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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통제 수단으로서의 '경영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41호
신병현


경영통제 수단으로서의 ‘경영참가’



신 병 현

연구위원 /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노동 운동계나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노동조합의 주요한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나아가 산업민주주의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에 설사 기업과 산업에서 의사결정권의 분점화 혹은 제한적인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라도, 노동자 및 노동조합의 자본에의 포섭과 선별적 배제라는 우려스런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1) 그런데 최근 들어 노동조합에 의한 경영참가가 ‘재벌해체’ 및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정책(?)적 대안의 하나로서, 그리고 노동조합의 이념과 노선으로까지 설정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어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 같다.2) 이 글에서는 우선 경영참가의 일반적인 성격과 역사에 초점을 두고 검토한 뒤, 한국에서 노동조합 혹은 노동운동의 ‘정책’으로서 경영참여의 기본전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따져 보고자 한다.


1. 경영참가의 역사적 성격


70~80년대의 북구라파와 같이 ‘경영참가’는 특정한 사회의 특정한 정치․이데올로기적 국면하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즉, 특정한 조건하에서 상대적으로 ‘민주화된’ 제도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그 긍정성이 인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영참가의 역사와 현실은 이러한 평가는 매우 제한적이고 일면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동의하다

자본과 그 대리인으로서 경영자 측에서 볼 때, 경영참가는 통제수단의 하나 일 수밖에 없다. 경영참가는 경제․정치적 국면에 따라 주기적으로 자본의 노동통제 위기나 정당성 위기를 일시적으로 만회하기 위한 통합(혹은 포섭) 수단이었다.3) 또한 기업문화 혹은 인간관계론의 가부장적 공동체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노동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그에 바탕을 둔 노동강화를 위한 ‘혁신적 동의 제조기법’이었다. 게다가 경영담론들을 살펴보면 노동자 및 노동조합의 ‘참여’는 20세기 초엽의 테일러리즘(소위, 과학적 관리법)과 인간관계론에서 뿐 아니라, 현대적인 일본적 관리스타일 및 조직개발의 팀기법과 기업문화 등 신인간관계론의 기법에서도 한결같이 강조된다.4) 따라서 우리는 현재 논의 중인 경영참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있어 그것이 지닌 이중성과 역사적 성격을 조심스럽게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경영참가의 역사는 19세기 중엽 이윤분배제에 관한 맑스의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경영참가에 대한 관심은 서구에서 40~50년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비롯하여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의 직무재설계에 대한 관심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을 지라도 이 당시에는 사용자 및 노동조합 모두가 한결같이 경영참가 실험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였었다. 경영참가는 직무만족과 생산성 증대, 품질향상 등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노사 모두를 이기게 하는(소위 win-win game) 비책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과 영국 등 거의 모든 선진 산업국들에서 소위 ‘인간화된’ 자본주의의 장미빛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기구들이 70년대 중반까지 경쟁적으로 마련되었다.

몰역사적이고 무비판적인 성공 예찬 속에서 산업에서의 갈등과 실험에 대한 진실은 고사하고 실패 가능성에 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제대로 소개되지도 못하였다. 제대로 된 평가들은 단지 그럴듯한 선동에 지나지 않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작업장을 말하는, 사회학, 경제학, 경영학 등과 같은 사회통제 기술 학문들의 친 경영담론들 속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 작업장 민주화에 대한 예찬들은 민주주의와 이에 바탕을 둔 정당성의 휘광하에, 경영참가 실험들의 실질적 내용보다는 노동자들의 동의를 인위적으로 형성해 내기 위한 그럴듯한 어휘 개발에 골몰하였을 뿐이다. 단지 전형적인 경영관리적 통제기술로서 인간관계론의 온정주의적 기법들을 새로운 슬로건으로 치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 이런 경영참가 기법들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찾기 어려운 것도 그동안의 이런 사정에 원인이 있다.

