을 경험하고 살아왔다. 일상생활 자체가 일 있는 날과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다만 일 없는 날이 더 많아진 것뿐인데, 이것이 이렇게 고통을 줄 줄이야..... 개중에는 그 이전부터 노숙생활을 했었고, 사람들 모르게 조용하게 노숙을 하던 상태에서 이제는 사회의 공인하에 그전보다 좀 더 당당하게 노숙을 하게 된 소위 부랑인들도 있다. 이 부랑아 군단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자폐증에 걸린 한 청년이 가장 이들을 극단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인 것 같다. 실업과 노숙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조건 속에 처해있는 최하위계급의 노동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실업과 가족해체 : 가족은 언제 해체되는가?
대부분 노숙 실업자의 가정은 해체되었다. 희망의 집에 입소한 사람중의 대부분이 가족이 해체되었다. 주로 가족관계가 아예 형성이 안되었거나, 이미 이전에 해체되었거나 해체의 위기에 있다가 IMF이후 급격한 해체로 이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업 이전에 이미 가족관계가 해체된 분들이 많았다. 즉 경제위기가 극복되어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지경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었다. 사실 가족이 해체되었으니 거리로 나온 경우도 많다.
한편 여성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실직된 남편의 여성들은 자기자신은 물론 남편이 내팽개치고 간 아이들의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고통속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미 이전부터 거리에서 노숙을 하면서 심하게 육체적 정신적 파탄을 겪은 여성 노숙자들도 많았다.
000씨는 현재 3명의 아이가 있는 가운데 임신중이다. 아이들은 앙상하게 말라있고 누워있는 상태이다. 000씨는 18세에 가출하여 성병과 가난에 시달리던 20살 짜리 가출소녀다. 거리에서 2년전에 매독에 걸렸었고, 2개월 전에 아이를 하나 낳았다. 처음에는 임신한 것도 몰랐다. 아이를 많이 때리고 방바닥에 그대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 소녀에게는 아이가 너무 힘든 존재이다. 000씨는 10년 이상 서울역에서 잤다. 두 번이나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은 다행히도 착한 남편을 만나서 부부로 희망의 집에 들어왔다. 이 분은 자기의 과거를 기억할 수가 없는 정신적인 증상이 있었다.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자식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곳을 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할 수 있는 대뇌의 기능을 상실하였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여성 노숙자들은 여러 번의 이혼은 겪어야 했고, 아이 기르는 문제를 혼자서 떠맡아야 했다.
대부분의 노숙실업자의 자식들은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또한 조그만 어린이에게도 거침없는 구타와 육체적, 정신적인 학대가 가해진다. 실업과 노숙의 생활속에서 아이들은 귀찮은 존재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원망과 자학이 아이에게 가해진다. 중학교 이하의 아이들은 아직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으나, 고등학교의 아이들은 학업을 이어갈 수가 없다. 대부분 자식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갔다고 한다.
가족해체의 경향은 이미 이전부터 일용직이나 직업이 불완전한 노동자들에게 일상화되어 있었고, 이번에 그 전모가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특히 실업과 불완전한 고용상태는 가족해체와 직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족의 기원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은 무엇으로 연결되었는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는 딸린 가족도 없이 가족 부양비도 필요 없이 자신의 노동력만을 값싸게 팔아서 생계를 이어갈 경쟁력 있는 노동자만을 요구하는 것 같다. 사유재산도 없고 이렇다 하게 남겨줄 것도 없는, 자기 몸 팔기에 급급한 노동자들에게는 가족도 사치스런 것인가?
