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5월 25일 전국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주최의
“해고․실업자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제출된
글이다..
구조조정, 실업, 그리고 실업반대투쟁
채 만 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부소장
1.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와 구조조정
97년 4/4분기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폭발한 경제위기 이후 기업의
이른바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강행되고 그
주요 내용이 대량해고여서, 이 ‘구조조정’은 이제 실업을
악화시키는 주요한 기구로 되어 있다.
개별자본의 입장에서 구조조정은 계열기업의 일부의 매각이나
매입, 기업 내 일부 조직부문의 폐쇄 등 조직 및 인원의 축소,
새로운 생산시설이나 생산방법 등의 충용 및 그에 따른 조직 및
인원의 조정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구조조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와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1) 과도한 부채에 따른 자금 압박 및 이윤율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서.
-- 특히 계열기업 및 특정 사업부문의 매각은 대개 이러한
이유와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 최근 매스컴에 의해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칭송되고
‘한화그룹의 구조조정’, 즉 계열기업의 대량 매각이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2) 경쟁의 격화 및 과잉생산에 의한 이윤율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서.
-- 조직 및 인원의 축소, 새로운 생산시설이나 생산방법의
충용.
-- restructuring이니 downsizing(감량경영)이니 하는 말로
불리는 경우로서, 아마 가장 일반적인 예일 것이다.
3)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
-- 특히 ‘구조조정기’에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경우.
-- 단, 이 경우에도 흡수합병 대신에 두 기업 혹은 그 이상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병하는 경우에는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라기보다 이윤율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이렇게 ‘구조조정’은 대부분의 경우 이윤율의 압박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
시기, 즉 공황기에 집중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물론, 호황의
절정기, 즉 번영기에는 이미 생산의 극대화로 이윤율이 급격히
저하하게 되고, 따라서 적지 않은 자본이 그 재생산에 애로를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에 기업의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이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나아가, 심지어 그 이전의 호황기에조차
그것이 각 개별자본의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은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개별자본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게 되지만,
최근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이러한 시기의 구조조정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특히 경제학자나 국가의 경제정책 담당자 등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의 경우 공황을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한 모순의
필연적․주기적 폭발로 파악하지 않고 무언가 우연적인
구조적 결함이 공황의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에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최초의 공황이 폭발한 이래 매 공황 때마다 자본주의
국가는 ‘구조조정’의 소동을 벌여 왔다. 그들은 이
‘구조조정’을 통해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지금, 부르조아 경제 이데올로그들 및
김대중 정권 등이 벌이고 있는 ‘구조조정’ 소동처럼.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제위기, 즉 공황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전유(專有)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이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모순,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기적으로 필연화되는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 과잉생산의 모순의 폭발이기 때문에, 그들
부르조아 이데올로그들이나 자본가들, 그리고 부르조아 국가의
소망을 배반하고 공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그때마다
‘구조조정’ 소동 또한 반복되고 있다.
2.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렇게 반복되는 ‘구조조정’ 소동이 노동자들의 고용과
관련해서 표상되고 있는 어휘가 예컨대 사전에 ‘일시해고’라고
번역되어 있는, 영어의 ‘layoff’라는 단어일 것이다. 이
단어는 호황이 오면 다시 고용된다는 뜻을 암시하는 ‘해고’를
가리키는데,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제1기 노동부 장관이었던
라이시(Robert Reich)는 수년 전 이와 관련하여 흥미 있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즉, 최근에 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해고는
그것을 ‘layoff’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 단어는 ‘잠시 해고했다가 다시
채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최근의 해고는 ‘아예 잘라
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layoff’보다는 ‘cast-off’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말은 그것을 기계적으로 “구조조정에 따른 일방적인
대량해고만 있고, 산업순환 국면의 전환, 즉 호황에 따른
재취업은 없다”고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연히 현재에도
산업순환의 국면 변화에 따라서, 즉 공황 내지 침체 국면이냐
호황 내지 번영 국면이냐에 따라서 실업률의 등락이 존재하고,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시의 발언은 현 시기, 즉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조조정 및 그에 따른 실업의 중요한 특징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보다 대량화되고 있는 해고 = ‘구조조정’과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 즉 항상적인 고용불안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70년대 이후 만성적이고 항상적인
과잉생산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반적 위기가 격화된 시대의
자본주의이다. 그것은 여러 특징을 갖는데, 그 중에서도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성립되었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혹은 복지국가적 요소 및 정책에 대한 공격, 따라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의 강화를 그 주요 특징의 하나로
한다.
