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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조직발전 논쟁의 역사와 발전

현장에서 미래를  제43호
산별노조운동연구팀


          2


산별노조운동 연구팀

1)





차례


1. 들어가며

2. '민주노조운동이란 무엇인가?

3.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쟁과 조직적 수렴

4. 전노협 초기의 논쟁                  (이상 이번호)

5.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쟁과 조직적 수렴

6. 민주노총 건설이후 최근 산별노조운동왁 쟁점

7. 맺음말





1. 들어가며


최근 들어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87년 이후 여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전국병원노조연맹의 경우 1998년 초 산하에 의료산별노조를 건설하고 2005년에 대산별노조 건설 계획을 내고 있으며, 전국민주금속산업연맹은 2000년에 단일 산별노조을 건설을 추진하는 등 일정한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그동안 시도되었던 연맹내 소산별(혹은 소업종)노조건설, 노조간 통합, 연맹간 통합 등과 결합되어 전개되고 있다.

87년 이후 어느시기보다도 현시기에 산별노조건설운동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제위기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전략에 대한 대응의 절박성 때문이다. 특히 자본의 ‘유연화’공세에 맞선 노조운동은 97년 및 98년을 거치면서 조직․투쟁․노선을 통틀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경제위기’와,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위기극복전략으로서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정책의 일환으로 구성한 ‘노사정위원회’가 노조운동을 크게 교란시키는 한편으로, 대량의 실업사태 속에서 노조의 조직률이 감소하면서 노조운동의 기반이 크게 훼손된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노조운동의 대응은 한편으로는 정부 및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직접적 투쟁에 나서는 것과 함께, 조직적으로는 산별노조건설운동을 적극화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즉 최근의 산별노조건설운동은 현시기의 노조운동의 핵심과제로 되어 있는 정부․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에 맞서는 투쟁의 한 가운데에서 추진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별노조운동은 원래 자본의 운동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자측의 전략으로서 기본적으로 조직적인 단결의 힘의 높여내고자 하는 노동자 대중운동의 모색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산별노조건설을 향한 노동조합운동내의 발걸음은, 정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를 방어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적극적인 운동전략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 조직이 강대해진다고 해서 반드시 노동조합운동이 강대해지는 것은 아니다. 70년대의 한국노총은 산별노조체계였지만 그 당시를 강대한 노조운동기로 간주하거나 말하는 쪽은 한 군데도 없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운동하는 조직을 건설할 것이며, 그 조직의 목표가 무엇인지가 매시기 분명하게 재확인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전노협에서 민주노총까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과정에서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싼 수많은 논의들과 실천들이 있어왔으며, 그 과정은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녹아들어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을 둘러싼 논쟁은 일관하여 ‘산별노조’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이어진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과정은, 단위 사업장노조 건설 및 민주화, 그 노조들간의 연대조직 건설, 그리고 그러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들의 전국적 총단결 조직체 건설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존노조의 활동과 조직방식 등에 대한 혁신과 투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기존노조와는 달리 ‘민주노조운동’은 권력과 자본의 요구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노동자의 요구를 당당하고도 조직적으로 표현해냄으로써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 즉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계급이 세력으로서 등장하였음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하였기에 권력과 자본은 끊임없이 ‘민주노조운동’을 불온시하고, 그 정신과 싹을 순화시키고 제거하려 해왔다.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단결의 틀을 ‘산별노조’로 정하고 이를 목표로 조직발전 전망을 모색해왔던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노조운동의 탄탄한 조직력이 소망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 ‘산별노조건설’을 소망하면서 이를 추진해온 것은 단순한 조직형식적으로 ‘산별’이냐 ‘기업별’이냐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어디까지나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산별노조건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산별노조 건설문제는 단지 조직형식을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차원의 조직형식적 논의에 그쳐버리게 될 수 있다.

이 글은 현 시기 산별노조건설운동을 1987년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2절에서 ‘민주노조운동’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검토하고 그 개념화를 시도하였다.

3절에서는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논쟁이 다루어진다. 80년대 이래의 한국노조운동의 활성화과정은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을 통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전국 중앙 조직 건설’ 시도로 수렴되지만, 87년이래 형성되어 한국노총에 소속되기를 거부한 수많은 노조들이 전노협에 모두 포괄된 것은 아니었다. 이시기에 민주노조운동은 전국적 조직화를 목표하였고, 어떤 전국조직을 건설할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모색들이 전노협건설을 둘러싼 노선논쟁으로 표현된 것이다.

한편 90년 1월 전노협 건설 이후에는, 같은 ‘민주노조운동’이라고 표방됨에도 지역․업종을 포괄하는 전국중앙조직을 결성했던 전노협, 업종별 연맹 혹은 협의체 수준에서 조직을 결성하고 그 대표자 회의체를 구성하고 있었던 ‘전국업종노조대표자회의', 그리고 공식적인 연대체건설은 창립당일 경찰의 침탈로 인하여 무산되었지만 대공장 노조들의 연대회의를 비롯하여 이른바 ‘중간노조’들이 병존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전노협시기의 노선논쟁으로서 제4절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87년 이후 한국노총과 구별정립해온 큰 흐름을 ‘민주노조운동’이라고 인정하는 한, 그 ‘민주노조운동’이 전체적으로 조직적 통합을 이루어낸 것은 1995년 ‘민주노총’이다. 이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노선논쟁에 대해서는 제5절에서 다룰 것이다.

제6절에서는 민주노총 건설 이후 현재의 산별노조건설 운동에 대하여 검토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87년이래 ‘민주노조운동’이 중심과제로 설정해온 ‘산별노조건설’ 운동이 어떠한 문제의식과 논의과정을 거쳐왔는지, 그리고 한국노총을 거부한 노조들을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19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한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이 현재 어떠한 방향에서 산별노조운동을 전개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지점들이 쟁점이었고 그러한 쟁점들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의 쟁점이 현재의 산별노조운동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반영되어 있는지, 현 시기 노조운동의 과제와 산별노조운동의 과제가 어떻게 부합되고 엇물리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2. ‘민주노조운동’이란 무엇인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은 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를 통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한국노동조합운동의 새로운 조직적 주체’ 탄생을 알리고 ‘자주적인 산별노조의 전국 중앙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총 매진할 것’을 선언한 이래 6년만인 95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을 건설하였다. 민주노총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전국중앙조직’으로서 87년 이후의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아우르고, 올해에는 공공부문 노조들까지 포괄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민주노조운동의 총단결체’로서 자신을 정립해내고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1980년대 중반부터 비로소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특히 1987년을 경과하면서 신규노조의 대거설립과 함께 형성된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일반적인 성과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이 민주노조운동에 의하여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의 내용을 갖는다. 하나는, 87년 이후 대거 새로 설립된 노동조합들이 한국노총의 기존의 운동노선을 거부하고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것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운동을 벌여나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노총 중앙을 포함하여 한국노총 소속의 기존노조들이 기존 집행부를 ‘민주’를 표방하는 새로운 집행부로 교체하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요컨대 ‘민주노조운동’이란, 80년대 중반부터 새로 설립된 노조들과 ‘어용노조 민주화’를 내걸고 기존의 노조 집행부를 교체했던 노조들이 기존의 한국노총에 소속되지 않으면서 지역별 혹은 업종별로 연대하여 독자적인 노조활동을 만들어냈던 거대한 흐름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민주노조운동’의 조직화과정은 사업장 단위의 노조 건설 → 지역노조협의회 혹은 업종별노조협의회 → 전국노조협의회 혹은 업종별노조협의회대표자회의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직화과정은 기업별노조를 기본으로 노조활동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에 주어져 있던 객관적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하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산별노조건설을 목표하고 있었는데, 산별노조건설운동에서 조직경로와 방식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화과정으로서 주어졌던 위와 같은 순차적․단계적 방식은 아닐 터이다.

