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힘 (준비모임) 발족 선언문
지금 시기는 자본의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적인 공세를 그
특징으로 한다. 전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이제 자본은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서서 운동하고 있고, 세계적인 무한 경쟁을
외치며 자본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를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애초부터 세계적이었으며, 지금의 위기 역시 근본적 원인은
자본운동의 필연적인 결과인 자본의 과잉축적․과잉생산에
있다. 최근 자본의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적인 공세는 심화되는
모순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시기에 구사되는 자본의
축적전략이다. 보다 많은 이윤을 향한
자본의ꡐ자유로운ꡑ운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뒤집으려
시도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축적전략은 나라와 국경을 불문하고
노동자 민중의 노동권․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세계
도처에서 노동자․민중 투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세계적으로 변화된 축적조건 아래 지난 수십년간
자본주의적 발전과 함께 쌓여온 모순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위기의 결과 노동자 민중은 오히려 대량 실업, 빈곤의 심화 등
고통을 전담하게 되었고 노동 현장에서는 임금 삭감과 체불,
단협 파기, 부당노동행위 등이 자행되고 있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구속된 노동자 수는 역대 정권이 세운 기록을 상회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사면과 복권 그리고 수배해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원인은 해결되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이를 해결할 수 없음은 더욱 분명하다.
지금의 지배자들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 할 수 없으며, 단지
모순의 결과물을 노동자․민중의 어깨 위로 굴리는데
급급해하고 있다. 우리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이름 아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오히려 혜택을 보았음을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IMF 개입이후 상층 20%만의 소득 증가, 구조조정의 이름
아래 더욱 강화되는 독점자본의 지배력, 그리고 연이은 부패
사건들의 행진 등 모순은 더욱 심화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부르주아 정치권은 내각제, 합당 논의, 신당 창당 등 향후의
정치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정략적인 이합집산에 여념이 없다.
장미빛으로 덧칠된 우리의 21세기, 새 천년은 이와 같이 지난
시기의 모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썩어 가며 풍기는 악취와
구시대적인 인물들의 구태의연한 작태들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시기 쌓여온 모순을 척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대안세력이 부재함을 인식하고 있다. 위기의
신자유주의적 극복이라는 자본의 해법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시민운동은, 과거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시민의 이름으로
여론을 호도하면서 노동자 투쟁의 열기를 잠재워왔다. 노동자
운동 내에도 역시 노동조합주의의 한계에 갇혀 투쟁을 자제하고
국민정서에 호소함으로써 결국은 제도 정치권에 진출하고
교섭을 통해 약간의 처지를 개선해보자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운동이 진전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투쟁을 통해 쟁취되지 않은 성과물이
있었는지, 투쟁의 깃발을 내린 순간 저들은 어떻게
돌변했는지를. 96~97 총파업을 승리의 목전에서 접음으로써
개악된 노동법은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ꡐ대중투쟁동력의
부재ꡑ와ꡐ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제도정치권의
부재ꡑ를 근거로 투쟁을 접음으로써, 당시 정권을 궁지에
몰아 넣었던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정치력은 그후 선거의
틀에 갇혀 미미한 선거표수로 쭈그러들지 않았는가. 작년에
합의와 교섭의 이름 아래 양보된 정리해고제는 수백만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노동현장을 구석구석까지 파괴하는
대량학살의 무기가 되지 않았는가. 계급적, 전 사회적
관점에서의 운동력의 강화야말로 교섭력의 바탕이자 가장 중요한
정치력이지 않았는가.
최근 몇 년간에 걸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진정한 대안세력이
누구인지를 확인케 하고 있다. 총자본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계급은 전국적 정치총파업과 같은 대중적 정치투쟁을 통해
전체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및 민주적 기본권을 수호해
왔으며 노동자․민중의 연대투쟁을 복원시켜 왔다.
재야명망가들과 노동운동가들이 부르주아 정치판으로 흡수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계급적․민중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투쟁전선의 한복판에서 완강하고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다.
위기의 축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위기해법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러한 실천은 이제 그 정치적 목표와 방향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노동자계급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투쟁의 파급력과 영향력만이 아니라
정치적 방향성에서도 한국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비모임 단계에서 제안문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밝혔으며, 내부 논의를 통해 운동주체로서 이를 점검해 왔다.
이제 이에 근거하여 준비모임을 발족하면서 실천을 시작하려
한다. 현실의 노동자 운동은 조합운동의 협소한 지평을 넘어
민주적․계급적 운동으로 발전해 나갈 때에만 현실의
모순을 척결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과거 노동자 투쟁의 매
계기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왔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확신한다. 우리는 국내외의 노동자 정치와 관련된 실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역사적 한계를 극복해 나갈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 안으로는 독자후보전술, 민중당의 경험과
전위정당 건설을 둘러싼 실천들에서부터 밖으로는 동구의
현존사회주의와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제3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 등 노동자 정치와 관련된 실천들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여
합리적 핵심을 끄집어 낼 것이다. 우리가 개척하는 길은
국내외의 풍부한 역사적 경험에 기반하고 이를 자양분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자․민중정치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지역과 부문, 제반 영역에 걸쳐 고립분산된
상태에서 진행되어 왔던 활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면서 준비모임의 이름 아래 단일하게 결집, 전국적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견해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점검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우리는 견해를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제출하고 논의할 것이며, 결의된 사안은
분명하게 집행하고 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평가하여 그
성과를 축적하는 운동의 기풍을 정립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정치조직은 공공연하고 대중적인 활동을
전개할 것이며 준비모임은 이를 본격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역과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 새롭게 정치활동을 시작하려 하거나
오랫동안 휴지기를 갖고 있는 활동가들에게도 우리 조직의 문을
활짝 열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조직건설의 길을
함께 해 나갈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많은 동지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정치조직의 내용은
더욱 풍부화․구체화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치적 역량은 예외 없이 현실 운동 속에서
검증되면서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과거의 구습을 혁명적으로 부정하고 스스로를
단련시킴으로써 새로운 주체로 거듭날 것이며, 다양한 실천 속에
검증되고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정치조직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노동자가 지금 시대에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계급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진보를 이끌어 내고, 고통받는
민중의 선봉에 서서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계급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노동자․민중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주체로서
설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1999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