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기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
남 구 현
연구위원/한신대교수 사회복지학
시지프스의 비극은 그가 정상에 도달하지 못함으로써 반복된
노동을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항복할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Holger Heide-
1. 노동자․민중은 다시 투쟁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생존권 박탈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중단,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보장, 사회안전망 구축, 임금․단체협약
안정과 산업별 교섭체제 보장”의 4대요구를 내걸고 지하철
파업을 시작으로 4월 총력투쟁을 선포하였다. 올해 들어와
두드러진 현상은 농민, 빈민 뿐 아니라 어민 역시
생존권/제도개선 투쟁에 나서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95년도에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반복되는 총파업은 - 그 성과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
우리나라의 현실모순이 외적인 조건으로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제한 결과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즉,이와 같은 노동자 투쟁은 신경영전략,
세계화, 구조조정의 구호 아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가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서 이해되어져야
하며,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 구조와
대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의 유연화전략,
노동/자본 시장의 자유화, 민영화, 복지삭감 등으로 표상되는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공세는 지구적 차원에서 악화되는
축적조건의 결과로 나타난 경제 위기를 노동자 민중의 위기로
뒤집어 내려는 자본의 위기 극복 전략의 주요한 축으로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역사적 반동은 90년대를 넘어서부터
나라와 국경을 넘어서 첨예한 모순을 야기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노동자 파업 및 가두투쟁과 프랑스 실업자운동의
점거 및 가두시위에서부터 멕시코 차파티스타의 무장봉기가
격화되는 모순과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노동자․민중운동이 처한 현재의 조건을
경제위기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후, 노동자 민중운동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향후 발전 경향을 전망해
보기로 한다.
2. 자본주의의 초기에서부터 세계 시장은 자본에 내재적이었다.
자본은 ‘상품’의 형태로 전 세계를 자신의 운동장으로 삼아
운동하였으며, 상품의 판매지로서뿐 아니라 원료 및 노동력
공급지로서 전세계는 제국주의관계를 매개로 중심부 자본에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포섭되었다.
그러나 지금 ‘지구화’ 경향은 이전과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전에는 상품, 화폐 등의 형태로 운동하였다면, 지금은
직접 ‘자본’의 형태로 운동한다. 현존사회주의의 몰락과
주변부의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이 말
그대로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자본이
지구를 무대로 직접 생산자본의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global management, global sourcing) 이와 함께 지금
시기에 지구화 경향이 강화되는 이유로는 80년대 서구를
풍미했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 주로 내부적
군살빼기를 지향했다면, 이러한 정책이 야기한 모순과 대립은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밑으로부터의 반발에
직면한 자본은 모순을 ‘지구적’으로 외화함으로써 한계를
돌파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는 측면이 존재한다(생산지
이전, 자본유출, 자본까지 포함한 세계적인 교역질서의
자유무역주의에 기초한 재정비[WTO], IMF를 수단으로 강제되는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방해하는 장애물 제거). 지구화는 이윤율 저하경향과 함께
악화되는 자본의 축적조건에 대응한 전지구적 차원의 자본의
축적전략의 변화이지만, 모순은 해결되지 않고 그것이 운동하는
방식의 변화만을 초래할 것이며, 모순은 더 확대된 규모로
심화될 것이다(지구적 차원의 과잉축적/과잉생산의 확대,
지구적인 무한경쟁.) 자본의 지구적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제까지의 민족국가는 내용과 형식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복지국가에서 ‘경쟁국가’로, 종교 및 인종문제의 폭발과
새로운 지방주의의 등장, 유럽연합. NAFTA의 등장과 권역화,
NATO의 역할 강화와 일본의 재무장을 근거로한 새로운 군사적
삼각동맹.) 문화적으로는 세계적 보편주의가 확산되고 (지구는
하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적어도 통신공간에서는 지구촌이
현실화된다. 물론 이과정은 앞의 경향들과 맞물리면서
모순적으로 진행된다. 세계적 보편주의는 자본주의의 중심부인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구문화의 확산을 의미한다(예컨대 ‘범’
이슬람주의는 보편주의의 ‘적’이다.) 또한 정보통신혁명으로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면서, 기왕에 존재하던 모순이