한편, 그 노선은 대표적으로 기존의 ‘어용’노총과 구별하여 자신을 ‘민주’로 표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노동자들이 구별정립한 ‘어용’과 ‘민주’의 개념에 담겨있는 내용은 참으로 포괄적이고도 단호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6,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뒤를 이어 폭압적으로 노동운동을 봉쇄해온 지배정치권력에 대한 강력한 저항임과 동시에, 폭압적 정권하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리면서 덩치를 불려오고 있던 자본가계급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러한 정권과 자본의 그늘 아래서 노조의 유일한 최상급단체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으면서 밑으로부터의 노조운동을 권력과 자본에 앞서 탄압해왔던 한국노총에 대한 분개가 들어 있었다. 이러한 점들은, 한국노총이 전두환 정권의 87년 ‘4.13호헌선언’에 대해 ‘지지’성명을 내고 뒤이어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는 노동자를 향해 전조직력을 동원, 단호히 응징하겠다’1)는 성명서를 냄으로써 더욱 선명하게 표출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형성된 ‘어용’과 ‘민주’의 개념에는 또한 당연하게도, 그동안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투쟁의 의지가 들어 있었다.2)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에는 근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및 경제적 요구가 ‘어용노총’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완전히 합일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민주노조운동’의 ‘민주’가 의미하는 바가, 정권 및 자본과 한국노총으로부터의 자주성, 노동조합운동의 내부 민주성, 자본가계급 및 정권에 대한 계급적 저항을 의미하는 계급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80년대 중반부터의 ‘민주노조운동’은 위와 같은 노선․조직․투쟁의 내용성을 갖는 것이었는데, 이 ‘민주노조운동’이 가능했던 배경은 무엇보다도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체제에 대하여 세력으로서는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격렬하게 항거해온 학생운동세력과, 그때까지 초보적인 권리투쟁조차 봉쇄당하면서도 온몸으로 투쟁하고 있었던 노동현장의 운동이, 80년대 초반부터 학생운동세력의 대거 노동현장으로의 투신에 의하여 활성화된 데에 있다. 6,70년대 노동현장은 이미 결성되어 있거나 ‘어용’이 확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조결성을 반공법을 동원하여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었으며, 그런 상황에서 초보적 권리투쟁마저도 그야말로 ‘목숨을 건’ 투쟁이 아닐 수 없었다. 70년 전태일열사의 분신항거에서부터 79년 YH투쟁과정에서의 김경숙열사의 투신항거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노동자계급은 아직은 ‘세력화’되지 못한 채 폭압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상황이었고, 동일방직투쟁, 블랙리스트사건, 콘트롤데이타투쟁, 사북탄광투쟁으로 노동자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치적 ‘민주화’를 기대하였던 ‘세력으로서의 학생운동’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80년 봄의 민주화투쟁이 좌절되자, 무권리상태에서 죽음으로 항거하고 있던 노동자계급 속으로 들어가 먼저 노동법을 알려나가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을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하기 시작했다. 어떤 논자들은 이 과정을 일도양단하여 ‘써클운동’ ‘정파운동’ 등의 말을 사용하여 가두기에 여념이 없지만, 그 과정은 몇 가지 자의적․주관적 개념들에 가두어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노동운동에서 일반적인 현상은 ‘노조설립’과 ‘노조민주화’였고, 이에 걸맞게 노조설립 지원활동과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구성 및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노동운동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은 이러한 과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노조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을 논할 때, 87년 이후의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내용과 과정들을 간과하거나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 입은 옷처럼 찌그러들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3.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쟁과 조직적 수렴


1) 87-89년의 노동운동과 전국조직건설 준비과정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3년의 과정은 '노동조합운동의 일반화'라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이 상식을 도배하던 87년 이전의 시기, 은밀하고 산발적일 수밖에 없었던 민주노조 건설 시도, 뒤이은 폭압적 탄압과 와해, 그리고 이에 가위 눌린 노동자 대중의 침묵으로 점철되던 이전 시기에 비해 87년과 88년의 노동조합의 양적 확대는 누가 보아도 질적인 비약을 일군 시기임에 분명하였다.3)

87년 마창노련에서부터 89년 대구노련에 이르기까지 모두 17개 지역에서 지노협이 건설되고, 87년 11월 사무노협을 시작으로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도 빠르게 진행되면서 89년까지 13개 업종노협을 결성하여 조직적인 연대의 틀을 형성해나오고 있었다(표1,표2).4)

이와 같은 민주노조운동의 활성화에 힘입어 86년 현재 2,658개였던 노조수는 87년에 4,086개로, 89년에는 7,883개로, 같은 기간에 조합원수는 1백3만6,000명에서 1백20만6,700명, 1백93만2,000명으로 대폭 늘어났으며, 총피용자 대비 조직률은 86년 12.3%에서 89년 18.7%로 상승하였다.5)


   <표1> 지노협 조직현황(89.11.현재)

조직명칭

결성시기

노조수

노조원수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인전지역노동조합협의회

부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성남지구노동조합총연합

전북지역노동조합연합

광주노동조합협의회

동광양노동조합협의회

대구지역노동조합연합

구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울산지역노동조합협의회

진주지역민주노조연합

부산노동조합총연합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거제지역노동조합협의회

포항지역노동조합협의회

대전지역노동조합협의회

88.5.29

88.6.18

89.7.22

88.12.28

89.4.28

88.8.21

89.3.5

89.2.18

89.11.8

준비단계

준비단계

88.1.17

88.8

87.12.14

준비단계

89.2.16

준비단계

120

78

43

56

79

28

19

15

15

7

6

13

60

40

8

38

5

38,000

9,900

5,000

10,000

11,000

7,000

5,000

3,000

3,000

25,000

66,000

2,250

15,000

33,000

12,600

17,440

350

합계

 

