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열정
, 아쉬운 정책대결
이 종 탁
정세분석실 연구원
1. 정책토론회가 있기까
지
금속산업연맹 2기 지도부를 뽑는 선거가 상
당한 열기를 내뿜으며 진행되었다. 현총련
, 금속연맹, 자동차연맹 등 금속 3조직이 하나로 통합한
지 꼭 1년만에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일도 그렇거니와 1년
만에 기존 지도부에 대한 평가가 냉혹하게 내려졌다는 점
에서 선거의 열기는 오히려 당연했다.
98년 2월15일 현총련, 금속연맹, 자동차연맹은 그동안의 분리된 모습을 마무
리하고 금속 3조직을 통합하였다. 20만명의 조합원을 거
느린 민주노총 산하 최대의 연맹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1
년이 흘렀다. 그 1년은 금속산업연맹 1기 지도부의 사상적
, 철학적, 실천적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
선거는 당연히 투쟁과 혁신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1) 기존 지
도부에서 있던 두 후보는 4차례에 걸친 지역 유세를 통해
98년 투쟁의 실패와 패배를 인정했고, 이에 대해 ‘겸허한 반성’을 거듭 밝혔다. 그리고 모든 후보가 투쟁과
혁신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다녔다.
때문에 선거 초반 후보들간의 차이는 분명하
게 드러나지 않았고, 288명의 대의원에 의해 치뤄지는 선거는 찻
잔 속 태풍으로 그칠 기미마저 보였다. 실제로 연맹 지도
부와 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유세를 하지 않은 채 2월6일
대의원 대회 당일날 한 차례의 유세만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중소사업장 노동조합과 현장의 조합원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선거 초반 동원금속노동조합과 윤복중
금속산업연맹 경기본부 부위원장 등이 공개적으로 선거에
대해 문제를 던졌다. 문제제기는 현장 조합원들의 참여를
봉쇄한 채 ‘조용한 선거’를 치루고자 하는 연맹의 방침과 선거관리위
원회의 결정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조합원과 중소사업장 노
동조합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고, 명분과 원칙 모든 면에서 정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선관위도 결국 5차례의 지역 유세를 기획할 수밖
에 없었다.
그러나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는 여기에 그치
지 않았다. 유세를 듣는 ‘관객’의 위치에 서 있기를 거부하고 나섰다. 1월21
일 울산에서 열린 1차 지역 유세에서 조합원들은 유세시
질의응답을 서면으로 한정한 선관위의 방침에 대해 집중
적으로 문제제기 하였으며, 세 후보의 정책을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정책
토론회를 요구하였다. 선관위는 내부 규정을 들며 이를 거
부하려 하였지만,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에 밀린 세 후보측의
합의로 정책토론회는 수용되었다. 하지만 유세 시 질의응
답을 서면으로만 제한한 것은 이후 세 차례의 유세에서 계
속 제기되었으나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2. 빡빡한 시간
, 형식에 치우친 토론회
연맹 선거에 정책토론회가 마련된 것은 민주
노조운동에서 획기적인 발전이다. 특히 정책토론회가 마
련되는 과정이 현장 조합원과 중소사업장 노동조합의 참
여 확대와 대중적 검증 기준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아래로
부터 제기되었다는 점은 이번 정책토론회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적 실무를 담당하는 선거관리위
원회는 이러한 대중적 요구를 형식적으로 수용하는데 그
쳤을 뿐, 실제 조합원들이 정책토론에 적극적으로 참
여하는 방안을 강구하는데는 매우 소홀한 모습을 보였고
, 어떤 점에서 억지로 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
다.
정책토론회는 그 형식에서부터 참가한 조합
원들의 참여를 차단하였다. 질문은 유세 과정에서 나온 서
면 질의 중 가장 빈도수가 많았던 7가지로 한정되었다.2) 이 중 세
가지는 2월2일 수도권 정책토론회에서, 나머지 4가지는 영남지역 토론회에서 질문
으로 제출되었다. 그리고 토론은 각 질문에 대한 3분씩의
답변, 2분간의 반론, 2분간의 재반론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 이 방식에 따르면 한 후보가 한 주제에 대해 답변하는 시
간이 7분, 따라서 세 후보가 한 주제 토론에 걸리는 시
간은 총 21분이었다. 여기에서 이런 저런 진행상의 발언과
시간 초과 등이 합쳐지면 한 주제에 거의 25~30분간의 시
간이 소요되었다. 각 후보마다 발언할 수 있는 세번의 기
회가 너무나 짧기 때문에 심도 있는 토론보다는 순간적 재
치와 임기응변을 시험하는 장으로 변질되었다.
