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기 노동운동의 쟁점
구조조정과 노동자 투쟁 - 평가와 전망(1)
이 은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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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노동자투쟁 평가
박 성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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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에 오른 지구화: 동아시아의 위기와 계급투쟁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
98년도 다 저물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98년은, 97년 구제금융신청과 김대중정부의 출범 이후 전사회에 대한 정부-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그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정리해고 입법화, 잠정합의안에 대한 대중적 거부, 비상대책위의 파업철회, ‘혁신과 투쟁’을 기치로 ‘투쟁지도부, 과도적 지도부’를 자처하며 들어선 민주노총2기 지도부,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저지투쟁, 98민중대회를 전후로 한 민중연대 전선의 복구와 재편 등 중요한 상황들이 전개되었었다. 또한 상황이 긴박했던 만큼 그 속에서의 논쟁도 활발하여 경제위기하 노동운동의 대응을 둘러싼 논쟁, 경제위기 논쟁, 재벌개혁 논쟁, 정리해고를 중심으로 한 전술적 대립, 전체 운동의 발전방향에 대한 논쟁,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논의의 확산 등, 대중운동 정치운동 모두 논의도 활성화되고, 지형의 변화도 오고 있다.
그런데, 원인은 깊이 짚어봐야겠지만, 올해는 상반기와 하반기를 나누어 차분하게 평가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99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느 때 같으면 99년을 둘러싸고 전개될 상황을 미리 예견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앞의 사정을 반영하여 현재는 98년을 충분히 되돌아보는 속에 전망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많았던 사건들 속에서도 98년 전체를 돌아보며, 이 사회가 무엇을 중심으로 흘러왔는지,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움직임은 어떠했는지를 큰 틀에서의 바라보기 위해 이번호 특집은 ?98년 한국사회와 노동자?로 잡았다.
첫번째 글은 경제위기를 둘러싸고 전개되어 온 실천적?이론적 흐름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고, 두번째 글은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본 98년 노동자 투쟁에 대한 평가이다. 마지막 번역글은 외국에서 바라본 동남아 노동운동, 그 속에서의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로서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밀도 깊은 분석은 아니지만 우리들에게 시야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함께 실었다. |
구조조정과 노동자 투쟁 - 평가와 전망(1)
이 은 숙
연구기획1실장
<차례>
1. 들어가며
2.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기조
3. 98년도 구조조정의 전개과정과 성격
1) 기초작업으로서의 ‘외자유치’와 ‘노사정위원회’
2) 구조조정 본격화 1기
3) 구조조정 1차년도 마무리와 구조조정본격화 2기 준비
4. 구조조정에 대한 98년도 노동자 투쟁
5. 구조조정 반대투쟁 전망과 99년 노동운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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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98년도 한국경제 ‘구조조정’은,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중과 거대화, 외국자본의 국내경제 지배력 심화, 대소자본간 격차 심화 등을 초래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노동자․민중의 조직적 저항을 봉쇄하는 방향에서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전개되었다. 구조조정은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라는 조건하에서 집중적이고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정부는 97년말부터 시작된 IMF 관리체제하에서 신자유주의 논리(경제개방, 탈규제, 경쟁과 효율, 노동운동 무력화 등)로 점철된 IMF 이행조건에 기반하여 경제구조조정에 나섰으며, 그것은 정부에 의해 “구조개혁”이라고 선전되었다.
IMF․한국정부는 위와 같은 기조와 조건 아래서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 두 가지 전제적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인한 한국 경제위기의 세계적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다른 하나는 노동자․민중의 저항의 제도화(체제내화)이다. 전자는 IMF의 구제금융과 정부의 외자유치 정책, 후자는 노사정위원회와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의 법제화를 통해 시도되었다. 전자는 ‘급한 불을 꺼놓자’는 것과 함께 ‘다국적(혹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적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면, 후자는 그와 같은 자본의 의도가 필연적으로 내국의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기에 그것을 미리 억제하려는 차원의 정지작업이었다.