노동과정에 대한 비판적 연구들에서 경영참가는, ① 착취율 증대를 위한 경영통제의 수단으로서 자본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고안되어 전략적으로 도입되는 것으로 보는 입장과 ② 자본축적과 경쟁의 위기시에 노동자들의 저항을 포섭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체제 혹은 노동과정 통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환으로 보는 입장, ③ 노동자들의 동의와 설득을 통해 호전적인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거나 노조를 분쇄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입장, ④ 참가를 통해 형성되는 투쟁지형을 긍정적으로 보고 노조의 ‘전략적 선택’과 참여를 통한 형식적 조직 민주화의 실현을 강조하는 입장, ⑤ 노동과정 재설계에 대한 참여를 통한 ‘노동의 인간화’와 이에 기초한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입장 등 다양하게 분기(分岐)한다. 하지만 어느 입장이건 경영참가가 자본의 노동통제 수단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나뉘는 지점은 그것이 사전에 의도된 것이냐의 여부, 참가 자체의 전략적 의도와 참가 이후에 예상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에 대한 평가에서의 차이, 참가 자체가 초래할 수 있는 실리적 측면과 정치적 지형에 대한 평가에서의 차이, 참가의 분석적 수준 구분 ― 작업장 수준이냐, 전략적인 의사결정 수준이냐, 산업 전반적인 수준이냐 등의 자의성과 그 귀결로서 점진적인 작업장 민주화를 강조하는가, 아니면 국가 전반적인 산업민주주의 실현을 강조하는 가의 차이 등 ―을 둘러싼 이견 등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할 점은 80년대 서구 노동과정에 대한 연구의 논쟁을 둘러싼 반성들이 보여 주듯이, 노동과정과 특정한 기업의 노사관계는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의 전반적 과정과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의 70~80년대 노동과정 논의 및 기능주의체계론에 오염된 80~90년대의 노사관계 논의들은 생산시점을 강조하면서 노동과정과 노사관계를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로써 노동력의 재생산 기구로서 국가 및 제반 관리장치들의 성격이나 정당체제와 교육체계 등이 노동과정 및 생산 전반의 재생산과 관련하여 맺는 매개적 연관을 고려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협소하게 규정된 노동과정 및 생산과정에서의 권력 분점 혹은 경영자의 권한 위양(委讓)을 자율성의 증대 및 점진적 사회개혁의 방안으로 강조하는 경향을 산출하였던 것이다. 특히 작업장에서의 자율성 확보를 주장하는 논자들에게서는 작업수준과 조직구조, 잉여가치의 전유와 관련된 경영조직 전반에서의 ‘전략적’ 의사결정 ― 예컨대, 투자, 분사, 신기술 도입 등 ― 수준을 자의적으로 구분하고, 참가의 도미노 효과(파급, 확산 효과)를 관념적으로 상상하는 경향도 등장하였다. 혹자는 사용자의 전략적 의도 혹은 경영전략과 그것의 실현 방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경영참가제를 통한 노사관계 관리전략의 경우도 예상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들어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즉, 노조 주도적인 경영참가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조 주도적인 것과 사용자 주도적인 경우의 비교를 통해 노조 주도적인 경영참가가 가져오는 기업 의사결정에서의 노조영향력 확대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적 사례들은 한결같이 노동자 및 노동조합의 경영참가가 지속되지 못하고 경영진에 의한 일방적인 철회로 귀결되었음을 보여 줄 뿐이다(전형적으로 독일이나 스웨덴 자동차 산업의 경우). 심지어 독일의 공동의사결정제 역시 선진제국과 자본의 격렬한 저항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었으며, 스웨덴 및 영미의 수많은 참가 사례들 역시 정치․경제적 조건의 변화와 국가의 계급성 변화에 따라 소위 ‘인간화된’ 자본주의의 쇼우윈도우 역할을 일시적으로 수행하였을 뿐이다.

경영참가가 정치․경제적 조건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등장하고 소멸해 온 모습 ― 예컨대 영국에서 1865~73, 1889~92, 1908~09, 1912~14, 세계전쟁 사이, 1940~49, 1960년대 중반 이후 ―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경영참가 담론이 여러 나라들에서 등장하는 시기의 정치․경제적 상태가 갖는 공통성이다. 경영참가는 노동운동의 격렬함이나 체제의 위협에 대한 공포 속에서 예외 없이 등장하였다.5) 특히 60~70년대 서구에서는 노사(정)협의체나 이윤분배제 등 기타 참여제도와 더불어 작업장에서의 자율성 증대와 참여를 강조하는 각종 경영참가 프로그램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또한 경영참가의 역사는 섬유나 화이트칼라 노동분야보다는 철강 및 자동차, 석탄 등과 같이 대규모의 강력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분야와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나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사업장으로 소위 첨단 산업분야에 국한된다. 이런 점에서 노조의 유무 및 성향, 적용되는 산업 및 업종상의 특성도 고려해야만 한다. 한국의 경우 ‘노사협의제’는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는 예외 없이 설치하여야 한다는 법적 강제도 있었지 않은가? 노사협의제는 전반적으로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측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운영되거나 실패로 끝났으며, 노조가 없거나 여성중심 사업장에서는 노동강도를 강화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 기능하는 경향을 보였다.

