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컬럼 > 목록보기 > 글읽기

 
남아공의 변혁운동과 노동조합

현장에서 미래를  제44호
조현연


남아공의 변혁운동과 노동조합
-도서출판 현장에서 미래를, 김영수 편저, 1999를 읽고-
조 현 연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정치학박사








들어가는 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즉 인종차별과 만델라로만 알려진, 이래저래 우리에게 멀기만 했던 남아공이란 나라가 언제부턴가 노동운동 일각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단지 세계 최장의 양심수라고 잘못 알려져 있던 만델라가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 때문은 아닐 터인데,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일까?
얼마 전 소리 없이 출간된 한 권의 책이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수 박사가 편저한 『남아공의 변혁운동과 노동조합』이 그것이다. 이 책은 남아공의 지배와 저항의 역사, 그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해,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춰 쓴 7편의 글과 두 개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징적인 것은 필자들의 글이 하나같이 사회주의적 지향과 전망 아래 쓰여졌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편저자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으리라. 그러나 여러 필자들의 글을 묶다 보니, 또 각각의 글들이 특정한 시기 시기를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남아공 계급투쟁의 역사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음으로써 일관된 호흡의 글 읽기를 지속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리고 생소한 조직 명칭들과 낯선 단어들이 책 넘기기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글들을 꼼꼼히 읽다 보면 신자유주의의 소리 없는 대학살로 인해 고통과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적‧정치적 상상력의 풍부화를 위한 많은 자양분을, 또 우리 노동운동의 전략‧전술적 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고민거리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양해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전개할 글의 양식이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을 소개하는 글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남아공의 계급투쟁사, 노동운동사의 흐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각각의 필자들의 논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쟁점을 정리 요약한 뒤 몇 가지 의문점을 묻는 것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훨씬 더 나을 듯 싶다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이제 남아공이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개략적으로 먼저 살펴본 뒤, 남아공의 어제와 오늘, 그 지배와 저항의 계급투쟁사를 권력구조 변화 이전과 이후로 나눠 각각의 필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시기별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함께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남아공이란 나라는?

남아공은 11개의 종족과 4개의 대표적인 인종으로 구성된 나라다. 이 나라는 1948년 국민당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영국과 네덜란드의 직할 식민지였고, 국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1960년까지는 영국연방의 하나였다. 국민당은 네덜란드계 백인 이민자들의 후손을 중심으로 구성된 지배정당으로서, 자신들의 선조들이 형성했던 계급지배 구조를 온존‧강화하면서 백인 이외의 대표적인 흑인‧유색인‧인도인 인종들을 극심하게 탄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종 탄압에 기초하는 착취체제를 강화하면서 백인제국, 즉 ‘인종적 자본주의’체제에 기반하는 백인국가를 건설‧유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흑인 노동자들은 인종모순과 계급모순의 이중적 초과착취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결빙’되어 온 남아공의 권력구조가 바뀌게 된 계기는 1994년 4월 총선이었다. 이 선거를 통해 ANC(아프리카민족회의)가 63%의 지지율을 획득하여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민통일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여기에는 ANC와 SACP(남아공 공산당)로 대표되는 운동 1세대, 변혁적 노동조합운동의 대중적 활성화를 이루어 낸 운동 2세대, COSATU(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와 NACTU(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조직적 주체로 하는 운동 3세대가 이끈 흑인 노동자계급운동과, ANC‧SACP‧COSATU의 3자동맹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즉 데이비드 헨슨의 지적처럼, 남아공에서 흑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변혁운동 조직과 흑인 노동조합은 투쟁에서 항상 중심적인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권력구조의 변화가 남아공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이 권력구조의 변화가 계급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모순의 심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고 필자들은 지적한다.