630

263,540



<표2> 업종협 조직현황

조직명칭

결성시기

노조수

노조원수

사무전문직노조협의회

전국병원노조연맹

연구전문노조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출판노조협의회

건설노조협의회

시설노조협의회

외기노조협의회

언론노조연맹

대학노조협의회

지역의보전국협의회

전국대학강사협의회

화물노련

87.11.27

88.12.17

88.7.16

88.5.28

88.1.19

88.12.10

89.1.28

88.12.11

88.11.26

88.2.1

89.5.13

88.8.3

88.9.12

125

126

54

단일노조

23

40

52

100

53

88

13

단일노조

14

40,000

24,000

17,000

20,000

2,200

12,000

6,000

15,000

17,000

10,000

8,000

2,600

합계

 

690

173,800



노동조합수 뿐만아니라 그 범위도 제조업 생산직에서 다양한 업종으로 더욱 확대되어 사무, 전문, 기술, 연구, 판매, 서비스직 노동자들 및 공공부문의 노동자들로까지 넓어짐으로써 노동조합과 그 운동은 이제 사회 현상의 가장 주요한 측면이 되었음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양적인 확대가 이 시기가 가지는 의미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이 시기는 또한 노동자 대중이 노조운동의 주축으로 나섬으로써 노동운동의 자생성이 자기 동력을 획득하는 시기이자 동시에 그 자생성이 계급적․정치적으로 발전의 길을 모색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당시 노동자들은 그동안의 생존권 및 민주적권리를 위해 폭발적으로 파업투쟁에 나섰다(표3).







<표3> 1984-1989 원인별․유형별 분규 건수 6)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합계

113

265

276

3,749

1,873

1,616

원인별

  임금체불

  임금인상

  휴폐업 및 조업단축

  해고

  부당노동행위

  근로조건개선

  기타

  (기타 중 단협관련)

39

29

2

5

7

14

17

61

84

12

22

12

41

27

48

75

11

34

16

48

44

45

2,629

11

51

65

566

382

(170)

59

946

20

110

59

136

543

(328)

59

742

30

81

10

21

673

(426)

유형별

  작업거부

  농성

  시위

  기타

62

46

3

2

108

154

3

-

138

112

21

5

1,226

2,428

88

7

675

1,178

5

15

632

898

1

85



파업의 원인은 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 단체협약 관련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주로 작업거부와 농성의 형태로 파업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집중적인 파업투쟁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왔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개별 사업장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임금인상 투쟁조차 일거에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정치성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지도할 수 있는 전국적인 중앙조직은 부재하였고, 당시 노동조합의 유일한 전국중앙이었던 한국노총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그러한 폭발적인 파업투쟁의 와중에서 ‘호헌선언 지지’와 ‘어용노조퇴진운동 응징’ 성명을 내는 등 투쟁의 지도는커녕 억압자로서 드러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은 도저히 기존의 노총에 수렴될 수 없었으며, 따라서 87년부터의 대투쟁의 성과를 보존하고 전국적인 범위에서 노조운동을 항상적이고 일상적으로 전분야에 걸쳐서 협의하고 통합해 나갈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지도구심 형성은 노동운동 전체의 핵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전노협 결성 이전까지 그 역할은 88년 현대엔진투쟁을 계기로 결성된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그리고 각 지역․업종별 협의체 조직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88년 6월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당시의 노동운동 탄압 저지투쟁과 노동악법 철폐투쟁의 구심을 형성하면서 이후 전국조직 건설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또한 그동안 ‘민주헌법쟁취 노동자공동위원회’(87.7. 전국 17개 단체), ‘노동조합탄압저지 전국노동자 공동대책협의회’(88.3. ‘전국공대협’)을 구성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헌신적으로 노조운동을 지원․지도해오고 있던 노동운동 단체들이 88년 6월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7)를 결성하여 산하에 ‘노동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을 통한 전국조직 건설을 추동하였던 것이다.

88년 10월에는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조합특별위원회와 전국노운협의 노동법개정특별위원회가 공동으로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을 구성하고 88년 11월13일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노동악법 개정 전국 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비롯한 공동투쟁을 전개한다. 그 성과는 ‘지역, 업종별 전국회의’(‘전국회의’, 88년 12월) 결성으로 모아졌는데, ‘전국회의’는 그 산하에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전국투본’)을 설치하여 전국적인 투쟁을 지도지원하는 한편, 민주노조운동의 전국 구심 형성 노력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8)

‘전국회의’에는 16개 지노협9) 및 4개 업종협10)이 참가하고 7개 업종협11)이 참관조직으로 결합하였다. 전국회의는 88년 12월23-24일 1차회의에서부터 89년 12월11-12일 제13차 회의까지 당면투쟁과 전국중앙조직 건설의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제3차 회의 때인 89년 2월에 산하에 ‘전노협 준비소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였고, 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건설되면서 해소된다.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망을 둘러싼 논쟁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의 전계급적 단결의 필요성과 정치세력화의 문제의식이 뒤섞이면서 확산되었으며, 전노협 건설과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의 전개로 수렴되는 것이다.


2)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을 둘러싼 논쟁


앞에서 살펴본 노동운동의 전개과정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망과 관련된 논쟁은 88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논쟁 초기에는 민주노조의 독자적 전국조직 건설을 옹호하는 입장과 이를 반대하는 입장간의 대립이 중요한 쟁점이었다. 88년 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 및 노동법 개정투쟁을 경과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독자적 전국조직건설의 필요성이 투쟁 속에서 확연히 드러남에 따라 이제는 어떤 전국조직을 건설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아래에서 간략히 당시의 논의들을 살펴보자.


‘노총민주화론’

민주노조의 독자적 전국조직 건설을 반대했던 입장이 소위 ‘노총민주화론’12)이다. ‘노총민주화론’은, 민주노조 진영의 독자 조직 건설은 전체 노동진영 내에 분열을 조장한다고 보면서, 독자적 조직건설 보다는 노총을 중심으로 조직 내의 민주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저에는 ‘노조는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투쟁해야 하므로 노조운동의 통일이 우선’이라는 노조관이 깔려 있다.

‘노총민주화론’은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향상과 조합내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조직 문제를 사고하였는데, 그런 점에서 ‘경제적 조합주의’에 근거한 입장으로 규정되기도 한다.13)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노조내 민주주의를 강조한 것 자체를 경제적 조합주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노총민주화론은 다분히 경제적 조합주의로 통하고 있었다.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향상은 노동조합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며 조합내 민주주의는 가장 원칙적인 노동조합의 운영원리임은 사실이다. 문제는 경제적 지위 향상과 조합내 민주주의의 강조가 전혀 민주노조운동의 독자적 전국조직 건설을 반대하고 노총민주화를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없었다는 점에 있다. ‘어용노총’의 장벽을 뚫고 나와서 새로운 노조를 건설하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던 주체들에게, 그리고 그간의 ‘저임금장시간노동’을 방기해옴으로써 ‘경제적 지위향상’을 짓누르고 있던 노총을 거부한 노동자들에게, 노총에 소속되어 그것을 민주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시대를 완전히 거꾸로 돌려놓는 사고의 소치였다. 요컨대 ‘노총민주화론’은  당시 민주노조운동이 추구하였던 반대! 어용노총의 의미를 단지 노동조합 조직논리적 차원에서밖에 해석하지 못하고 있었고, 민주노조운동의 목표를 어용노총 민주화로 한정시키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민주노조세력은 전체 노동조합(5,200여개 160여만명) 중에서 약 10%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상태에서 민주노조들이 모두 노총에 소속하여 노총민주화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경제적 지위 향상과 노동조합내 민주주의’ 둘 다에서 별다른 의미도 없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민주노조운동으로서 자신을 형성해나가고 있던 토대인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자주성’과 ‘활동에서의 민주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가로막는 실천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노총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배태된 배경에 속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노총민주화론’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망 논쟁에서 잠시의 교란요인으로 등장하였다가 곧 사라지게 된다.14) ‘노총민주화론’은 그러나 전노협 건설 이후에는 ‘전노협 해소론’으로 재등


