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피바람’ 이야기
이 무 열
책만드는 노동자
이렇게 본다
선거때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피바람’ 이야기
이른바 정계개편, 지배세력 위기의 수습 방책
선거 때만 되면 예외없이 한 편의 납량특집극이 펼쳐진다. 피가
떨어져 빈사 상태에 빠진 흡혈귀들이 새로운 피를 찾아 세상을
헤집고 다니고, 흡혈귀에게 물린 ‘새 피’가 다시 흡혈귀가
되어 새로운 피를 찾는다. 판이 무르익으면서, 평소 흡혈귀를
흠모하던 ‘헌 피’들이 자기도 물어달라고 다투어 목을
들이민다. 난데없는 ‘새 피’ ‘헌 피’ 논쟁이 일면서,
흡혈귀가 좋아하는 피, 흡혈귀의 몸에 좋은 피가 어떤 피일까가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다. 흡혈귀에 대한 두려움, 흡혈귀 자체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누가 흡혈귀에게 물리고 누구는
못 물렸는지 하는 소문만 무성하게 나돈다. 그러는 가운데, 온갖
피로 배를 잔뜩 불려 힘을 회복한 흡혈귀들은 세상을 다시
자기네 것으로 만든 뒤 온몸에 뚝뚝 듣는 피를 말끔히
씻어내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다. 한
편의 납량특집극은 이렇게 한 바탕 소극으로 바뀌어 막을
내린다.
수혈과 흡혈과 헌혈과 매혈, 그리고 야합과 폭력으로 점철된
이른바 ‘정계개편’은 그리 길지 않은 한국의 정치사에서도
이제 어엿한 역사를 갖기에 이르렀다. 말 그 자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듯이, ‘정계개편’은 위기의식을 느낀 지배권력이 자기네
패권세력 또는 지배계급 전체의 지배를 계속 이어가고자
인위적으로 정치판을 다시 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던 사람들이 한 배를 타기도 하고,
지배계급 내에서 새로운 피를 충원하기도 하며, 가끔은
피지배계급 내 우수한 인자의 피를 빨아들임으로써 지배구조를
더욱 단단히 다지기도 한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계개편’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전개되어 왔다. 하나는 지배계급 전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치과정 자체를 폭력으로 중단시키고 정치판을 완전 재편한
경우로서, 5․16이나 10월유신, 5․17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제도권 내의 패권세력과
비패권세력들간에 각양각색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진 경우로서,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새롭게 결성되다시피 한 신당들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제도권 밖에서
대대적인 충원을 하여 정치판을 고쳐 짜는 경우이다. 물론 둘
이상의 유형이 중첩되어 진행된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경우에 상관없이, 그리고 그 화려한 말의 성찬과 상관없이,
‘정계개편’은 언제나 저들만의 잔치일 뿐으로서, 노동자와
민중들을 정치로부터 철저하게 소외시키면서 자신들에게
밀어닥친 위기를 수습하는 방책의 일환으로 전개돼왔다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
선거가 가까워오고 집권세력의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다시
‘정계개편’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아마도 저들의 최선의
방책이었을 게 분명한, ‘지역연합’에 토대를 둔 ‘2 +α’의
합당안이 자신의 입지에 불안감을 느낀 일부 자민련 의원들의
저항으로 일차 무산된 후, 국민회의는 ‘1 +α’안에 이어
다분히 선정적인 ‘α+ 1’의 신당안까지 내어놓으며 세상을
향해 추파를 던지고 있다. 이제라도 ‘개혁적인 보수세력’과
‘건전한 혁신세력’으로 일종의 ‘개혁연합’을 구축해 진짜
‘개혁’을 해보자고, 이제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진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 되겠노라고, 경제위기의 깊은 골짜기를 건너는
동안 말라 비틀어져 버린 서민들의 눈물을 이제라도
닦아주겠노라고.