따라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구조조정의 방향과 내용은 이미 IMF의 구제금융과 함께 조인된 ‘이행조건’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요컨대 IMF의 이행조건은 한국에서 다국적자본의 이윤추구운동을 전면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자본시장 전면 개방, 재벌에 의한 한국시장 독과점 상태 해소 즉 ‘재벌해체’, 노동시장의 ‘유연화’ 즉 해고의 자유 보장 등)을 모두 담고 있었고, 김대중정권은 이를 ‘구조개혁’이라는 이름하에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정부․IMF의 이러한 구조조정 정책은 한국 경제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자관계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경제구조의 변화 측면에서 단연 핵심적인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개입력 확대와 자본의 집중 심화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한국경제를 좌우해왔던 재벌의 독점적 지배구조를 해소하는 대신 외국 다국적기업과 국내 독점자본을 양축으로 한 ‘효율화된’ 거대자본분파에 의해 경제지배 구조를 구축하는 것으로 귀착되고 있다.
노자관계의 지형 변화는 경제구조 재편 과정임과 동시에 그 전제 조건이자 토대이다. 거기에서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노동조합운동의 제도화 내지는 체제내화 기도가 가장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였다. 자본에 의한 직접적인 요구, 이를테면 정리해고 및 파견노동 등이 바로 그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동의’하에 법제화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사정위원회로 수렴하고 거기에서 박제화시키는 기도가 보여졌고 그 박제화를 거부하는 투쟁에 대해서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진압하는 고전적인 방식이 재등장하였다.1)
결국 정부․IMF의 구조조정 정책은, 외국자본과 연합하고 내국 노동자․민중을 배제시키는 것을 골간으로 하여 ‘국가경쟁력’을 도모하는,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서 보아 당연하지만 노동의 논리로 보아 부당하기 이를데 없는, 대량실업 상황을 전제로 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98년도에 노동운동이 핵심적인 현안문제로서 제기했던 ‘정리해고 철폐’ 요구는, 정부․IMF의 구조조정 정책기조에 대한 반대를 한 측면으로 하고,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수호를 또 한 측면으로 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99년도에도 98년도와 동일한 기조에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또한 98년도의 구조조정 과정을 ‘기반 마련’ 차원에서 파악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올해의 정책과제를 제출하고 있다. 이것은 99년도의 구조조정 과정이 98년보다 더욱 극심한 양상을 띨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글의 목표와 과제는 98년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특징은 무엇이었고 전개과정은 어떠했는지, 노동운동의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올해 노동운동의 대응방향을 찾아내는 데 있다.
2.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기조
97년도에 한국경제 위기가 전면화되고 있을 때, 한국경제는 이미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었고, 게다가 국민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하는 정책과는 거리가 먼 독점자본 중심의 경제운용으로 일관해왔던 수십년간의 제도와 관행으로 인해, 한국은 경제위기에 대한 독자적 대응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정부와 관변 일각에서 제법 큰 쟁점이 되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고 그 이후는 일사천리로 다(초)국적자본의 이해대변자인 IMF의 신자유주의적 논리대로 국내 경제구조에 대한 전면 개편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한국 경제위기는 국내 경제를 그동안 좌우해왔던 재벌그룹의 잇단 부도사태로 인한 금융경색과 그러한 부도사태를 앞뒤로 하여 외국자본이 급속히 유출되거나 신용거래 중단 조치를 취함으로써 초래된 외환부족으로 인한 금융․외환위기의 형태를 띄고 나타났다. 따라서,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된 약 1개월반에 걸친 과정에서는 다국적자본의 분탕질이 한국 경제위기를 보다 급격하게 조장함으로써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도록 여건을 조성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현재 세계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다국적자본의 요구에서는, 한국경제가 모라토리엄(국가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경우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파급력은 미국 및 일본을 거쳐 세계로 확산되었을 것이며, 그것을 수습하는 데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비용이 예고될 터이기 때문이다. IMF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은, 이윤을 쫓아 최고도로 효율화되고 최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의 성과를 독점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동시에, 너무도 모순적이지만, 최고도로 이윤생산의 위기에 직면한 다국적자본의 운동방식으로 보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어쨌든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택’했고, IMF의 요구대로 한국경제를 재편할 것을 ‘결정’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부가 IMF 이행조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밀고 나간 것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선택이었다. 