만성적이고 항상적인 시장의 포화와 과잉생산이 자본의 이윤율을
심각하게 압박하기 때문에 자본은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의 하나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인데, 정치․법률적으로는 파시즘의 강화로,
경제․사회적으로는 구조조정, 해고의 대량화, 임금삭감,
고용의 불안정화(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로서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러한 공격의 강화는 물론 새로운 생산력에
의해서 물질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만성적이고 항상적인
과잉생산은 자본간의 경쟁을 갈수록 격렬하게 하고, 이렇게
경쟁이 치열할수록 자본은 경쟁의 기본적 수단으로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고 있는데, 그 결과 추동되고 있는
것이 근래에 가속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이다.
이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로서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생산방법들은
근본적으로 ‘산 노동 배제적인 것’, 즉 보다 소수의 인력으로
보다 많은 상품을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입지가 세계 어느 곳일
수도 있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산방법의 이러한 특징은 당연히 해고를 대량화하고,
따라서 실업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고, 임금 등
취업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대량해고와 대량실업에 대한, 또한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노동자 대중의 투쟁도 격화시키는 것이다.
과학기술혁명의 진전과 그 성과로서의 노동 배제적 생산방법,
원거리 생산방법의 발전은 자본주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이중의 구조조정,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가능하게 하고 있고, 또한 실제로 그러한 구조조정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우선 그 자체
내에서의 새로운 생산기술의 충용에 의한 구조조정, 즉
노동배제가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더해서
아시아나 중남미, 그리고 최근엔 부분적으로 동유럽까지, 노동자
임금이 낮고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정치적․법률적
보장이 미약한 지역으로의 자본의 이동에 의한 구조조정, 즉
노동배제 또한 광범위하고 대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유럽연합(EU)조약 등 지역적 통합
및 공동시장화와 더불어 세계무역기구(WTO), 그리고 추진 중인
다자간투자협정(MAI), 기타의 쌍무 투자협정 등은 모두
상품이동은 물론 자본․용역 이동에 대한 일체의 제약을
제거하고자 하는 다국적 기업의 국제적 장치이다.
그 결과 서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이미 고율 실업상태가 지속되고
있거나 실업률이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예외적인
경기과열로 최근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저하되어 있으나, 임시직,
시간제 고용 등등 광범한 불완전취업을 고려하면 그
실질실업률이 역시 극히 고율임은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서 전반적인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임시직,
시간제 고용, 파견노동의 증대 등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증대되고 있음도 물론이다.
이들 지역과 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자본이 해외로 이동하는
것에 못지 않게 이동시키겠다는 ‘협박’만으로도, 즉 공장 =
일자리를 폐쇄하고 해외로 이동시키겠다는 협박만으로도 많은
경우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는데, 특히 미국의 노동자 신문들에 이러한 예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조스팽 정권이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는 입법을 추진했을 때에 자본가 단체들에
그것을 반대하여 들고 나온 협박 수단의 하나도 역시 자본 및
공장의 해외 이전이었다.