통신공간에서 축약되어 나타난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같은 경향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소위 문민정부 등장 이후 세계화의 구호와 함께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는 전면화되었다. 단군이래 최초의 개혁이라는
수사학까지 동원되면서 진행된 각종 개혁이 유명무실해지면서
96년에 이르러 노사개혁을 시도하였다. 그 내용은 전근대적인
집단적 노사관계를 온존시키면서 서구에서 최근에 시도되고 있는
유연화전략을 중심개념으로 하는 개별적인 노사관계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었다(전근대적 노자관계와 탈근대적 착취기제의
기형적 조합.) ‘중심부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공세가
2차대전 이후 확대되어온 복지국가적 발전에 대한 자본의
반동이라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충격완화장치로서 복지제도가
미비하고, 전 근대적 노자 관계가 온존해 있는 상태에서
서구에서의 소위 자본의 유연화전략을 도입하려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지난 수십 년간의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축적된 모순 (재벌, 정경유착의 문제로 가시화되어
현상하는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모순)의 지양, 지구적으로 악화된
자본축적조건에 대한 적응의 실패는 경제위기를 야기한다.
주지하다시피 96년도에 노사관계 개혁은 노동법 개악으로
이어지고, 연말에 노동자총파업을 불러일으켰다. 97년은 한보
부도, 김현철 구속, 기아 위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들
속에 정치 경제적인 위기는 가속화하였고, 연말의 총체적인
금융위기로 귀결되었다.
국민의 정부 등장 이래 위기 대응전략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조와 IMF의
개입조건을 근거로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97년 노동법이
개정되면서 총파업을 통해 2년간 유예되었던 정리해고제가
98년에 전면화된 것이 하나의 예다. 위기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무차별적인 정리해고와 재벌간 빅딜이 개혁의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다. 개혁의 이름 아래 모순의 ‘결과’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기에 급급할 뿐, 구조적 모순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자본(재벌) 살리기와 노동자 죽이기,
그것이 구조조정의 함축된 내용이다. 조정되어야 할 모순적인
구조는 무엇인가.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구조적으로 혁파되어야 할 부분은 혜택을 받았으며, 구조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할 부분은 최대의 피해를 보았다. 재벌은 더욱 더
거대해졌으며, 상위 20%는 소득이 늘어났고,
노동자․민중은 노동 및 생활조건의 악화로 고통당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내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부분은 없으며, 농․어민을 위시한 중간계급 역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피해자이다.
3. 98년 이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반대하면서,
대량실업․고용불안정의 해법으로서 실질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해왔다. 또한 재벌의 부정축재 재산과
정치권의 불법 비리 정치자금을 환수하여 고용안정과 실업대책
등에 사용하라는 요구를 지속해 왔다. 이같은 요구는 지금의
현실에서 가장 구체적이며 현실적이고 바로 실현할 수 있는 -
실현해야 하는 - 요구이다. 실제로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한 바 있으며,
부도난 기업의 경영자가 사재를 몽땅 털어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방식의 해법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노자간의 세력간
힘관계에서 노동자가 취약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작년도의 투쟁과정 속에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시켜내지 못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한계는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자 투쟁을 수행해 나가기 위한 주체형성이라는 점에서
지도부와 대중 사이에 신뢰관계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부는 대중동력의 부재를 한탄하고, 대중은 지도부의 무능을
한탄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투쟁도 안되고 협상력도 생길 수
없다. 의사 결정과정은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결정된 사항은 책임있게 수행하며, 집행된 사업은 사후에
평가되어야 한다. 대표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하며,
대중의 요구를 배반할 경우는 소환되어야 한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의 존중, 반 노동자적인 견해를 제외한다면 이견을
분열주의로 몰아가면 안될 것이다. 대중조직의 경우 그것의
속성상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내부의
이견은 이 경우 충분히 토의되고 걸러져야 한다. 한두 사람(또는
집단)의 아집과 편견이 단결의 이름 아래 강요되어 전체 운동을
그르치면 안될 것이다. 95년 제조업, 대기업, 사무 전문직이
결합하면서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래, 조건의 차이에 기반한
