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조아적 처방의 대홍수 속에서
-‘대우사태’와 노동자계급의 대응-
채 만 수
부소장
위기로부터의 ‘경제회복’을 집권 1년 반의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김대중 정권의 선전이 한창인 가운데, 그리고 실제로
경제 각 부문에서의 높은 성장률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대우사태’가 터지면서 부르조아 각 분파는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부실 채무가 90조원이니 어쩌니
하는, 그야말로 상상을 절하는 규모여서, 이 사태를 계기로
또다시 ‘외환위기’가 폭발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죽어 나자빠지는 공룡의 사지․살점을 어떻게 먼저, 많이
뜯어먹을까’ 탐욕의 눈빛을 빛내기도 한다. ‘협력과 공동
대처’를 통해서 위기를 타고 넘으려고 하는 ‘채권단’의
협의가 조직되는가 하면, 채권 금융기관들의 ‘혼자만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비난과 질타의 소리도 높게
들린다. 그 가운데에서도, 거대 자금 투입과 이른바 ‘기업
워크아웃’ 등등, 이 사태가 대위기로 폭발하지 않도록
추스르려는 김대중 정권의 발빠른 조치들이 ‘재벌개혁’이라는
깃발과 함께 크게 돋보이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이러한 조치들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공황
구제’의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 내용은 특히
신자유주의적이고 반노동자계급적이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매판적 성격이 극히 강화된 것이기도 하다.
재벌개혁, 재벌해체 구호의 대홍수
아무튼, 재벌개혁! 그리고 나아가 재벌해체!
ꠏꠏꠏ 참으로 매력적인 깃발이다. 그리하여
그 동안에도 재벌 문제를 ‘문어발식’ ‘선단경영’이나
‘족벌경영’, ‘총수전횡’ 등의 문제쯤으로 파악하는 수많은
경제․사회학자들이 이 깃발을 앞세워 ‘진보적이고
양심적임’을 과시해 왔을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나아가
노동운동에서조차 그것은 ‘주류’의 깃발이 되어 왔는데, 거함
대우호의 침몰은 그들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어,
우리는 가히 ‘재벌개혁’․‘재벌해체’ 구호의 대홍수를
맞고 있다.
특히 대우의 붕괴는, 동시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한껏 능력을 과시하던 김우중의 몰락이기도 해서, 그 동안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를 통한 ‘전문경영인 체제의
확립’을 부르짖으면서도 암암리에 ‘창업 총수’의 ‘뛰어난
경영능력’ 문제로 자가당착의 괴로움을 당하던 사람들도 다소
그러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학자적
양심에서(?) 다음과 같은 유보를 달지 않을 수 없었던 반재벌
열혈투사 김기원 교수도 최근 (ꡔ한겨레ꡕ 8월
23일자에서였던가?) 유보 없는 ‘총수경영 해체’로서의
‘재벌해체’ 주장을 맘껏 펼치게 되었다. 과거 그의 유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재벌의 창업주는 분명히 professional manager이다. 재벌
창업주는 정치권 로비능력이나 노동자 억압능력까지 포함하여
어쨌든 효율성면에서 남보다 우수했던 전문능력가였음이
틀림없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좋다고 해서 이를 유능한
창업총수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김기원,
「재벌체제의 지양과 책임 전문경영체제의 구축」,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기획, 김대환․김균 공편,
ꡔ한국재벌개혁론ꡕ, 나남출판, 1999, p. 196.)
그것이 현실적으로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근사하게 들리는 소리에 함께 어릿광대 춤을 추려는
천둥벌거숭이가 아니라면, ‘재벌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하는 소리에 동하기 전에 김기원 교수의 위 발언을 주목해야
한다. ‘재벌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하는 주장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권 로비능력이나 노동자 억압능력까지 포함하여 어쨌든
효율성면에서 남보다 우수한 전문능력가”로 하여금 기업을
경영하게 하는 것! ꠏꠏꠏ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 본심이고, 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대우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그러한 주장의 대홍수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본심과 목표에서 명백한 것처럼, ‘재벌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하는 것은 분명 ‘독점자본의 합리화’
프로젝트이고, 독점자본가들의 프로젝트이다. 따라서 그
프로젝트는 ‘노동자 억압능력’은 물론 ‘착취’의 강화를
꾀하는 것으로서 사실은 비노동자계급적일 뿐만 아니라 본성상
반노동자계급적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독점자본가계급의 프로젝트인 한에서 철저히 노동자계급의
능력과 권한 밖의 일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노동운동 내부에서 ‘진보’의 이름으로
‘재벌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하는 주장이 강한 발언권을
갖는 것은 참으로 개탄해야 할 사태이다.
