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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

현장에서 미래를  제43호
손호철


“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
--5.18 민중항쟁, 김대중정권, 그리고 노동자계급--

이렇게 본다
김대중 정권 1년의 인권정책과 현실




몇 년전 5.18 민중항쟁 부상자, 유가족 등 5.18 민중항쟁 관계자들과 함께 유럽과 아시아여행을 한 적이 있다. 해외여행이라니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세계 주요 민주화운동의 민주성지들을 방문해 기념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시찰하여 5.18 민중항쟁 기념사업의 준거틀로 삼기 위한 여행이어서 여행 내내 보고 온 것은 항쟁 희생자들의 무덤이었다.
어쨌든 마지막 행선지인 필리핀에 도착하여, '민중의 힘’으로 마르코스를 몰아낸 86년 2월혁명 기념사업을 돌아보았는데 혁명기념탑이 특이하게도 팔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마리아상이었다. 필리핀사람의 절대다수가 카톨릭신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하필 마리아상일까 궁금했는데 필리핀대학의 좌파학자이자 실천가로 정평이 나 있는 한 정치학자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필리핀의 보수세력, 즉 자유주의자들은 마르코스를 무너뜨린 민중의 힘 덕분에 권력을 잡게 되었지만 민중의 힘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86년의 역사적 사건은 민중의 힘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의 결과, 즉 기적이라는 것을 민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바로 마리아상을 혁명의 기념상징물로 택한 것이다. 즉 상징이 의도하는 것은 민중에게 너희들이 마르코스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뇌시킴으로써 민중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혁명하면 바로 마리아상, 이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처럼 ‘역사란 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에 다름 아니다”
다시 5월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5.18이 찾아 왔건만 5.18 민중항쟁을 맞는 마음은 착찹하기만 하다. 5.18 민중항쟁을 단순히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싸운 민주화운동(정부의 공식 입장처럼 ‘5.18 민주화 운동)으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자들, 나아가 이같은 담론에 포섭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이제 5.18은 마침표가 찍혀진 과거완료형의 역사속의 사건이다. 95년 지자체선거 패배와 김대중대통령의 정계복귀라는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정략이기는 했지만 김영삼정권의 ‘역사 바로세우기’, 정확히 표현하자면 ‘역사 비스듬히 세우기’ 작업에 의해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5.18 민중항쟁 학살의 주범들이 사법적 심판을 받았고 망월동묘역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5.18 민중항쟁 희생자들의 무덤들은 이제 수백억원이 들어간 웅장한 묘역, 그것도 국립묘지로 지정된 묘역에 안장되어 뒤늦게 나마 ‘호강(?)’을 하고 있다. 또 호남의 한을 상징하고 5.18 민중항쟁의 직접적인 촉발쇠가 되었던 김대중대통령은 4수만에 국가부도에 근접했던 IMF 위기 덕으로 집권에 성공하여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는 가운데, 그간의 차별에 대한 보상인사가 ‘호남패권주의’라는 비판까지 일각에서는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변화의 반영으로 최근에는 5.18부상자 등 5.18민중항쟁 관계자들이 학살의 주범으로 증오의 대상이었던 공수특전단을 방문해 ‘역사적 화해’를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제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란 하나의 저항의 행위가 아니라 제도화된 제식일 따름이다. 한마디로 김대중정권의 출범에 따라 5.18 민중항쟁의 변혁적 함의를 거세하고 제도화시키려는 수동혁명은 완성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5.18 민중항쟁의 반쪽 모습, 아니 왜곡된 모습에 불과하다. 노동자계급, 나아가 민중적 관점에서 바라다볼 때 5.18 민중항쟁은 전혀 다른 의미와 기억을 가지며 현재 역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선 5.18 민중항쟁은 단순히 군사독재에 저항한 형식적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5.18 민중항쟁은 민중배제적인 종속적 자본축적체제(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와 극우반공체제(종속적 파시즘)에 의해 배태된 계급모순, 민족모순, 분단모순, 지역모순 등 우리 사회의 제반 구조적 모순들이 특정국면에 광주라는 특정지역에 응집되어 폭발한 것으로서 그 주체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한 민중들이었고 그 성격 역시 민중항쟁이었다. 