노선과 입장의 차이가 조직 내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채, 96년
총파업, 97년 대선, 98년 총파업 등 역사적인 투쟁에 내몰리면서
노출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부
민주주의의 강화를 통해 민주노조 운동 내부의 단결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생존권 확보에서 출발하여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의 전체 사회적 모순의 지양을 가능케 하는
투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경제위기의 극복전략과
관련하여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담보로 기존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지배계급의 의도에 대응하여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이 단지 기존의 질서
속에서 ‘살아 나갈 수 있도록’, 또는 ‘삶의 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의 투쟁에 머무르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 제도 개선에서 출발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교육, 환경 등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임투냐 사개투냐,
고용 안정이냐 재벌개혁이냐 하는 양단간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제기되어온 협소한 논쟁지형은 생존권 투쟁을 노동자적
입장에서 대안모색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해결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경제주의와
개량주의의 문제를 경제투쟁과 정치, 사회적 영역에서의 투쟁을
이행의 관점에서 배치함으로써 극복.)
대중조직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이러한 투쟁을 위해서 노동자가
중심에 서는 새로운 정치조직의 건설은 필수적이다. 이때
정치활동은 선거 참여/제도정치권 진출을 넘어서서 ‘운동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선거만 시야에 넣을 경우
우리는 역사적 변화를 일으켰던 운동 속에서의 정치적
행위(예를들면, 집강소, 광주)를 보지 못하게 되며, 거대한 힘을
가진 노동자 민중의 정치력을 1% 내외의 득표율에 가두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선거에 대한 전술적 대응도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가 정치지망생이나 상층 간부출신들이
정치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투표 동원전략 수준에서 이해되어
저들의 선거 일정, 내용에 따라 선거정당을 건설하는 식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이러저러한 상층조직의 회의체계의
결정에 따라 정당만 만들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제까지의 무수한 소위 진보정당들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노동자 정치를 관념적으로 협소하게 이해한 데에 있다.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내면서 대중을 자금과 표의 동원 대상으로
삼을 때, ‘정치혐오증’은 대중들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치유하기 힘든 질병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인 실천은 기존의 노동자 정치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점을 시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즉, 서구의
사민주의/현존사회주의 전략에서 실패한 부분을 교훈으로 한계를
넘어야만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서구의 사민주의전략에서는 노조는 경제투쟁, 정치는
노동자정당이 담당하는 것으로 기계적으로 분리한 후 의회를
통한 정치세력 강화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최대득표를 목표로 하는
대중정당/선거정당으로 바뀌었고, 노동자는 선거를 위한
동원전략 속에 배치되었다. 노동자들은 자본이 제창하는
민족주의의 깃발 아래 국제경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었다. 현존사회주의 전략에서는 전위당인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주체이며 노동조합은 연동장치로
기능하고, 노동자는 절대화된 당의 지도를 따르는 객체가
되었다. 노멘클라투라라는 특권계급이 등장하였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에 실패하였다. 두가지 경우 모두 노동자 대중이
거꾸로 정치의 ‘대상’이 됨으로써, 직접생산자가 실질적인
사회적 주체로서 성장하는데 노동자 정당이 거꾸로 장애물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인류사는 위로부터의 개혁은 항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거꾸로 역사적 반동을
하는 경향이 있어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힘을
통해서만이 그나마 조금씩 진보해 왔다고 볼 때, 지금의 위기의
극복과 모순의 척결은 오직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위기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다시 말하자면 악화되는 자본축적조건과 함께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잉생산/무한경쟁의 결과라면, 우리의
대응이 지구적인 자본/제국주의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점 역시 자명하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