다시 확인하는 노동자 생존권
아무튼, ‘대우사태’를 맞아 노동자계급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가 현실적인 문제로 제기되어 있는데, 당장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어떠한 이유와 명분에서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재벌해체’니 하는
반노동자적 주장이나 ‘총수재산 환원’이니 하는 뜬구름 같은
주장을 외칠 것이 아니라, ‘기업회생을 위한 고통분담’을
앞세워 강화될, 고용, 임금, 기타 노동조건에 대한 자본의
공격에 대항하여 투쟁을 조직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다.
위기로부터의 ‘경제회복’을 김대중 정권은 치적으로
내세우지만, 그 ‘경제회복’이란 결국 수백만의 실업자와 임금
등 노동조건 및 생활수준의 전반적인 악화라고 하는
노동자계급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대우사태’의
발발에서 보듯이 그나마도 극히 불안정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직접적․간접적인 공격이 여러
형태로 계속적으로 강화될 것임을 말하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위기에 직접적으로 휘말려 있는 대우그룹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특히 절실한 문제이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적 이익의
사수’라고 하는 원칙에 특히 충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대우그룹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등은, 그것이 ‘그룹
살리기’든, ‘개별기업 살리기’든, 더 이상 ‘회사 살리기’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회사 살리기’는 어디까지나
자본의 프로젝트로서,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더라도,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구조조정’이니 ‘워크아웃’이니
하는 이름으로 강하게 압박되어 올 것이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할 일은 이를 거드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이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다.
기업을, 혹은 자본을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경영하는가는
어디까지나 자본가계급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 정권이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매국적 책동, 이른바
‘해외매각’의 문제까지 ‘자본가계급의 문제’로 돌리고
방관해서는 안된다. 이는 제국주의가 그 교두보를 강화하는
문제이고, 그만큼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제국주의의 위협에 더욱
노출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매각’에
반대하는 대우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한 것이며,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매각 저지와 국유화제기로 실질적인 반재벌 투쟁의
이정표를
해체되는 대우그룹 각 개별기업의 소유와 관련해서, 현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요구할 수 있는 길은 기본적으로
‘국유화’이다. 79~82년 공황에서 도산 위기에 처한 예컨대
‘현대양행’을 국유화해서 ‘한국중공업’으로 정상화시킨
사례를 대우의 계열기업 처리와 관련해서 따르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앞에서도 ‘재벌해체’니 ‘총수재산 환원’이니 하는 주장의
반노동자적 성격과 허황함에 대해서 얘기헀지만, 지금은
특히 투쟁을 그러한 일반적인 ‘반독점 투쟁’으로서가 아니라
‘대우 문제’로서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이렇게 투쟁을
집중시켜야만, 거기에 직접적인 사활의 이해가 걸렸기 때문에
말만의 투쟁이 아니라 끝내 목표를 쟁취하려는 비타협적인
투쟁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우의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공격을 분쇄하고, 계열기업을 ‘해외매각’시키려는 것을
저지하여 국영화시킨다면, 이야말로 실질적인 반재벌투쟁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문제는, 문제의 심각성이나 절박성에 비해서 집중적인 투쟁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점일 것이다. 대체로
매스컴 등이 직접적․간접적으로 고취하는,
‘경제회생’이니 ‘고통분담’ 등등 자본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노동자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또한 노동자계급 내부의 작은
이해의 엇갈림이나 차이 등을 자본이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와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선진적인 활동가들의
노력이 중요하고, 이들은 가칭 ‘대우사태 노동자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기구들을 시급히, 그리고 대우 그룹의 각
사업장에는 물론 그것을 넘어 광범위하게 조직하면서 투쟁을
조직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