2. 일과 실업과 건강관계
실업 노숙자에게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실업 노숙자에게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언제, 왜 이분들이 일을 못하게 되었는가? 대답은 거의가 '일거리가 없어서'였다. 대부분의 건설업체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공사 한판을 신나게 잘 끝내고 나와보니 IMF에 걸려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8개월 동안 삼천포 창영다리 골조공사를 하고 서울에 올라오니 IMF가 터져 있었다는 분, 성수대교 복구도 했었다는 분, 가스관 공사와 주방일을 번갈아 가면서 하다가 양쪽의 일거리가 모두 없어져 버렸다는 분들이 있었다. 어느 착한 30세 청년은 97년 11월 운수회사에 다니다가 회사에서 나이드신 분들을 먼저 정리해고의 대상에 넣는 것을 보고 젊은 사람들끼리 상의하여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소규모 제조업체에 다니던 노동자들도 이미 여러 번 직장을 옮긴 경험이 있었다. 직장을 여러 번 옮기게 된 이유도 다양하다. 000씨는 IMF 이전에 14년간 PVC 성형일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나서 일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후회가 막심하다. 작은 공장에서 생산관리 책임자로 잘나가고 있었는데, 일을 그만두고 그 일을 독립적으로 하고 싶어서 기계를 사 보려고 했었다. 한편 000씨는 소규모 제조업체에서 선반일을 하다가 직업을 여러 번 옮기면서 직장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막노동으로 간 경우이다.
특이한 것은 이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고용주와 노동자와의 관계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즉, 사업주에 의해서 억울하게 실직을 당하거나 갑자기 건설업의 일거리가 줄었을 때 자기자신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제 모든 분노감이 사라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도망간 사장에 대해서도 “사장도 자금줄이 끊어져서 그런건데 할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특히 건설업체 노동자들의 경우 하청의 고리가 여러 겹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주인이 누구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건축현장에서 일하던 000씨의 말을 빌면, 건축현장에는 일자리를 전문적으로 소개시켜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전화를 하면 평소에 아는 사람끼리 서로 전화로 연결하여 하루 나가서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일을 한 후 일당 50,000원을 받게 되면, 그 중에서 5천원을 그 사람들에게 주고 주민등록증을 되찾아 온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반복된다고 한다. 전국을 이런식으로 돌아다닌다. 그러다보니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대부분 아직 건강한 노숙자들은 일을 하고 싶어했다. 이 분들은 한평생 자신이 하던 일들이 가장 자신이 있고, 대개 그 일을 하고 싶어한다. 용접도 할 수 있고, 성형도 할 수 있고, 작은 집은 눈감고도 재료가 무엇이 들어가는 지를 알 수 있다. 어떤 분들은 “똥지게라도 지고싶다....” “영안실이라도 취직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한편 젊은층의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소위 제조업의 열악한 작업환경은 피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한 사람들이 있다. “공장 같은 데 취직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공장, 회사일은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생명의 위협이 없는 곳에 가야죠. 선반이나 프레스 등은 생명의 위협이 있어요. 차라리 반을 받더라도 노가다가 낫죠.” 또 임금이 이전보다 반 이상으로 하락한 것을 아직까지 항변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일용직이 조금은 있습니다. 그런데 임금도 하락되고 그것도 월말에야 준다고 하니 당장 돈이 한푼도 없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또 한편으로는 일거리를 찾다찾다 결국은 찾지 못하고 포기한 상태로 남아 있기도 했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어요. 몇 번 해보고 아예 포기했어요. 오히려 주는 밥 먹는 게 편했어요..”
대부분의 실직 노동자들에게 일은 한편으로는 개개인에게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이 분들은 일을 안하고 있으니 힘이 빠지고, 사회와 떨어지게 되고, 자포자기하게 되고, 가정을 지킬 수 없고, 경제적인 이유를 빼고서라도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속에서 생계수단을 목적으로, 먹고살기 위하여 강력하게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000씨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만족한다. 개인적으로 집도 지을 줄 아니까 다른 사람들의 집도 고쳐주고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은 먹고사는 의미 이상이 아니다. 돈을 써 보겠다는 욕심도 없고 벌어야 먹고산다는 생각만 있다.
자본가들은 한편으로 단지 생계의 수단으로 노동을 하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생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아무 일도 없어서 못하게 되는 군단, 즉 산업예비군을 양산함으로써 현재의 노동조건을 천국으로 만들어 버린다. 실업 노숙자에게 ‘일거리’란 천국과 다름없다.