이것을 정부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초(다)국적기업에 의해 심화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상황과 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위기극복전략(즉 신자유주의 전략)에 철저히 부응하려는 의사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경쟁력’이라는 갑옷을 입고 내국의 노동자․민중에게 그 길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강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네 부문으로 나누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른바 ‘4대 구조개혁 과제’라고 해서 내놓은 그것은, 금융, 기업, 공공, 노동시장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서 한국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었고, 어디어디 할 것 없이 모두 ‘빅뱅’(대폭발)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부는 ‘외자유치’라는 이름하에 적극적으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IMF의 시장개방 요구를 수행했으며, ‘노동시장유연화’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절대절명의 전제로서 노동자계급에게 강요되었다. 그러한 강요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동의되는 형식을 취했는데, 그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대타협’은 ‘강요된 동의’였다. 이하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성격과 전개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3. 98년도 구조조정의 전개과정과 성격
앞에서 간략히 언급했지만, 정부는 IMF 이행조건에 담긴 기조와 내용을 바탕으로 그 제도와 절차마련, 수순조정, 그리고 국내 노동자․민중의 저항력에 대한 별도의 조치(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하에서는 98년 초부터 99년 2월 중순 현재까지의 구조조정 전개과정과 성격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첫째, 기초작업으로서의 ‘외자유치’와 ‘노사정위원회’, 둘째, 구조조정 본격화 1기, 셋째, 구조조정 1차년도 마무리와 구조조정 본격화 2기 준비.
1) 기초작업으로서의 ‘외자유치’와 ‘노사정위원회’
98년 4월 정도까지 집중적으로 ‘외자유치’ 정책이 취해졌는데, 이는 6월까지 계속된 ‘저항봉쇄’ 정책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기반조성 작업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 외자유치는 외국자본의 유출과 급격한 금융붕괴 가능성 등 진행중인 경제위기의 확대를 차단하고 IMF의 요구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위해 불가결한 것으로서 추진되는 성격을 띄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외자에 의해 이루어질 국내경제 지배력과 노동자․민중생활 피폐화라는 측면은 은폐되었다. ‘저항봉쇄’ 정책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시기를 표현하면서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하나의 유행어는 ‘대외신인도’라는 말이다. 정부․자본에 의하여 유포된 바에 따르면, 대외신인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곧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그것은 외국자본이 적극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장 유연화’2)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리해고제 등으로 대표되었던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은 96~97년초 총파업투쟁으로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었기 때문에 정부․자본측은 노동자들의 이러한 저항을 무마시키는 것이, 정리해고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거기에 ‘노사정위원회’의 태동 배경이 있다고 할 것이다.
‘외자유치’와 ‘노사정위원회’는 시시각각으로 확대되고 있는 금융․외환위기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인 논리들 속에서만 정당한 것이었고, 과잉축적 경향의 심화와 극심한 자본간 경쟁으로 인하여 70년대부터 그 위기를 노정해오고 있는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다(초)국적 자본의 위기타개책이라는 차원에서만 정당한 것이었을 뿐이다.
요컨대, ‘외자유치’의 경우, 다(초)국적 자본의 세계시장 재편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이 급속히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동시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쪽의 ‘동의’를 얻어 정리해고제 등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법제화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봉쇄한 한국정부의 노력으로 외국자본은 한국의 경제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한국에서의 이윤수탈 기반을 어느 나라에서보다 유리하게 제도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외자유치’는 다시 말하면 외국자본의 수입이고, 외국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수출’을 의미한다. 상품의 수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수출’ 역시 어떤 형태로든 이득이 따라붙지 않으면 굳이 수출될 필요가 없다. ‘자본수출’의 목적은 ‘이윤’ 혹은 ‘이자’에 있다. ‘이윤’을 목표로 하는 자본은 ‘산업자본’의 형태로, ‘이자’를 목표로 하는 자본은 ‘대부자본’의 형태로 수출된다. 즉 전자는 ‘이윤을 낳는 자본’으로 기능하는 자본의 유입이요, 후자는 ‘이자를 낳는 자본’으로 기능하는 자본의 유입이다. ‘직접투자’라고 불리우는 자본의 유입은 산업자본의 형태로 들어오는 것으로서 외국자본과의 합작이나, 외국자본에 의한 기업 인수․합병(M&A)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98년 한해 동안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88억5천만 달러(신고액 기준)로 97년의 69억7천만 달러보다 27%가 증가했다. 그것은 주로 대규모 인수․합병투자(M&A)가 대부분이며, 기존주식 취득 또는 사업부문 인수를 통해 이루어졌다. 99년도에는 기업구조조정의 본격화와 함께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99년도 외국인 직접투자는 98년보다 약 70% 정도가 늘어난 1백5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고되는 금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대규모라고 볼 수 있다.3) 더욱이 관세 등을 회피하기 위해 다양하게 고안된 각종의 파생금융상품의 발달로 파악되지 않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자본시장의 전면 개방에 따라 외국자본의 국내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급증할 것이다.