수도권 정책토론회는 부위원장의 유세와 세
후보의 모두발언(각 5분) 이후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정책토론회에서 정작 토론이 시작된 것은
저녁 8시 30분을 넘기고서였다. 이 때문에 세 주제에 대한
토론이 끝났을 때 시간은 저녁 9시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저녁 11시까지만 하기로 된 토론회였기 때문에 토론회에
참가한 조합원의 질의는 그리 많을 수 없었다. 대의원대회
확대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동질문 하나와 각 후보에 대한
질문이 가까스로 하나씩 던져질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선관위가 현장 질문에 대해서
‘정견발표 - 반론 - 재반론’이라는 형식을 고집하였고, 이 때문에 참여 조합원들의 현장 질문은 세
후보에 대한 공동질의 하나, 각 후보에 대한 질의 하나씩 받는 것으로 그
쳐야 했다. 시간이 빡빡하다고 한 선관위가 이 형식을 끝
까지 고집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날 선보인 토론 방식
은 지난 대선 때 선보인 정범구식 정책토론회의 외양을 갖
추었지만 질문과 질문의 연관성이 설정되지 못하면서 토
론의 ‘질’은 그리 높지 못했다. 이 방식이 효과를 발휘
하려면 사회자가 기본 질문 내용에 기초하여 상황에 맞게
계속 질문과 대답을 유도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어야 했
다.
만약 이러한 방식이 시간상 어려웠다면 패널
들을 참가시키는 패널식 토론(매주 KBS가 하는
‘심야토론 - 전화를 받습니다
’ 형식)을 차용하여 후보자간의 정책의 차이
를 분명히 드러내거나 아예 토론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질문과 후보자간의 답변이 생동감 있게 진행되
는 방식을 통해 현장 조합원이 느끼는 쟁점을 전면에 부각
시키는 방법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3. 그러나 정책대결은 없
었다
선관위가 사전에 배포한 7개 질문 중 수도권
에서 채택된 내용은 첫째, 98년 중앙교섭에 대한 평가 및 향후 교섭의
상, 둘째, 99년 구조조정 반대투쟁 계획
, 셋째, 조직 민주주의를 위한 방안이었다. 질문은
‘평가 - 계획 - 내부혁신’으로 적절히 배분되었다. 그러나 질문을 적
절하게 배분한 게 오히려 토론회의 내용성을 떨어뜨렸다.
모든 문제를 그냥 훑고 지나는 식밖에 되지 않으면서 토론
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에게는 오히려 갑갑증만을 유발시켰
다. 하나의 주제라도 확실하게 끝장을 내는 토론이 오히려
필요한 게 아니었나 싶다. 후보들은 시간 내에 답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따라서 답변은 전체적으로 기대 이하였다.
첫번째 질문은 98년 중앙교섭에 대한 것이었
다. 기호 1번 조준호 후보는 중앙교섭이 아래로부터 결의
를 모아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기호 2번 문성현 후보는 중앙교섭이 힘있게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였다. 그렇지만 두 후보는
기본적으로 교섭권 위임에 기초한 중앙교섭이 단위 노동
조합의 힘을 모아내고 조합원들을 결속하는데 필요한 형
식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기호 3번 조돈
희 후보는 교섭권 위임이라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전 조
합원의 공동요구를 집약시켜내고 그것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중앙교섭과 관련하여 교섭권 위임은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당장 쟁점이 되었다. 반론에서 1번 후
보는 교섭권 위임 폐기를 밝힌 3번 후보에 대해
“교섭권 위임이 아니면 전체 노조의 요구와
투쟁을 집중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를 되물었고, 3번 후보는 “공동요구를 가지고 하는 중앙의 교섭에서 교
섭권 위임은 불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지적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쟁점이 형성되었는데
, 그것은 2번 후보가 5월27~28일 파업이 중앙
교섭으로 투쟁을 집중시킨 결과였다고 평가한데서 시작되
었다. 이에 대해 3번 후보는 반론을 통해 현장 노동자들의
생존권 불안이 투쟁으로 폭발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오
히려 5월27~28일 이후 지도부의 행보와 결정이 투쟁의 의
지를 꺾어버렸다는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2번 후보는 3
번 후보의 지적에 대해 5월 투쟁을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반론을 피면서 5월 총파업은 연맹 지
도부의 조직화와 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
다.