권력구조 변화 이전의 주요 쟁점

(1) 데이비드 헨슨은 1978년의 글 「흑인 노동조합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아공의 구조적 변혁과 관련된 실천투쟁의 측면에서 볼 때 흑인 노동자계급의 핵심적인 전략적 문제는 노동자계급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저항하고 파업투쟁이 발전되는가, 그리고 지하 노동자계급 조직이 얼마나 발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답은 혁명적 정당과 혁명적 노동조합 모두 혁명적 노동자 계급운동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었다. 즉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통한 공개적인 노동조합의 형성과 혁명당의 발전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담아내지 못하는 추상적인 공식들은 무질서와 절망을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2) 파인과 클러크와 인너의 1981년 글 「남아공의 노동조합과 국가: 국가의 합법화 전략과 노동조합운동」이 다루고 있는 핵심 주제는 국가의 합법화 전략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과 관련한 논쟁이다. 논쟁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흑인 노동조합의 성장과 노동자 계급투쟁의 급증, 또 자본축적 구조의 변화에 맞추어 국가가 노동통제방식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흑인 노동조합을 합법화시키는 것으로 전략 변화가 수행되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들에 따르면, 당시 논쟁지형은 FOSATU(남아프리카노동조합연맹)의 비판적 활용론의 입장과 보이코트론 사이에서 이루어졌는데, 지배적인 경향은 후자였다. 이 보이코트론에 대해 필자들은 몇 가지 논거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①노동조합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전술 가운데 하나로서 보이코트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국가의 합법화 전략과 연관해서 국가의 억압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면 비판적 활용론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 필자들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전제로 ②보이코트전술이란 미묘하고 섬세한 정치적 문제를 도덕적 순결성의 문제로 전락시키려는 시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랬을 때 ③‘국가등록제’라는 국가의 합법화 전략이 흑인노동조합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신장시키는 한에서는, 노동조합이 이 타협안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흑인 노동자들의 힘을 확대하는 데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④투쟁과정에서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적으로 반동적이라면서 불법성을 행동의 절대적 지침으로 삼는 것은 극좌파의 낡은 사고이자 망상으로, 불법지상주의에 대한 맹신을 이제는 매장시켜야 할 때라는 것이다.

(3) 1984년 이후 남아공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ANC의 혁명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민중봉기적인 저항형태가 양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과 UDF(통일민주전선)의 창설과 거대한 흑인 노동조합의 출현을 근거로, 민중봉기를 통해 백인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혁명적 전망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스위지와 맥도프는 80년대 중반의 남아공 상황을, 혁명의 정세가 객관적으로 무르익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혁명적 투쟁을 외관상 최고조의 단계로 진입시켰던 유일한 자본주의 국가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프리 허브스트의 1988년의 글(「“ANC의 투쟁”과 백인국가의 탄압」)은 남아공에서의 혁명적 전망을 알기 위해서는 민중적 저항의 폭발로 창출된 혁명적 민중봉기의 조건과 제약들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라고 말하면서, 현재의 민중봉기적 저항운동만으로는 백인국가를 위협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 논거로 허브스트는 ①비조직적이며 무계획적인 대규모 민중봉기는 실패하기 쉽다는 것 ②실질적인 혁명의 전망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남아공 정권의 성격을 규명해야 하는데, 다른 일인독재정권과는 달리 남아공 국가는 백인집단의 정치적, 경제적 우월성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그 지배체제를 고도화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억압체제라는 것 ③백인정권을 전복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은 바로 무장투쟁, 특히 지역과 지방에서의 무장투쟁인데, 그러나 저항역량과 국가의 탄압역량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군사적 무장투쟁으로는 백인정권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할 수 없다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4) 존 사울의 1986년 글 「ANC의 혁명전략과 노동자계급」이 다루는 핵심 주제는 ANC의 전략과 노선인데, 필자에 따르면 그것은 남아공의 이행기를 보다 잘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수많은 흑인 노동자와 민중들이 역사적인 전환기마다 ANC와 자신들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정치적 공동운명주의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속적인 탄압 속에서 ANC가 남아공 저항운동의 핵심세력이자 유일한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변혁운동의 핵심적 주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NC의 노선은 무엇인가? 그는 남아공의 사회구성체의 중요한 특성인 인종모순의 지점에 적절한 무게중심을 부여한 ‘특수한 식민주의’ 규정과, 2단계혁명론(1단계인 민족민주적 단계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을, 2단계에서는 사회주의적인 사회경제적 구조로의 변화를 추구)이라는 정치적 투쟁전략의 수립을 꼽는다.
이 ANC노선에 대해 당시 찬반 양론이 제기되었음은 물론이다. 먼저 인종적 자본주의론을 기반으로 새롭게 등장한 맑스주의자들은, 특수한 식민주의라는 규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민족민주적 단계를 폐기하고 투쟁과정에서 비프롤레타리아 세력의 역할과 순수성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COSATU는 노동자계급을 위한다는 명분만으로 노동자계급의 존재 기반과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적 활동만을 주도하려고 하는 정치적 운동과 정당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사울의 경우 광범위한 동맹체 내에서 차지하는 ANC의 역할과 위상이 남아공 사회주의의 전망에 대해 낙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의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통해 쟁취되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권력변동기와 그 이후의 주요 쟁점

