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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건설논의

현장에서 미래를  제43호
김영수


기

관

참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건설 논의,

퇴보인가, 정체인가, 진보인가

김 영 수

연구위원/외국어대강사, 정치학







1. 진보정치의 ‘진보’란 다양한 것인가?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의 건설과 관련된 논의와 과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생성∙발전되어 왔던 노동자 계급운동의 역사와 함께 실현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다. 아예 보수∙개량주의적인 부르주아들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에 매장되어 버린 적도 있었다.

한국의 진보정치 진영은 이러한 역사성을 계승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의 유령이 전 지구를 배회하고 있는 1999년 4월 14일, 민주노총과 현재 존재하는 진보정치운동 진영 모두(?)가 종로성당에 함께 모여 대규모(?)의 정치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에 참석한 국민승리 21, 민주노총, 전국노운협, 정치연대, 진보정치포럼, 청년진보당 등의 참여주체들은 이 자리에서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과제를 새롭게 재구축하기 위한 배냇짓을 또 다시 시작하였으며, 한국 진보정치의 ‘신세기의 새로운 희망 찾기’에 나섰다.

1990년대 초반 이후 파편화된 진보정치의 역량을 새롭게 구축하면서 신세기를 맞이하자는 의지의 표출이었을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지도자라고 인식해 왔던 김대중 정권의 이념적 실체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현실화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의 고통을 진보정치의 통일된 역량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을까?

그 의지는 참석자들의 양적인 측면에서의 열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좌석이 부족하여 바닥에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어 선 채 발산하는 참여주체들의 열기는 당장이라도 보수정치의 거대한 빙산을 뿌리 채 녹이고도 남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의지와 열정은 토론의 전개과정에서 시시각각 뜨거운 가슴의 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보수정치의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깨뜨리기는커녕 빙산의 부근까지 다가갈 ‘진보정치호’조차 진수하기 어려운 상황의 연출이었던 것이다.

민주노총 사무총장 고영주는 ‘신자유주의 고통을 전담하고 있는 한국 노동자 계급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의 출현은 필연적 과제이다.’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이 토론회의 성격을 ‘진보정치 내부의 차이와 공통의 지형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운동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규정하였다.

참여주체들은 이러한 규정에 걸맞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의 역사적 당위성이라는 차원에서 공통의 지형이 재차 확인되었던 것이다. 또한 서강대 교수인 손호철이 정리한 쟁점, 즉 ‘단일한 진보정당이 필요한 것인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건설 추진방식의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진보정당건설 추진주체들의 내부 민주주의 문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많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진보정치운동 진영이 공개적으로 ‘차이의 지형과 공통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이 토론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차이의 지형과 공통의 지형’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이 났다는 점이다. 물론 ‘당위적 공조 현실적 분화’라는 차원에서 진보정치의 지형을 확대∙강화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해방정국 이후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의 정치운동은 ‘당위적 공조’라는 역사적 원칙조차 지켜낸 적이 거의 없었다. 있었다면 단지 부르주아적인 선언적 정치에 한정시켜 버리는 오염된 진보정치뿐이었다. 오히려 ‘현실적 분화’로 인해 노동자 계급정치운동의 질곡들을 스스로 짊어지는 형극의 길을 걸어 왔다.

현실적 분화현상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이 토론회는 1990년대 초반에 있었던 ‘합법정당 건설논쟁’을 부활시켰다. 물론 당시의 논쟁과는 많은 지점, 예를 들면 국가권력의 성격, 계급역관계의 변화, 진보정당의 이념적 상, 진보정당의 건설주체∙건설방식 등에서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 분화’에 급급하는 진보정치운동의 주체들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건설운동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과거로 되돌리고 있었다.

진보정치에서 의미하는 ‘진보’는 과연 무엇인가?

개념적으로만 본다면, 분석자 개개인에 따라 그 수준과 내용이 천차만별(千差萬別)적으로 변화무쌍할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고 있는 진보정치의 현실적 내용과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진보정치의 ‘진보’는 보수정치와의 정치적 적대전선의 주체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인지, 진보정치운동 내부의 현실적으로 다양한 분화전선의 주체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인지, 과연 진보정치의 ‘진보’를 어떻게 재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 진보정당운동의 희망을 1990년대 초반에서 찾자?