왜 1년 반 전에는 그것이 불가능했고, 반년 전에는 왜 못했는데,
이제 와서 그러는 걸까? 외환 위기 때문에? 경제는 살려놓고
봐야 하니까? 기득권층의 저항이 워낙 심해서? 극우
보수정당과의 연합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고, 계제에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건강하게 바꾸어가자고 소리
높여 외쳤건만, 그토록 외면을 하더니, 이제 와서 왜? 지금 와서
달라진 건 뭔데? 언제 위기가 다시 올지 모를 만큼 경제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은 저들도 누차 강조하고 있고, 기득권층의 저항은
날이 갈수록 더 거세지고 있으며, 정권의 태생적 한계는
여전하고, 게다가 현 정권의 비리까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이전과 지금의 차이는 오직 하나, 내년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뿐이다.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남은 기간 동안에 안정적인 지배를 확보할 수 있고,
그 뒤까지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총선 승리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당
지지율의 급속한 추락, 최근의 보궐선거에서의 잇따른 패배,
‘정치’와 정치판 전체에 대한 혐오감의 급속한 확산이 저들의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우리와는 관계없이 반복되온 정계개편
그리하여 ‘2 +α’ 합당안이 나왔고, 그것이 무산되자 다시 ‘1
+α’, 그리고 집권당이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α+ 1’
신당안까지 나왔다. ‘α+ 1’ 안까지 거론된다는 것은 그만큼
저들의 위기의식이 심각함을 뜻한다. 저들은 동물적인 본능으로
위기를 느낀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위기
타개책을 취한 결과 노동대중의 삶이 도탄에 빠진 데 있다는 것,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되면서 전통적인 DJ 지지층마저도
등을 돌리는 데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안다. 그래서 ‘신당’
쇼를 펼쳐 다시 한번 ‘그래도 DJ'라는 해묵은 레퍼토리를 어느
정도나마 복원하고, 또 21세기의 새로운 주도 세력 운운해가며
또 한 차례 사람들을 현혹해보려는 것이다.
참신함을 가장한 이번 ‘정계개편’이 어떻게 귀결되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역시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길지 않은 정치사의 큰 줄기를 빠짐없이 장식할
만큼 빈번히 전개돼온 ‘정계개편’과 ‘수혈’의 역사가 그것을
웅변한다. 언제는 권력에 ‘진보’ 인사가 없어서 개혁을
못했나? 개인으로건 집단으로건 정치권이나 권력핵심에 투신한
‘진보’ 인사들만 해도 그 수로만 보면, 이제 웬만한 당 하나를
만들 정도가 아니라 권력을 접수할 수도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도 항상 극소수로서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충원된 ‘진보’ 인사의 대다수는
곧바로 보수 지배세력에 동화되어 제 색깔을 잃어버리고, 충분히
동화되지 못한 소수는 잠깐 동안 소모품으로 활용되다가 이내
내침을 당하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 때 다시 새롭게 충원이
이루어져 소수파를 형성하지만, 곧 같은 과정을 거치며
소멸되고, 다음에 또 같은 과정이 되풀이된다. 그러니 이른바
‘진보’ 세력은 항상 미미할 수밖에 없다. 연거퍼 ‘수혈’을
해도, 결과는 항상 똑같은 것이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권력핵심부의 이야기들도 이런 역사가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국민회의가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추진한다는 획기적인 신당이 결성될 경우,
정황으로 보아 쬐끔은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5 : 3 : 2
배분방식을 한번 들여다보자. 국민회의 5, 전문가 그룹 3,
재야와 시민운동 세력 2의 배분이다. 여기서 이른바 ‘전문가’
그룹이란 대부분 현재의 불합리한 사회 메커니즘 속에 일찍부터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발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쌓아온
사람들로서, 언제나 권력 엘리트 충원의 예비 풀이었다. 권력
속에 편입된 전문가들은 언제나 권력의 브레인이나 홍보맨,
대중과의 연결 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지배구조를
굳히는 데 일조해왔다. 그들의 충원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개혁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빼놓고 보면
재야․시민 세력의 비중은 20%에 불과하고, 그나마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두고 권력과 첨예하게 대치해온 세력은 합류하지
않을 게 분명하므로, 이들이 비록 운좋게 20%의 비중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그 ‘개혁성’이 관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권력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영입폭이 대폭 커지는 것일 뿐, 신당
창당 역시 권력의 성격 변화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민련이 합당 의사를 비쳐온다면 언제든 환영이라는 한
권력핵심의 이야기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이른바
‘개혁연합’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1순위인 ‘지역연합’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고, 그렇게 되는 날에는 이른바 ‘개혁’
세력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면서 예전의 소규모 ‘수혈’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요컨대,
저들의 신당 창당은 말로 떠드는 ‘개혁’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총선 승리를 통해 지배권력을 굳히기 위한 것일 뿐이다.