3. 실업으로 인한 건강장해 : 실업과 빈곤과 건강관계
지난 1월초에 약 10일간 8개의 희망의 집의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상담을 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전반적으로 실업이후에 건강상태가 나빠진 것을 들 수 있다. 대개 97년 11월 IMF 이후 지금까지 1년 정도의 실업과 6~7개월 이상의 노숙생활 속에서 못 먹고, 심한 긴장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대부분 어지럽거나 현기증을 느끼고, 빈혈감을 느끼고, 미열감, 체중감소, 치아의 급격한 손상 등이 있으며, 기존의 질병들이 악화된 경향도 있다. 소화기 장애, 소화가 안되고 속이 쓰린 증상, 무릎통증 등은 이전보다 심해진 증상들이다. 오히려 일을 안하고 2~3개월 있으면 근력이 떨어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정신적으로는 자신감의 감소, 목에 계속 가래가 걸려있는 느낌, 목이 답답함,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 숨이 차는 증상, 머리 아픈 증상, 지치는 증상, 신경이 날카로워진 느낌 등의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한편, 서울시는 희망의 집 106곳의 3,900명중 결핵감염률이 11.8%(462명)로 일반인의 감염률 1%와 비교시 11배 이상 높다고 발표했다(한겨레 1999.1.29 금요일). 또한 인의협(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에서 노숙자들의 정신건강상태를 조사한 결과2)에 의하면, 노숙기간에 따른 질환의 분포는, 감기, 위장관질환, 근골격계 질환, 피부질환 등의 순으로 높았다. 또한 노숙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간장질환, 정신과 질환, 결핵 등이 상대적으로 약간씩 증가하였다. 심리적 정신적 건강상태 조사에서는 355명의 남성 노숙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서울역과 을지로의 노숙자들의 경우 특히 우울증, 적대감, 공포심 등의 증상이 일반 인구집단보다 높았으며, 노숙기간이 3개월씩 증가함에 따라 정신신체화증상, 대인예민성, 우울증상 등이 증가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실업은 가난 등 사회․경제적 빈곤상태와 함께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실업이 건강장해를 일으키는가? 아니면 건강장해로 실업이 생겼는가? 실업과 건강장해의 문제는 상호연관 되어 있는 것이며 누가 먼저인가를 따질 일이 아니다. 이미 이 상태는 교육, 직업, 수입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계급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실업과 건강의 문제에는 사회․경제적 제반요인이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하며 실업과 서회․경제적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4. 서울시 정책 : ‘노숙자 만들기’정책과 노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서울시는 아마도 지금쯤 노숙자 정책에 대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곧 봄이 오면 어디론가 다 들 나가겠지..... 그때까지만 버티자.....’고 하면서. 현재까지 어디선가 폭동이 일어났다는 보고도 없고, 한 명도 얼어죽었다는 보고도 없다. 이쯤 되면 노숙자 대책은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현실은 어떠한가? 자유의 집 관리소장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현재 1,300여명이 있는데 지방에서 계속 올라오고 있어서 수용할 수 있는 건물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에 비례해서 노숙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지금까지 생활보호의 대상에 있던 빈곤층까지 노숙자로 등록하고 자유의 집, 희망의 집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왜냐하면 거기서 공공근로 하는 것이 생활보조 금액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현재 서울시의 정책은 노숙자 만들기 정책에 다름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노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인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고, 더 나아가 인간답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사실 공부를 한답시고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몇 개월 이상 긴 고통을 지내온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나도 미안함과 송구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몇몇의 친구들이 그 동안 노숙자 진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찾아보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노숙을 하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안 보이는 곳에서 그동안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너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2주정도 희망의 집, 자유의 집과 을지로 지하상가의 노숙자들을 방문한 것을 토대로 그 현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두서없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양해 말씀을 드린다.
1) ‘다시 서기 지원센터’ 사업보고. 1998. 12.30.
2) 「노숙자 건강실태 조사 보고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1998,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