경영참가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우리는 경영참가가 자본축적이 위기를 맞아 사용자의 경영(통제)권이 지닌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강력한 노동운동의 저항에 처해 있는 경우에, 또는 노동강도 강화와 초과착취를 꾀하는 경우에 적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사용자 및 경영측에 의한 노동통제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노동자를 포섭․회유하거나 노동강도 강화를 실현하는 공동체적 참여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기제임을 말해 준다.6)



2. 경영참가의 조건


경영참가의 역사는 경영참가가 특정한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일반적 특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스웨덴 및 독일은 사회주의 권역과 인접해 있다는 지정학적 특수성과 후발 선진 산업국가로서의 특수성으로 인해 국가의 개입하에 비교적 강력한 산업 민주주의적 제도를 형성해 나간 반면, 영국과 같이 자율적 교섭의 전통이 강한 국가는 그렇지 못하였다. 영국은 노동자 정당 혹은 진보적 정당이 존재하고 집권이 이루어진 시기에만 비교적 노동운동을 지원하거나 노동자의 고용 및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법체계가 어느 정도 마련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나마 정권교체나 경제상태의 변화에 따라 법체계 자체도 수정되어 버리고 만다. 산업민주주의 제도나 법 역시 국가 및 정책의 계급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60~70년대의 산업민주화 운동을 통한 노동의 삶의 질(QWL)향상 운동 역시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경영관리적 통제기법의 도구상자에나 남아있을 뿐이다. 유연화 공세속에서 양보교섭에 임할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에 선심성 대가(?)로 주어지는 신기술 도입 및 작업조건에 관한 형식적 의사결정에의 참여 제안은 이러한 도구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이다.

경영참가가 노동조합의 전략적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경우를 일차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국가의 계급성이며, 이차적 조건은 강력한 노조조직과 정당의 지원이다. 진보적 정당이 정권을 구성한 경우에나 노동운동의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 획득된 노동자 권리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진보적 성격의 산업 민주주의적 법제화라는 형태로 정착되고 제도화될 수 있는 것이다.