토론회의 참여주체들은 공히 노동자∙민중운동의 객관적 조건, 즉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로 말미암아 노동자∙민중들의 삶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진보정치의 활동공간이 확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노동자∙민중들을 삶의 고통의 질곡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진보정치운동의 깃발을 내리 꽂고 삶의 고통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대중적 주체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투쟁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진보정치운동의, 진보정당의 전략적 목표 및 계급적 성격, 깃발을 내리 꽂는 방식, 정치적 주체들을 조직∙투쟁하는 방식,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서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토론회에서 제기된 내용만을 근거로 구분한다면, 아래의 <표>에서처럼 소위 신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과 형식의 차이는 이미 1990년 초반의 합법적 민중정당 건설논쟁의 연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표>로 간략하게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표>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건설 논의유형

<표>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건설 논의유형

비고 : 진보정치포럼과 청년진보당은 유형의 수준에서는 ‘신정당건설론’에 해당하지만 진보정당의 건설과 관련된 구체적인 지점에서는 ‘신대중투쟁론’ 혹은 ‘신시기상조론’과 혼재되어 있다

    유형

진보정당

신혁명주의론

신정당건설론

신대중투쟁론

신시기상조론

전략적 목표

국가권력분쇄

및 점유

국가권력에의

참여 및 획득

국가권력 장악

국가권력 장악

성격

 

계급연합적

대중성

변혁적 대중성

변혁적 계급성

결성시기

 

제도권 정치에

조응하는

피동적 일정

주체적 일정

주체적 일정

주요

투쟁방식

전민중적 봉기

선거투쟁

정치적

대중투쟁

전선적

계급투쟁

추진방식

책임방기주의

패권적

선점주의

원칙적

정석주의

민주적

합의주의

주체

전국연합

국민승리21

민주노총

전국노운협

정치연대(준)

.

위 <표>의 내용들은 토론회에서 제기된 핵심적인 내용을 근거로 각각의 입장을 진보정당의 전략적 목표∙성격∙결성시기∙주요 투쟁방식 등을 축약하여 간단하게 정리한 것인데, 아래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근거들을 가지고 각각의 입장들을 평가하고, 각각의 입장이 국가∙자본과의 계급적 힘의 관계에서 노동자 계급의 계급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중의 하나인 ‘정치적 계급투쟁의 역량 및 투쟁공간의 공간의 확대’라는 잣대로 총괄적인 평가를 하고자 한다. 


1) 민주노총

민주노총의 정윤광은 “개량화의 가능성이 존재할지라도 국가권력의 획득과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는 계급연합정당, 민주노총 상부의 의지를 통일시켜 내어 정당을 건설하고 이어서 정당건설운동의 토대인 노동현장의 대중들의 의지를 통일시켜 내는 방식, 투쟁을 조직하는 정당건설운동을 앞으로의 과제로 설정, 추진위 과정상에서 드러난 비민주주의적인 복잡한 관계들을 우리의 현실로 인정”하였다.

이 주장은 ‘신정당건설론’의 핵심이자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의 역사적인 질적 발전의 현상, 즉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결의에 기반하는 진보정당 건설운동이 구체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원론적인 차원에서 정당이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해 낼 수 있는 주요한 한 축이라고 상정하였는데, 원론적으로는 정당할지라도 현실적으로는 노동자 대중들의 역동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결여하고 있는 근거이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위기시에 전개되는 진보정당운동이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도 매우 빈약하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이 국민승리21로 한정되는 것은 아닐진대, 하나가 되어 시작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진보정당운동이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의 묘혈(墓穴)을 파고 있다. 정윤광의 지적대로 ‘진보정당 추진에 대한 노동현장 대중들의 정치의식의 불균등성과 개량화의 가능성’ 등을 담지한 채 전개되는 패권적이고 선점주의적인 진보정당 건설운동은 오히려 정치적 계급투쟁의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1998년 5월 ‘진보정당 건설운동을 국민승리21을 중심으로 전개한다’는 민주노총의 결의내용에 대한 내부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의내용을 성실하게 집행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현재의 진보정당 건설 추진사업은 대중조직의 지도∙집행력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결의과정 및 결의내용에 대한 조직 내부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결의사안을 비판적 의사를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집행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오히려 조직의 지도∙집행력 및 조직역량을 크게 훼손시킬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운동 상층의 의지로 노동현장 대중들의 의지를 추동시켜 나아가고자 하는 ‘상의하달식 건설방식’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에 상층 명망가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던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철을 변형적으로 밟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노동현장 대중들의 정치의식 및 정치적 의지를 작위적으로 폄하는 것에 불과하다. 상층의 지도부가 노동현장 대중들보다 선진적이고 투철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화되었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전도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진보정당 건설이 현재의 방식대로 추진된다면, 오히려 노동현장 대중의 정치적 분화 및 다양한 노동자 정치운동 주체들의 분화로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투쟁역량을 축소시킬 것이고 정치적 투쟁공간도 협소하게 만들 것이다.