다국적 기업의 해외 생산입지로서 그들의 자본이 수입되고,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는 중남미나 동아시아, 부분적으로 동유럽
등 개발도상국이나 ‘체제전환도상국’의 경우, ‘자본 유치에
따른 고용의 증대’라는 전통적인 관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우선, 자본 진출에 있어 세계시장에서의 전반적인
과잉생산을 반영하여 ‘새로운 공장의 신설’보다는 기존의
공장을 인수하는 방법이 보다 광범위하게 채용되고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도입되는 생산방식이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노동 배제적인 고도의 것이어서, 한편에선 토착의 자본들을
도산시키면서 다른 한편에선 그 고도의 생산방식을 현지에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중남미 및 아시아, 그리고 부분적으로
동유럽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로서, 예컨대, 94년 말에
발생했던 외환․경제위기의 탓도 있긴 하지만, 94년 NAFTA
발효와 그에 따른 미 자본의 대거 유입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실업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은 위와 같은 사실을
생생히 입증해주고 있다. 또한, 97년 말의 외환․경제위기
이후 제일은행이나 서울은행 등 금융기관은 물론 기타의
국․공영기업의 해외매각 등을 추진하면서, 그리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민간기업의 해외매각을 적극
장려하면서 정부와 언론이 ‘외화 수입․유치’와 더불어
‘새로운 경영기법’의 도입을 그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 등도
위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는 소리이다. 즉, 정부와
(자본의 이데올로그로서의) 언론은 오로지 ‘경쟁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경영기법’의 노동
배제가 가져올 경쟁력 강화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때 경영기법은 많은 경우 공장의 경영기법만이 아니라 은행 등
금융기관의 경영기법, 대형 및 체인 판매조직의 경영기법을
포함한다. 이는 근래의 과학기술혁명에 의한 자동화가
공장자동화(이른바 FA)를 넘어 각종의 정보․통신 기기
등의 사무자동화(이른바 OA), 그리고
포스시스템(pos-system)이나 자동판매기 등 기타
판매자동화(이른바 SA) 등에서까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이러한 자동화가 전형적인 과정을 밟아
온 미국의 경우, 70년대 중반 이후 80년대 중반 무렵까지는
공장자동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실업 증대에
대한 자본 이데올로그들의 변명은 “이는 미국 경제가 낮은
단계의 ‘굴뚝산업’에서 고도의 서비스 경제 단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며, 서비스 경제가 안착되면 실업을 흡수할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80년대 중반 이후, 특히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무 및 판매 자동화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가고 있고, 이데올로그들은
아예 변명조차 거절하고 있는 상태이다.
3.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조정
당연히 한국 자본주의의 전체 성장과정, 즉 자본축적과정은 그
자체로서 끊임없는 ‘구조조정’ 과정이었고, 특히 그것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고도의 압축적인 성장을 달성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및 그 범위의 확대 과정이어서 지금 문제로 되고 있는
‘구조조정’과는 조정의 방향과 성격이 다른 것이었고, 또한
‘구조조정’으로서 인식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 논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의 구조조정이 한국
자본주의에서 최초로 실행된 것은 아마 지난 79년도 하반기
이후의 공황기 및 그 이후의 시기에서의 이른바 ‘중화학공업
구조조정’ 및 ‘부실기업 정리’였을 것이다. 이때도 물론 공황
및 그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실업문제가 상당히 심각히
대두되었지만, 당시의 구조조정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는 약간 달리 대량해고 위주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정도의 심각한 문제로까지는 되지
않았다.
다음에 문제로 된 것은 89~90년의 공황을 전후로 한 시기의
그것이었다. 이때는 당시의 노태우 정권이 ‘구조조정’을
정면에 내걸고 추진했는데, 다만 그 성격은 역시 이번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다. 당시의 구조조정은 석탄산업과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세․중소 섬유산업,
부산지역을 위시한 신발산업 등, 이른바 사양산업을 정리하는
것이 그 핵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산업구조조정’으로 불렸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실업이 발생하긴 했지만 그 구조조정
자체를 ‘대량해고를 유발하는 정책’으로서 규정하고 정면으로
문제삼을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와서, 특히 김영삼 정권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산시설․생산방법을
활발히 도입하기 시작했고, 이른바 ‘신경영전략’,
‘신인사제도’ 등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대(對) 노동자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공장에서는 본격적인
노동력 배제정책이 시작되었고, 96년에는 이를 더욱 강화하고
‘정리해고제’의 도입 또는 제도화 등등 그를 위한 법률적
지지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이른바 “신노사관계 구상”의 발표
ꠏꠏꋼ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ꠏꠏꋼ 노동법 개악’의 수순을 밟아
나갔다.