독자적 전국조직 건설론(연맹체냐 협의체냐)

‘독자적 조직 건설론’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논의들은 ‘노총민주화론’과는 모두 일선을 긋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과는 동일한 대치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 내부에는 다양한 견해차가 있었다. 어떤 조직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그 조직의 위상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그 건설 시기는 언제로 해야 할 것인가 등을 주요한 과제로 하여 논쟁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연맹체 건설론’과 ‘협의체 건설론’이 논쟁의 축을 이루었지만, 그 내부에도 또한 다양한 견해차가 존재하였다.

연맹체 건설론(제2노총건설론)은, 기존 노총과 같은 위상을 갖는 연합체 수준의 조직을 건설하자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연맹체 건설론은 ‘제2노총건설론’이다. 그 요지는 ‘노총을 타도하고 단체까지 참여주체로 한 제2노총을 세우되, 노동법개정투쟁, 메이데이 총파업 등을 기초로하여 전국노조운동연합(전노련)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2노총건설론’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단체를 포함하여 노동운동세력을 노동조합 조직내에 포괄하려고 시도한 점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노조를 순전히 ‘경제투쟁의 조직’15)으로서 간주하거나 혹은 ‘변혁적 지향의 결사체’16)로 보는 등” 노조운동론이 부재17)하다는 혹평을 받았는데, 그것은 전자의 경우 노조의 성격을 지나치게 경제적인 측면에 한정하여 본 반면, 후자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을 사고하지 못하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과의 관계 속에서 노조를 사고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을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노동조합을 순전히 경제투쟁 조직으로 보는 입장과,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의 구별을 무시하고 완전히 동일시하는 입장이 당시의 전국적 노조조직 건설을 둘러싼 모색의 과정에서 동일한 입장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노동운동 단체를 포함한 노동운동세력이 한 데 힘을 모아 전국조직을 건설한다는 입장이 가질 수 있는 긍정성, 즉 대중추수주의를 견제하고 또 노조의 개량화와 어용화를 견제하면서 ‘변혁지향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지향’은 오히려 그 안에서 협소해지고 ‘지양’되게 될 수밖에 없는 논의였다. 그것은, 이들이 ‘변혁지향성’을 주장하고 또한 메이데이총파업투쟁과 노동법개정투쟁 등 투쟁을 통한 조직 건설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위한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2노총건설은 노동조합 조직역량의 발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대중적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에서 유일한 잣대가 ‘양적’인 세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지만, 우선 양적으로 보아도 당시에 ‘이제 막’ 형성되고 있었던 세력이었을 뿐인 민주노조운동의 역량으로 제2노총을 건설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로서, 질적으로도 계급적 단결의 수준은 아직 초보적 상황에 있었다. 이 운동을 적대적으로 불온시하는 정권과 자본의 극심한 탄압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고저운동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목표가 ‘어용노총’이 아닌 것은 분명하였지만, 제2노총건설론에서처럼 즉각적으로 새로운 노총을 건설하는 데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편으로, 제2노총론 또는 연합체 건설론은 표면적으로는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성격을 보였지만 실제로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을 조합주의적 정치투쟁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의미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이제 막 민주노조로 교체하거나 노조를 처음으로 결성한 사업장, 또는 아직 건설을 시도하고 있는 사업장에게 연합체 수준의 조직을 제기한다는 것은 무리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협의체 건설’ 논의가 ‘연합체 건설’ 논의가 거의 같은 시기에 대두된 것은 이런 상황에 의거하였다.


협의체건설론(전노협 건설론)은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협의체 수준에서 독자적인 전국조직을 건설하고 이를 근거로 노조운동의 통일을 강화해 나가기를 주장하였으며 이렇게 구성되는 노조 전국조직의 위상을 산별노조의 과도적 성격을 갖는 조직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단결의 구심으로 설정하였다.

민주노조운동은 당시 피해 갈 수 없는 정부와 자본의 공격 앞에서 되도록 많은 노조를 포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경계를 형성하면서 87-89년 노동운동의 의식적 조직적 성과를 보존하고 다져나가야 했으며, 노동조합 외의 여타 단체와의 결합 방식도 이를 질식시키지 않는 방식을 택해야 했다. 독자적인 전국 조직의 상을 협의체 수준에서 모색한 ‘협의체건설론’은 이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제기되었다. 또한 조직노선 일반의 차원에서도 노동조합이 갖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라는 측면과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정치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면서 경제적 차원의 성격과 정치적 차원의 성격을 균형있게 반영한 점, 그리고 자신을 과도적 차원의 조직으로 설정하고 장기적으로 산업별 노조로의 발전 전망을 명확히 한 점에서도 협의체 노선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18)

‘노총민주화론’에서와는 달리 ‘독자적 전국조직 건설론’에는 ‘산별노조’와 관련한 쟁점도 포함되어 있었다(<표4>). 그러나 산별노조와 관련한 본격적 논쟁은 전노협 건설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표4>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논쟁 내용19)

 

노총민주화론

제2노총건설론

전노협건설론

대 노총 방침

노총붕괴(노총내부 민주화)

노총타도

노총민주화견인(사업방침)

전국조직

참여주체

 

민주노조,노운단체,민추위

민주노조,민추위

전국조직

구성방식

 

지역노련건설론(중장기적으로 지노련, 종국에는 산별로 이행수용)

산별 과도조직 지향. 현시기에는 지노협 유지, 향후 지노협은 산별본부화(일부는 지노협 고수론 표방)

추진경로

 

노동법개정투쟁본부, 메이데이총파업투쟁 등등을 기초로 하여 건설

경제투쟁 및 88년 전체활동 성과를 기초로 과도적 기구 건설(예:전노협건설준비위)

산별노조에대한 관점

 

산별불가 혹은 장기적인 지향 제기(추진방식:아래로부터 추진)

특정한 조건 주어질 시 즉각적 산별전화(추진방식: 단일산별상급노조 선건설론)

변혁운동과

노동운동

노운 내부의

통일에 종속

노조통일전선론적 관점->자민통을 강령으로 한 半合통전체에서 노동계급 참여주체

노조와 변혁적 정치활동의 결합->노조와 노급당의 질적인 차이와 관계 중시

노조운동의

전술적인 과제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인 진출과 세력화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독자적 구심으로의 성장

노동법개정

관련 입장

3조5항이 아니라

26조3항이 투쟁대

상, 단일노조주의

(복수노조주의의

대립론)

3조5항 반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자유의 문제로 해석

3조5항 반대,

단결의 자유 문제로 해석



4) 논쟁의 조직적 수렴과 전노협시기의 노동조합운동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87-89년간의 민주노조운동은 그 자체로 한국노조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의 시기를 경과하였다. 조발논쟁의 결과는 전노협 건설과 전노협에 포괄되지 않는 ‘민주노조운동’의 존재로 수렴되었다.