2) 국민승리21

국민승리21의 황선진은 “불가근 불가원적인 선거투쟁을 중심으로 국가권력에 참여, 투쟁력과 전문성을 담보한 생활조직으로서의 진보적 대중정당, 2,000년 총선일정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상층 중심 및 중앙당 중심의 당건설 추진, 정치∙투쟁∙생활을 통일시켜 내는 정당활동, 현재의 비민주주의적 추진방식을 고수하면서 사회운동 진영 전체에게 분열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 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신정당건설론’의 주요 투쟁사안인 선거는 분명히 대의제도를 통한 계급이해의 관철이라는 현대 자본주의 정치제도의 특성상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박세길의 지적처럼 ‘보수주의적 정치권력 구조가 응고화되어 있는 제도권 내에서의 진보정치의 어려움’과 ‘선거정치의 딜레마’, 즉 득표확대전략의 차원에서 혹은 권력분점전략의 차원에서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포기해야만 하는 의회주의에 경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정체성에 기반하는 정치적 투쟁공간이 부르주아 제도정치권 혹은 선거로 한정된다면,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은 노동자 계급 이외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구조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고, 유권자로서의 노동자∙민중들은 탈계급적인 종교∙지역∙연고 등 노동자 계급 이외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들에 기반하여 투표할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계급적 정체성의 정치를 제도적 수준에서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탈계급적인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 혹은 국민적인 일반이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에 불과하다. 정치를 계급의 차원으로 이해하지 않고, 개인과 국가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이는 계급적 정체성을 상실시키는 과정이며,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계급구성원으로 보기보다는 집단의 구성원, 즉 정체성의 정치의 주체로 보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탈계급적인 정체성의 정치는 라클라우와 무페의 “등가의 연쇄 및 단순한 헤게모니적 접합”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진보정당 건설 추진위의 패권주의적 선점주의는 이번 토론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황선진의 정치적 담화로 표출되었다. ‘선거회피주의 세력’들을 비판하면서 제기된 것인데, 그것은 ‘전국연합은 전선으로, 전국노운협은 투쟁으로, 청년진보당은 패기로, 진보연대는 원칙으로, 국민승리21은 원숙함과 노련미’로 각자 대처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진보정당 추진위에 참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국민승리21과 민주노총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추진위 밖에서 비판하고 있는 정치적 주체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신들의 정치적 일정과 행보의 정당성을 이번 토론회에서 찾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도 배제할 수 없는 담화인 것이다.

사실 정치적 권리들이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의회적 범위를 넘어서는 투쟁에 의해서만 보다 쉽게 획득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노동자들의 계급적 투표행태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의회주의로의 경도는 노동자∙민중들의 계급적 정치의식의 형성 및 노동자들의 계급적 투표행태의 성장을 저해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계급역량의 구축을 요원하게 할 것이다.


3) 전국노운협과 정치연대

전국노운협의 박찬식은 “지역내 노동자 대중들을 대상으로 변혁적 정치활동의 강화를 통한 국가권력의 장악, 정당으로 제한하지 않는 상태에서 지역의 대중들과 함께 하는 변혁적 정치운동조직, 제도권의 정치일정에 급급하지 않는 진보정치운동 내부의 주체적인 일정, 대중들의 정치적 행동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일상적 정치투쟁, 대중적 수준에서 불신 받고있는 국민승리21과 민주노총 중심의 패권적인 추진 방식으로는 국민승리21∙민주노총 또는 진보적인 정치운동 모두가 죽는 사망(dead-dead)전략.”이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정치연대의 박성인은 “신자유주의의 전위대로 나서고 있는 국가권력의 장악, 현실적인 계급투쟁의 과제에 복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정치적 대안세력으로 등장하는 정치조직, 제도권의 정치일정과 진보정당 추진위의 형식적 결정에 급급하지 않는 주체적인 일정, 노동자∙민중연대 및 국제연대를 토대로 노동자 계급의 현실적 조건에 조응하는 계급적 투쟁전선의 강화활동, 패권적인 추진방식을 폐기하고 진보정치운동 및 민주노총 내부의 전면적인 재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기하였다.