3. 관료조직과 의사결정의 민주화


‘경영참가 정책’ 대안은 최근의 재벌해체 문제와 공공부문 민영화와 관련된 일부 논자들에게서도 노조운동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었다. 여기서 경영참가와 관련해서 거론되는 것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노조나 민중들의 참가와 규제력 발휘 필요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대안으로 고려되는 것들은 소액주주 운동이나 종업원지주제와 같은 소유권(지분) 확보를 통한 주주총회 참가나 사외이사 및 노동자 이사와 같은 형태의 이사 및 감사회에의 참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7) 그리고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아마도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정보수집이나 밀실협상(?)을 방지하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지분 분점을 통해서나 혹은 기타의 방법으로 의사결정 참가를 말할 때, 그것은 기업내 의사결정을 조금이나마 민주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원주의적 정치과정론에 기초한 경영참가 혹은 민주화 주장은 권력의 양면성․다면성, 그리고 은폐된 통제(unobtrusive control)를 논하는 사회이론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비판받아 왔다. 의사결정의 안건 통제에서부터 대안선택 혹은 결정의 기준선정, 용어나 결정방식, 정보의 미비, 반대자의 포섭 등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수많은 제약들은 오히려 참가 자체가 무력화된 반대를 상징하는 것임을 잘 보여 준다. 모든 조직의 핵심적인 결정은 배후나 장외에서 이루어짐을 활동을 통해서 익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관료제적 조직형식은 이처럼 조직의 외부나 최고 상층부에서 이루어진 결정을 수행하는 통치의 수단이며 대부분의 국가장치들의 조직적 형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정과정을 공개하거나 투명하게 한다는 것은 대체로 관료제적 조직형식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적 형식으로 포장하고 의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장치가 전반적인 생산과정의 재생산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장소인 동시에, 투쟁의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민중투쟁의 다양한 영역으로 될 수 있듯이, 특정한 유형과 형식을 지닌 조직들은 지배내 구조를 그 속에서 모순적으로 재생산하며 동시에 투쟁의 지형변화 여하에 따라 투쟁의 조건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우리가 공공부문이건 기업조직이건 간에 조직의 형식적 측면에서 파악할 경우, 관료제적 통치구조는 지배․종속 관계의 표현형식이며, 이것은 투쟁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상이하게 물질화된 정치․이데올로기적 효과라고 볼 수 있다.8) 관료 엘리트적 지배의 위기는 지배․종속의 관계 구조 자체가 바로 축적된 잉여를 둘러싼 자본 분파간 투쟁, 그리고 대중과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영역으로 대두됨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주요한 변화는 정치․이데올로기적 장치들 사이의 기능적 관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의 유형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볼 때, 공공부문에 속한 조직들은 국가의 기능 혹은 전문적 영역으로 분화된 통치 내용을 표현하며, 기업조직의 경우는 자본의 이윤 창출 및 전유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공공부문을 둘러싼 정치가 전 국민을 그 수혜 대상으로 표방하는 ‘공공성’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민중의 사회성 혹은 필요와 관련된 실천 이데올로기들에 바탕을 둔 민중정치와 대립한다면, 기업조직의 경우는 투자자본의 수익성(경제적 효율성)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관료제적 정치가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제 실천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노동자(노조의 정치도 포함)의 정치와 대립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자주 접하는 것으로 기업이건 정부조직이건 간에 관료제적 조직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은 자본 분파간 그리고 지배엘리트 내부의 갈등의 효과가 표현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각종 참여제나 소유지분의 분점을 통한 권력 분점의 시도는 조직형식적 측면 즉, 관료제적 경직성이나 비효율성 담론에 기초하여, 지배엘리트 내부나 자본 분파간의 갈등 지형 위에서 설정된 공간을 얻음으로써 민중적 효익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조직유형(공공성으로 표방되는 기능)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에 이르지 못하며, 관료제적 의사결정의 형식적 절차와 의례들을 인정하고 동참함에 따라, 관료제적 통치 구조의 쇄신도 기대하기 어렵게 하여 투쟁지형을 더욱 협소화시킬 수도 있다. 부도난 회사를 인수한 노동조합의 수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사업의 회복과 시장에서의 주가 상승은 자본에 의한 통제 재천명 기회를 제공하고 이에 대해 노동자측은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한 무력할 수밖에 없다.9)

공공부문에서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는 국가의 공공성 이데올로기가 표방하는 ‘보편성’에 대한 정치적 개입으로서 사회성 및 민중적 필요를 주장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다. 이때,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공공조직의 궁극적 목적 자체, 즉 국가기능의 수행이 갖는 계급성이다. 관료제적 조직형식과의 상호관계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투쟁의 초점을 관료제의 병리적 현상으로서 관료주의의 혁신에만 둘 수는 없다. 공공부문 조직은 그 특성상 타 조직의 영향하에 종속되어 있어서 내부의 관료제적 경직성이 어느 조직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에 대한 노조의 반대나 투쟁성이 겉으로 보기에 매우 강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공공부문의 경우 민중적 요구와 필요를 강조하는 투쟁 전술이 중요하나, 이는 노동조건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으로서는 많은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공공부문 노조의 투쟁은 익히 보아 알 수 있듯이, 연대투쟁이 취약하고, 효율성 이데올로기에 오염되는 경향이 크며, 대체로 관료주의의 혁신에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부문 노조의 경우는 노조조직 자체내의 조직 민주주의 실현을 통한 노조조직 내부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투쟁의 성공에는 민중 세력과의 연대가 관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권력과 정책


