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권은 국민의 정부가 아니다
김 명 희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
세상을 살아가는데 삶의 법칙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예로부터
즐겨 사용해왔던 ‘가화만사성’ 이니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니 하는 말들이 있는가 하면 통일신라의 정신적
지주였던 화랑의 오계, 유교의 근본인 충효사상도 우리의 사상적
토대가 되어 왔다. 근대사회를 외세의 압제하에 보낸 통한의
세월속에서 시의에 편승하는 자만이 출세하는 타협적 조류가
형성되었는가 하면 아니 현대에 이르러서는 독재에 편승하는
아부적 출세주의가 판을 치기도 하였다. 신의와 성실의 원칙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고 권력과 자본만이 최선으로
치부되는 금권만능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노동자, 민중에게
권력과 자본은 타도의 대상일 뿐으로 평등세상건설에 장애물임이
분명했다.
일제하에서 민중수탈에 앞장섰던 무리들이 호의호식해왔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무리들과 야합한 자들은 출세가도를 달리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돈과 권력은 선호의 대상이기는 하되
잡놈들이 벌린 분탕질의 결과물정도로 규정되었다. 여기에서
자유․평등․평화란 없는 자들의 자기변명정도로
외면당하기 일쑤이지 않았던가?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늘 싸웠고
강압적 탄압에 피를 흘리고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해 왔다.
개들의 행진은 이제 끝나야 한다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기엔 부끄러운 과거가 너무 많다. 박정희의 총․칼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졌고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되었는가 하면
청년학생들이 피를 흘려야 했으며 산업현장은 굴종의 강요와
감시만이 번뜩이었다. 노동자는 기능동물로 전락되었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조차 붉은색으로 도색되어 탄압의 대상일
뿐이었다. 문민의 탈을 쓴 김영삼의 막가파식 통제엔 민주화의
이름을 더럽힌 분노까지 겹쳐 노동자, 민중을 허탈케 하였다.
개혁의 이름을 도용한 그의 구호는 사기임이 분명하였고 최근의
행각에서 그의 망나니적 본질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헌데
살인마 전두환과 노태우가 활보하는 지금의 세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영호남의 가교를 맺는 사절단의 천사로
둔갑한 그를 우리는 용납한 적이 없다. 누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는가? 노동자․민중을 수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므로 경제환란을 초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그들을
용서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노동자․민중들이
피를 토하며 외쳤던 책임자 처벌은커녕 고통분담이라는
통치술책에 현장은 초토화되고 있다. 누구인가? 이들이 활보할
수 있도록 개판을 만들어주는 자가 말이다.
구조조정은 반드시 철저하게 해야한다
이 나라의 권력과 자본은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고 목청을 높여
합창한 지 오래이다. 이미 수많은 노동자․민중이
생계전선에서 쫒겨나 거리를 헤메고 있으며 알량한
살림살이는 바닥을 보이거나 가중되는 빚으로 목숨까지 버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구조조정이 덜 됐단다. 이제 그들이
주장하는 구조조정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구조조정이 무엇인지? 그것은 바로 현장으로부터
체득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즉시 철저한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의 기구가 위인설관식이라는 점은
이미 수차례 지적되어 온 병폐이다. 착취와 수탈만을 위한
통제장치거나 경영비리를 양산하는 조직체계는 혁신되어야 한다.
또한 정경유착 등 부정부패에 대한 책임자처벌이 국민들이
납득할 수준에서 단행되어야 한다. 경제위기의 정확한 진상규명,
원인제공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현장에
강요되는 구조조정은 기만이자 사기일 뿐이다.
해서 우리는 자본의 무한축적과 착취를 보장하는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것이다. 근로조건 개악만을 염두에 둔
구조조정책동이기에 그들은 기존 단체협약이나 기
노사합의사항조차 이행을 거부하며 정부지침을 내세우는 탈법을
서슴치 않았다. 그들의 의도가 명확해진 이상 이제 노동자의
관점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당당하게 요구하자. 부정과 비리의
근본요인을 제거하고 경영이 투명하게 공개되며 평등세상 건설을
목표로 노동의 신성한 가치가 최우선시되는 구조조정을
즉각적이고 철저하게 하자는 것이다.
상식이 지켜져야 한다
국민의 정부라고 자칭하는 정부여당은 지난 6월 25일 한국노총과
노정합의서를 체결하였다. 공공부문의 단체협약 이행문제,
조폐노조의 공안탄압문제, 택시노동자의 월급제문제 등이
포함되었다. 헌데 이들 사안의 대상주체는 한국노총이 아니고
민주노총 산하 연맹이나 단위노조의 핵심쟁점이었다. 이러한
과제들이 최근 노동쟁의의 요인들이었고 이로 인해 총파업투쟁,
분신항거, 구속, 해고, 징계, 손배, 가압류 등 투쟁사업장의
현장탄압, 즉 무자비한 공안탄압이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노총이 이러한 문제로 파업투쟁을 하거나 탄압을
받은 사실은 전혀 없다. 헌데 정부여당은 사안의 내용상 구체적
수습대상인 민주노총은 외면한 채 한국노총 박인상 위원장과
합의를 체결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자․민중을
우롱했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커녕 청와대 면담
약속 한방에 취해 진행중인 결사단식마저 해제하고 예정된
노동자대회를 취소하는데 민첩성을 보인 민주노총이다.
노정면담의 성과를 애써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그들의 명백한 기만적 행각에 대해 언제까지
면죄부를 부여하며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상식을 지키지 않는 자에겐 비상식으로 맞서 상식과
비상식의 현격한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에겐 인내가 아니라 철퇴를 가해야 한다
사회민주화가 후퇴하고 있고 직장내 민주화마저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권력과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의 희생과 헌신만을 강요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양보할 것도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지 않은가? 현장은
위축되고 민주노조운동의 권위는 하강곡선을 그리며
대안세력으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현장엔 80년이전과 같이 권력과 자본, 사용자의 눈치보기가
성행하고 있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자본주의의 모순인 정경유착을 통한 자본축적음모를 비판하고
원망만 하며 바라볼것인가? 또는 저하되는 현장의 투쟁동력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조적, 수동적, 소극적, 수세적 입장만을
취할 것인가? 두 가지 모두가 민주노조운동이 취할 태도가
아님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이 시급하다. 이제 더 이상 무너져선
안된다. 더 이상 밀려선 위험수위에 도달한다. 앉아서 죽느니
당당하게 서서 싸운다는 필사즉생의 각오로 나서야 한다.
노동자․민중에게 인간다운 삶, 그리고 평등세상건설의
목표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자는 적이다.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망각하고 이기적 또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한다면 이 또한 적이다. 노동자․민중에게 기만적
환상만을 제공한 채 자본가정권을 자임하는 권력 그 또한
적이다. 해서 우리는 이전투쟁의 한계를 극복, 승리의 전망을
갖을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이고 철저한 투쟁전술로 맞서야 한다.
언제까지 대중동력의 상태만을 탓하며 자신없는 태도로 민주노조
운동을 나락으로 후퇴시킬 것인가? 가슴에 담긴 분노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 철퇴를 가해야 한다. 상식과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왜 노동자․민중이 보호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에겐 노동자․민중의 적을 무찌르고
평등세상을 건설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주어져 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