박찬식이나 박성인은 ‘대중적 수준에서 볼 때, 국민승리21로 진보정당 건설이 추진되어서는 안되고 또한 1998년 민주노총 내부의 결정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를 표출하면서 ‘신대중투쟁론’과 ‘신시기상조론’을 각각 제기하고 있다. 의회주의로 경도될 수 있는 부르주아 제도권 정치의 한계를 직시한 상태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건설 추진주체와 추진방식에 제동을 걸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는 노동자 대중투쟁의 정치를 활성화시켜 내고, 그 투쟁의 역량을 토대로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을 건설해 나가자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 대중투쟁의 정치를 활성화시켜 낼 수 있는 정치적 계급주체의 상이 불분명하고, 진보정당 건설의 구체적인 상과 활동의 내용이 미래의 과제로 던져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내부적으로는 구체적인 상과 일정 등을 논의하고 있겠지만, 이 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것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투쟁을 통한 새로운 정치적 계급주체의 형성, 즉 투쟁환원주의, 원칙 지상주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들은 노동자 대중들의 현실적 이해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적 투쟁공간을 제도권 밖의 노동자 대중투쟁의 정치에서만 찾고 있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의 제반 이해가 대의제도를 통해 관철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한다면, 직면하는 노동자 계급의 제반 이해를 노동자 대중투쟁의 정치로 관철시켜 낼 수 있는 정치적 기제를 구체적으로 확보하여야 한다. 한편 ‘진보정당을 국민승리21 중심으로 함께 건설해 나간다’라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로 말미암아, 민주노조운동과의 정치적 접합지점과 정치적 투쟁공간을 새롭게 형성∙확대해야만 하는 과정이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계급역량의 통일을 저해할 수도 있다.

진보정당건설 추진위의 추진주체 및 추진방식을 비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진보정당건설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로 말미암아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투쟁공간을 새롭게 재구축해야만 하고, 정치적 계급역량의 분화주체로 평가되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원론적으로는 분화역량의 발전을 토대 통일적인 계급역량의 발전, 즉 조직형식적 분화에 기초하는 투쟁의 내용을 노동자 계급정치의 통일로 전화시켜 내는 원칙을 상정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계급역량을 통일적으로 강화시켜 나가는 주체로서의 정치활동보다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계급역량을 분화적으로 강화시켜 나가는 주체로서의 정치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통일적인 정치적 투쟁공간을 매개로 하여 노동자 계급정치의 계급역량이 강화되기보다는 오히려 분화적인 정치적 투쟁공간을 매개로 하는 노동자 계급내 정치적 경쟁구조가 형성되어 노동자 계급정치의 계급역량이 약화될 수도 있다.


4) 진보정치포럼과 청년진보당

진보정치 포럼의 박홍순은 진보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원칙적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진보정당의 건설과 관련된 원칙 및 활동방식만을 제기하였다. 박홍순은 “국민적인 정치적 지도력의 형성으로 국가권력의 획득,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강화를 토대로 21세기 한국사회의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는 전위적인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대중정당, 진보진영의 총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주체적인 일정, 생산과 소비 전 영역에 걸치는 정치적 일상활동의 강화를 통해 대중과 긴밀하게 결합하는 투쟁,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관철되면서 진보진영의 총화를 이루어 나가는 방식”으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진보정치포럼은 진보정당을 우선적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정당건설론’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진보정당의 건설방식 및 정치활동의 방식에 있어서는 ‘신정당건설론자’들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냈다. 특히 진보정당 건설 추진위에 대한 패권적 선점주의에 대해 당내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강력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전위적인 대중정당론은 ‘신정당건설론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계급연합정당론 혹은 부르주아 정치의 국민대중정당론과의 차별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주민조직’과 밀접하게 접합되는 정치적 일상활동과 국민적인 정치적 지도력의 형성, 그리고 사회적 비전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정치적 활동공간의 확대와 일상적 정치활동의 지속이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일지라도, 보수주의 정당과 계급적 진보주의 정당의 간극지점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자 하는 전위적 대중정당론의 절충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이해를 국민대중의 일반이해로 치환시켜 내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청년진보당의 박용덕은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서 국가권력에 참여, 정치적인 일상활동을 지속시켜 낼 수 있는 진보적 대중정당, 진보정치운동 내부의 독자적인 주체별 일정의 수용, 정당조직으로서의 독자적인 일상적 정치활동, 강령적 차별성을 해소시키는 방식을 비민주주의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박용덕이 말하였듯이, 청년진보당은 이미 정당으로 출범한 상태에서 정치적 투쟁공간의 외연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한 주체이기 때문에 이 토론회에 부적합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수세력 중심의 정당운동이 전체 노동자∙민중진영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 즉 정당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이념적 강령과 정책의 분화로 말미암아 노동자 계급내의 다원주의적인 정치적 경쟁구조가 구축될 수 있고, 또한 통일적 정치적 계급역량의 형성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5) 전국연합