그리고 97년 4/4분기에 엄습한 외환위기와 함께 경제위기가
폭발하자 그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우리가 함께 경험하고 있는 바의 ‘구조조정’이다.
이 구조조정은 과거의 ‘산업구조조정’과는 기본적으로 달라서
‘기업구조조정’이라고 불린다. 그 내용은 재벌기업의 부채율을
낮추기 위한 계열기업의 매각, 과잉․중복투자를
해소시킨다는 명분 하에 독점을 강화시키는 이른바 ‘빅딜’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인데, 기업 매각이나 ‘빅딜’도
사실상 대량해고를 전제하고 강행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번 ‘구조조정’의 실질적 내용은 어디까지나 대량해고 그
자체이다.
대량해고를 내용으로 하는 이 구조조정은 김대중 정권이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강행하고 있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에 자본 진출을 하고 있거나 그것을 고려하고 있는 다국적
독점자본들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최근, 그 실질적인 내용이야 어떻든 아무튼 표면상으로는,
‘경제회복’ 분위기가 무르익고, 그에 따라서 일부 기업이
신규사원을 모집하는 등 ‘구조조정’ 강행을 유보할 기미를
보이자 정부․언론은 물론 국내의 외국인 자본단체들 및
해외의 독점자본 이데올로그들까지 ‘구조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조정, 즉 대량해고는 단순히 ‘기업’에만
한정되지 않아서 공무원 사회로까지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왜
우리만?” 하고 항의하는 노동자 대중 일반의
‘반관심리(反官心理)’를 고려하여, 한편에서는 ‘공무원 대량
감축’을 통해 구조조정 = 대량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다소라도 약화시키려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의
그러한 반관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신자유주의적인 작고 강한
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감축대상이 되는
‘공무원’이 누군가 하는 것인데, 이는 공무원법이나 기타 노동
관련법들에 의해서 그들이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든 못 받든 실제에 있어서는 노동자계급인
하급공무원들이다. 최근에 발표된 감축목표는 9,000명이 채
안되지만, 정부와 독점자본이 이들 공무원들을 감축하거나
심지어 감축하겠다고 발표하는 것만으로 얻는 정치적 효과,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의식의 약화는 엄청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막연하고 민중주의적인
‘반관심리’를 극복하고, 하위직 공무원들도 사실상
노동자계급의 일부임을 인정하여 그들이 노동자로서의 자의식과
노동3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지․지원하고 연대해야 할
도 하나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노동
배제적 자동화가 공장에서부터 시작되어 사무 및
판매․서비스 부문으로 확대되는 경로를 밟았는데, 한국
경제의 경우, 그 자본축적이 그랬던 것처럼 구조조정 역시
압축적으로 이루어져서 현재 그것은 공장과 사무․서비스
부문을 가리지 않고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4. 외국에서의 실업 반대 투쟁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그리고 한국에서도
노동자 투쟁이 거대하게 분출되었다. 그것은 30년대의 대공황과
파시즘, 대량 살육전과 파괴전으로서의 제2차 세계대전 자체,
그리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서
변혁적․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그러한 변혁적 투쟁은 미국 및 그에 의해서
뒷받침 된 현지의 지배세력, 군과 경찰에 의해서 패퇴되고,
50년대 이후 90년대 초까지의 기간은 자본주의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그 전투성을 거세당하면서 기본적으로 체제 내화되어
가는 과정을 밟았다.
이에는 군․경에 의한 물리적 억압과 급속한 속도로
발전하면서 그 영향력을 확대해간 브로조아 대중 매체의
이데올로기적 선전․선동과 더불어 전후의 급속한 경제성장
= 자본축적과 그에 따른 노동자 실질임금의 상승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물론 80년대 이후 미국 등 많은 경우에 이른바
‘저속성장’과 실질임금의 하락이 새로운 경향으로 되었으나,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체제 내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못한 자극이었고, 또한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나카소네 정권 이후의 일본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적 파시즘화가
대중의 의식의 변화를 앞질러 갔다.