(1) 존 사울은 1991년의 글「“야만주의와 구조적 개혁”의 기로에 선 남아공」을 통해, 민주화의 열망 속에서 1990년 2월 흑인 저항운동에 대한 극적인 합법화와 넬슨 만델라 석방등의 발전적인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또 인종차별이 철폐된(최소한의) 자본주의와 그밖의 많은 것(잠재적이지만)들이 합의되고 있는 순간 남아공의 사람들이 아파르트헤이드 이후의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적으로는 야만적인 상태로 퇴행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①사회주의가 여러 전선에서 퇴조국면으로 빠져 들면서, 자본주의 국가의 변혁운동진영이 개혁주의 노선으로 경도되는 것은 매우 쉽다. 수많은 좌파진영에서 합리성이라는 언어가 혁명이라는 언어를 대체하고 있고, 반면에 맑스-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전보다도 훨씬 교조적이고 극좌적이면서도 순진하게 대처한다. 확실히 남아공의 현실은 혁명의 열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혁명과 개혁을 동일한 수준에서 바라보는 것조차 점점 이상하게 들리는 상태에 처해 있다. ②실제로 정치적 영역에서만 진행되는 협소한 민주화일지라도, 그것은 남아공의 서글픈 역사와 참혹한 현실에 비춰볼 때, 매우 유용한 투쟁의 성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평등화의 충동이 남아공의 인종적 자본주의라는 상표에 내재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감소하도록 강제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새로운 자유도 광범위한 흑인대중들에게는 단지 형식적인 것으로 급속하게 변질되고 말 것이다.
다른 한편 그는 “만약 즉각적으로 사회주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개혁의 성과 중 그 어느 것도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파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지 개혁주의에 불과하다는 근거만을 내세우면서 협소한 수준의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이행전략의 모든 가능성을 반대하는 것이며, 사회주의의 이행과정에 대한 모든 가능성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라는 고즈(Andre Gorz)의 말을 인용하면서, 구조적 개혁과 단순한 개혁주의를 이렇게 구별하고 있다. ①어떠한 개혁도 구조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자기봉쇄적(단순한 개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즉 개혁이 구조적 변혁이라는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그 프로젝트로부터 파생되는 필연적 개혁조치들을 목적의식적으로 포괄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②구조적 개혁은 상층부로부터 내려올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민중적 주도성에 근거를 두는, 즉 미래에 대한 투쟁과 승리를 위해서 혹은 스스로를 강화시키는 대다수의 민중들을 위해서 노동자‧민중진영에게 더 많은 권력 부여의 여지를 남겨놓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2) 파인과 벤윜의 1996년 글(「ANC정권의 국가재건과 노동조합운동」)은, 1994년 4월 총선거로 수립된 새로운 국민통일정부 하에서도, RDF(국가재건강령) 등의 제반 장치와 구조를 통해 자본의 법칙이 이른바 코포라티즘이라는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다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규명하고 있다.
1993년 COSATU는 정부와의 협상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ANC 및 미래의 국민통일정부가 노동자들과 하나로 결합하기 위한 방안으로 RDF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것은 ANC의 주요 선거 공약이 되었고, 국민통일정부의 핵심적인 정책 골간으로 채택되었다. 그렇다면 RDF의 내용과 지향점은 무엇인가? RDF는 이론적으로는 중앙집중식 통제경제와 족쇄 풀린 자유시장경제를 모두 거부하면서, 흑인 민중들의 가난과 착취를 공격하는 것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통합적이고 조화로운 남아공 경제와 시장의 재건, 그 발전과정에서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을 요구하며, 정부와 노동조합운동과 자본가 조직들과 시민사회 관련 조직들의 협력을 호소하는 화해의 문구로 쓰여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RDF는 자본가들에게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 모두에게 공히 우호적인데, 필자는 이것을 ‘사계절용 강령과 정책’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RDF에 대해 우파들이 지지를 표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노동조합운동 대표자들과 노동운동의 중요한 주체들도 대부분 RDF의 중심적 기조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ANC의 국민통일정부와 협력하기로 했다. 물론 COSATU 내부에서는 여전히 ‘국제화와 사회주의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고는 있지만, 그 요구들은 강도가 약해지거나 개별 단위의 노동조합들에 의해 배제되고 있다. 왜냐하면 개별 단위의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ANC와의 협정을 통해서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들은 코포라티즘이 결코 남아공 사회주의 운동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힘을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형태들에 얽매이게 함으로써 오히려 노동자들의 힘을 해체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에 따르면, ①코포라티즘은 남아공의 사회경제적 개혁의 주체인 ANC‧COSATU‧SACP의 3자동맹이 결코 자본가계급의 의도와 요구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코포라티즘의 중심 사항, 즉 협상테이블에서 노동조합의 더 큰 목소리가 대중적 민주개혁을 이룰 수 있고,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의 승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들은 현재의 RDF는 분명히 원래의 의도에서 동떨어져 있으며, 화합이라는 고요한 표면 바로 밑에 위험한 흐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즉 RDF가 자본, 노동, 국가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사항들을 촉진시켜 나간다는 것으로부터, 노동진영으로 하여금-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실질적 전환을 어렵게 하는-국가‧자본의 전략적 계획의 틀 내부로 엮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구나 서구의 모든 국가들에 비해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대안들을 발전시킨 탈인종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비전이 자본의 위력에 굴복하고 있으며, RDF의 민중 주도라는 과장된 표현은 오히려 인종차별 뒤에 있는 자본의 힘을 은폐시켜 준다는 것이다.

