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독자적 노조의 깃발을 올리며
지금 현장은 1
여성 독자적 노조의 깃발을 올리며
정 양 희
서울여성노동조합 위원장
여성노동자의 권리는 여성노동자의 힘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쥐꼬리만한 월급과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
속에서 아무런 법적보호도 받지 못하는 임시직, 파트타이머,
용역사원, 인턴, 장기 실업자 혹은 영세사업장의 여성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취업의 입구에서 퇴사하는 순간까지 용모제한부터
결혼해고에 이르기까지 온갖 차별대우에 직면하고, 비인격적인
대우와 잡무, 성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언젠가 나아지리라는 꿈을
잃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쌓아왔던 우리들의 노력의 성과는
여성들에게 일차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유연화
공세속에 참담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직장내 성폭력이
증가하고 가정폭력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결혼해고가
당연시되고 커피 심부름과 청소, 잡일은 다시금 여성들만의
몫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모성보호와 육아의 사회화는 먼
미래의 일이 되고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고
있습니다.
이에 여성노동자의 권리는 여성노동자의 힘으로 쟁취하고자
우리는 여성독자노조를 결성하였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감원이
되고 무권리상태의 임시직으로 추락하는데도 기존의 노조들은
대응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기존 노동조합의 가부장적인
운영은 여성노동자들의 세력화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임시직, 파트타이머, 파견, 계약직! 그들의 권리와 인권을
방치하고는 전체 노동자의 대동단결은 위선입니다. 여성해방
없이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외치는 것은 진정한 해방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여성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섰습니다. 여성도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의 보조자가 아닌
온전한 인격으로 당당하게 서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 묻혀진 여성노동자들의 가치와 존엄성을 되찾고 다가올 새
세상의 여성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우리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야만적인 여성고용관행을
거부하며 차별임금과 비인격적인 대우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성차별적 분업체계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여성이 최후의 식민지임을 거부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성노동자들의 당당한 거부와 힘있는 실천속에서
살아 움직일 서울여성노동조합이 결성되었음을 선언합니다.”
15평 남짓한 충정로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노동조합의 탄생을 알리는 결성선언문이 낭독되는 동안 우리
조합원들은 모두 숙연해졌고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있었다. 함께
준비해 온 1년의 세월이 아득해지고 이제 처음 시작하는 설레는
마음이 눈빛에서 눈빛으로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기쁨이 넘치는 조직 만들기
1999년 1월10일 서울여성노동조합은 설립총회를 거쳐 11일에
서울시에 설립신고를 마쳤다. 작년 2월 여성독자노조건설을
암중모색해 온 뜻 있는 여성활동가들과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함께 모였다. 우리는 기존 노동조합들의
가부장적인 풍토와 여성노동자의 낮은 조직률(97년 현재 5.6%)을
직시하면서 이제야 말로 여성독자노조 건설을 늦출 수 없다는
결의를 다졌다.
15명의 발기인들은 대부분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거나 임시직으로
일하는 여성들이었으므로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여성노조건설의
의미를 공유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누구도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활동을 해 본 사람이 없었으므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한국여성노동자의 실태,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상황,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문제와
외국의 여성노동자 조직에 대한 검토, 산별노조와 지역노조,
여성문제에 대한 학습으로 시작하여 7월까지 개정 노동법에 대한
공부를 끝냈다. 당시 조합원들 중에는 감원해고대상이거나
성차별적 임금삭감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아직도 결혼퇴직관행이 남아있어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학습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곧 바로 실천해나가야 할
과제들이었다. 7월 중순경에 우리는 모 기업노동조합의
발기인이었던 장기근속 여성으로부터 노조탄생의 비밀스런
기억들을 들으며 마음이 바빠졌다.
여성노조 결성시기를 10월 ‘남녀고용평등의 달’로 잡은
우리들의 준비는 8월 지역노동조합들의 활동실태 조사를
시작하면서 더욱 빨라지게 되었다. 건설일용노조, 농협노조,
인쇄노조, 서울의류노조, 일용제화공노조 등의 활동실태를
조사하면서 우리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분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당시 우리의 준비상황을 비밀로
하였던 탓에 그 분들에게 공개하지 못하였으나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드리고 싶다.
8월에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발기인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직장을 진단하는 ‘나의 직장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9월에는 본격적인 실무준비에 착수하였다. 워크샵
‘기쁨이 넘치는 조직 만들기’는 기존의 조직에서 변화되어야
할 모습과 우리가 만들어 갈 조직의 모습에 대해 진지한
토론으로 밤을 새웠다. 우리의 조직은 조합원의 자발성과
조합원의 실천으로 더디가도 튼튼한 조직을 만들고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조직으로 여성노동자들의 작은 해방구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동시에 우리는 10월 결성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가난했지만 한 사람의 독지가의 힘보다
많은 사람의 애정 어린 작은 돈을 후원받기를 바랬다. 사무실도
없이 집들을 순방하며 지내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11월까지 규약을 만들고 출판홍보, 조사연구, 조직지원, 교육 등
팀을 구성했으며 사업계획을 논의했다. 1월초 200여명의
후원회원들의 도움으로 충정로에 작은 사무실을 얻게 되었을 때
우리의 노조는 이미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쪼개어 힘을 보태 준 후원회원들 중 반은 남성들이었다. 모두들
새로운 감회에 젖어 사무실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여성노조가
장차 어떤 일을 할지는 잘 모르지만 무조건 믿어주며 격려해 준
우리들의 친구들과 부모형제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왜 여성노조인가
서울여성노동조합은 여성들만으로 조직되는 여성독자노조이며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직종과 기업을 불문하고 조직되는 지역
일반노조의 성격을 갖는다. 또한 서울여성노조는 구직중인
여성들을 포함하는 초기업 단위노조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첫 실험이었으므로 준비기간 중 내내 두드리고 가야
할 돌다리들이 많았다.