이자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대부자본 형태의 유입은 이자를 지불하기로 하고 차입되는 외채로서 자금시장에서 단․장기 자금으로 움직인다.
98년 11월말 현재 총 외채 규모는 1,524억5000만 달러였다. 그 중 39%인 593억9000만 달러는 금융기관에 의한 것이고, 28.2%인 430억4000만 달러는 민간부문, 24.3%인 370억3천만 달러는 공공부문, 8.5%인 129억9000만 달러는 외국은행 국내지점에 의한 것이다. 같은 기간 총 대외채권 규모가 1,325억 달러(국내금융기관 48.5%, 공공부문 38.5%, 민간부문 10.1%, 외국은행국내지점 2.9%)였기 때문에, 순외채 규모는 199억5000만 달러이다. 총 외채 중에서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외채는 20.3%로서 97년말의 40%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단기채 비중이 크게 줄었다.
직접투자 형태건 대부자본이건, 어떤 형태를 띠고 유입되든지 외자의 목표는 잉여가치(이자 혹은 이윤)지 한국경제의 위기극복 따위는 아니다. 정부는 그렇게 믿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자본의 목적은 분명하고도 냉혹하게 이윤 아니면 이자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외자가 한국에 들어와서 무엇을 할지는 명확하다. 이윤 혹은 이자를 최대한 뽑아내려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한 큰 틀에서의 조치가 IMF 이행조건, 그 중에서도 자본시장 개방, 재벌의 한국경제 독식구조 해소, 정리해고제를 포함한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다. 유입되는 외자는 다른 곳으로 자본을 수출하는 것보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으로 유입되는 것이므로 들어온 이상 최대한의 이윤 혹은 이자를 노릴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건의 대폭적인 개악(=‘유연화’)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따라 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통제와 탄압이 가중될 것이다. 만성적인 대량실업 상황이 구조화되어 자본이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실업․반실업 상태의 노동자 규모가 증대할 것이고, 전세계 노동자들과 일자리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기초적 생활과 관련되는 부문까지도 ‘자본의 효율과 경쟁’ 논리로 도색될 것이고 철저히 ‘수익성’원리에 지배될 것이다. 결국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민중의 생활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외자를 ‘유치’한다고 말한다. ‘국가경쟁력’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국가의 경쟁력이라면 뭔가 이상하다. 이윤 혹은 이자를 노리고 들어오는 외국자본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것인가? 정부․자본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무수히 외치지만 실은 ‘자본경쟁력’만 있을 뿐이다. 전경련이나 경총은 ‘기업경쟁력’이라는 말을 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자본가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서 ‘국가’는 이윤 혹은 이자를 쫓는데 하나의 도구로서 설정되고 있을 뿐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자본은 이윤 혹은 이자를 쫓아 그것에 유리한 조건이라면 국가에 상관없이 돌아다닌다. 지구적 차원의 경제, ‘무한경쟁’ 시대라고 하는 현대자본주의, 세계 곳곳에서 동시 공황의 조짐을 드러내며 불안정성의 극을 달리고 있는 현대자본주의는 그러한 자본운동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위기 치유를 위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이행조건에 합의하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그 기초준비로서 외자유치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외자에 의존해서라도 GDP(국내총생산)성장정책을 추구해서 경제위기를 벗어나겠다는 정책목표의 표현이겠지만, GDP 성장 등 몇가지 지표가 경제위기 치유책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경제위기의 본질은 국내/국외 이런 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요소들 몇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 그 자체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발생하고 있으며 자본운동의 세계적인 속성으로 인해 세계적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 세계자본주의는 통합성이 강화되어 감과 동시에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97년부터 아시아, 러시아, 중남미로 계속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위기는 곧바로 다른 나라로 전이된다. 그것은 자본이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자본주의 국가는 일국적으로 자기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한 나라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국가는 자본의 운동에 완전히 종속되어 가고 있다. 