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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연대의 깃발을 높이 올려라

현장에서 미래를  제43호
최인기


지금 현장은

도시빈민연대의 깃발을 높이 올려라!
전국빈민연합 결성을 앞두고
최 인 기
전빈련 연사국장




1. 들어가며

한 쪽에서 인간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내 집 한 칸 마련'은 커녕 비닐하우스 천막집도 빼앗겨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집단이다. 말이 좋아 '달동네'지 빈민촌이라는 게 전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양성화되기까지 했다. 노점상, 철거민, 건설 현장의 일용노동자, 구두닦이, 파출부, 신문팔이 등등... 그들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 층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들은 공권력의 살인폭력 앞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끝내는 분신으로 항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용역깡패를 동원한 공권력과 물리력의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는, 흡









사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강제철거 및 노점단속의 현장에서 자본과 정권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수 차례 목격했다. 그러면서 단지 노점상, 철거민이라는 그 이유 하나로 가해지는 인간에 대한 모든 억압과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빈민 대중들 스스로 마침내 이 땅에서 '빈민'의 이름으로 단결하고 자신의 조직적 무기를 만들면서 역사의 주인으로 당당히 서게 되었다.
ꡐ사회의 기생충ꡑ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씻어 버리고 ꡐ빈민ꡑ으로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여 마침내 피와 땀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2. 도시빈민연대의 흐름
(준비에서 - 결성까지)

4월 22일은 전빈련 결성식겸 전국빈민대회가 개최되는 날이다.
빈민진영의 연대흐름은 87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간 빈민연대운동은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지원해야 한다는 정서적 연대감 수준을 뛰어넘어 빈민 구성의 다양함 속에서 공동의 이해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전체운동 진영에서조차 수많은 투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알려지거나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빈민진영 단체간의 연대가 긴밀하지 못하고 매우 취약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연대의 흐름이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70년대에서 90년대를 거치면서 빈민운동 혹은 빈민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상이 난발하면서 각 단체별로 나타나는 다양한 사안별, 지역별, 직업별 조건을 조율할 수 있는 사업 부재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활동상의 차이로 서로에 대한 이질감이 증폭되어 도시빈민운동의 단결과 연대의 위기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전빈련(준) 역시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난 95년 3월 최정환 열사투쟁을 배경으로 결성이 되어 추진되었다. 그러나 그해 장애자 자립추진위원회 사업과정에서 간부가 구속되면서 진행이 멈추게 되었다. 그러다 98년 3월 준비위원장의 출소와 함께 전빈련(준)은 다시 실무 모임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1998년 8월 30일부터 추진되어 곧바로 당면 현안이었던 도원동 철거민 문제, 중구 장애인노점상 자립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였으며 1차 ‘재벌해체와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전국빈민대회’를 서울 종묘공원에서 약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 투쟁하였다. 그리고 2차 전빈련(준) 주최 빈민대회를 열어, 서울역에서 약 5백여 명의 노점상, 철거민이 모인 가운데 도원동 철거민 문제, 용인 에버랜드 문제 등을 내걸고 공동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그 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다양한 도시빈민 단체들의 결의를 모아 1,2차 민중대회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나갔다. 이날 민중대회는 도시빈민 단체들이 대중적으로 각인되는 중요한 대회였지만 한편 8년만에 함께 했다는 측면에서도 뜻깊고 의의 있는 대회였다. 이밖에도 전빈련(준)은 ‘빈민열사 추모제’ 등을 개최하면서 도시빈민의 생존권 투쟁을 대외적으로 알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결성식을 치르게 되었다.

3. 빈민투쟁의 형성
(전국노점상연합과
전국철거민연합 중심으로)

우리는 곧잘 "빈민운동의 전망이 뭐냐?" 라는 물음을 운동진영 안팎에서 숱하게 받곤한다.
이 글에서는 도시빈민 단체 가운데 전빈련이 포함되지 못하는 단체들의 주장을 모두 담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한정적일 수 있으나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노련과 전철연을 중심으로 두 단체의 주장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 하고자 한다.