그러나 외국에는 여성노동자의 독자적인 세력화를 위하여 이미
여성노조들이 활발한 조직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특히
일본 동경여성노조의 활동은 우리에게 많은 지침을 주었다.
1993년 여행원제 폐지를 필두로 사업장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투쟁이 거세어지면서 노동조합내 남녀갈등이 심해지고 몇몇
사업장에서는 여성간부들이 제명되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제도화는 왜곡된 형태로 마무리됐다. 당시 나를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과 노조 여성간부들은 외국의 여성독자노조 모델을
검토하면서 심정적으로는 그 필요성에 모두 공감하였다. 그러나
기존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통한 여성들의 권리향상도 중요한
성과였으므로 당시에는 기존 조직의 강화에 여성들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후 신인사제도의 도입이 증가하고 여성들의
하위직군화와 비정규직화의 속도는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기존 노동조합들의 노동조합내 성차별 및
여성노동자문제에 대한 소극성으로 더 이상 여성들의 권리실현이
어렵다는 것과 여성문제는 항상 중요하지 않는 문제, 급하지
않는 문제로 치부되고 기업의 성차별적 위계구조를 기업내
노조들이 답습하는 현실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기업내 노조를
결성하기 어려운 영세사업장에 종사하거나 기존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서 이들이 조직적인 보호는
물론 법적인 보호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새로운 대안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한국은 여성노동자의 71.7%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해 있다.
또한 파트타이머의 70% 이상이 여성이다. 이들은 가입할
노동조합도 없고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도 없다. 아직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노동법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적용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는 한국 노조조직의 일반적인 형태인 기업별
노조의 틀 속에서는 어렵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비정규직들은
지난 10년간 자신이 일하는 시업장의 노조에 가입을
희망하였으나 대부분 거절당했다. 설사 가입할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하고 문을 열어놓았다 해도 기업별 노조의 틀로 그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고
있다.
우리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노조운영을 지양하고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을 조직화하여 한국에서의
여성노동자운동의 새 지평을 열고자 여성독자노조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실천속에 살아 움직일 서울여성노조
지금도 체불임금과 부당해고 등으로 잔뜩 움츠린 채 우리
사무실을 찾는 여성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랜기간
일용직으로, 임시직으로 파견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그들이 일하고 있는 곳이 정부부처든, 백화점이든, 대기업이든
상관없이, 하는 일이 사무보조이든 청소원이든 상관없이 한결
같이 한달에 50만원내외의 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20대의
미혼여성이나 40대의 기혼여성이나 마찬가지였다. 큰 아이가
가출하고 나서 나머지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한 아주머니는
새벽부터 일해도 50만원밖에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절망했다.
자치단체에서 3년 넘게 일용직으로 일해 온 한 여성은
실업극복방안이라는 공공근로자 투입으로 일자리를 빼앗겼다.
지금도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힘겹게 생을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여성은 직원이 두명뿐인 곳이라 부당해고를 당해도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자 노동부는 도대체 왜 있는
거냐고 따졌다. 노동자의 권리를 누군가 알아서 지켜주지 않듯이
여성노동자의 권리도 누군가 알아서 찾아주는 법이 없다. 이것이
여성독자노조를 결성한 이유이다. 결성선언문에서 밝혔듯이
여성노동자의 권리는 여성노동자의 힘으로 쟁취하기
위해서이다.
여성들만의 노조조직형태에 기대반, 우려반의 목소리가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작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여성노조는 의사결정, 회의방식,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
홍보, 문화활동 등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에서 여성들의
생활조건과 정서, 현재의 역량을 고려하여 여성들의 성장과 자기
존중감을 고취하는 방식과 내용으로 운영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모성보호, 직장내 성폭력, VDT 직업병,
여성친화적 작업환경 등 여성노동자들의 특수요구를
단체협약화하는 작업을 통해 여성들의 요구를 작업장에서 실현해
나가는데 앞장 설 것이다.
우리는 기존 노조들의 활동에 여전히 관심이 있으며 연대를 통해
함께 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작이 기존의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여성조합원들의 세력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지금의 기업별 노조의 틀이 아니라 산별노조의 건설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아직도 노동자이면서 자영업자라고
불리는 무권리상태의 생활설계사, 학습지 방문교사들의 조직화와
전국 각 지역에서, 혹은 각 직종에서 여성독자노조의 건설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지원이 필요한 곳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것이며 마찬가지로 기존의 조직들이 우리에게 지지와
격려를 해 주리라고 믿고 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