그런 상태가 대략 9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고, 그러한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90년대 초에
이르면 서유럽에서는 특히 고율의 실업문제가, 그리고 미국의
경우도 공식실업률 7%대에 이르는 실업과 불안전 취업, 그리고
열악해진 실질임금이 노동자계급에게 있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다. 그리하여 서유럽에서는 93년의 이태리
노동자들의 투쟁을 계기로 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이 새롭게
부활하기 시작하고, 미국의 경우는 95년 8월 노사협조주의적인
커크랜드(Lane Kirkland) 미국노총(AFL-CIO) 의장을 강제
사임시키고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한 것을 계기로 노동조합운동이
새롭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유럽에서는 95년 및 96년 겨울에 철도노동자
및 트럭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파업으로 파리는 물론 프랑스의
전역을 거의 마비시키다 시피 했던 프랑스 노동자들의 파업,
석탄산업 폐기에 반대한 독일 노동자들의 파업․시위 투쟁,
르노 자동차 벨기에 공장의 폐쇄에 반대한 서유럽 자동차
노동자들의 연대파업 등은 서유럽 노동운동의 새로운 부활에
이정표적인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당연히 평균
실업률 거의 12%대,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의 청년 실업률이
거의 25%라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서유럽의 고율 실업상태를
배경으로 한 투쟁들이었다.
이들 투쟁이, 국영 철도의 민영화나 석탄산업의 폐지, 기타
‘구조조정’이 유발하는 실업에 반대하는 투쟁이었다면, 97년
겨울의 프랑스 실업자 투쟁은 그들이 투쟁과정에서 내건 것처럼
‘직업으로서의 실업’을 인정하고, 국가가 크리스마스 보너스
등 그들 실업자의 ‘인간다운 삶(decent living)’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실업자들 자신이 중심이 되고 아직 취업 중의
노동자나 학생 등 ‘실업예비군’이 함께 하는 새로운
투쟁이었다.
미국에서는 2년 여에 걸친 디트로이트 신문노동자들의 투쟁 등,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대량해고에 반대하는 투쟁이 산발적으로
벌어져 왔는데, 특히 97년 8월의 UPS 투쟁은 시간제 고용
노동자의 임금 인상 및 정식직원화를 요구한 시간제 노동자 및
정식직 노동자의 대규모 연대투쟁으로서 오랜만의 노동자계급의
승리였다. 그 승리는, 물론 나중에 정부의 음모적 개입에 의해
UPS파업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론 케어리(Ron Carary)
팀스터스(Teamsters: 트럭운전사노조) 위원장의 위원장직 상실
등 타격을 입지만, 특히 미국의 노동자들이 독점자본에 대한
패배의식을 떨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실업과 관련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특히 주목되는
특징적인 것은 워크페어(workfare) 노동자라고 하는 일종의
‘공공취로사업 노동자들’의 투쟁과 홈리스(homeless), 곧
노숙자들의 투쟁이다. 비록 메카시즘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자’의 노조 간부 취임을 법으로 금지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노조 결성 자격을 적극적으로(positively) 한정하지
않는 미국의 노동법 제도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들은 근래
‘workfare union(취로사업노동조합)’,
‘홈리스유니온(노숙자노조)’,
‘홈리스어쏘시에이션(노숙자연합)’ 등등을 조직하여,
불완전취업자․실업자 등의 생존권 확보 및 권익신장을
위해서 활발히 전투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공화․민주라는 부르조아 거대 양당제에 눌러 비록 혁명적
정파조직의 수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적지 않은 변혁적
정치조직들이 이들과 함께 활동․투쟁하고 있고, 이들
실업자들 또한 활발히 그러한 변혁적 정치조직에
조직원․활동가․혁명가로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여러 노숙자 조직들이 96년 6월에 약 1백30만 명의 조직노동자를
포괄하면서 출범한 미국의 노동당(Labor Party)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노동당의 투쟁 중의 하나는 ‘일자리를 가질 헌법적
권리’를 위해서 헌법 개정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프랑스 실업자들의 ‘직업으로서의 실업’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든, 미국 홈리스들의 ‘헌법적 권리로서의 일자리’를
위한 투쟁이든, 모두 이미 심각해져 있고 또한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실업 및 상대적 과잉인구 문제를
반영한 투쟁이고, 노동운동의 새로운 확장이다.