노점상 합법화를 중심으로
우선 노점상 대중들은 군사 정권의 허울뿐인 국제행사 때마다 ‘환경 미화‘, ’거리질서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로부터 본격적인 강제단속을 당하였다. 무리한 폭력단속은 83년 IPU(국제 금융회의) 개최 시 노점상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 이로 인하여 개별화된 노점상 1천 5백여 명이 시청 앞에서 강력한 항의투쟁을 하였는데 이것은 노점상 대중의 조직 운동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선진적 노점상들은 노점상 생존권 대책위원회, 노점상 복지협의회 등 조직적 활동을 하며, 86년 아시안게임으로 강력한 노점 단속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산개해 있던 조직을 도시노점상연합회(이하 도노련)로 결성하였다. 도노련은 기간의 노점 탄압에 맞선 투쟁의 승리와 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경험으로 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정권의 올림픽을 빙자한 노점 탄압에 맞서 ‘6.13생존권 수호 결의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조직된 노점 대중이 주체적으로 나섰고, 민중운동 세력과 연대하여 정권의 반민중성을 폭로하고 노점탄압을 격파한 대회였다. 6.13 생존권 수호 결의대회는 노점상연합의 전국 조직의 전망을 갖게 하였으며, 그해 10월에 전국노점상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전국노점상연합은 각 지역별 조직을 재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노점상 합법화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가능성은 있는가? 구전빈련은 95년 3월 최정환열사투쟁을 배경으로 결성이 추진되다가 그해 간부가 구속되면서 잠시 멈춘 뒤 98년 8월부터 다시 추진부터 이제 출범하게 되었다. 이제 빈민들 스스로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역사의 주인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체적으로 누구를 합법화시켜 줄 것인가? 그리고, 현재 장사하는 자리를 영구적으로 인정하라는 것인가, 공공성을 갖는 도로에 대한 각계 각층의 이해가 충돌하는 점은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
물론 정부의 노점정책의 부재 속에서 우리가 일방적인 합법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해는 무엇보다도 전노련이 다년간에 걸쳐 주장하고 있는 "노점상 합법화" 요구의 왜곡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점상 합법화는 근본적으로 고용과 복지의 문제이며 특히 현시기 저소득 실업자 대책과 파행적으로 성장해 온 남한 자본주의의 왜곡된 축적 구조하에서의 실업, 반실업에 대한 안전판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은 영세노점상에 대해 한시적이며 제한적으로 현 자리를 인정해 줄 것을 주장한다. 영세 노점상에 대한 허용과 묵인을 통해 도로라는 공간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치단체별 조례화, 시행령, 의회의 결의문 등을 통한 합법화를 모색하고 임대상가의 요구와 진입을 검토하는 방안, 그리고 남아 돌아가는 공간을 이용한 풍물시장 등의 합법공간 확보’ 등을 조심스럽게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진정한 합법화의 의미는 더 이상 생존의 문제로 노점상이 발생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때만이 의미가 있다. 더불어 우리는 합법화 사업만이 우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기존 노점상의 기득권 수호 차원이 아니고, 더욱이 지금 자리에서의 개별적인 상행위 합법화로 자본의 경쟁 논리에 편입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노점상 합법화 요구는 부차적이거나 전술적 의미 이상을 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같은 시기에 전술적으로 노점상 합법화 문제를 두고 제시함으로써 여론의 유리한 고지를 점할 필요는 있다. 현정부가 노점상 문제에 대한 해결의 방안은 있는가? 있다면 그 대책은 무엇인가 ? 우리는 현정부에게 추상적인 수준에서 노점상에 대한 단속의 완화를 한다는 정도의 여론 몰이식의 견해가 아니라 좀더 실질적인 경제위기 극복을 통한 고용불안정 해소와 늘어나는 노점상의 생산 현장으로의 복귀를 꾀해야 할 것이다.

철거민! 격렬한 역사
그리고 계속되는 투쟁...

철거투쟁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광주대단지 철거민 대투쟁의 깃발이 솟아오른 이후이다. 목동의 강제철거 반대투쟁으로부터 사당동, 창신동, 신당동, 도화동 등의 투쟁으로 축적된 가장 큰 성과는 ‘철거민 자주적 단결’의 함성으로 일구었던 찬란한 연대투쟁, 마침내 ‘서울철거협의회’를 건설하고 강제철거 해방의 깃발 아래 일치 단결된 투쟁을 벌였다는 데 있으며 자본과 독재정권의 아성을 깨고 돈암동에 영구임대주택과 가수용 단지를 쟁취하는 영웅적 신화를 재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철거민투쟁의 전통은 91년 부산시철거민협의회 결성, 92년 경기도철거민협의회 결성, 93년 전국철거민협의회 결성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철거대상 지역이 다 없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거냐? 왜 철거 싸움만 하냐? 이후에는 철거민운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 는 질문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주거 문제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심각하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경우 70~80퍼센트가 국가에서 지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해 산다. 그러다 보니 집이 꼭 자기 소유여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5퍼센트의 소수가 전체 사유지의 65퍼센트를 차지하거나 토지․주택의 심각한 사적 독점 현상과 생산투자보다는 부동산 및 주택 투자에서 엄청난 이득을 보장해 주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50~60퍼센트에 달하는 무주택자가 불량주택 개량을 위한 재개발이라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철거민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무주택자의 모순(직접적으로는 세입자의 문제)은 재개발뿐만 아니라 재건축, 택지개발 속에서 계속 드러날 수밖에 없다.
철거 양상은 이제 비단 서울에 한정해 있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국 단위로 확산되면서 철거민이 여전히 양산되고 있다. 더욱이 철거 과정에서 공권력과의 물리적 충돌은 반드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이는 철거민 운동이 격렬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간 철거민운동이 현장의 철거 싸움에 매달리면서 전체 토지․주택문제에 대한 사업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빈민진영의 총연대를 통해 꾸려 내면서 내용적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토지․주택문제는 이후 건설될 전빈련 차원에서 고민하고 노동진영과의 연대 속에서 또한 정치운동의 발전 속에서 함께 풀어 가야 할 사안이다.