정부는 자본운동의 원활화를 위한 보조물일 뿐이라는 것이 오늘날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경향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논의되다가 각국(자본)간 이해대립과 세계 각지에서의 노동자․민중의 반대투쟁으로 협정성립이 지연되던 끝에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재추진하기로 된 MAI(다국간투자협정)는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다(초)국적 자본의 권리헌장’이라는 별칭이 붙어 다니는 MAI초안은 외국으로부터의 모든 투자에 대하여 국경개념이 들어간 모든 규제를 철폐할 것을 강요하고, 세계적인 규모로 이윤을 추구하는 초국적 기업에게 국가보다도 우월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건 마음대로 이윤을 탐할 자유를 보증하고 있다.4) 각국의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이와 같이 세계적 수준에서의 자본운동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각국의 경제는 다(초)국적자본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거기에 편승하고 있다. 정부의 논리는 그렇게 해야만 경제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 특히 가장 효율화되어 있고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다(초)국적자본의 논리에 전적으로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특히 외자를 적극 끌어들이고 있는 맥락에서 본다면, 외자의 이윤 혹은 이자 추구활동을 보장해 주어야 ‘경제위기’ 상황이 재발하지 않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노동자․민중이 그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자본에게 완전히 헌납하라고 강요하는 논리이다.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끌어낸 ‘대타협’의 내용이란 ‘재벌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였는데, 그것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결국 내국자본이건 외국자본이건 ‘세계적 수준에서 경쟁력 있는 자본’을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요컨대 정부가 위와 같이 적극적으로 IMF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요구를 수용하고 정책의 방향을 잡아나갔던 것은 외국자본, 특히 국제적인 다(초)국적 자본의 이해와는 전혀 배치되지 않지만, 국내 독점자본은 더 이상 내국자본이라는 이유로 권력으로부터 비호받을 수 없게 됨과 동시에 외국자본과 직접 경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점은 일반 사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도 마찬가지인데, 그 이유는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사기업과 같은 수익성의 원리를 적용하여 합리화 방침을 분명히 했고 또 광범한 공기업에 대해 사기업화(민영화) 방향을 명백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정부가 내세워온 ‘경쟁력 있는 자본’은 지원하고 ‘경쟁력 없는 자본’은 퇴출시킨다는 정책은 이를테면 국내경제를 그동안 독점적으로 지배해왔던 재벌들이 그 독점적 지배권을 더 이상 안전하게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외국자본도 포함해서 자본간 경쟁에서 살아남는 쪽이 국내경제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자본간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본은 ‘경쟁력 있는 자본’ 그렇지 못한 자본은 ‘경쟁력 없는 자본’이 되는데, 그 기준은 ‘이윤’이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자본’이란 경쟁상대보다 이윤을 많이 내는 자본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각각의 자본은 이윤을 더 많이 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윤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임금노동자를 생산과정에 결합시킴으로써 나온다. 이를테면 ‘인건비 절감, 생산효율 증대’가 자본에게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래서 자본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어떤 방식으로 고용할 것인지,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핵심적으로 고려하게 되는데, 바로 그런 점에서 자본은 정리해고제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정권의 ‘재벌개혁’은 노동자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재벌개혁’은 내국자본의 ‘경쟁력’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노동자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의 수탈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나간다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외국자본까지 포함하여 자본간 경쟁이 벌어질 때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너무나 뻔하고,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내․외자본은 경쟁적으로 ‘인건비는 낮추고 생산효율은 높이는’ ‘이윤경쟁’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만성적인 대량실업 사태는 이 과정에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정부 스스로도 “고실업 상태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장기 실업자의 비중도 증가할 것”(재정경제부, 1998.12.29)이라고 하는 맥락이 거기에 있다.