전국연합의 박세길은 “전민중적인 대중봉기에 의한 국가권력의 분쇄 및 점유, 개별적인 활동가들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 및 2,000년 총선투쟁을 활용하면서 전민중적인 봉기를 조직하는 통일전선조직, 진보적인 정당건설운동에 대한 선언적 인정 실질적 반대, 제도권 진출 자체가 진보진영의 정치적 투쟁이 불리하다는 전제하에 독자적인 진보정당 건설운동의 일정을 방기, 반정부 투쟁의 대중적 항쟁의 진지를 구축하는 활동, 제도권내 진보정당건설운동 그 자체를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민주주의적인 것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진보정당 건설운동의 주체로 참여하기를 거부하면서 ‘신혁명주의론’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박세길이 이야기하였듯이, 전국연합은 개별적인 활동가들의 제도권 정치로의 진출구조를 확보하면서 전민중적인 항쟁을 주도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실질적으로 노동자∙민중에 대한 명망가 중심의 정치적 대상화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극좌의 노선이 극우의 노선으로 반전되기 쉽다’는 말이 있듯이, 전국연합의 노선은 오히려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계급주체의 형성을 방기하고 있으며, 혁명 이외의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봉기투쟁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토론회에 참석한 정치적 참여주체들은 약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강산도 변하고 노동자 계급운동의 주∙객관적 조건도 변했건만, 노동자 정치운동의 진보정당 건설운동 논의와 수준을 거의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역사의 정체적인 퇴보에 불과하다. 단지 1990년대 초반과 세기말에 임박해서 제기되고 있는 현재의 진보정당의 차별성이란 당시에는 야당세력들에 대한 인식의 혼란이 지도부들이나 노동현장의 대중들에게 존재했었지만, 지금에는 그러한 인식의 혼란을 걷어치우고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진보정당의 출현이 역사적 흐름이라는 역동성을 주체적으로 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3. 진보정당운동의 딜레마는 없는 것인가?


이처럼 ‘정치적 계급투쟁의 역량 및 정치적 투쟁공간의 확보’라는 잣대로 토론회에 참석한 모든 참여주체들이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진보정당의 건설논의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지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참여주체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진보정당 건설투쟁은 노동운동의 역사적 과제이고 노자 계급운동의 현실적 조건에서 요구되는 긴박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간과하기 쉬운 요소를 이번 토론회에서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역사적 딜레마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딜레마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자본의 억압적 통제에서 비롯되었지만, 내재적인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에서 발생되고 축적되어 왔던 진보정치 내부의 질곡의 요인들이 바로 그 것이다.

아마도 이번 토론회에 참여한 주체들 대부분이 이미 1970년대부터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에 헌신적으로 복무하면서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런데 대부분이 자신들의 역사적 활동에 대한 공과를 정치적 계급운동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쉽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정치적 계급운동의 발전적 혹은 퇴행적 기제들을 명백하게 규명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 역시 자본주의 사회 내 활동주체로서의 이중적인 모순적 지위, 즉 계급적 정치주체들을 개인적 정치주체로 혹은 시민적 정치주체로 치환시켜 내는 국가∙자본의 통제역량을 쉽게 극복하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보다 역사적인 검토를 토대로 제시하여야 하겠지만, 노동자 정치운동의 딜레마는 네 가지 차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는 진보정치의 전략적 과제에 대한 ‘현실적∙선언적 동의, 암묵적 거부’이다. 둘째로는 정치활동의 방식에서의 ‘패권적 주도성, 계급적 순수성’이다. 셋째로는 정치적 조직화 과정에서의 ‘정파적 경쟁, 당파적 분열’이다. 넷째로는 정치적 투쟁조직 내부에서의 ‘형식적 통일, 실질적 분화’이다.

역사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지 않는 한, 노동자 계급을 상호분화, 상호경쟁, 상호갈등, 상호대립의 상황으로 몰아 가는 부르주아 계급과의 계급적 힘의 관계를 역전시키기는 힘들다. 따라서 노동자 정치운동은 노동자 계급의 계급역량을 최소한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적 역량과 대등해지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계급의 계급역량의 강화시켜 낼 수 있는 토대, 즉 노동자 계급의 ‘투쟁성 강화, 조직역량의 확대, 정치적 투쟁공간의 확대, 계급적 동맹구조의 강화, 계급이해의 정체성 강화’라는 필요조건을 구축하여야 한다. 혹자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현실에 무지한 것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필요조건을 인식해 들어가는 것 자체부터 노동자 정치운동의 딜레마 혹은 개인적∙시민적 수준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극복해 나가는 첫 출발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러한 필요조건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독자적인 활동영역이 구체적으로 설정되고, 이에 조응하는 활동내용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는 진보정치의 ‘진보’를 재규정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정립되어야만 할 핵심적 과제인 것이다.

한/노/정/연

199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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