전노협은 87년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를 포괄하고,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맞서 이를 유지 발전시키고 일정한 조건하에서 산별로 전화하고자 하였으며, 자신을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으로 설정하였던 조직이었다. 그러나 ‘전국회의’ 시기에 지노협과 업종협을 포괄하고자 하였던 전국조직 구상은 실제 90년 1월 전노협 출범에 가서는 업종협과 대기업 노조 및 중간 노조들은 대거 빠지고 업종협의 2개 조직과 지노협만으로 구성되고 같은 해 업종회의와 대기업 연대회의가 연이어 따로 구성됨으로써 민주노조의 독자적 구심으로서, 전체 노조운동의 투쟁성과와 조직적 성과를 스스로에게 집중하여 산별노조 건설의 실질적 발판이 된다는 건설론 당시의 전노협의 자기 위상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크게 희석화되고 만다.

‘전국회의’의 참가조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90년의 전노협 이전에 이미 조직적 수렴의 방향이 예고되고 있었다. 전국회의에는 당시까지 구성되어 있던 지노협과 업종협 중, 지노협은 전체가 참가하였던 반면, 업종협은 4개만이 참가하고 있었고 더욱이 사무금융노련, 전문기술노련, 병원노련 등 주요한 업종조직이 ‘참관’으로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었다. 논쟁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러한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참관조직들은 전노협 건설에서도 여전히 참관으로 남아 있었으며, 업종협 쪽은 ‘전국업종노련(협)대표자회의’를 구성하여 새로 건설될 전국조직(전노협)에의 참가를 보류하고 있었다.

전국회의 시기만해도 민주노조운동진영 전체를 포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전노협이 사실상 지노협 중심으로 축소되었던 데는 여러가지 사정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우선 당시 정권과 자본의 전노협에 대한 집중적인 탄압과 고립화 공세로 인하여 많은 노조들에게 전노협 가입은 조합의 보전 자체를 위협하는 선택이었다는 사실이 지배적인 요인으로 현상하였으나 여기에 더하여 앞서 건설 쟁점을 둘러싼 노선상의 차이,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차별구조로 인한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 재벌급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사이의 의식상의 단절을 극복하지 못했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정권과 자본의 탄압공세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활용하면서 전개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민주노조운동진영의 단결을 저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전국회의에서부터 전노협까지의 기간 동안 사무전문직(화이트칼라) 노동조합들이 전노협으로 모이지 않고 별도의 회의체를 구성하여 운동한 것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업종노련(협) 조직들은 이후 전국업종노조회의로 자체 조직을 정비하면서 전노협과 구별정립하고 전노협과 공동연대활동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갔다. 이때 형성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구별은 95년 민주노총 건설을 통해서야 해소되게 된다.

조직적 수렴과정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양상은 그대로 한국사회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한 주관적 객관적 한계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는 오히려 제한된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민주노조운동이 ‘직업적 이해’에 매몰되지 않고 올곧은 그 계급적 전통을 어떻게 유지 보존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한 지난한 투쟁과정이 시작될 것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전노협 건설 직후 업종회의, 대기업 연대회의의 건설과 곧바로 제기된 전노협 해소론, 대공장 노조 중심론, 즉각적 산별 이행 현실론 등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벌 그룹 독점 대기업 노동자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된 투쟁성을 간과하고 이를 과대 평가하거나, 직종별 차이를 과대하게 해석하거나, 일본의 경험을 통해 관찰한 기업별 노조주의 한계를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에 일반화시켜 산별 노조를 형식적 측면에서만 사고하거나 함으로써 오히려 주관적인 소망과는 달리 노동조합운동의 계급적 발전을 가로막고, 그 직업적 이해에 매몰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 절에서 다루어지겠지만, 이 과정에서 전노협은 자신에게 집중된 정권과 자본의 무수한 탄압, 그로 인한 조직의 심각한 위축, 운동진영 내부의 수많은 기회주의적 비판, 그밖에 90년대 이후 이데올로기 공간의 파열 등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힘겹게 조직을 보존하고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성과를 추스려 냈다.

전노협이 자신을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으로 자임하였지만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한계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전노협은 그 한계에 굴하지 않고 전국적인 투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권력과 자본의 견제와 탄압을 최선두에서 막아내면서 전노협에 조직적으로 포괄되지 않고 있던 ‘민주노조’ 운동 전체를 실질적으로 사수해내고 있었다. 나중에 전노협의 조직력 훼손이 심각해졌던 것은 오히려 전노협이 자체의 조직보전에 급급하지 않고 87년 이후의 노동자계급 대중이 세워낸 ‘민주노조운동’을 사수해낸 것의 산 증거이다. 곧 전노협은 극렬한 탄압20)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냄과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유일한 민주노조운동의 중앙조직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만일 95년까지의 노조운동, 그리고 현재의 노조운동이 전노협운동을 폄하하는 데에 그 조직의 양적 훼손과 ‘왜소화’를 바탕에 깔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경제주의적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노협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계급적으로 87년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을 실질적으로 대표해왔던 것이다. 전노협 해소 당시에 전노협을 ‘왜소한 조직’으로 만든 것은 그 조직의 양적 훼손이 아니라 전노협의 정치적․계급적 단결체로서의 의의를 훼손당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그리고 그 외부의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며, 그 대가는 전노협 운동이 정치적, 조직적으로 심각하게 훼손된 연후에야 민주노조운동의 총단결체로서의 민주노총 건설이 가능해진 것으로 여하튼 드러났다.

전노협 건설까지 민주노조운동의 이러한 전개는, 전노협운동기를 거쳐 이후 민주노총의 건설과 단일산별노조건설을 둘러싼 논쟁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유․무형의 계급적․정치적 성과와 한계들은 전적으로 당시당시의 운동 속에서 어쨌거나 자신을 드러내 오고 있다.


4. 전노협 초기의 논쟁


1) 전노협 창립과 노동운동의 전개


90년 1월 22일, 전노협은 14개의 지노협과 2개의 업종협, 600여개의 민주노조와 20만 조합원을 포괄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평등세상을 향해 힘차게 진군할 것’을 선언하면서 창립되었다. 전노협이 창립된 그 날은 공교롭게도 민자당 창당일이었다. 그리고 그 직전인 89년 12월 자본측은 전노협 창립에 대응하여 전국경제단체협의회(경단협)를 결성하였다. 이는 당시의 계급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전노협 건설이 가졌던 정치적 의미를 반증하고 있다. 즉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계급에겐 새로운 조직이, 자본과 정권에겐 이를 무력화 시킬수 있는 반동적 지배질서의 재구축이 요구된 것이다.