그런데 이 두 방향의 투쟁은 명백히 한계를 가진 투쟁이고, 그
자체로서는 불임성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한 투쟁이고, 그러한 한에서 부분적인
성과는 몰라도 실업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로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투쟁은 물론 최근의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이 그러한 대량실업을 초래하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는 있으나, 그 진전이 결국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양립할 수 없다고 하는 데에 대해서는, 적어도
대중적 투쟁의 차원과 그 전략으로서는, 명백히 하고 있지 않은
데에서 그 한계가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섣불리 그들의 투쟁과 그 방향, 성격을 단정적으로
평가해 버릴 일은 아니다. 투쟁이 발전함에 따라서 그들은
틀림없이 그러한 한계를 돌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5. 실업 반대 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이제 경제위기를 계기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적인 공격이 본격화되고 실업이 대량․고율의
실업이 구조화되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 실업 증대에 반대해서
싸울 것인가?’, ‘어떻게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에 대항해서
싸울 것인가?’, 혹은 ‘어떻게 실업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할 것인가?’가 문제로 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진정하고 궁극적인 해답은 아마 실업에
반대하는 앞으로의 투쟁과정에서 찾아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탁상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헛된 노력 대신에 ‘현재의
조건’에서 왜, 무엇을 내걸고 싸울 것인가부터 보기로 하자.
실업 문제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직접생산자(= 자본주의의
임금노동자)가 생산수단과 어떤 관계도 갖지 못함으로써 그
노동을 실현하고 그를 통해서 생활수단을 획득할 길이 봉쇄
당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문제이자 그 궁극적 해결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양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언젠가 전해투의 간부
동지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했지만, ‘해고없는 세상’의
실현이라는 전해투의 모토는 엄밀히 말하면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그 모토는 마땅히 ‘고용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고용이 없다면 해고같은 것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주주)
원래의 발제문에는 빠졌으나 실제 토론회에서의 발제에서는
보충했던 부분
그런데 실업 문제는 노동시간과의 관련 속에서 보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윤 충동 때문에 주어진 생산조건하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총노동시간을 노동자계급 중의 일부가 장시간 노동을
통해서 수행하도록 강요받고, 일부는 나태를 강제 받는 데에서
오는 문제이다. 따라서 산술적으로 말하면, 일정한 생산조건
하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총노동을 총노동력 인구 사이에서
나누면, 아무도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나태, 즉 실업상태를 강제 받지 않아도 된다. 산술적으로 그리고
원리적으로 볼 때 이것만이, 즉 총노동을 총노동력 인구 사이에
공유하는 것만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가로막는 것은 이윤충동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요, 그것을 보장하는 정치적․공적 폭력이다.