자본권력에 구조적으로 제약된 노동조합이 사용자나 경영측이 도구상자에서 경영참가 목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경영참가를 정책적으로 사고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이 ‘정책적 대안(?)’으로써 경영참가를 관념적으로 선택하는 것과 노동자 정당이 하나의 전술적 구상으로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권력분점) 장치의 법적 제도화와 이것을 전체 사회로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기획하고 슬로건화 하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또한 노동자 정당의 경우도 집권하지 않은 경우에 우파 집권당의 참여제도 제안에 대해 마찬가지의 수동적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요즘들어 부쩍 노동조합 간부나 진보진영에 속한 연구자들의 언급에서 ‘정책적 대안’이란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노조와 같이 많은 구조적 제약하에서 활동하는 측의 이러한 용어 사용법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그 속에 말하는 주체의 (자본)종속적 위치가 상정되고 정책의 수행 관계와 같은 정치지형이 이미 결정되어진 용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노동조합의 ‘정책’은 노동조합원을 일차적 통제 대상으로 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하게 말하자면, 노조의 경영참가 정책 대안이란 것은 (자본에의 대항이 아니라 노동자의 통제로) 표적이 잘못 맞추어진 노동조합의 전술적 방향이거나, 아니면 노선 전향을 의미한다. 왜 그런가? 자본이나 경영의 핵심적 목표가 노동자의 자발적 참가이고, 팀작업에서 보듯이 경영담론의 핵심적 용어가 ‘참가’이다. 일단 참가시켜 놓고 팀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동화시키는 것이 팀조직의 기본 특징이며 위력이다.10) 푸코가 보여 주듯이, 자본권력에 대한 종속은 하나의 지식 형태로 종속자들에게 자발적으로 수용되어서, 언제나 이미 권력에 종속된 가운데 말하고 사고하게 만들 수 있는 생산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경영참가는 하나의 지식으로 노동조합에 의해 수용되고 노동자를 생산에 열심히 참가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기제이다. 이 모습은 권력에 완전히 포획되어 환상적으로 자본과 동일시하는 모습 아닌가?

정책은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종속된 측의 저항과 각종 장애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 수행 과정에 대한 제어장치 혹은 나침반과 같다. 소위 국가의 인구정책이나 경제정책, 경영정책이란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에 대한 개입이며 통제로서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기업의 목표와 노동조합의 목표는 명확히 다르다. 기업의 목표는 노동자들을 노동과정에 참가시켜 보다 많은 노동력을 지출하도록 유인하고 통제하려는 목표를 일차적으로 갖고 이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서 경영참가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노동조합은 제약된 자원과 종속된 권력관계 속에서 자본의 끝없는 통제 시도로부터 가능한 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이다. 노동조합은 자본권력 밖에서 자본권력의 정책이 지닌 부당성을 평등성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거부함으로써 인권의 보편성을 구성해가기 위한 독자적인 정치를 수행하려는 조직이 되야 한다. 이렇게 보면,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정책, 직제개편 정책, 임금체계 정책 등의 대안 마련이 얼마나 관료주의적인지 그리고 반노동자적 관념성을 띠는 사고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IMF 관리체제 시기는 80년대 말, 9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자본의 합리화 전략이 실질적으로 그 효과를 거두려는 자본의 공세적 시기이다.11) 왜 이런 시기에 경영참가가 주장되는 것일까? 그것도 자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노사정위원회와 일부 노동운동가 및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주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살펴 본 서구의 일반적 경우 중 어디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어떤 조건이 한국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일까?

피상적으로 보기에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제기되는 경영참가는 노조 주도의 작업장 참가보다는 산업민주주의적 권력분점 형식인데, 이는 노동조합의 강력한 조직적 역량과 정치적 지원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사실상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노동운동과 신자유주의적 우익 민간 파시즘 정권이라고 볼 수 있는 DJ정권의 반노동자적 노동정책에 대항해야 하는 역경에 처해있는 실정 아닌가? 과연 이런 지경에서 경영참가 ‘정책’이 현실적인 정책(?)일 수 있는가? 단지 원하고 희망하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12) 지금까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시민운동단체’들과 연대한 결과가 정리해고 및 유연화 정책의 인정과 현대자동차 파업의 성차별주의적 밀실 중재밖에 더 있었는가? 지금 시기에 ‘현실성’을 강조하며 경영참가라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운동 및 노사관계의 역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권력에 대한 노동의 환상적 동일시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귀결은 무엇일까? 소수 핵심 노동자층과 상층 노조간부들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의 발전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속에서 민중 생존권을 지켜내고 노동해방을 희망하고 노력하는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인가? 노조의 ‘참가 정책’은 오히려 노동자들이 관료화된 노동조합 조직에 어떻게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가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5.맺음말