88년 노태우 특별담화문을 시작으로 하여,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자본과 정권은 ‘체제를 수호하는 차원’으로 탄압해왔다. 파업사업장에 대한 경찰투입, 민주노조 지도부에 대한 대량구속과 수배, ‘문목사방북사건’ 등을 빌미로 한 반공이데올로기공세 등과 함께 노동부를 통하여 민주노조에 대한 ‘업무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등 그 탄압방식은 다양하고도 교묘했다. 경제 이데올로기공세도 성행하였는데, 노조운동의 활성화를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아 세우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우르과이라운드로 드러나고 있던 세계적인 자본간 경쟁의 격화와 그 부담을 전적으로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키고자 하였으며, 그런 맥락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론’이 입론되고 그에 입각하여 임금동결, 무노동 무임금 등의 정책적 공격을 펼쳤다. 이로인해 적지않은 수의 노조가 전노협을 탈퇴하거나 지도력에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건설 전노협’이라는 구호를 순식간에 ‘사수 전노협’으로 바꾸게 하였다.21)

전노협을 필두로 한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자본․정권의 공세 속에서 90년 상반기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 KBS 방송민주화투쟁, 그리고 전노협이 중앙조직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한 5월 총파업투쟁으로 맞서나갔다. 이러한 투쟁에 힘입어 90년 하반기에는 대공장 노동조합 선거에서 민주파가 대거 노조집행부에 당선되었고, 이는 90년말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조회의’(연대회의) 결성준비로 이어졌다. 90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는 업종노조회의와 전노협, 그리고 대공장 노조들이 공동주최하여 열렸는데, 이는 91년 임투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표면적인 의의를 넘어 ‘민주노조운동’ 진영 전체가 의식적으로 ‘총단결’의 기반을 확대해 나가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90년 당시 투쟁들에 대하여 ‘노동운동의 자생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22)가 존재하지만,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이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듯이 노동자들은 경제위기설 등의 자본의 공세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했으며, “내 지시가 없이는 현장에서 망치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서처럼 노동자가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이 사회를 개조하지 않는 한, 이땅에서 노동해방을 향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가능케 하였다.23)

91년에는 물가폭등, 집값폭등 등의 생존권적 위기에 수서비리, 페놀 방류 등 잇달아 정권에 의해 자행된 각종 부패상이 폭로되면서 87년에 비견할만한 정치적위기 국면에 들어선다. 이는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스스로 위기의식을 갖게하였는데 91년 걸프 전쟁을 활용하는 이데올로기적 공세와 함께 노동운동에 대한 야만적인 탄압으로 나타났다. 즉, 노태우 정권은 91년 2월 10일 전노협, 연대회의 위원장들을 대거 연행 구속하였는데, 이 중에는 한진중공업의 박창수 위원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러한 탄압에 맞서 전노협과 연대회의를 중심으로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면서 상반기 임투를 준비하는 한편, 박창수 위원장의 옥중살해에 맞서 전노협과 업종회의 그리고 노동운동단체를 중심으로 5월6일 전국대책위를 구성하여 진상규명투쟁을 전개하였다.

91년의 정세는 4월26일 경찰에 의한 명지대학생 강경대군 살해로 인해 급변하였다. 노동자계급은 박창수열사 사인규명투쟁을 전개하면서 전민중적 투쟁전선에 결합하였다. 이 당시의 노동자투쟁은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90년 5월 총파업에 이어 또다른 성숙을 보여준다.24)

민주노조운동은 91년 투쟁 속에서 ‘ILO 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이하 ILO공대위. 91년 10월)를 구성하였다. 여기에는 90년 노동자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한 전노협과 업종회의, 그리고 노동운동단체가 결합하였는데, 이는 92년 ILO총회에 맞추어 ‘결사의 자유’ 등 한국에서의 노동운동 탄압과 단결권 제한에 대한 대응을 조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시적 대책위이기는 했지만, 전노협 건설 이후 ‘전노협’ ‘업종회의’ ‘연대회의’ 구도로 존재한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그 조직적인 분산을 극복할 수 있는 연대구조를 공식적으로 마련한 것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을 통하여 민주노조운동은 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94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준비위’ 건설로 나아가게 된다.

한편 92년은 14대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해로서, 이를 전후하여 노동운동내에서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정치운동과 노조운동의 관계 문제, 정치조직과 대중조직의 관계 문제, 선거투쟁과 대중투쟁의 결합 문제, 후보전술 문제 등이 논점으로 떠올랐는데, 이 점들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현재의 노동자정치세력화 혹은 진보정당건설을 둘러싼 논의와도 연관되는 것으로서, 특히 정당(정치)조직과 노동조합과의 관계 문제는 핵심적이다.25)


2) 산별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의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이전의 논쟁은 91년부터 ‘산별노조로의 이행’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재개되었다. 그런데, 전노협은 조직적으로는 ‘산별노조로의 이행을 위한 과도적 조직’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좀더 광범한 민주노조 세력을 포괄하고자 하였던 ‘협의체’ 조직이었던 반면, 투쟁노선상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으로서 자신을 설정하고 있었고, 게다가 정부․자본의 전노협에 대한 집중적인 융단폭격 공격에 의하여, 현실에서는 더욱 높은 조직적 결속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전노협은 ‘민주노조운동’ 전체 조직을 포괄하지 못한 채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탄압 앞에 전면노출되어 있었던 관계로,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포괄하는 조직발전을 시급히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노협시기의 본격적인 논쟁은, 직접적으로는 90년 하반기에 대공장노조에서의 민주파의 대거 당선에 대한 논의를 배경으로 한 소위 ‘산별이행현실론’의 논의26)에서부터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산별이행현실론’을 둘러싼 논의지형에서 제기된 쟁점들은 전노협 시기 내내, 그리고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논의과정을 거쳐 현재까지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산별이행현실론 논쟁’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전노협 조발소위에서의 토론발제문27)에서는 ‘산별이행현실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28)

“첫째, 현재 산별이행론의 기저에는 남한 노동운동의 한계가 ‘기업별노조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기업별노조주의는 기업별노조의 체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별노조라는 조건에서 노동운동의 일반화가 이뤄지고 또 이 과정에서 계급적, 민주적인 노동운동의 발전이 좌절된 상황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기업별노조주의는 노동운동의 자생적 발전의 단계에서가 아니라 노동운동이 극히 자본에 매수된 계급협조적인 노동자층에 점유되어 나간 특정한 정도로 발전한 (가능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식적 노동운동의 산물’이다.29) 둘째, 이들의 산별이행론에는 이른바 ‘진보적 노동운동’이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환에 대한 요구가 가로놓여 있다. 이들의 견해에는 산별로의 이행이 단순히 기업별 노조주의의 타파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라는 낡은 노동운동의 단계를 딛고 새로운 즉 ‘진보적 노동운동의 단계’로 진전해 간다는 적극적인 노선(?)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대공장노조를 동력으로 한 민주산별의 건설이 ‘반독점적 노동운동 혹은 진보적 노동운동 단계’로의 도약점이라는 사고를 이들은 하고 있다. 이들의 생각 속에는 독점자본의 지배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함으로써 노동운동은 반독점노동운동으로 발전할 객관적 토대를 갖게 된다는 발상이 감춰져 있다. 이는 개별독점자본가 혹은 독점자본가 집단과 독점자본(독점적 축적체제)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고의 산물이다.”