(3-1) 편저자인 김영수는 두 가지 글을 제출하고 있다. 그가 첫 번째 글 「남아공의 계급지배 구조와 계급투쟁」을 통해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장은, 1990년 인종차별정책의 폐지와 1994년 ANC 정권의 수립, 즉 남아공에서 3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인종차별적인 정치권력 구조가 실질적으로 인종적 자본주의 축적체제 구조와 계급지배 구조의 변화를 동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흑인 중심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정치운동세력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했지만, 백인 중심의 아파르트헤이트 세력들은 여전히 경제적 지배권력을 장악한 채 계급지배 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저지하고 있으며, 흑인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심화되어 왔던 인종적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 사회구조의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ANC 정부의 RDF가 담고 있는 전략적 지향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제반 권리 보장을 통한 ‘민주화된 남아공, 인종적 자본주의체제를 구조적으로 개혁한 남아공, 자본주의 모순을 지향한 남아공’의 건설과, 동시에 자본가들에 대한 새로운 자본축적의 기회 보장을 통한 ‘자본주의 생산력의 발전’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랬을 때 RDF는, 경제권력을 토대로 하는 백인 지배계급의 저항으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체제적 대안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자본의 합리화 정책의 위력 앞에서 굴복할 경향성이 내재하고 있으며, 나아가 오히려 탈인종주의국가의 발전 및 민주주의의 발전 가능성이 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체제로 흡수되어 버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흑인 노동자계급은 새롭게 제기되는 계급투쟁의 과제에 직면해 있는데, ①이른바 ‘신조합주의’와의 투쟁 ②노동자계급의 전략적 과제로서의 RDF를 쟁취하는 투쟁 ③계급권력의 수립과 이에 기반하는 새로운 계급구조지배를 형성해야 하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러한 과제는 이미 1989년 COSATU와 NACTU가 공동으로 채택한 노동자헌장(Worker's Charter)에 구체적으로 담겨져 있는데,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폐절, 계급적 통일의 강화, 경제와 소유에 대한 계급국가의 통제, 계급권리의 완전 성취, 사회주의의 실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필자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러한 과제들이 단지 과제 설정만으로 끝난다면, 남아공의 사회구조적 모순들은 지양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왜냐하면 남아공의 백인 지배계급은 여전히 강력한 경제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그 권력을 토대로 ‘인종모순의 의사적 해결’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착취구조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투쟁을 전개할 것인가? 그에 따르면, 이러한 투쟁의 성공 여부는 ANC 정권만의 몫이 아니며, 형식적으로는 3자동맹 관계의 강화이고, 실질적으로는 사회주의 동맹관계의 강화라고 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사회주의 사회로의 혁명적 이행을 추진하는 한 주체로서 COSATU가 향후 투쟁이 구체적인 과제를, ‘ANC정권의 강화, 3자동맹의 강화, 사회주의 이념의 구체화 사회주의 동맹의 강화’ 등으로 설정한 것은 타당한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3-2) 김영수는 두 번째 글 「남아공의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을 통해, COSATU의 투쟁전략과 과제에 기초하여 