토론은 쟁점을 형성시킨 그 지점에서 더 나
아가지 못했다. 중앙교섭은 필요하다는 입장과 교섭권 위
임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입장만이 뎅그러니 남았다. 중앙
교섭이 있어서 5월27~28일 투쟁이 가능했다는 자화자찬
과 현장의 고용불안이 투쟁을 가능하게 했다는 아주 상식
적인 지적에서 더 발전하지 못한 채 서로 상대 후보의 말
꼬투리를 잡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정견발표 - 반론 - 재반론이 끝난 후 3번 후
보쪽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도저히 3분
, 2분 안에 답변하기 어려우니 5분으로 답변
시간을 늘리자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선관위는 세 후보의
합의사항임을 강조할 뿐이었다. 그리고 2번 후보쪽은
“시간 안에 답변하는 것도 능력
”이라는 말로 3번 요구를 거절하였다
.
10분간의 정회를 한 후 토론은 두번째 내용
으로 넘어갔다. 선관위가 질의한 내용은 99년 구조조정 반
대 싸움에 대한 계획과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이었다. 여기
에서 후보들의 차이는 다시 분명하게 드러났다.
3번 조돈희 후보진영은 관점과 시각의 문제
를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교섭틀보다는 요구의
집약과 투쟁의 집중에 무게를 두었다. 그리고 어떤 구조조
정에 반대한다는 표현은 말장난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구조조정 반대’를 명확히 하였다. 2번 문성현 후보진영은 정
리해고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자본에 확인시켜
주면 정리해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견해로부터 출발하여 구
조조정에 반대하는 전선과 해고자 투쟁을 배치해야 한다
는 주장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생존권을 박탈하는 구조조정 반대
’가 되어야 하며 이를 사회개혁투쟁으로 발전
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1번 조준호 후보진영은
‘생존권 박탈하는 구조조정 반대
’에 동의하면서 재벌개혁을 위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2월말에 위력적인
대중투쟁으로 교섭력을 확보하고, 3월말에 전체 전선을 쳐야 한다는 입장을 밝
혔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에서 형성되었다. 3번 후
보는 어떠한 구조조정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반
면, 1번과 2번 후보는 구조조정은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다만 1번 후보는 재벌개혁에 무게중심
을 두었고, 2번 후보는 구조조정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억압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구조조정에 대한 기본적 이해에 차이가 있음을 드러
내는 것이었다. 또 다른 쟁점은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다. 3번 후보는 정리해
고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고
, 2번 후보는 정리해고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든
다는 점을 자본이 알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이런 쟁점이 형성되자 반론은 다시 상대방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는데 소비되었을 뿐 쟁점에 대한 자신
의 입장을 보다 충실히 답변하는 것으로는 나아가지 못했
다. 쟁점은 반복해서 발견되는데 답변은 그 언저리에서 빙
빙 돌뿐이었다.
다시 형식적인 발표와 반론
, 재반론이 끝나고 세번째 내용에 대한 토론
으로 넘어갔다. 질문은 중소노동조합에 대한 대책을 묻는
것이었다. 2번 후보는 중소노조가 사업에서 소외되었다는
걸 인정하면서 그 대안으로 대공장에서 감싸안는 기풍
, 연맹의 사안별, 일상적, 재정적 인적 지원 등을 언급하였다. 1번 후
보는 대의기구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먼저 지적하면서 대
공장 중심의 일률적인 투쟁지침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하
지만 자매결연식의 시혜적 중소노조 대책에 단호히 반대
한다며 중소노조의 요구를 묶어낼 수 있는 단위가 필요하
다고 역설하였다. 3번 후보는 중소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식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
하였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대의체계 뿐만 아니라 일상적
의견 반영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지역본부의 위상이 강화되어야 함을 지적하
였다.