당시의 대공장 동력에 입각한 산별노조로의 이행을 주장한 ‘대공장노조 동력론’ 혹은 ‘산별이행현실론’은 90년 하반기의 대공장에서의 ‘민주파’의 대거 노조집행부 당선이라는 상황에 근거하여 자기논리를 펴나가게 되는데, 위와 같은 논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쟁점이 추출되었다.

첫째는,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기업별노조 혹은 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 문제를 둘러싼 논의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논점들이 추출된다. 한국노조운동의 핵심적인 한계가 ‘기업별노조주의’인가? 기업별노조주의는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기업별노조주의의 폐해인 ‘광범한 노동자를 노조를 통해 조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계급적 분열 현상 조장’ 등은 노조 형태가 기업별노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 노조형태가 산별노조로 전환되면, 기업별노조주의의 폐해는 자연 사라지는 것인가? 이 문제는 최근의 산별노조운동의 필요성 논의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는 쟁점 중 하나이다.

둘째는, 산별노조 건설의 ‘동력’ 문제이다. 대공장노조들인가? 전노협 자체인가? 당시의 대공장노조 동력론은 산별이행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예측으로부터 대공장노조간의 조직화로부터 산별이행의 조직전술이 구사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30) 반면 전노협동력론은 노동운동의 발전 전망의 문제로서, 광범한 계급대중의 투쟁을 통한 조직과 노동전선의 민주적 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한 ‘장기적 정책’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 문제 역시 최근의 논의들 속에서 민주노총을 산별동력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산별 업종별 연맹을 동력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의 논점으로 재현되고 있다.

셋째는, 산별노조 건설의 경로와 방식 문제이다. 당시에는 ‘지노협과 산별운동의 모순없는 결합’,31) ‘업종별․산업별 교류와 공동행동 추진’,32) ‘업종별․산별 공동투쟁을 통한 산별 건설론’,33) ‘지노협의 산별본부 전환론’ 등등이 제출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산별노조의 질적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34) 문제의 핵심은 ‘산별노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하나는, 산별노조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화과정에서처럼 기업별노조-<지노협 혹은 업종협>-전노협과 같은 경로로 순차적․단계적 과정을 밟아서 건설될 수 있을 것인가? 당시에 만연되어 있던 논의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기업의 벽을 넘어 지역적 연대, 지역의 벽을 넘어 업종별 연대, 업종별 벽을 넘어 산업별 연대’를 통하면 산별노조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들이 만연되어 있다. 이와 연결되어 있지만 또 하나는, 산별노조가 ‘산업별 노동자의 공통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인가? 그렇다면 산별노조는 ‘직업적 이해’를 같이 하는 각종 노동자를 조직화해내고 이를 점차 산별단일노조로 묶어낸 조직에 불과한 것인가? 거꾸로, 순차적 연대와 공동투쟁과 조직화 경로를 통해 건설되는 산별노조는 어떤 내용을 갖는 조직일 것인가? ‘산별 이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이는 “산별노조”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에 다름아니다.

요컨대, 위와 같은 세 가지 쟁점은 서로 맞물리고 엊물리면서 당시에서부터 지금현재까지 여전히 핵심적으로 풀어내야 할 지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특히 핵심적인 문제, 즉 ‘산별노조’는 무엇인가? 만을 간략히 짚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산별노조’는 ‘한 산업의 노조’라는 사실 때문에 흔히 ‘그 산별의 이해’가 있는 것처럼 사고하는 수가 많다. 하지만 ‘산별이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를테면 금속산업 노동자들의 ‘산별이해’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 가능한가? 금속산업 노동자들이라고 할 때 그 안에 수많은 직종․직업으로 분할되어 있고 더욱이 각기 다른 노동조건을 갖는 직무들로 분할되어 있는데, 그 와중에서 ‘산별공동의 이해’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 가능할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직업적 이해’일 것이다. 따라서 일례로 ‘산별 공통의 노동기준’을 만들어서 산별‘조직’을 건설하고, 산별‘교섭’에 임하고, 그것을 산별노조에서 ‘쟁취’? 등등은 실은 ‘직업적 이해’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산별노조를 ‘직업적 이해’로 귀착시키는 이러한 경제주의적 사고는 ‘산업별 혹은 직업별로 이해기반을 같이 하는 노동자들’을 ‘단일노조’로 조직하는 “단일노조주의”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사고들은 그 ‘이해기반을 같이 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의 이해관계’가 바뀔 때 노동의 조건도 바뀔 수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이 다시 분할되고 거기에 기반한 노조조직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무시하거나, 알고도 노동자계급대중을 속이거나, 자본의 이해관계 안에서밖에 노조를 사고하지 못하는 ‘제도’주의자이기를 자처하거나, 등등일 것이다.

산별노조는 오로지 ‘계급적 이해’만을 대변하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다. ‘계급적 이해’에 입각할 때만이 산별노조는 가능한 것이다. ‘산별이해’라는 것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산별노조는 자본에 의하여 수만 갈래로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다양한 요구와 불만을 보편적인 계급적 요구로 전환시켜 낸다는 차원에서 존재한다. 산별노조는 ‘직업별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만일 직업적 혹은 산업별 이해를 대변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고, 직업별 이해를 같이 하는 노동자들만을 조직하는 것이 산별노조라면 그것은 이미 노동자의 ‘계급으로서의 단결을 강화하고 공고화하는 계급조직’으로서의 산별노조가 아니라, ‘직업적 이해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이익결사체”일 뿐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체현하는 조직일 수 없다.  99.4.24  

한/노/정/연


*) 이 글은 본 연구소 산별노조운동연구팀이 수행 중인 연구프로젝트 “현시기 산별노조운동의 쟁점과 과제” 연구의 일환으로 2회에 걸쳐 정리할 예정이다.


1) “이러한 노총의 반노동자적 입장을 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노총이 주장하는 ‘응징’의 방법으로 ‘1,000명의 각목부대를 동원’할 수 있다는 발언이 보도된 사실이다 ……”(‘한국노총의 8월27일 성명에 대한 우리의 견해’, 노동조합민주화실천위원회, 1987.9.2., ꡔ1987-1995 전노협백서 12ꡕ, p.19, 도서출판 전노협, 1997).