이는 당시 광주지역의 지배계급과 부유층들이 5.18 민중항쟁의 빠른 진압을 기원하고 귀중품을 싣고 타지역으로 도주하다 시민군에게 발각되어 곤욕을 치러야 했던 반면 사망자, 부상자, 구속시민군의 절대다수를 노동자계급등 기층민중이 차지했었다는 사실이 입증해주고 있다. 또 분단에 따른 민중들의 정치의식의 미발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농민 압살하는 권력층 척결하라”는 구호아래 세무서, 노동청이 방화되고 “특권층만 배부르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민, 노동자, 농민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원한다”라는 구호 등이 보여주듯이 5.18은 단순히 계엄철폐와 신군부퇴진, 이에 따른 절차적 민주화만을 바랬던 제한적 운동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변혁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같은 5.18 민중항쟁의 민중적, 변혁적 의미를 생각할 때 현재의 상황은 차라리 참담하기까지 하다. 인간을 임금노예화하여 “최후의 근육, 최후의 한 방울의 피까지도 빨아내려는” 자본의 공세는 그 어느때보다도 강하기만 하고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민중생존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선진자본주의의 금융자본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더해져 5.18 민중항쟁의 피를 먹고 자라난 소위 국민의 정부가 “지금은 식민지 시대가 아니므로 외국자본은 많이 들여 올수록 좋다”느니, “8명이 살기 위해 2명은 희생되야 한다”느니하는 무서운 자본의 논리를 공공연히 주장하며 민중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그 결과 남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노숙자들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버렸고 이미 실업자수가 4백만명을 넘어 선 가운데 이에 저항하여 11명의 노동자들이 분신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택해야 했다. “특권층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도 골고루 잘 사는 나라”는커녕 그나마 존재했던 소위 중산층, 즉 중간 제계급까지 하향분화되어 경쟁에 살아 남은 20%와 도퇴된 80%로 양극화되는 ‘20대 80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아니 거창한 노동자계급적 관점까지도 필요없다. 형식적 민주화의 기준으로 볼 때도 5.18의 현실은 별로 다르지 않다. 5.18 민중항쟁은 단지 권력의 수단이 되어 현 정권은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명분아래 5.18 민중항쟁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 유신체제의 핵심주역이었던 유신총리와의 연합을 통해 집권함으로써 유신총리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또 집권을 위한 대구∙경북 구애전략으로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주도한 결과 이제 5.18 민중항쟁의 학살자들은 많은 양심수들이 아직도 갇혀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찍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 정권과 밀월기를 구사하면서 다음 총선을 통한 정치적 복귀를 새 정권의 지원아래 도모하고 있다. 게다가 색깔론 최대의 피해자와 국민의 정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국가보안법 구속자, 양심수는 오히려 김영삼 초기의 같은 기간보다 4배 이상 늘어나 감옥을 메우고 있다. 지역주의의 골 역시 예전과 다름이 없고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로 남아온 정당구조는 오히려 5.18 당시보다 후퇴하여 봉건적 사당체제로 변해 버렸고 보수일변도의 정당체제는 여전하기만 하다. 우리의 현실이 이러하기에 우리는 5.18을 맞아 당시 도청을 지키다 쓰러져간 최후의 저항군들과 노동자시민군들에게 “당신들이 세우고자 했던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며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고 감히 묻지 않을 수 없다.
강경대사건으로 촉발되어 분신정국이라고 불리웠던 91년 5월 항쟁 당시 ‘죽음의 굿판’론으로 비판을 받았던 한 시인은 70년대 유신시절 박정희정권이 박정희의 친일행각의 컴플랙스의 보상으로 이순신장군을 부각시키면서 광화문네거리에 거대한 이순신장군 동상을 세운 것을 이순신의 참 정신을 구리 속에 가두워버린 것으로 풍자한 희곡 ‘구리 이순신’을 발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어쩌면 5.18 민중항쟁 역시 이제 5.18 민중항쟁의 참 정신을 구리동상 속에 가두어 놓은 현실을 비판한 ‘구리 5.18’론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좁게는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넓게는 민중적 관점에서 5.18 민중항쟁의 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을 새롭게 시작할 때이다. “5.18 민중항쟁은 죽었다. 그러나 영원하다.” 한/노/정/연

199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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