이 문제와 관련한 쟁점은 별다르게 형성되지
않았다. 후보들은 중소노조가 소외되었던 원인에 대해 심
층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당위적으로 중소노조의 참여를 보
장하겠다고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 문제를
‘혁신’의 핵심으로 보는 듯했다. 갑자기 중소노조
들이 대접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수도
권의 한 노동자는 “이제 중소노조는 가만히 있어도 되겠네
”라며 토론을 비꼬았다.
선관위 질문은 끝났고 토론은 이제 방청석의
질문을 받는 순서가 되었다. 공동질의가 한번으로 제한되
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손을 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
우였다. 세 후보에 대한 공동 질의를 받겠다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토론 전부터 대의원 수 확대 문제를 토
론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던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조합 위원
장이 질의를 신청하였다.
질문의 요지는 대의원 수 확대에 대한 각 후
보들의 입장을 묻는 것이었다. 대우자판노동조합은 이미
대의원 수를 100명당 1명, 전체 1,800명 선으로 늘리자는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세 후보는 기본적으로 대의원 수 확대에 찬성하
였다. 하지만 1번 후보는 대의원 대회 성원을 채우는 문제
와 대의원 숫자의 확대가 오히려 대공장의 영향력을 더 크
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2번 후보는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한 650여명 수준을 넘어
서는 확대는 제도혁신팀을 구성해 고민하겠다는 입장이었
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것을 성사
시키는 것이라는 점과 관료화를 막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
을 지적하였다. 3번 후보는 임원 직선제와 탄핵제도를 도
입하고 대의원 수를 1,500명 수준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본
으로부터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
반론에서 1번 후보는 대의원 수 확대에 계속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고, 2번 후보는 적극적으로 제출된 안을 수용하
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3번 후보는 대의원대회 개최 절차
에 대한 설명을 통해 대의원이 1,000명이 넘어도 얼마든지 모일 수 있고
, 효과적인 의사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
하였다.3)
방청석 질의는 각 후보에 대한 개별질의로
이어갔다.
먼저 기아자동차 정하백 조합원이 2번 문성
현 후보에게 질문하였다. 질문은 1월초 울산지역 노동조
합 위원장들이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것으로 아는데
, 이 과정과 그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것이었다.
이에 문성현 후보는 세 후보의 단일화가 아니라 98년 집행
을 책임진 단위의 단일화였고, 1번 후보와 그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합이 화학적 결합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상태
에서 책임 있는 집행을 하고 평가를 받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선거대책본부를 꾸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1번
후보는 반론 기회를 통해 “1기 연맹 지도부 출신 후보간의 단일화를 고
민했고, 네 가지 정도로 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안됐
다. 새로운 지도부로 단일하게 가자”는 발언을 했다. 3번 후보는 이를 상층의 자
리 나눠먹기라며 비판하면서 연맹의 화학적 결합은 금속
의 공동요구를 가지고 공동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미 금속산업연맹이
출범할 때부터 지도부의 임기를 1년으로 단축한 근거를
들면서 총단결로 가려면 지도부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
하였다. 이에 2번 후보는 재반론을 통해 질문의 의도가 무
엇인지를 되묻고 어쨌든 하나로 모아가야 한다는 점을 거
듭 되풀이하였다.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었지만 시간 관
계상 두번째 개별 질의로 넘어갔다. 두번째 질문은 한라중
공업 권성원 위원장이 1번 조준호 후보에게 던졌다. 질문
은 세 후보 모두 노사정위원회 철폐를 말하고 있는데 98년
연맹 지도부는 그러한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었는데
, 기조가 바뀐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조준
호 후보는 2월 1기 노사정위원회 합의 때 통합논의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 뒤, 통합 전에 조직이 나뉘어질까봐 연맹의 방
침이 결정된 후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3번 후보는 반
론을 통해 6월10일 대의원대회에서 현장조직들이 노사정
위원회 참가 반대 집회를 했음을 상기시킨 뒤
, 연맹 지도부의 입장은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잘됐다는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2번 후보는 6.10 총파업
철회의 경우 문제를 협소하게 봤음을 인정하고 두번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재반론을 통해 1번 후보는
6.10 대의원 대회에서 찬성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련의 흐름을 봐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역시 시간관계상 3번 후보에 대한 개별질의
로 넘어갔다. 세번째 질의는 천지산업 강준희 위원장이 했
다. 질문 내용은 98년 중앙교섭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
혀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3번 후보는 앞서 질의에서 했던
바대로 98년 5월27일 파업은 현장의 상태에서 그렇게 투
쟁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하고, 중앙이 전략적 방침을 가지고 나가지 못했
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대의원대회를 통해 투쟁 방침을 결
정하면 그 자체로 교섭이 가능해지므로 교섭권 위임을 통
한 중앙교섭 전술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다시 확인하였다.