남아공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과제에서 비롯되는 계급투쟁의 주요 동학을 밝힘과 동시에, 남아공의 흑인노동조합운동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ANC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 ANC정부, 자본, 그리고 수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참여하는 NEDLAC(국가경제발전과 노동위원회)이 결성되었다. COSATU는 이 위원회의 핵심 주체가 되었으며 이것을 통해 사회적 합의구조를 확보하게 되었고, 노동관계법의 개정을 이루어내 왔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1995년 상반기 요하네스버그와 더반의 노동자들의 ‘투쟁의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 개정되어 1995년 1월에 발표된 내용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노동현장포럼 결성권, 경영정보 공유권, 정책결정 참여권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3자동맹 주체들간의 상호연계구조는 견고하지 못했다. 비록 NEDLAC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도화된 사회적 협의모델을 토대로 ANC와 COSATU간의 상호협의구조는 유지되어 왔지만, 국민통일정부를 구성한 ANC정권은 3자동맹 체제를 제한적인 상호협의의 수단으로, 혹은 상호긴장‧갈등의 억제수단으로 유효하게 활용해 왔으며, 역설적으로 상호협의구조를 중심으로 동맹세력들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 왔다. 더욱이 과거의 지도부들이 ANC정권에 대거 참여하는 과정에서 COSATU와 SACP는 ‘두뇌 유출현상’을 겪어야만 했고, 이로 인해 지도력의 공백기를 맞이하였다. 이 과정에서 COSATU와 SACP는 3자동맹 체제의 한 주체로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지도부들에 대한 조직적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영수는 COSATU에 의해 주도되는 남아공 노동조합운동의 성격과 관련해, 윤효원의 ‘신조합주의’나 킴 무디(Kim Moody)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와는 달리,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라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개념은 무엇보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에 기초하는 남아공 노동조합운동의 사회구조적 변혁의 지향성을 핵심적인 것으로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96년 ANC는 동맹세력들과 아무런 협의없이 GEAR(성장‧고용 그리고 재분배)정책을 채택‧추진했는데, RDF와는 달리 이것은 민영화‧자유화‧탈규제화를 핵심적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 지향의 거시적 전략이자 초국적 국제금융자본의 요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ANC정권이 남아공의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의 총체적인 발전전략을 채택하면서, 남아공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COSATU는 GEAR전략에 대해, 영국의 대처리즘이자 남아공의 구조적 변혁 및 개혁적 법안들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1998년 현재 남아공에서는 RDF와 GEAR을 둘러싼 한 판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1996년 GEAR정책 수립과 동시에 COSATU와 SACP는 이에 맞서 GEAR전략 철폐투쟁을 줄곧 지속해 왔던 것이다. 1996~1997년 COSATU의 총파업투쟁은 그 일환이었고, ANC정권의 적극적인 경제개입, 공공부문의 민영화 반대, 직업창출을 가져오는 구조조정, 주 40시간 노동제 도입을 통한 정리해고 방지 및 고용 재분배 등이 이들의 요구였다. 그 과정에서 COSATU는 1997년 제6차 총회와 1998년 6월 중앙위원회의를 통해 사회구조의 변혁적 이행을 위한 투쟁전략과 과제들로서, ①생활조건 개혁투쟁 ②노동조건 개혁투쟁 ③경제권력 개혁투쟁 ④사회주의 건설투쟁을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몇 가지 질문