노동조합운동사는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자본의 전제적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그것의 이양 과정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소위 경영권이라는 것은 단지 단체교섭을 통해 다루어져야 할 예비분에 불과한 것이다. 강력한 집합적 투쟁이 이 예비분을 노동측으로 가져 올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한 노동자의 권리주장으로서 산업민주주의나 이의 법제화가 가능한 것이다. 참가는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유혹하는 용어이지 않는가? 소위 경영참가는 노동자․민중들이 작업장과 그외에서의 투쟁을 통해 획득한 성과로서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체적인 사안별 작업장 투쟁과 그 성과로 지켜내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과 권력의 관료제적 참호를 차례로 점거해 가는 조직형식의 개혁이다. 자본이 던져준 노사협의제가 무용지물이듯이 양보교섭의 대가로 선심 쓰듯 던져 준 참가가 민주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산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작업 거부권을 비롯하여 산재위원회의 진보적 구성(노동자가 산재위원이 되어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심사하며 노동과정의 개선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신기술 도입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것 같은 산재위원회)이나 관리자들의 자의적인 배치전환이나 작업속도의 변경 등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저항과 반대의 교섭화, 제도화 노력 등 수많은 구체적 작업장 투쟁 방안이 있지 않은가? 경영참가라는 그럴듯한 구호아래13) 현장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방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아야 한다.

한/노/정/연


1) 정이환, “신경영전략하의 산업민주주의와 노동운동”, ꡔ신기술과 노사관계ꡕ, 서울: 한울, 1995, 241~265쪽.


2) 이에 대해서는 강연자, “재벌개혁과 경영참가”,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9. 1. 40호, 61~72쪽.


3) 경영참가의 역사를 검토하는 대표적인 글로서 H.Ramsay, “Cycle of Control; worker participation in sociological and historical perspective”, Sociology, 1977, 481~506쪽.


4) 이에 대한 논의는 신병현, “팀조직과 작업장 체제”, ꡔ문화, 조직 그리고 관리ꡕ, 서울: 한울, 1996, 145~155쪽.


5) 예컨대, 68년 영국의 사용자 단체의 한 문건은 “폭발을 피하기 위해서” “긴급조치”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H.Ramsay, 윗글.


6)공동체 이데올로기에 관한 역사로서 R.Bendix, “Work and Authority in Industry”, N.Y.; Harper & Row, 1956


7)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김성구, ꡔ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ꡕ, 문화과학사, 1998, 216~221쪽을 참조할 것.


8) 이에 대해서는 오세철, ꡔ맑스주의, 조직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한국사회의 변혁ꡕ, 현상과 인식, 1993, 86~110쪽을 참조할 것.


9) 이에 대해서는 W.F Whyte & J.R.Blasi, “Worker Ownership, Participation, and Control” in F.Fisher & C. Sirianni(eds.), Critical Studies in Organization & Bureaucracy, (Temple, 1984), 377~405.


10) 이에 대해서는 신병현, 윗 글.


11) 그간 민주 노조 운동은 자본측에 의한 노동과정의 합리화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추구되어 온 직무재편 과정과 같은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 시도에 대한 상대적 대응 부재(대표적으로 양봉수 열사의 분신사건으로 대표되는 작업장 짭수투쟁에 대한 무관심을 들 수 있다.)속에서 직제개편과 같이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화 통제 기제에 관한 정책 개발에 대한 관심(특히 금속연맹)과 산별조직 건설과 같은 조직 형식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12) 이런 원망추구적 프로젝트 경향은 특히 포스트-포드주의적 담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경영담론에서 거론되는 경영기법들을 마치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인 양 도용하는 이들의 담론형식에 대한 비판은 강석재, 이호창(편역), ꡔ생산혁신과 노동의 변화ꡕ, 새길, 참조.


13) 사실상 참가도 단순한 제안에서, 협의, 심의, 공동결정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정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작업장 민주화도 건의나 제안에서 작업장 대표의 선출과 경영관리자층과 작업량, 속도, 방법, 성원의 선발, 보상방법의 결정 등에 관한 교섭권 확보, 나아가 투자 결정에의 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생각할 수 있다. 보다 진보적인 형식의 쟁취는 일상적 현장 투쟁의 성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1999-02-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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