그 점을 포함하여,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자본의 ‘경쟁력’을 최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본의 그러한 경쟁력 향상을 위해 자본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외자유치를 위해 정리해고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김대중정권이 열심히 주장할 때 그것은 이미 노동자와 타협할 여지도 없고 의사도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그것은 ‘공평한 고통분담’을 위한 것이라며 노동자들에게 그 ‘대화의 장’에 나와서 ‘대화와 타협’을 해보자고 노동조합운동을 설득해왔던 것은 완전히 기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노동조합운동을 자본운동에 ‘정책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국내 노동자․민중의 저항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2) 구조조정 본격화 1기
정부는 위와 같은 작업에 기반하여 금융, 기업, 공공 부문별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1998년 5월경부터 1998년 11월까지는 제1차 본격적인 구조조정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금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1차 마무리하고 금융기관간 자체 합병․통합을 유도한 것, 공공부문에 대한 1차 구조조정, 그리고 6~64대 기업에 대한 워크아웃 본격화와 5대재벌 구조조정 촉진방안 마련 등 기업구조조정에 시동을 건 것 등으로 실제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이다.
98년 11월 정도까지로 볼 수 있는 이 시기에 금융부문의 경우 1단계 구조조정은 마무리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공공부문에 대해서도 2차례에 걸친 합리화계획이 발표되었다. 기업부문은 금융권 구조조정과 밀접하였으므로, 금융권에 대한 조치가 한 단계 마무리된 시점에서부터 은행을 중심으로 한 주채권은행을 내세워 기업구조조정 창구 역할을 하도록 조치되었다.
따라서 맨 먼저 본격적인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된 것은 금융부문이다. 금융기관은 자금창구로서 초기의 금융․외환위기를 확대하는 통로였기 때문에 구조조정 본격화 이전인 97년 1월에 이미 종합금융사(종금사) 9개를 폐쇄조치하는 등 급속한 조치들이 우선 취해지면서 출발하였지만, 이후에는 무엇보다도 자금줄(금융부문)이 정부의 정책을 분명하게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재편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기업 및 공공부문보다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다.
97년 12월 금융관련 13개 법률이 제․개정되는 한편, 98년 4월에 ‘금융․기업 구조개혁 촉진방안’과 ‘금융감독체계 일원화’ ‘예금보험기구 통합’ 등의 조치가 이어졌고, 5월에는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5)이 확정되었다.
이에 입각하여 98년 8월까지 비은행금융기관 79개(종금사 16, 증권사 4, 투신사 2, 생명보험사 4, 상호신용금고 17, 신용협동조합 36)에 대한 인가취소 혹은 영업정지 조치가 취해졌고, 5개 시중은행에 대한 퇴출명령이 있었다. 나머지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BIS기준 8% 충족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금융기관간 통폐합과 외자와의 제휴 등이 모색․가속화되었다. 외환은행은 독일 코메르츠은행으로부터 출자를 받았고,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은 정부 출자로 도산위기를 넘긴 뒤 외자기업 인수를 추진하였다. 5개 퇴출은행은 각기 P&A(자산인수)방식으로 국민은행 등 5개 은행에 의해 통폐합되는 한편, 국민은행은 다시 장기신용은행과 합병하고, 상업은행은 한일은행과 합병하는 등 금융기관의 거대화도 동시에 추진되었다. 98년도의 금융구조조정은 이와 같이 강제퇴출, 흡수합병, 외자유치를 축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노동자들은 대거 해고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퇴출된 5개 은행(경기, 동남, 대동, 동화, 충청)의 9,600명, 조흥은행 등 조건부 승인 7개 은행의 3,4000명, 그리고 인가취소 혹은 영업정지된 비은행금융기관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유동화되었다.