이상에서 나는 남아공 계급투쟁사의 어제와 오늘을, 필자들의 글 속에 등장하는 시기별 주요 쟁점을 통해 거칠게 나마 정리하였다. 남아공 계급투쟁의 역사와 그 속에서 등장한 주요 쟁점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 준다. 당과 노조의 관계, 국가의 합법화 전략에 대한 대응전략, 구조변혁‧혁명의 구체적인 전술, 구조적 개혁과 단순한 개혁주의의 구별 문제, 권력구조 변동 이후 권력과 운동의 관계, 신자유주의적 야만에 대한 대응, 코프라티즘에 대한 시각 정립, 운동의 궁극적 지향점 등등이 그 몇 가지 예이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그에 바탕한 전략과 전술의 채택, 지속적인 실천은 우리의 운동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모호한 부분이 등장하는 것 같아 좀 개운치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 글쓴 분이나 읽는 분들께 여러모로 좋을 듯 싶어,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우리 사회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쟁점을 던져본다.
첫 번째 질문은 권력구조 변동 이후 COSATU와 ANC의 관계이다. 되풀이해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COSATU는 공식적으로 민족민주혁명론을 제창하고 인종 자본주의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체제를 사회주의 사회로 그리면서, 남아공 민주화의 단계별 투쟁과제들을 모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주요 동력으로 상정했다. 반면에 ANC는 이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보편적 이데올로기를 통일적으로 공유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주의를 제1의 원칙으로 상정하지도 않고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COSATU가 ANC정권을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의 한 주체’로 인정하고, ‘사회주의를 추진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보편적인 이행전략을 구체화하는 정권’으로 성격을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질적으로 COSATU는 ANC 정권의 지도력 및 기존 기득권 세력에 대한 ANC정권의 통제력을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ANC당 내부에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정도의 언급만을 갖고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COSATU는 직접적인 반정권투쟁(퇴진/타도)을 내걸지 못하는가?
두 번째 질문은 앞서 본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COSATU의 97년 전국총회와 98년 중앙위원회의 결정 내용 및 실천 전략‧전술과 관련된 것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주장 또는 결정과 구체적인 실천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영수는, “남아공의 사회구조적 모순은 노동자계급의 구조변혁적 투쟁이 아니고서는 해결되기 힘든 상태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3자동맹체제 내부의 계급적 투쟁전선이 보다 명확하게 가시화될 수밖에 없다”, “전략적 투쟁과제를 결정하는 수준과 그 결정사항을 실천하는 수준은 항상 유기적인 조응관계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COSATU의 전략적 투쟁과제들은 인종자본주의의 모순구조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남아공의 일상적인 투쟁은 곧 남아공의 사회구조적 변혁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다른 글에서 김영수는 최종적인 승리를 위한, ‘패배하는 승리투쟁’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구체적인 현실에 바탕한 과학적인 설명 또는 책임성을 담보한 견해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당위 중심의, 개인의 신념 차원의 주장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셋째, 두 번째 의문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김영수는 “남아공의 노동자계급은 ‘민족민주혁명론’에 근거하여 새로운 사회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남아공 노동자계급이 상정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체제는 바로 ‘사회주의 체제’라는 것을 근거로 남아공 노동조합운동의 성격을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의 지점은 과연 이러한 투쟁의 지향점이 COSATU 지도부만의 입장인지, 아니면 COSATU 조직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입장인지, 나아가 남아공 노동자계급 일반의 입장인지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COSATU의 결정과 그 지도력이란 것이 오늘날 얼마만큼 아래로부터 지지받고 인정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1991년 이루어진 네빌 알렉산더와 캘리니코스의 대담(「인종해방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운동」)에서 알렉산더가, “이미 남아공 민중들은 ANC의 투쟁전략을 자신들의 생존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 자체부터 아주 어리석은 행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 우리들은 단지 소수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우경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존 사울의 경우도 1991년의 글을 통해, “여전히 구조적 변혁보다는 협력(단순한 개혁)이 남아공의 혼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채택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로의 이행, 즉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잠재적인 세력들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시간 흐름 속에서, 그리고 ANC정부에 의한 GEAR정책의 채택 등으로 인한 상황의 변화 속에서 남아공의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들의 인식 수준과 힘이 제고됐다는 것인가? 아니면 남아공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지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개인적인 신념에 몰입된 필자의 과대 해석과 논리적 비약의 결과인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편저자 스스로 인정하듯이 중요한 것은 ‘변혁의 깃발’을 드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깃발 아래 노동자와 민중들을 모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최소한의 기본은 ‘다수자 혁명’이라는 것, 그 상식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수록된 모든 글들의 필자들은 남아공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상정하고 있는데, 문제는 자본주의를 지양한 사회주의라는 것이 과연 ‘어떤’ 사회주의이냐는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혹 남아공을 구체적인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필자들 사이에서조차도 그리고 있는 상이 다른 것은 아닐까? 그 결과 동일한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비슷하지만 다른 관점과 해석이 깔림으로써 일종의 혼란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몇 가지 쟁점