5 전빈련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전빈련 사업 계획을 중심으로)

우리 나라의 경제는 2천년 대를 불과 몇 달 앞둔 현재의 시점에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걷고 있다.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이 사회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경제파탄의 책임자인 자본과 권력에 있음을 각인하고 이에 대한 처벌과 재벌해체 및 경제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사업기조의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중심에 두고 내부적으로 빈민의 발생 원인인 노동자들의 불안전 고용상태를 극복하고 정리해고 중단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중심으로 설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인 현안으로 현재 전빈련에 결합하고 있는 노점상 철거민의 당면 요구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는 대책 없는 노점단속을 저지하고 절대금지 상대금지구역 철폐와 노점상 자립 합법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과 철거민, 더 나아가 전국민의 무주택으로 인한 주거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토지 공개념을 토대로 공공의 영구임대주택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 기조를 바탕으로 첫째는 공동의 투쟁을 통해 생존권 사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우선 철거반대 투쟁은 그 절박함과 격렬함에 힘입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정부는 2백만 호 주택공급 공약 등 개량의 환상을 최대한 유포하며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는 등 빈민운동 진영에 일대 타격을 주었으나 역대 정부의 주택정책은 한계에 드러내며 새롭게 철거반대 투쟁의 명분을 심어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노점상 역시 IMF 금융으로 늘어나는 노점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단속으로 일관하고 있는 현정부에 맞서 공동의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투쟁은 전빈련 결성의 가장 큰 의의라 하겠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공동의 투쟁을 총화시켜내는 전국빈민대회를 여러 빈민운동 진영 및 여러 사회단체에 제안하고 추진해 나갈 것이다. 전국빈민대회는 앞으로 도시빈민의 상징적 투쟁의 의미로 각인될 것이다.

둘째는 전빈련에 결합하지 않고 있는 다른 단위까지 포괄하여 전빈련을 명실상부한 전국의 빈민조직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조직확대 사업에 주력할 것이다. 전빈련은 현재 모든 도시빈민단체를 모두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 그 동안 전개되어왔던 빈민운동 단체로는 전철연, 주거연합, 민철연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사업에 따른 철거투쟁과 주민 사업을 전개하는 조직과 전국노점상연합과 전국건설일용노조 중심의 직업별 조직이 있었다. 전국건설일용 노조는 현재 민주노총에 가입 후 단위사업장으로의 위상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노점상연합은 현재 전국적으로 30여 개의 지역과 지부를 포함하는 전국 조직으로 현재 투쟁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리고 70년대부터 종교를 매개로 한 단체들과 관악주민연대 등등의 철거반대투쟁과 함께 생산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의 주민자치회, 공부방, 탁아소, 무료급식 등의 지역의 현안 문제 등을 통해 지역내 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도시빈민 조직을 들 수 있다. 현재 전빈련으로 모아지지 않은 단위가 위와 같이 존재하고 있다. 전빈련은 그 이름에 걸맞게 전체 도시빈민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도록 함께 하지 못하는 여러 빈민단체와의 결합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있다.

6 글을 마치며

경제 파탄으로 IMF체제를 받아들인 한국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으며, 가정은 이미 파탄이 난 지 오래이며 정부는 그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있다면 정리해고로 인해 하루아침에 생계의 터전을 잃는 노동자들에 대한 압살뿐이다. 눈을 들어 주위를 보라. 실업자들의 초점 잃은 눈빛이 아무렇게나 거리를 방황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경제위기와 실업문제는 바로 빈민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노점상과 철거민의 증가를 낳고 있지 않은가 ?
책 한 권
노동이론 정책총서3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1주제: 시간단축과 생활임금단축투쟁
2주제: 실업문제와 실업자운동
3주제: 자본의 구조조정과...
4주제: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합의
5주제: 노동운동의 주체형성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3주년 기념심포지움/12.000원/400면
현 정부는 실업자 구제대책과 관련하여 다방면으로 선전을 해대지만 그 성과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각 빈민지역별로 지역적 구심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인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도시공간과 지역으로 다양하게 착취의 영역을 넓혀 가는 자본의 본질을 꿰뚫는 작업과 노동현장과 노동정치라는 전략적 관점을 중심에 놓는 것 속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2천년대의 당당한 희망을 만드는 몫은 투쟁하는 자들의 어깨에 놓여 있다. 전빈련의 깃발을 메고 힘찬 전진 그리고 투쟁뿐이다. 한/노/정/연

199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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