‘기업구조조정’은 금융과 공공부문을 제외한 일반 사기업이 대상인데, 금융 혹은 공공과는 달리 구조조정의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 금융은 사기업의 자금줄이고 공공부문은 사기업의 광범한 보조물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업구조조정은 특정분야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진행되고 그 포괄범위가 넓다는 의미에서 구조조정의 일반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조조정의 핵심은 기업구조조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내세운 기업구조조정의 목표는 ‘기업부채의 축소와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재경부, 1998.6)에 두어졌다. 기업구조조정의 정책수단은 ‘퇴출명령’ ‘워크아웃’과 ‘빅딜’이고, 은행으로 하여금 기업의 부실 여부를 판별하도록 해서 지원과 퇴출을 결정하였다.
정부의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한 원칙은 ‘기업구조조정 5대원칙’(기업경영의 투명성, 상호채무보증 해소, 건전한 재무구조, 핵심기업의 설정 및 중소기업과의 협력강화,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성 강화)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98년 1월에 5대재벌이 정부의 안에 합의해서 성립된 것이지만, 거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은 재벌의 지배구조에 대한 것이다. 이에 입각해서 정부는 98년 2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4월에는 뮤추얼펀드 시장개방과 기업구조조정 기금 설치, 자산담보부 채권(ABS) 발행, 3조원 규모의 토지공사채권 발행을 통한 기업보유 부동산 매각 촉진 방안 등을 담은 ‘금융․기업구조개혁 촉진방안’을 내놓았고, 5월에는 증권거래법을 개정하였다. 동시에 기업분할제도 도입과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허용, 지주회사 부분적 허용 등을 통해 M&A를 촉진시킬 계획도 발표했는데, 이는 적대적 M&A를 허용하는 것 및 다(초)국적 자본과 IMF에 의해 요구된 자본자유화 조치의 일환이자 외자유치의 방편이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들 속에서 98년 5월까지 금융기관(채권은행단)을 통한 우량 혹은 부실기업 판별작업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5월20일 ‘정리대상 부실채권 규모 및 정리방법’이 발표되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요주의 여신까지 포함한 불건전 여신’은 총 118조원 규모, 그 중 정리대상 부실채권은 100조원으로 예상했고, 금융기관 손실처리(50조원), 담보매각을 통해 금융기관이 회수(25조원), 정부가 성업공사를 통해 매입정리(25조원)해서 처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6월18일 5대재벌 20개 계열사를 포함하여 55개 기업에 대한 퇴출명령이 떨어졌다.
금융쪽과 마찬가지로 기업쪽에 대해서도 정부는 ‘퇴출명령’을 우선하고 자체적인 합리화를 독려․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기업구조조정에서 중심수단이 되고 있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은 채권금융기관을 매개로 추진되고 있다.
먼저 98년 6월25일에 208개 금융기관이 ‘기업구조조정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정부가 IBRD로부터 제2차 구조조정 차관(SAL II) 도입을 위해 IBRD와 맺은 기업구조조정 관련 협약에 근거한 것이다. IMF와의 98년 3/4분기 협의(98년 7월) 때 조정된 데 따르면 그 내용은, ▷기업구조조정 기구 설치 등 기업대출금 출자전환 활성화, ▷상호지급보증의 주식 또는 주식인수권부 사채 전환 등 상호지급보증 해소 촉진, ▷신속한 파산기업 처리를 위한 법원 관리 파산절차 등 개선, ▷법정관리기업(기아 및 한보)에 대한 처리 시한, ▷재무구조 개선계획 강화 등을 통한 5대개벌의 자체 구조조정 촉진 등이다.
기업구조조정협약 제2조에 따르면 워크아웃은 “대출채권의 출자 전환, 단기대출의 중장기 전환, 대출원리금의 상환유예, 이자감면, 채무면제 등 채무구조조정과 신규자금지원, 상호지급보증 해소, 감자(減資), 주력사업 선정, 외자유치 등을 통하여 기업의 재무구조를 건설화시키기 위한 절차”이다. 그러므로 워크아웃은 부실기업의 ‘퇴출’ 혹은 정부의 정책지원을 통한 ‘회생’과 관련되어 있다.6) 98년 하반기에는 5대재벌 주력기업을 포함하여 6~64대 기업에 대한 워크아웃 대상기업 선정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동시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및 기업교환(빅딜)에 대한 세제지원’(재정경제부, 1998.8.28) 방안이 발표되었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에 의해 5대재벌 주력기업 1, 2개에 대한 워크아웃 대상기업 선정 시한이 11월말로 정해지고, 6~64대 기업과 중견기업을 포함한 워크아웃 대상 선정기준 초안이 11월초에 발표되었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가 내놓은 ‘워크아웃 대상기업 선정기준(초안)’은, 채권규모 상위 5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사전에 비밀심사를 통해 워크아웃 적부(適否)를 가리게 하였고, 부적격 대상 기준을 정하고 있다.7) 그리고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됐더라도 실사 중에 해당기업의 수익가치와 청산가치 차이가 거의 없는 것 등으로 판명되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도 부가되었다.