2) 1986년에 276건에 불과했던 노동자투쟁이 87년에는 3,749건으로 대폭 늘어났는데, 그중 2,629건이 임금인상, 566건이 노동조건 개선요구투쟁이었다.(ꡔKLI 노동통계ꡕ 1991년, 한국노동연구원, p.156.)


3) 1987년 6월 당시 노조수는 2,742개 조합원수는 105만명이었으나 1987년 12월에는 노조수 4,086개, 조합원수 126만7천명, 88년에는 각각 6,142개, 1,707천명, 89년에는 7,861개, 1,932천명으로 증가하였다.


4) 89년 11월 현재 전국 17개 지노협 630개 노조, 26만3,540명, 89년 9월 현재 13개 업종협 690개 노조 17만3,800명(김진균 외,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와 특징 -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전개과정과 주요활동을 중심으로」, “전노협 6년의 활동평가와 역사적 의의” 토론회자료집, pp.9-10 참조).


5) 한국노동연구원, ꡔ1991년도 임금관련통계자료집ꡕ, pp.153,155 참조.


6) 한국노동연구원, 앞의 자료, pp.156-157 참조, 재구성.


7) 이 조직은 91년 전국노동단체연합(전국노련)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노운협)로 분할정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8) ‘전국회의’는 주요 임무로서, 1) 전국적 노동조합 조직 건설을 추진하고, 2) 당면한 투쟁을 수행하며, 3) 민주화투쟁에서 타계급과의 연대를 수행할 것을 결의했다. 전국회의의 사무실은 서노협에 마련되었다.(전노협백서1, p.447.)


9) 서노협, 인노협, 부천노협, 경기노련, 성남노협, 대전노협건설준, 전북노련, 광주노협, 동광양민조협, 대구경북노련, 구미노대, 마창노련, 진주민노련, 부산노련, 울산노협준, 거제노조탄압공대위.


10) 민출노협, 시설관리노협, 외기노협, 화물운송노협.


11) 전교조, 병원노련, 전문기술노련, 건설노협, 대학노협, 사무금융노련, 언론노련.


12) ‘노총민주화론’에도 다양한 조류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대표적으로 주창한 것은 ꡔ새벽ꡕ지였다.


13) 전노협 조발소위 토론회 발제문(1992) 등.


14) 그러나 최근 산별노조운동과 관련하여 과거의 ‘노총민주화론’이 근저에 깔고 있던 경제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사고가 부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경제주의와 조합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직업적 이해’를 강조하고 중시하는데, 산별노조 건설을 그러한 ‘직업적 이해’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상당한 ‘대중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에서 ‘직업적 이해’ 속에 강박되어 있는 노동자대중의 ‘직업적 이해의 강화’는 가장 대중적인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따라서 노동자 투쟁의 첫 출발점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양보할 수 없는 요구지만 그러나 거기에 그냥 머물러서는 안되는 함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야는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을 경제적․제도내적 틀로 한정지어 바라보는 협소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운동을 질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서 ‘직업적 이해의 강화를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계급 전체 이해에 복무하기 보다는 노동자계급 내부구성에서의 지배적 부분의 이해 실현으로 쉽사리 귀착될 수 있다. 일례로 ‘직업적 이해’ 강조는 ‘대기업․남성․가부장 노동자의 이해’ 실현으로 귀착되어 그것이 여성노동자, 소규모기업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실업자, 장애인 등의 이해에 우선하는 것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더욱이 ‘직업적 이해’에 대한 강조는, 노동자들을 임금노예의 지위에서 한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한편 최근의 논의들에서도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하여 경제주의적 조합주의적 사고가 재생산되고 있는데, 산별노조를 ‘산별이해’에 입각한 조직이라고 보는 일련의 견해들이다. 그러나 산별노조는 ‘산별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다. 산별노조는 ‘계급적 이해’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15) 김승호, 「향후 노동조합운동의 전망과 과제」, ꡔ한국노동운동 20년의 결산과 정망 전망ꡕ, 세계.


16) 허명구, 「87년 이후 노동조합운동의 현황과 과제」, 앞의 책.


17) 전노협 조발소위 토론회 발제문,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발전을 위하여’, 1992.


18) 한편 임영일(1992)은 지노협 건설 시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좁은 범위에서나마 산업별 연맹의 형식을 갖는 조직을 형성해야 했다고 주장하고, 당시 지식인 출신의 활동가들에게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적어도 문서 차원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함으로써 스스로 설정한 과제의 책임을 지식인 출신의 현장 활동가들에게 돌리고 있다.


19) 전노협 조발소위 토론 발제문,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발전을 위하여」(1991), pp.14-15 참조.


20) 이 시기 국가의 탄압 양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노중기,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에 관한 연구」(1995.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논문)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노동운동탄압백서」를 참조할 것.


21) 때문에 후술하겠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전노협이 보여주었던 전투성을 과도한 것이었다고 평가하는 일부의 논지는 전혀 온당치 못하다고 하겠다.


22) 전노협 조직발전 연구팀, “대공장 노동운동과 변혁적 노동운동의 미래” 1991.


23) 이성호, “골리앗 전사들 노동운동의 자생성에 종지부를 찍다! ꡔ우등불ꡕ 창간준비호 1990.7


24) 최경희, 「한국노동운동의 주체형성에 관한 연구 :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중심으로」, p49.


25) 이와 관련해서는, 김영수(1999), 「한국 노동자 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간의 연대관계 : 1970년에서 1995년까지」(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 논문)를 참조할 것.


26) 대표적인 것으로 김민호, 「90년 대공장 노조운동의 현황과 과제」, ꡔ노동자ꡕ 9호, 전노추.


27) 전노협 조발소위 토론발제문,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발전을 위하여」, 1991.


28) 위 발제문, pp.21-27.


29) 한마디로 말해 이 견해에서는 노조형태로서의 ‘기업별노조’와 ‘기업별 노조주의’는 다르다고 정당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거기에서는, 노조의 조직형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다. “기업별노조란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의미의 계급적 단결을 전취하고 노동운동의 민주적 통일을 이뤄내기 위한 과정에서 제기되는 특수한 ‘조건’이다. 산별노조 또한 노동운동의 다양한 발전전망에도 불구하고 자생으로나마 계급적인 발전의 조건을 보다 확대하고 노동자계급에게 노동운동을 일상적인 사회현상의 하나로서 정착시키는 ‘조건’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기업별노조보다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는다.”(위 발제문, p.25.)


30) 전노협조발소위, 앞의 발제문, p.28.


31) 우리노동문제연구원, ꡔ민주노조운동의 현황과 과제ꡕ, 백산서당, p.173.


32) 이성필, 「산업별노조와 기업별노조」, ꡔ월간 노동자ꡕ, 1989년 5월호, 백산서당, p.128.


33) 박태주, 「노동조합운동의 조직발전전망과 과제」, ꡔ동향과 전망ꡕ, 1991.


34) 전노협 조발소위, 앞의 발제문, p.30-31.


199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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