따라서 실업에 반대하는 운동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정치적․공적 폭력에 반대하여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을
공유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때 물론 임금은 삭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속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이다.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노동자 가족의
생계비여서, 그것을 삭감하면,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물론
‘아사(餓死)’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노동력이 위축된 형태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이른바 ‘양보교섭’을 하면, 즉
“임금은 양보할테니 고용은 보장하라”는 식의
교섭․투쟁을 하면, 설령 자본가로부터 그러한 합의를
받아내는 데에 성공할지라도 이내 고용조차도 파괴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자본은 ‘양보교섭’은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의지의 부족임을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그에
합당한 대응을 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 공유’ 투쟁을 기획하고
조직․실행할 때에는, 다른 한편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속에서는 그것을 통해서 문제를 다소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기초해서
투쟁을 배치해야 한다. 실제로 숱한 모순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된다는 사실은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힘이 노동자계급의 그것을 압도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노동시간은 노동자계급이 바라는 만큼, 즉 실업문제를
해결하거나 대폭적으로 완화할 만큼은 단축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은 사회의 노동력 인구의 상당 부분이
산업예비군으로서, 즉 실업자로서 침전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작동하는 사회체제이다.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현실적인
실리로서는 실업문제를 ‘다소 완화’시키거나 그것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한 인식 하에 투쟁이 기획․조직되고 배치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이 투쟁을
통해서 노동운동의 활동가 자신들과 대중이 실업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일자리와 노동시간과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고,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주체로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훈련해 가기 때문이다. 또한 투쟁은 그러한 전략적
목표에 복무하도록 기획․조직되고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정치세력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정치세력화가 사민주의적으로, 개량주의적으로,
민중주의적으로, 그리고 의회주의적으로 굴절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위해서는 노동자 대중 내부에서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공개적․비공개적 조직․정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 무원칙한 ‘대동단결’의 선동을
결연히 거부하고 경계하면서 ‘계급적․정파적 원칙’을
확실히 하면서도 동시에 적대적 종파주의를 배격하고 ‘전선적
단결’의 원칙에 충실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취업노동자 부분과 실업자 부분은
밀접한 정치적 경제적 관계 속에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이 두
부분을 대립시키고, 또 이 두 부분간의 이해가 서로 충돌한다고
설교하지만, 그것은 노동자계급 일반의 투쟁력을 약화시키려는
분할지배전술에 불과하다. 취업노동자 부분의 힘과 투쟁력이
강화되면 실업자 부분의 힘과 투쟁력도 강화되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양 부분은 자신들의 부분을 조직하고
그것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투쟁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나란한
다른 부분의 그러한 노력과 투쟁에 대해서도 최대한의 공동
노력과 공동투쟁을 수행해 나아가야 한다. 모든 형태의 실업자
조직에 착수하고 그것을 확대해야 하지만, 가능한 한 그것을
취업노동자들의 조직인 노조 등의 속에 조직하고, 사정이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언제나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도 그것에
대립적으로 조직해서는 안된다.
‘구조조정’, ‘개방’, ‘자유화’ 등등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국․공영기업의 해외매각이나 기타 대공장의 해외매각은
가능한 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최대한 저지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자본의 주인이 누구이건 그건 매 한
가지이다’라는 명제는 물론 추상적으로 옳지만, 제국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그것이 저개발국 혹은 개발도상국가 등으로
유입되고 있는 다국적 기업에 대해서까지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70년대 초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외국인 투자업체에서의
노동쟁의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의 예에서도 경험한 것처럼,
외자의 유입은 일반적으로 예속적 파시즘을 강화한다. 뿐만
아니라, 특히 미국의 중남미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잦은 간섭,
침략, 점령 등에서 여실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외자의 유입은
한국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투쟁이 제국주의 군대의 발굽에
의해서 유린당할 수 있는 경제적․정치적 근거를
축성해가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일본계 다국적 자본, 미쓰이에 대우조선을
매각하겠다고 밝힌 대우 김우중 회장의 발표에 반대하여 투쟁한
지난 4월 20일의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투쟁은, 민족주의 편향이
아니라, 각별한 의의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어떻게 해서 그러한 다국적 기업의
기업 매입을 저지하여 제국주의적 유린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다름 아니라, 고용 확보를 위한 투쟁, 임금 인상 등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동자 계급 일반의 활발한 투쟁
자체가 중요하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전투적이고 변혁적인
정치세력으로 자신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들 제국주의의
다국적 기업의 진출을 막는 길이다. 시장 접근 등 기타의 이유도
물론 있지만, 외국 자본의 기업 인수는 기본적으로 저임금과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를 이용하여 초과이윤을 획득하려는 데에
그 주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