첫째, 네빌 알렉산더가 발전시킨 남아공의 ‘인종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양자의 상호관련성이 해체될 수 없다는 점과 인종문제의 유일한 해결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의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약 유사한 수준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를 ‘반공적’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반공문제의 유일한 해결이 과연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반공문제의 해결은 그것보다는 오히려 (평화)통일인 것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더 타당하지 않을까?
둘째, 네빌 알렉산더의 경우 몇몇 필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1990년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정책은 민족민주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백인 지배세력의 제한적 양보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폭력적 무장투쟁만이 남아공의 실질적 변화를 일궈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만약 ANC‧SACP의 협상전략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경우보다 더 발전된 사회주의 운동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흑인 노동자와 민중들은 ANC‧SACP가 채택한 협상전략과 전술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한 예로 흑인민중들은 파업투쟁의 자제를 요구받고 있고, 모든 종류의 이행전략과 전술들이 흑인민중들의 무장력을 약화시키는 차원에서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것인가? 이것은 1999년 오늘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전술과 노사정위원회 문제에 대해 자칫 잘못하면 불필요한 오해와 잘못된 선택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타협과 비타협은 상황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셋째, 네빌 알렉산더는 반스탈린주의 좌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동의하기 어려울지라도 공개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전략을 협의하고 토론을 해야 하며, 그들은 좌익세력의 힘을 보다 집중시킬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관점에서 우선 반스탈린주의 그룹들간의 협조와 연대가 가장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물론 나는 좌파블록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협소한 틀에 갇혀 ‘차이 속의 연대’로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대중적 신뢰의 약화와 역사에 대한 책임성의 훼손이라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열린 진보’의 관점에서 진보블럭의 형성과 함께 가는, 좌파블럭의 형성이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맺는 글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사회주의 지향성을 갖는 필자들의 글을 선별해서 수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글들의 특징이 관점과 주장의 선명성은 크게 부각되는 데 반해, 그리고 계급투쟁의 흐름 속에서 노동운동의 전략과 관련한 중요한 쟁점들이 많이 부각되고 있는 데 반해, 남아공의 구체적인 현실, 한 예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노동자와 민중들의 삶을 풍부하게 설명하는 데는 좀 부족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 글의 선정과 배치와 관련해 전체적인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좀 산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 빈틈을 메울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나의 느낌이나 생각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들, 특히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진로와 관련해 반면교사와 상상력의 풍부화를 위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훼손시킬 정도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위기를 돌파하고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궁극적으로 노동해방‧인간해방의 사회를 꿈꾸면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많은 분들께 꼼꼼한 일독을 권하고 싶다.
끝으로 참고서는 참고서일 뿐 교과서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현실은 이론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의도와는 무관하게 현실을 재단할 위험성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말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한/노/정/연

1999-06-01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