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위당을 우려한다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주말 진보정당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림에 따라 진보정당
창당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사실 진보정당 추진 움직임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92년 민중당 실험과 백기완 후보 출마,
지난 97년 대선에서의 권영길 국민승리 21후보 출마 등 90년대
들어 진보정당 실험은 비록 모두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계속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실험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과거와 다르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식적인 당으로는 민중당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실험이 민중당과 달리 민주노총 등 기층민중의 대중조직의
조직적인 결의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최근의 정세와 관련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김대중정부에 의해
강제되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라 노동자들과
민중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으면서 기존의 보수정치에 대한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불신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번 진보정당 움직임은 새로운 천년의 한국정치를
바꿔 놓을 중요한 역사적 계기로서 기대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러나 왠지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짧은 기간동안 1만명의 발기인 서명을 받아내는 등 대중적 기반
확충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노동현장 등
대중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고 대중적 열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97년 대선만하더라도 독자후보를 낸다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정에 의해 민주노총의 권영길위원장이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함으로서
민주노총 구성원들 표의 30%도 얻어내는데 실패한 바 있다.
이같은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결국 진보정당의 성패는 단순한
강령이나 다양한 정파들의 상층부 연합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대중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내고 직접
민주주의적인 새로운 정치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같은 대중들의 냉담함을
대중들의 정치의식의 저급성의 탓으로 간주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경향이다. 그 단적인 예로 국민승리21의 핵심관계자로서
진보정당추진에 중책을 맡아 온 한 관계자는 “노동운동내의
신디칼리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민주노총내의 일부가
경제투쟁에 매몰되어 있고 파업만능주의에 빠져 반정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만의 하나라도
진보정당추진주체들이 진보정당에 대한 노동자대중들의
열의부족을 이들이 경제투쟁과 파업만능주의에 매몰되고
신디칼리즘에 빠져 정치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은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노동자가
앞장서는 민중중심의 대중정당이 아니라 파업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무지한’ 노동자들을 소수 계몽된 진보정당추진세력이
교육시키고 계몽해 이끌어가려는 새로운 전위당, 즉 사민주의적
전위당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결국 대중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진보정당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진보정당을 다른 정당과 구분짓는 진짜 차별점은
강령이 아니라 대중과의 관계이다. 또 미래사회의 모습은
강령속에서가 아니라 당 건설과 운영과정에서의 대중과의
관계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일보 99. 8.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