저들의 말장난과 꼼수를 맘껏 비웃어주자. 저들의 위기를 우리의
기회로 만들지 못하고 극우 보수세력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가게
만드는 우리의 나약함을 통탄하자. 우리의 팔과 다리를 시종
붙들고 놔주지 않는 체제에 주저없이 분노하자.
저들은 원래 그런 족속이려니 치고, 문제는 언제나
‘진보진영’의 대응이었다. 수혈의 명분은 흡혈귀에게 목을
내미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충분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느니, 성과없는 반대만 하고
있기보다는 안으로 들어가 다만 한 가지라도 챙기는 게
낫다느니, 언제 올 줄 모르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기보다는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는 게 낫다느니, 기득권층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개혁’ 진영을 밀어줘야 한다느니, 적어도 개혁의
후퇴는 막아야 하지 않겠냐느니, 어쩌면 개혁의 주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느니…
아무리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나 인간 집단은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아직도 경험이 부족한가? 잠깐만
돌아보자. 그 화려했던 민중당 4인방의 행태를, ‘진보진영’의
대부로 일컬어지던 김아무개, 이아무개 등의 행태를, 그들에게
기대를 걸었던 각종 개혁입법이나 정책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국가보안법은 아직까지도 시퍼렇게 살아 갈수록 더
많은 구속자를 내고 있고, 노동법 역시 숱한 독소 조항을 담은
채로 노동운동을 옥죄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를 거치는 동안
저들이 노동자와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가진 자들만을
살리는 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요즘 와서 지배권력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들에게 조금 힘이
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는 저들의 ‘존재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제가 살기 위해 새 피를 구하는 흡혈귀에게 새
피를 끌어올 새끼 흡혈귀들이 필요하므로 저들을 다시 이용하는
것뿐이고, 저들 역시 자신의 입지를 개척하기 위해 그 기회를
활용하는 것뿐이다. 여담 한마디만 하고 가자. 저들이 ‘수혈’
당시의 생각, 일종의 ‘초발심’을 상기하여 집단으로 개심을
한다면, 최소한 합법적인 진보정당 하나 만들고자 이렇게 난리를
치진 않아도 될 것이다. 2~3명 원내 진출이 문제가 아니라,
제3당 정도는 금세 만들어질 것 같은데…. 저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저들이 이미 체제 내에 깊숙이 포섭되어 체제와 한몸이
되었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새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안 그럴까? 잠깐 반짝하다가는 이내 동화되어 존재 의미를
상실할 거라고 본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우리도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의 주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체제는 이렇듯 엄청난
흡인력으로 ‘전문가’와 ‘진보세력’, 그리고 가끔은
노동자․민중의 우수한 인자들까지 빨아들이며 스스로를
보강해가는데, 그리하여 체제는 영원을 노래하고
노동자․민중은 영원한 질곡 속을 헤매는데, 자주와 민주와
통일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서 실현될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고, 자유와 평등과 평화로 가는 길은 요원하기만 한데….
관건은 언제나 힘이다. 지금의 체제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
지금의 체제에서 삶의 기쁨을 찾지 못하는 이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힘을 모아 모아서 우리를 옥죄고 있는
체제에 철퇴를 가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까지, 아주 좁은 곳에서부터 가장 넓은 곳까지, 부딪히는 모든
지점에서 체제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여기서 틈새는 금물이다. 모든 틈새는 갖가지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틈새 공략에는 우리보다 자본이 백배는 더 능하다.
틈새를 벌리는 순간, 그 틈을 타고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와
기회주의와 보신주의가 파고든다. ‘우리도 세상의 주인’이라는
소극적이고 타협적인 자세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상황을 개척해 나갈
때, 길은 분명히 열릴 것이다. 한/노/정/연