이에 따라 주채권은행들은 12월초까지 5대그룹, 6~64대그룹 및 중견기업, 중소기업 등으로 영역을 구분하여 워크아웃 확정과 사후관리를 하기로 했는데, 6~64대 그룹 및 중견기업의 경우 77개사가 워크아웃 대상으로 확정되었고, 여신규모가 비교적 큰 2만2,760개 중소기업의 경우 1만3,985개는 ‘조건부 지원’, 1,405개는 ‘지원중단’ 기업으로 선정했다.(다음호에 계속)
1) 98년 하반기에 있었던 현대자동차와 만도기계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이러한 양면적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2) 주지하다시피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것은 자본에게 해고와 고용의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리해고를 인정하고, 파견노동을 허용하고, 변형노동시간제를 허용하고, 그에 따라 임금의 책정기준과 지급 및 수준도 변형시키는 등등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말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해고’는 고용관계를 종료(해제)하는 것으로서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간단히 들어오는 개념인 반면, ‘고용’의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은 간단치 않다. 그것은 고용형태(즉 정규직, 시간제, 일용, 임시, 용역, 파견, 촉탁, 기타 등등)부터 시작해서 고용조건(임금, 노동시간을 필두로 한 전체 노동조건 및 채용조건)까지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 권한을 자본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은 처음부터 노동조합의 역할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이 발생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러한 해고/고용 문제들에 대한 자본의 전횡을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단결하여 제동을 걸게끔 된 데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운위하고 그것을 아예 법․제도화시킨 것은 완전히 시대를 노동조합이 처음 발생한 19세기 후반기로 되돌려놓으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또한, 그런 맥락에서 보면 ‘노동시장 유연화’는 자본측의 오래된 요구이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도 아닌 오늘날 자본이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에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현대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심화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잉축적)을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의 전횡을 각색하여 이용해서 노동에 대한 수탈을 극대화함으로써 극복해 보려는 것에 불과하다.
3) 일례로, 지난 12월15일 확정된 ‘5대그룹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는 5대재벌이 98년에 88억9600만 달러, 99년 151억4100만 달러, 2000년 14억5000만 달러 등 2000년까지 총 254억8700만 달러의 외자를 들여올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4) 졸고, “‘구조조정’과 노동자계급의 대응방향”(1), ꡔ노동전선ꡕ 99년 1월호 참조.
5) 정부는 이 방안을 통해 5월 이전에 발행한 14조원의 채권 외에 50조원의 기금채권을 추가로 발행하고 재정에서 채권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는 지원책을 내놓았다(재정경제부, 「98년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 1998.8.27).
6) 워크아웃과 빅딜에 대해서는 졸고, “소위 ‘기업구조조정’에 대하여-‘워크아웃’과 ‘빅딜’”, ꡔ노동전선ꡕ 1998년 12월호 참조.
7) 기업구조조정위원회가 마련한 부적격 대상은 다음과 같다. ▷외국금융기관 등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 금융기관의 부채가 많은 기업 ▷사업전망이 불투명하거나 신규자금 지원규모가 큰 기업 ▷채권 행사 유예기간 중 정상 이자지급과 상거래 유지가 힘든 기업 ▷다른 기업에 대한 보증채무가 과다한 기업 ▷소수 금융기관이 과점형태의 채권을 갖고 있는 기업 ▷상습 연체 등 금융거래가 불량한 기업 ▷대주주 및 경영진의 자구노력 의지가 부족한 기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