2번 후보는 반론을 통해 교섭권 위임이 있어서 중앙교섭
과 5월27일 투쟁이 가능했다는 평가를 되풀이했다. 1번 후
보는 반론을 통해 교섭을 하부로부터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문제를 지적하였다. 3번 후보는 재반론을 통해 노사
정 교섭에 매달리면 교섭에 치중하게 되고
, 그러면 투쟁을 말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점
을 다시 지적하였다.
이로써 토론은 끝났고, 각 후보들의 5분 발언을 듣는 것으로 정책토
론회는 마무리되었다.
4. 현장 조합원들에게 판
단의 기회를 주자
정책토론회는 모양만 갖추는데 그쳤다. 정책
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다기보다 그저 정해진
순서에 자기 발언을 하고, 그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해서 타 후보의 발
언을 공박하는 후보가 상대적으로 뛰어나 보이게 만들었
다. 이렇게 해서는 정말 연맹을 끌어나갈 수 있는 후보를
제대로 검증할 수 없다.
1월21일에 합의한 정책토론회를 선거 막바지
가 되어서야 잡은 것도 문제다. 지역 유세를 다 한 뒤에
, 주말과 일요일을 지나 평일 저녁에 정책토
론회를 잡았을 때부터 시간상의 문제, 토론 수준의 문제는 예견된 것이었다.
민주노조의 자랑은 현장 조합원의 참여가 보
장된 민주주의를 조직운영의 기본으로 삼는데 있다. 어용
노조를 비판할 때, 조합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간부들끼리 사
측과 붙어서 밀실야합하는 것을 주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
다면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금속산업연맹이 2기를 맞이할 정도라면 조
합원 민주주의는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조합원들이 선거와 정책토론의 주체가 되어
야 한다. 조합원과 대의원들에게 질문 기회를 최대한 주고
, 후보와 조합원 및 대의원들간에 공방과 설
전이 벌어지고 이것이 하나의 결론 및 차이로 분명히 드러
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공방을 두려워하고 그것이 연
맹의 단결을 헤친다고 생각한다면 조합원들의 수준을 낮
게 보는 연맹 간부의 기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는 시끄럽지만 합의와 동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충실하
는 것이어야 한다. 일사불란함은 그러한 합의와 동의가 있
을 때 비로소 체현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과정을 형식으
로 대체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만을 강제한다면 그 자체
가 이미 관료주의라고 할 것이다. 선관위는 선거의 진행을
원활하게 하는 집행기구이지 선거 자체의 기조와 운동방
식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기구여서는 안된다.
1) 이것은 금속산업연맹 2기 지도부 선출에
출마한 각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기호 1번 (조준호, 금속산업연맹 위원장 직무대행) : 금속산업
연맹, 현장의 힘으로 바꿔냅시다! 기호 2번 (문성
현, 금속산업연맹 부위원장):계급적 노동운동으
로 21세기를 열자! 기호 3번 (조돈희, 민주노총 전해투 위원장): 현장의 힘! 혁신
의 깃발! 투쟁하는 금속산업연맹!
2) 선관위가 정리한 7가지 질의내용은 ① 98
년 중앙교섭에 대한 평가 ② 98년 현대자동차 투쟁에 대한
평가 ③ 99년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대한 입장과 계획 ④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입장과 태도 ⑤ 중소기업 노동조합
에 대한 계획 ⑥ 조직민주주의에 대한 계획 ⑦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과 계획이었다.
3) 두 후보가 대의원 수를 늘리자는 데 동의
했음에도 불구하고, 2월6일 대의원대회에서는 700명 선으로 대
의원을 늘리자는 중앙위원회 안건이 그대로 통과되었다.
대의원 수를 중앙위원회 안보다 더 늘릴 수 있고
,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두 후보가 1차 투표에
서 1, 2위를 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대의원대회
의 결과는 의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